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혁/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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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 경력
1.1. 유소년 시절
1.2.1. 2014 시즌
1.2.2. 2015 시즌
1.2.3. 2016 시즌
1.2.4. 2017 시즌
1.2.5.1. 2018 시즌
1.2.5.2. 2019 시즌
1.2.6. 2019 시즌
2. 국가대표 경력


1. 클럽 경력[편집]



1.1. 유소년 시절[편집]


경상남도 남해군 출신으로, 남해해성고등학교 시절에는 풋살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활약을 바탕으로 연세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에 진학했으며, 연세대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동했다. 김도혁은 2012년 U리그 챔피언십에서 MVP를 차지하며 스카우터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 당시의 활약덕분에 프로로 진출하기도 전인 2013년에 열린 박지성 자선축구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1.2.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파일:인천 김도혁.jpg

''나를 프로에 데뷔시켜준 팀이다. 그것만으로도 평생 감사해야 한다. 내가 원래 뭐 하나 꽂히면 가는 성향이기는 하다. 이제 이 팀은 내 전부다. 많은 팬들이 좋아해주시고, 그 팬분들의 사랑을 져버릴 수는 없다."

2021년 2월 16일 스포츠조선과 인터뷰 中 #



1.2.1. 2014 시즌[편집]


대학 무대에서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김도혁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2014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홍익대에서 활약하던 김대중과 함께 입단이 확정되었으며 첫 시즌 등번호는 21번. 2013년부터 부분적 자유계약제를 도입하면서 드래프트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는데, 김도혁과 김대중은 그 중 자유계약으로 뽑힌 선수들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팀의 상황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지만, 8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 첫 출전 기회를 받은 후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렸다. 이후 FA컵에서 FC 서울을 상대로 출전, 1도움을 올리며 인천 입단 후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2군 위주로 출전한 FA컵 경기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바로 이어진 11라운드 서울전에도 선발로 나섰고, 이 시점부터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중용되었다.

여름 휴식기를 거쳐서 7월부터 리그가 재개됐는데, 빡빡한 일정 속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23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에 프로 데뷔골까지 터뜨리면서 한층 자신감이 오른 모습을 보여줬다. 딱히 부상도 당하지 않고 후반기 내내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했고 36라운드 상주 상무전에 시즌 2호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점 1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초반에는 동 포지션 경쟁자 중 오히려 조수철을 높게 평가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중반 이후로 확 치고 올라서면서 리그 전체에서 주목할만한 유망주로 성장했다. 높은 활동량과 좋은 수비 기여도, 그리고 공격적 재능이 합쳐진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자원으로 동 시기에 데뷔한 장은규, 이재성과 함께 자주 언급되었다. 해당 시즌에 포텐이 터진 진성욱과 더불어 인천의 미래를 책임질 자원으로 기대를 받았다.

2014 시즌 기록은 리그 26경기 2득점 2도움, FA컵 1경기 1도움.

1.2.2. 2015 시즌[편집]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소속팀 인천의 상황은 나빴다. 2015 시즌을 앞두고 재정난에 빠진 인천은 수많은 주축 선수들을 잃었고, 대체로 영입한 선수들은 이전 소속팀에서 거의 뛰지 못한 선수들 위주였다.[1] 이런 상황에서 김도혁은 프로 2년차였지만 팀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전 시즌까지 에이스로 활약한 이보가 중국으로 떠나면서 이보의 7번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7번은 이후 김도혁을 상징하는 등번호로 남게 된다. 거기에 프로 2년차의 어린 선수지만 주장 유현의 뒤를 받쳐줄 부주장으로 선임됐다.[2] 그만큼 팀에서 큰 기대를 걸고 있고, 신뢰를 받는다는 의미.

개막전 광주 FC전에 선발로 나섰고, 팀의 선취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2015 시즌 K리그 클래식의 첫 골이기도 했다.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은 수비 불안을 보이면서 2 : 2 무승부를 기록했다.

출발이 좋았기에 기대를 잔뜩 모았지만, 2라운드 수원전에는 막판에 공을 몰고 역주행을 하다가 뺏겨 실점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3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을 치르는 도중 부상까지 입으면서 한동안 스쿼드에 들지 못했다.

9라운드 대전 시티즌전에 교체명단으로 들어오면서 부상 복귀를 알렸고, 10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선발로 나서며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부상 이후로는 예전같지 못한 폼을 보여주는 중. 복귀 후에는 그래도 신뢰를 주기 위해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경기력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팀 성적도 오락가락하자 입지가 차츰 좁아졌다.

