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심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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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irius_Symboli_DERBY.jpg

이름
シリウスシンボリ
Sirius Symboli
출생
1982년 3월 26일
죽음
2012년 4월 8일 (30세)
성별
수컷
털색
갈색 (鹿毛, 카게)
아비
모가미(Mogami)
어미
스위트 엡섬(スイートエプソム)
외조부
파르홀론(Partholon)
생산자
심볼리 목장
마주
와다 토모히로[1]
조교사
니혼야나기 토시오 (미호)
→하타케야마 시게노리 (미호)[2]
→니혼야나기 토시오 (미호)
성적
26전 4승 (4-3-2-17)
[ 펼치기 • 접기 ]
12전 4승[중앙]
11전 0승[FR]
1전 0승[GB]
1전 0승[GER]
1전 0승[ITY]

총상금
1억 4310만 300엔[중앙]
+229,000 프랑스 프랑[FR]
+16,500 독일 마르크[GER]
주요 우승
G1
일본 더비(1985)
레이팅
프리 핸디
63 (1985)
상세 정보
파일:netkeiba_logo.png | JBIS

[3]

1. 개요
2. 혈통
3. 생애
3.1. 1984년
3.2. 1985년
3.3. 유럽원정
3.4. 원정 복귀 후
3.5. 현역 은퇴 후
4. 여담
5. 경주 성적



1. 개요[편집]


일본경주마. 심볼리 루돌프의 한살 아래 세대로, 같은 심볼리 목장에서 태어나 함께 심볼리 목장의 전성기를 장식한 말.


2. 혈통[편집]


1대
2대
3대
모가미
Mogami
1976
파일:프랑스 국기.svg
리파르
Lyphard
1969
파일:미국 국기.svg
노던 댄서
Northern Dancer
구프트
Goofed
노 럭
No Luck
1968
파일:미국 국기.svg
럭키 데버네어
Lucky Debonair
노 티징
No Teasing
스위트 엡섬
スイートエプソム
1976

파르홀론
Partholon
1960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밀레시안
Milesian
팔레오
Paleo
시레토코
Shiretoko
1970
파일:영국 국기.svg
타카워크
Takawalk
포셰트
Pochette
* 네이티브 댄서 5×4 9.375%


부마인 모가미(Mogami)는 명종마로도 이름이 높은데, 특이하게도 모가미의 모마인 노 럭(No Luck)는 심볼리 목장과 메지로 목장의 공동소유, 모가미는 프랑스 현역 시절 심볼리, 메지로 목장 대표의 공동소유였다. 덕분에 두 목장 모두 자목장 생산마들이 주류를 이룸에도 부마가 모가미인 경우가 꽤 있는데 시리우스 심볼리와 같은 모가미 산구들로는 한살 아래의 메지로 라모누, 레거시 월드 등의 GI마 외에도 메지로와 심볼리(암말일 경우엔 스위트)의 관명을 받은 말들이 많고 시리우스 심볼리는 그런 모가미의 첫 해 산구였다.


3. 생애[편집]


시리우스 심볼리 열전 : 유랑하는 천랑성[4]
84년도의 클래식을 휩쓸었던 위대한 선배 심볼리 루돌프에 이어 마주의 큰 기대를 받았던 말이지만, 마주와 조교사의 기수 선택을 둘러싼 갈등에 휘말려 사츠키상과 킷카상에는 출주조차 하지 못했고, 그 후로도 유럽 원정이네 뭐네 하며 일본 내 메이저 경주에는 한 번도 못 나가고 전성기 시절을 통째로 날려버린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커리어가 끝나 있었던, 운명의 장난에 농락당한 안타까운 말.[5]

3.1. 1984년[편집]


