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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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주시[편집]


1922년 지금의 충주시 성서동에 설립된 충주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충청북도 최초의 유치원이며, 도청 소재지인 청주보다 7년, 제주도보다도 2년 빨랐다.[1] 충주시가 아직 충주군이던 시절에 설립된 셈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음성군에서의 원정 통학이 빈번했으며[2],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괴산군, 제천시[3]는 물론 심하면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서도 오는 경우가 있다. 주로 괴산군 감물면, 불정면, 장연면에서 충주로 오는 모양. 다만, 충주에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1년 천주교 청주교구 교현동 성당 부설로 설립된 해성유치원이다. 이 곳의 최초의 원생은 1965년~1967년생, 첫 졸업생은 현재 58~59세이다. 충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6년~191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7~108세이다. 충주시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은 옛 중원군 지역에는 충주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설립된 이후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그 때문에 주덕읍, 동량면 등지에 사는 유아들이 충북선 기차를 타고 충주 시내로 가서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 중원군 지역: 1981년 주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엄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수안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대소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11곳이고, 모두 시내에만 몰려 있다. 이런 이유로 주덕읍과 면 단위 지역에서는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시내로 가거나 원주시 등 타 지역으로 가야 한다. 1960년대 인구는 23만 3,420명이었으나, 1990년 19만 3,608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1998년 21만 8,843명으로 회복했으나 2006년 20만 6,236명으로 줄어들었으며, 21만 186명으로 회복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지만[4], 인구 약 2만 명에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어서,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의 숫자는 적다.

앙성면 단암리는 충주보다 여주, 원주에 더 가까워 단암리에 사는 유아들 중 이들 도시로 원정 가서 유치원을 다니는 유아들도 볼 수 있다.

충주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안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충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안, 장, 임, 윤씨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구자철은 충주에서 유치원을 다녔다.[5]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 제천시[편집]


1924년 제천시 고암동 (당시 제천군 제천면 고암리)에 설립된 제천유치원이 최초로, 제천시가 아직 제천군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제주도와 설립 동기. 제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5~106세이다. 제천에서도 오랫동안 시골로 남아 있는 예전의 제원군 지역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제천시 고암동, 장락동, 영천동, 서부동, 교동, 남천동, 신백동, 하소동, 송학면 무도리, 도화리 일대에서 살았다.

  • 옛 제원군 지역: 1981년 백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청풍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지리적 특성상 12~2월에는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 4월에도 눈놀이가 가능하며[6], 5월에도 외투를 입을 정도이다.

충주시보다 인구가 적지만[7] 사립유치원은 충주보다 1곳 많은 12곳이 있고 모두 시내에만 있다.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의 수가 많은 편인데, 제천시 인구가 1960년대 15만 5,922명에서 1980년 17만 292명을 찍은 뒤 감소해서 13만 3,018명이 되어[8] 약 11,238명에 1곳의 사립유치원이 있는 셈이다. 단양군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관계로 단양군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찾아 여기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백운면, 수산면, 청풍면 등 일부 면 지역에서는 아예 충주원주로 넘어가서 유치원을 다닌다. 심지어는 다른 지역에서 넘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주천면, 한반도면, 남면, 영월읍과 멀리는 평창군 평창읍에서 도 경계를 넘어서 제천으로 원정 오기도 한다. 정선군의 경우는 제천과 지나치게 먼 탓에 정선에서 제천으로 원정 오는 유아는 영월, 평창에 비해 매우 적고 그나마도 신동읍 출신이 대부분이다. 제천시 내에서도 원정을 가는 경우가 있는데 봉양읍 미당리[9], 금성면 동막리 등 제천 시내와 가까운 지역은 아예 시내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전국에서 지씨[10]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살아서 제천에서는 智씨 성을 가진 유치원생을 보기 쉬운 편이다. 다만, 그 성씨는 순위권에서 벗어나 있는데 제천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장, 권, 조, 윤, 안씨이기 때문이다.