결국 시즌 중반부터는 김동석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원식의 자리가 굳건한 상황에서 그 위를 담당하는 역할도 김동석, 조수철이 가져가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특히 경기마다의 기복이 심해서 애매한 평가를 받고 있다. 조수철이 후반기에 팀과 갈등을 겪으면서 주전으로 복귀했지만 폼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1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에는 이효균 등과 함께 간만에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도움을 올리며 공격포인트도 기록했다. 그리고 FA컵에서는 신뢰를 얻고 중용받으면서 폼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활동량과 투지는 여전히 확실한 선수였고, 아직 나이도 젊기에 믿어보자는 시선도 많은 편. 그러나 10월 들어서 다시 부상을 당했고, FA컵 결승전에는 부상을 안고 어떻게든 출전했지만 그 여파로 크게 부진했다. 결승 이후에도 부상 여파를 떨쳐내지 못해 37라운드 대전전을 제외하면 출전하지 못했다. 2년차 징크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진하지는 않았지만,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진 못했던 시즌이었다. 향후 성장한 모습을 보여야 주전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을 듯.

2015 시즌 기록은 리그 23경기 1득점 1도움, FA컵 4경기 1득점.

1.2.3. 2016 시즌[편집]


팬 분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내년에도 축구 보러 와!

- 2016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여 잔류가 확정된 후 남긴 소감


지난 시즌에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김도훈 감독의 신임이 두터운지 시즌이 바뀐 뒤에도 부주장 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김동석이 빠지면 케빈 오리스, 마테이 요니치, 조병국, 김태수가 자주 완장을 찼다.[3] 팀 내에서의 위상을 고려한 명예직같은 느낌.

조수철, 김원식이 떠나면서 주전급 미드필더로 중용받고 있다. 수비적으로는 제법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패스의 질에는 기복이 있다. 종종 좋은 슈팅이나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기복이 심해서 새로 합류한 김태수에게 출전 시간을 빼앗기기도 했다.

잠시 입지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김동석이 부상을 당해 빠지고 윤상호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박세직과 더불어 자주 경기에 나서고 있다. 킥력이 많이 살아나서 공격력이 올라오고 있고, 덕분에 인천 팬들에게 지지도가 높아졌다. 12라운드 성남 FC전에 날카로운 롱패스로 케빈 오리스의 결승골을 만드는 기점 역할을 수행했고, 13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윤상호, 김동석보다 존재감이 있고 체력적 문제가 있던 김태수도 주전으로 밀기는 어려운지라 김도혁의 어깨가 무거워진 상태.

여름으로 들어와서는 페이스가 더욱 올라왔다. 21라운드 울산 현대전에는 첫 도움을 올렸다. 그리고 23라운드 성남, 24라운드 광주전에 연달아 득점을 기록하면서 물오른 폼을 선보였다. 인천이 부진에 빠지면서 중원 선수들이 죄다 비판에 직면했지만, 그 중 김도혁은 유일하게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정도로 홀로 인천 중원을 끌고 다니는 활약을 선보였다. 측면, 중원을 가리지 않고 마구 뛰어다니면서 미친 활약을 이어가는 중.

김도훈 감독이 경질되고 이기형 대행 체제가 시작된 후에도 중용받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면서 그야말로 노예처럼 뛰는 중. 중원의 한 자리는 무조건 김도혁에게 주고, 파트너 한 명과 수비적인 선수 하나를 조합하는 기용이 정석으로 굳어졌다. 시즌 마지막까지 좋은 폼을 유지하면서 끝내 팀의 잔류를 이끌었다. 부침을 이겨내고 큰 성장을 보여주면서 기억에 남을만한 시즌을 만든 한 해였다.

2016 시즌 기록은 리그 33경기 3득점 2도움, FA컵 3경기 1득점.

1.2.4.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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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부주장으로 뛰다가 2017 시즌에 드디어 주장으로 선임됐다. 부주장은 새로 영입된 문선민.

하지만 주장이 된 이후 다시 2015년처럼 불안한 폼을 유지하고 있다. 2016 시즌 말미의 좋은 모습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채 불안한 경기력이 나타나고 있다. 초반에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아서 그 여파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박세직이 입대했고, 이상협은 활용이 제한적이며, 윤상호도 주전으로는 못미더운 상황이 이어지자 한석종의 중원 파트너로 일단 주전으로 뛰고는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는 범용성이 높기도 하고, 고점도 높은 선수인 점은 분명하다. 13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에 1도움을 기록하며 첫 공격포인트를 쌓았지만, 얼마 후 15라운드 포항전을 마지막으로 부상을 당해 한동안 그라운드를 이탈했다.

