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영유권 주장 지역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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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대만
대만이 주장하는 미수복 지역(영유권을 주장하나 실질적인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행정구역)에 대하여 다루는 문서이다. 대부분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 중이며, 그 밖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지만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과 영유권도 주장하지 않는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토를 전부 다 회복할 가망도 특별한 일이 없이는 어려워보이고, 게다가 지금의 중국 땅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1912년 기준 청나라의 명목상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 영토만 보면 면적으로 세계 제 2의 대국이 되며 캐나다보다도 큰 나라가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바로 중화민국이 청나라의 계승 국가임을 계속 주장하지 않으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보고 '청나라 계승 국가는 우리고 쟤네는 우리한테서 떨어져 나간 불법 집단임!'이라는 주장에 스스로 말려드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청나라 계승국임을 포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떨어져 나간 집단으로 되어버리면,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 해방한답시고 침공해 와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 독립' 시 전쟁도 불사한다고 반분열국가법까지 만들어서 단단히 엄포를 놓고 있다.[5] 물론 조국 땅을 소련놈들에게 팔아먹은 빨갱이들이 헛소리한다고 하는 중화민국 정통론자(범람연맹 중에서도 극도로 강경한 보수파)야 있을 수 있겠지만[6] , 사실 현재 대다수의 대만인들에게 위 중화민국 강역은 선언적 의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을 비롯한 범록연맹에서는 저 강역을 완강히 부정하려고 애쓰는 중이고.
타이베이와 가오슝에는 장제스 국민당 정부 시절, 대륙 수복을 꿈꾸며 도로명을 대만 미수복지구로 도배를 해놓았다. 타이베이에서는 영문 표기가 한어병음으로 되어 있지만, 가오슝에서는 중국에 있는 지명인데도 통용병음으로 되어 있다.
대만이 주장하는 각 국가별 미수복 영토는 중화민국/외교 문서도 참고.
현재 대만에서는 자신들의 미수복지구가 얼마나 되는지도 오락가락한다. 예를 들어 대만은 2012년에 헌법 해석을 고쳐서 멍구(몽골) 지방, 속칭 외몽골 지역이 몽골로서 독립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몽골의 전신인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립을 국민정부가 헌법 정식 반포(1947년) 이전에 승인했다가(1946년) 국부천대 이후 해당 조치를 취소(1953년)하고 다시 해당 지역을 명목상의 자국 영토로 취급해 버리는 등 오락가락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다가 2012년에 1946년의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던 게 유효하다고 해석을 고쳐서 몽골이 독립국으로서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대만이 자국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간주하는 몽골 지방의 영역에는 그 전까지 계속 자기 영토로 주장했던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 지역도 포함되기에 대만의 관점에서는 몽골과 러시아의 의사와 무관하게 투바 일대가 몽골의 영토인 것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는 과거의 몽고 지방과 실제 독립국 몽골의 강역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몰라서다. 그냥 지도 제작자가 중화민국 명목상 영토에서 몽고 지방을 빼버리고 몽골국으로 처리해서이다. 그래서 다른 관점으로는 현실적으로 미수복지구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를 그냥 동일시한다.
대만 독립론이 이미 다수의 대만인들에게 익숙한 중화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민심의 괴리가 있기 때문에 대안으로 나온 것으로 '중화민국 독립',[7] 줄여서 화독(華獨) 또는 국독(國獨)이라는 논법이 있다. 화독의 논법에 따르면 중화민국의 영토는 현재의 대만 지구(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남중국해 내 실효 지배 영토)만 해당되고 위 강역은 부정된다. "중화민국이 본래의 중국이 맞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독립해서 떨어져 나갔음"이라는 논법을 쓰는 소위 대륙 독립론, 줄여서 육독(陸獨)[8] 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대만 독립론자들 중 일부 강경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대만의 주권이 결정되지 않았고 중화민국의 대만 지배는 무효라는 관점을 취하는데, 이들은 "중화민국이 현재 존재한다면 진먼·마쭈 지구만을 영토로 가지고 있음"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중화민국이 국부천대를 할 당시에 중국 대륙에는 12개의 직할시(광역시 격)가 있었다. 당시에는 원할시(院轄市)라고 했다.[9]
국부천대 후에 타이완 성에서 분리된 6개 직할시가 추가되었다. 아래의 표는 그 직할시를 정리한 것이다. 2018년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 직할시인 곳은 진하게 표시된 4곳이다.
