먹튀/야구/NPB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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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준[편집]


  • 2022년 팀 성적 기준으로 표기를 한다.
  • ㄱ.ㄴ.ㄷ 순으로 표기.
  • FA 또는 대형 신인들도 집어넣어도 무방하며 먹튀 성적을 냈다면 볼드체 표기를 넣어도 된다.


2. 센트럴 리그[편집]


  • 과거에는 요미우리가 수집하던 FA 선수들이 많았다.


2.1. 야쿠르트 스왈로즈[편집]


  • 나루세 요시히사 : 치바 롯데에서 야쿠르트로 FA 이적(3년 계약) 첫 해 2015년 단 14경기만 등판하고 8월 1일 이후 말소, 일본시리즈 명단에도 들지 못했고 6,600만 엔 삭감. 2016년 22경기 중 선발 등판은 겨우 10경기. 2017년 12경기로 줄었고 선발 등판은 단 한경기, 1억 2400만 엔이나 연봉이 삭감된 2018년 1군 등판을 하지 못하면서 방출 통보. 나루새
  • 다니엘 리오스 : 2007년 KBO에서 기록적인 22승을 거두고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1억 엔의 연봉에 입단했으나, 2승 7패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도핑까지 적발되면서 구단에서 쫓겨났다. 한일 양국의 흑역사가 되었다.
  • 데이비드 허프 : 2016 시즌 중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2017 시즌까지 뛰어난 활약을 하였는데 시즌 중 부상이 있었고 140만 달러를 제시한 구단과 협상이 결렬되자 같은 금액을 제시한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하였다. 일본프로야구 데뷔 후 시즌 초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2군으로 강등되었고 1군 복귀 후에는 불펜으로 뛰었으나 역시 얻어맞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받은 금액을 엔화로 환산하면 1억 4700만 엔이었는데 이는 팀에서 4번째로 많은 금액이었다. 그래도 대폭 삭감된 연봉으로나마 2019년 시즌 재계약에 성공했다. 재계약하고 불펜으로서는 필승조 좌완으로 활약하다가 후반기 부진으로 인해 준수한 성적을 남기고도 방출당했다.
  • 래스팅스 밀리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극한의 투고타저 시즌인 2012년에 3할 타율에 21홈런을 치는 등 5툴 플레이어 외야수로 활약했기에 3년 440만 달러에 연장 계약을 맺었는데, 이후 3년 합쳐서 130경기 나와서 홈런 18개 쳤다. 1시즌에 평균 43경기 출장 6홈런을 기록한 셈. 이 시기 평균 타율은 .243으로 연평균 15억원 가까이 받아먹은 용병이 평범한 대타 요원 수준의 활약을 보여줬으니...
  • 알시데스 에스코바 : 베테랑 유격수 오비키 케이지의 은퇴로 인해 새 유격수가 필요한 야쿠르트가 영입한 외국인 유격수. 시즌 초반 수비에서 엄청난 수비와 비록 똑딱이여도 나름의 타격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시즌 후반부터 수비범위가 급격히 줄어[1] 3루수로 자리를 옮겼으나 거기서도 좁은 수비범위로 태업설까지 오갔다. 시즌 종료 시점에서 풀타임을 뛰고도 고작 1홈런에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에서 WAR 꼴찌, UZR 꼴찌, 센트럴리그 유일 직구 홈런 0개라는 난장판을 찍고 방출. 그 후 마이너리그로 갔다.
  • 조단 노베르토 : 주니치에서 괜찮은 선발 요원으로 활약한 뒤 2018년 야쿠르트로 이적했다. 하지만 1군에 1경기도 못 올라와놓고 부상으로 한달만에 시즌아웃당한 후에 SNS에서는 내년에 복귀할거라면서 주니치 드래곤즈 얘기만 엄청 해대고 주니치 드래곤즈 유니폼 사진을 올리는 등 본인이 어느 팀 소속인지 잊은 듯한 행동을 보이면서 야쿠르트 팬들에게 먹튀 주제에 소속팀까지 부정한다면서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결국 6월에 방출.

2.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편집]


  • 모리모토 히초리 : 2011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FA 이적 후 부상 등에 시달리며 첫해 48경기, 이듬해 108경기에 출장하여 반등하였으나 2013년 단 4경기 출장(5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방출되었다. 뱡출후 세이부가 주워가며 가까스로 현역 연장에 성공. 세이부에선 대타, 대주자, 대수비로 활약하는 백업으로서 재기에 성공했으나 2015년 셋다 안되는 모습으로 결국 은퇴.
  • 사사키 카즈히로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이자, 수호신 이요 노모 히데오 다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2]한 뒤 3년간 119세이브를 기록하는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으나 2003년에는 아쉽게 부상으로 10세이브에 그치면서[3] 시즌 후 친정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2004, 2005년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연봉인 6억 5천만 엔의 연봉을 받고도 각각 19세이브, 4세이브에 그쳤으며, 특히 2005년에는 평균자책점이 9.00에 달하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이며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며. 중간에 셋업맨이였던 외국인 투수 마크 크룬이 마무리 자리를 이어받는다
  • 스티브 콕스 : 200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계약금 100만 달러, 연봉 275만 달러(약 3억엔), 3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입단한 타자. 하지만 스프링캠프부터 드러누워버린데다가 15경기만에 부상을 당해 1년만에 방출되었다.(...) 참고로 같은 해 요코하마에 입단해 콕스의 먹튀짓을 만회한 연봉 5000만엔짜리 외국인 선수가 바로 두산에서 뛰던 타이론 우즈이다. 액수만으로 따지면 위의 그린웰마저 뛰어넘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외국인 먹튀.
  • 제이미 로맥 : 2016년 아롬 발디리스의 대체 자원으로[4] 68만 달러에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계약하였으나 30경기 71타수 8안타(.113) 0홈런 2타점을 기록하고 방출되었다.[5] 그러나 2017년 시즌 도중 부상으로 방출된 대니 워스가 은퇴를 하며 지나가던 찰나 로맥을 추천한다. 워스를 대신하여 SK에 입단하고 난 뒤 정경배 코치와 시너지효과를 거둬 많은 홈런을 쳐줬고, 삼진이 좀 많기 했지만 꽤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등, 거포로서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2.3. 한신 타이거즈[편집]