부상이 장기화되던 도중, 결국 주장 교체가 결정됐다. 인천의 새 주장은 최종환이 됐으며, 부주장도 문선민에서 한석종으로 교체됐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주장이 된 첫 해부터 부상으로 시즌을 대부분 날린 것이 안타까울 따름. 여름에 올스타전 멤버로 선발되어 베트남에 가서 경기를 뛰었으나 여전히 회복이 덜 된 모습이었다. 폼도 상당히 안 좋아서 우려가 꽤나 컸다.

여름 이적시장이 끝난 후부터 2군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몸을 끌어올렸다. 8월까지도 결장이 이어지다가, 한석종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게 되자 30라운드 FC 서울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우려도 분명 있었지만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보여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기존의 에이스 한석종에 이어 김도혁도 폼을 회복했고, 이상협도 적응이 완료된 모습을 보여줘서 중원 구성 고민도 많이 해결됐다.

시즌 막판에는 다시 주전급 선수로 기용됐는데, 그 와중에 시즌 종료 후 아산 무궁화 입대가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피셜로 문선민의 이마까지 걸었으니 (...) 사실상 확정. 타이밍 상 본인도 변화가 필요했고, 군 문제는 빨리 해결할수록 좋으니 좋은 선택이라는 여론이 다수였다.

37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에 도움을 기록하면서 잔류를 위해 승점을 따야 하는 상황에 보탬이 됐고, 최종전 상주 상무전에는 쐐기골까지 넣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드디어 터진 시즌 1호골. 이 골과 함께 팀은 승리와 잔류를 확정지었고, 서포터즈를 향해 경례하고 큰 절을 올리면서 시즌을 마쳤다.

김도혁이 입대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인터뷰. 인천 팬들이 김도혁을 지지하고 아끼는 이유가 모두 드러난 인터뷰이기도 하다. 인천 팬들은 김도혁의 빠른 입대를 아쉬워하면서도 응원하는 분위기이다.

2017 시즌 기록은 리그 20경기 1득점 2도움.

1.2.5. 아산 무궁화 입대[편집]



1.2.5.1. 2018 시즌[편집]

첫 시즌 등번호로 23번을 받았다.

입대 초기에는 이명주, 주세종도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시점에서 같이 입대한 김도혁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산은 황인범 등을 적극 기용하면서 시즌 초를 보냈고, 이명주와 주세종의 적응 완료 후에는 이들이 주전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주세종의 국대 소집이 이뤄지는 등 공백이 생기자 김도혁은 박세직과 함께 로테이션 멤버로 경기를 소화했고, 서서히 폼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리고 아산 무궁화가 K리그2 1위를 확정하면서,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을 경험했다.

2018 시즌 기록은 리그 15경기 1득점, FA컵 2경기 출전.

1.2.5.2. 2019 시즌[편집]

두 번째 시즌에는 인천에서 달던 7번을 배정받았다. 이명주, 주세종과 함께 확실한 주전 미드필더로 선택되어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경기 감각을 꾸준히 유지하는 부분이 긍정적. 세트피스 상황에서 키커로도 종종 선택되고 있다. 전역일은 8월 12일.

아산에서 김도혁은 인천 시절보다 더 다양한 롤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패스 전개 면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선수 본인이 이명주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팁을 들었다고 한 영향도 있는 듯하다. 덕분에 박스 투 박스를 넘어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의 가치도 이전보다 올라가게 되었다. 아산의 불안한 팀 사정 상 다른 포지션에서도 종종 뛰었는데, 대부분은 왼발잡이의 이점을 살린 좌측면 풀백 내지는 윙어로의 변칙 기용이었다. 사실 선수 본인이 처음 입대를 신청할 때 경쟁률을 줄이기 위해 풀백 포지션에 지원하기도 했었던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예고된 수순. 전역 직전까지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고, 전역이 이루어지기 전에 말년 휴가를 아껴두었다가 사용하여 인천의 팀 훈련에 미리 참여했다.

2019 시즌 아산에서의 기록은 리그 21경기 1도움.

1.2.6. 2019 시즌[편집]


김도혁이 입대한 사이 남준재가 인천에 복귀했고, 그가 주장 완장에 이어 7번까지 달게 되면서 김도혁의 입지를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복잡한 이적 사가 끝에 남준재가 김도혁 합류 직전 팀을 떠나게 되면서 7번은 공석이 됐다.

당초 남준재와 트레이드되어 팀에 왔던 김호남이 7번을 희망했지만, 팀에서 7번은 김도혁의 번호라고 못박아두면서 37번을 선택하게 됐다. 8월 13일 공식적으로 인천에 복귀했고, 예상대로 7번을 다시 가져가게 됐다. 남준재 이탈 후 주장단 개편 관련해서도 주목도가 있었는데, 주장은 정산이 수행하게 되고 김도혁은 그 다음 순위로 종종 완장을 받는 사실상의 부주장이 됐다. 이와 별개로 팀의 실질적인 라커룸 리더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도 고참으로 영향력이 컸던 김승용이 수행했다.