배구선수 정지윤이 제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 청주시[편집]


1929년 설립된 상당유치원이 최초로, 청주시가 아직 청주군이었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당시의 청주군 청주면은 지금의 청주시 상당구였으므로 상당유치원은 청주시 최초이자 상당구 최초의 유치원이 되는 셈이다. 통합 이전의 청원군에는[11] 청주 시내보다 52년 늦은 1981년에야 유치원이 들어왔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증평군[12]에서도 충북선 기차를 타고 청주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그 건수가 줄었으나 여전히 증평에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제법 있고[13],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진천군[14], 괴산군[15], 보은군[16]에서 오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보은의 경우, 서산영덕고속도로 개통 이후 급속하게 원정 통학 건수가 늘었다. 청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0~101세이다.

1970년대 이전 청주시의 유치원은 주로 도시화가 상당히 진행된 현재의 상당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고, 청주시 편입 이후에도 한동안 시골로 남아 있던 청원구, 서원구, 흥덕구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서원구: 1981년 남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청원군 남이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흥덕구: 1981년 내곡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청원군 강서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청원구: 1981년 북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청원군 북이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충북에서 가장 많은 57곳 있는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오창읍, 오송읍, 내수읍[17], 남일면 등 읍면 지역에도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34만 8,554명이었던 인구가 2021년 84만 4,993명으로 2.5배 가량 늘어나[18] 사립유치원이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공립 단설유치원만 있는 옥산면에도 사립유치원이 설립되면서 사립유치원 수가 60곳을 넘어갈 수도 있다. 또한 서울[19], 부산, 대구[20] 등 기타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청주시 역시 시가지 팽창으로 옛 청주면->청주읍 지역에 있던 유치원들이 외곽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 보은군, 증평군, 괴산군 등 청주 근교의 군 지역[21]에 사립유치원이 부족한 관계로 보은군 내북면, 산외면, 회인면, 보은읍, 증평군 전체, 괴산군 청안면, 사리면 등에 사는 아이들이 청주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청주의 유치원생들이 청주 사투리를 많이 썼으나 외지인의 유입으로 사투리 억양은 상당히 희석되었고, 완전히 표준어로 바뀌고 있다. 다만, 경상도나 전라도 출신 부모를 둔 원생은 해당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나 아예 해당 사투리를 쓰기도 한다.

여담으로 청주는 비수도권에 일반구가 있는 도시들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22]이자 정규 4년제 사관학교가 있는 곳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23]이다.

청주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아서[24] 현재 청주의 유치원에서는 서울의 어느 자치구보다도 곽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쉽다. 그 밖에 경씨[25], 민씨[26], 반씨[27], 봉씨[28], 사씨[29], 신씨[30], 어씨[31], 음씨[32], 지씨[33] 성인 원생들, 충주 최씨인 원생들도 서울에 비해서는 보기 쉽다고 한다. 다만, 청주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신, 윤, 조, 오, 강씨 순서라 이런 성씨들도 10대 성씨보다는 적다.

청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유튜버 효기심[34], 댄서 허니제이[35], 배우 이이경[36], 체조선수 신재환[37]이 있다.

2021년 3월 29일 청주시의 유치원생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4. 증평군[편집]


1955년 증평읍 대동리의 증평교회에서 설립한 샛별유치원이 최초였으나, 1996년 샛별선교어린이집으로 용도를 변경하면서 현재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80년 설립된 증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참고로 당시 괴산군 관할이었으며, 충청북도의 군 가운데 가장 먼저 유치원이 들어온 곳이다. 증평초등학교 외에도 죽리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존재한다. 그 전에는 증평에 사는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청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지금도 드물지만 증평에 사는 아이들이 청주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하며, 도안면에 사는 경우는 거의 100% 증평읍으로 원정 통학을 한다. 간혹 괴산군 청안면, 사리면에 사는 유아들이 증평의 유치원으로 가기도 한다.[38] 증평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9년~195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4~75세이다. 또한 현재 34~35세인 1989년생들이 유치원으로 있을 때의 마지막 졸업생이며, 1990년생부터 이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린이집 졸업생이 됐다.

