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은(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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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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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鞠殷
생몰연도 미상
전연의 인물. 자는 불명. 청주(青州) 동래군(東萊郡) 출신. 낙랑태수 국팽(鞠彭)의 아들.
2. 생애[편집]
경소제 모용준 재위기에 전연에 임관하여 상서좌승을 지냈다.
원새 5년(356년) 11월, 광고(廣固)를 함락시켜 청주를 평정한 태원왕 모용각이 돌아가면서 국은을 동래태수로 삼았다. 당시 대장추(大長秋)를 지내고 있던 아버지 국팽은 아들이 고향에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국은에게 서신을 보내 당부하였다.
국은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왕미의 조카 왕립(王立)을 찾아내고, 이어서 산중에 숨어살던 조억의 손자 조엄(曹巖)까지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국은은 이들과 서로 교류하여 친분을 맺었고, 국팽도 사람을 보내 그들에게 마차와 의복을 선물하였다. 이로써 동래의 백성들은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왕미와 조억(曹嶷)은 필시 자손이 있을 것이다. 너는 그들을 불러 잘 위무함으로써 옛 원한과 길었던 혼란의 화근을 다스리도록 하라.'[1]
국팽은 서진 말기 모용부로 귀순하기 전에 청주자사 구희 휘하에서 동래태수를 지내면서 왕미, 조억의 침략군과 수차례 혈투를 벌였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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