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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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대한민국 제20·21·22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지역구는 부산 북구 갑이다.
2. 생애[편집]
1971년 4월 20일,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용소리에서 아버지 전용판(田溶判)과 어머니 경주 최씨 사이에서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부산직할시 북구 만덕동으로 이주했으며,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 만덕초등학교, 덕천중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구덕고등학교에 입학해 1990년 졸업했다.
이름과 달리 재수하지 않고 현역으로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90학번으로 입학했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2년 11월 11일 해병대에 병 701기(징집기수)로 입대하여 제1사단에서 보병으로 복무했으며, 1995년 1월 21일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1997년 동국대학교 졸업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1999년 2월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1. 국회의원 이전[편집]
노무현 정부 당시 영부인을 담당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장과 국정상황실 행정관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북구청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성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박민식 후보에게 패해 또다시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또 낙선하였다. 그러나 도전 횟수가 많아질수록 득표율도 높아져 간 데다 19대 총선에서 득표율이 48% 가까이 올라 다음엔 당선을 기대해봐도 좋은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더불어민주당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 2에 출연했는데, 전재수 당시 후보의 인지도 상승에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2.2. 제20대 국회의원[편집]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득표수 48,887표(득표율 55.92%, 1위)로 무려 4수 끝에 드디어 당선되었다.
이 때 훈훈한 장면도 나왔는데, 그동안 18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세 차례의 총선에서 맞붙었던 새누리당 박민식 후보가 전재수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직접 전재수 후보의 선거 사무소를 방문해서 축하해줬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 덕담을 주고 받았고, 전 후보의 지지자들도 박 후보를 위로해줬다고 한다.
2016년 12월, 전자책 무료 대여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 전재수 의원실 관계자는 "전자책 무료 대여 서비스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발의 법안이 법제화돼야 영세 출판사와 출판 시장 전체를 살릴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12월 30일, 트위터 등을 통한 시민들의 반대와 우려의 메시지를 고려하여 입법을 철회하기로 했다.
2016년 12월 2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교육부 국정교과서 실무 책임자인 박성민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에게 호통을 쳤다. 1주일 전 새누리당 주최 토론회에서 한 촛불 집회 비하 발언을 문제 삼은 것. #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상임위, 본회의 출석률을 기록하면서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덕인지 21대 총선에서도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2.3. 제21대 국회의원[편집]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박민식 후보와 네 번째 리턴 매치를 치렀는데, 치열한 접전 끝에 1,938표, 2.01%p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승리, 재선 의원이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산 지역에서 민주당이 약세를 보인 선거임에도 불구하고[3] 부산 지역 초선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20대 국회 공약 이행 우수 위원에 선정되는 등 지역 관리를 잘한 덕분에 신승했다는 평가다.
2021년 2월 19일,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특위의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2021년 2월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일정 연기를 가장 앞장서서 주장했으며,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지도부가 교체된 이후에도 경선 연기를 공개 촉구하자 이에 이재명계가 반발하면서 갈등이 번졌다. #, #
2021년에 시작된 당 내 경선에선 초기 이광재와 함께하다 이광재가 정세균과 단일화를 하게 되면서 정세균 캠프 아래에서 공동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정작 정세균에게 반등의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아직 정세균이 출마 포기 선언도 하지 않았던 9월 7일,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열린캠프에 부산 울산 경남 총괄 선대본부장 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전격 합류했다.# 본인 말로는 자신은 단일화 후에 대변인을 완곡히 거부했지만 다음날 보도자료로 대변인이 된 거라며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와 정치적 신의를 지키는 건 한두 달 정도 중립 지대에 있으면서 다른 캠프에 가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정작 과거 단일화 시점에선 '당연히 이제 이광재 후보를 도왔던 사람들은 단일화 취지에 맞게끔 정세균 후보를 도와야 되는 것이 정치적 신의'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2.4. 제22대 국회의원[편집]
2024년 제22대 총선에 신설 지역구인 북구 갑에 출마해 3선에 도전했고, 개표 결과 52.3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67%에 그친 서병수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로서 3선 중진[4] + 부산 지역 유일한 민주당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서 체급이 엄청나게 급상승했다. 영남 전체로 봐도 허성무[5] , 민홍철[6] , 김정호[7] , 김태선[8] 포함 5인 뿐이라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5선을 하였고 전 해운대구청장, 부산광역시장을 역임했던 서병수 의원을 꺾고 연임에 성공한 점으로 볼 때 차기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거론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다만 부산광역시 유일한 민주당 국회의원 자리를 사수해야 하기 때문에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불출마할 것이 분명해보인다.[9] 그래서 낙선한 남구의 박재호 의원이나 사하구 갑의 최인호 의원 등이 전재수 대신 부산광역시장 민주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22대 국회 전반기 문화체육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되었다.#
3. 여담[편집]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하필 본인의 이름 때문에 묘한 상황이 됐다. 그래서 네티즌 사이에서도 꼭 이름을 넣어야 했냐는 농담 섞인 지적이 나왔다. 전재수 의원실 트위터에서 해명문을 올리기도 하였다. 급기야 본인 계정으로는 이름 가지고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10]
2018년에도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맞아서 어김없이 이름으로 수능 응원 현수막을 제작했는데 "재수는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라는 재치있는 문구를 넣었다. 이 문구가 호평을 받았는지 이후로도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마다 재활용하고 있다.