사립유치원은 2011년 증평읍에 설립된 동화나라유치원 1곳만 있다. 1960년대 약 3만 명, 1970년 3만 586명, 2003년 3만 1,159명이었던 증평군의 인구가 계속 늘어 2021년 3만 6,807명[39]으로, 보은군[40], 단양군[41]을 진작에 추월한 것으로도 모자라 거의 괴산군을 추월할 정도인데도 그 모양이다.[42]

증평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연씨 (곡산 연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증평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연, 최, 정, 장, 윤, 조, 신씨이기 때문이다. 충청도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김이박최'의 공식이 깨진 지역인 셈.

박보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 영동군[편집]


1957년 영동제일교회 부설 영동유치원이 최초였으나, 영동군의 인구 감소로 무기한 휴원 중이다. 소재지는 영동읍 계산리이다. 현존하는 곳은 1972년 천주교 청주교구 영동성당 부설로 설립된 대건유치원[43]이 최초이다. 영동군에 3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며, 황간면 남성리에 있는 루시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 2곳(대건유치원, 한빛유치원)은 모두 영동읍에 있다. 영동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1년~195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2~73세이다. 그 이전에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김천시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해야 했다. 지금도 영동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에서 사립유치원을 보내려면 대부분 영동읍에 있는 사립유치원으로 가고, 옥천이나 김천으로 가기도 한다.

영동군은 충청북도에 있지만 지리적인 이유로 폭설에 의한 휴원이 상대적으로 잦고[44], 4월까지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했을 정도라고 하며, 당시 영동군 주민들은 어린이날이 봄도 아니고 겨울이었다(...)고 할 정도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지리적인 이유로 인한 개발의 불리함[45]과 그에 따른 급격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지형상의 이유로 대전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데다, 영동군의 인구가 대전, 김천, 청주 등지로 유출되면서, 인구가 1960년대의 12만 3,564명에서 40% 수준인 4만 7,475명으로 추락했다.[46] 때문에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사립유치원을 설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동군은 정씨가 최씨보다 많아 정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영동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정, 최, 장, 손, 강, 전, 배씨이기 때문이다.

유튜버 성시훈한스밴드의 모든 멤버들[47]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6. 보은군[편집]


1972년 천주교 청주교구 보은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최초이다. (보은읍 삼산리 소재.) 보은군 최초이자 보은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다. 이런 이유로 성모유치원 원생들의 거주 지역도 매우 다양한데, 보은읍 삼산·교사·장신·죽전·이평·월송·봉평·강산리 외에 수한면 발산·후평리, 삼승면 원남리 등 원거리 통학생들도 보일 정도이다. 다만, 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48]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는데, 보은군에는 대학이 없기 때문이다.[49] 충청북도의 군 중에는 의외로 유치원이 일찍 들어왔으며[50], 경기도에도 여기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곳이 있다.[51] 이 곳의 첫 원생이 1966년~1968년생이라 첫 졸업생은 현재 57~58세이며, 보은이 고향인 58~59세 이상의 경우 형편이 돼야 청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시켰을 정도였다. 과거에는 속리산면에 법주사[52] 산하의 성림유치원이 있었으나, 2008년경 인구 감소에 따른 경영난으로 인해 폐원되면서 성모유치원이 보은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으로 남게 되었다.

산이 많은 지역적 특성상 매년 겨울폭설로 인한 휴원이 충청북도치고는 잦아서[53], 겨울에 눈이 오면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과 제설차들이 유치원 앞의 눈을 치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지형상의 이유로 대전, 청주 시가지가 보은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54] 대청댐 건설로 인해 회남면 일부 지역이 수몰되는 악재까지 겹쳐 보은군의 인구가 대전, 청주 등지로 유출되면서 인구가 1960년대의 11만 3,620명에서[55] 1991년 5만 2,270명까지 줄고 1992년 5만 3,510명으로 잠깐 회복한 뒤 계속 줄어 2021년에는 1960년대의 1/4 정도인 3만 2,412명으로 줄어들어[56] 사립유치원들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설립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차후 보은군 인구의 감소가 지속되면 보은군 역시 양구군[57], 단양군[58] 등과 함께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아예 다른 지역의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하는데 수한면, 삼승면, 탄부면, 속리산면, 마로면, 장안면에 사는 아이들은 보은읍의 성모유치원으로, 회인면과 회남면은 대전으로, 산외면과 내북면은 청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보은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송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보은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윤, 강, 송, 조, 안씨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이정근이 보은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7. 음성군[편집]


1977년 설립된 신명유치원이 최초이다. 음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2~53세이다. 이 동네가 고향인 50대 이상인 어른들은 형편이 돼야 청주나 충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갈 수 있었다. 현재는 이천시 장호원읍, 충주시 신니면에서 음성으로 원정 오는 경우도 있다.