이른바 동북 9성(東北九省). 당시 만주는 일본 등의 투자로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었기에 성이 많았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삼성과 내몽골자치구등.
새북 4성(塞北四省)[15] .
화북 6성(華北六省)
화중 7성(華中七省)
※ 대륙 함락 후인 1951년 9월, 다천 섬(大陳島)을 거점으로 '중화민국 저장성 정부'를 재건하였다. 1953년 절강성 정부는 대만으로 옮겨갔고, 실효지배하고 있던 지역에 1954년 4현 2관리국(온령현(溫嶺縣) 임해현(臨海縣) 평양현(平陽縣) 옥환현(玉環縣) 어산관리국(漁山管理局) 죽여관리국(竹嶼管理局))을 설치하였다. 이 때 면적은 17㎢, 인구 18,000명 가량을 실효지배하고 있었다. 1955년 중공군의 대대적 공세로 1월 21일 이장산다오(一江山島)가 함락되고, 사실상 대세가 기울어지자 2월, 미 제7함대의 호위 하에 군인과 주민의 철수작전이 개시되고, 2월 11일 장징궈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내리면서 절강성 정부의 폐지를 선언했다. 철수한 주민들은 주로 이란 현으로 이주했다.
화남 6성(華南六省). 볼드체는 실효통치하는 행정구역이나, 동성(凍省: 성 기능 정지 및 허급화)에 따라 실질적인 성 행정 업무는 하지 않고 있다.
※ 전지역 실효통치(이란현의 댜오위타이 제외). 6개 직할시는 이제는 타이완 성에 속하지 않으나 국부천대 당시에는 타이완 성에 속하였으므로 여기 정리함.
'지방'은 대륙 통치 시절에도 명목상으로만 존재한 행정구역이다. 청나라 멸망 후 몽골은 러시아, 티베트는 영국의 영향력 아래 각각 들어가 사실상 독립 국가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으로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몽골은 완전한 주권 국가로 독립했다.
멍구 지방은 대부분 몽골국 영토에 속하며, 2012년에 중화민국은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여 몽골 땅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다. 다만 중화민국 헌법과 그 수정 조항에 따라서 영토 변경을 한 것은 아니며, 헌법 해석을 변경해 '몽골은 고유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한 것일 뿐이다. 원래 몽골은 청나라 영토였다가 신해혁명 이후 중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소련의 도움을 얻어 공산주의 국가로 독립할 수 있었는데, 중화민국은 소련의 압력으로 인해 몽골을 승인했지만, 국부천대 무렵에 소련과 단교하면서 몽골 승인을 철회했다. 이 때문에 '고유의 강역이 아니다'라는 해석이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명목상 행정구역 '멍구 지방'과 실제 몽골국 영토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33] . 가령 몽골국 영토가 아니지만 멍구 지방에 속하는 땅, 또는 몽골국 영토지만 멍구 지방에 속하지 않는 땅은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인가? 이러니 '명목상 행정구역 멍구 지방'이 폐지되었다기보다는 멍구 지방의 존재와 몽골국 독립 인정 사이에서 생기는 모순을 그냥 파헤치지 않고 덮어두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중화인민공화국 관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즉 멍구 지방은 명목상으로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문제는 중화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대륙 수복을 하지 않는 한 해결되기는 어렵다.
