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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광폭형 GEC 초퍼제어 전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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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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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4년에 3호선, 4호선 개통 목적으로 반입되어 2022년까지 운행한 서울교통공사 광폭형 GEC 초퍼제어 전동차에 대한 문서이다. 현재는 3호선을 끝으로 모든 차량이 운행을 종료했다. 2000호대는 2호선, 3000호대는 3호선, 4000호대는 4호선으로 분류한다.
2. 편성[편집]
3. 상세[편집]
3.1. 특징[편집]
개통 당시에는 서울 3호선과 서울 4호선 둘 다 이 열차를 사용했다. 같은 차량이라도 노선이 다르면 외장 도색이라도 다르게 하는 게 보통인데 이 경우는 한국철도공사 2030호대 전동차 구도색처럼 도색까지 완전히 같았다.[2] 객실 내부 인테리어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는데 3호선 차량은 출입문 하부 띠와 객실 바닥이 회색인 반면,[3] 4호선용 차량은 출입문 하부 띠와 객실 바닥이 녹색이었다. 당시 차호 체계로 보면 402~403편성이며, 이 차량들은 향후 3호선으로 이적하여 302~303편성으로 변경되었다.
영국 GEC사와의 제휴를 바탕으로 대우중공업이 제작했고, 제어기기를 비롯한 전장품이 영국 GEC 제품이어서 'GEC 초퍼'로 불린다. 120년 설계의 기반이 깔린 서구의 표준식 전동차를 바탕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유한요소법을 사용해 설계의 용이성을 높이고, 전체적인 국산화가 60%에 이르는 정도로 높아졌다. 견인전동기, 전동발전기 등은 도입 계약 당시 서울시, 서울지하철공사 측에서는 국산화 의지가 강했지만 의견 차가 었었고, 결국 10% 국산화가 이루어졌다.
1980년 5월 입찰 안내서 공개 이후 국제입찰 방식으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5개국이 입찰에 참여했고, 1982년 4월 영국 GEC사가 선정되어서 2호선 6량 15개 편성, 3호선 6량 25개 편성, 4호선 6량 27개 편성 등 402량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차량, 전기, 신호, 궤도, 통신, 기지 등 각 분야의 관련기술에 대해서도 합동계약을 체결했다.
GEC사와 제휴 관계인 대우중공업이 제작업체로 선정되어 차체, 대차를 생산하고 GEC사로부터 공급받은 사이리스터 초퍼제어기, 견인전동기, 제어기기, 공조장치 등 장비를 납품했다. 대차는 정비 효율화를 위해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의 에어스프링이 탑재된 볼스터 대차가 탑재되었다.
이후 VVVF 전동차 시대에도 GEC-알스톰과의 제휴관계가 그대로 유지되어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 2차 도입분, 서울 지하철 7호선 7000호대 전동차, 서울교통공사 8000호대 전동차 1차 도입분에 알스톰 GTO, 인천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 1차분에 알스톰 IGBT가 적용되고 KTX를 대우중공업에서 면허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특이사항으로는 운전석이 영국, 일본 자동차처럼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와는 다르게 철도차량에서는 통행방향 쪽에 운전대를 놓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서울교통공사 5~8호선의 전동차의 운전석도 오른쪽에 가깝게 위치했다. 미국 태생인 디젤전기 기관차도 우측통행임에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우측에 두기도 한다. 대한민국 내 일반 철도에 운행하고 있는 디젤전기 기관차도 우측에 운전석이 있다. 다만 통행은 철도법규상 좌측통행이다.[4] 반대로 런던 지하철은 좌측통행임에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좌측에 두기도 하며 또한 일본에서 제작한 초저항도 운전대를 좌측에 두었다.
기존의 전동차들과 달리 칸 사이의 연결통로 바닥이 돌출되지 않고 평평하다.
관련 기사: 「전동차의 새로운 차원-3.4호선 대우전동차」, 매일경제, 1984-10-25 (전단광고)
동력객차 우측 측면 방열구 또한 전부 2개이며 납작하다. 20xx, 30xx, 40xx호대 운전실 기준으로 우측 측면에 M칸에 한해서 1990년 이전 출고 차량에는 번호판 윗쪽에 방열구가 나란하게 2개가 있지만 1990년 이후 10량 증결분 차량부터는 없다.