사립유치원은 금왕읍 1곳, 대소면 2곳, 감곡면 1곳 등 총 4곳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음성읍보다 금왕읍의 인구가 더 많은[59] 도시 구조가 원인이다. 인구는 1960년대의 12만 5,108명에서 1990년 7만 4,717명으로 추락했다가 9만 3,153명으로 회복[60]되어 사립유치원 숫자가 늘었는데, 그마저도 금왕읍과 대소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음성읍이나 기타 면에 사는 아이들은 아예 충주시 등 인근 도시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으며, 삼성면 등지에서는 아예 청주시로 가는 건수가 많다.

충북혁신도시로 인해 맹동면에 사립유치원이 생길 수도 있다. 그 전에는 음성에 사는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충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61]하기도 했다.

음성은 전국에서 4번째로 반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62] 원생이나 교사 중 반씨 성을 가진 경우가 서울보다는 많다고 한다. 다만, 반씨는 10대 성씨 밖인데 음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장, 윤, 권, 안씨이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황지애[63]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5월 14일 음성군의 병설유치원 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5월 15일 교사마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교사의 확진 판정은 2021년 5월 14일 원생의 확진 때문에 유치원생과 교사가 검사를 받아 교사가 양성을 받은 것이다. 다만, 원생 중 2명은 이천에서 검사를 받아 이천 확진자로 분류되었다.


8. 옥천군[편집]


1977년 옥천읍 삼양리의 천주교 청주교구 옥천 성당 부설의 성모유치원이 최초였으나, 현재 상태는 불명. 1981년 군남초등학교, 군서초등학교, 동이초등학교, 안내초등학교, 안남초등학교, 이원초등학교, 죽향초등학교, 증약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었다. 그 전에는 옥천에 사는 아이들이 옥천역이나 이원역, 지탄역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대전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은 4곳 있으며, 그마저도 옥천읍에 몰려 있다. 옥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2~53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전과 산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데다 대청댐 건설로 안내면, 안남면 일부가 수몰되는 악재까지 겹쳐 인구가 1960년대의 11만 1,991명에서 이의 절반 수준인 5만 527명으로 추락해[64] 사립유치원이 경영난을 감수하고 추가로 설립되지 못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옥천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아예 대전광역시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북부는 원주로 기울고 남부는 대전으로 기운 충청북도의 형태 때문에 옥천군의 생활권이 대전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옥천읍, 군북면에 가면 대전의 유치원 버스들이 오기도 한다. 사실상 대전의 유치원에 다니는 옥천 아이들은 매일 도 경계를 넘는 셈. 심지어 청성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모두 합쳐도 1명뿐이다.

이름만 보면 옥천군에 있을 법한 옥천유치원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다. 다만 한자는 다른데, 충청북도 옥천군은 沃川 (물댈 옥, 내 천)으로 쓰고, 순창 옥천유치원은 玉川 (구슬 옥, 내 천)으로 쓴다.

전국에서 육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 옥천 사람들은 유치원 시절 친구나 교사들 중 육씨 성을 가진 사람이 꼭 한두 명은 있을 정도이다. 이는 육씨가 옥천 육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다만, 육씨는 옥천군 상위 10개 성씨 밖인데 옥천군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황, 전, 조, 오씨이기 때문이다.

