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11세 아동 학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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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떻게 알려졌는가
3. 사건의 전개
4. 발견 후의 뒷이야기
5. 양육 문제
6. 재판 과정
7. 여파
8. 관련 기사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15년 12월 12일, 인천광역시 연수구에서 당시 11세[1]였던 아이가 친아버지와 동거녀의 아동 학대를 피해 인근 상점에 들어갔다가 상점 주인이 아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진 사건.(기사)

판결문 링크(인천 지방법원)

2. 어떻게 알려졌는가[편집]


2015년 12월 12일 인천광역시 연수구에서 11살 아이가 빌라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아버지 몰래 탈출하여 인근 상점으로 들어와 과자를 쇼핑 바구니에 가득 담고 밖으로 나오다가 슈퍼마켓 주인이 이를 발견했다. 주인은 아이가 음식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과 깡마른 모습을 보고 수상하다고 여겨 따뜻한 음료수와 음식을 제공하고[2]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졌다.[3]


3. 사건의 전개[편집]


아이의 아버지는 심각한 게임 중독이었으며[4], 전처(=아이의 생모)와 이혼하고 동거녀를 데리고 와서 상습적으로 친딸인 아이를 학대했다고 한다. 언젠 자기들은 친구들을 데려와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정작 아이에게는 남은 음식조차 주지 않았고[5] 아무거나 먹는다는 이유로 두들겨 팼다고 한다. 학교도 전학을 몇 번씩이나 하기 일쑤였고 무단결석도 여러 번이나 시켰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 자식을 스트레스 풀이용 샌드백으로 삼았다는 소리다.

그나마 인천으로 이사를 간 2학년 1학기 이후로는 아예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때를 기점으로 아이는 무려 2년 동안 학대를 당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발견 당시에는 극도로 심각한 영양실조 때문에 신장이 120cm밖에 안 되었고, 몸무게도 4살 평균인 16kg밖에 미치지 못했다. 몸무게만 봐도 뼈와 살가죽밖에 없을 정도로 말랐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발견 당시에는 늑골이 부러지고 온몸에 과 함께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사실 피해자가 재학했던 학교 측에서도 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이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당시 경찰이 친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고 접수 자체를 거절했다.[6] 아이의 아버지가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학교 측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2년이 지나서야 피해자는 아버지가 세탁실에 나간다며 손목을 묶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운 좋게 도주에 성공했으며, 상점 주인이 이 아이를 발견하면서 드디어 진실이 알려졌다.

사실 아이가 탈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저번 탈출은 지나가던 행인이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물론 그 행인이 아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 리가 만무했으니 그 행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7]

4. 발견 후의 뒷이야기[편집]


아이의 아버지는 감금, 상습 폭행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고 동거녀와 친구도 같이 구속되었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서 몸무게도 20kg으로 늘었으며 보호시설에서 보호하기로 했다. 마침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발견돼서 사람들이 많은 후원과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또 위탁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한동안 아버지가 친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은 힘들다고 한다.

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2년 동안 감금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표현을 명료하게 하였다.[8] 참고로 아이는 공부를 잘했으며, 대회에서도 우수상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가 발견된 뒤 12시간 후, 동거녀와 그 친구가 아이가 도망친 슈퍼로 찾아왔다고 한다. CCTV를 확인하고 자기 아이 아니라고 웃어대며 회피하고는 경찰의 수사를 피해 서로 헤어져 동거녀는 광명으로 갔으며 아버지와 동거녀 친구는 모텔촌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실시했는데 안타깝게도 관련 사건들 중 피해 아동이 살아있었던 사건은 이 사건이 유일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몇 년 후 창녕에서는 이 사건과 비슷하게 초등학생이었던 9살 어린이가 주택 옥상으로 위험천만하게 옆집으로 옮겨서 짜장라면을 겨우 먹고 도망치다가 우연히 마주친 어느 여성이 어린이를 발견하면서 근처 편의점에서 경찰에 신고와 함께 어린이의 불안감 해소를 도와주었고 이 또한 아동학대가 있었음이 밝혀졌으며 도망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5. 양육 문제[편집]


사건 이후 친할머니가 나타나 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했지만 아이와는 만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뭐 하다가 왜 이제야 나타났냐며 할머니를 비판하는 여론도 일부 있지만, 과거 가족들이 이사간 후 친할머니가 손녀의 행방을 묻기 위해 학교 담임을 찾아왔다는 보도도 있고[9] 아들(피해자의 아버지)이 야반도주를 밥 먹듯 일삼아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의도치 않게 연락이 끊겼다가 이제야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검찰은 아이의 아버지 친권 행사 정지를 청구했고, 인천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5년 12월 28일 아이의 아버지의 친권 행사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2016년 10월 친권을 영구박탈했다.

