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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목록/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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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리즈 시절/목록
1. 리그[편집]
1.1. 대한민국[편집]
- K리그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 부산 아이파크 - 대우 로얄즈 시절(창단~1999). 2000년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부도가 나서 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한 뒤로는 리그 우승과 거리가 멀어졌다. 결국 2015 시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됐다.
- 성남 일화 천마 - 1993년~1995년, 2012년 이후. 2012 시즌 12위를 찍고 2013 시즌 5 라운드만에 꼴찌를 먹었다. 그 이전의 시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며 문선명 총재가 세상을 떠난 뒤로 자금지원도 많이 줄면서 결국 2013년 10월 성남시 시민구단으로 변경, 2017시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했다.
어째 부산이랑 비슷한데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08년을 마지막으로 K리그 클래식 우승과 인연이 없다. AFC 챔피언스리그도 2003년 이후로 마찬가지.
- 제주 유나이티드 - 2010년
- 시민구단들의 리즈시절
- 인천 유나이티드 - 2005년 시민구단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며[1] , 이로 인해 예산이 오르고 영화 '비상' 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플레이오프와도 2009년을 제외하고는 인연이 없다가 2013년 승강제 도입 후 첫 상위스플릿 진출, 2015년에는 FA컵 준우승을 하였다.
- 경남 FC - 2007년~2012년까지 단 1차례도 8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특히 2007년에는 까보레가 득점왕을 받고 팀 창단 2년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2010년에는 조광래가 사임 전까지 창단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2012년에는 위기가 있었지만 기적적인 8위로 시민구단 첫 상위스플릿 진출을 지었고, 2008년과 2012년에는 FA컵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하지만 2013년 홍준표 도지사 부임 후로는 흑역사 진행 중.
- 광주 FC - 2014년 챌린지에서 정규리그 4위로 마감 후 플레이오프에서 강원, 안산을 차례로 격파. 그리고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을 1차전에서 3:1로 이기고,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3년만에 클래식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승격팀 첫 잔류확정을 지었다.
- 수원 FC - 2015년 챌린지에서 서울 이랜드와 대구를 차례로 격파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1차전에서 1:0, 2차전에서 2:0으로 이기고 비 클래식팀의 첫 승격을 이뤄냈다.
- 성남 FC - 2014년 시민구단 전환 첫 해에 FA컵 우승을 하고, 2015년에는 스플릿 시즌 첫 상위스플릿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2016시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됬다.
- 대전 시티즌 - 2001년 FA컵에서 우승, 2003년 홈에서 엄청난 승률을 보이며 전성기가 시작되었으나 2004년부터 부진이 거듭되다가 2007년 김호 감독 부임 후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 그 후로 암흑기를 거치다 2013년에 강등되었고 2014년 아드리아노를 필두로 챌린지 우승하면서 클래식에 승격했지만 2015년 여러 잡음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1.2. 독일[편집]
-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70년대. 현재까지 클럽이 기록한 분데스리가 5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 UEFA컵 2회 우승이 모두 이 시기에 나왔다. 1980년대 이후로는 서서히 팀의 전력이 하락해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두 번의 강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 1950년대, 1997/98 시즌
- 함부르크 SV -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1978년부터 1983년까지 분데스리가 3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우승 1회 및 준우승 1회, UEFA컵 1회 우승 등을 경험했다. 1986/87 시즌 이후부터는 메이저 대회에서 어떠한 컵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분데스리가 모든 시즌에 참가한 유일한 팀[2] 이라는 자존심이 있었으나 13-14시즌 강등위기에 처했다...가 살아남았고 14~15시즌도 극적으로 겨우 잔류했다. 15-16시즌도 잔류는 성공했지만 역시 강등권과 3점 정도 승점에서 겨우 성공하면서 이젠 중하위권팀이 되었다...
