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사라진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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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중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현재는 멸성된 성씨의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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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의 성씨 중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현재는 멸성된 성씨의 목록이다.
- ㄹ, ㅋ 초성의 성씨 중에는 사라진 것이 없다.
- 출전은 오른쪽과 같이 8개의 각주로 분류 정리하였다.[세][청]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한]《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동]《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도]《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증]《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발]《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2015]《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별도로 표기하지 않으면 '광주' 본관은 광주(廣州)를 가리킨다.
2. ㄱ[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가 | 可 | | | |
價 | 고산 진안 고령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각 | 角 | | 백제의 성씨다. 일본서기에서 백제 출신의 각복모(角福牟), 각형마려(角兄麻呂)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각(角)씨 또는 록(觮)씨다. | 각복모 각형마려[1] 일본의 도래인으로 승려가 됐다가 환속했다. 승려였을 때의 법명은 혜요(慧耀). |
珏 | | | | |
간 | 干 | 남양 나주 경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竿 | 동주 해주 평강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間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감 | 感 | | | |
갈 | 渴 | 모평 | | |
碣 | 모평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강 | 江 | 압해 | 시조는 부호장 강홍(江洪).[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강홍 |
降 | | | | |
羌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개 | 蓋 | 여남 | | |
객 | 客 | | | |
거 | 巨 | | 신라의 성씨다. 진성여왕 때 거인(巨仁)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건 | 乾 | | | |
騫 | 가화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件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검 | 黔 | | | |
劍 | | 고구려의 성씨다. | 검모잠 | |
견 | 見 | 고려 | | |
결 | 決 | 남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겹 | 袷 | | | |
경 | 庚 | 인천 전주 경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卿 | 임강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2]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고려 초의 원윤 경함필(卿含弼)을 임강 경씨 인물로 설명했으나, 경(卿)은 고려 초기 통치 기구의 직급으로 '경 함필'로 끊어 읽는 것이 적절하다. | |
敬 | [3] 양근, 안성, 지평, 음성, 파천, 천안, 풍세, 장양, 익곡.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耿 | [4] 양근, 사천, 연기, 안협. | | | |
梗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계 | 季 | 강화 신평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啓 | 함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契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고 | 固 | 영흥 영동 압해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庫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고이 | 古爾 | | 백제의 성씨다. | 고이만년 |
곡 | 谷 | 서화 인제 | | |
골 | 骨 | 강화 연산 천축 | 조선의 성씨로 시조는 참봉 골귀손(骨貴孫).[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자는 언부(彦符).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골귀손[6] 骨貴孫. 계공랑(啓功郞) 기자전(箕子殿) 참봉. 골인구(骨仁球), 골인구(骨仁璆), 골인수(骨仁琇), 골인서의 부친. |
공 | 貢 | 수원 인천 | 고려 ~ 조선의 성씨다. 수원 공씨의 시조는 고려 후기의 문신 공천원(貢天源)이다. 인천 공씨로는 공생(貢生) 공계우(貢繼禹)가 1496년(연산군 2) 식년 생원시에 3등 37위로 입격했고, 경기도 인천도호부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공세영(貢世瑛)[7] 자는 군윤(君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안성훈도(安城訓導) 공호중(貢好中). 자는 직경(直卿). 아버지는 돈용교위(敦勇校尉) 행(行)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 공은남(貢殷男). 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 공언조(貢彦祚). 별해진 병마첨절제사(別害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했다. 아버지는 학생(學生) 공대회(貢大檜). 자는 군후(君侯). 위로 형 공우제(貢禹濟)와 공우석(貢禹錫)이 있었다.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공취욱(貢就郁). | |
空 | 김포 공보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共 | | | | |
工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龔 | |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功 | 고려 | | | |
恭 | 고려 | | | |
碽 | | | | |
공손 | 公孫 | 영동 | 영동(永同) 외 풍암(楓巖), 앙암(仰巖)의 2개 본관이 있었는데, 전부 영동을 가리키는 단어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과 | 瓜 | 평강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果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곽 | 霍 | 청주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곽리 | 霍里 | | 고조선의 성씨다. | 곽리자고[13] 霍里子高. 공무도하가의 저자 여옥(麗玉)의 남편으로, 고조선 때 진졸(津卒)로 있었다. |
관 | 寬 | 하서[14] 중국 간쑤성. | | |
