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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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遼史
중국 24사 중 하나이다. 1343년 2월, 중서우승상 메르키트 토크토아(脫脫)가 도총재관 겸 감수국사를[1] , 테무르타스(鐵木兒塔識), 장기암(張起岩), 구양현(歐陽玄), 여사성(呂思誠). 게혜사(揭傒斯) 등이 총재관을 맡아서 찬수 사업을 시작했다. 《요사》의 편찬 사업은 신속하게 착수되어 1344년 3월에 《요사》 116권이 완성되었다.
2. 정통성 문제[편집]
원나라는 1261년부터 《요사》와 《금사》의 편수 계획을 시작하여 1276년에는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을 정복함과 동시에 황실 도서의 완전한 보존을 명령하면서 사서 편찬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1279년,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이후 성리학적 관점에서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어 계속 연기되었다. 원 조정에서는 다양한 주장으로 대립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처럼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결국
는 원칙이 확정되었다.삼국 모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연호를 사용한다.(三國各 與正統, 各繫其年號)
3. 구성[편집]
<본기>(本紀) 30권, <지>(志) 32권, <표>(表) 8권, <열전>(列傳) 45권, <국어해>(國語解) 1권, 합계 11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의의와 평가[편집]
편찬이 단기간에 이뤄져 사료의 부실함이 적지 않아 전반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특히 《요사》는 사료의 내용, 체제, 용어 선택 등 총체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24사(二十四史)에서 가장 수준이 떨어진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의 고증학자 조익(趙翼)의 《이십사사차기》에서는 225년간 전개된 복잡다단한 역사적 사건과 많은 인물들을 간명하게 정리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한, <열전>(列傳)의 입전이 제한적이다보니 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표>(表)를 적극 활용해서 사건과 인물들을 누락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위(營衛)」, 「날발(捺鉢)」, 「부족(部族)」, 「병위(兵衛)」 등 새롭게 설정한 <지>(志)에 대해서도, 다민족 사회의 특징과 거란 고유의 풍속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외국열전> -고려전-이 있어 고려사 연구자들에게는 《구오대사》, 《신오대사》,《송사》, 《금사》, 《원사》, 《명사》와 함께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사료이며[2] , 발해의 멸망과정과 발해부흥운동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기에 발해사 연구자들에게도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사료이다
5. 한국어 번역본[편집]
2008년 11월 10일, 단국대 북방문화연구소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역사기초자료번역 및 연구'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요사》 116권의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북방문화연구소는
며 객관적으로 서술된 번역서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2010년까지 마무리지어 2012년 12월 31일에 각각 6만원씩 총 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한민족의 활동 무대 중 하나인 북방지역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국 측 기록은 동북공정에서 보인 중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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