1.3. 스페인[편집]
-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 1999-2000 프리메라리가 우승 및 2003-04 UEFA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 AC 밀란을 잡으면서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이끌었지만 10-11시즌 라리가에서 강등되었다. 그나마 12~13시즌에는 다시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했으나 25라운드까지 20위 꼴찌로 추락하여 또 강등위기에 처했고 결국 강등당하면서 13~14시즌은 2부리그 세군다리가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4-15시즌 다시 프리메라리가 승격.
- RC 셀타 데 비고 - 1990년대 중반~2003/04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까지
- 비야레알 CF - 20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도 오르며 2010~11시즌 리그 4위를 거두기도 했으나 단 1년만인 2011~12 시즌에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그나마 2부리그 2위로 다시 1시즌만에 1부리그인 프리메라 리가로 돌아와 13-14 시즌은 리그 7위를 기록.
1.4. 잉글랜드[편집]
- 노팅엄 포레스트 - 1970년대 후반. 전성기 시절의 포스가 리즈시절 못지않은 구단으로, 항목을 보면 노팅엄 시절이란 말이 나올법하다.
- 더비 카운티 - 1970년대 초반.
- 리즈 유나이티드 - 잭 찰튼과 故 빌리 브렘너 현역시절[3] , 1991-92 시즌 우승~2001년 데이비드 오리어리 시절. 당시 로비 킨, 마크 비두카, 해리 키웰, 앨런 스미스, 리오 퍼디난드, 조나단 우드게이트 등 걸출한 선수들이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앨런 스미스의 리즈 시절이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 리버풀 FC - ~2010년 즈음까지. 한 때는 빅4로 불리우며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명가 중 하나이지만 정작 리그가 프리미어 리그로 개편된 이후로는 단 한 차례도 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다만 2013-14 시즌 오랫만에 리그 1위를 하며 후반기까지 순위를 유지, 드디어 24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나 했지만...
제라드가 자빠지며최종 우승은 맨시티. 결국 무관으로 끝났으나 그나마 리그 2위로 오랫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 미들즈브러 FC - 2003/04 ~ 2004/05 시즌까지.
- 아스톤 빌라 - 조지 램지가 감독을 맡던 1890년대 후반(1893–94, 1895–96, 1896–97, 1898–99, 1899–1900 리그 우승을 휩쓸면서 당시에는 맨유급 최강팀이었다.) 및 1980년대 초반(1980-81 리그 우승과 같이 81-82 유러피언컵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던 시절). 2000년대 와선 그래도 도깨비팀 모습을 보여주지만 중위권에 머물고 있고 마틴 오닐 감독 시절에는 빅4를 위협하는 강력한 후보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려보기도 했지만 그 후 몰락하면서 2011~12 시즌은 리그 막판까지 강등권 탈출에 총력을 다해 겨우 리그 잔류를 해냈다. 하지만 12~13시즌도 리그 막판까지 강등권 탈출에 총력을 다해 겨우 남았다. 13-14시즌은 전시즌보단 여유롭게 리그 잔류했지만 강등권과 승점 5점차로서 겨우 잔류하며 이젠 중하위팀으로 전락했고 14-15시즌도 17위,3점차로 가까스로 잔류하며 2010년대 들어서 아슬아슬하게 리그 잔류를 하는 신세로 전락하여 14-15시즌 FA컵은 그나마 준우승했지만 15-16 시즌은 16라운드까지 딱 1승을 거두며 겨우 승점 6점이라는 압도적인 꼴찌로 처져 강등 위기가 확실하게 다가왔다. 결국 20위 꼴지를 확정지으며 시즌내 가장 먼저 강등 확정.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맷 버스비, 퍼거슨이 감독하던 시절[4]
- 토트넘 핫스퍼 - 1960-61 시즌 리그와 FA컵을 더블우승 할 때
1.5. 이탈리아[편집]
- SS 라치오 - 1999/2000 시즌.