  • 고바야시 히로유키 : 2000년대 내내 롯데의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했고 2010년에는 YFK(야부타+후루야+고바야시)[6] 필승계투진의 일원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냈지만, 이듬해 한신 타이거즈로 FA 이적한 뒤에는 첫해 42경기 등판을 마지막으로 2012년 방출.
  • 니시오카 츠요시 : 메이저리그에서 처참한 실패만 거둔 이후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지만, 이적 이후 규정타석을 채운 건 계약 첫 해인 2013년 단 1번이었고 나머지 시즌은 부상, 부진에 허덕이며 제대로 출장조차 못했고 그나마 출장한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2014년 일본시리즈에선 사상 유례없는 수비방해로 인한 끝내기 병살 판정으로 일본시리즈 패배 결정이라는 대형사고를 쳐버렸고 결국 계속되는 부진 끝에 2018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고 말았다.
  • 마이크 그린웰 : 한신 타이거스 역사상, 아니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외국인 선수. 한신판 루크 스캇, 제임스 로니이자 상위호환. 설명하기에 길어서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
  • 라울 알칸타라 : 2019년 kt wiz에서는 무난한 모습이었지만, 2020년 두산 베어스로 이적 후 대각성하며 팀의 1선발로 활약했고, 이를 본 한신이 그를 영입해 외국인 1선발로 활약해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선발은 커녕 불펜으로도 쓸 수 없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7] 특히 라이벌팀인 요미우리 상대로 너무나 약했고, 결국 2년 동안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로하스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두산이 다시 알칸타라와 재접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멜 로하스 주니어 : 로사리오를 잇는 한신의 KBO産 외국인 선수 잔혹사. 2017년 kt wiz에 입단한 이후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20년 타격 4관왕으로 리그 MVP를 수상하며 엄청난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한신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 한신 유니폼을 입게 되었지만, 첫해 개막 후 21타수 무안타로 시작하는 등 처참한 타격을 선보였다. 그나마 후반기에 반등해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다음 해에는 더 못한 성적을 보여주며 한신 연봉 1위임에도 처참한 성적으로 투수인 알칸타라와 한신의 레전드 먹튀로 기록되었다 시즌 끝나고 둘 다 방출크리.
  • 윌린 로사리오 : 한신 역사상 최고액 용병 영입이라는데(2년 8억엔) 현실은 에르네스토 메히아, 맷 도밍게스와 성적이 별 차이가 없다. 대타나 하위타선으로 주로 나온 둘과는 달리 시즌의 1/3 이상을 풀 타임 중심타선으로 나와놓고도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고 로사리오는 연봉을 1/2이상 삭감해서라도 잔류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지만 최하위로 추락해버린 한신이 2년째 계약을 해지하면서 방출되었다. 로사리오가 방출 되면서 이때부터 KBO 리그를 폭격하고 온 용병들이 일본리그 에서 과연 적응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의문이 걸리기도 했다.
  • 이토이 요시오 : 한신에서 국내파 선수들 중 연봉을 많이 받는데, 2020년 발목 수술의 영향으로 86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고 타율 2할6푼8리 2홈런 28타점에 머물렀고 이듬해 4억에서 무려 54%(2억 1500만엔)나 깎인 1억 8천500만엔에 계약했다. 애초에 계약 시점의 나이가 30대 후반이었어서 계약 후반대의 성적 저하는 어느 정도 감수한 계약이긴 했다. 2021년 현재는 대타요원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가 2022년 시즌 중 은퇴를 선언하며 그래도 타구단과 한신 구단 팬들에게는 박수칠때 잘 떠났다 라는 식으로 반응이였다. 후쿠도메 처럼 엔트리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깐

2.4. 요미우리 자이언츠[편집]