금동현이 옥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9. 괴산군[편집]


1979년 설립된 괴산명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사립유치원은 괴산읍 동부리에 1곳만 있는데, 천주교 청주교구 괴산성당 부설 성신유치원이다. 그마저도 원래는 새마을유아원으로 설립했다가 유치원으로 바뀐 것이다. 이 곳의 원아들은 거의 괴산읍에 살지만, 아주 가끔 칠성면 두천리 등지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한편, 1955년 4월부터 2003년 9월까지는 증평읍의 샛별유치원이 괴산군 최초였다.[65] 괴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저출산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인구 감소 때문이다. 지형상의 이유로 청주시 시가지가 괴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괴산군의 위치 특성상 청주, 충주, 증평 등으로의 인구 유출이 끊임없이 일어난 것으로도 모자라 2003년 9월에 증평군까지 분리되면서[66], 괴산군의 인구가 1960년대의 16만 506명[67]에서 약 1/4 수준인 3만 9,393명으로 급격히 추락하였다.[68] 따라서 사립유치원들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설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괴산읍의 성신유치원에는 소수면, 문광면, 칠성면 두천리[69] 등 괴산읍과 비교적 가까운 면 지역에서도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고, 청안면과 사리면은 증평, 청천면은 청주[70], 장연면, 연풍면, 감물면, 불정면 등은 아예 충주까지 가기도 한다. 보은군의 경우는 아예 괴산에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어[71] 이 쪽으로 원정 통학을 하지는 않는다.

인구가 감소하여, 오랜 전통의 성신유치원조차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괴산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지, 우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지씨와 우씨는 24, 25위이다. 실제 성씨 통계로도 괴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장, 조, 안, 윤, 신씨이며 강씨는 권씨보다 적다.

배구선수 이광호와 배드민턴 선수 고성현, 배우 제이쓴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0. 진천군[편집]


1980년 설립된 진천삼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1970년대 이전에 진천에 살던 아이들은 청주에 있는 유치원을 다녀야 했을 정도이다. 진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4년~197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9~50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곳 있고 모두 진천읍에 있다. 1960년대 8만 7,526명이었던 인구[72]가 1990년 4만 9,259명까지 추락했다가 8만 3,718명[73]으로 1960년대의 95.6% 수준까지 회복했는데 이 모양이다. 충북혁신도시로 인해 덕산읍[74] 등을 중심으로 사립유치원 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 지금도 안성시 서운면 청용리에 사는 유아들이 진천으로 와서, 혹은 진천군 백곡면에 사는 유아들이 천안시로 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있다.

진천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충북 진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임, 윤, 신, 장씨이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 강명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 단양군[편집]


1981년 단천초등학교, 대강초등학교, 매포초등학교, 상진초등학교, 어상천초등학교, 영춘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상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공립 단양유치원과 통합되었다. 단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관내에 사립유치원은 없다. 시멘트 공업으로 번성했던 과거에는 사립유치원이 있었다. 단양군 유일의 불교계 유치원이었던 광룡사유치원이 대표적. 그러나 충주댐으로 인한 읍내 수몰[75]과 단양군 자체의 인구 감소로 1960년대에 8만 8,586명이었다가 1970년대에는 9만 2,853명까지 늘어났으나[76], 현재는 그 1/3 수준인 2만 9,155명으로 추락하여[77], 관내 사립유치원들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면서 폐원한 듯. 때문에 단양군에 사는 유아들은 공립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제천시[78], 영주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이는 단양에서 제천, 영주로 갈 때는 중앙고속도로중앙선 철도가 있어서 가기 쉬운데, 영월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낙후된 군 지역이고, 충주 등지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당연히 단양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처지는 비슷해서, 다른 지역의 대학[79]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보지 않는 이상 고향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사립유치원 근무를 원한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제천시 등지의 사립유치원에 취업하고 고향과 인근 도시를 매일 왕복해야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씨가 4위를 차지하는 지역[80]이라 원생과 교사 중 장씨 성을 가진 사림이 최씨보다 많을 정도이다. 실제로 단양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장, 최, 정, 조, 권, 윤, 안씨이며 증평군과 마찬가지로 김이박최 공식이 깨진 지역 중 하나이다.[81]