이 말의 이야기 거리는 오히려 경기보다도 이 말을 둘러싼 소동에 더 초점이 모여질 것이다. 심볼리 목장의 대표이자 시리우스 심볼리의 마주였던 와다 토모히로는 이 말이 3세 시즌(현 2세)에 치룬 네 경기 중 비록 두 경기를 이기기는 했지만 두번의 패배에 기수인 카토 카즈히로의 실수가 컸다는 점을 들어 그의 기승 방법에 큰 불만을 내비쳤고, 기수를 심볼리 루돌프의 주전기수였던 오카베 유키오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조교사인 니혼야나기 토시오는 제자인 카토 기수를 감싸면서 '불만이면 다른 마방으로 옮겨 주시오.'라며 마주와 대립. 결국 시리우스 심볼리는 하타케야마 시게노리의 마방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걸로 끝났다면 별 이야기 거리가 못되었겠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런 마주의 행동이 니혼야나기의 마방뿐 아니라 구무원 조합 전체의 반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는 조교사회까지 중재에 나서게 되면서, 결국 시리우스 심볼리는 이적 1주일만에 니혼야나기 마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당시 와다는 이미 마방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끄럽고 간섭이 많은 문제 마주로 꽤 이름이 난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적 사태가 발생하자 구무원들 사이에서는 급격하게 심볼리 목장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었고, 결국 와다도 이런 분위기는 좀 곤란하다고 느꼈는지 고집을 꺾게 된 것.[6][7]


3.2. 1985년[편집]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1985년 JRA GI 대회 우승마


협의 끝에 다음 경주는 와다의 희망대로 오카베 유키오가 기수를 맡고, 그 다음 경기는 다시 카토 카즈히로가 기승하기로 결정. 첫 경기로 출주한 삼관 리그의 전초전 와카바상은 오카베 기수를 태우고 무난하게 승리했다. 이렇게 되니 카토 기수는 이제 자기를 감싼 스승님의 명예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무조건 우승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다리의 불안으로 사츠키상도 거르고 스탭 레이스도 없이 바로 일본 더비에 출주하게 되었던 것.


1985년 일본 더비 영상

85년도 클래식 전선에는 미호 신잔이라는 굉장한 기대를 모으는 말이 있었고, 사람들은 어쩌면 이 말도 클래식 삼관을 차지해서 3년 연속 삼관마 탄생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미호 신잔은 사츠키상 우승 후 부상으로 휴양. 토 기수의 운인지 어쩌면 가장 운이 좋은 말이 우승한다는 더비의 징크스대로인지, 그 해의 일본 더비는 이외에 딱히 주목할 말이 없었던 탓에 중상마도 아닌 오픈마인 시리우스 심볼리가 1번 인기를 받게 되고[8] 우승까지 하게 된다.[9] 결국 심볼리 목장은 2년 연속 더비마 생산이라는 영예를 얻게 되지만, 마주였던 와다는 이날 감기를 이유로 경마장에 나오지 않았다.


3.3. 유럽원정[편집]