3.2. 외형[편집]
일명 '광폭형'이라고 부르는 양 옆으로 퍼진 곡면 차체의 외형이 특징으로, 일반적인 전동차에 비해 좌, 우 4cm 정도 넓은 3,160mm이다. 실내에서 보면 그 특징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인상적인 디자인의 차량이라 마니아층도 존재한다. 또한 앞부분 디자인은 유럽의 전형적인 통근형 전동차 전두부를 한국식에 맞게 변형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다만 차량 전두부 유리창의 모습이 과거 도쿄메트로 치요다선에서 운행했던 오다큐 9000형 전동차와 비슷하게 생겼고, 후술할 비상 탈출문 작동 방식이 영단 지하철 6000계와 같은 걸 보면 일본의 요소가 여전히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다.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인 만큼 전면부 형상과 도색이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정되었다. 특히 전면 디자인의 경우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도시철도 차량 전면부의 사진, 카탈로그, 조감도 등을 적극적으로 입수해 분석 후 전면부 사진 6매와 차트 3매, 운전실 구조 사진 8매와 차트 1매를 추려내 1차로 임원회의에 보고, 다시 26건의 형상사진 가운데 7건을 집중 선정, 1982년 5월 28일에 대우중공업에 통보, 다시 대우중공업 측에서는 전면부 형상 확대사진과 기존 1~2호선 차량과 비교, 워싱턴 메트로나 홍콩 MTR 차량[5] 전면 설계자들과도 협의해서 자문을 받았다.
이와 같은 자문 내용, 수집자료를 바탕으로 지하철공사의 요구 사항까지 전반적으로 참고해 1982년 8월 14일 참고자료와 설명서를 서지공 측에 제출, 이러한 자료들을 사장 및 임원회의 → 1982년 8월 26일 공사 직원을 대상으로 전면부 형상 공모안에 대한 투표 실시 → 다시 전문가의 자문 절차를 거쳐 몇 가지 최종 개선사항이 제시된다.
- 전면부 문을 좁히고 유리는 넣지 않는다.
- 운전실의 창은 아래로 길게 설계
- 후면 출입문의 프레임을 그대로 두되 안쪽으로 들어간 문에 색상을 넣는다.
- 지하철 마크를 전면에 배치한다.
- 작성된 조감도의 다른 색상도 연구해 볼 것
이후 외국 경험의 예시 등 일부 요소를 반영해 1982년 12월 2일 완성된 최종 조감도를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 측에 제시해 임원회의, 서울특별시장을 거쳐 원안대로 최종 확정되었다. 운전실 정면에는 수동 기계식의 비상탈출문이 설치되었고, 승무원에게 편리하도록 운전실 배치와 색상도 조정되었다. 비상탈출문을 열려면 운전실에서 손잡이를 끼우고 수십 차례 돌려야 비상문이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7]
사용법은 1) 개방 핸들을 뽑아 문 옆에 있는 나사에 끼우고 2) 엄청난 시간을 들여 돌려준 뒤 3) 비상문이 내려왔다 싶으면 비상문 슬라이드를 내려서 선로에 닿게 하여 탈출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요즘 신형 차량들보다는 당연히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구조였다.
개조 이전 MTR 메트로카멜 직류형 전동차와 전조등이 매우 유사하다.
3.3. 도색[편집]
서구적인 곡선과 조화되는 현대적인 감각과 산뜻하고 쾌적한 미적감각을 고려하여 선정했다.
특히 도색 과정에서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고를 유도하여 홍익대학교 한도룡(韓道龍) 교수에게 자문을, 공간사 그래픽디자인 연구실장 박기태(朴基太) 실장과도 자문과 작업을 의뢰했다. 이후 박기태 실장 주도로 각종 문헌과 지하철 도면의 수집을 통한 사례 조사, 건축설비 디자인에 대한 자료수집, 실용성, 주변 여건 등의 학술연구 조사, 색상에 따른 색채 연구, 실시디자인 등을 연구해 1983년 5월 28일 여의도 라이프빌딩 지하철공사 직원실에서 1차 도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박 실장은 전면부 및 측면부 도색 도면 89매를 작성하여 기본적인 자료 수집내용과 지하철 색상의 추세를 발표하고 이어 4차례에 걸친 회의를 거쳐 현재의 도색을 최종 확정했다.