  • 그레고리 폴랑코 : 2022시즌을 앞두고 요미우리가 야심차게 영입했으나 폭망했다. 24홈런을 쳤는데 타출장이 .240 .306 .457밖에 안 된다. wRC+는 113. 게다가 UZR -10이 넘는 재앙급 수비 때문에 WAR가 0.4밖에 안 된다. 더더욱 문제는 연봉 2억 5천만엔씩 다년계약을 했다는 것. 연봉 3,400만엔을 받는 독립리그 출신 아담 워커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성적을 기록했다.
  • 모리후쿠 마사히코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팬들에게는 최강의 좌완불펜이었지만[8] 기량저하가 찾아온 2017년부터 뛰게 된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먹튀 취급받는 중. 2018년에는 드디어 평균자책점이 10점을 넘어서는 위업을 달성하였고 아사히 신문에서도 불량채권이라고 까였다.[9] # 결국 2019년 10월 1일 방출되었다.
  • 댄 미셀리 :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인 베테랑 계투 요원으로 200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클로저로서 낙점하고 영입했지만, 개막전부터 블론세이브에 역전패로 폭발한 것을 끝으로 시작해 나온 경기마다 얻어맞더니[10] 시즌이 개막한 지 1달도 채 안 지난 4월 18일에 광속으로 방출되었다. 1억 7500만엔 + 2군 강등 거부권[11]을 주고 데려온 그의 NPB 최종 성적은 4경기 2.2이닝 ERA 23.63단 77구를 던지고 퇴출되었다. 퇴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브라이언 배스처럼 아사쿠사 일대에서 관광을 즐기는 모습이 사진에 잡혀서 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이래놓고 메이저 복귀에 성공해서 2년간 50여경기에 더 출장했다
  • 스기우치 토시야 : 요미우리 FA 이적 첫해에는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양대리그 탈삼진왕이 되는 등 호크스 시절부터의 활약을 계속해서 보였지만, 점점 노쇠화로 성적이 하락세를 타더니 고질적인 부상이 악화되어 1군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015년 어린이날 0⅔이닝 6실점으로 거하게 말아먹고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연봉이 5억 엔에서 5천만 엔으로 무려 90%나 삭감되었으며[12] 이는 일본프로야구 최다 연봉 삭감액. 하지만 대삭감 이후에도 재기하지 못하고 2016년과 2017년에는 입단 후 처음으로 1군 등판을 하지 못했다. 결국 2018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다만 계약으로만 따지면 4년 계약 중 첫 3년간은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는 등 괜찮게 써먹었고 본격적으로 출장을 못하게 된 것은 연봉을 대폭 삭감한 이후라 다른 먹튀들과 비교하기에는 다소 억울하다.
  • 야마구치 슌 : 2006년 요코하마에서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며 2017 시즌을 앞두고 요미우리로 이적, 좋은 모습을 보이고 2020년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지만, 완전히 폭망[13]하고 다시 요미우리로 돌아오게 된다. 2021 시즌엔 선발 로테이션을 그래도 돌아주었지만 승운이 따르지 않아 15경기 78.1이닝 3.56 2승8패의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좋은 피칭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기대케해 2억 3천만엔에 계약을 맺었지만, 2022 시즌 4월 8일 야쿠르트전 2이닝 등판한 1경기를 끝으로 부상과 부진으로 1군에 아예 올라오지도 못했다. 거기에 시즌이 끝나고 바로 방출까지 되었으니 빼도박도 못하는 먹튀.
  • 양다이강 :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에는 2013년 "UZR" 1위를 기록하고 골든글러브를 4번이나 받는[14] 등 리그 최고의 중견수였으나 여러분 최고의 외야수를 영입했습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이후 FA선수가 육성군으로 가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결국 2018 시즌에 굴욕적인 성적을 거둔 이후 요미우리는 마루 요시히로를 영입하였으나 보상선수로 요미우리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원클럽맨 이였고 요미우리 바라기로 충성심이 강했던 프랜차이즈 선수인 초노 히사요시를 내줘서 그야말로 요미우리 팬들에게 찍히며 푸짐하게 욕을 먹었다. 2021년까지 끈질기게 잔류했으나 그 2군에서 성질머리로 유명한 아베 신노스케 감독에게 태도불량으로 찍혀 육성군[15]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고, 결국 시즌 종료 후 팀에서 방출되어 미국 독립리그로 떠났다. 여담으로 쵸노는 2023년 부터 다시 거인의 멤버로 컴백했다. 구단 수뇌부가 찾아가서 데려옴
  • 에릭 테임즈 : NC 다이노스에서 대활약했던 그 테임즈 맞다. 2016년 까지 KBO에서 뛰다가 17년도에 MLB로 리턴하면서 주전과 백업으로 활약하던 도중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연봉 120만 달러로 1+1 계약을 맺었는데 데뷔전에서 외야수비를 보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아웃을 당했다. 팀의 빡빡한 복장 규정의 문신 조건까지도 풀어주면서 데려왔는데 남은 것은 1경기 출장, 2개의 삼진 기록이 전부. NC의 준 프랜차이즈 스타 급으 선수로 정착한 한국에서와는 달리 안타깝게 최악의 결말을 맺었다. 물론 1+1인 만큼 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1경기에서 0.000 기록한데다가 원래부터 수비가 불안정[16]했고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장점인 주루툴까지 잃었을 것이 뻔하며 다른 잘 치는 용병타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기회를 줄 가능성은 낮다. 비록 운 나쁜 부상으로 커리어를 종쳤으나 하라 감독을 포함한 여러 코칭스텝들에 의하면 훈련할때 늘 성실했으며 열심히 했다며 그를 칭찬하기도 했다.
  • 스미타니 긴지로 : 포수 출신으로 그렇게 특출난 성적도 없이 FA를 취득하여 거인의 멤버가 된 그는 데뷔 14년간 한번도 2할 5푼을 못넘겼었는데 요미우리로 이적 후 2할 6푼을 쳤다. 비록 많은 경기를 뛰지 않았기에 다음 시즌이 기대될법 했지만 그냥 뽀록이 였고 창렬 같은 성적을 찍으면서 가차없이 라쿠텐으로 보내버렸다.
  • 카지타니 타카유키 : 2020시즌 종료 후 4년 8억엔 규모의 계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계약 첫 해에는 갖은 부상에 시달리며 60경기 출전에 그쳤다. 적은 경기에 나오긴 했으나 비율 스탯 자체는 못 봐 줄 정도는 아니어서 건강만 하다면 제값은 해 줄 것으로 보였지만 2022년에도 부상에 시달리더니 결국 반월판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되며 사이버 타자가 되고 말았다. 2023년부터 육성선수로 강등되며 2억엔 짜리 육성선수로 전락했다.
  • 크리스 세든 : 2014년 SK에서 넘어왔으며 첫 등판인 히로시마 전에서 15탈삼진을 뿜내며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거기까지 였고 이후로 좀 털리다가 호투할까 마나 하는 퐁당퐁당 롤러코스터식 피칭을 선보이며 1년만에 계약해지를 하며 대만과 한국 리그에서 현역 연장을 했었다. 성적이 신통치 못한 이유는 일본식 스케쥴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판명.
  •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FA 등을 통해 싹쓸어간 4번타자들 : 오치아이 히로미츠(주니치), 히로사와 카츠미 & 잭 하웰(야쿠르트), 이시이 히로오(킨테츠), 키요하라 카즈히로&도밍고 마르티네스(세이부), 에토 아키라(히로시마), 로베르토 페타지니(야쿠르트), 터피 로즈(킨테츠) 등. 내로라하는 리그 대표 슬러거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데려오던 거인군의 90년대~2000년대 초반 행보. 대부분이 원래 포지션이 1루수였고 이적후에는 낯선 코너외야를 보거나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하위타선 및 대타로 강등되기 일쑤라 대부분 기대에 못 미쳤고 어쩌다 1~2시즌 정도 반짝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게 극에 달했던 시즌이 2004 시즌. 팀 홈런 259개 & 팀 도루 25개[17]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각각 일본프로야구 최다/최소 기록이다. 그나마 이적당시 이미 40대였던 오치아이나 교통사고로 컨택능력이 떨어졌음에도 2000년 부동의 3번타자로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던 에토, 양대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터피 로즈[18], 그놈의 키요하라만 아니었어도 원래 클래스를 보여줄 수 있던 페타지니 정도가 참작 가능한 정도이다.[19]

2.5. 히로시마 도요 카프[편집]


  • 쵸노 히사요시 : 본래는 요미우리의 프랜차이즈 선수. 마루 요시히로가 FA 권리를 행세하여 요미우리로 입단했는데 뜬금없이 쵸노가 보상선수로 지목되어 이적을 하게 되었다. 반대로 마루는 히로시마의 프랜차이즈 선수 였던셈
4년간 뛰어난 성적도 없었고 100경기 이상 소화한 시즌도 없었기에 히로시마 구단은 연봉 1억엔 이나 하는 선수가 성적은 나쁘고 로스터만 소비한다 라면서 방출 시켰다. 쵸노는 요미우리의 콜을 받아 친정팀으로 돌아오면서 마루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다만, 히로시마 팬들에게는 팬 서비스 하나만큼 좋았던 선수 라고

2.6. 주니치 드래곤즈[편집]


  • 다니시게 모토노부 : 2001년 시즌 후 요코하마에서 FA로 풀려 넘어왔다. 보상선수로는 나카무라 타케시[20] 4년간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그대로 주니치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아있을까 하려던 찰나 후루타 아츠야 처럼 선수 겸 감독을 겸직하며 커리어 오점만 남기면서 2010년대 중후반 주니치의 암흑기를 만들고 말았다.
  • 카와사키 켄지로 : 1990년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우완 에이스로 1998년 사와무라상 수상자. 2000년 시즌오프에 주니치 드래곤즈로 FA 이적하였다. 주니치의 에이스로 활약할 것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주니치 소속으로 뛴 4년간 어깨 부상으로 인해 1군 등판은 고작 3경기에 불과하였다. 하도 안 나오다 보니 인터넷 상의 트롤들이 올스타전 팬투표 선발투수 부문에서 카와사키에게 몰표를 한, 일본판 파맛 첵스 사건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일본판 임태훈 이라고 한국 네티즌에게 까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3. 퍼시픽 리그[편집]


  • 유달리 파리그는 롯데에 외국인 선수들이 많았고 소뱅은 2군이나 그외에 선수들이 많이 있었다.