그 후, 시리우스 심볼리는 심볼리 루돌프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기로 결정되었고, 우선 먼저 유럽으로 건너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니혼야나기 마방의 관계자는 전혀 동참시키지 않아 주위의 사람이고 환경이고 모든게 바뀌게 된 유럽 원정은 예민한 서러브레드에게는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고, 애초에 시리우스 심볼리는 당시의 경마 변경국인 일본에서도 운좋게 더비를 땄을 뿐 세대 최강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유럽으로 보내서 성적을 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더비가 끝나고 부랴부랴 유럽으로 건너가 제대로 휴식도 없이 겨우 곧바로 참가한 킹 조지 6세 & 퀸 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에서는 12두중 8착을 찍고, 그로부터 약 한달 뒤 독일의 바덴 대상에서는 7두중 4착을 기록. 오카베 유키오 기수는 이 두 경주에서 일부러 유럽까지 건너와 시리우스 심볼리의 안장에 앉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현지 기수가 맡았다. 바덴 대상으로부터 겨우 2주만에 G3 경주에 출주하여 6두중 꼴찌를 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해 10월에는 프랑스 G1 로열오크상에서 12두중 3착을 하면서 유럽 커리어 최고 성적을 찍는 등, 시리우스 심볼리의 유럽행 첫 스타트는 주위 환경의 어수선함과는 별개로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와다의 고집이 이번에는 심볼리 루돌프의 조교사 노히라씨와의 갈등을 만들고 있었다. 심볼리 루돌프로 유럽을 제패해서 이 말이 세계 최고의 명마라는 걸 알리겠다는 포부는 두 사람의 공통적인 인식이었지만, 이를 위해 개선문상을 목표로 푹 휴식을 취하고 천천히 유럽으로 건너가 컨디션을 조절하고 싶었던 노히라씨와는 달리 와다씨는 유럽으로 건너가기 전에 우선 미국의 터프부터 제패해서 미국에도 최고의 명마 심볼리 루돌프를 자랑하고 싶어했고, 결국은 노히라 마방의 관계자들은 빼놓고 심볼리 목장 관계자들만 심볼리 루돌프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 스탭들에게 말을 맡겼던 것이다. 와다씨는 노히라 조교사를 경주에 초대하지도 않아서, 노히라 조교사는 이 경주를 일반 관람 투어에 참가해서 보러 가게 된다. 그리고 경기전 오카베 기수는 심볼리 루돌프의 상태가 좋지 않은걸 확인하고 레이스 회피를 진언하지만 와다씨는 이를 거절하게 되는데, 이미 일본의 매스컴 관계자와 응원단까지 미국으로 건너온 판에 취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샌 루이스 레이 스테이크스. 이 경기에서 심볼리 루돌프는 경기중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고, 그대로 은퇴한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막상 시리우스 심볼리의 거취가 붕 떠버리게 되었다. 심볼리 루돌프와 같이 유럽에서 달리겠다고 준비해놨는데, 주역인 심볼리 루돌프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 시리우스 심볼리는 유럽에서의 활동을 계속하게 되는데 나름 입상권에는 자주 올라간 편이었지만 다른 말들의 출주 회피로 출주마의 머릿수가 한산한 경기들이 많아서 좋게 평가하기는 힘든 내용이었다. 심볼리 루돌프의 목표였던 86년 10월의 개선문상에는 15두 가운데 9번 인기로 출주. 14착의 결과를 남겼다.[10] 결국 85년 7월부터 87년 5월까지 약 22개월동안 총 14전 0승의 기록을 남기고 시리우스 심볼리의 유럽 원정은 마침표를 찍었다.


3.4. 원정 복귀 후[편집]


그리고 87년 가을, 시리우스 심볼리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창 전성기인 4, 5세 시즌을 유럽에서 달렸지만 우승 트로피는 하나도 얻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복귀해서 원래의 니혼야나기 마방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좀 박하게 말한다면 이미 퇴물. 게다가 원래도 좋다고 하기 힘들던 성격이 더 나빠져있었다.

복귀 첫 경기인 87년 10월 마이니치 왕관. 유럽에서 되돌아온 말이라는 이름값이 있었는지 닛포 테이오, 다이나 액트리스에 이은 3번 인기로 출주하지만 8착으로 참패한다. 그리고 3주 뒤의 가을 천황상에서는 5번 인기로 출주 9착을 한다.