이 파랑(메인컬러)+빨강(서브컬러) 도색은 이후 한국철도공사 3000호대 전동차(1차분),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1~2차분) 도색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자는 대한민국 철도청이 서울지하철공사에 도색 원안을 제출 후 검토를 거쳐 적용되었다. 2000년대 중반 도색을 변경할 시에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 바 있다. 후자는 기존 4호선에서 운행하던 광폭형 GEC 차량을 대체하기 위해 도색을 비슷하게 맞춰서 도입했다. 노선색에 맞게 도색이 변경되어 도입된 서울교통공사 3000호대 VVVF 전동차와 달리,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 4차분(교직겸용차 대차분)은 도색 변경 없이 1~2차분의 도색을 계속 계승했다. 3차분(진접선 도입분)과 5차분(직류전용차 대차분)은 빨간색의 띠 도색을 삭제했다.
3.4. 성능[편집]
전력 변환 장치는 GEC의 사이리스터 초퍼 제어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앞서 도입된 2호선의 차량들이 저항제어 방식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3호선 차량의 도입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초퍼 제어를 채용하게 된다. 열차 내의 불필요한 발열과 가속 충격이 완화되는 것은 물론, 최대 30퍼센트까지 전력소모가 감축되었다. 견인전동기 출력은 162kW로, 동급의 멜코 초퍼 전동차의 150kW에 비해 조금 높다. ATC 방식의 신호장비도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제품이 사용되었다.
10량 편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초기에 6량 편성이었지만 4호선은 1990년부터, 3호선은 1992년부터 10량으로 자연스럽게 증량했다. 최대 승객하중은 량당 20톤까지 고려했으며 광폭차체로 실내 폭이 넓어 약간의 혼잡도 개선이 가능하다. 기동가속도 3.0km/h/s, 상용감속도 3.5km/h/s를 확보, 정차 시간에는 약 30초가 걸린다.
동력차량인 M차와 M1차량에는 정차 시 초퍼 제어를 활용한 회생제동이 작동한다. 무동력차는 순수 공기제동만으로 정차한다.
아울러 이 차량은 도입할 때부터 2호선은 2003년까지, 3호선은 2005년까지는 제동완해음 소리가 컸으나 지금은 소음기를 달아서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는다.
퇴역 직전에는 대한민국에서 부산 지하철 1호선 1000호대 전동차 초퍼제어 차량과 더불어 피스톤식 공기압축기(컴프레서)를 장착하고 있는 둘 뿐인 전동차였다. 노후 전동차를 하나둘씩 폐차하거나 중검수를 거쳐 스크류식 공기압축기로 교체하면서 부산지하철 1호선 초퍼 차량과 이 차량밖에 남지 않았었다.
이 차량에 장착한 공기압축기의 모델명은 3VC-75C이며, 2호선의 GEC 초퍼 차량에도 장착했다. 하지만 2호선은 2008년부로 전 차량의 공기압축기를 저소음 모델로 교체했다. 그 이유는 지상 구간이 많아 컴프레서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만 초기 도입분 276~277편성은 교체되지 않고 폐차되었고, 3호선의 GEC 초퍼 차량은 교체 없이 계속 사용했다.
정차, 발차할 때 중저음이 매우 선명히 들린다.