官 | 동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광 | 廣 | 용담 옹진 송양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光 | 전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괴 | 槐 | 창원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구 | 瞿 | 옹진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裘 | 제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仇 | [15] 창원, 의령, 인천, 행주, 평안, 복룡, 정해, 무곡, 이성, 옥야, 문화, 김제.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句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군 | 群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굴 | 屈 | | | 굴씨[16] 명나라 출신의 궁녀로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갔다가 조선으로 귀국하는 소현세자 일행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후 소현세자가 죽자 그 아이를 보살폈고, 승려가 되어 조선 궁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
궁 | 宮 | 함열 자산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궤 | 几 | |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귀 | 歸 | 경조 | | |
귀실 | 鬼室 | | 백제의 성씨다. 본래 부여씨였는데, 귀신의 감화를 받아 분성하였다고 한다. | 귀실복신 |
규 | 圭 | | | |
奎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극 | 克 | 영천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금 | 衿 | 장풍 | | |
禁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긍 | 兢 | | | |
기 | 起 | 한양 서원 옥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祈 | 평양 | | | |
紀 | | | | |
基 | | | | |
其 | | | | |
杞 | | | |
3. ㄴ[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나 | 那 | [17] 행주, 보령, 제주, 대전, 반성, 장흥, 제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邏 | 수성 | 나씨의 본관으로 수성(壽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羅)씨의 오기로 보인다. | | |
낙 | 絡 | | 고구려 연나부의 성씨 중 하나였다. 부여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고구려에 투항할 때 대무신왕이 그의 등에 낙문(絡文, 줄무늬)이 있다고 해서 낙씨 성을 하사했다. | |
諾 | | 두막루와 발해의 성씨다. | 낙개제 낙사계 | |
난 | 卵 | 문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날 | 苶 | 신천 | 1600년대부터 1800년대 까지 쓰였던 신천 날씨의 성씨다. | 날한정 |
내 | 來 | 동래 풍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년 | 年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념 | 念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녕 | 寧 | 낙안 염안 | | |
노 | 蘆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老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녹 | 綠 | 경산 | 일본계 귀화 성씨였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논 | 論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농 | 濃 | 의주 | 조선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농액필[18] 濃額必. 1661년(현종 2) 때 압록강을 건너 무단으로 나무를 베다가 봉황성(鳳凰城)에서 청나라 관리에 체포된 기록이 있다. 참고로 함께 나무를 베었던 은노길(恩奴吉)의 성씨인 은(恩)씨 또한 멸성됐다. |
뇨 | 尿 | 황조 연안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뉴 | 妞 | | 명나라에서 편찬된 자전 자휘(字彙)에서 고려의 성씨로 소개한다.[청]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 | |
능 | 能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4. ㄷ[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다 | 多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단 | 丹 | 연안 | | |
檀 | 연안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달 | 達 | | | |
당 | 當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대 | 對 | 운남[19] 중국 윈난성. 제주 청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戴 | 영해 | | | |
대실 | 大室 | | 고구려의 성씨다. | 추발소 |
덕 | 德 | 하남 | | |
도 | 度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독 | 獨 | 단성 김해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讀 | 온성[20]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으며, 현재로서는 그저 온성 이외에도 회령, 경흥, 경원, 나진, 종성 등의 지역을 위시로 하는 육진 지방 어딘가로 추정될 뿐이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뒤 재가승 등의 북부 지역 부락민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가장 정확하게나마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 함경북도 일대 거주 부락민들과 일부 집성촌에서 쓰였던 성씨이다. | | |
篤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돈 | 豚 | 목천 | 목천 돈(頓)씨와 같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돌 | 突 | | | |
동 | 仝 | 시진 | | |
童 | [21] 청주, 태원, 전주, 원주, 주천, 덕천, 부령, 충주.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東 | 청주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佟 | 중원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冬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凍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두 | 斗 | 나주 | | |
竇 | | | | |
豆 | | 고구려의 성씨다. | 두은점 | |
둔 | 屯 | | | |
등 | 登 | 고성 | 중국계 귀화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5. ㅁ[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마 | 磨 | | | |
막 | 莫 | | | |
만 | 漫 | | | |
망 | 亡 | | | |
매 | 每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먀 | 乜 |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며 | 旀 | 진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명림 | 明臨 | | 고구려의 성씨다. | 명림답부 명림어수 |
