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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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충청북도지사는 충청북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충청북도청에서 근무한다.
종전의 민선 1기부터 민선 7기까지는 행정고시를 패스한 행정가 출신들만이 충청북도지사를 맡았으며, 이번 민선 8기 김영환은 최초의 의사 출신이다. 카운터 파트너 격인 충청남도지사가 민선 4기 이완구 전 지사를 시작으로 대권을 꿈꾸는 직업 정치인들이 줄줄이 당선된 것과 대조적이다.[1] 역대 충청북도지사 중에 그나마 정치적 중량감이 있었던 사람이 정우택 전 지사인데, 이 쪽은 충청북도지사 재선 실패 이후 여의도로 돌아가 지방정치보다 당권 등 중앙정치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데다[2]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후로는 실권자에서 원로 라인으로 접어들고,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면서 차기 총선 결과에 따라 국회의장 영전 가능성도 있는 등 완벽히 중앙 정치인으로 복귀했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참고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충청북도 관찰사는 1908년에 부임한 권봉수(權鳳洙)이다.
역대 민선 도지사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음성군(주병덕)-제천시(이원종)-진천군(정우택)[3] -충주시(이시종)-청주시[4] (김영환)으로, 아직까지 남부권(보은군-옥천군-영동군) 출신 충청북도지사는 나오지 않았다.[5] 특이하게도 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청주시장 출신이 한 명도 없고 민선 8기가 되어서야 청주시 출신 도지사만 배출했다.[6][7]
1.1. 충청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충청북도지사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방선거 8회만 시행되었다. 충청북도지사 선거는 의외로 적중 지역이 청주시 단 하나뿐이다. 다만 청주시는 2014년 청원군과 통합하여 4개 일반구로 개편된 상태라 현재의 청주시 행정 구역에 맞춰서 이전 선거 결과를 다 분석해야 할 듯 하다.[8]
이 중 옥천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친인 육영수의 고향이기도 하다.]은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일하게 100% 적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도지사 선거에서는 3번 빗나갔기 때문에 완전히 상반된 결과였다.
2. 목록[편집]
2.1. 일제강점기[편집]
충청북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충청북도장관을 충청북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충청북도장관을 포함했다. 이들은 모두 조선총독이 임명한 관선(官選) 충청북도지사이다.
2.2. 미군정[편집]
2.3. 대한민국[편집]
2.3.1. 관선 1기[편집]
2.3.2. 민선 1기[편집]
2.3.3. 관선 2기[편집]
2.3.4. 민선 2기[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1960년[편집]
3.2. 1995년[편집]
[충청북도지사 시군구별 개표 결과 보기]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은 각각 관선 충청북도지사 출신 후보를 내세웠고, 상대적으로 당세가 약한 민주당은 남부 3군의 터줏대감이었던 이용희 전 의원을 공천했다. 충청북도는 상대적으로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영향력이 약하고 보수 성향이 강한 만큼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의 2파전에 민주당의 인물론이 도전하는 양상이었는데, 이곳 역시 문민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자유민주연합 주병덕 후보가 낙승하였고, 이용희 후보가 김덕영 후보를 근소하게 제치고 2위를 기록하면서 작은 이변을 연출했다.
지역별로는 주병덕 후보가 충청북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청주권(청주시, 청원군)과 본인의 지역 기반인 중부 3군(진천군, 음성군, 괴산군)에서 큰 격차로 승리했고, 이용희 후보는 자신의 기반인 남부 3군(보은군, 옥천군, 영동)에서 승리했다. 반면 김덕영 후보는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충주시와 제천시에서 근소하게 승리하는 것에 그쳤고, 단양군에서는 이 지역 출신인 무소속 조남성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3.3. 1998년[편집]
3.4. 2002년[편집]
3.5. 2006년[편집]
3.6. 2010년[편집]
3.7. 2014년[편집]
이번 지방선거 최고의 접전 2. 충주시 출신 두 막역지우의 혈투라고 볼 수 있다. 이시종 후보가 청주권에서의 우위를 기반으로 윤진식 후보의 맹추격을 따돌렸다. 자세한 내용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화젯거리로.
3.8. 2018년[편집]
이시종 후보가 무려 30% 이상 차이로 압승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이시종의 8전 무패의 전설과 3선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실제로 여기는 개표 다음날 오전 12시 50분 경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에서 가장 먼저 당선이 확정되었다. 현직이던 이시종 전 지사가 여론조사에서나 출구조사에서나 무난히 당선이 예상 되었으며, 단 한 번도 상대 후보에게 밀리지 않고,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참고로 직전 지방선거에서 전연령층에게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여 사실상 승부가 일찍이 갈려버린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엔 아예 자유한국당 박경국 후보를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앞지르고, 충청북도지사 최초로 3선에 성공하며 8전 무패를 기록했다. 1995년 이래 단 한 번도 선거에 지지 않은 이시종 후보는 이번에도 큰 이변 없이 3선에 성공하였다.
특히 충청북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인 단양군에서 10% 이상의 차이로 이겼기에 주목을 받았다.[21] 한편 제일 적은 표차로 접전을 벌인 곳은 의외로 보은군이다. 이건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박경국이 보은군 토박이여서 그런 것이다.