- SSC 나폴리 - 1980년대 후반. 당대를 넘어 펠레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영입 이후 두번의 스쿠데토, 코파 이탈리아, UEFA 컵을 따내며 전성기를 보냈다.
- SSD 파르마 칼치오 1913 - 1990년대 초~중반.
- 헬라스 베로나 FC - 1984/85 시즌
- 토리노 FC - 1940년대.
1.6. 프랑스[편집]
- AS 모나코 - 2003~2004 UEFA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거두면서 이름을 알렸으나...이후로 하위권 추락 및 강등...다만 항목보면 알겠지만 2013~14시즌 현재 재벌 구단주를 만나 리그 우승을 다투는 팀이 되었지만 리그에선 역시 돈다발 구단인 파리 생제르맹에게 밀려 무관에 리그 2위를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14-15시즌은 초반부에 강등권 가까이 떨어지는가 했으나 차츰 분위기를 추스리며 3위에 올랐던만큼, 꾸준히 리그 우승후보로 떠오르기에 현재가 리즈 시절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 클럽대회에서도 새롭게 리즈시절을 찾을지 관심사.
- AS 생테티엔 - 60년대 리그앙 4연속 우승, 70년대 리그앙 3연속 우승에 75-76 시즌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같이 프랑스 최강 구단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80년대 이후 재정문제로 2부리그 강등과 승격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신세가 되었다.그래도 2000년대 후반들어서 리그 중상위권이라든지 2013년 리그컵 우승,2013-14시즌 리그 4위,2014-15시즌 5위 같이 조금은 살아난 모습을 보이는 중.
1.7. 기타[편집]
- 던디 유나이티드 FC - 1980년대
- 레인저스 FC - 2012년 파산 이전까지
- AFC 아약스 - 여기도 리즈시절에 제대로 들어가는 팀이다. 유러피언 컵을 1971~73년까지 무려 3회 연속 우승하던 팀이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 CF ,바이에른 뮌헨와 더불어 3번 연속 우승한 3팀 중 하나! 바에이른 뮌헨과 더불어 UEFA 주관 메이저 대회 우승,트레블,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한 2개뿐인 구단이기도 하며 거기에 1994-95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4번이나 우승하여 챔피언스리그를 6번째로 우승을 많이 한 구단이었다..그러나...2000년대 와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커녕 16강 진출조차도 어렵고 유로파리그 32강만 가도 잘하는 형편으로 떨어졌다. 물론 리그에서야 여전히 강호지만 유러피언컵 클럽 대회에서는 리즈시절에 대하여 가장 까마득한 좋은 추억을 가진 팀이 되어 버렸다....
- FC 안지 마하치칼라 - 2011년~2013년. 사실 리즈 시절로 보기에는 아리송하지만 역대 성적이 2부리그 우승 2번뿐인 팀에서 사무엘 에투와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거액으로 영입하고 거스 히딩크를 감독으로 앉히며 리그 성적 3위를 거둬 팀 역사상 아주 짧은 리즈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3년도 안가 구단주 자본 문제로 리그 꼴찌로 강등당하고 승격하고 도로 옛 하위팀으로 돌아왔다. 2015-16 시즌도 강등권인 18라운드까지 16위에서 맴돌고 있다.
-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 1985-86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결승 상대가 FC 바르셀로나. 이는 동유럽 축구 역사상 첫 클럽대회 우승. 하지만 2000년대 와선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도 겸사겸사하는 신세이다. 뭐 그렇긴 해도 적어도 루마니아 리그에선 여전히 최강급으로 군림하며 리그 최다 우승을 기록 중이고 2010년대 와서도 리그 우승 후보이자 리그 우승을 여럿 거두고 있으니...리즈 시절의 그 유래가 된 팀보다야 낫긴 하다.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2000년대 중반까지. 기존에는 에레디비시 빅 3로 불렸지만, 재정난으로 2005/06 시즌 이후 리그에서 중위권 수준으로 전락했다. 다만 2011~12 시즌은 오랫만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2. 국가대표팀[편집]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 유로 2004 딱 그 순간만. 그 뒤로도 그 이전에도 다른 축구대회에서는 예선 또는 1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없..나 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첫 16강 진출이란 기염을 토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아무리 홈이라는 이점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전까지 단 1승도 못거두던 팀이 별안간 승승장구하여 조 1위로 2라운드에 진출하지 않나... 날고기는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차례차례 꺾고 4위를 기록하였다.