3.5. 삼각형 스프링 손잡이[편집]
가죽 손잡이에 비해 내구성이 좋으며, 360도 방향 전환이 가능하여 승객이 어느 방향으로든 쥘 수 있게끔 만든 획기적인 손잡이다. 다만 가죽손잡이 대비 소음이 있고 단가가 비싼 편이다.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한 때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의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던 검은색 삼각형 스프링 손잡이[8] 는 이 전동차와 함께 탄생한 물건이었다. 이전까지 한국에 없었던 스프링 손잡이를 3~4호선의 전동차 도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다. 한국형 표준 전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원형 스프링 손잡이도 이 손잡이에서 갈라져 나왔다. 손잡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동차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의 삼각형 손잡이와 영국의 공모양 손잡이를 적절히 섞어 만들었으며, 영국풍 인테리어에 어울리게끔 삼각형 손잡이를 달고자 했던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와 대우중공업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들어간 손잡이다. 대우중공업에서 1984년에 이 스프링 손잡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전의 한국 열차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가죽 + 원형 손잡이 위주로 장착했다. 초저항 뿐만 아니라 서울지하철 2호선에 처음 도입한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들도 도입 당시에는 전부 원형 손잡이를 장착했다. 그러던 1983년, 영단 지하철의 6000계 전동차 등지에서 쓰이던 가죽 + 삼각형 손잡이가 한국에 막 넘어오기 시작했다.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 일부에 시범 도입[9] 했다가 부산 지하철 1호선 전동차부터 본격적으로 삼각형 손잡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삼각형 손잡이는 원형 손잡이에 비해 잡고 있기 편해서 대체로 승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는 3~4호선에 도입할 전동차에도 삼각형 손잡이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GEC가 낙찰되고 영국풍 디자인으로 열차를 도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영국의 런던 지하철 등지에서 운행하던 전동차에는 이미 공모양 손잡이가 있었고, 홍콩 MTR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 공모양 스프링 손잡이를 채택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의 도시철도에는 스프링 손잡이가 매우 흔하다. 홍콩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있었으며, 차내를 개조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현재는 홍콩 MTR 갤러리에 전시된 열차 목업에서 잡아볼 수 있다(까우룽역에 있으며, 주말과 공휴일에만 개장한다). 하지만, 공모양 손잡이를 그대로 도입하자니 삼각형 손잡이에 비해 편의성이 떨어져 선뜻 도입할 수가 없었다. 공모양 손잡이는 쥐는 자세가 불편했으며, 악력이 좋지 않은 이상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놓치기 십상이었다. 반대로 일본식 가죽 + 삼각형 손잡이를 그대로 달기에는 실내 인테리어에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공모양 스프링 손잡이에서 공을 삼각형으로 바꾸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리하여 1984년 광폭형 초퍼차량과 나란히 세상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손잡이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끔 변형하면서 영국과 일본의 요소가 적절히 섞인 손잡이가 탄생한 것이다. 이 삼각형 스프링 손잡이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던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는 1호선 초저항을 제외한 전 차량에 해당 손잡이를 장착했는데, 2호선 저항, 초퍼제어 차량의 경우 3,4호선이 개통 이후 발주한 1989년산 증차분을 시작으로 1993년 상반기까지 걸쳐 진행된 2호선 전 차량 10량화 증결 사업 기간 동안 기존에 운행하던 초기형 저항, 초퍼제어 차량에 있던 가죽 손잡이들도 전부 뽑아버리고 삼각형 스프링 손잡이로 교체했다. 마찬가지로 동시기인 1989년에 도입한 1호선 저항제어 10량화 증결분 및 이후에 도입된 1호선, 4호선의 VVVF 전동차에도 같은 손잡이를 도입했으며, 더 나아가 서울지하철공사 외에도 3호선 K차, CDC, 대구 지하철 1호선에도 같은 손잡이가 도입 되었다. 1호선 VVVF 전동차 중 2002년산(107~110편성)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압 돌기가 나있는 지압손잡이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서울도시철도공사의 5~8호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죽 손잡이였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에선 2005년 2호선 VVVF 전동차를 기점으로 더 이상 스프링 손잡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지방의 도시철도에서는 스프링 손잡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부산도시철도 1~2호선은 불연재 개조 전에는 서울의 5~8호선 같은 가죽 손잡이였으나, 내장재 개조 이후 반달형 스프링 모양으로 바꾸었다. 3호선은 처음부터 짧은 스프링에 삼각형 모양으로 출고를 했다. 하지만 4호선을 기점으로 다시 가죽 손잡이가 나온다. 한국의 다양한 전동차에 삼각형, 혹은 반원 모양의 스프링 손잡이가 전국 각지로 널리 퍼졌다. 한편 손잡이의 기원지인 서울에서는 2000년대 이후 공항철도주식회사 2000호대 전동차를 제외하고는 스프링 손잡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사실 스프링 손잡이의 진정한 기원지인 영국 런던 지하철에서도 신형 전동차인 런던 지하철 S형 전동차를 필두로는 가죽 손잡이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동아시아에서의 일반적인 가죽끈 + 삼각형 플라스틱 손잡이 조합이 아닌 가죽끈 그 자체가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형태이다.[10]
4. 분류[편집]
도입 연식 및 창문 사양에 따라 5차로 분류된다.
