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경상남도 중앙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창녕군과 함안군, 서쪽으로 산청군과 합천군, 남쪽으로는 진주시, 북쪽은 합천군과 접해있으며 그 사이에 낙동강, 남강이 흐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동서가 남북보다 약간 긴 타원형으로 군의 연장거리는 동서 간 32㎞이고 남북 간 27㎞에 달한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 중 아라가야의 세력권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며 임례국(稔禮國)이 자리 잡았다. 임례국은 대가야 시대에 남가야의 중핵이었던 안라국의 옆에 있어서 안라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듯하다. 임례국은 남가야가 559년 신라에 합병되면서 같이 흡수되었다. 이 시대의 유적으로 다수의 고분군이 산재하고 특히 운곡리 고분군 및 경산리 고분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무덤 형태가 발견되어 주목을 받기도 한다.
한편 부림면에는 신반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어 가야시대 산반하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685년(신문왕 5년) 장함현(獐含縣)이라 칭하였고 신라 경덕왕 때에는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의령현으로 개칭하고 함안군에 속하였다.
2024년 2월 기준 인구 25,395명으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이며, 경남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30,000명 이하인 지역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인해 경남에서도 손에 꼽히는 저개발 지역이 되었는데, 승용차를 이용하면 창원시에서 약 1시간, 진주시에서 약 4~50분이란 시간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보니 일자리는 의령에 있음에도 집은 창원이나 진주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도시의 베드타운 역할을 할 만큼 가까운 건 아닌 애매한 위치인지라 인구 감소는 계속되고 있다.
군 인구 중 35.67%가 의령읍에 살지만 그마저도 10,000명을 넘지 못하며, 두 번째 중심지인 부림면도 3천명이 안되고 봉수면이나 낙서면은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 그래도 의령읍은 중심지인지라 인구수 유지가 어느정도 되는 편이다.
인구 정점시기인 1962~1968년 사이에는 10만명을 넘었고, 특히 1965년에는 107,208명을 기록하여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1973년 9만명선이, 1977년 8만, 1980년 7만, 1984년 6만명선이 붕괴되었고, 1990년 5만, 1995년 4만명선이 깨진 이후로 더디게 감소하다 2015년에는 기어이 29,339명(외국인 인구 포함)을 기록하여 3만명 선이 붕괴되었고 2020년 4월에 27,000명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다 2022년 4월 10년 만에 59명이라는 작은 숫자이기는 해도 경남 시군 중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쾌거를 이루자 군청에서는 조그마한 희망을 보이고 있다.#
의병장 곽재우의 생가가 있으며 관련하여 읍내에 의병박물관도 있다. 의병박물관 옆에는 하천을 끼고 멀리서도 눈에 띄는 흔들다리가 있는데 상당히 스릴이 넘치며 주변에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으로 가볼만 하다. 가운데 교각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6]
흔들다리가 무슨 교각이 있는가 생각하겠지만, 높은 교각을 중심으로 흔들 다리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형태이다. 교각 근처는 바닥이 철망으로 되어 있어 바닥이 낭창거리는 데다가 수십 미터 아래가 다 보이는 것은 덤. 예전에는 다리 아래에 있는 하천에서 오리배를 운영했는데 최근에는 잘 안한다.
읍내에서 빠져나오면 남강 강가에 정암루(鼎巖樓)라는 정자가 있는데 정암진 전투에서 승리한 후 곽재우가 세운 정자로 이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솥바위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솥바위는 이름 그대로 솥의 형상을 한 제법 큰 바위인데 이 바위에 동전을 던져서 강물에 떨어지지 않고 평평한 곳에 자리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솥바위와 관련해 예부터 이 솥바위 반경 20리(약 8km) 이내에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하는데[9]
또는 3명의 큰 부자가 탄생한다는 버전도 있다.