-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동메달. 자세한 건 카디프 대첩 참조.
-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8강. 마찬가지로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를 꺾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44년만에 진출했으나 포르투갈에게 0-7로 털렸다.
-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잭 찰튼 감독시절. 특히 유로 1988 ~ 1994 미국 월드컵까지
-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월드컵에서도 1승도 거두지 못하던 나라(다만 항목 참고하면 알겠지만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1승도 못 거두고도 무재배로만 16강에 오르는 행운을 누리긴 했다)가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그야말로 폭발하며 전 월드컵 대회 준우승팀(90 월드컵 우승은 서독) 격인 독일까지 제치고 4강에 올라가는 쾌거를 이뤘다.
마치 이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프로토타입그리고 그 뒤로 유럽에서 동네북급.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펠레가 축구선수로 데뷔한 순간부터 미네이랑의 비극 직전까지. 미네이랑의 비극을 겪고 난 이후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력이 많이 약해졌고, 심지어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월드컵 최다 우승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월드컵이라는 것이 창설되기 직전인 1920년대~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5]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4강에 오르고,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다시 살아나는듯 했으나...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은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치뤘다.[6]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자국에서 열린 1998년 월드컵 우승 ~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 세네갈 쇼크전까지. 지단을 주축으로 프랑스 대표팀의 축구 스타일은 '"아트 사커'"라 불리며 그 명성을 드높였고,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뿐만 아니라 2년뒤 열린 유로 2000 대회 우승,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허무한 1라운드 탈락, 이후 유로 2004, 2008, 2012에서 고전하고 있다. 그나마 지네딘 지단이 투혼을 불사른 2006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다. 최근에도 유로 2012 대회에서 개최국으로써 황금 세대를 앞세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았으나 결승전에서 우주의 기운이 모인 포르투갈에게 통한의 패배를 하며 고배를 마셨다.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가장 적절한 예시- 1970년대까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 각각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1950년대에는 매직 마자르라고 불리며 당시 세계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당시 이들을 상대로 선전한 나라들도 제법 호평받기는 덤특히 푸스카스를 주장으로 해서 1952년부터 54년 스위스 월드컵 준결승까지 A매치 34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7] 하지만 이번 유로 2016에서는 오스트리아를 2:0으로 이기고 아이슬란드에게 PK를 내주었음에도 1:1동점을 해서 토너먼트 진출이 유력한 상황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2008년 전까지 우승후보는 커녕 성적이 안 좋아서 샴페인, 뻥페인, 필페인이라 불었었다 .근대 유로 2008에서 두번째로 유로에서 우승 이후에도 월드컵 성적이 1950년 월드컵 4강 1회가 최고기록이라서 2010년에도 놀림받고 있었으나 1950년 60년 이후 4강에 진출하고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게다가 유로 2012에서 우승해 우승후보 였으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현재 강해지고 있다.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1930년에는 지금과 달리 우루과이와 극강의 팀이었다. 오죽하면 1930, 1934, 1938년 월드컵도 수준에 안맞아서 출전을 거절했다. 이때 많은 나라를 a매치로 학살해서 초기의 별명이 비공식 챔피언이었다. 그러다가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유로 1968에서 3위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24년만에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유로 1996에서 3위를 기록했다. 21세기에는 아직까지 4강에 진출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2014 브라질 월드컵 때는 1994년 지역예선 광탈 이래 20년만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초창기 월드컵에서는 꼼수로 우승했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더니 그 다음 월드컵에서는 계속 죽을 쑤고 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지역예선부터 졸라짱쎈 스페인과 같은 조가 되는 바람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3. 개인[편집]
이 항목은 먹튀/축구 문서를 참조하면 좋다. 먹튀라는 말 자체가 비싼 값에 사왔더니 리즈 시절의 실력에 한참 못 미칠 때 나오는 표현이니.