복귀할 당시 인천 팬들에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주전 자리에 무혈입성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까지는 중원 뎁스가 상당히 불안했으나 이적시장을 통해 라시드 마하지, 장윤호가 들어왔고 이들이 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에 란레 케힌데스테판 무고사의 공존을 위해 4-4-2 포메이션을 채용하면서 중원에 기용될 수 있는 선수는 둘로 한정된 상황. 이우혁 역시 부상 복귀를 앞두고 있었기에 경쟁을 이겨내야만 출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구도였다. 왼발잡이이자 안정적이고 다재다능하다는 메리트를 최대한 살려야 할 듯.

복귀 후 첫 경기인 2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는 교체로 투입됐다. 이 날은 좌측 윙어로 배치됐는데, 좋은 볼 컨트롤과 활동량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이후 마하지의 부상으로 선발 미드필더로 올라섰다. 2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는 완델손의 폭풍 질주에 뚫리는 등 상당히 고생했고 5실점 패배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완델손을 제어해줘야 하는 역할은 곽해성이 해줘야 하는데 그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아 김도혁이 급하게 커버를 한 만큼 김도혁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28라운드 울산 현대전에도 선발로 나섰다. 코너킥으로 무고사의 골을 돕는 등 무승부 달성에 공헌했지만, 마하지가 복귀한 후에는 다시 로테이션을 겪게 됐다. 29라운드 서울전에 윙어로 선발 출전했으나, 본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서 크게 부진하는 바람에 입지가 다시 애매해졌다. 복귀 후의 폼이 마냥 나쁘지는 않지만, 아직 팀에 녹아들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이우혁까지 돌아왔고, 장윤호와의 호흡은 성향이 겹쳐서 서로에게 마이너스였다. 유상철 감독이 장윤호와 김도혁의 공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았고 결국 조커로 주로 기용했다.

한동안 로테이션 멤버에 머물렀으나, 장윤호의 부진이 길어지고 후반에 들어온 김도혁이 오히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김도혁을 선발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커졌다. 결국 37라운드 상주 상무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복귀했다. 명준재와 동선이 다소 겹치면서 전반에는 애매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후반에는 안정적인 배급을 바탕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장윤호보다 더 과감한 플레이와 데드볼에서의 강점을 어필하는 데 성공했고, 리더십도 갖춘 자원이라 최종전에도 선발 출전 가능성이 높다.

예상대로 38라운드 경남 FC 원정경기에 마하지와 함께 선발로 나섰다. 이 날 출전한 인천 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폼을 선보였는데,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를 막고 좋은 세트피스 처리로 기회도 창출했다. 결국 인천은 마지막 경기를 버텨내면서 잔류를 확정지었다.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내년에 한 번 더 해봅시다! 저희도 아챔 한 번 가봅시다!"[4]를 외치면서 시즌을 마무리. 김도혁 개인에게는 부침도 있었지만, 좋은 마무리를 보여주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 시즌이었다.

2019 시즌 인천에서의 기록은 리그 11경기 1도움.

1.2.7. 2020 시즌[편집]


새 시즌을 앞두고 김호남과 함께 부주장에 임명되었다. 팀 내에서의 입지가 두터운 선수인만큼 공식적으로 주장단에 복귀하게 된 셈.

프리시즌 내내 라시드 마하지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기용되었고, 개막전에도 함께 출전하였다. 팀이 수비에 전념하면서 전개 역할을 홀로 수행했는데, 박스 투 박스에 가까운 김도혁에게는 썩 쉽지 않은 역할이라 고전했다. 대신 수비 및 상대 견제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제 몫을 수행했다. 다만 공격이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 팀 차원에서 중원 조합은 고민해야 할 듯. 김도혁은 3라운드까지 계속 이런 모습을 보였고,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는데도 패스 성공률이 지나치게 낮은 점을 지적받기도 했다. 4라운드 포항전에서는 간만에 패스 능력이 살아난 모습을 보였으나 팀이 수비적으로 완전 무너졌고 김도혁 역시 이를 막지 못했다.

결국 계속 선발출전하던 김도혁은 5라운드부터 명단에서 제외되기 시작했다. 훈련에는 계속 참여하고 있으며 인천 관련 루머를 푸는 사람들도 김도혁은 부상이 아니라고 밝혔으니, 경쟁에서 밀려 제외된 셈. 그리고 대신 투입된 임은수이우혁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상황이 안 좋아졌다. 마하지 역시 부상에서 거의 회복된지라 주전 경쟁이 굉장히 험난해진 편. 게다가 다른 선수들이 김도혁에 비해 상당히 장신이라 피지컬적으로 밀리는 점도 본인에게는 불리한 환경.