중화민국은 청나라의 계승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공)을 포함한 13개국이 지배하는 영토를 청나라부터 내려온 영토, 또는 청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던 영토라 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은 현재 시점에서는 중국계 민족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지만 중국과 그 분쟁국에 걸쳐 거주하는 양국 모두에서 소수민족인 민족이 거주하며 그 민족에는 독립된 모국이 없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중화민국에서 대륙 지구라고 할 때는 미수복 지구 전체를 의미했는데, 현재는 양안 관계에 대한 행정원 조례에 따라 '중국 공산당 치하의 지구'를 의미하게 되었다.
1. 개요[편집]
대만이 주장하는 미수복 지역(영유권을 주장하나 실질적인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행정구역)에 대하여 다루는 문서이다. 대부분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 중이며, 그 밖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지만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과 영유권도 주장하지 않는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2. 영유권 주장[편집]
이 영토를 전부 다 회복할 가망도 특별한 일이 없이는 어려워보이고, 게다가 지금의 중국 땅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1912년 기준 청나라의 명목상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 영토만 보면 면적으로 세계 제 2의 대국이 되며 캐나다보다도 큰 나라가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바로 중화민국이 청나라의 계승 국가임을 계속 주장하지 않으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보고 '청나라 계승 국가는 우리고 쟤네는 우리한테서 떨어져 나간 불법 집단임!'이라는 주장에 스스로 말려드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청나라 계승국임을 포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떨어져 나간 집단으로 되어버리면,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 해방한답시고 침공해 와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 독립' 시 전쟁도 불사한다고 반분열국가법까지 만들어서 단단히 엄포를 놓고 있다.[5] 물론 조국 땅을 소련놈들에게 팔아먹은 빨갱이들이 헛소리한다고 하는 중화민국 정통론자(범람연맹 중에서도 극도로 강경한 보수파)야 있을 수 있겠지만[6] , 사실 현재 대다수의 대만인들에게 위 중화민국 강역은 선언적 의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을 비롯한 범록연맹에서는 저 강역을 완강히 부정하려고 애쓰는 중이고.
타이베이와 가오슝에는 장제스 국민당 정부 시절, 대륙 수복을 꿈꾸며 도로명을 대만 미수복지구로 도배를 해놓았다. 타이베이에서는 영문 표기가 한어병음으로 되어 있지만, 가오슝에서는 중국에 있는 지명인데도 통용병음으로 되어 있다.
대만이 주장하는 각 국가별 미수복 영토는 중화민국/외교 문서도 참고.
2.1. 몽골과 투바 관련 2012년 헌법 해석[편집]
현재 대만에서는 자신들의 미수복지구가 얼마나 되는지도 오락가락한다. 예를 들어 대만은 2012년에 헌법 해석을 고쳐서 멍구(몽골) 지방, 속칭 외몽골 지역이 몽골로서 독립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몽골의 전신인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립을 국민정부가 헌법 정식 반포(1947년) 이전에 승인했다가(1946년) 국부천대 이후 해당 조치를 취소(1953년)하고 다시 해당 지역을 명목상의 자국 영토로 취급해 버리는 등 오락가락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다가 2012년에 1946년의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던 게 유효하다고 해석을 고쳐서 몽골이 독립국으로서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대만이 자국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간주하는 몽골 지방의 영역에는 그 전까지 계속 자기 영토로 주장했던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 지역도 포함되기에 대만의 관점에서는 몽골과 러시아의 의사와 무관하게 투바 일대가 몽골의 영토인 것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는 과거의 몽고 지방과 실제 독립국 몽골의 강역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몰라서다. 그냥 지도 제작자가 중화민국 명목상 영토에서 몽고 지방을 빼버리고 몽골국으로 처리해서이다. 그래서 다른 관점으로는 현실적으로 미수복지구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를 그냥 동일시한다.