- 아드리아누 레이치 히베이루 - 04~08 인터밀란. 이 시절만큼은 독보적인 스트라이커였으나 그 이후로는 독보적인 민폐로 각성(...)
- 안드리 셰브첸코 - AC 밀란 시절. 이 시절 셰브첸코는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로 칭송 받으면서 2004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한다.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09~10 시즌 바이에른 뮌헨 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 직전까지. 이 기간 동안 슈바인슈타이거는 12~13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 및 분데스리가 사상 최초의 트레블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전차군단의 통일 후 첫 월드컵 우승에 일조했다.
- 베슬리 스네이더르 - 09~10 시즌 인터밀란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이 시절 스네이더르는 인테르의 세리에 A 최초 트레블 달성과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전승준을 이끌었다. 선수 본인은 2010년에 받은 개인 수상이 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어시스트왕, 2010 UEFA 올해의 클럽 미드필더상,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회 실버볼과 브론즈슈까지 수상하고 이후 발롱도르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
- 카카 - AC 밀란 시절. 2007년에는 팀을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차지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월드컵 우승 - 파트리크 비에이라 - 아스날 FC 시절. 이 시기 비에이라는 97-98 시즌 더블, 01-02 시즌 더블, 03-04 시즌 EPL 무패 우승, 레 블뢰의 유로 2000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시기였다.
- 페르난도 토레스 - 리버풀 시절. 2008년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월드컵 우승2 - 호나우두 - 1996~1999년. 그 이후에도 수준급의 스트라이커였으나 축구황제로서의 호나우두의 명성은 이 시절과 월드컵에서의 활약 덕분이다.
1994년 월드컵 한정 가만히 서 있다가 월드컵 우승3 다만 2002년은 실력으로 우승했다. - 호나우지뉴 - 2004~2006년. 이 시절에는 화려하면서도 실속있는 개인기와 연계 플레이
그리고 못생긴 외모로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라다멜 팔카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이 때의 팔카오는 라리가 최고의 인간계 공격수라는 칭호와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9골이나 넣으며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넘어 남미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던 시기였다.
- 마이클 오언 - 리버풀 FC 시절. 이 시기 오언은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하였다.
- 데쿠 - FC 포르투 ~ FC 바르셀로나 시절. 이 시기 데쿠는 FC 포르투의 2002-03 시즌 UEFA 컵 우승과 2003-0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C 바르셀로나의 2005-06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포르투갈의 유로 2004 준우승과 2006 FIFA 월드컵 독일의 4위를 이끌었다. 특히 2004년에는 발롱도르 2위와 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두 선수 모두 2000년대 후반 축구사에 길이남을 중앙수비조합인 퍼디치 조합을 이루어 EPL과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비롯한 수많은 트로피들을 팀에 안겨준 시기였다.