사격선수 최영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82]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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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해방 전에는 충청북도가 전국 시, 도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시, 도가 됐는데, 당시에는 서울, 인천, 개성이 경기도 산하였기 때문이다.[2] 주로 음성읍이나 소이면에서 충주로 원정을 왔다.[3] 주로 청풍면, 덕산면 등. 봉양읍은 제천 시내로, 백운면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로 많이 가고, 제천 시내에서는 오히려 자기 지역의 유치원에 많이 보낸다.[4]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8만 212명에서 15만 4,070명까지 늘어 시내 집중도가 34.4%에서 73.5%로 높아졌다. 충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5만 4,070명, 중앙탑면 1만 3,226명, 대소원면 8,734명, 주덕읍 4,864명, 앙성면 3,944명, 금가면 3,782명, 동량면 3,706명, 엄정면 3,256명, 신니면 3,010명, 수안보면 2,988명, 노은면 2,317명, 산척면 2,297명, 살미면 2,039명, 소태면 1,953명으로 주덕읍보다 인구가 많은 면이 2곳 (중앙탑면, 대소원면)이나 있다.[5] 구자철은 1989년 2월 27일생(35세)이므로 1991~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말 그대로 이이경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으며 그는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때 겪은 셈. 다만, 그의 출생지는 충남 논산이고, 형 구자충과 같은 유치원인지는 불명.[6] 옛날에는 무려 개천절, 한글날, 식목일, 어린이날에도 눈이 왔고 부처님오신날에도 드물게나마 눈이 왔다.[7] 충주시 약 22만, 제천시 약 13만[8]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9,883명에서 11만 185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32%에서 82.8%로 크게 늘었다. 제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1만 185명, 봉양읍 6,772명, 송학면 4,633명, 백운면 3,263명, 덕산면 2,194명, 수산면 2,044명, 금성면 1,936명, 청풍면 1,283명, 한수면 708명인데, 청풍면과 한수면은 충주댐으로 인한 수몰의 악재에 의해 인구가 줄었으며, 한수면은 인구가 1,000명을 넘지 못하는 데다 충청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청주시 오창읍 (6만 8,874명) 인구의 96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게다가 2010년대 초반에는 청원군 (현재의 청주시 읍면 지역)에 인구 수로 밀리기도 했다.[9] 이 곳은 이경용 前 금강유역환경청장의 고향이기도 하다.[10] 한자가 智이다. 智씨는 전국적으로 6,070명만 있지만, 제천에는 310명이 살고 있다.[11] 현재는 청원구 (내수읍, 오창읍, 북이면), 서원구 (남이면, 현도면), 상당구 (남일면, 낭성면, 미원면, 문의면, 가덕면), 흥덕구 (오송읍, 강내면, 옥산면)로 분할. 이 과정에서 부용면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돼 부강면으로 바뀌었다.[12] 당시 괴산군 증평읍, 도안면.[13] 증평에는 사립유치원이 하나밖에 없다.[14] 주로 문백면, 초평면.[15] 주로 청천면.[16] 주로 회인면, 내북면, 산외면.[17] 청주국제공항이 있는 이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 거주하는 사회복무요원들과 제주도에서 복무했던 의경, 의방들이라면 들어 봤을 지명이다.[18] 옛 청주시/청원군으로 나누면 옛 청주시 인구는 12만 3,666명에서 66만 2,677명으로 증가했고, 옛 청원군 인구는 22만 4,888명이었던 인구가 계속 감소해 2004년 11만 9,745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18만 2,316명으로 회복해 시내 인구 비중은 35.5%에서 78.6%까지 높아졌다. 구별로는 청원구 19만 4,373명 (23.4%), 서원구 19만 4,720명 (24.3%), 상당구 19만 34명 (21.2%), 흥덕구 26만 5,866명 (31.1%)이다. 부강면세종특별자치시에 뺏겼는데도 이 정도이며, 만약 부강면을 뺏기지 않았다면 청주시 인구가 85만 1,196명이 됐을 지도 모른다. 