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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Ίλιάς
[
Ilias]
1. 개요[편집]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전통적으로 호메로스가 저자라고 전해지고 있다.노여움을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아카이아인들에게 안겨주었고,
그 많은 영웅들의 강인한 목숨을 하데스로 떠나보내었으며,
그들 자신을 온갖 개 떼와 새 떼의 먹이로 만든
그 저주받을 것을!
일리아스 1.1-5, 이준석 번역, 아카넷, 2023, p.15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에 쓰인 것이다.[1] 일리아스 이전의 미노스 문명과 뮈케나이 문명은 오랫동안 잊혀져있었으니, 사실상 《일리아스》가 유럽 최초의 고전문학인 셈이며, 실제로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 예술과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배경은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트로이아 전쟁의 51일간을 다뤘다. 트로이아의 왕세자 헥토르와 아카이오이족의 용장인 아킬레우스, 이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과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할지언정 가능한 한 충실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영웅들의 처절한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9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상황과 전쟁에 관여하는 올림포스의 신들, 그리고 영웅들의 이야기 역시 조명된다.
그리스의 대표적 시운 중의 하나인 6각운(Hexameter)으로 작곡되었다. 총 24권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권마다 24 그리스 알파벳 순서로 부제가 붙어 있다.
2. 주요 인명[편집]
자세한 내용은 일리아스/등장인물 참조
2.1. 영웅 ἥρως[편집]
2.1.1. 트로이아 Τροίας[편집]
2.1.2. 아카이오이 Ἀχαιός[편집]
- 아가멤논 - 미케네의 대왕 & 아카이아 연합군의 총사령관
- 메넬라오스 - 스파르타의 왕
- 이도메네우스 - 크레타의 왕
- 메리오네스 - 이도메네우스의 조카
- 아킬레우스 -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의 아들
- 파트로클로스 - 아킬레우스의 부관
- 오디세우스 - 이타카의 왕
- 대 아이아스 -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의 아들
- 테우크로스 - 아이아스의 이복 동생
- 소 아이아스 - 로크리스의 왕 오일레우스의 아들
- 디오메데스 - 아르고스의 왕
- 네스토르 - 필로스의 왕
- 안틸로코스 - 네스토르의 아들
이쪽 진영을 '그리스'라고 지칭하는 것은 사실 애매하다. 실제 역사상의 트로이아가 정말 그리스계 도시였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호메로스 시대에는 소아시아 해안에 그리스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인 호메로스부터가 그리스계 소아시아 사람이며, 일리아스에서 소아시아인들은 주로 트로이아군에 참여하고 있다. 즉 지연(地緣)으로 따지면 호메로스에게 아군은 오히여 트로이아인이다.
또한 신화상 트로이아의 시조인 다르다노스부터가 형 이아시온의 죽음을 계기로 그리스 본토에서 넘어 온 제우스의 아들이었고, 난공불락이라는 트로이아의 성벽도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쌓은 것이었다.
본문에서 '그리스인'(Ἕλληνες / Hellenes)이라는 표현은 뮈르미돈을 가리킬 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머지는 '아카이아인', '아르고스인' '다나이드인' 등으로 표현되었다. 본문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카이오이', 즉 그리스인을 뜻하는 '아카이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그리스인이라는 말이 워낙에 널리 퍼져 있다.
혹여 트로이아는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저쪽 아나톨리아 반도 쪽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페르시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자.
정작 페르시아 전쟁 이후 사람인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들은 트로이아인들을 모조리 야만인, 즉 비 그리스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 또한 복잡한 문제인 것이, 《일리아스》 본문에선 트로이아인들을 딱히 풍습이 다른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대가 지나면서 인식이 다소 변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트로이아 진영과 함께한 동맹군들은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명백히 이방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트로이아에서는 아나톨리아어파 계열 언어가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한다.
2.2. 신족 θεούς[편집]
- 그 외의 신
3. 평론[편집]
고대 그리스 문학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작품이지만,[8]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리스 신화에 가지는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점이 다수 존재한다.