3.1. 오릭스 버팔로즈[편집]


  • 나카지마 히로유키 : 2014년 시즌을 접전 끝에 2위로 아쉽게 끝낸 오릭스 버팔로즈가 메이저 도전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리턴한 나카지마를 야심차게 영입했지만, 첫 해부터 2할 4푼 타율에 10홈런이라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더니 온갖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4년간 단 두 번 규정타석을 채웠고, 1루수/지명타자 주제에 OPS 8할은 한 번도 못 넘기는 최악의 가성비를 보여주었다. 결국 2018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풀렸고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주워 갔는데 5월에 2군으로 갔다. 그후 2020년 부활에 성공해 노익장을 과시중. 오릭스 팬들 입장에서는 빡칠만 했다.
  • 돈 로치 : 2017년 kt wiz에서 뛰었던 땅볼을 잘잡는 땅볼 투수로 결정구가 부족하고 타선지원과 수비지원을 받지 못해 4승 15패 ERA 4.69라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재계약하지 못했다. 2018년 트리플A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7월 오릭스 버팔로스에 3000만 엔에 입단했는데 최종 성적은 11경기 2승 3패 ERA 5.01를 기록, 재계약 불가 판정을 받고 두 달 만에 일본을 떠났다. 최소한 받는 돈이라도 적었으니...
  • 이가와 게이 : 뉴욕 양키스에서 부진한 기록을 남기고 오릭스로 왔으나 미국에서의 부진이 그대로 이어지며 2012, 2013시즌 별 볼일없는 기록을 남겼고 2015년에는 2군에서도 훈련 만큼은 열심하는데 성적은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방출당하고 독립리그로 떠났다. 그저 팬들은 불쌍하다는 동정만 있을뿐

3.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편집]


  • 마츠나카 노부히코 : 이승엽과 쌍벽을 이뤘던 NPB 양대 급료도둑.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문 비FA 장기 연장계약의 사례이자 실패 사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2004년 헤이세이 시대의 유일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고 투수 친화구장인 후쿠오카 돔을 홈으로 3년 연속 120타점[21]을 기록하는 등 리그 최고의 강타자였다. 하지만 2006년 시즌 개막 전 소프트뱅크와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장기간 계약인 7년 총액 45억엔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부상이나 노쇠화 등으로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다른 강타자들의 영입으로 인한 포지션 경쟁과 본인의 계약 규모 등으로 인해 선수생활 연장을 놓고 수뇌진과 갈등을 빚다 2015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다른 팀에서의 재기를 노렸으나 오퍼하는 팀이 없었고 결국 프랜차이즈 스타 치고는 초라한 은퇴를 하게 된다.
  • 마츠나가 히로미 : NPB 최초의 FA 선언자. 한신 타이거스에서 고향 후쿠오카에 자리잡은 다이에 호크스에 이적해 첫 해에 규정타석 만족 타율 3할로 활약했지만.. 이후 성적이 급하락하며 먹튀행.[22] 결국 1997년 시즌오프 때 방출되면서 은퇴했다. 참고로 마츠나가는 트레이드로 이적한 한신 타이거스 때도 부상 등으로 인해 먹튀가 된 바 있다.
  • 브래드 페니 : 스기우치 토시야-와다 츠요시-데니스 홀튼이 모두 빠져나간 소프트뱅크 선발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연봉 2억 2500만엔(추정)으로 영입.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영건 선발진의 일원으로 2003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였고 영입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119승의 실적이 있는 우완 선발 투수였지만 소프트뱅크에서는 단 1경기, 3.1이닝 ERA 10.80의 충격적인 성적만 남기고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방출. 위의 미셀리가 77구 던지고 방출이라면 이쪽은 64구 던지고 방출. 호크스 구단 측은 그를 방출하면서 '일본의 다른 구단에서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마츠자카만 아니었어도 호크스 사상 최악의 투수 먹튀였을 선수.
  • 블라디미르 발렌틴 : 야쿠르트 시절만 놓고 보면 스왈로즈 프렌차이즈 사상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부상으로 날려먹은 2015년을 빼면 30홈런이상 찍어주는 뛰어난 거포였으나 2020년 야쿠르트와 연봉협상결렬로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됐고 소프트뱅크가 2년 10억엔에 영입하며 가볍게 현역연장을 이어갔으나 2020년 타율 0.168에 SNS에 야쿠르트를 그리워하는 게시글을 올리는 일로 인해 팬들에게 욕을 푸짐하게 먹으며 시즌을 마무리. 2년 계약이라 잔류한 2021년에는 작년보다 더 퇴보한 모습으로 인해 먹튀확정. 2021년 10월 3일 퇴단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 카일 젠슨 : 1시즌 동안 6경기 출장. 안타 1개에 8억원. 다만 젠슨이 못한 것도 있지만 소프트뱅크의 당시 1군 외국인 선수 쿼터가 릭 밴덴헐크, 데니스 사파테, 알프레도 데스파이네 등 일본 무대에서 검증된 선수들로 쟁쟁하게 채워져 기회를 부여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도 있다.
  • 케빈 미첼 : 1989년 내셔널리그 MVP.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의 여파로 95년 시즌 개막이 불투명해지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한 현역 메이저리거. 당시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연봉 계약을 건넬 정도로 거포 외야수로서 실력이 검증된 선수였지만, 지랄맞은 성질머리로 구설수도 많은 선수였다. 일본에서도 감독이나 수뇌진과 불화를 겪다가 시즌 도중에 무릎부상 치료를 이유로 무단으로 귀국했고 결국 그를 빌미로 시즌 도중에 방출되었다.