2.2. 대만 독립론의 입장[편집]
대만 독립론이 이미 다수의 대만인들에게 익숙한 중화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민심의 괴리가 있기 때문에 대안으로 나온 것으로 '중화민국 독립',[7] 줄여서 화독(華獨) 또는 국독(國獨)이라는 논법이 있다. 화독의 논법에 따르면 중화민국의 영토는 현재의 대만 지구(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남중국해 내 실효 지배 영토)만 해당되고 위 강역은 부정된다. "중화민국이 본래의 중국이 맞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독립해서 떨어져 나갔음"이라는 논법을 쓰는 소위 대륙 독립론, 줄여서 육독(陸獨)[8] 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대만 독립론자들 중 일부 강경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대만의 주권이 결정되지 않았고 중화민국의 대만 지배는 무효라는 관점을 취하는데, 이들은 "중화민국이 현재 존재한다면 진먼·마쭈 지구만을 영토로 가지고 있음"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3. 직할시[편집]
중화민국이 국부천대를 할 당시에 중국 대륙에는 12개의 직할시(광역시 격)가 있었다. 당시에는 원할시(院轄市)라고 했다.[9]
국부천대 후에 타이완 성에서 분리된 6개 직할시가 추가되었다. 아래의 표는 그 직할시를 정리한 것이다. 2018년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 직할시인 곳은 진하게 표시된 4곳이다.
- 난징: 1927년 장쑤성에서 분리, 신설.
- 상하이: 1927년 쑹후(淞滬) 상부를 직할시로 개편. 쑹후 상부는 북양정부 시절 군벌 쑨촨팡이 신설한 행정구역으로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쑨촨팡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행정구역이었기에 그 지위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 우한: 한커우(漢口), 우창(武昌), 한양(漢陽)의 세 도시를 1927년 '우한'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고 후베이 성에서 분리해 직할시로 삼았다. 1929년 한커우로 명칭을 환원하였고 1931년에 폐지해 후베이성 소속이 되었으나 1947년 다시 분리해 직할시로 삼았다. 1949년 한커우 입성 직후 중국 공산당이 한커우, 우창, 한양을 통합해 우한 시를 신설하였다.
- 광저우: 1930년 광둥 성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으나나 동년에 폐지, 환원되었으며 1947년에 다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다.
- 충칭: 1927년 쓰촨 성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다.
- 시안: 1947년 산시 성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다. 1933년 '시징(西京)'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신설 계획이 있었다.
- 베이핑: 오늘날의 베이징. 1928년 허베이 성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고, 이 때 '북쪽의 평정을 되찾았다'고 해서 '베이핑'으로 개칭하였다.[10] 1930년 폐지하고 허베이 성에 환원시켰으나 동년 다시 분리해 직할시가 되었다. 사족으로 베이핑 시절의 천안문에는 마오쩌둥이 아닌 장제스 초상이 걸려있었다. #
- 톈진: 1928년 허베이성에서 분리해 직할시로 삼았다. 1930년 폐지하고 허베이 성으로 환원시켰으나 1935년 복구되었다.
- 칭다오: 1929년 산둥성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다.
- 다롄: 1947년 랴오닝성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국민정부 수립 이전인 1905년부터 관동주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조차지였으며 중일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음에도 관동주는 국민정부에게 반환되지 않고 소련의 조차지로 넘어갔다. 소련은 국부천대 이후인 1950년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다롄을 반환했으며 따라서 국민정부가 실질적으로 다롄을 지배한 적은 없다.
- 선양: 1947년 랴오닝성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 하얼빈: 1947년 헤이룽장성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하얼빈은 이미 중국 공산당이 장악한 상태였으므로 국민정부는 직할시로서의 하얼빈을 지배한 적은 없다.
- 타이베이: 임시수도로서 1967년 타이완성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타이완 성 정부 소재지였지만 성 정부는 1956년 난터우로 이전하였다. 난터우의 성정부는 2018년 폐지되었다.