모 | 慕 | | 발해의 성씨로,[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冒 | | 발해의 성씨다.[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 모두간[22] 발해의 좌수위소장(左首衛小將)으로 고려에 귀화했다. | |
矛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목 | 木 | 오흥 | 백제의 대성팔족 중의 하나였다.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목라근자 목만치 |
목협 | 木劦 | | 백제의 성씨다. 이후 목씨와 협씨로 갈라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목협만치 |
몽 | 蒙 | 봉화 토산 | 노나라 부용국 전유(顓臾)의 풍(風)성이 동몽(東蒙)을 다스리면서 몽(蒙)을 씨로 했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무 | 戊 | 수원 | | |
巫 | | | | |
문 | 門 | [23] 인천, 송림, 남포, 죽산, 인동, 감음. | 고려~조선의 성씨다. 인천 문씨의 시조는 감문위 낭장으로 심온의 외조부인 문필대(門必大)이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문사명[24] 고려의 시어사중승. |
물 | 物 | 괴산 |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미 | 彌 | 진천 신풍 |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6. ㅂ[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반 | 盤 | 반해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飯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발 | 發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발해 | 渤海 | | | |
방 | 芳 | [25] 문경, 철원, 안협, 익곡.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백 | 苩 | | 삼국사기에 출전이 있고, 신자전에 백제성씨로 풀이된 글자이다. 백제의 대성팔족 중의 하나로, 백제 멸망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 백가 백기 |
栢 | 포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柏 | 풍산 포천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번 | 藩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煩 | | | | |
범 | 範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汎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벽 | 薜 | 순창 경주 | 현재 순창·경주 설씨 문중에서 사용하는 '薛'의 오기로 추정된다. | |
별 | 別 | 평창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병 | 秉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보 | 甫 | 공주 홍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복 | 伏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復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부 | 傅 | 양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富 | | | | |
附 | 동성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阜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斧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部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부여 | 扶餘 | 백제[26]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부여씨를 본관을 알 수 있는 복성 사이에 서술하면서 '백제부여씨'라고 표기했다. | 백제의 왕성이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이 당나라에서 서씨 성을 하사받은 후 한반도로 돌아왔기 때문에, 부여씨의 후예 부여 서씨와 의령 여씨가 있다.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백제/왕사 |
부정 | 負鼎 | | 고구려의 성씨다. 대무신왕이 부여를 정벌할 때 불 없이 밥을 지을 수 있는 솥을 손에 넣었는데, 솥을 소유해온 집안에서 대무신왕을 따르겠다고 하니 내려준 성. | |
북 | 北 | | 사실 동씨는 東이 아니라 董이라 경우가 좀 다르긴 하다. 참고로 한자 ‘東’이 들어가는 현존 성씨로는 동방씨가 있다. | |
비 | 非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鞞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빙 | 氷 | 경주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뼘 | 乀 | 밀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 | |
7. ㅅ[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사 | 思 | 연안 벽진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사도귀[28] 고려 초의 대광. |
沙[29] 사택(沙宅), 사택(砂宅), 사타(沙咤) 또한 같은 성씨다. | 여남 | 백제의 성씨다. 대성팔족으로 무왕의 왕후를 배출하기도 했다.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사타상여 사택지적 | |
司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篩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使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仕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泗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寫 | | | | |
思 | | | | |
社 | | | | |
사마 | 司馬 | 거평 나주 이천 | 전라도 나주목 거평(居平)의 성씨다.[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사타 | 沙咤 | 여남 | 백제의 성씨다. | |
사택 | 沙宅 砂宅 | 여남 | 백제의 성씨다. | |
삭 | 削 | | | |
상 | 嘗 | 고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常 | 평원 | | | |
桑 | 안변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象 | 목천 | 목천 상(尙)씨가 고려 초에 상(象)씨로 개성된 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 | |
相 | 밀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상귀 | |
商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상마 | 相馬 | | | |
색 | 索 | 무위 | | |
서 | 書 | 안평 | | |
胥 | | 발해의 성씨다.[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 | |
석 | 席 | 강화 통진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釋 | [30] 수원, 광산, 남원, 익산, 영광, 경주, 진주, 김해.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