마주인 와다도 이런 말 가지고는 더이상 꼬장을 피울 수 없었는지, 시리우스 심볼리는 이후 푹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 재조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88년의 일본 레이스로 복귀.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88년의 일본 터프는 오구리 캡타마모 크로스라는 두 괴물이 날뛰던 전장이었고, 3년 전의 더비 우승마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8월의 복귀전인 OP 세이칸 터널 개통 기념은 3번 인기로 2착. 그 다음 경기인 G3 하코다테 기념은 2번 인기로 4착. 나름 더비 우승마로 떠받들여지던 말이 이후 3년간 단 1승도 못하고 있으니 이 말도 마침내 완전히 속이 뒤틀려버렸던 것인지, 88년도 세번째 경주인 10월의 마이니치 왕관에서 게이트 진입 직전에 다른 두 경주마 다이나 액트리스레전드 테이오를 걷어차면서 대난동을 부리게 된다. 그중 레전드 테이오는 부상으로 출주 제외, 두 말의 구무원들끼리 주먹다툼을 벌였다고 하는 얘기도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난동을 부리고 속이 풀린 것인지 막상 당사자인 시리우스 심볼리는 그 회색의 괴물 오구리 캡에 이어 2착을 한다. 마이니치 왕관은 가을 천황상을 위한 발판이니 당연히 가을 천황상도 출주. 하지만 이미 흘러간 시간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인지 7착을 찍고, 골절이 발견되어 은퇴한다.


3.5. 현역 은퇴 후[편집]


은퇴후 종마로 데뷔했지만 특필할만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결국 종마도 은퇴, 이후 공로마로 여생을 보내다가 2012년에 굴곡진 삶을 끝냈다. 목장 내의 라이벌이었고 함께 심볼리의 전성기를 장식했던 심볼리 루돌프가 죽은 지 1년, 루돌프와 같은 30세의 나이에 맞이한 죽음이었다.

여담으로 결국 심볼리 목장은 시리우스의 은퇴 이후 미호의 마방에 말을 맡기기 힘들게 되면서 목장 시스템이 삐걱거리게 되어 오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11]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미호의 마방들도 한동안 같이 침체기를 겪게 되는데, 릿토의 언덕 훈련 노하우에 밀려 마주들이 릿토를 더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 심볼리 목장은 2000년대 초반에 심볼리 크리스 에스를 배출하며 부활했지만, 이후 2021년 현재까지도 유력마를 다시 내지 못하고 있다.


4. 여담[편집]


생전에 심볼리 목장의 폭군으로 군림하던 심볼리 루돌프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호적수로 인정했던 말로, 한번이라도 루돌프와 병합 경주를 하고나면 기가 죽어 루돌프에게 접근도 못했던 다른 말들과 달리 시리우스는 몇번이나 경주에서 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루돌프에게 도전할 정도로 승부욕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심볼리 루돌프도 평소 자신보다 한수 아래로 여기며 무시했던 다른 말들과 달리 시리우스와는 서로 견제하며 기싸움을 벌였으며, 목장측에서도 두 말에게 호승심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바로 옆 마방에 배치시켰다고 한다.

상기한 루돌프와의 경쟁심이라던가 경기전에 난동을 부리며 다른 말을 걷어찼던 에피소드 등 때문에 사람들에겐 기성이 거친 말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제론 상당히 얌전한 성격의 말이었다고 한다. 해외원정 당시 바로 옆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는데도 동요하지 않고 태연히 먹이를 먹을 정도로 침착함을 잘 유지했으며, 은퇴한 뒤에도 자신을 구경하러 온 어린이 팬이 쓰다듬기 편하도록 일부러 머리를 숙여주는 등 팬서비스도 좋았다고 한다.

미호 신잔과는 기묘한 관계인데, 같은 세대 클래식 삼관을 나눠 먹었으면서도 매번 어느 한쪽에 사정이 생겨서 엇갈리는 식으로[12] 단 한 번도 맞붙은 적이 없다. 양마장에 강하고 평생을 부상에 시달린 미호 신잔, 중마장에 강하고 평생을 마주의 고집에 시달린 시리우스 심볼리라는 대비 때문에 둘이 100% 상태로 맞붙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IF가 자주 나오는 관계.