부친이 친권을 상실하였으므로 모친이 그 친권을 넘겨받은 것이 되지만, YTN이 2016년 5월 11일 뉴스 보도에 따르면 아이의 친어머니는 이미 8년 전 사망했다고 한다. 해당 뉴스 보도 전까지는 친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어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이미 고인이었다는 것.

일단 2016년 1월에는 법원이 인천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관장을 임시후견인으로 지정함에 따라 소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지내게 되었으며 7년 후에는 자립해야 한다고 한다.

6. 재판 과정[편집]


2016년 1월 27일, 1심 인천지방법원 형사14부(신상렬 부장판사) 심리로 첫 재판이 진행되었다. (기사) 피고인 세 명이 기소 당시 죄명은 상습특수폭행,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집단흉기 등 상해·공동감금,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상습아동유기방임 등 모두 5가지이다. 첫 재판에서 피고인 세 명은 모든 혐의를 인정했으며 재판에 앞서 동거녀는 한 차례, 동거녀의 친구는 네 차례 반성문을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공판부터는 피해자가 미성숙한 아동임을 고려해 비공개로 진행하였다.

2016년 2월 12일 비공개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아이의 아버지 박 모씨(33)에게는 징역 7년, 동거녀 최 모 씨(37)에게는 징역 10년, 동거녀 친구 전 모씨(36)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하였다.

2016년 2월 19일, 1심 인천지방법원은 아이의 아버지 박 모씨(33), 동거녀 최 모씨(37)에게 각각 징역 10년, 함께 살던 동거녀 친구 전 모씨(36)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관련기사) 재판부는 이들에게 80시간의 아동학대방지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양육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학대와 방임 행위를 했다"며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피고인들의 행위에 대해 엄한 처벌을 내려 추후 이런 아동학대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게 법원의 책무"라고 덧붙였다.

7. 여파[편집]


이 끔찍한 사건에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하나 꼽자면 이 사건을 계기로 더 끔찍한 사건들이 밝혀졌고 그에 따라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동인권의식이 조금 더 선진화되면서 권위주의적 문화로 인해 다소 소극적이었던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야말로 2015년 연말과 2016년 연초의 화두로 떠오른 사회문제가 되어 묻힐 뻔한 아동학대 문제가 적극적으로 발굴되고 아동 학대에 대한 의식과 현황을 개선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8. 관련 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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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Bf: 친부에 의한 학대, Bm: 친모에 의한 학대, Sf: 계부에 의한 학대, Sm: 계모에 의한 학대, Ff: 양부에 의한 학대, Fm: 양모에 의한 학대, Nt: 보육 교사에 의한 학대, Et: 학교 교사에 의한 학대, Re: 친인척에 의한 학대, G: 조부모에 의한 학대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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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생. 2015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였지만 실제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2학년 1학기까지였다고 한다. 학대는 근 2년간 특히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미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2] 아래에도 나와 있지만 오랫동안 먹지를 못하고 학대당해 몸이 그야말로 앙상한 촉루와도 같았으며 과자봉지 하나 뜯기도 힘이 없어 어려울 정도의 참혹한 몰골이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아이를 보면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3] 경찰서에서 아이는 경계의 눈초리가 상당히 강했으며 경찰이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자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4] 일부 기사에서는 이 자가 하던 게임이 리니지라고 보도했는데 인천지법 판결문을 통해 리니지 유저였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또한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일부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어를 그대로 쓰는 등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겉으로만 어른이지, 정신은 철없는 꼬마나 다를 것이 없다고 볼수가 있다.[5] 가해자(아이의 아버지) 친구의 동네 후배가 한번 일행을 따라 가해자의 집을 방문했다가 피자와 치킨을 잔뜩 시켜서 먹고 있는데, 깡마른 어린애가 들락날락하며 손가락을 빨며 쳐다보자 불편한 마음에 치킨을 조금 주려고 했더니 가해자가 애 버릇 없어진다며 자기가 뺏어먹었다고 한다.[6] 참고로 당시 법률상으로도 친권 여부와는 별개로 아동 학대 피해자로 의심되는 아이가 있을 경우 제3자가 고발이 가능했다. 경찰 측에서 명백히 직무유기를 한 셈.[7]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의 경비원과 피해자의 담임 교사는 피해자가 사정을 설명하고 애원했음에도 무시하고 돌려보내서 비난받은 것이지만, 이 행인의 경우에는 아이의 상처를 못 발견했을 수도 있고 피해자가 표현조차 못 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8] 장시간 구타와 감금을 당하면 아무리 멀쩡한 성인이라도 정신질환에 의해 망가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실제로도 섭식장애 및 등교거부 등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9]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소녀의 아버지가 할머니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할머니가 아이의 아버지를 찾으러 다녔다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