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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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강점
2.1. 중량감 있는 정치적 체급
2.2. 선명한 태도
2.3. 확고한 지지층의 존재
2.4.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움
3. 약점
3.1. 당 내부의 안티
3.2. 외연 확장의 한계
3.4.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핵심인물


1. 개요[편집]


서울 지역구 5선 국회의원, 2번의 최고위원, 당 대표 1회[1], 제67대 법무부장관을 거쳤다. 20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내 경선에서 낙선하였다.


2. 강점[편집]



2.1. 중량감 있는 정치적 체급[편집]


판사 출신 5선 국회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시절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였고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4번의 대선 캠프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여 정치력과 무게감이 있다.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의 고발자이기도 하다.


2.2. 선명한 태도[편집]


야당에 대한 강경한 태도와 더불어 공수처 도입 등 확실히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친문 성향 유권자와 열린민주당 지지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2.3. 확고한 지지층의 존재[편집]


후보 본인의 선명성 덕분에 사법개혁을 외치는 강경파 지지층의 지지 의사가 확고하다. 규모가 비교적 작고 특성상 이낙연 전 대표에 거부감이 강해서 20대 대선 경선에서는 이낙연을 낙선시키기 위해 막판에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붙는 등 응집력이 매우 끈끈한 편은 아니지만, 코어 지지층의 존재는 대권주자로서 차차기를 노려볼 수도 있는 큰 이득이다.


2.4.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움[편집]


지역주의가 실재하는 대한민국의 환경에서 친정은 영남, 시가는 호남이라는 가족관계가 영호남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대구/경북 지역에서 14.84%를 기록하며 영남권에서의 유의미한 지지율을 증명했다.


3. 약점[편집]



3.1. 당 내부의 안티[편집]


2004년 선거대책위원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기에 지금까지도 일부 친노 성향 민주당 지지층은 추미애 전 장관에게 거부감이 있다. 실제로 법무부장관 시절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정직하고 역풍을 제대로 받으면서 자진사퇴설로 몰리자 사찰에서 노무현 영정 사진에 참배를 하자 친노성향 민주당들에게 격한 비판을 받았으며 퇴임 이후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간담회를 한다는 소식에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고인능욕 참 참신하게 한다는 반응을 내비출 정도로 여론이 안좋다. 한편 내부는 아니지만 과거 반노동적 행보로 진보계에게도 떨떠름한 시선을 받는다.[2]


3.2. 외연 확장의 한계[편집]


특히 추미애는 자신과 척을 지거나 반대하는 인물들에게는 매우 모난 성격과 공격적인 워딩, 무시하는 행동으로 구설수가 많았으며 특히 야당에 대한 강한 비판과 고압적인 태도로 인하여 야당 지지층의 비토 정서가 강해 지지층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다. 추미애의 커리어로 인한 약점이기도 한데, 민주당의 경우 이재명(경기지사), 김동연(경기지사), 이낙연(전남지사), 이광재(강원지사), 이시종(충북지사), 양승조(충남지사), 송영길(인천시장), 최문순(강원지사), 국민의힘의 경우 홍준표(경남지사, 대구시장), 오세훈(서울시장), 김진태(강원지사), 박형준(부산시장), 김기현(울산시장), 김태호(경남지사), 원희룡(제주지사) 등 광역단체장 경험이 있는 정치인은 일을 잘해서 반대 당 지지자도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을 맡았을 때 문재인 정부가 시킨 일은 장관으로서의 일보다는 대체로 윤석열과 같이 자신(문재인)을 거스르는 정적을 제압하는 것이었어서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다.

3.3. 단 한 지역구에서만 출마[편집]


추미애는 오직 광진구 을 지역구에서만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렇게 되면 서울 내부에서조차 인지도를 쌓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으로서의 검증은 송파구 갑에서 초선, 동대문구 을에서 내리 3선을 해 서울시 4선 의원을 한 뒤 재선 경상남도지사를 찍고 수성구 을에서 5선 의원이 되어 지금은 대구광역시장을 하는 홍준표보다도 한참 못미치게 되었다. 참고로 홍준표와 추미애는 불과 5살밖에 차이가 안 나며 초선은 둘이 동일한 1996년에 했다.