- 이케르 카시야스 - 2006/07시즌 레알 마드리드 ~ 유로 2012. 이 시기의 카시야스는 성 이케르라 불리며 라 리가를 넘어 세계 No.1 골키퍼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킨 시기이자 굳이 레알팬이나 스페인팬이 아니어도 타팀, 타국대 팬들에게도 호감을 얻던 시기였다. 또한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세 번의 라 리가 우승과 한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고, 2010/11 시즌에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를 2002/03시즌 이후 오랜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올려놓으면서 팀의 16강 징크스 극복에 크게 일조하고 다음 시즌에도 2회 연속 4강 진출에 일조한다. 그리고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유로 2008,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로 2012를 차례대로 우승하는데 크게 일조하며 조국의 메이저대회 3연패를 이끌고, 개인으로서는 세 대회 모두 대회 베스트일레븐에 골키퍼 자리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그리고 이 시기의 카시야스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FIFA/FIFPro 월드 XI 5회 연속 선정, 2007년부터 2012년까지 UEFA 올해의 팀 6회 연속 선정 되는 등 역대 각 베스트일레븐 최다 선정 기록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2/13시즌부터 기량의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하향세를 겪게 되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32강 네덜란드전에서 1:5 패배를 경험하고 그 다음 벌어진 칠레와의 경기에서도 0:2로 패하며 조국 스페인의 조별리그 광탈을 겪고만다. 동시에 이 시기 동안 여러 루머들과 구설수들까지 엮여버리면서 카시야스의 호감 이미지는 많이 벗겨지게 된다.
- 마이콘 - 2008/09 시즌 ~ 2010/11 시즌 인터밀란 . 이 시기의 마이콘은 그야말로 라이트백이라는 포지션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우측면 지배자고 여겨질 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The Right라는 별명까지도 생길 정도였다. 특히 2009/10 시즌에는 소속팀 인터밀란의 구단 및 세리에 A 사상 최초의 트레블 달성에 크게 일조하면서 UEFA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였고, 얼마 안 있어 개최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비록 조국 브라질은 8강에서 탈락했지만 마이콘 개인으로서는 이 대회에서도 엄청난 맹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결국 2010년 엄청난 활약을 펼친 마이콘은 FIFA/FIFPro 월드 XI과 UEFA 올해의 팀의 라이트백 자리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 앙헬 디 마리아 - 20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 시기의 디 마리아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의 10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하며 라 데시마를 달성하였고, 얼마 안가서 개최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조국 아르헨티나의 준우승에 크게 일조한다. 이 2014년의 활약으로 디 마리아는 FIFA/FIFPro 월드 XI과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 송종국 - 2001년 ~ 2002/03 시즌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이 시기 송종국은 2001년 K리그 신인상에, 2002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4강 신화의 주역이자 대회에서 687분을 뛰고 조별리그 포르투갈 전에서는 당대 최고의 윙어였던 루이스 피구를 막아내는 활약을 보이고, 3/4위전 터키 전에서는 마지막 골까지 넣는다. 이후 2002/03 시즌에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하여 조별리그 유벤투스 전에서 팬들에게 회자될만한 엄청난 활약을 비롯해 팀내 붙박이 주전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는 감독과의 불화, 현지 부적응, 사생활 문제 등으로 인해 하향세를 겪는다.
- 고종수 - 1997년~2001년. 이 때의 고종수는 안정환, 이동국과 함께 K리그의 흥행을 이끄는 트로이카였고, 심지어 히딩크로의 황태자로 불린 시기였다.
- 설기현 - 2000년 로얄 앤트워프 시절 ~ 레딩 FC 시절. 이 시기의 설기현은 처음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해 첫 시즌 25경기동안 11골(리그 10골,컵 대회 1골)을 넣고 차범근 이후 역대 두 번째 유럽리거 시즌 10골을 기록한다. 이후 2001년에 벨기에의 명문팀 RSC 안더레흐트로 이적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 되고 2002년 발롱도르 후보자 1차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2002~03 시즌에는 시즌 13골을 기록하고, 20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여 예선라운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기록을 세우고 마찬가지로 예선 라운드이긴 하지만 한국인 첫 챔피언스리그 골도 기록한다. 이후 잉글랜드의 2부리그인 챔피언십 리그 팀인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이적하고, 이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다. 그 다음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32강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골로 연결되는 조재진의 헤딩을 크로스 패스를 날리면서 귀중한 무승부에 일조하고, 곧바로 레딩 FC 이적하면서 골과 어시스트를 꾸준히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 풀럼 FC로 이적하면서 조금씩 부진에 빠지기 시작하고, 이후 중동 무대를 거쳐 K리그에 오지만 K리그 무대에서 영 좋지 먹튀급의 활약을 펼치게 된다.
