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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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逸
1911년 8월 22일 ~ 2001년 4월 3일 (향년 89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1] , 초명은 권혁주(權赫周), 창씨명은 곤도 요시로(權藤嘉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청파(靑坡).
독립유공자 권혁조는 그의 둘째 남동생이다.
2. 생애[편집]
1911년 8월 22일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상동(현 예천군 예천읍 상동리)에서 아버지 권오환(權五煥, 1890 ~ 1949. 10. 30)과 어머니 개성 고씨(開城 高氏, 1891 ~ ?. 5. 18)[2] 사이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7년 11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었는데 만주국의 심판관으로 임용되는 등 만주국의 사법 관료로 활동했다. 그리고 만주에서 대동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40년 만주국 연길지방법원 심판관#, 1943년 대정익찬회 조사부#, 1945년 1월 태평양전쟁 협력 단체인 지하공장건설일심회 총무부장#@ 등을 역임하는 등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8.15 광복 이후에는 일본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그는 도쿄에 머물면서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우익 계열의 재일본 한국인으로 활동했다.
1967년 귀국한 뒤,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0월 유신 이후에는 유신정우회 1, 2기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무궁화장을 수여받았으며, 상속법에 대한 일본어 저서를 포함해서 회고록 등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2001년 4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만주(관료) 부문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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