한동안 명단에서 사라진데다 그 사이 경남 FC 이적설까지 돌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경남이 정혁 임대를 선택하면서 인천에 잔류했고, 이후 출전 시간을 다시 종종 부여받았다. FA컵 수원 FC와의 경기에서는 간만에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하지만, 결국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며 팀의 탈락으로 이어졌다. 이래저래 김도혁 개인에게는 영 잘 풀리지 않는 시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원 선수들 사이에서 줄부상이 이어지고, 주전으로 나오던 이우혁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결국 11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선발로 올라왔다. 문지환과 함께 중원으로 출전했는데, 본인 커리어 사상 최고의 경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전부터 살짝 템포가 늦긴 했어도 공수 양면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후반에 인천 선수 두 명이 퇴장당한 이후로는 오히려 더 각성해서 상주 선수들을 농락하는 드리블을 선보였다. 중원에서 세네명을 벗겨내는 모습을 보면 거의 리오넬 메시가 경기장에 온건지 헷갈릴 정도로 놀라운 플레이가 나왔다. 김도혁이 상대의 압박을 모조리 벗겨내면서 인천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공격 전개가 가능했고, 경기 막판까지 버틸 기회를 얻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 측면으로 침투하다가 정동윤이 준 롱패스를 잡고 원터치로 중앙으로 넘겨주며 지언학의 극적인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결국 최후의 순간 공격 포인트까지 기록하며 인천을 연패행진에서 구했고, 본인도 마음고생을 털어낸 경기였다.

임중용 대행 체제에서는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조성환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여전히 주전으로 나섰다. 폼이 확연히 올라온 모습을 보여줬고, 도통 상대가 공을 뺏지 못하는 기묘한 돌파와 키핑을 통해 팀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중. 전반기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인천 팬들조차 놀랐다. 2016 시즌보다도 더욱 폼이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

17라운드 수원 삼성전에는 프리킥을 준비하던 도중, 송시우가 기습적으로 침투하는 모습을 보고 센스 있게 프리킥을 전개했다. 결국 송시우가 돌파에 이어 득점에 성공하면서 시즌 2호 도움을 올렸다. 두 선수의 센스와 호흡이 빛났던 장면.

9월부터는 종종 주장 완장까지 차면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여름부터 올라온 폼이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중. 기어이 스플릿 첫 경기인 23라운드 성남전에는 중거리 슛으로 시즌 1호골을 터뜨렸고, 이어서 상대 수비의 실수를 노려 멀티골까지 기록했다. 6 : 0 승리의 1등공신이었던 셈.

성남전 이후로 도리어 팀이 부진에 빠졌는데, 그 와중에도 김도혁은 25라운드 강원전에 무고사의 만회골을 돕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26라운드 부산전에는 팀이 지고 있었고 잔류를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했기에 비교적 이른 시간인 55분에 공격수 송시우와 교체됐다. 인천이 다행히도 김대중, 정동윤의 연속 골을 앞세워 역전에 성공하면서 잔류 여부는 최종전에서 결정될 예정.

최종전 FC 서울전에도 선발로 출전했다. 경기를 앞두고 김남춘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경기장 분위기가 침체됐는데, 김도혁 개인의 활약은 좋았고 팀도 승리하면서 잔류를 확정지었지만 이와 별개로 논란을 일으켰다. 경기 종료 후 당시 코로나19 여파로 원정팬 입장 금지 규정이 있었는데, 경기장에서 인천 팬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 비판이 일어났다[5]. 자세한 내용은 논란 문단 참고. 경기 종료 후 사건에 대해 사과하였고, 후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얘기한 상대는 유럽 여행을 떠났을 당시 만난 지인이며 자신을 보러 왔기 때문에 외면하지 못했다고 해명하였다.

마지막 논란과 별개로 2020 시즌의 활약상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조성환 감독 부임 후 김준범 등과 주로 짝으로 출전하여 공격, 수비 모두에 큰 영향력을 보여줬다. 시즌 초에는 수비 역할에만 국한되어 제약이 많았고, 억제된 상황에서 본인의 활약도 크게 저하됐었다. 결국 이적설까지 돌며 원클럽맨으로 이어오던 커리어에 위기까지 찾아왔지만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내면서 오히려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2020 시즌 기록은 리그 22경기 2득점 3도움, FA컵 1경기 출전.

