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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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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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毅, ?~1233
1. 개요[편집]
고려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청주이며, 초명은 정준유(鄭俊儒)이다.
2. 생애[편집]
1217년(고종 4년) 거란군이 서경에 침입하자 이 틈을 타 최광수(崔光秀) 등이 스스로 고구려부흥병마사 금오위섭상장군이라고 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이에 분대녹사(分臺錄事)로 재직 중 최광수를 비롯한 일당 8명을 격살시키고 성을 회복하였다.[1]
최광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필현보가 도끼로 최광수의 머리를 내려쳤다고 한다.
1233년 필현보·홍복원 등이 서경에서 모반하자[2]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이라는 책에서는 필현보와 홍복원이 힘도 없으면서 몽골과 싸우려는 고려 조정에 불만을 품고 제2차 여몽전쟁 시기 몽골군이 침공해 오자 그 곳 주민들을 바치고 몽골에 투항했다고 나왔다.
이후, 최춘명과 함께 평안남도 성천군의 쌍충사[3]
조선 선조 32년(1599년) 설립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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