마침 이곳 의령군은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이 태어난 곳이다. 끼워맞춘 것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솥바위와 이병철의 생가가 있는 정곡면 장내마을은 정확히 8km 떨어져 있다. 3명의 부자가 탄생한다는 전설에서 이병철 외 나머지 두 사람은 LG그룹의 공동창업주 구인회, 효성그룹의 창업주 조홍제인데 구인회의 생가가 있는 진주시지수면 승산마을[10]
구인회와 함께 LG그룹을 창업한 GS그룹의 시조, 허만정도 이 마을 출신으로 이 마을 자체가 구씨와 허씨 집안의 집성촌이어서 구태회, 구평회, 구자경, 허준구, 허창수 등 두 그룹의 윗 세대들은 대부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은 약 10km, 조홍제의 생가가 있는 함안군군북면 신창마을은 약 8km 떨어져 있어 이 역시 어느정도 성립은 된다. 이 세 명은 실제로 1920년대에 승산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유년기에 서로 어울리며 교분을 쌓았고 그 인연이 나중에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다.[11]
1920년대의 이야기인데 이병철이 태어난 의령 정곡면에는 그 당시에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이병철은 서당을 다니다 13살이던 1922년, 둘째 누나가 시집을 간 지수면 승산마을에 가 그곳에 있는 지수보통학교(현 지수초등학교) 3학년 1학기에 편입했다. 그때 동기가 구인회였는데 구인회 역시 서당에 다니다 15살이던 1921년에 2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래서 이 둘은 1922년에는 3학년으로 동기였고 실제로 같은 반에서 수학한 사이이다. 다만 졸업까지 한 구인회와 달리 이병철은 1학기만 지낸 후 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에 졸업하진 않았다. 조홍제는 해당 시기에 승산마을로 자주 놀러와 구인회와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나중에까지 보면 이병철과 조홍제는 삼성물산을 공동 창업했고, 이병철의 딸 이숙희와 구인회의 아들 구자학이 결혼해 사돈을 맺기도 했으니 이들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이병철의 생가는 의령의 몇 안되는 관광지 중 하나로 지자체에서도 이병철의 기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해당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사실 삼성 측에서 의령군에 기업 시설을 설치하려 문의한 적이 있는데 당시 주민들이 땅값을 지나치게 부른 탓에 무산되었다는 풍문이 있다. 물론 이런 내용이 삼성에 공식적으로 문서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2022년 10월에는 위의 솥바위 전설을 연계해 '리치리치 페스티벌'이라는 것을 개최했다. 와서 솥바위도 보고 부의 기운을 받아가라는 의미인데 의령이 인구 소멸 위기에 있는 곳이다보니 어떻게든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건 모양.
곽재우와 이병철, 솥바위와 관련해 의령에서는 주요 관광지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만들어 둔 게 특징이다. 이외에는 읍내에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1억년 전 빗자국 화석이 있다. 2008년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도 발견됐는데 이중 일부를 옮겨 의병박물관에 전시해 두고 있다.
대구, 함안 등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꼽히는 곳이지만, 놀러오기에는 여름이 가장 좋다. 흔들다리에서 공포체험을 하고 찰비 계곡에서 물놀이를 한 후 읍내에서 국밥을 먹으며 체력을 다지거나 시원한 소바를 말아먹으면 1박 2일이나 당일 코스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집에 갈 때 선물용으로 망개떡을 사가는 것을 잊지 말자.
궁류면에 벽계 야영장이 있는데 작긴 하지만 워터슬라이드도 있고, 작은 풀장, 샤워실, 화장실, 공동 세면장 겸 설거지대, 방갈로가 갖추어져 있다. 2019년 여름, 화장실과 워터슬라이드를 개선하였다. 와이파이도 쓸 수 있다.
1. 토요애 수박: 남강과 낙동강변의 비옥한 충적토에서 재배되고 있는 토요애 수박은 당도가 매우 높고 껍질이 얇으며 맛과 품질이 뛰어남.
2. 맛구슬 찰옥수수: 전국의 노지재배 7월에 생산되는 옥수수에 비해 하우스재배단지로서 6월초부터 조기출하하고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유일무이한 찰옥수수브랜드다.