3.3. 치바 롯데 마린즈[편집]


  • 맷 더피 : 파레디스보다는 훨씬 돈을 적게 받았으나, 2017년 2할1리에 6홈런, 거기다가 수비실책을 연발하는 3루수 용병을 먹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맷 도밍게스 : 맷 더피 시즌 2. 직구는 잘 쳤는데 변화구에 속수무책. 물론 이쪽은 이구치 감독이 외국인 타자를 신뢰하지 않아서 조금만 못해도 2군보낼 정도로 조급한 운영을 했던 게 크지만.. 마침 둘 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뛰었다. 참고로 도밍게스는 파레디스와 잠시 있었다. 도밍게스와 머피는 나이가 같아도 서로 데뷔기간이 달랐다.
  • 야마이코 나바로 : 그 삼성 라이온즈에 있을때는 2년동안 79홈런, 2015년에는 48홈런을 치면서[23] 연봉이 적어보일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경기날에 항상 지각하고 연습을 안하는 등 나태함과 게으름이 문제가 되어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2016년 일본 치바 롯데 마린스와 120만달러에 계약하였으나 일본에서 최종성적은 타율 0.217 10홈런[24]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고 방출되었고 사생활 지적만큼 한단계 까다로운 일본리그 에서도 한국에서 처럼 게으른 모습이 문제가 되었다. 치바 롯데에서 방출 후 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삼성이 발디리스 방출 후 나바로 영입설이 돌았으나 성실성 문제와 살이 많이 쪄서 영입을 포기하였다. 나바로 입장에서도 도미니카 직장인들이 300년이상 일해야 버는 돈을 벌었으니 야구를 안해도 아쉬울 게 없을 것이며, 결정적으로 실탄 소지 사건으로 흑역사가 되었다. 방출 후 멕시칸 리그에서 팀을 구하고 활약하고 있다.
  • 에드가 올모스 :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좌완 선발로 기대하고 영입했는데 시즌 개막 후 한 달 간 소식이 없다가 5월 초에 느릿느릿 1군에 올라와 2경기에서 ERA 7.71을 기록하고 주자 견제가 전혀 안 된다면서[25] 광속으로 퇴출된 투수.[26] 1경기에 약 32만 5천 불을 받아먹었다.
  • 조시 레이빈: 팀에선 마무리 투수 후보로 데려왔다고 발표했으나 부상 때문에 2019년 6월이 되어서야 처음 1군에 나왔고, 1군에서도 2경기 1.2이닝 ERA 27.00으로 개털리고 방출당했다. 거기다가 그리고 자신의 세레모니를 1군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웃는 표정으로 공항에서 세레모니를 하고 미국으로 갔다. 일본 팬들도 헝그리 정신이 없다, 2경기밖에 안 나오고 80만 달러를 받았으니 여행한 기분이라 저렇게 좋아할 수 있다, 일본에서 개망한 용병이 저렇게 웃으면서 돌아가는 건 처음 본다. 등의 반응으로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었다.그와중에 소프트뱅크에 가 달라고 했다가 비공감을 왕창 받은 댓글도 있다 참고로 몸값은 80만 달러. 1경기에 40만 달러를 받아낸 선수는 흔치 않다. 심지어 경기당 평균 이닝은 1이닝도 안되며 ERA도 13.50이다. 이닝으로만 따지면 0.1이닝에 16만 달러 받아먹었다. 보통 서민들 5년치 연봉을 0.1이닝 잡고 일본 관광을 하면서 받아먹은 셈. 참고로 보통 저렇게 경기에 잘 못 나온 먹튀들은 부상이나 다른 외적 이유로 인해 시즌을 제대로 안 뛰고 중도퇴출인 경우가 많은데 레이빈은 풀 시즌을 2군에서 뛰었다. 그리고 그 2군에서도 ERA 4점대로 안 좋았다.
  • 지미 파레디스 : 2017년 치바 롯데에서 답이 없는 선구안으로 새 외국인 선수 로엘 산토스, 윌리 모 페냐와 경쟁하게 됐으니. 참고로 14억원 받아먹었다. 그러나 타율은 2할 1푼대에 홈런은 겨우 10개를 기록하여 방출되었고 2018년에 닉 에반스 대체 용병으로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였는데 성적은 일본시절보다도 형편없다. 일본에서 먼저 먹튀해서 그런지 우려가 현실로 못하는 선수들에게 X레디스[27]라는 별명이 붙는 수준이니 말 다한 셈. 결국 양국에서 쌍으로 금지어가 되었다. 그리고 한일 양국에서 받아간 돈은 200만 달러. 일반 서민들 100년치 연봉을 2년 동안 한국과 일본 관광을 하고 받아냈다.
  • 케니스 바르가스 : 박병호랑 한때 2016 시즌 미네소타 타선을 책임질 경쟁자 였던 타자. 150만 달러를 받고 왔는데 2019년 시즌 절반까지 타율 1할 8푼대에 1홈런을 기록했다. 후반기에 아무리 잘 해도 재계약은 불가능할 듯. 아니 애초에 후반기에 1군에 올라올 수 있을지나 궁금하다. 팀에서는 7월에 새 용병 레오니스 마틴까지 데려온 상황이라 7월에 이미 전력외로 분류된 것 같다. 결국 방출.
  • 후쿠다 슈헤이 : 주전보장 받겠다고 친정팀 소프트뱅크의 연장계약 제안도 걷어차고 롯데로 가더니, 1년차부터 부상으로 두 번이나 빠지고 멘도사 라인에서 놀면서 먹튀테크를 탔다. 2년차에는 아예 1군에 4경기 나와 1안타에 그치면서 중형 FA인데 최저연봉 수준의 성적도 못 냈다. FA 규모가 4년 6억엔으로 당시의 엔고를 생각하면 4년 70억 원 가까이 됐는데.. 그나마 다행인 게 보장금액은 80%인 4억 8천만 엔이라 저 활약으로는 옵션 금액은 거의 만지지도 못 할 테니 구단에서는 1년치 연봉을 아낀 셈이다.

3.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편집]