5. 경주 성적[편집]


경주일
경마장

경기명

등급

트랙

배당
(odds)[13]
인기
착순
기수
1착마
(2착마)
1984년 (3세, 현 2세)
9.16
나카야마
3세 신마

잔디 1600m
5.5
2
1착
카토 카즈히로
(타카노 미노부)
9.29
나카야마
후요(芙蓉) 특별
OP
잔디 1600m

1
실격[강착]
빙고 티무르
10.27
도쿄
이초(いちょう) 특별
OP
잔디 1600m

1
2착
로드 킬터
11.18
도쿄
후추 3세 스테이크스
OP
잔디 1800m
1.2
1
1착
(사쿠라 이치몬지)
1985년 (4세, 현 3세)
3.30
나카야마
와카바(若葉)상[14]
OP
잔디 2200m
1.2
1
1착
오카베 유키오
(마론 쿠셋)
5.26
도쿄
도쿄 우준 (일본 더비)
GI
잔디 2400m
5.5
1
1착
카토 카즈히로
(스다 호크)
7.27
파일:영국 국기.svg 애스컷
킹 조지 6세 & 퀸 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
G1
잔디 12f[15]
(100/1)
10
8착
오카베 유키오
페토스키
9.1
파일:독일 국기.svg 바덴바덴
바덴 대상
G1
잔디 2400m


4착
골드 앤드 아이보리
9.15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프랭스 도랑주상
G3
잔디 2000m


6착
A. 르그리
로밀도
카리엘로[동착]
10.27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로열오크상
G1
잔디 3100m


3착
G. 모스
메르세
1986년 (5세, 현 4세)
4.20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에두빌상
G3
잔디 2400m


5착
G. 모스
베이비 터크
5.6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시시크상

잔디 2000m


3착
틸트
6.8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산시로
밀라노 대상
G1
잔디 2400m


5착
토미 웨이
8.16
파일:프랑스 국기.svg 도빌
공토비롱상
G3
잔디 2000m


4착
A. 르그리
오버 더 오션
9.14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푸아상
G3
잔디 2400m


2착
모리스 필리페롱
메르세
10.6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개선문상
G1
잔디 2400m
(112/1)
13
14착
댄싱 브레이브
10.19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콩세일 드파리상
G2
잔디 2400m


4착
알타얀
1987년 (6세, 현 5세)
3.28
파일:프랑스 국기.svg 생클루
에드몽 블랑상
G3
잔디 1600m


4착
모리스 필리페롱
하이에스트 아너
4.12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아르쿠르상
G2
잔디 2000m


