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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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역대 구정 목표
4. 명단
5. 역대 선거 결과
5.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5)
5.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8)
5.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2)
5.4. 200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004)
5.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6)
5.6. 2008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008)
5.7.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0)
5.8.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4)
5.9.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
5.10.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2)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강동구청장은 서울특별시 강동구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이다. 근무지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로 25 (성내동)에 있는 강동구청이다. 2급 공무원 상당의 대우를 받고, 4년마다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최대 3회까지 연임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총 15명의 구청장[1] 이 강동구정을 총괄했다.
민선 1~3기 김충환 구청장은 본래 민주당 소속이였으나 한나라당 창당 당시 잔류하였고, 2003년 12월 17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였다. 민선 3~4기 신동우 구청장은 2004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지만 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2007년 12월 사퇴하고[2] , 그 이후 민선 4~6기 이해식 구청장이 3선을 한 후 민선 7기 이정훈 구청장에 이어 현재의 민선 8기 이수희 구청장에 이른다. 여담으로 민선 구청장 4명 중 2명이나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 후 당선되었으며, 중도 사퇴하진 않았지만 이해식 전 구청장도 21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즉, 민선 1~6기 동안의 모든 전직 구청장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셈이다. 그러나 민선 7기 이정훈 구청장의 경우 아내 폭행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하다 탈당했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 낙선했다.
관선 강덕기 구청장의 경우 조순 서울시정에서 부시장을 맡아 조순 전 시장이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했을 때 서울시장 권한대행을 맡았으며, 관선 이원종 구청장의 경우 관선 충청북도지사, 서울특별시장, 민선 충청북도지사까지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 때 김기춘의 후임으로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이외에도 보수정당에서 6회 지선까지는 전부 서울특별시청 출신 관료를 공천했다. 반면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3회 지선부터 현재까지 쭉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출신자를 공천했다.
3. 역대 구정 목표[편집]
4. 명단[편집]
4.1. 과거 강동구가 속했던 지역의 장[편집]
4.2. 강동구청장[편집]
1975년부터 1979년까지 現 강동구 지역을 관리했던 사람에 대한 내용은 강남구청장 문서
, 1963년부터 1975년까지 現 강동구 지역을 관리했던 사람에 대한 내용은 성동구청 문서
참고하십시오.- 국회의원, 시·도지사, 차관급 이상의 직을 역임한 구청장에게는 볼드체 표시함.
5. 역대 선거 결과[편집]
5.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5)[편집]
1995년 6월 27일 선거, 7월 1일 취임. 서울시 전반적으로 여당 민자당이 패배하고 야당 민주당이 승리한 선거로, 강동구청장 선거 또한 민주당이 넉넉히 3만 표차로 승리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이 선거를 3파전이라고 평가(민자-민주-무소속)했으며, 이 세 후보 모두 관료 출신이다.
민주자유당에서는 관선 강동구청장을 지낸 반충남 후보를, 민주당에서는 고건 서울시장[27] 비서관과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출신인 김충환 후보를, 자민련에서는 12대 총선 후보였던 정정휴 후보를 공천했으며, 무소속 정안상 후보는 반충남 구정에서 강동구의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5.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8)[편집]
1998년 6월 4일 선거, 7월 1일 취임. 전국적으로 (연립)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승리했지만 강동구청장은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지난 선거와 같은 인물들끼리 또 맞붙었는데, 두 사람 모두 소속 정당이 뒤바뀌었다.
현직 구청장이었던 김충환 후보는 본래 민주당 소속이나 계속 민주당에 잔류해 한나라당 소속이 되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고,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민자당 강동구청장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관선 강동구청장 출신 반충남 후보를, 자민련에서는 강동구 갑 지구당위원장인 박태희 후보를 공천했다.
여담으로, 이 선거부터 보궐선거를 제외한 강동구청장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자는 출마하지 않았다. 또한 이 선거 이후로 거대 양당이 맞붙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의 공천으로 깨진다.
5.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2)[편집]
2002년 6월 13일[28] 선거, 7월 1일 취임.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한나라당이 우세한 선거였으며, 강동구청장 또한 한나라 김충환 구청장이 3선에 성공했다. 특이하게도, 옆 동네 강남구처럼 보수정당[29] 의 득표율이 증가(32-43-62)하고 있었으며, 민주당계 정당[30] 의 득표율도 감소(46-43-37)하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음 선거인 2004년 재보선과 4회 지방선거에서 정점을 찍고 기록이 깨진다.
한나라당에서는 현직 구청장인 김충환 구청장을, 새천년민주당에서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출신인 이금라 후보를 공천했다. 자민련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 후보도 나오지 않았다.
5.4. 200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004)[편집]
2004년 6월 5일 선거, 익일인 6월 6일 취임. 김충환 전 구청장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보궐선거를 실시했으며,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 신동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보궐선거인지라 투표율이 매우 낮았으며, 총 4곳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또한 치러져 정치권의 큰 관심은 끌지 못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서울시청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지낸 관료 출신 신동우 후보를, 열린우리당에서는 강동구의원과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을 지낸 이해식 후보[31] 를 공천했다. 당시
5.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6)[편집]
2006년 5월 31일 선거, 7월 1일 취임. 전국을 한나라당이 휩쓴 선거였기에 당시까지만 해도 보수의 텃밭이였던 강동구청장직도 한나라당에서 70%가 넘는 득표율로 가져갔다. 이 선거를 끝으로 강동구청장 선거에서의 보수정당 득표율 증가 현상도 중단되고, 보수정당의 구청장직 차지도 중단된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출신인 손석기 후보를, 한나라당에서는 현직 구청장인 신동우 구청장을 공천했다.