1.2.8. 2021 시즌[편집]


새 시즌을 앞두고 인천과 2년 재계약을 맺으며 잔류했다.# 그리고 공식 주장으로 선임되면서 2017년 이후 4년만에 주장으로 복귀했다.

인천이 적극적으로 보강을 이어갔지만 주장으로 선임된 만큼 주전 입지를 변함없이 유지했다. 1라운드 포항 원정에서 아길라르의 선제골을 도우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여줬다. 이후 주전 미드필더로 꾸준히 활약했고, 팀이 부진을 이어가던 도중 11라운드 성남 FC전에 네게바의 선취골을 도우면서 두 번째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4월 말부터 폼이 크게 올라 5월에도 맹활약을 이어갔다. 13라운드 강원 FC전에는 페널티박스를 넘자마자 과감하게 슛을 날려 선제골을 기록했고, 이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승점 3점을 획득했다. 이어서 15라운드 포항 스틸러스과의 홈경기에는 57분 오른쪽 측면에서 오재석의 패스를 받고 왼발로 때린 환상적인 발리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포항의 신진호가 프리킥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은 아쉽게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경기 종료 후 김도혁이 골을 넣을 당시 마지막 패스를 준 오재석의 위치가 오프사이드라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뒤늦게 오심으로 인정 되었다.#

시즌 중반부터는 선발과 교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여름에 정혁이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이전만큼의 확실한 존재감은 보여주지 못하는 중. 그래도 여전히 팀의 중요 선수로 대접받으며 모든 경기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26라운드 강원 FC전에서 선발 출전하며 인천 통산 20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그리고 28라운드 울산 현대전에 무고사의 추격골을 도우며 간만에 공격포인트를 쌓았으나, 아쉽게도 팀은 3 : 2로 패배했다.

시즌 막바지까지 주전으로 나섰고, 풀 로테이션을 선택한 최종전 광주 FC전에는 명단에서 빠졌지만 그 전까지는 확고한 스쿼드 멤버로 활약했다. 주장으로 선임됐지만 활약상 자체는 2020 시즌 후반기보다는 아쉬웠다. 그래도 팀의 중요 선수로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줬고, 정말 오랜만에 강등권 경쟁 없이 조기 잔류에 성공하면서 팀도 웃을 수 있었다.

2021 시즌 기록은 리그 34경기 2득점 3도움. 개인 커리어 통산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해였다.

1.2.9. 2022 시즌[편집]


1년만에 주장 자리를 오반석에게 다시 넘겼다. 팀에 고참 선수가 워낙 많았기에 주장 완장을 이들에게 넘긴 셈. 아산 시절 함께 합을 맞춘 이명주가 팀에 합류했는데, 중원 멤버가 너무 많아져서 김도혁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미드필더가 아닌 윙어로 출전할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더욱 다양한 예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개막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는 루머대로 좌측 윙어에 배치되며 선발로 출전했다. 김도혁 외에도 이강현이 센터백으로 나서는 등 상당히 파격적인 포메이션이 구성되었다. 2019년에 인천에서 잠시 윙어 역할을 수행한 적은 있었으나 부진하여 다시 미드필더로 돌아왔었고, 과거 풀백 등 측면 포지션도 경험은 했지만 주 포지션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우려와는 달리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정통 윙어라기보다는 적절히 중앙으로 들어오는 변칙 역할을 수행하여 존재감을 뽐냈다. 이명주가 교체로 빠진 후에는 아예 미드필더로 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경기 후 김도혁은 기자회견에서 "경기 전 코칭스태프들이 자신을 2선으로 올린다고 하여 당황스러웠으나, 어떻게든 팀의 믿음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여름과 이명주의 활약이 뛰어난지라 당분간 윙어로 출전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시즌 초반에는 주전 윙어로 활약했고, 은근 날카로운 침투와 활발한 움직임, 준수한 공격 재능으로 쏠쏠하게 활약했다. 9라운드 제주전, 10라운드 수원 FC전에는 두 경기 연속으로 이명주의 득점을 도우면서 물오른 모습도 보여줬다. 팀 전술의 핵심이라고 보는 팬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팀이 침체되기 시작한 5월 기준으로는 폼이 다소 떨어졌다. 정통 윙어는 아니다보니 파괴력에 한계가 있고, 활동량은 많지만 정통 윙어들처럼 상대 수비를 흔들어줄수는 없어서 아쉬움을 남기는 중. 3-5-2 포메이션의 중앙 미드필더로 나온 적도 있었지만 이 위치에서도 생각보다 애매한 모습을 보여줬다. 잘 하는 날에는 만능이지만 부진하는 날에는 전체적으로 불안한 김도혁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는 듯. 사실 인천은 윙어진 자체가 부족해서 김도혁을 대신할 윙어도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김도혁의 위상이 굳건해진 면도 있다.