- 가오슝: 실질지배영역의 제2도시로 1979년 타이완성 가오슝시와 하이난 특별행정구 (중 중화민국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땅)가 합병되어 신설되었다. 2010년 타이완성 가오슝현이 가오슝 직할시로 편입되었다.
- 신베이, 타이중, 타이난: 2010년 타이완성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 타오위안: 2014년 타이완성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4. 성[편집]
4.1. 동북(만주)[편집]
이른바 동북 9성(東北九省). 당시 만주는 일본 등의 투자로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었기에 성이 많았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삼성과 내몽골자치구등.
- 랴오닝 성(遼寧省) - 성도: 선양(瀋陽)직할시
- 4시 22현
- 안둥 성(安東省) - 성도: 퉁화(通化)
- 2시 18현
- 지린 성(吉林省) - 성도: 지린(吉林)
- 2시 18현 1기
- 쑹장 성(松江省) - 성도: 무단장(牧丹江)
- 2시 15현
- 허장성(合江省) - 성도: 자무쓰(佳木斯)
- 1시 17현
-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 성도: 베이안(北安)
- 1시 25현 1기
- 싱안 성(興安省) - 성도: 하일라르(海拉爾)
- 1시 7현 11기
4.2. 내몽골[편집]
새북 4성(塞北四省)[15] .
- 닝샤 성(寧夏省) - 성도: 인촨(銀川)
- 1시 13현 2기 2설치국
4.3. 서부[편집]
- 칭하이 성(靑海省): 성도 - 시닝(西寧)
- 1시 19현 2설치국 29기
4.4. 화북[편집]
화북 6성(華北六省)
- 산시 성(山西省) - 성도: 타이위안(太原)
- 1시 105현.
- 산둥 성(山東省) - 성도: 지난(濟南)
- 3시 107현 1정치국 1개간구
- 간쑤 성(甘肅省) - 성도: 란저우(蘭州)
- 1시 69현 2설치국
- 산시 성(陝西省) - 성도: 시안(西安)직할시
- 92현 1설치국
4.5. 화중[편집]
화중 7성(華中七省)
- 장쑤 성(江蘇省) - 성도: 전장(鎭江)
- 2시 62현
※ 대륙 함락 후인 1951년 9월, 다천 섬(大陳島)을 거점으로 '중화민국 저장성 정부'를 재건하였다. 1953년 절강성 정부는 대만으로 옮겨갔고, 실효지배하고 있던 지역에 1954년 4현 2관리국(온령현(溫嶺縣) 임해현(臨海縣) 평양현(平陽縣) 옥환현(玉環縣) 어산관리국(漁山管理局) 죽여관리국(竹嶼管理局))을 설치하였다. 이 때 면적은 17㎢, 인구 18,000명 가량을 실효지배하고 있었다. 1955년 중공군의 대대적 공세로 1월 21일 이장산다오(一江山島)가 함락되고, 사실상 대세가 기울어지자 2월, 미 제7함대의 호위 하에 군인과 주민의 철수작전이 개시되고, 2월 11일 장징궈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내리면서 절강성 정부의 폐지를 선언했다. 철수한 주민들은 주로 이란 현으로 이주했다.
- 장시 성(江西省) - 성도: 난창(南昌)
- 1시 81현.
4.6. 화남[편집]
화남 6성(華南六省). 볼드체는 실효통치하는 행정구역이나, 동성(凍省: 성 기능 정지 및 허급화)에 따라 실질적인 성 행정 업무는 하지 않고 있다.
- 푸젠 성(福建省) - 성도: 푸저우(福州), 금문현(金門縣:임시)
- 2시 67현(중 2현 실효통치)
※ 전지역 실효통치(이란현의 댜오위타이 제외). 6개 직할시는 이제는 타이완 성에 속하지 않으나 국부천대 당시에는 타이완 성에 속하였으므로 여기 정리함.