청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66만 2,677명, 오창읍 7만 66명, 오송읍 2만 3,602명, 내수읍 1만 9,527명, 옥산면 1만 8,018명, 강내면 1만 859명, 남이면 1만 118명, 남일면 6,870명, 미원면 5,030명, 북이면 4,644명, 문의면 4,029명, 가덕면 3,951명, 현도면 3,350명, 낭성면 2,260명으로 인구 2만 명 이상인 읍면이 3개나 되고, 시내 인구가 낭성면 인구의 287배나 된다. 또한 충청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 3곳이 모두 청주에 있다. (1위 오창읍 6만 8,854명, 2위 복대1동 5만 1,474명, 3위 가경동 5만 425명) 심지어 미국에도 청주보다 인구가 적은 주가 4개나 있다.[19] 중앙유치원이 1998년 중구에서 동작구로 이전하고, 현재 폐원된 운경유치원이 용산구 동자동에서 강남구 청담동을 거쳐 송파구 가락동으로 이전하는 등 유치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정부의 강남 개발 정책에 맞물려 이전한 것이다.[20] 대구에서는 유치원 3곳이 중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21] 심지어 이 세 지역은 청주 시민들이 당일치기로 많이 찾는 지역이다. 서울 시민들이 경기도 가평군, 양평군, 포천시, 파주시강원도 춘천시, 화천군, 양구군, 홍천군 등 전방 지역을 당일치기로 많이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22] 천안시 1921년, 청주시 1929년, 전주시 1921년, 포항시 1922년, 창원시 1926년.[23] 서울특별시 (육군사관학교) 1900년, 대전광역시 (국군간호사관학교) 1913년,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1926년, 청주시 (공군사관학교) 1929년. 참고로 사관학교 소재지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은 영천시 (육군3사관학교 소재지, 1951년)이다.[24] 곽씨는 본관이 현풍이지만, 정작 관향인 대구 달성군보다 청주에 더 많이 산다.[25] 경씨는 본관이 청주 하나뿐이다. TK 지역의 경씨 인구를 합해도 청주를 못 넘는다. 청주의 유치원에서는 한 반에 청주 경씨가 2명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26] 민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지만 시군구로 내려가면 청주가 5,808명으로 가장 많다.[27] 아마 음성군에 살던 반씨들이 청주로 와서 이렇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28] 전국 봉씨 인구가 1만 2,927명인데 그 중 510명이 청주에 살고 있었다. 2위인 평택보다 109명 더 많다.[29] 전국 사씨 인구가 1만 730명인데 그 중 441명이 청주에 살고 있었다. 고양시보다도 많다.[30] 신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신씨 인구 74만 1,081명, 수도권 거주 신씨 인구 38만 7,330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가면 청주가 1만 9,353명으로 1위이다.[31] 전국 어씨 인구가 1만 8,849명인데 그 중 619명이 청주에 살고 있었다. 2위 용인과의 격차는 74명. 참고로 유명 유튜버인 뚜아뚜지의 성이 어씨다 (어수아, 어수지).[32] 음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음씨 인구 5,604명, 수도권 거주 음씨 인구 3,471명), 시군구 단위로 가면 청주가 462명으로 1위이다.[33] 지씨 자체도 수도권에 많이 살지만,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청주가 4,331명으로 지씨 인구 1위이다. 충청북도에 유독 지씨 인구가 많은 이유는 지씨의 대종이 충주 지씨이기 때문이다.[34] 효기심은 1991년 8월 11일생(32세)이므로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유치원생 시기에 컴퓨터의 주력 OS가 MS-DOS에서 윈도우 (Windows 95)로 넘어갔고, IMF 금융위기를 유치원생 말미에 겪은 셈. 엄밀히 말하면 효기심은 예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최영효라는 이름으로 다녔다.[35] 허니제이는 1987년 8월 26일생(36세)이므로 1991~1993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다. 1987년생들은 아직 춘천시, 양평군, 가평군, 속초시 등에 고속도로가 없고 매우 시원한 여름 날씨 속에서 유치원을 다녔으며, 허니제이는 예명이므로 본명인 '정하늬'로 유치원을 다녔다.