- 잔루카 잠브로타 - 유벤투스 FC 시절. 이 시기 잠브로타는 당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속팀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며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꼽힌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소속팀의 여러번의 세리에 A 우승 뿐만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조국의 2006 FIFA 월드컵 독일 우승에도 크게 일조하였고, 2006년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2006년 FIFA/FIFPro 월드 XI과 UEFA 올해의 팀에 모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 하비에르 사비올라 - 1998년 리베르 플라테 ~ 2001년 FIFA U-20 월드컵. 이 시기 사비올라는 2001년 FC 바르셀로나에 이적하기 전까지 86경기에서 45골을 터트리며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10대 시절 가장 완성된 기량을 선보인 선수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였고, 2001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두 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한 11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독식하고, 이 11골은 역대 FIFA U-20 월드컵에서도 단일대회 최다골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 후안 마타 - 2011/12 시즌 ~ 2012/13 시즌 첼시 FC 시절. 이 시기의 후안 마타는 처음 첼시로 이적한 데뷔시즌인 2011-12 시즌에는 구단의 사상 첫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하며 빅 이어를 안겨주고, 그리고 팀의 통산 7번째 FA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면서 시즌 더블을 기록하고 본인은 그 시즌에 통산 52경기 12골 20도움을 기록하며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 시즌인 2012-13 시즌에는 구단의 사상 첫 UEFA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안겨주고 본인은 그 시즌에 시즌 통산 19골 35도움을 기록하고 리그에서만 17도움을 기록하며 그 시즌 EPL 도움왕을 수상하면서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두 시즌 연속 수상하였다.
- 앨런 스미스 - 2000~2001시즌. 이 말의 최초 적용자.
[1] 당시 챔스티켓은 2장이어서 우승해야만 얻을 수 있었고, 패배했다.[2] 바이에른은 강등된 적은 없지만 통합리가 창설 멤버에 들지 못했다. 통합 분데스리가가 63년 시작됐지만 DFB가 1부리가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같은 연고지의 2팀을 넣는 것을 거부함에 따라(당시에는 바이에른보다 TSV 1860 뮌헨이 더 강팀이었다. 남부 오베르리가에서 1860은 우승, 바이에른 뮌헨은 3위를 해서 참여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연고지가 같아서 거부되었다.) 참여하지 못하였고, 2년 후인 65-66시즌부터 분데스리가에 군림했다.[3] 리즈 유나이티드 홈구장인 엘런드 로드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브렘너 동상이 세워져 있다.[4] 겨우 몇년전일이다...[5]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마크에 별이 4개인 이유는 월드컵이 생기기 이전에 치룬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2번 우승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만 유일하게 올림픽 우승도 월드컵 우승과 동급으로 치는데 당시 우루과이의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월드컵 우승2번인데 별이 4개인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1950년 월드컵을 끝으로 4강이 최대성적이라는 게 문제. 그나마도 지역예선 광탈이 더 많았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당시에는 플레이오프에 떨어져서 코스타리카와 맞붙어서 겨우 올라오는 바람에 지역예선을 포함해서 월드컵 역사상 최다경기 기록팀(총 27경기)이라는 기록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나마도 에콰도르가 칠레를 이기면 플레이오프의 기회조차 없었다. 위의 프랑스는 2006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도 했다.[6] 근데 이 대륙간 플레이오프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부터 4대회 연속이다. 흠좀무[7] 하지만 1956년 반소 민주화운동 이후 주축 선수들이 1960년대 이후 서유럽으로 망명하면서 하향세를 보였다. 유로 1964 3위와 유로 1972 4위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