5월 말부터는 다시 윙어로 복귀했고, 17라운드 강원 FC전에 무고사의 골을 도우면서 간만에 공격포인트를 쌓았다. 부지런히 움직여주면서 4 : 1 대승에 기여하며 폼을 다시 끌어올렸다. 18라운드 서울전 이후 부상을 당해 잠시 결장하다가 7월 말부터 다시 경기를 소화하는 중. 여름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엘리아스 아길라르, 이명주 등과 함께 3선에도 자주 기용되고 있다. 때마침 김보섭이 윙어 자리에서 포텐셜을 폭발시키며 자연스레 연쇄적인 위치 변동이 일어났다.

27라운드 대구 FC 원정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이명주와 호흡을 맞췄다. 후반 막판에 먼 포스트로 향한 아길라르의 코너킥을 에르난데스가 헤더로 연결하자 그대로 머리로 집어넣으며 역전골을 기록,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극장 승리를 따냈다. 미드필더로도 다시금 영향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호평을 받았다만, 이 날 막판에 윙백으로 잠시 뛰었을 때는 불안하다는 평도 받았다.

순연된 23라운드 서울전에는 윙어로 선발 출전했다. 후반 초반 김신진의 치명적인 실책을 놓치지 않고 공을 가로채 쐐기골을 터뜨렸다. 이후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는 듯한 골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팬들을 웃게 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소방관 팬을 위해서 본 셀레브레이션을 했다고 한다. 경기 종료 후 MOM으로도 선정되면서 활약을 인정받았다.

그 후로도 주로 윙어로 시즌을 소화했는데, 에르난데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김보섭이 최전방에 서고 본인이 좌측을 메우고 있다. 그러나 팀의 경기력이 크게 하락하면서 이래저래 애매해진 상황. 분전하고는 있지만 공격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투지를 불태우며 경기를 잘 소화했고, 인천이 창단 첫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면서 본인의 소원도 마침내 이뤄졌다. 변칙적인 포지션 기용에도 불구하고 팀의 중심으로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소기의 성과를 거둔 시즌이었다.

2022 시즌 기록은 리그 34경기 2득점 3도움. 공교롭게도 지난 시즌과 정확히 같은 기록을 세웠다.

1.2.10. 2023 시즌[편집]


시즌 시작 전에 2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원클럽맨으로의 행보를 이어나가게 됐다. 프리시즌부터 윙백으로 전향한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인천이 강윤구의 군 문제 등으로 인해 윙백 영입을 시도했으나 잘 풀리지 않자[6] 왼발잡이 멀티 플레이어인 김도혁을 믿어보기로 한 듯. 이 결정에 대해 인천 팬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윙어로 생각보다 잘 하긴 했지만 윙어와 윙백은 분명 다르며, 김도혁이 윙백으로 잠깐 나왔을 당시의 경기력은 별로였고 윙어로도 정통이 아닌 변칙 롤을 수행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1라운드 서울 원정경기에 좌측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공격을 전개할 때는 미드필더 출신다운 패스 능력이 돋보였으나 수비력은 불안했고, 스피드나 움직임도 썩 좋지 못했다. 결국 후반 막판 민경현과 교체되면서 시즌 첫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 후로도 윙백으로 나서고 있으나 폼이 영 올라오지 않는 중. 강윤구가 군 문제로 팀에 늦게 합류해서 몸이 안 올라왔고, 민경현도 지난 시즌 막판 부상의 여파로 부진하면서 계속 선발로 나오고는 있으나 김도혁의 활약상도 영 좋지 않았다. 특히 4라운드 광주 FC전 5 : 0 패배 이후로 김도혁 윙백 회의론이 더욱 커졌지만, 4월에도 계속 윙백으로 기용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7라운드 강원 FC전에 민경현이 선발로 출전하면서 시즌 처음으로 선발명단에서 제외됐다. 9라운드 울산 현대전에는 대규모 로테이션을 선택한 와중에 윙어로 간만에 나섰으나 그 자리에서도 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주전 경쟁에서 확 밀려나면서 간혹 교체 투입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12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뜬금없이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지만, 예상대로 또 부진하면서 팬들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다만 비판의 대상은 선수보다는 감독과 코치진 쪽이었는데, 김도혁을 주 포지션도 아닌 곳에 기용하면서 선수 본인까지도 헷갈리게 만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이 여파로 13라운드에는 명단 제외를 당했고, 강윤구, 민경현, 정동윤이 좌측 윙백 자리에 나서고 있다.