3.1. 줄거리 · 해설[편집]
이와 같이 작중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매우 짧다. 휴식기 등을 빼고 보면 정확히 4~5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리아스》 이전에 있었던 일과 《일리아스》 이후에 있을 일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또 다른 신화에 대해서도 계속 언급하기 때문에 그리스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더불어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트로이아 전쟁의 진행 과정을 빗댄 듯이 유사하다. 1장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로 인해 갈등을 빚음은 트로이아 전쟁의 시작이 헬레네를 둔 다툼인 것과 대비되고, 2~3장에서 연합군이 진군하는 것은 트로이아로 연합군이 모이는 모습에 대비되는 식이다. 첫 번째 군사적 충돌이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대결이라는 것도 이 전쟁의 시작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다. 최후에 트로이아의 함락을 보여주는 대신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내는 것도 이런 구조의 연속이다. 일리오스는 아직 함락되지 않았지만, 유일한 보루인 헥토르가 사망함으로서 트로이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음이 명백해지는 것이다.[11] 즉, 전쟁 막바지의 일부만 다루었지만 한편으론 전쟁 전체를 다룬 것이다.
트로이 목마와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일리아스》에 속하지 않으며, 《일리아스》의 마지막은 헥토르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으로 끝이다. 그러면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의 이야기는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그 부분은 서사시환 중 《일리오스 낙성》에서 다루었으리라 추정한다. 《일리아스》에서는 트로이아가 멸망하리라고 작품 전체에 걸쳐 암시할 뿐이고, 《오디세이아》에서도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불행히도 《일리오스 낙성》 등은 현재는 소실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평론을 보면 옛 그리스 사람들은 서사시환 중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제외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다고 여긴 듯하다.
3.2. 중립적 시각[편집]
호메로스에게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비중이 약간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이전의 서사시에 있던 모습 그대로 가져왔지만, 헥토르는 자기 손으로 다시 만들었다. 게다가 약간 덧칠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헥토르는 호메로스가 선택한 인물이다. 특히 모범적인 인간을 고를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헥토르를 고른다. 알다시피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고, 트로이아 전쟁에서 이긴 쪽은 그리스인이었고 호메로스도 그리스인이다. 호메로스가 제아무리 공정하려고 해도, 그리스 민족주의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는 제일 좋은 것을 적장에게 주었다.
—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
I’ve been always very impressed by Homer and his Iliad, especially the scene of the fight between Achilles and Hector. Who is the hero and who is the villain? That’s the power of the story and I wanted something similar to my books. The hero of one side is the villain of the other side.
난 언제나 호메로스와 그의 일리아스에 감탄했는데, 그 중에서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 장면이 특히 그렇다. 누가 영웅이고 누가 악당인가? 그것이야말로 이 이야기가 지닌 힘이고 나는 내 작품에도 이러한 요소를 원했다. 한 진영에서 영웅이라면 반대 진영에서는 악당이다.
《일리아스》는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시각이다. 일단 유명한 장수들이 주로 아카이오이 측에 포진해 있고, 트로이아 측에서 꾸준히 활약한 장수는 헥토르뿐이며,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테티스의 탄원에 따라 아킬레우스의 편을 들어주는 등 기본 플롯이나 얼개는 아카이오이 측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제우스의 아들인 사르페돈도 트로이아 측의 장수로 출전해 사망하고, 수도 없이 죽는 클론 무장들의 각각의 출신지와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죽이면 끝인 적이 아니라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아버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만 아카이오이 연합군 위주의 서술인 것은 분명한 것이 헥토르가 날뛰는 모습과 다른 아카이오이족 영웅들이 날뛰는 모습들을 묘사할 때 상당한 온도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헥토르가 귀족 전사들을 죽이면 한꺼번에 누구누구, 누구누구, 누구누구 이렇게 이름이나 읊어주고 끝인 경우가 많으나, 아이아스나 디오메데스가 트로이아 귀족 전사들을 죽이면 그들의 과거 업적이나 출신을 상세히 열거하는 경우가 많고, 묘사도 좀 더 자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다른 방향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히려 이런 서술을 통해 《일리아스》는 죽어가는 트로이아 전사들을 인간화함으로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트로이아 쪽에 공감하도록 한다. 승리는 아카이오이 쪽에 주되 패배한 트로이아 쪽에는 독자들의 동정심을 주어 균형을 맞추는 기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트로이아군의 장수들이 아카이오이 연합군 전사들을 죽일 땐 대부분 타깃이었던 주연급 장수를 못 맞추고 근처에 있던 다른 장수를 대신 맞추는 경우도 많다.