석말 | 石抹 | 광릉 | 고려의 성씨로 다루가치 석말천구(石抹天衢)가 광릉 석말씨의 시조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석말천영[31] 고려에서 판전의시사를 지낸 인물로 경성수복공신이다. |
선 | 先 | 진성 영동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鮮 | 연안 신계 협계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선대유[32] 고려 고종 시기의 경상도안찰사. | |
善 | 하동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설 | 雪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舌 | | | | |
섭 | 聶 | 하동 |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燮 | | | | |
성 | 盛 | | | |
소 | 㸴[33] 고유어 동물 '소'(중세국어 독음 '쇼')에서 만들어진 한국제 한자로 적힌 성씨로 성씨 전용자이다. 현재 이 한자는 음역자로 쓰이고 있다. | 성주 | 《지봉유설》 권17 잡사부에서 㸴를 동방의 희귀 성씨로 소개하며 성주(星州)에 소씨가 있음을 설명한다. 같은 자료에서는 소씨가 석말(石抹)씨가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설을 제시하고, 《완위여편(宛委餘篇)》에 복성으로 소개하는 석우(石牛)씨가 소씨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
素 | 경주 풍덕 광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召 | 대동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逍 | 경주 긍천 풍덕 | | | |
소실 | 小室 少室 | | 고구려의 성씨다. | 묵거 |
손 | 遜 | | 손(孫)씨의 오기로 보인다. | |
수 | 輸 | 충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壽 | 회양 문등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守 | 경주 개성 광주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수암[34] 고려 현종 시기 통주 전투에서 활약해 관직이 한 단계 더해졌다. | |
竪 | 여주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隨 | 하남 | | | |
輸 | 충주 | | | |
穗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遂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受 | | | | |
수미 | 首彌 | | | |
숙 | 叔 | | | |
숙신 | 肅愼 | | | |
숭 | 崇 | | | |
승 | 勝 | [35] 만경, 연일, 부윤, 광산.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僧 | [36] 청주, 경주, 밀양, 함안, 영산. | 고려 고종 시기 승우본(僧牛本)의 후손이라고 한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乘 | [37] 장흥, 만경, 부윤, 연일.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升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시 | 時 | 장풍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矢 | | | | |
신 | 莘 | 풍덕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信 | 회양 문등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新 | 하내 | | | |
神 | | | | |
실 | 實 | 태안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심 | 尋 | 개령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深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쌍 | 雙 | 천수[38] 중국 간쑤성 톈수이시. | 한국의 귀화성씨다.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쌍기 |
8. ㅇ[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아 | 牙 | | 고려의 성씨로, 승려 혜근의 속성이다.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아원혜 |
악 | 岳 | | | |
알 | 謁 | | | |
앙 | 仰 | 연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애 | 艾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야율 | 耶律 | | | |
약 | 藥 | | 조선의 성씨로 조선 초 태종 때 열녀로 봉해진 조을생 처 약(藥)씨가 있다. 중국에는 아직 존재한다. | |
양 | 揚 | | 발해의 성씨다.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良 | 채운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양문[39] 고려 초기 벽진군의 호족. | |
제주 | 탐라의 성씨다. 시조는 양을나(良乙那)로, 후에 성씨를 양씨(梁氏)로 바꾼다. | 양수 | ||
제천 | | | ||
涼 | 홍산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陽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어 | 於 | 연안 강릉 마전 | 본관은 연안(延安), 강릉(江陵) 두 본이 있었으나 같은 가문이었다. 조선 중기까지 과거 합격자를 여럿 배출했다. 강릉 어씨의 시조는 지의주사 어세린(於世麟)이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어천주[40]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정3품의 당상관. 1642년 생원시 3위인 어진창과 그 형제 어적창, 어익창의 부친. |
언 | 彦 | 남양 | | |
言 | | | | |
엄 | 奄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업 | 業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여 | 餘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廬 | 파평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茹 | | | | |
역 | 力 | 하음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연 | 淵 | | 고구려의 성씨다. 시조는 연태조이며 유명한 역사적 인물인 연개소문의 본래 성씨는 연씨였으나,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가 망하자 그 후손이 당 고조(이연)의 이름을 피휘하여 천(泉)씨로 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41] 단, 안승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아닌 신라본기의 설명대로 연정토의 아들이 맞다면, 안승의 형으로 알려진 인승 역시도 연정토의 아들일 테고, 현재 횡성 고씨 역시도 연태조와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의 후손인 셈이다. 물론 허(성씨)의 시조처럼 단순히 모계 성씨를 썼을 수도 있다. | 연개소문 |
蓮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軟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鳶 | | | | |
연비 | 燕比 | | 백제의 성씨다. 대성팔족중 하나인 성씨. | 연비선나[42]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관등은 달솔. |
열 | 烈 | | 발해의 성씨다. 정안국의 초대 국왕 열만화가 있으나 그가 열씨인지 오씨인지는 논쟁이 있다. | 열만화 |
영 | 靈 | 한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甯 | 낙안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英 | 진릉 | | | |