- 구이저우 성(貴州省) - 성도: 구이양(貴陽)
- 1시 79현
- 윈난 성(雲南省) - 성도: 쿤밍(昆明)
- 1시 113현 15설치국
5. 지방[편집]
'지방'은 대륙 통치 시절에도 명목상으로만 존재한 행정구역이다. 청나라 멸망 후 몽골은 러시아, 티베트는 영국의 영향력 아래 각각 들어가 사실상 독립 국가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으로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몽골은 완전한 주권 국가로 독립했다.
멍구 지방은 대부분 몽골국 영토에 속하며, 2012년에 중화민국은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여 몽골 땅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다. 다만 중화민국 헌법과 그 수정 조항에 따라서 영토 변경을 한 것은 아니며, 헌법 해석을 변경해 '몽골은 고유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한 것일 뿐이다. 원래 몽골은 청나라 영토였다가 신해혁명 이후 중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소련의 도움을 얻어 공산주의 국가로 독립할 수 있었는데, 중화민국은 소련의 압력으로 인해 몽골을 승인했지만, 국부천대 무렵에 소련과 단교하면서 몽골 승인을 철회했다. 이 때문에 '고유의 강역이 아니다'라는 해석이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명목상 행정구역 '멍구 지방'과 실제 몽골국 영토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33] . 가령 몽골국 영토가 아니지만 멍구 지방에 속하는 땅, 또는 몽골국 영토지만 멍구 지방에 속하지 않는 땅은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인가? 이러니 '명목상 행정구역 멍구 지방'이 폐지되었다기보다는 멍구 지방의 존재와 몽골국 독립 인정 사이에서 생기는 모순을 그냥 파헤치지 않고 덮어두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중화인민공화국 관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즉 멍구 지방은 명목상으로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문제는 중화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대륙 수복을 하지 않는 한 해결되기는 어렵다.
6. 특별행정구[편집]
7.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지역[편집]
중화민국은 청나라의 계승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공)을 포함한 13개국이 지배하는 영토를 청나라부터 내려온 영토, 또는 청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던 영토라 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은 현재 시점에서는 중국계 민족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지만 중국과 그 분쟁국에 걸쳐 거주하는 양국 모두에서 소수민족인 민족이 거주하며 그 민족에는 독립된 모국이 없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중화민국에서 대륙 지구라고 할 때는 미수복 지구 전체를 의미했는데, 현재는 양안 관계에 대한 행정원 조례에 따라 '중국 공산당 치하의 지구'를 의미하게 되었다.
- 북한(한국)과의 분쟁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와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 중 겹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 겹치는 부분을 실제로 통치하는 나라는 둘 다 아니며, 북한과 중공이 나눠 갖고 있다[35] . 물론 중화민국은 북한이 실효 지배하는 문제의 지역을 실효 지배한 적이 없다. 중화민국은 간도 협약 이전에 청나라가 주장하던 원안인 홍단수와 리명수를 잇는 선을 국경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 바다나 강에 있는 도서 지역 영토 분쟁을 제외하고는 중화민국의 영토 분쟁 가운데 가장 좁은 분쟁 지역이기 때문에 잘 언급되지 않지만,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삼지연시의 대부분과 대홍단군 대홍단읍을 포함한 북부 지역이 포함되기 때문에 거주 인구가 3~4만명에 이른다. 강동육십사둔과 탕누우량하이(투바) 지역을 제외한 러시아와의 영토분쟁보다는 면적상으로도 넓은 규모이다.
이 부분을 한 나라가 전부 차지하지 않고 두 나라가 나눠 갖고 있는 현 상황 때문에,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극우들 그리고 파룬궁 신도들은 북한(김일성)과 중공(저우언라이)을 씹을 거리를 하나 더 얻었다. 서로 '북한이 중공에 바쳤다(또는 팔아먹었다)', '중공이 북한에 바쳤다' 이러고 있다. 하지만 영토 문제로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두 나라 사이의 여러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걸로 싸우지는 않는다. 어차피 서로 상대편이 실질적으로 가진 땅은 아니니까 그런 것일지도.