5.6. 2008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008)[편집]
2008년 6월 4일 선거, 익일인 6월 5일 취임. 신동우 전 구청장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32] 로 인해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13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의 후보인 이해식 후보가 당선되었다. 재보궐선거인지라 투표율이 현저히 낮았으며, 선거 시점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기도 한 것이 민주당 후보의 당선 원인으로 보인다.
통합민주당에서는 2004년 재보궐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이해식 전 서울시의원을, 한나라당에서는 서울시청 상수도사업본부장[33] 을 지낸 관료 출신인 박명현 후보를 공천했다. 이외에도 포항제철 상무이사 출신인 무소속 장종웅 후보도 출마했다.
5.7.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0)[편집]
2010년 6월 2일 선거, 7월 1일 취임. 전반적으로 민주당이 승리한 선거였으며, 강동구청장 선거에서도 이해식 구청장이 60%에 가까운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또한, 1회 지선 이후로 가장 투표율이 높은 선거이기도 하다[34] .
한나라당에서는 신동우 구청장 사퇴 시 강동구 부구청장(구청장 권한대행)을 지낸 서울시 관료 출신의 최용호 후보를, 민주당에서는 현직 이해식 구청장을 공천했다. 최 후보는 다음 지선에도 출마해서 한 번 더 고배를 마신다.
5.8.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4)[편집]
2014년 6월 4일 선거, 7월 1일 취임. 이해식 구청장이 지난 지선과 비슷한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새누리당의 최용호 후보도 2번 연속으로 고배를 마셨다. 다만 득표율이 1% 정도 오르긴 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지난 지선에서 출마한 최용호 후보를,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현직 이해식 구청장을 공천했다.
5.9.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편집]
2018년 6월 13일 선거, 7월 1일 취임.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선거로, 강동구청장 선거 또한 민주당의 이정훈 후보가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또한,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20년 만에 제3당에서 후보를 공천한 선거이기도 하다. 투표율 또한 1회 지선 이후로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출신인 이정훈 후보를, 자유한국당에서는 비례대표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임동규 후보를, 바른미래당에서는 바른정당 출신이자 강동구 을 당협위원장인 박홍기 후보를 공천했다.
5.10.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2)[편집]
2022년 6월 1일 선거, 7월 1일 취임.
고덕-강일지구 일대 쓰레기 소각장 관련 논란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1] 관선 10명, 민선 5명[2] A B C 지방이사관(2급) 대우[3] 관선의 경우 임명 정부명 기재, 민선의 경우 당선 시 기준. 당적 변동 사항은 각주로 기재.[4~5급] 초대부터 3대까지 지방사무관(5급), 4대부터 지방서기관(4급)[4급] 지방서기관(4급)[4] 비리 사건으로 사퇴.[5] 관선의 경우 임명 정부명 기재, 민선의 경우 당선 시 기준. 당적 변동 사항은 각주로 기재.[6] 강동구청의 전신인 그 천호출장소가 맞다.[7] 조순 시정[8] 문민정부[9] 관선(노태우 정부)과 민선(2~3기) 역임.
[[자유민주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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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
[10] 박근혜 정부[11] 문민정부 이원종 시정[12] 민선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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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동구청장 선거 출마로 사퇴.[14] 1995.12. 개혁신당과의 합당으로
창당
1997.11. 신한국당과의 합당으로
창당.[17~18대] 강동구 갑, 제18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역임.
→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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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퇴.[16] 이명박 시정[19대] 강동구 갑.
[[새누리당|
]]
[17]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퇴하였으나 선거에 출마하지 않음.[18] 오세훈 시정 1기[19] 오세훈 시정 1기[20] 2008.7. 으로 당명 변경.[21대] 강동구 을. [21] 2011.12.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으로 창당
2013.5. 으로 당명 변경
2014.3. 으로 흡수 합당.[22] 2015.12. 으로 당명 변경.[23] 2021.9.27. 더불어민주당 제명, 2021.9.28. 탈당계 제출. [24] 민선 5~6기. → → → → [25] 임기는 `26.6.까지. 최대 `34.6.까지 연임 가능.[26] 21대 총선에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현역이었던 진선미 의원과 맞붙기도 했다.[27] 관선[28]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이었다.[29] 민자당-한나라[30] 민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31] 이후 3선 구청장이 된다.[32] 예비후보 등록만 하고,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33] 신동우 전 구청장의 후임이기도 하다.[34] 이 기록은 다음 지선에서 깨진다.
[[자유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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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무소속
]]→
[10] 박근혜 정부[11] 문민정부 이원종 시정[12] 민선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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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동구청장 선거 출마로 사퇴.[14] 1995.12. 개혁신당과의 합당으로
창당
1997.11. 신한국당과의 합당으로
창당.[17~18대] 강동구 갑, 제18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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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1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퇴.[16] 이명박 시정[19대] 강동구 갑.
[[새누리당|
[17]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퇴하였으나 선거에 출마하지 않음.[18] 오세훈 시정 1기[19] 오세훈 시정 1기[20] 2008.7. 으로 당명 변경.[21대] 강동구 을. [21] 2011.12.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으로 창당
2013.5. 으로 당명 변경
2014.3. 으로 흡수 합당.[22] 2015.12. 으로 당명 변경.[23] 2021.9.27. 더불어민주당 제명, 2021.9.28. 탈당계 제출. [24] 민선 5~6기. → → → → [25] 임기는 `26.6.까지. 최대 `34.6.까지 연임 가능.[26] 21대 총선에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현역이었던 진선미 의원과 맞붙기도 했다.[27] 관선[28]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이었다.[29] 민자당-한나라[30] 민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31] 이후 3선 구청장이 된다.[32] 예비후보 등록만 하고,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33] 신동우 전 구청장의 후임이기도 하다.[34] 이 기록은 다음 지선에서 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