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종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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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23년 4월 1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에서 아버지 함기성(咸基成, 1904. 7. 1 ~ ?)[2] 과 어머니 안동 김씨(1901. 10. 19 ~ ?)[3]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고려대학교 정법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해 1950년에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에 정훈장교로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주임교수를 역임하였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인천대의숙(仁川大義塾)[4] 에서 정치학 강사로 출강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이동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당 이동근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강원도 양양군-속초시-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김종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한병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돌연 유신정우회 제1기 국회의원에 임명되어 1976년까지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양양군-속초시-고성군-인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정일권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 변정일, 김수, 박용기, 권오태, 윤재명, 박정수, 정휘동, 임호, 임영득, 한갑수, 홍성우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12월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명주군-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김문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속초시-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정재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9년 3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3. 선거이력[편집]
4. 관련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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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판공파 51세 종(鍾) 항렬. 함씨대종회장을 역임했다.[2]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수산국 부국장, 문교부 편수관, 원주군수, 횡성군수, 영월군수 등을 역임했다.[3] 김하원(金夏源)의 딸이다.[4] 인천대학교와는 관련이 없는 전문대학이다. 학교의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958년 3월 문교부로부터 신입생 모집 중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며, 1959년 4월에는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현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산9번지에 있는 학교 건물에 대해 인천시 당국에서 무허가 건물로 철거를 요구한 전력도 있는 등 여러모로 말썽이 많았던 학교다. 특히 1966년 10월에는 전국체육대회에 이 학교 소속 선수 101명이 경기도 대표로 출전했는데, 대한체육회의 확인 결과 이 101명이 모두 전국체육대회 개막 3일전에야 편입학을 한 선수들로 부정선수라는 것이 드러났고 결국 모두 실격 처리되었다. 이 때문에 그해 이 학교를 대상으로 학사 감사가 실시되었는데, 이때 법의 철퇴를 맞고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5] 양양군[6] 속초시, 양양군, 고성군[7] 1기[8] 속초시, 인제군, 고성군, 양양군[9] 민주공화당 정일권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