5. 운행 노선[편집]
2022년 기준 3호선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운행하던 346편성이 9월 30일 퇴역하면서 모든 광폭형 GEC 초퍼제어 전동차와 그의 개조열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호선 열차는 모두 퇴역하여 폐차되었다. 4호선은 오래 전에 2~3호선으로 이적해서 없다.
5.1. 2호선[편집]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3호선 이적분: 276~284편성 (변경 전 339~347편성)
- 1985년~1993년 차호 기준으로 1993년~1995년 차호 개정 당시 2호선으로 이적했다. 즉, 3호선 운행 당시 차호 개정을 하지 않고 2호선으로 이적 후 차호 개정이 이루어졌다. 참고로 당시 3호선 편성은 316편성부터 시작했다. 2호선 직각형 GEC 초퍼 1차분이 301~315편성으로 할당받았기 때문이다. 3호선과 4호선에서 운행하던 광폭형 GEC 차량이 2호선으로 이적한 후에야 변경되었다.
- 4호선 이적분: 285~292편성 (변경 전 428~435편성)
서울 지하철 3호선과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운행되던 차량을 서울 지하철 2호선으로 이적해 운행했었던 차량이다. 기존 차량과는 달리 광폭형 차체가 적용되어 있어 "배불뚝이 초퍼"로도 불린다. 3~4호선에서 운행될 때는 ATC 대응 전동차였지만, 2호선으로 넘어오면서 ATS로 개조되었다.
초기에는 잠깐 동안 기존의 파란색으로 운행하기도 했으나[11] , 얼마 가지 않아 전부 2호선의 색상인 녹색으로 재도색되었다. 단, 좌석은 3~4호선에서 사용하던 파란색 직물 시트(가연재)를 그대로 사용했으며, 2004~2005년에 (1985년산을 포함한) 전 편성을 대상으로 내장재를 개조하면서 스테인리스 시트(불연재)로 교체되었다.
1985년식 차량인 277편성은 3~4호선 이적분이 같이 조성되어 있었다.
- 3호선 이적분(1차분): 1985년산 6량 (차호 개정 전 340편성)
- 4호선 이적분(1차분): 1985년산 2량 (편성 소멸 된 423편성의 4246호, 4546호 → 차호 개정 후 2377호~2477호)
- 3호선 증차분(5차분): 1993년산 2량 (10량화에 따른 증차분, 차호 개정 전 340편성)
5.2. 3호선[편집]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3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85년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 개통과 함께 운행을 시작한 전동차로, 도입 당시 3호선 전동차는 316편성부터, 4호선 전동차는 401편성부터 차호가 부여되었다. 당시 차호는 316편성은 3030호대, 401편성은 4000호대였다. 이는 2호선 GEC 초퍼 전동차가 301~315편성으로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에 341~342편성도 2호선 GEC 초퍼 전동차로 6량으로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4호선 이용객 급증으로 인해 추후 4호선 436~441편성이 6량에서 10량 도입으로 변경이 되면서 341~342편성은 251~252편성(현 212~213편성) MELCO 초퍼 전동차 도입으로 대체되었다.
1993~1995년 4호선 4000호대 GEC 초퍼 전동차가 2~3호선으로 이적했다. 이와 함께 2호선 GEC 초퍼 전동차도 261~275편성으로 변경되었다.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마지막 광폭형 GEC 전동차들이며 동시에 수도권 최후의 전기자 초퍼제어 전동차였다. 의정부 경전철은 IGBT 초퍼제어를 사용하고 있다.
위에 서술했듯 2023년 1월을 끝으로 마지막까지 남았던 334, 346편성이 폐차 및 반출 처리가 되어 GEC 열차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3. 4호선[편집]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 4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84~1985년 서울 지하철 4호선 개통 당시부터, 서울 지하철 4호선 - 과천선 - 안산선 직결로 수도권 전철 4호선이 만들어진 직후까지 운행했다. 직결된 후에도 한동안 이 차량은 당고개 ~ 사당 구간을 운행했다.