泳 | 영천 | | | |
영호 | 令狐 | 문화 | 조선시대에는 사라지고 없었다.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예 | 豫 | 강동 | | |
藝 | 전주 | | | |
禰 | | 백제의 성씨다. | | |
禮 | | 고구려의 성씨다. 동명성왕의 아내이자 유리명왕의 모후의 성이 예(禮)씨였다.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
裔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오 | 烏 | | 발해의 성씨로,[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오현명 오소도[43] 발해의 재상. 아들 광찬이 후당에서 유학했다. |
伍 | 복흥[44] 배천 안정 | 시조 오윤부(伍允孚)는 충선왕 시기 찬성사를 지냈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오윤부 | |
午 | 밀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吾 | 고성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옹 | 翁 | 김포 개령 | | |
瓮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와 | 瓦 | | | |
왁 | 䢲[45] '쉬지 않고 갈 왁'이라는 한자이다. 한자/특이한 한자 문서 참조. | | | |
𨶠[46] 본래 '문지방 얼'이라는 한자이나, 국자 한정으로 '성씨 왁'이라는 훈음 또한 존재한다. | | 광주(廣州)에 이 성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자휘에 따르면 𨶠는 오(塢)와 같은 음으로, 원래 오(𨶇)씨 였다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청]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 | | |
완안 | 完顔 | | | |
왈 | 曰 | 정선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왕 | 旺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옹 | 翁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요 | 要 | 대구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堯 | 상당 | | | |
용 | 熔 | | | |
우 | 羽 | 고려 | 고구려의 성씨다. 유리명왕 시기 양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는 인물을 등용하고 부마로 삼으며 사성했다. | |
遇 | 성주 고령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牛 | 예안 목천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우승길[47] 고려 공민왕 시기 경상도진무사를 지냈다. | |
祐 | [48] 재양, 장풍, 통진, 남양, 대양, 연풍.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又 | | | | |
虞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尤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芋 | | | | |
雨 | 고성 | | | |
우문 | 于文 | | | |
우진 | 羽眞 | | | |
욱 | 郁 | 해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울 | 鬱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웅 | 熊 | | | |
위 | 位 | 통진 | 고구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위사물 |
尉 | 태원 | | | |
衛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胃 | | | | |
威 | | | | |
원 | 員 | 덕수 풍덕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原 | 상원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遠 | | | | |
월 | 月 | 단양 | | |
유 | 有 | 동해 | | |
由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柚 | | | | |
惟 | | | | |
육 | 六 | 창녕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윤 | 閏 | | | |
율 | 律 | 괴산 |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聿 | | | | |
은 | 隱 | 남평 강서 | 발해의 성씨다.[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 은계종[49] 발해 유민으로, 고려로 귀화하였다. |
銀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恩 | 고부 |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평안남도 강서군에 은몽천(恩蒙天)의 1가구가 있었으므로 북한에는 아직 존재할 수 있다. | 은광훈 | |
을 | 乙 | 의주 | 고구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을파소 |
을불 | 乙弗 | | | |
을지 | 乙支 | 의주 | 고구려의 성씨다. 위의 의주 을씨와 함께 목천 돈씨의 원래 성씨로 추정되는 성씨이다.[50] 원래는 을씨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가, 을지문덕의 출현 이후 그의 일족들이 따로 뭉쳐서 을지씨로 분적하여 나가 또 다른 집안을 이루었다는 구전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을지문덕 |
응 | 應 | 고양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이 | 弛 |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已 | | | | |
離 | 평창 | | | |
이선 | 以先 | | | |
익 | 益 | 경주 기계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翌 | 음죽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翼 | 창원 | | | |
인 | 仁 | 창성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일 | 日 | 정산 | | |
壹 | | 발해의 성씨다.[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 일만복[51] 발해 문왕 시기의 인물로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다. | |
一 | | | | |
임 | 壬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입 | 入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9. ㅈ[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자 | 玆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自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작 | 雀 | 동주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잡 | 雜 | | | |
장 | 長 | 연기 연풍 | | |
庄 | 청풍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
塲 | 목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將 | 경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壯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㽵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萇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장리 | 墻籬 | 남원 | 담울(覃蔚)씨라고도 한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재 | 才 | 하동 |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材 | | | | |