FA컵 16강 경남 FC전에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면서 간만에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이 날은 경남이 부진하기도 했지만 김도혁도 자신감이 오른 경기력을 보여줬고, 폴조세 음포쿠의 득점을 도우면서 시즌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간만에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여준 날.

이어진 15라운드 대구 FC 원정경기에서는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반 막판에 투입됐는데, 상대에게 끌려가던 도중 김대중의 헤더 패스를 받아 박스 안으로 침투했고 절묘한 패스로 홍시후의 골을 도와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었다. 리그에서는 2023년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셈. 미드필더 내지는 윙어로 돌아온 이후 전보다 훨씬 좋아진 경기력을 보여주며 다시금 기대를 모으고 있다.

6월 초에는 조커로 주로 나서다가 신진호의 부상 여파로 중원 조합을 실험하던 도중 이명주와 선발로 나서게 됐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후 확연히 달라진 집중력과 기량을 선보이며 팬들을 놀라게 하는 중.

20라운드 강원 FC전에 선발로 나섰고, 시작하자마자 4분만에 감각적인 스루패스로 김민석의 선제 결승골을 도왔다. 팀은 이 골을 지켜내면서 시즌 첫 연승을 달성. 간만에 전매특허인 측면에서의 기습적인 침투가 제대로 나왔다.

도혁 그리고 우리.. 투게더!

인천 측 걸개

22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장하며 기존 임중용의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231경기를 뛰어넘어 232경기를 기록하며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역대 최다 출장자가 되었다. 이 날은 문지환과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각자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100% 수행하면서 큰 인상을 남겼다. 결국 팀은 1위 울산을 2 : 1로 잡는 파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23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전에도 선발로 나섰다. 경기 내내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는데, 선제골 상황에서 개인기로 수비 전원을 속이고 킬패스를 날려 기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추가시간에는 낙하지점을 포착하여 오재석과의 경합에서 승리, 공을 따낸 후 중앙으로 패스를 주면서 또 한번 기점으로 활약했다. 직접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MOM급의 경기력이었고, 23라운드 베스트 11에도 들었다. 다만 경기 도중 자신이 마신 물병을 원정석 쪽으로 걷어찼다가 원정 관중들이 위협을 느끼는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상황을 인지한 후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게재했는데, 사과문은 깔끔하게 작성하면서 논란이 더 커지지는 않았다.

24라운드 FC 서울전에도 선발로 나섰다. 이번 경기에도 대전전에 이어 낙하지점을 포착한 후 공을 살려내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팬들을 감탄하게 만들었고, 경기 내내 탄탄한 활약을 이어가며 승리를 이끌었다. 최근 주전 미드필더로 출전하고 있는데 폼이 워낙 좋아서 신진호가 부상에서 복귀해도 김도혁이 선발로 나와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시즌 초에는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고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윙백 시절의 경험도 경기력에 도움이 됐는지, 측면에서의 전개나 상대 수비와의 경합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뛰어난 활약으로 팀 동료인 제르소와 함께 7월의 선수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5경기 3골 1도움으로 맹활약한 FC 서울나상호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

32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MOM으로 선정되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4차전 산둥 원정에 선발 출전해 후반 추가시간 감각적인 로빙슛으로 ACL 데뷔골을 터뜨렸으나 팀은 1:3으로 패배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36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홈 경기에서 0대0이 이어지던 후반 60분에 본인의 시즌 첫 골이자 선제골을 기록했다.

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김도혁청대.jpg
[7]

고등학교 시절 풋살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한 적이 있었다.

2014년에 한창 리그에서 유망주로 떠오를 당시, 이광종 감독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점검 차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한 바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종 명단에는 합류하지 못했고, 팀 동료 문상윤만이 최종 명단에 드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는데, 기복이 있어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이를 유지하지 못했기에 좋은 활약을 펼쳐도 국가대표급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1]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이 성공을 거두면서 도리어 인천은 반전의 기회를 맞이했다.[2] 인천에서 함께 뛰었던 전 동료 구본상 역시 프로 2년차에 부주장을 맡았었다.[3] 2016 시즌 초에는 김도혁이 완장을 차는 빈도도 높았지만, 시즌이 지나가면서 고참들이 차기 시작했다.[4] 결국 이 말을 하고 3년이 지난 뒤 인천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고, 김도혁은 이때까지 팀에 잔류해서 활약했다.[5] 본부석을 향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목격됐고, 이를 홈 팬들이 세레머니로 받아들이면서 논란이 됐다.[6] 본래 김상원을 영입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영장이 나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시작하면서 계약이 취소됐다. 인천은 2020년에도 정승용 영입을 시도했을 당시 똑같은 이유로 영입에 실패했었다.[7] 왼쪽의 인물은 같은팀 동료인 이태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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