개통 이후 1993년 8월까지는 4호선에 광폭형 GEC 초퍼 열차만 운행했다. 1994년 4월 과천선 개통 직후 한꺼번에 이적한 게 아니라 순서대로 이적해서 1993~1995년에 한동안 4호선에 VVVF 전동차와 같이 운행했다. 그러다 1995년 5월 기존에 남아있던 열차들이 3호선으로 이적되면서 4호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4호선에서 8년에서 10년 남짓 운행을 했던 셈이다. 4호선 GEC 초퍼 열차는 1993년 8월부터 1995년 5월까지 2~3호선으로 이적했다.
현재는 모두 2~3호선으로 이적 후 차량 번호도 대거 바뀌었으며 이 열차들도 내구 연한이 되어서 모두 폐차되었다.
6. 도입 역사[편집]
6.1. 1차분 (1984~1985)[편집]
1984년 대우중공업에서 제작되어 의왕공장 → 경부선 → 용산삼각선 → 경원선 → 쌍용양회선 → 창동차량사업소 경로로 반입되었다.
1984년 10월 창동기지, 1985년 2월 지축기지 완공을 기점으로 초기 개통분으로 4호선 창동기지에 6량 27개 편성이, 3호선 지축기지와 양재역에 6량 25개 편성이 투입되어 운행을 개시했다. 이미 401~402편성(3호선 이적 후 301~302편성)은 1984년 11월 5일 반입되었고, 403~404편성(3호선 이적 후 303~304편성)은 1984년 11월 6일 반입되었다.
3호선의 경우 지축기지와 양재역에 반입되기 전 1985년 2월 25일부터 1985년 8월 23일까지 4호선 창동기지에 우선 도입되었다. 401~414편성은 1984년 반입, 415~427편성 및 3호선 전 편성은 1985년에 도입되었다.
객실 내부 출입문에 손잡이는 있었다. 막혀 있었지만 내장재 개조 혹은 시트만 교체하면서 전부 뚫어놓았다.
6.2. 2차분 (1989)[편집]
1989년 대우중공업에서 제작되어 의왕공장 → 경부선 → 용산삼각선 → 경원선 → 쌍용양회선 → 창동차량사업소 경로로 반입되었다.
2차분 차량의 특징은 출입문 개폐 속도가 1차분 차량에 비해서 다소 느려졌다는 특징이 있다.
1989년 6량 증차분을 시작으로 1991년까지 계속 제작된 차량에 해당한다. 1989년에 428~434편성에 해당되는 6량 7개 편성이 추가 도입되었으며 고무창틀 출입문과 개폐식 창문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출입문 내부에 손잡이가 사라졌다.
6.3. 3차분 (1990~1991)[편집]
1990년 대우중공업에서 제작되어 의왕공장 → 경부선 → 용산삼각선 → 경원선 → 쌍용양회선 → 창동차량사업소 경로로 반입되었다.
3차분 차량의 특징은 2차분과 동일하지만 출입문 창틀과 창문 창틀 모두 쇠창틀로 바뀌었고 객실 내부 출입문에 손잡이가 없다.
1990년에 435~441편성에 해당되는 6량 1개 편성과 10량 5개 편성, 8량 1개 편성이 추가 도입되었고 1991년에 10량 증결분 2량 1개 편성이 추가 도입되었으며 출입문 창틀과 창문 창틀 모두 고무틀에서 금색 쇠창틀로 변경되었다.
6.4. 4차분 (1990~1992)[편집]
2~3차분과 동일하게 4차분 차량의 특징도 출입문 개폐 속도가 1차분 차량에 비해서 다소 느려졌다는 특징이 있다. 4차분에도 또한 객실 내부 출입문에 손잡이가 없다. 단, 4차분부터는 운전실 기준으로 오른쪽 측면으로 M칸 번호판 윗쪽에 방열구가 없어졌다. 출입문 창틀과 창문 창틀 모두 고무틀 창틀로 환원되었다.
6.5. 5차분 (1993)[편집]
3호선 26개 편성 (316~341편성)의 경우, 증결을 위해 4호선 10량 8개 편성 (416~423편성=80량)이 이적되었으며 부수 객차 24량 (M차 4량 + T차 20량)이 신규 도입되었다. 1993년에 도입된 부수 객차는 모두 대우중공업에서 제작했으며 2호선 276~278편성과 3호선 323, 328~329, 336, 338~340편성에 증결되었다. 276편성과 278편성의 경우, 4호선 이적분을 편입하지 않고 1993년 도입분 4량으로 10량 증결했다.