載 | | | | |
宰 | | | | |
在 | | | | |
재증 | 再曾 | | 백제의 성씨다. | 재증걸루 |
재초 | 齋楚 | | | |
적 | 翟 | 임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狄 | 천수 | 고려의 성씨다.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적철[52] 단, 이 사람이 적(狄)씨인지는 논란이 있다. | |
전 | 專 | 양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典 | | | | |
정 | 井 | [53] 진강, 연천, 면천, 치등, 음성, 정읍, 답곡, 장수, 배천, 밀양. | 신라 ~ 조선의 성씨다. 전라도 정읍과 장수 지역의 토착 성씨였다.[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학생(學生) 정가우(井嘉祐).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진표(신라) 정종후[55] 고려 성종 시기의 문과 급제자로 청풍감무를 지냈다. |
貞 | 양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廷 | 임강 장단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正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제 | 堤 | 원산 진산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齊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祭 | | | | |
弟 | | | | |
조 | 朝 | | | |
遭 | | 조(曺)씨의 오기로 보인다. | | |
조미 | 祖彌 | | 백제의 성씨다. | 조미걸취 |
종 | 宗 | [56] 통진, 모압, 이파, 인의, 황원.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종간 |
種 | [57] 곤미, 영광, 영암, 천안, 통진, 풍덕, 하음.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좌 | 佐 | 대정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坐 | 흥덕 | | | |
주 | 珠 | 경산 경주 | 일본계 귀화 성씨였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胄 | 하성 | | | |
州 | 한양 | | | |
중 | 仲 | 충주 | | |
중실 | 中室 仲室 | | 고구려의 성씨다. | 무골 |
지 | 遲 | | 백제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지수신[58] 백제부흥운동에 가담한 백제 유민. |
知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즉 | 則 | 행주 고양 | | |
증 | 曾 | 강화 진강 | | |
즙 | 緝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지 | 知 | 이천 | | |
遲 | 태원 | | | |
地 | | | | |
芝 | | | | |
支 | | | | |
직 | 直 | | 후삼국시대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직심[59] 고려 초에 전사한 견훤의 장수. |
괴산 |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稷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진 | 震 | 강화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珍 | 강주 | | | |
鎭 | | | |
10. ㅊ[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찬 | 贊 | | | |
찰 | 察 | | | |
札 | | | | |
창 | 菖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蒼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唱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創 | 아산 | | | |
채 | 蔡 | 평강 인천 | | |
彩 | | | | |
책 | 冊 | 두모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翟 | 임천 음죽 목천 | | | |
처 | 緀 | | | |
척 | 拓[60] 참고로 이 한자는 선비족 탁발씨(拓拔氏)를 가리킬 때는 '탁'이라고 읽는데, 따라서 탁씨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 곡산 영흥 | 곡산 척씨는 척위공을 시조로 하고 척준경을 중시조로 하였다. 나름 한국사에서 굵은 인상을 남긴 성씨지만 분단 후 한국에서 통계에 잡히지 않고 멸성된 성씨로 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곡산에서 척씨는 멸성된걸로 적혀있다.[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척준경 |
천 | 遷 | [61] 전주, 경주, 김해, 원주, 옥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芊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철 | 哲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청 | 靑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초 | 草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촉 | 燭 | 김해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촌 | 村 | 진원 | | |
추 | 追 | 개성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축 | 畜 | | 천방지축마골피에 나오는 성씨와는 한자가 달라 무관하다. | |
축자 | 築慈 | | | |
총 | 聰 | | 고려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총일[62] 고려 초의 한찬. |
寵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충 | 充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忠 | 풍익 | | | |
치 | 蚩 | | | |
칙 | 則 | 행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침 | 寢 |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11. ㅌ[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타 | 惰 | | | |
탁 | 濯 | 정읍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탁왕 | 拓王 | | | |
탄 | 憚 | 연안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炭 | 연안 진주 인천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呑 | 연안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태 | 泰 | | 발해의 성씨로, 간왕의 황후 순목황후를 배출하였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0명이다. | 순목황후 |
남원 | 고려~조선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태평 | ||
台 |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苔 | 풍각 | 밀양의 성씨였으나 조선시대에 사라지고 없었다.[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