  • 닉 에반스 : 2014년 7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3500만 엔을 받기로 하고 대체 용병으로 들어갔으나, 1군에서 꼴랑 5경기 2안타 타율 .111 1타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성적을 찍고 쫓겨났다. 물론 일본프로야구에서 3500만엔은 외국인 선수에게 주는 돈으로서는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28] 그러나 2016년에 두산 베어스로 오자 완벽한 혜자 용병이 되었다.
  • 다나카 마사히로 :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연봉인 2년 18억 엔에 뉴욕 양키스에서 복귀했지만 첫 해부터 3점대 ERA를 기록하며 살짝? 불안하더니 두 번째 시즌에는 투고타저 시즌에 ERA+ 100도 기록하지 못함과 동시에 리그 최다패, 최다 피안타를 기록하며 니시와키 하루키와 함께 팀의 가을야구 탈락의 최대 원흉이 되고 말았다. 에이스급 활약을 해도 모자랄 판에 4선발급 스탯을 찍었으니 먹튀 확정 그래도 구단 프랜차이즈 이며 아직은 더 던질수 있는지 라서 그런지 2023년에도 함께 가는중
  • 이마에 토시아키 : 2015년 시즌 후 3년 6억엔+옵션이라는 거액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하였으나, 첫 시즌부터 89경기밖에 뛰지 못하며 불안하더니, 두번째 시즌인 2017년에는 잦은 부상으로 51경기밖에 뛰지 못하고 시즌아웃당하고 말았다. 결국 2년동안 140경기밖에 못 뛴 셈. 참고로 NPB 1시즌은 143경기이다. 그동안 홈런은 단 4개밖에 못 쳤으며(2018년 겨우 10개, 두자릿수 홈런 기록) 수비도 17년 들어서는 주로 1루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돈값을 못 했다. 2019년에는 중심장액성망막증으로 인해 겨우 26경기 출장, 2할7푼6리 1홈런으로 방출되었고,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 이후 라쿠텐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 자니 곰스 : 2013 월드 시리즈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축 멤버였지만, 2016년 라쿠텐 골든이글스과 1년 300만달러에 계약한 뒤에는 65타수 11안타 1홈런 1할 6푼 9리라는 형편없는 성적만 찍은 뒤, 의사소통 문제와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인해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 케빈 유킬리스 : 보스턴의 그분이 맞다. 항목 참조. 부상으로 21경기 출장에 머물렀으며 그 해 은퇴하였다.

3.5.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편집]


  • 알렉시스 칸델라리오 : 일본판 톰 션, 브라이언 배스. 꼴랑 1경기 뛰었는데 22만 달러를 가져갔고 그 1경기도 3이닝 7실점으로 두들겨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2군에서도 꼴랑 2승밖에 거두지 못하며 시즌 중 방출. 즉 2군 경기 1승에 11만 달러. 하지만 먹튀한 액수는 적은 편이다. 22만 달러면 사실상 대만프로야구 수준.
  • 앤디 밴 헤켄 : 넥센에서의 활약을 보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1억 4400만 엔을 주고 데려왔지만 2016년 전반기 10경기 등판 4패 평균자책점 6.31을 기록하면서 망했어요. 결국 그 해 7월 방출되었고, 다시 넥센으로 돌아왔다.
  • 에르네스토 메히아 : 첫 해에는 30만 달러짜리 홈런왕이 되면서 혜자였고 그 후 3년간 연평균 32홈런을 쳤다. 그런데 3년 15억엔 계약 첫 해부터 19홈런 53타점으로 삐끗하나 싶더니 계약 두번째 해에는 아예 대타 전용 공갈포로 전락하였다. 연봉을 5억 엔이나 받아먹으면서 대타밖에 못하고 그 대타 성공률도 낮으니 재계약은 요원하다. 기록을 보면 싸게 쓰던 첫 3년간 96홈런을 쳤는데, 3년 15억엔 계약을 한 후 2년간 28홈런밖에 못 쳤다. 홈런 갯수가 절반 이하로 급감한 셈. 2019년에는 잊혀질 때 쯤 간간히 대타로 나오면서 작년보다 더 맛이 간 1할대 중반의 타율을 보여주면서 본인도 포기했는지 막나가고 있다. 2020년에는 새 외국인 타자 코리 스팬젠버그에게 밀려 7월에야 1군에 등록했다. 2020년이 지나도 반등에 실패했지만 2021시즌까지 어찌저찌 가늘게 현역을 이어갔으나, 2021년도 부진한 끝에 시즌 도중에 가족들이 그립다는 이유로 퇴단을 선언하며 먹튀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3.6.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편집]


  • 왕보룽 : 대만 프로야구 리그를 평정하고 3년 4억엔 + 옵션의 대형 계약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성했으나, 고반발력의 공인구와 작은 구장이 사용되는 대만의 환경에서 벗어나 드넓은 삿포로 돔, 저반발력 공인구, 보다 수준 높은 투수들이 포진한 일본리그로 가니 OPS 6할대의 똑딱질도 잘 못하는 타자가 되며 폭망했다. 일본 팬들은 타카야마 슌 같은 다른 팀들의 제4 외야수들과 그의 성적을 비교하는 지경. 그나마 2019년에는 1군에서 상당한 기회를 받기라도 했지 2020년에는 멘도사 라인을 넘기는 것도 버거워하며 거진 2군에 머물렀다. 1군 승격후 겨우 2할대를 넘기며 시즌 종료. 2021년에는 아예 시범경기부터 삽질하며 1군에서 스타트한 2020년과는 달리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콜업후 정신차렸는지 맹활약했으나 얼마안가 다시 삽질중.


4. 복수 구단[편집]


  • 루이스 크루즈 : 요미우리 자이언츠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한정 먹튀. 특히 2루수 공백을 메꿔줄 것으로 기대했던 요미우리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먹였다. 2017년 연봉이 210만 달러인데 22경기 나왔다. 나온 경기에서도 0홈런에 1할대 타율.
  • 마쓰자카 다이스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한정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악의 먹튀.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2015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3년 12억 엔이라는 거액을 받고 입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부상으로 3년 동안 1군 등판 한 번에 ERA 18.00 4분의 1값으로 한국에서 데려온 외국인 투수보다 오래, 더 많은 돈을 주고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투수가 되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소프트뱅크 측에서 혹시나 타팀으로 가서 부활하는 걸 막으려고 말도 안되는 계약으로 잡아둔 뒤 일부로 2군에 박아두고 있다는 설까지 나돌 정도.[29] 결국 2017 시즌을 마치고 구단의 코치직 제안을 뿌리치고 FA로 나옴으로써 12억엔 먹고 3년간 1경기 등판한 역대 최악의 먹튀 확정.[30] 이런데도 팀이 워낙 잘 나가서 그런지, 호크스 팬들은 타 팀 팬들이 그렇게 마쓰자카로 어그로를 끌어도 "어, 그래." 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정도라고. 구단주부터가 강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 정도의 오차는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도 왕조 구축에 성공했다보니 별 신경도 안 쓴 모양이다. 주니치 드래곤즈에서는 첫 해인 2018년에는 1500만 엔의 대폭 삭감된 연봉을 받아가며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두번째 해에는 8000만 엔으로 연봉이 올랐는데 시즌 시작 전부터 팬이 팔을 잡아당기는 황당한 사건으로 부상을 당했다. 여기까지라면 선수 본인 잘못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팀 연습일에 골프를 쳐서(?!) 징계를 받으며 스스로 옹호 여론을 없애 버렸다. 2019 시즌 단 2경기 등판해 5.1이닝 10자책점이라는 막장투를 보이며 두 번째 시즌 도로 먹튀로 돌아왔고, 시즌 후에도 연봉 대폭 삭감을 조건으로 잔류하는 것이 어떻냐는 구단의 제의를 거절하고 방출을 요청하면서도 꿋꿋이 현역 연장 의지를 내비치며 모든 일본 야구 팬들로부터 비난받는 신세가 되었다. 어찌저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했지만 역시나 2020 시즌 단 0경기 출전. 일본 복귀 후 세 구단에서 먹튀가 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결국 2021년 은퇴를 선언한다.


