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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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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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의 문신으로, 배향공신이었으며, 청백리로 이름났던 충신이었다. 시를 잘 지어 명문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이화에 월백하고'로 시작하는 시조가 유명하다.
2. 가계[편집]
이조년의 아버지는 이장경으로 슬하에 5남을 두었는데 첫째부터 이름이 각각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이었다. 아들들 이름을 숫자로 지은 특이한 경우로, 별난 이름 문서에도 기재되어 있다.
고려 말 충신이었던 이인복과 권신 이인임, 그들의 동생들인 이인립, 이인민, 이인달, 이인미 등이 그의 손자들이었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마이자 이인립의 아들인 이제와 조선 초기의 재상이자 이인민의 아들인 이직이 이조년의 증손자다. 이숭인은 이조년의 형 이백년의 손자로, 이조년에게는 종증손자였다. 임진왜란에서 명나라군을 이끌고 조선을 지원하러 온 것으로 유명한 명나라 말기의 장수 이여송은 형 이천년의 먼 후손이다. 근비 이씨의 아버지인 이림은 이조년의 외손자로, 근비는 그의 외증손녀가 된다.
3. 일화[편집]
이 집안 형제간인 이억년과 이조년 형제의 유명 일화가 있는데, 바로 황금 일화이다. 어느 해에 형제가 길을 걷다가 길바닥에 뭔가 번쩍거리는 게 보이길래 가서 봤더니 황금이었다. 황금은 두 덩어리였고, 기뻐하며 하나씩 나눠가졌다. 그리고 형제는 나루터로 가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도중 갑자기 동생이 황금을 강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왜 그러냐고 의아해하자 동생은 “제가 평소에 형님을 독실하게 사랑하였는데, 이제 금을 나누어 가진 다음에는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갑자기 생깁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강에 던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형도 “네 말이 참으로 옳다.”라고 한 뒤 역시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1]
위치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이며, 현재는 '구암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탈바꿈했고, 그 때의 호수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얘기는 '투금탄(投金灘)'이라고 전해지며, 교과서에도 여러 번 나왔고, 스펀지에서도 나온 적이 있는데, 스펀지 나레이션인 성우 김종성이 마지막에 밝힌 바에 의하면 혹시 몰라서 찾아봤지만 황금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4. 둘러보기[편집]
고려사(高麗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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