이 부분을 한 나라가 전부 차지하지 않고 두 나라가 나눠 갖고 있는 현 상황 때문에,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극우들 그리고 파룬궁 신도들은 북한(김일성)과 중공(저우언라이)을 씹을 거리를 하나 더 얻었다. 서로 '북한이 중공에 바쳤다(또는 팔아먹었다)', '중공이 북한에 바쳤다' 이러고 있다. 하지만 영토 문제로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두 나라 사이의 여러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걸로 싸우지는 않는다. 어차피 서로 상대편이 실질적으로 가진 땅은 아니니까 그런 것일지도.
- 베트남과의 분쟁
스프래틀리 군도이외에도 백룡미도 분쟁이 있다. 백룡미도는 중국과 베트남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던 통킹만의 섬인데 2004년에 중공이 베트남의 영유권을 인정했으나 중화민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 러시아와의 분쟁
외몽골에서 소련으로 편입된 탕누우량하이(투바) 지역과 볼쇼이우수리스키 섬 동반부, 아바가이투 섬, 강동육십사둔 등의 분쟁 지역이 있다. 볼쇼이우수리스키 섬 동반부, 아바가이투 섬은 일부 지역을 중공이 돌려받고 나머지 일부의 영유권을 포기했으나 중화민국은 계속 영유권을 주장한다. 특이하게도 볼쇼이우수리스키 섬의 경우 중화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의 최동단인데, 중공의 최동단은 볼쇼이우수리스키섬이 아니다. 강동육십사둔의 경우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 강 이북 지역이 러시아에게 할양된 가운데 만주족이 거주한다는 이유로 아무르 강 이북 지역 중 유일하게 청나라 관할에 둔 지역인데 1900년 의화단 운동 당시 러시아군이 중국인들을 모두 추방하고 이 지역을 점령했다.
- 미얀마와의 분쟁
청나라가 미얀마에 조차했던 난칸(남칸)과, 장신포를 중공이 미얀마땅으로 인정했으나 중화민국은 인정하지 않는다.
[1] 지도에 오류가 있는데, 파미르 고원 쪽의 영유권 주장지역을 그린다는 것이 국경 안쪽의 신장성 카슈가르에 그려져 있다.[2] 이 강역을 추해당(秋海棠)이라고도 부르는데, 외관이 추해당(베고니아)의 잎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의 시사 군도와 난사 군도와 같은 분쟁 지역은 섬과 암초들이 워낙 작다 보니 위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3] 짙은 초록색이 실제 지배 중인 대만 지구(타이완 섬, 펑후, 진먼, 마쭈).[4] 참고로 여기에는 한반도에 북한을 북한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 영토으로 간주하기도 했다.[5] 사실 중화인민공화국이 92공식에 따라 묵인 중인 중화민국 정통론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가 부정된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극도로 혐오하는 대만 독립론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이 자국의 존재를 부정하면 묵인하지만 자국의 존재를 인정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6] 사실 이런 의문도 던질 수 있다. 티베트 독립 운동이 만약에 성공한다면 중화민국은 명목상 영토를 또 축소할 것인가? 반대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토를 확장한다면 중화민국 명목상 영토도 커지는 것인가? 후자는 홍콩, 마카오의 사례도 있는데, 이 지역이 자국의 명목상 행정구역 광둥성의 일부라는 주장은 거의 없다.[7] 물론 중화민국 정통론도 당연히 중화민국이 독립국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하지만 중화권에서 '독립'이라는 단어는 기존의 중국(중화민국이든 중화인민공화국이든)이 독립국임을 강조하는 용법이 아니라, 대만 독립처럼 중국의 강역에서 일부 지역을 분리 독립시키자는 입장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중화민국 독립'이란 용어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용어라서, "정통 중국인 중화민국이 독립국이다"라는 입장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쓰는 대만이 중국에서 벗어난 독립국이다"라는 입장을 지칭한다.