택 | 宅 | 괴산 |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澤 | 효령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퇴 | 堆 | | | |
통 | 通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퉁 | 𤳈[63] 네이버 한자사전 등에는 음이 '장'으로 나와 있는데, 청장관전서-앙엽기에는 속음이 '퉁'이라고 소개했다.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𨳈 | | | |
12. ㅍ[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파 | 波 | | | |
巴 | 고평 하동 | | | |
판 | 板 | 동래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포 | 鮑 | | 1930년 국세조사에서 유일하게 나타났던 성씨이다. | |
표 | 標 | 임진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票 | | 조선의 성씨다. | 표해상[64] 조선 영조 시기 국경을 넘어 청나라에서 체포된 조선인. | |
豹 | | | | |
품 | 品 | 청주 | | |
풍 | 豊 | | | |
酆 | |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필 | 必 | | | |
疋 | | | |
13. ㅎ[편집]
성씨 | 한자 | 본관 | 설명 | 주요 인물 |
하 | 賀 | | 발해의 성씨다.[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 | |
옹진 광평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 ||
何 | [65] 영평, 남양, 도민, 임술, 유석.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下 | | | | |
하기 | 夏俟 | | 하후(夏侯)씨의 오기로 보인다. | |
하후 | 夏侯 | | 초한전쟁 시대의 장수 하후영을 시조로 한다. | |
학 | 學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鶴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할 | 㔛 | | 《강화지(江華志)》에 수록됐다.[청]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 | |
함천 | 咸千 | | | |
합 | 合 | 교동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항 | 恒 | 음죽 | | |
해 | 解 | 해양 | 삼국시대~남북국시대에 걸쳐 보이는 성씨다. 부여의 시조격 왕들인 해모수, 해부루가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여 부여의 왕성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정작 그 이외의 부여 왕족들이 사용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66] 부여가 멸망한 뒤 왕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유민 여울(부여)은 여(餘)씨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중국의 해씨는 한국의 해씨와 기원은 다르나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다. | |
행 | 幸 | 영월 창평 해평 | | |
향 | 香 | 제군 | | |
鄕 | 흥덕 | | | |
허 | 虛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헌 | 憲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혁 | 革 | 개성 | | |
赫 | 영풍 안변 |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혁련 | 赫連 | | 고려의 성씨로 본래 흉노의 성씨이며[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혁련정[68] 균여전의 저자로 고려 예종 시기 장악전학사 판제학원사를 지낸다. |
현 | 現 | | | |
賢 | | | | |
縣 | 부풍 | | | |
협 | 劦 | | 백제의 성씨로, 대성팔족 중의 하나였다. 단, 나머지 일곱 개 성씨와는 달리 사료에 협씨 인물의 예가 보이지 않으며, 목협(木劦)씨에서 갈라진 성씨로 보는 견해가 있다. | |
俠 | 신계 | | | |
형 | 荊 | 반성 안심 함양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刑 | | 후삼국시대의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 형적[69] 고려 태조 원년에 전사한 견훤의 장수. | |
괴산 | 일본인 귀화 성씨다.[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
혜 | 嵇 | [70] 충주, 장흥, 영암, 진남, 수성. 진남은 영암과 같다. | 전라도 영암 지역의 토성.[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 |
慧 | 달성 | 조선 후기까지도 후손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내에서는 완전히 단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중에 후손이 있다고 한다. | | |
호 | 好 | 대구 해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虎 | 전주 공주 | | | |
湖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號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홀 | 忽 | | | |
홍 | 弘 | 전주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鴻 | | | | |
화 | 華 | 장양 | 고려의 성씨다. 강원도 회양의 성씨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사라지고 없었다.[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和 | [71] 동복, 보성, 평산, 천안. | 시조는 호장 화식보(和式甫).[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아버지는 역리(驛吏) 화끗동(和末伊同). | 화인량[73] 고려의 산관이었다. | |
花 | 천안 풍세 |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禾 | |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 | |
황 | 皇 | | | |
회 | 會 | | | |
획 | 獲 | | | |
횡 | 橫 | 창녕 | | |
효 | 孝 | 평원 | | |
후 | 侯 | 상곡 | | |
훈 | 訓 | 경조 | | |
薰 | | | | |
훵 | 遤 | 연안 | [청]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 |
흔 | 昕 | 예천 | 고려의 성씨로, 예천 권씨의 본래 성씨다. | |
흑치 | 黑齒 | | 백제의 성씨다. 본래 부여씨였는데, 흑치에 영지를 받아 분성하였다고 한다. | 흑치상지 |
희 | 喜 | 구허 고성 | | |
希 | | | | |