5. 한국인 선수[편집]


  • 김태균 : 2009시즌 종료 후 치바 롯데 마린즈와 3년 계약을 맺었다. 입단 첫 해 전반기에는 홈런과 타점을 쓸어담으며 성공적인 안착을 하는가 했더니 후반기에는 체력 문제를 드러내며 폭망, 시즌 후 성적은 병살타 1위, 삼진 2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다음 시즌을 기약해볼만한 활약이라는 평가였으나, 이듬해인 2011년에는 시즌 초부터 부상으로 1군에서 사라지더니 그 해 7월 부상과 지진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정을 이유로 돌연 계약을 해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치바 롯데 동료들과 코치들이 동료 취급해주지 않았다며 은연중에 디스하는 인터뷰까지 하는 바람에 한국에서도 김태균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김도망, 김지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덤으로 한국계 일본인인 니시오카 츠요시한국계라고 밝혀버리는 실수도. 거기다가 팀 동료 디스까지 하면서 지바 롯데 팬들과 김태균 팬들은 오히려 김태균을 더더욱 깐다.
  • 이범호 : 2009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금 1.5억엔 포함 2+1년 5억엔 규모의 계약을 맺었지만 1군 무대에선 거의 뛰지도 못하고 2군을 전전하던 와중 간만에 NPB로 복귀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테스트 받고 입단하면서 자리가 점점 위태하여 1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팬들이 옹호한거라면 세이부 시절의 와쿠이 히데아키노히트 노런을 저지하는 안타를 기억한다는거 밖에 없다고 한다.
  • 이병규 : 2007년 주니치 드래곤즈와 3년 계약을 맺었지만 통산 출루율이 3할 조차되지 않는 수준 이하의 그놈의 배드볼히터 기질이... 성적을 기록하면서 2010년 LG로 복귀했다. 그래도 주니치의 역사상 유이한 일본시리즈 우승에 함께하며 우승반지를 건지기는 했다.
  • 이종범 : 한국 리그를 평정하고 1998년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을 맺으며 NPB에 진출했지만 부상 이후 기대 이하의 타격성적을 냈고 수비의 경우 유격수 수비 불가[31]라는 판정을 받아 외야수로까지 밀려났다.
  • 이승엽 : 요미우리의 먹튀 전설. 요미우리와 2006시즌 후 4년 30억엔[32]이라는 NPB에서도 역대급인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4년이라는 계약기간은 너무 길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그래도 계약 당시에는 역대 홈런왕들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레전드의 나날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계약 첫 해인 2007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는데,[33] 30홈런을 기록하긴 했지만 2006년에 비해 세부스탯이 급락했고, 2008년 이후에는 성적이 급전직하하며 주전에서 밀려났다. 결정적으로 2008년 세이부와의 일본시리즈에서는 18타수 12삼진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터뜨리며 교진의 패배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 결국 밥값을 못하는 정도를 넘어 짐짝 수준이 되었다. 2009년 일본시리즈는 우승했지만 너무 활약이 처참해서, 결국 요미우리와는 재계약을 못했다. 그래서 요미우리 구단주는 "4년 계약에 거액까지 지불했는데, 똥같은 활약밖에 못했다.(4年契約で大金払って、クソの役にも立たなかったってのもいる)."고 악담을 퍼부었고, 당시 삼성 감독이던 선동열도 이걸 알았기 때문에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는 폭탄발언을 할 정도. 2011년에는 오릭스 버팔로즈[34]와 팀내 2위에 해당하는 1억 5천만 엔에 1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오릭스[35]에서도 역대 삼진신기록에 도전할 정도로 부진하다가 결국 퇴단, 삼성으로 복귀했다. 참고로, 선수 성적과는 별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뛴 관계로 SBS 스포츠에서 요미우리에 거액의 중계권을 지불[36]했으니 실제로는 이승엽 연봉의 상당부분을 요미우리가 아니라 SBS에서 내준 셈이다. 그리고 2018년부터 해설자로 연봉값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먹튀와는 별개로 아베 신노스케, 사카모토 하야토 등 요미우리 동료들과는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며 잘 만나고 있는 중.거기다가 한국인 선수들 중 유일하게 복수구단에 들어가 있다.
  • 정민철 : 200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으나, 빙그레 시절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2년간 총 3승만 거둔 채 한국으로 돌아갔다. 거기다가 구단이 당시에 조성민정민태 및 정민철 3인을 선발투수 경쟁 시키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기회를 안준다는 식으로 언플이 잦았는데 그나마 이건 정민철 혼자만 해당된다. 결국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로 돌아와 선수시절 황혼기를 함께했다.
  • 정민태 : 현대 유니콘스 1선발 투수 200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무려 이적료 5억 3000만 엔에 연봉 1억 3천만 엔을 받고 입단했으나, 일본프로야구 적응 실패와 코치진과의 불화 등 첫해는 2승, 2년차에는 승패없이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한국에 조용히 복귀했다. 잘 언급도 되지 않지만 액수로만 따지면 일본에 간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먹튀행각. 사실 요미우리와 현대가 KBO 몰래 담합을 해서 2000년도에 입단 시키려고 했던게 들통이 났다. 거기다가 심한 언플로 투수판 김태균 이라는 소리도 듣게 된다.