3. 대봉 곶감: 밤낮의 기온 차가 크고, 오염원이 전혀 없는 청정지역에서 재배되어 색깔이 곱고 당도가 높아 선물용 또는 영양 간식으로 인기가 높다.
4. 의령 무유황 유산균곶감: 일교차가 높은 지역의 특성으로 대봉감 재배지로 적합하여 덕실대봉작목반에서는 곶감으로 상품을 만들어 농가소득증대에 기여를 하고 있다. 덕실대봉마을에서 생산하는 무유황 유산균곶감은 반건시와 건시 사이의 2/3건시 곶감으로 겉은 쫄깃쫄깃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젤리의 식감으로 반건시보다 진한 맛을 느낄수 있어 남녀노소 즐길수 있는 간식으로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5. 의령 토속메주: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재배되고 있는 순수 국산콩을 원료로 하여 옛날 전통방식으로 가공하여고향의 맛을 내는 청국장, 된장, 간장, 고추장 메주 등을 생산하여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중심지는 의령읍이고 그중에서 동동리, 중동리, 서동리에 주요 상권, 문화시설들이 있다. 동동리의 오거리교차로부터 의령택시까지가 최대상권이며, 중앙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300m 안에 PC방, 편의점, 우체국, 군청, 시장, 학원, 병원 등이 있다. 동동리와 서동리 남쪽지역에 3-4층의 원룸, 빌라가 많이 있고 북쪽에는 주공아파트 등 7층 이상의 아파트들이 있다. 사회복지관에서 적은 금액, 무료로 교양, 예술 강좌를 하고 수영장과 체육관도 개방하며 또 주변 풍경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소규모 군이라는 지역의 한계로 문화생활은 주로 창원시, 진주시에 의존하는 편이다.
2차 이상의 의료기관이 없다. 무전리의 의령사랑병원이 263병상에 전문의 4명을 보유하고 있으나 정신병원 및 노인요양병원으로만 운영하고 있으며 읍내의 의령병원도 58병상에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전문의 각 1명 및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열약한 시설 문제로 위급한 사안이면 대부분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삼성창원병원으로 간다.
영화관이 없어 군민회관과 의령박물관에서 가끔 상영하는것이 전부였으나 2021년 5월 서동리에 작은 영화관 공사를 시작하여 2023년 8월 2관 100석 규모로 개관하였다.#
도서관은 의령도서관이 있으며 2010년 군청 옆의 백산도서관에서 동동리로 이전해온 것이다.[14]
군의 중심지인 의령읍이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군에서 동북쪽으로 치우친 쪽에 있는 부림면 신반리가 두 번째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딱히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일은 드문 곳이나, 2000년대 와서는 소싸움으로 약간의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그 외엔 불미스러운 일이 많아보이는데, 1982년 무려 95명의 사상자를 낸 우범곤 사건이 대표적. 그 외 2000년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가해자들을 오히려 옹호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황모 양이 2010년대 의령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란 소식이 언론을 탔는데, 성폭행범을 옹호한 사람이 경찰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네티즌들의 항의댓글이 의령경찰서 홈피에 빗발쳐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해명에 의하면 본인은 반성 중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미투 운동에 뻔뻔하게 동참했다. 올해 2024년 그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 박모 군의 근황이 알리면서 또 다시 재조명되어서 비난의 화살이 그 쪽으로 쏠렸다.
의령의 령(寧)은 본래 훈음이 '편안할 녕'이지만 '령'으로 읽고 쓰는데 활음조 현상의 영향이다. 본음을 살려서 '의녕'이라고 하면 발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같은 예로 보령시, 부령군, 재령군, 회령시, 무령왕 등이 있다. 옆에 있는 창녕군의 이름은 활음조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녕'으로 쓴다.
의령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거의 100% 확률로 남산에 올라가게 되는데, 321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턱까지만 가거나 운동기구가 있는 곳까지만 올라가게 된다.