《일리아스》를 아킬레우스의 영웅담 수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부분의 비중이 헥토르에만 집중된 트로이아 측과는 달리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 내에서 대부분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분량이 적고, 아카이오이 측의 비중은 디오메데스와 아가멤논, 아이아스 등과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다. 정말로 아킬레우스의 영웅담에 불과했다면 제목도 《아킬레이드》였겠지만, 정작 호메로스는 이 서사시의 제목을 '일리오스의 노래'를 뜻하는 《일리아스》라고 지었다.
트로이아의 왕세자이자 총사령관인 헥토르는 특히 비중을 들여 묘사하고 있다. 파리스의 한심함에 분노하거나 결과적으로 패배하게 될 트로이아의 운명에 괴로워하고, 아내 안드로마케와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등 상당히 높은 비중을 할애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서술한다. 제우스 또한 아킬레우스의 영광을 위해 헥토르를 죽게 만들긴 했지만 헥토르를 '인간 중 가장 신들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부르며 시체만큼은 온전히 보존해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결말부에서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의 이해 관계에 가장 깊게 얽힌 헬레네 또한 아프로디테 여신의 압력으로 파리스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와, 그로 인해 발생한 전쟁과 비극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쟁에 얽혀 죽은 이와 괴로워하는 이의 관점을 자세히 조명한다는 점에서, 《일리아스》는 영웅 서사시가 아니라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표적으로 Simone Weil의 논문.) 헤로도토스는 이런 점이 나약하다고 비판하며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1세의 테르모필레 전투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영웅 이야기라고 부각시켰던 적도 있다.
3.3. 신화의 클리셰 부정[편집]
그리스 신화와 문학 전반에 걸친 편견인 '겉과 속의 아름다움은 일치한다'라는 테마도 부정하고 있다.
파리스는 분명 놀라울 만큼 미남이지만 나라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서도 헬레네를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소인배이며, 형 헥토르의 괴로움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사상은 후속작인 《오디세이아》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 사람들에게
고 하는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누구는 용모가 불사신들과 같지만 그 하는 말은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
그 외의 영웅들도 완벽초인과는 거리가 멀다. 왕 중의 왕인 아가멤논은 권위 의식에 눈이 멀어 아킬레우스를 이탈하게 만들고, 회유를 위해 사신을 보낼 때에도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자존심을 챙기려고 한다. 아킬레우스 또한 분노에 휘둘려 자신의 아군을 돌보지 않았다. 시종일관 도덕적으로 묘사되는 헥토르 또한, 신의 개입이 있었다지만 무리해서 성 밖에 남아 아킬레우스에게 죽음으로써 트로이아의 멸망을 확정지었다. 오디세우스는 매우 지혜로워 트로이 함락에 큰 공헌을 하지만, 반면 매우 교활하고 비열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속도 얼마든지 저버리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살인을 하찮게 여기는 등 잔인한 구석도 있음이 드러난다.
