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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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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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璹
? ~ 1131년(인종 9)
1. 개요[편집]
고려의 관료. 문하시중을 역임한 배향공신 이정공의 장남이고, 마찬가지로 문하시중을 역임했으며 공신 칭호를 받은 이위의 형이다. 고려사 이숙열전에 따르면 성격이 탐욕스럽고 야비하여 행실이 나빴다고 하며, 참지정사를 지냈으나 무고죄로 관직에서 파면당한다.
2. 생애[편집]
본관은 부평.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문하시중에 오른 부친 이정공의 세력에 의지해 예종과 인종을 섬긴다. 예종 원년(1106) 낭장으로 시랑 김보성을 따라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다. 예종 13년(1118) 예종이 회경전에서 장경도량을 베풀며 향을 드리는 자리에서 시신 박승중, 홍관 등과 웃고 떠들었다. 이 소리는 왕이 있는 곳까지 들렸다고 하며, 대간들은 이들을 탄핵해 파직을 청한다. 인종 6년(1128) 3월 검교사도 수사공 좌복야 판예부사에 임명된다.
인종 시기 이자겸과 그 당파가 숙청된다. 이숙의 처 김씨는 이자겸 당파인 김인규(金仁揆)[1]
경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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