- 만덕1동이 지역구 내에 속해있을 때, 당락에 관계 없이 만덕1동에서만큼은 박민식 후보에게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통합민주당이 궤멸당하다시피 했던 18대 총선 때조차도 만덕1동에서만큼은 전재수 후보가 63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만덕1동은 전재수의 핵심 표밭이기 때문이다. 이후 22대 총선에서는 만덕1동이 북구 을로 넘어갔는데, 이때는 만덕1동에서 국민의힘 박성훈 후보가 민주당 정명희 후보를 근소한 표차로 앞서 민주당 후보가 패했다.
- 해병대 출신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선거운동에서 다른 부산 국회의원들을 압도하는 체력을 자랑하는 정력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남들 보통 일정보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두 곳을 더 가서 선거운동을 할 정도라고 하는데, 하루이틀 같이 동시 유세를 해본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혀를 내두르는 체력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선거에 출마해봤던 이언주는 탈당 후 방송 패널로 많이 나오던 시절,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느꼈다. 김무성처럼 하던가, 전재수처럼 하던가."라는 말을 남겼다. 김무성은 자신을 오랜 기간 지지하는 조직이 지역 내에 여러 개 있어 그걸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반면 전재수는 굉장한 체력과 멘탈을 기반으로 하여 지역구 구석구석까지 혈혈단신으로라도 주저없이 돌파하여 홍보하는 강한 추진력이 있기에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강했고, 여론조사 지지율이 썩 좋지 않을 때도 이와 무관하게 전재수의 정력적인 선거운동을 옆에서 보면 "야 저 사람은 진짜 (당선)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에너지가 상당한 듯 하다.
- 지역구 관리를 매우 잘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조사한 21대 국회 공약 이행률이 무려 98%로 부산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바 있다. 지역구 관리를 잘하고 자택이 있는 구포에 자주 머무르다 보니 지역민들 중에서는 "재수야"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민주당의 험지인 부산에서 3선 연임에 성공한 것 역시 이런 면 때문이다. 실제로 22대 총선 당시에 북구 갑 지역구에서 비례대표 투표율은 41.63% vs 43.56%로 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을 합친 득표율보다 국민의미래 득표율이 좀 더 높았지만, 지역구 의원은 전재수를 뽑는 교차 투표 성향이 많이 나타났다. 그만큼 인물론이 먹힌다는 것.[11]
4. 선거 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역대 선거에서 항상 30% 이상의 안정적 득표율을 보였고 부울경이 상당히 험난했던 22대 총선에서도 살아남는 저력을 선보이며 북구·강서구 갑에서 확실하게 자기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박민식이 갑자기 성남 분당으로 간다고 했다가 국가보훈처장이 된 후 수도권(서울 강서구 출마)에 완전히 자리를 튼 이후엔 경쟁자를 거의 찾기 힘들 정도.
- 다만 강서구 지역의 인구 증가로 지난 북구·강서구 갑과 북구·강서구 을의 인구 편차가 159,617 대 261,098까지 벌어진 상황이어서 표의 등가성, 인구편차에 맞게 다시 조정이 불가피했다. 기존 북구·강서구 갑 지역인 구포동이 북구·강서구 을로, 북구·강서구 을 지역인 화명동과 금곡동이 북구·강서구 갑으로 맞트레이드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유불리를 쉽게 장담하기 어려우나, 금곡동과 화명동에는 각각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의원은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하마평대로 국민의힘에서 현재 청년최고위원인 장예찬이 새롭게 조정된(금곡, 화명동이 포함되고 구포동이 제외된) 북구 갑으로 출마할 경우, 토박이라는 점을 내세워
이름 따라 재수로3선에 성공할 가능성아 높다고 평가받았다.[12] 최종적으로 기존 지역구에서는 만덕1동만 북구 을로 넘어가는 안건이 확정되었다. 국민의힘에서는 결국 서병수라는 지역 거물이 전략공천으로 북구 갑 선거구에 나왔지만 전재수가 5.64%p 격차로 서병수를 꺾고 3선 연임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