3.3.1. 신들에 대한 시각[편집]
《일리아스》에서 신들의 '개입'은 많은 경우 지극히 간접적으로만 벌어진다. 이는 제우스가 다른 신들의 직접적 개입을 막았기 때문.[12] 군대의 사기를 올리거나, 특정한 인물에게 축복 혹은 저주를 내리거나, 분노를 억누르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있는 신들은 다시 트로이아 편과 아카이오이 편으로 나뉘어서 치열한 암투나 계략을 주고받고, 후반부에선 직접적으로 싸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울거나 자신의 자식이 맞이하는 죽음에 슬퍼하는 등, 흔히 '인간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에 대한 묘사를 《일리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구전 신화나 그리스 비극 등에서 흔히 초월자로 묘사되는 신들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최초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크세노파네스나 플라톤 등의 여러 철학자나 소피스트들이 호메로스가 신들을 '부도덕'하게 묘사한다면서 비판하기도 했다.[13]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유럽 신화 등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 신들은 철저한 '인본주의' 관점에서 묘사되었다. 부인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입질하는 제우스, 근친상간인 가이아, 우라노스, 크로노스, 또한 신화 내의 수 많은 신들의 어리석은 에피소드 등 신들의 어리석음을 통해 교훈을 주는 등 그리스 로마를 포함한 유럽 신화는 본래 인본주의적이다.[14]
인간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신에게는 상대가 안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그들의 운명은 신들의 손에 달렸다는 코즈믹 호러적인 면은 《일리아스》에서 가장 잘 묘사된다. 《일리아스》에서 묘사되는 트로이아 전쟁의 진행은 전적으로 제우스의 설계대로 흘러간다. 메넬라오스가 파리스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전쟁이 아카이오이족의 승리가 확실하다 싶을 때, 판다로스가 메넬라오스를 활로 쏘게 해서 다시 전쟁의 불씨를 지피고 헥토르가 방벽을 넘어 아카이오이족의 함대를 불태워서 트로이아의 승리로 끝날 것 같을 때, 다시 파트로클로스를 이용하여 몰아내서 수시로 전황을 교착 상태로 유지한다. 심지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의 승자 자체도 제우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헥토르로 바뀔 수도 있었다. 결국 인간들에게 달린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로지 제우스의 결정에 달렸던 것이다.
신과 인간의 격차 역시 아킬레우스와 스카만드로스의 일화로 알 수 있다. 트로이아 전쟁 최강의 전사인 아킬레우스가 주제도 모르고 하급신으로 분류되는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를 무시하다 익사할 뻔하는데, 인간 따위인 아킬레우스가 신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카만드로스보다 더 고위의 신들에게 살려달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 밖에 없었다. 아무리 당대 적수가 없는 최강의 영웅이라도 신을 상대로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만 이러한 일리아스상의 묘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신이 있는데, 바로 아폴론이다. 제우스이든 아테나이든 고대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졸렬하고 우습게 묘사되는 일리아스답지 않게, 아폴론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압도적인 품위를 유지하며, 노골적으로 트로이아측에서 '직접' 아카이아인들을 막는다.
가령 파트로클로스의 참전으로 승기를 잡은 아카이아군이 트로이아 성벽을 넘어서려고 하자, 아폴론은 마치 트로이아의 병사처럼 싸우며 파트로클로스를 '직접' 육탄전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야전에서 헥토르와 파트로클로스가 싸우려 들 때, 다른 신들이라면 헥토르의 '기백'을 돋우어주거나 화살을 막아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싸웠을 테지만, 아폴론은 그냥 직접 파트로클로스를 두들겨패서 미리 반쯤 죽여놓았다. 소위 막타는 헥토르가 쳤지만, 사실상 아폴론이 파트로클로스를 직접 죽인 셈이다.
3.4. 번역 · 판본[편집]
- 《일리아스》의 번역은 오래 전부터 큰 이슈였다. 단순히 내용만 번역하는 게 아니라 원전의 운율과 분위기를 살려서 번역하는 게 워낙 고역이기 때문이다.
- 최초의 영역판은 조지 채프먼(George Chapman)의 번역이었다. 존 키츠는 이를 읽고 감명받았는지 아예 소감을 다룬 시를 쓰기까지 했다.
- 영미권에선 알렉산더 포프의 번역[15] 이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16] 워낙 오래 전의 번역(1720년에 출판되었다.)이고 오늘날의 번역과는 달리 라틴어 바탕이라 아킬레우스 대신 아킬레스, 오디세우스 대신 율리시스 등으로 지칭되고 아카이아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지칭된다. 그러나 포프는 원본의 운율을 살린 번역을 함으로써 번역된 시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란 평가도 받았다. 《일리아스》 번역 덕분에 포프는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고 할 정도로 성공했다. 물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아서 너무 형식에 맞춰서 기계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 그 외에 리치몬드 라티모어(Richmond Lattimore) 판, 로버트 페이글(Robert Fagle) 등의 번역 등이 유명하다.