3.9. 2022년[편집]
김영환 후보가 58.19%로 이겼는데 이는 울산광역시장 선거의 국민의힘 김두겸 후보 59.78%, 서울특별시장 선거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59.05%와 비슷한 수치다. 8회 지선에서 충청권의 보수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 충청북도는 유권자 절반이 모여 사는 청주시에서 더불어민주당 약우세로 나머지 지역의 보수세를 만회했었는데 청주시가 보수화되면서 균형추가 무너져버린 것.[22][23] 외려 청주시보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들어선 음성군, 진천군에서 새롭게 민주당세가 강해지고 있음이 대통령 선거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다.[24]
또한 김영환 후보의 압승으로 인해 줄투표 현상이 나타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25] 가장 대표적으로 여론조사에서 15%~25% 가량 쭉 앞서고 있었으며 주민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던 현직 이상천 전 제천시장이 낙선하는 대이변이 벌어졌다.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6.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충청북도지사[편집]
- 이원종 (1998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재임, 민선 2·3기, 1942년 4월 4일 출생, 82세)
- 정우택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재임, 민선 4기, 1953년 2월 18일 출생, 71세)
- 이시종 (2010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5-7기, 1947년 4월 18일 출생, 77세)
7. 도정 지표[편집]
8. 관련 문서[편집]
[1] 이유를 꼽자면 충청북도가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에 비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고 고위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2] 충청북도지사를 맡기 전에 재선 국회의원 및 해양수산부장관 경험이 있었지만, 한나라당에서 기반을 닦은 것에 아닌 자유민주연합 출신으로 이룬 것이라 그 당시 한나라당에는 다소 입지가 약한 비주류에 속하는 정치인이었다.[3] 사실 출생지는 부산광역시이나 본적이 진천군이며,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4] 출신지는 청주시지만 자란 곳은 괴산군이기에 괴산군이 고향의 개념은 괴산군이 더 가깝다.[5] 다만 남부권 출신은 이용희(옥천군), 구천서, 박경국(보은군) 등 도전한 사례가 있다.[6] 해당 선거에서는 출마한 두 후보가 모두 청주시 출신이었다. 다만 김영환 지사는 어린 시절을 보낸 괴산군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7] 청주시에 인구가 반절 가까이 거주하는 충청북도와 전주시에 인구가 반절 가까이 거주하여 인구 구조가 유사한 전라북도에서는 전주시장 출신 전라북도지사가 둘이나 나왔다.[8] 사실상 1회때 충주권과 남부권이 모두 빗나갔고 중부권은 모두 4회까지 100% 적중률을 보였으나 5회때 이시종 후보가 인구가 많은 청주시(옛 청원군 포함), 충주시 딱 2곳에서만 이기고 제천시랑 나머지 8개 군들에서 모두 정우택 후보가 승리하여 어긋나게 되었다.[9] 초대 충청북도장관.[10] 2대 충청북도장관.[11] 3대 장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12] 창씨개명으로 이토 야스아키/타이빈(伊藤泰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13] 창씨개명으로 마스나가 히로시(増永 弘)라는 이름으로 활동.[14] 선거 당시 당적.[15] 선거 당시 당적.[16] 1996.1.10.
[[자유민주연합|
]]
탈당.
1997.11.19.
입당.[17] 출신지는 부산이나 본적지와 정치적 기반지는 진천이다.[18] 2011.12.23.
[[민주통합당|
]]
으로 신설 합당.
2013.5.4.
[[민주당(2013년)|
]]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
으로 당명 변경.[19]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20] 출신지는 청주시이지만 유년 시절을 보낸 괴산군이 고향에 더 가깝다.[21] 다만 이시종이 과거 당적이 한나라당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22] 그것도 있겠지만, 노영민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비호감도 크게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양정철과 함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천거하여 결국에는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헌납한 원흉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예 노욕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중도층에서도 서울특별시와 청주시의 집 중 청주시의 집을 팔아서 민심이 좋지 않았다.[23] 노영민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있겠지만 대통령 선거와 청주시장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을 보면 청주시가 보수화되었다는 설명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24] 수도권도 마찬가지로 서울특별시의 보수화가 완연하고 오히려 경기도 외곽도시의 진보화가 이뤄졌다는 특징이 있다.[25] 다만 기초단체장은 중부 3개군(증평, 진천, 음성)과 옥천군은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했다.[26]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7] 보수 정당 후보.[28]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29] 보수 정당 후보.[30] 진보 정당 후보.[31] 제3지대 정당 후보.
[[자유민주연합|
탈당.
1997.11.19.
입당.[17] 출신지는 부산이나 본적지와 정치적 기반지는 진천이다.[18] 2011.12.23.
[[민주통합당|
으로 신설 합당.
2013.5.4.
[[민주당(2013년)|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으로 당명 변경.[19]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20] 출신지는 청주시이지만 유년 시절을 보낸 괴산군이 고향에 더 가깝다.[21] 다만 이시종이 과거 당적이 한나라당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22] 그것도 있겠지만, 노영민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비호감도 크게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양정철과 함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천거하여 결국에는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헌납한 원흉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예 노욕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중도층에서도 서울특별시와 청주시의 집 중 청주시의 집을 팔아서 민심이 좋지 않았다.[23] 노영민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있겠지만 대통령 선거와 청주시장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을 보면 청주시가 보수화되었다는 설명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24] 수도권도 마찬가지로 서울특별시의 보수화가 완연하고 오히려 경기도 외곽도시의 진보화가 이뤄졌다는 특징이 있다.[25] 다만 기초단체장은 중부 3개군(증평, 진천, 음성)과 옥천군은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했다.[26]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7] 보수 정당 후보.[28]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29] 보수 정당 후보.[30] 진보 정당 후보.[31]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