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에버하르트 쇤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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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친위대 및 질서경찰 소장이다.
2. 행적[편집]
독일 제국 작센 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쇤가르트는 1922년에 고등학교 졸업 후 에어푸르트의 독일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일했다. 이 해 나치당에 입당하고 돌격대에 가입한 쇤가르트는 1923년의 뮌헨 폭동에 참가하여 체포되었지만 곧 석방되었다. 하지만 나치당의 해산으로 인해 잠시 나치당을 떠난 그는 1924년에 은행에서 사직하고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했다.
1928년 7월 28일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쇤가르트는 1933년에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후 복당해 친위대에 들어갔다. 1933년부터 1935년에 걸쳐 빌렌페르트, 도르트문트, 뮌스터의 주 경찰지휘관으로 일한 쇤가르트는 1936년부터 친위대 본부에 배속되어 1939년엔 작센 주의 보안경찰 감독관이 되었다.
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1년에 폴란드 크라카우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사령관으로 부임한 쇤가르트는 1942년 1월 20일의 유대인 처리를 위한 반제 회의에 보안경찰과 친위대 대표로 참석했다. 1943년 7월에 무장친위대 제4 SS 경찰장갑척탄병 사단에 배속된 쇤가르트는 1944년에 네덜란드의 하그에서 보안경찰 및 친위대 사령관으로 이동했다.
4. 전후 재판과 최후[편집]
독일의 패전 후, 하멜른에서 영국군에 체포된 쇤가르트는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반제 회의의 책임자, 전쟁지휘자로 사형판결을 받고 1946년에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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