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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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A B C D E F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청] A B C D E F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한]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 ] ^ _ `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동]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 ] ^ _ `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 } ~ � � � � � � � �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도] A B C D E F G H I J K L M N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경종·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증]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 ] ^ _ `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발] A B C D E F G H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가 정리하였다.[2015]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1] 일본의 도래인으로 승려가 됐다가 환속했다. 승려였을 때의 법명은 혜요(慧耀).[2]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고려 초의 원윤 경함필(卿含弼)을 임강 경씨 인물로 설명했으나, 경(卿)은 고려 초기 통치 기구의 직급으로 '경 함필'로 끊어 읽는 것이 적절하다.[3] 양근, 안성, 지평, 음성, 파천, 천안, 풍세, 장양, 익곡.[4] 양근, 사천, 연기, 안협.[5] 자는 언부(彦符).[6] 骨貴孫. 계공랑(啓功郞) 기자전(箕子殿) 참봉. 골인구(骨仁球), 골인구(骨仁璆), 골인수(骨仁琇), 골인서의 부친.[7] 자는 군윤(君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안성훈도(安城訓導) 공호중(貢好中).[8] 자는 직경(直卿). 아버지는 돈용교위(敦勇校尉) 행(行)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 공은남(貢殷男).[9] 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 공언조(貢彦祚). 별해진 병마첨절제사(別害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했다.[10] 아버지는 학생(學生) 공대회(貢大檜).[11] 자는 군후(君侯). 위로 형 공우제(貢禹濟)와 공우석(貢禹錫)이 있었다.[12]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공취욱(貢就郁).[13] 霍里子高. 공무도하가의 저자 여옥(麗玉)의 남편으로, 고조선 때 진졸(津卒)로 있었다.[14] 중국 간쑤성.[15] 창원, 의령, 인천, 행주, 평안, 복룡, 정해, 무곡, 이성, 옥야, 문화, 김제.[16] 명나라 출신의 궁녀로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갔다가 조선으로 귀국하는 소현세자 일행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후 소현세자가 죽자 그 아이를 보살폈고, 승려가 되어 조선 궁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하였다.[17] 행주, 보령, 제주, 대전, 반성, 장흥, 제천[18] 濃額必. 1661년(현종 2) 때 압록강을 건너 무단으로 나무를 베다가 봉황성(鳳凰城)에서 청나라 관리에 체포된 기록이 있다. 참고로 함께 나무를 베었던 은노길(恩奴吉)의 성씨인 은(恩)씨 또한 멸성됐다.[19] 중국 윈난성.[20]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으며, 현재로서는 그저 온성 이외에도 회령, 경흥, 경원, 나진, 종성 등의 지역을 위시로 하는 육진 지방 어딘가로 추정될 뿐이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뒤 재가승 등의 북부 지역 부락민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가장 정확하게나마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21] 청주, 태원, 전주, 원주, 주천, 덕천, 부령, 충주.[22] 발해의 좌수위소장(左首衛小將)으로 고려에 귀화했다.[23] 인천, 송림, 남포, 죽산, 인동, 감음.[24] 고려의 시어사중승.[25] 문경, 철원, 안협, 익곡.[26]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부여씨를 본관을 알 수 있는 복성 사이에 서술하면서 '백제부여씨'라고 표기했다.[27] 사실 동씨는 東이 아니라 董이라 경우가 좀 다르긴 하다. 참고로 한자 ‘東’이 들어가는 현존 성씨로는 동방씨가 있다.[28] 고려 초의 대광.[29] 사택(沙宅), 사택(砂宅), 사타(沙咤) 또한 같은 성씨다.[30] 수원, 광산, 남원, 익산, 영광, 경주, 진주, 김해.[31] 고려에서 판전의시사를 지낸 인물로 경성수복공신이다.[32] 고려 고종 시기의 경상도안찰사.[33] 고유어 동물 '소'(중세국어 독음 '쇼')에서 만들어진 한국제 한자로 적힌 성씨로 성씨 전용자이다. 현재 이 한자는 음역자로 쓰이고 있다.[34] 고려 현종 시기 통주 전투에서 활약해 관직이 한 단계 더해졌다.[35] 만경, 연일, 부윤, 광산.[36] 청주, 경주, 밀양, 함안, 영산.[37] 장흥, 만경, 부윤, 연일.[38] 중국 간쑤성 톈수이시.[39] 고려 초기 벽진군의 호족.[40]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정3품의 당상관. 1642년 생원시 3위인 어진창과 그 형제 어적창, 어익창의 부친.[41] 단, 안승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아닌 신라본기의 설명대로 연정토의 아들이 맞다면, 안승의 형으로 알려진 인승 역시도 연정토의 아들일 테고, 현재 횡성 고씨 역시도 연태조와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의 후손인 셈이다. 물론 허(성씨)의 시조처럼 단순히 모계 성씨를 썼을 수도 있다.[42]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관등은 달솔.[43] 발해의 재상. 아들 광찬이 후당에서 유학했다.[44] 배천[45] '쉬지 않고 갈 왁'이라는 한자이다. 한자/특이한 한자 문서 참조.[46] 본래 '문지방 얼'이라는 한자이나, 국자 한정으로 '성씨 왁'이라는 훈음 또한 존재한다.[47] 고려 공민왕 시기 경상도진무사를 지냈다.[48] 재양, 장풍, 통진, 남양, 대양, 연풍.[49] 발해 유민으로, 고려로 귀화하였다.[50] 원래는 을씨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가, 을지문덕의 출현 이후 그의 일족들이 따로 뭉쳐서 을지씨로 분적하여 나가 또 다른 집안을 이루었다는 구전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51] 발해 문왕 시기의 인물로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다.[52] 단, 이 사람이 적(狄)씨인지는 논란이 있다.[53] 진강, 연천, 면천, 치등, 음성, 정읍, 답곡, 장수, 배천, 밀양.[54]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학생(學生) 정가우(井嘉祐).[55] 고려 성종 시기의 문과 급제자로 청풍감무를 지냈다.[56] 통진, 모압, 이파, 인의, 황원.[57] 곤미, 영광, 영암, 천안, 통진, 풍덕, 하음.[58] 백제부흥운동에 가담한 백제 유민.[59] 고려 초에 전사한 견훤의 장수.[60] 참고로 이 한자는 선비족 탁발씨(拓拔氏)를 가리킬 때는 '탁'이라고 읽는데, 따라서 탁씨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61] 전주, 경주, 김해, 원주, 옥천.[62] 고려 초의 한찬.[63] 네이버 한자사전 등에는 음이 '장'으로 나와 있는데, 청장관전서-앙엽기에는 속음이 '퉁'이라고 소개했다.[64] 조선 영조 시기 국경을 넘어 청나라에서 체포된 조선인.[65] 영평, 남양, 도민, 임술, 유석.[66] 부여가 멸망한 뒤 왕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유민 여울(부여)은 여(餘)씨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67] 중국의 해씨는 한국의 해씨와 기원은 다르나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다.[68] 균여전의 저자로 고려 예종 시기 장악전학사 판제학원사를 지낸다.[69] 고려 태조 원년에 전사한 견훤의 장수.[70] 충주, 장흥, 영암, 진남, 수성. 진남은 영암과 같다.[71] 동복, 보성, 평산, 천안.[72] 본관은 천안(天安). 아버지는 역리(驛吏) 화끗동(和末伊同).[73] 고려의 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