[1] 범위가 미친듯이 좁은게 문제였지 이상하게도 송구랑 포구등의 다른 기본기는 출중했다. 쉽게말해 이대호 3루수 버전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2] 1년뒤에는 레전드로 불리는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입단한다.[3] 이때 동료이자 후배인 하세가와 시게토시가 셋업과 마무리를 봤다. 참고로 사사키와 하세가와는 나이가 같으나 사사키가 빠른생일로 프로에 1년 일찍 데뷔했다.[4] 그리고 발디리스는 삼성 라이온즈에 가서 먹튀가 되었다.[5] 이 성적이면 파레디스의 2018년 KBO 성적이랑 비슷하다. 여기에 더해 투수 조 윌랜드보다 타격 성적이 나빴다.[6] 2005년은 야부타 + 후지타 +고바야시 마사히데. 퍼시픽 리그의 라이벌 센트럴 리그한신 타이거즈JFK 트리오가 있었다. 제프 윌리엄스 + 후지카와 큐지 + 쿠보타 토시유키.[7] 그나마 1년차 후반기엔 불펜으로 어느정도 선전하긴 했다. 문제는 불펜에서 아무리 잘해도 선발 투수급 활약을 요구하는 한신의 기대치엔 못미친다.[8] 심지어 오프시즌에 후쿠오카 쪽 TV에 더 많이 나온다. 지역 언론도 대놓고 비시즌 중에는 호크스 선수 취급하는 중.[9] 중앙일간지는 스포츠지에 대해 훨씬 더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정도면 모리후쿠에 대한 분노게이지가 얼마나 차 있는 지 알 수 있다.[10] 급기야는 상대팀 팬들이 미셀리가 나오면 무조건 얻어맞아서 우리가 이긴다며 미셀리의 등판을 요구하는 응원 콜을 대놓고 부르기까지 했다.[11] 이것이 조기 방출된 가장 큰 원인으로, 2군 강등 거부권이 없었을 경우 그냥 2군에 짱박으면 그만이었으나 본인이 이 조항을 근거로 1군 잔류를 고집하는 바람에 요미우리는 사실상 부실채권을 떠안은 꼴이 되었다. 더 가관인 건 프런트가 이러한 계약 내용을 코치진에게 얘기해 주지 않아서 코치진도 2군에 내리려고 했을 때 처음 알았을 정도. 입단 과정부터 막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12]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박명환의 연봉이 5억 원에서 5천만 원으로 삭감된 바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프로야구 최다 연봉 삭감액.[13] 이때 같이 계약했던 동양인 투수가 있었는데 그 투수는 한국인인 류현진 이였다.[14]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의 골든글러브는 무조건 수비만을 보고하는 대상이다.[15] 요미우리에서 한번 찍히면 언제 1군에 돌아올지 모른다는 배테랑들이나 유망주들이 많아서 그런지 항상 2군에서 뒤도 안돌아본다 라고 말한다.[16] NC 소속때는 1루수로 뛰었다.[17] 선수 한명이 도루를 25개 한 것이 아니고 그해 요미우리 1군에서 뛰던 선수들 도루이다.[18] 로즈의 경우 실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팀내에서 불화가 심했고 코치진들과 싸우는게 비일비재한 일일정도로 악화되어 인터뷰에서 요미우리를 폭풍디스했고 시즌 종료후 방출됐다.[19] 반대로 이런 클래스의 선수를 어마어마하게 싸게 데려와 잘 써먹은 케이스가 고쿠보 히로키. 부상 치료로 다이에 구단과의 갈등을 빚던 고쿠보를 요미우리가 무상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이적 첫해부터 요미우리 우타자 최초의 40홈런을 치며 건재를 과시한다.[20] 주니치 시절 선동열 전담 포수로 유명한 그분이 맞다.[21] 일본프로야구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다.[22] 게다가 모기업 다이에는 버블경제 이후 회사가 불량채권 및 막장 경영으로 개판이 되어 재정적 부담에도 일조하였다.[23] 2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24] 참고로 저 10홈런이 팀내 2위다(...) 또한 팀내 홈런 1위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와 몇없는 롯데의 두자릿수 홈런 기록자다. 그만큼 장타력은 봐줄만 했다. 마린스 구장이 홈런치기 힘든 구장인 만큼 거기다가 일본은 2011년 부터 투고타저 라서 10홈런만 넘겨도 거포 소리를 들었다.[25] 일본에서는 "견제구를 지금까지 한 번도 던진 적이 없냐?"라든가, "견제 개그맨"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던 노베르토(주니치에서 야쿠르트로 이적했는데 1군 등판 없이 재활을 하면서 이전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에 가고 싶다는 뉘앙스의 SNS글만 올리고 시즌 중 퇴출당한 용병)과 함께 2018년 일본프로야구 최악의 투수용병 투톱으로 분류했다.[26] 정확히는 퇴출 자체는 시즌 후였다. 근데 1, 2군 통틀어 5월까지만 경기에 나왔고 귀국했다는 기사도 없는 거로 봐서는 웨이버 공시만 늦게 한 거지 선수 본인은 여름이 끝나기 전에 미국에 돌아간 듯.[27] 이름이 비슷한 모 기획사 가수 팬들은 그 회사의 멸칭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28] 7월에 가는 대체 용병이 3500만엔이면 풀시즌으로 치면 70-80만 달러 이상은 된다. 비싼 용병은 아니지만 보험용이라거나 그럴 수준은 절대 아니다.[29] 이러한 소문이 돌 만한 게 실제로 세이부에서 뛰던 시절 마쓰자카는 호크스를 상대로 상당히 강했다.[30] 근데 정작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은 마쓰자카가 먹튀한 금액을 유니폼이나 굿즈 판매 등으로 다 충당했다고 밝혔다. 유니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팔린 모양.[31] 다만 현대적 관점에서 세이버 스탯을 살펴보면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수비범위가 넓었다. 다만 하지 않아도 될 법한 에러가 너무 많아서 안정감이 떨어져 전통적인 관점에선 저평가받기 좋은 유형. 그런 행동을 보인 시즌은 이종범 본인이 있던 1997년 해태의 마지막 우승시즌 이였던 해에 그 답지 실책 20개를 넘게 적립을 했다. 그리 좋지 않게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이런 이종범을 신인이던 후쿠도메 고스케와 같이 외야로 컨버전 보냈고, 그 빈 자리는 타이호 야스아키야노 아키히로를 한신에 보낸 대가로 영입한 쿠지 테루요시와 세키가와 고이치로 메웠다. 정작 쿠지도 이바타 히로카즈 영입 이후에는 대수비 요원으로 밀려나다가 결국 전력외 통보를 받았다.[32] 당시 환율이 높아 400억원을 넘는 금액이였다.[33] 시즌 전 모친상을 당했고 여기에 손가락 부상까지 겹친 탓에 멘탈이 무너졌다는 게 가장 큰 견해.[34] 원래는 2010년 이후 삼성 복귀 예정이었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이 전술한 것처럼 요미우리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본 덕에 복귀를 대놓고 거부했다.[35] 오릭스는 돈은 많지만 구단주와 프런트가 막장경영으로 유명한데, 그 실태가 요미우리보다 심하다.[36] 기사에서는 SBS가 지불한 중계권료가 60억원이라는 말이 알려졌으나 관계자 말로는 이보다는 적다고 한다. 일본야구의 중계권은 구단에 있는데, KBO는 중계권 협상이 KBO 관할이라 이런 계약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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