물론 이는 그만큼 추미애가 지역구 관리를 잘했다는 뜻도 되며, 수시로 지역구를 옮겨다니는 정치인은 철새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지역을 옮겨다니는 것이 오히려 정치경험에 도움이 되고 대권주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추미애는 오직 광진구 을 하나에만 출마한 탓에 그 지역구 말고는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인데 문제는 추미애가 정치 경력이 상당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량급 정치적 체급인데도 그에 비해 정치경력은 안방에서만 강한 내강외유라는 굉장히 단순한 셈이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의 박근혜와 똑같은 비판인데 박근혜 역시 말이 5선 의원이지 그 중 4선을 여기에서만 지냈고 나머지 1선은 비례대표였다.[3]


3.4.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핵심인물[편집]


사실상 추미애의 최대 아킬레스건. 나머지 것들이야 이에 비하면 굳이 단점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뭣한 것들이거나 다른 정치인들도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가깝지만 일개 검찰총장에 불과했던 윤석열을 단숨에 보수측의 대권주자로 상승시킨 것도 모자라 대통령을 만드는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 오죽하면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민주당의 X맨, 어둠의 윤사모 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추미애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직시켰으나, 이를 너무 무리하게 진행하였고 명분도 매우 부족한데다 시기상으로 매우 안 좋았기에 윤석열이 검찰총장에서 보수진영의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추미애의 편을 들어주긴 했으나#[4] 이미 민주당 코어층 외의 여론에는 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임명장을 받았을때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라"라는 말을 지키며 조국을 비롯한 핵심인물 비리를 파헤치던 윤석열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다'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주게 되었으며, 윤석열에 대한 동정 여론까지 퍼지면서 정치행동을 한번도 하지 않아 정치적 기반이 아예 없던 윤석열을 유력한 대선 후보로 키워주고 말았다.

그리고 진짜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신승을 거두며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실상 이 하나로 추미애가 대선 후보로까지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거기에 심지어 조국수사에 대한 보복인사로 좌천시킨 한동훈 검사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대권주자로서 가능성은 거의 바닥에 가깝다.[5]

하필 정적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에 추미애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같은 당 지지층에서 "어둠의 윤석열 선대위원장" 취급을 받으면서 부정적으로 여기는 관계로 윤석열이 대통령 임기 중에 탄핵되는 급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추미애가 대권을 노릴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 상황이다. 대권주자 운운하기 이전에 윤석열이 살아 있는 한 추미애는 정치적 시체 신세를 면키 힘들어졌다.[6]

윤석열 정부가 낮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임기 초 부터 온갖 논란이 터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됬든 182석이라는 초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이 과도한 힘에 취해 단 5년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 1등 공신이 추미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윤석열의 이미지가 실추되면 실추될 수록 그런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추미애는 더더욱 '보수의 어머니'라는 식의 조롱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에서 추미애의 실책을 뛰어넘는, 정말 어지간히 심각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서야 추미애의 정치적 반등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윤석열이 탄핵당하거나 하야해도 추미애는 확장성에 큰 한계를 보이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 그중에서도 특히 한동훈 장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다시 내고 있지만 '추미애가 이번에는 한동훈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려고 한다'는 조롱섞인 반응만 나올 뿐이다.

[1] 당 대표 선출 당시에는 야당 대표 신분이었지만,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여당 대표가 되면서 임기를 마칠 쯤에는 여당 대표로 임기를 마쳤다. 또한 민주당계 정당사 최초로 만기 퇴임한 당 대표이다.[2] 그래서 당시에 나왔던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이정희어딜 만져.[3] 다만 박근혜는 당대표(비대위원장)로서 선거를 2회 승리, 1회 선방을 해냈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04총선과 12총선은 우리당-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는데도 각각 120-150석을 따내며 좋은 선거지휘 능력을 보였다. 추미애는 18지선을 압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04 총선에서는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4] 심지어 행정법원에서는 수사방해, 감찰방해 등의 비위 혐의와 관련해 “윤석열 면직도 가능했으며 정직 2개월 징계도 가벼웠다”는 결론을 내기까지 했다.[5] 앞서 언급된 행정법원 소송도 웃기게 돌아가게 되었는데, 자연인 vs 자연인 소송이 아니라 자연인 vs 직 소송이기 때문에 징계처분 취소청구 원고는 윤석열 검찰총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 그대로인 반면 피고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으로 바뀌어(...)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변해버렸다. 느닷없이 답정너 재판이 돼버려 제대로 된 심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6] 한편 2023년 6월 29일 추미애가 오마이TV와 나눈 대담에서는, 추 장관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를 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를 하자 문 대통령이 적어도 윤 총장까지 같이 자르는 식으로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추 장관 혼자만) 물러나달라"고 지시했다며, 한 달 후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두둔한 뉴스를 보고 점심 먹다가 체할 뻔 했다고 밝혔다. 이 대담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층도 "문재인 대통령이 중대비위 혐의가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장관의 징계 의지를 꺾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윤석열의 손을 들어주고 그의 체급을 키워줬다."는 '문재인 책임론'과 "추미애가 너무 설치다가 문재인에게 밉보여 찍힌 거다."라는 '추미애 책임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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