또한 2, 4차분과 동일하게 창문, 출입문 창틀 또한 고무틀 창틀로 계승했으며 출입문 내부에 손잡이가 없다.
7. 다른 노선으로의 이적 (1993~1995)[편집]
- 416~423편성의 운전실 칸(Tc)은 무동력차(T)로 개조되어 316~318, 320, 322, 327, 332~333편성에 편입되면서 편성 자체가 소멸되었다. 변경 전 316~338편성은 4호선 416~423편성과 1993년 증결분으로 10량화가 이루어지자 순서가 316~333편성과 336~340편성으로 조성되면서 다소 뒤섞이게 되었다.
- 339~347편성이 2호선으로 이적하면서 이 때 334~335편성은 공백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436~441편성이 3호선으로 이적하면서 이 때 439~440편성이 공백이었던 334~335편성으로 변경되었다.
이와 더불어 차적 정리도 실시되어 2호선 GEC 초퍼제어 전동차들이 261~292편성으로 개정되면서, 4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가 3호선으로 이적하면서 301~348편성으로 차호가 개정되어 차호가 비로소 정리되었다.
3호선 같은 경우는 충무로역 연결선을 통해서 바로 지축차량사업소로 이적했지만 2호선 같은 경우는 4호선 남태령역을 지나 과천선을 통해 경부선을 경유하여 1호선 서울역까지 기관차로 회송 후 신설동역 연결선을 통해서 군자차량사업소로 이적했다. 이적 당시 이미 쌍용양회선이 철거되어서 과천선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직류 차량이어서 교류 구간은 기관차로 회송할 수밖에 없었다. 이적 기간을 단계별로 길게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편성당 갑종 및 을종 회송은 그리 간단하지도 않다. 게다가 타 노선을 경유할 시 빈 시간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빈 시간이 대부분 영업 종료 시간이며 또한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회송 작업을 해야 하니 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2호선 이적 작업이 이러했다.
특히 2호선으로 이적된 열차들은 초기에는 도색 변경 없이 그대로 운행 하다가 노선 혼동을 막기 위하여 추후에 노선 색상에 맞게 도색을 변경했다. 특히 교대역, 을지로3가역에서 환승 시 똑같은 열차 때문에 혼동이 있었다. 또한 2호선은 ATS 신호 방식을 사용해서 신호 방식을 ATC에서 ATS로 개조했다.
다만 3~4호선 전동차의 2~3호선 이적의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3호선의 경우에는 4호선과 동일한 전동차를 사용했고, 신호 방식도 ATC로 동일해 개조 없이 그대로 이적시킨 반면, 2호선의 경우에는 ATS 신호 방식을 사용하므로 신호 방식을 ATS로 개조하고, 도색도 2호선 도색으로 재도색을 했다. 다만, 재도색 시기가 지연되어 몇 달 간은 3~4호선 전동차들이 도색 변경 없이 그대로 2호선에서 운행된 바 있었다.
VVVF 인버터 열차와 GEC 초퍼는 제어열차 전장품과 장비가 서로 달라 아예 하나의 정비 편의를 위해 이적했다. 다만 4호선 차량기지는 중정비가 불가해서 3호선 차량기지로 이동하여 중정비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제어장비도 서로 다를텐데 일산선 개통 전까지 중정비를 받았던 것은 1993년에 VVVF 인버터 열차가 잠시동안 3호선을 운행할 때 장비를 이미 구비했기 때문이다.
구 4호선의 초기 도입 편성들 중 일부는 2009년 폐차될 때까지 전국 도시철도 차량 중 아예 내장재 교체를 하지 않은 유일한 차량으로 남았다. 단, 1990년대 이후 10량화 증비분은 내장재 교체 사업에 해당된다. 연식이 비슷한 한국철도공사의 저항 무동력 객차나 2호선의 초기에 도입된 구형 차량들도 전면적인 의자 교체는 시행했으나 3호선으로 이적한 이 편성들은 일부 차량만 더 밝은 파랑색을 띄는 유리섬유 시트로 교체되었다.