- 국내에서는 《일리아드》(Illiad)라는 이름으로 훨씬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라틴어와 영어에서 쓰는 표기가 《일리아드》이며, 국내에 알려진 그리스 신화 관련 자료 대부분이 영어 → 일어 → 한글로 이어지는 중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리아스》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이니만큼 원제를 중시하여 그리스 발음인 '일리아스'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천병희 교수의 직역판도 《일리아스》라는 제목을 사용하며, 위키피디아나 백과사전에서도 《일리아스》를 기준으로 삼는다. 2010년대 들어서 차츰 교정된 결과, 2020년에는 《일리아스》라는 표기법이 훨씬 더 많아졌다.
- 여러 가지 판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한 가지 판본으로 만든 것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인 제노도투스라고 한다.
- 《일리아스》 전체에서 트로이아의 첩자를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죽이는 10권은 후대에 추가된 부분이라는 설이 있다. 이런 탓인지 스티브 미첼 판의 영역판은 10권을 빼고 부록으로 넣어버렸다. 사실 10권을 빼도 전체 구성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많다.
3.4.1. 한국어 번역[편집]
한국에서도 여러 역본이 있지만, 희랍어에서 직접 번역한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오랫동안 대표적으로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2023년 6월에 호메로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이준석 교수가 아카넷에서 새로운 일리아스 원전번역본을 내놓음으로써 또 하나의 희랍어 원전 번역을 가지게 되었다. 천병희 교수와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의역에 가까운 천병희 역본은 쉽고 물 흐르는 듯한 문장 흐름을 가진 대신 신화적인 장중함이 줄어들었고,[17] 반대로 상대적 직역에 가까운 이준석 역본은 호메로스의 표현을 그대로 살림으로써 신화적인 장중함을 얻은 대신 문장이 약간 거칠다. 물론 이건 상대적인 것이라, 천병희 역본도 호메로스 문장을 잘 살렸고 이준석 역본도 문장 읽기에 무리가 없다.
다음은 비교 예시.
4. 그 외[편집]
-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 3세는 베개 밑에 《일리아스》를 넣고 잘 정도로 애독자였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 《일리아스》를 추천해준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알렉산드로스가 항상 갖고 다닌 《일리아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작성해 준 요약 필사본이라고 한다.
- 영웅들이 적의 귀족 계급 전사들을 무수히 죽이는데, 이것이 과연 영웅들이 호메로스의 묘사대로 신과 같은 전사로서의 무용을 뽐냈던 것인가 아니면 아킬레우스 부대원이나 헥토르 부대원이 적의 귀족 계급을 죽인 것을 그냥 지휘관이 죽였다고 썼느냐 하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중국 고대 역사책도 일개 병졸이 적장을 죽였다면 그냥 지휘관이 죽였다고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 글자에 따라 의미가 휙휙 바뀌는 한자의 특성상 세심하게 읽으면 정말 장수가 적장을 죽였는지, 병졸이 죽였는지 구분되게 써 놓은 경우도 있긴 하나, 어쨌든 병졸이 죽여도 그 이름을 쓰지 않고 그냥 부대장 이름을 쓴다는 것이다.
- 여기에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리아스》에서는 영웅들이 싸우기 전에 서로의 신분과 배경 등을 서로 확인하고 1대1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이 많으며, 선대에 친분이 있다거나, 상대의 격이 자기보다 낮다면 싸움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 그리스라 하면 방진을 짠 싸움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일리아스》보다 시대적으로 뒤의 일이고, 폴리스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이전인 미케네 ~ 암흑기 그리스의 전쟁은 실제로 이런 형식이 많았다. 작성 시기상 그리스 암흑기의 작품인 《일리아스》가 그보다 더 이전 시대인 미케네 시대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만큼 이것을 영웅들에 대한 미화로 보는가, 아니면 시대상의 고증인가로 구분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신화적인 서사시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근현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일단 트로이아 비슷한 도시가 존재했다는 것은 확인이 된 상태이다. 다만 《일리아스》에 서술된 만큼 큰 전쟁이 있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트로이아 유적 발굴 결과나 히타이트의 외교 문서 등의 자료를 보면 트로이아가 미케네와의 전쟁의 결과로 완전히 멸망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 《얼음과 불의 노래》로 유명한 조지 R.R. 마틴은 상술했던 《일리아스》의 중립적 서술을 극찬했다. 특히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에서는 누가 영웅이고 누가 악역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며, 한 진영의 영웅이라면 반대편 진영에게는 악당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