의령군 어딘가에 공군제5공중기동비행단 소속 공정통제사들이 공수 및 전술훈련을 하는 훈련장이 있다. 그냥 CCT들이 공수 훈련을 받는 곳이라 부산에서 의령까지 비행기로 이동하다가 낙하산 타고 의령에 도착하는 것이라 이곳을 관리한답시고 배속되는 병력은 없다. 경상남도지방경찰청의 경찰특공대도 의령에 위치하고 있다. 당연히 훈련하는 장소도 의령이다.
의령에서의 고층건물(8층 이상)은 다음과 같다.
삼영타운 15층 102세대
서광아파트 15층 133세대
미래한들빌라 9층 18세대
동동좋은아침빌라 9층 18세대
서동주공아파트 15층 283세대 4동
한우베스트빌 9층 40세대
만덕스카이 15층 58세대
진승뷰주상복합 17층 30세대
신우희가로 15~18층 322세대 5동
상진들국화맨션 12층 48세대
의령군에 있는 국내 최고령 500살 감나무에서 23년 10월 감이 50개 정도 열렸다고 한다. 이 나무에 감이 열린건 지난 2020년 4개가 열린 이후로 3년만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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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4월 기준 행정안전부주민등록인구통계[2] 2024년 4월 기준.[3] 의령군 가선거구 (의령읍, 용덕면): 김봉남, 김판곤 의령군 나선거구 (가례면, 칠곡면, 대의면, 화정면): 주민돈 의령군 다선거구 (정곡면, 지정면, 궁류면, 유곡면): 윤병열 비례대표: 김행연[4] 의령군 가선거구 (의령읍, 용덕면): 조순종 의령군 나선거구 (가례면, 칠곡면, 대의면, 화정면): 오민자 의령군 다선거구 (정곡면, 지정면, 궁류면, 유곡면): 황성철 의령군 라선거구 (낙서면, 부림면, 봉수면): 김규찬, 김창호[5] 군사무소 소재지의 면은 읍으로 한다에 따라 승격[6] 흔들다리가 무슨 교각이 있는가 생각하겠지만, 높은 교각을 중심으로 흔들 다리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형태이다. 교각 근처는 바닥이 철망으로 되어 있어 바닥이 낭창거리는 데다가 수십 미터 아래가 다 보이는 것은 덤. 예전에는 다리 아래에 있는 하천에서 오리배를 운영했는데 최근에는 잘 안한다.[7] 임진왜란때 싸운 곽재우와 17명의 장수를 기리는 18개의 고리로 이루어진 탑이다.[8] 역시 곽재우와 의병들을 기리는 사당이다.[9] 또는 3명의 큰 부자가 탄생한다는 버전도 있다.[10] 구인회와 함께 LG그룹을 창업한 GS그룹의 시조, 허만정도 이 마을 출신으로 이 마을 자체가 구씨와 허씨 집안의 집성촌이어서 구태회, 구평회, 구자경, 허준구, 허창수 등 두 그룹의 윗 세대들은 대부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11] 1920년대의 이야기인데 이병철이 태어난 의령 정곡면에는 그 당시에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이병철은 서당을 다니다 13살이던 1922년, 둘째 누나가 시집을 간 지수면 승산마을에 가 그곳에 있는 지수보통학교(현 지수초등학교) 3학년 1학기에 편입했다. 그때 동기가 구인회였는데 구인회 역시 서당에 다니다 15살이던 1921년에 2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래서 이 둘은 1922년에는 3학년으로 동기였고 실제로 같은 반에서 수학한 사이이다. 다만 졸업까지 한 구인회와 달리 이병철은 1학기만 지낸 후 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에 졸업하진 않았다. 조홍제는 해당 시기에 승산마을로 자주 놀러와 구인회와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나중에까지 보면 이병철과 조홍제는 삼성물산을 공동 창업했고, 이병철의 딸 이숙희와 구인회의 아들 구자학이 결혼해 사돈을 맺기도 했으니 이들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12] 물론 외지인을 위한 연극이다. 지역주민은 한번보고 안본다.[13] 지역 내 중, 고교생이 퍼레이드에 동원된다.[괄호] AB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4] 이전 백산도서관 자리에는 교육청이 있다.[15] 지역구: 경기도 오산시[16] 지역구: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