[8] '떨어져 나간' 지역이 너무 넓어 보이지만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영국에서 미국이 독립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다.[9] 중국 대륙이나 대만이나 성할시, 현할시 같은 용어가 쓰이는데(중국 대륙에선 이젠 안 쓰지만서도), 이 도시들은 앞에 붙은 말보다 한 단계 아래를 뜻한다. 원할시의 원은 중화민국 정부(행정원)를 뜻한다. 정부 바로 아래니까, 성과 동급인 것이다. 그리고 성할시는 성 바로 아래니까 현과 동급인 것이다. 그리고 현할시는 현 바로 아래니까 진, 향 등과 동급인 것. 그러다가 1994년 중화민국에서는 원할시라는 명칭을 직할시로 개정하였다. 이때 이후로 직할시 목록은 실효지배 중인 곳으로만 나타내게 됐다. 즉 타이베이와 가오슝은 원할시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신베이, 타이중, 타이난, 타오위안은 아니다.[10] 동해시 북평동과는 무관하다.[11] 일부지역 북한 실효지배[12] 일명 興京[13] 기(旗)는 몽골인의 행정구역으로 각각 시(市), 현(縣)에 해당함.[14] 일부지역 북한 실효지배[15] 요새(塞: 만리장성을 가리킨다) 북쪽에 있는 4개의 성이란 뜻이다.[16] 오늘날의 장자커우(張家口).[17] 몽골 실효지배[18] 오늘날의 후허하오터. 몽골어로는 호호트. 구이쑤이(歸綏)는 북원이 한족 포로들을 정착시켜 세운 구시가지인 귀화성과 청나라가 세운 신시가지인 수원성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한글자씩 따왔다.[19] 도르베드는 몽골어로 '넷'이라는 뜻으로 청나라 수립에 일조한 공로로 이 지역 일대를 영지로 배정받은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후손 4형제를 가리킨다. 때문에 한자로 음차한 대부분의 몽골계 지명과 달리 '사자부락'이라는 이름으로 훈차했다.[20] 오늘날의 우루무치. 迪化란 점점 교화시킨다는 뜻이다.[21] 이 때문에 티베트가 점령한 지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시짱 자치구의 일부가 되었고, 시캉 성의 나머지는 쓰촨 성의 일부가 되었다.[22] 오늘날의 바오딩(保定)[23] 오늘날의 스자좡(石家莊)[24] 일부만 실효지배(롄장으로 이관)[25] 일부만 실효지배.[26] 일부만 실효지배(진먼으로 이관)[27] 1956년 성 행정 업무 이관.[28]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선전시 일대[29] 현재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 광시 좡족 자치구[30] 내몽골은 포함하지 않는다. 대부분 몽골 실효 지배, 일부 러시아 실효 지배(투바 공화국). 2012년 헌법 해석 변경으로 몽골 독립 인정.[31] 오늘날의 울란바토르.[32]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 실효 지배, 일부 지역 인도, 부탄 실효 지배. 인도는 중화인민공화국 실효 지배 중인 일부 지역(아크사이친)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33] 중화민국에서 나오는 세계 지도에서 멍구 지방의 영역을 그대로 독립국 몽골 땅으로 그려놓는 오류를 많이 저지른다.[34] 현재 여기에 속했던 일부 무인도만이 중화민국의 실질적 영토이며, 어차피 무인도뿐이라 특별행정구 정부를 따로 두지는 않았다. 중화민국군이 주둔하는 중이다. 그리고 1979년 이 섬들을 모두 가오슝 시 치진 구에 편입시켰다. 따라서 현재는 여기 속한 실질적 영토는 없다.[35] 면적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이며 중공의 실제 영토보다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이며 북한의 실제 영토가 훨씬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