8착
그랑 파부아
5.2
파일:프랑스 국기.svg 롱샹
가네상
G1
잔디 2100m


7착
트립틱[16]
10.11
도쿄
마이니치 왕관
GII
잔디 1800m
6.0
3
8착
카토 카즈히로
다이나 액트리스
11.1
도쿄
천황상(가을)
GI
잔디 2000m
7.5
5
9착
닛포 테이오
1988년 (7세, 현 6세)
8.7
하코다테
세이칸 터널 개통 기념
OP
잔디 1800m
4.9
3
2착
카토 카즈히로
볼드 노스맨
8.21
하코다테
하코다테 기념
GIII
잔디 2000m
4.6
2
4착
사커 보이
10.9
도쿄
마이니치 왕관
GII
잔디 1800m
11.1
4
2착
오구리 캡
10.30
도쿄
천황상(가을)
GI
잔디 2000m
14.2
5
7착
타마모 크로스
[1] 심볼리 목장의 소유주다.[2] 하타케야마 조교사가 담당한 기간은 아주 잠깐이라, 그 기간 동안 경주에 출주한 적은 없다.[중앙] [FR] [GER] [3] 뒤의 회색마는 1985 더비에서 2착을 기록한 스다 호크.[4] 출생부터 사망까지 시리우스 심볼리의 마생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글.[5] 이후에도 마주의 오만으로 인한 독단적인 행보가 극에 달했는데, 그 중에서 시리우스 이상으로 큰 피해를 본 말이 비운의 87 클래식 세대로 유명한 마테리얼이다.[6] 왜 이런 갈등이 생기느냐에 대해서는 일본의 경마 시스템에 대해서 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요즘에는 마주의 영향력이 강해져서 어지간해서는 마주의 요구가 그대로 진행되지만, 저때까지는 아직 마주는 말을 맡기기만하고 조교사가 자기 마음대로 말의 육성과 출주를 관리하던 시기였다. 말이 상금을 받게 되면 그 상금의 일부를 조교사와 구무원, 기수도 같이 나눠받게 되는데, 그렇기때문에 조교사와 구무원은 비록 마주가 맡겼을 뿐인 남의 말이지만 자기 말처럼 그 말을 보살피는 것. 그런데 자기 말인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마주인 와다 입장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고, 고참 조교사였던 니혼야나기 토시오도 기수 선발은 조교사의 권한인데 여기에 참견하는 와다가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이 사태를 구무원들의 시선에서 보면 악벽이 있어 기승하기 힘든 편이었다는 시리우스 심볼리를 고생해서 좋은 말로 다듬어놨더니 멋대로 홀랑 빼서 다른 마방으로 옮겨버리는 이기적인 처사로 보였던 것이다.[7] 더욱이 시리우스 심볼리 다음해의 기대주였던 마테리얼은 담당 조교사가 원래 자신에게 맡겨질 말이 아닌데 한눈에 반해 사정사정해서 겨우 맡은 말이었던지라 마주 와다에게 강하게 나가질 못해 질질 끌려다니다 제대로 된 성적도 내질 못하고 고생만 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되며 "와다의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라는 인식을 완전히 박혀버리게 만든다. 안그래도 불만을 많이 사고 있는 마주가 2년 연속으로 자기 말이란 이유로 깽판을 쳐 버렸으니 조교사나 구무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아질 턱이 없는 것.[8] 당시 자료를 보면 전문가 픽업으로는 2번 인기였던 스다호크와 비슷비슷한 정도였지만, 이적 소동으로 인해 인지도가 올라간 탓이었는지 마권 인기로는 단승 5.5배의 1번 인기였다. 2번 인기 스다호크는 8.0배[9] 다만 미호 신잔이 참가했어도 시리우스 심볼리가 우승했을 것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데, 그 해 더비가 최악의 중마장이었기 때문이다. 미호 신잔은 중마장에 약했고 시리우스 심볼리는 중마장이 특기였다.[10] 이 대회의 우승마가 유럽 경마 사상 역대급의 강자였던 댄싱 브레이브(Dancing Brave)였으므로 설령 심볼리 루돌프가 정상적으로 출주했더라도 승리를 기대하긴 힘들었을 것이다.[11] 시리우스 심볼리 이외에도 '심볼리 목장의 비밀병기'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기대를 모았던 말 마테리얼도 마주 와다의 과도한 간섭 때문에 엉망이 되기도 했다.[12] 사츠키는 시리우스가 이적 소동으로 회피, 더비는 미호 신잔이 골절로 회피, 킷카는 시리우스가 해외 원정. 일본으로 돌아왔을 땐 미호 신잔은 이미 은퇴였다.[13] 서양권에서 사용하는 배당 표기 값이다. 분수로 표기하며, 한국/일본에서 사용하는 배당율과 달리 원금을 제외하므로 값이 1만큼 작다.[강착] 1착으로 들어왔으나 사행으로 실격당했다. 10착이란 표기는 레이스에 시리우스 심볼리를 포함해 10두가 출주했기 때문.[14] 현 와카바 스테이크스(L)[15] 약 2414m[동착] [16] 미국에서 생산된 아일랜드, 프랑스의 경주마. 암말임에도 아일랜드 1000기니가 아닌 2000기니를 도전해 우승하고, 이후 영국 챔피언 스테이크스 2연패를 비롯하여 통산 G1 9승을 달성했다. 1986년 개선문상에도 출전했는데 3착으로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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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우승마]]''' {{{#!wiki style="margin:0 -11px -5px; 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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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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