7.1. 퇴역과 폐차[편집]
2009~2010년에 1984~1985년 도입분이 대거 폐차되면서 대부분 신형 VVVF 열차로 대체되면서 3호선에서 운행 중이었던 초퍼제어 전동차는 희귀해졌다. 2015년 이전까지는 장다이아로 운행하던 빈도는 최후기였던 2021~2022년보다 흔했다.
그리고 316~320편성, 341~344편성은 개조 GEC 초퍼 열차로 대체되었는데, 2022년에 이마저도 다원시스가 제작한 VVVF 전동차 2차분 열차로 대체되었다.
1985년 제작된 341편성 선두차의 2010년 8월 26일 폐차 모습이다. 부수객차는 개조 GEC 초퍼로 대체되었다가 현재는 전량 폐차되었다.
317편성 같이 민간업체에 팔려나가 사무실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7.2. 2호선 이적분[편집]
새로 편성하면서 랜덤으로 조합한 탓에 번호를 개번하기 전 어느 편성에서 가져왔는지 알기 꽤 복잡해졌는데, 아래의 조성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7.3. 3호선 이적분[편집]
새로 편성하면서 랜덤으로 조합한 탓에 번호를 개번하기 전 어느 편성에서 가져왔는지 알기 꽤 복잡해졌는데, 아래의 조성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8. 보존[편집]
- 지하철 박물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서울교통공사 수장고에 346편성 3046호의 운전대와 전조등 등 일부 부품을 보존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길안초등학교묵계분교장에 3호선 출신 광폭형 초퍼제어 전동차 약 20량 가량이 방치되고 있다. 유병언 측이 2010년 경 퇴역한 차량들을 사들여 기도실이나 숙소 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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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C D 1990년에 10량으로 증결된 편성은 1990년 10월 ~ 12월에 시작해서, 1991년 1월 ~ 4월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1] 3호선에서 운행 당시 341~347편성이 해당되며, 1993년에 2호선으로 이적하여 278~284편성으로 변경되었다(10량 증결분 제외). 또한 4호선에서 운행 당시 441편성의 4681호와 4582호가 해당되며, 1995년에 3호선으로 이적하여 348편성의 3448호와 3848호로 변경되었다.[2]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3~4호선에서 도색 통일을 시범적으로 하고 이후 개통하는 노선들도 도색을 통일하려는 시도였다 카더라.[3] 극 초창기에는 회색 바탕에 파란 줄이 그어진 바닥이었다. [4] 철도통행방향이랑 차량운전석 방향이랑 크게 문제 될게 없는것 같다.[5] 이들 도시철도는 유럽의 영향을 받았기에 최초로 유럽형 전동차를 도입하는 데 있어 주요 참고 요인이었다. 한국은 일본식 도시철도 설계의 영향이 강한 국가이다.[6] 2015년에 그린선 가와사키제 차량 도입 전 까지 30년 넘게 쓰인 디자인이다.[7] 작동 시 모습, 출처: 다음 카페 Rail+ 철도동호회[8] 대구 지하철 1호선, 한국철도공사 CDC, RDC, 3000호대(코레일 전동차)에도 동일한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다.[9] MELCO 초퍼 1차분에도 일부 차량은 원형 손잡이를 장착했으며, GEC 초퍼 1차분에도 원형 손잡이를 장착했다.[10] 사실 구미권은 비용 절감도 있지만 원래 손잡이가 가죽끈으로 된 경우가 많다.[11] 「청색전동차 2호선 투입 시민들 지하철이용 혼란」, 조선일보, 1994-01-05[12] 관련 게시글, 출처: 다음 카페 Rail+ 철도동호회[B] A B 1994년에 번호를 개번하기 전 기준이며, 검은색은 1993년에 새로 제작한 차량임을 알린다. 그리고 굵은 글씨체는 전부 한진중공업 제작분이며 금색 바탕은 쇠창들로 되어있는 객차이다. 연두색 바탕은 1989년 이후 제작된 고무창틀 차량이다.[13] 3호선 이적 차량은 이적직전에 현재과 같은 기준으로 차호가 개정되었다.[C]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TC→T 개조[14] 해당 영상[15] 해당 영상[16] 관련 게시글, 출처: 네이버 블로그[17] 해당영상 해당영상[18] 해당 게시글, 출처: 디시인사이드 모노레일 마이너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