[36] 이이경은 1989년 1월 8일생(35세)이므로 1991~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보통의 1989년생들은 1992~199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니지만 그는 1월생이라 1988년생들과 같이 유치원을 다닌 탓에 그는 악명높은 1994년 폭염판다 밍밍, 리리 도입을 유치원생 말미에 겪은 셈. 엄밀히 말해 이이경은 개명한 이름이므로 유치원은 '이재우'라는 이름으로 다녔을 것이다.[37] 신재환은 1998년 3월 3일생이라 2001~200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8년생들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유치원생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4세반이었다.[38] 이 두 면은 증평군 생활권이며, 증평군 편입론도 있다.[39] 인구의 대부분이 증평읍에 몰려 있다. 증평군 읍면별 인구는 증평읍 3만 4,917명, 도안면 1,890명으로 증평읍에 94.8%, 도안면에 5.2%가 거주한다. 이러니 기차도 증평역에만 서고 (도안역은 여객 취급 중단),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증평읍에 설립하려고 하지 도안면에는 설립할 계획도 수립하지 않는다.[40] 인구 3만 2,949명.[41] 2019년 2만 9,816명으로 3만 명 선이 무너졌다.[42] 게다가 이 세 곳은 소멸위험지수가 낮다. 괴산군 0.2, 보은군 0.201, 단양군 0.258.[43] 한국 가톨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름을 땄다.[44] 영동군 출신들은 어린 시절에 눈이 오면 유치원이 며칠씩 휴원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45] 영동군의 중심지인 영동읍에 평지가 좀 있을 뿐 나머지 지역은 거의 산지이다. 게다가 인근에 행정단위가 시급 이상인 동네가 김천시 하나뿐이다.[46] 영동읍 역시 2만 6,264명에서 2만 911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21.3%에서 44.7%로 높아졌다. 영동군의 읍면별 인구는 영동읍 2만 911명, 황간면 4,376명, 용산면 3,298명, 심천면 3,272명, 양강면 3,249명, 학산면 2,852명, 상촌면 2,388명, 추풍령면 2,300명, 매곡면 1,943명, 양산면 1,872명, 용화면 1,014명으로 영동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하고 심지어 용화면은 인구가 1,000명 이하였다 이상이었다를 반복한다.[47] 첫째 김한나는 1983년 4월 2일생(41세)이므로 1987~1989년에, 둘째 김한별은 1984년 8월 18일생(39세)이므로 1988~1990년에, 셋째 김한샘은 1985년 12월 24일생(3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1988 서울 올림픽,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 1990 이탈리아 월드컵 3연패,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을 차례대로 겪은 셈. 형제자매가 같은 유치원을 다닌 경우가 있지만, 이 3자매가 모두 같은 유치원을 나왔는지는 불명.[48] 주로 서울이나 청주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고, 드물게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닌 교사도 있다. 21세기에는 방송통신대학교를 통해 보은군을 떠나지 않고 학위를 취득한 교사도 소수 존재한다.[49] 보은군과 단양군은 충청북도에서 대학이 없는 단 둘뿐인 군이다.[50] 1위는 증평군 (1955년 샛별유치원), 2위는 영동군 (1957년 영동제일교회 부설 유치원)이다. 충북 군 지역에 유치원이 들어온 순서는 증평-영동-보은-음성-옥천-괴산-진천-단양 순이다.[51] 대표적으로 남양주시가 있다. 이 곳은 서울과 가까운데도 유치원은 1981년에야 들어왔다.[52] 조계종 교구본사 중 하나로, 스님들이 세븐포커 도박판을 벌여 물의를 빚은 그 절 맞다.[53] 옛날에는 개천절 무렵에 첫눈이 내리고,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 당시 보은군 주민들은 어린이날까지 겨울이라고 인식했다.[54] 보은군 중 대전, 청주와 접한 곳이 회인면, 회남면, 내북면, 산외면이고 시내까지는 거기서 또 한참을 가야 할 정도이다. 심지어 고려 시대에는 보은, 옥천, 영동이 충청도가 아니라 경상도(!!!)였다. 이런 이유로 보은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원생과 교사들 중 간혹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나 충청 방언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다.[55] 게다가 그 시절에는 보은군이 옥천군, 용인군, 김포군보다 인구가 많았고, 양평군과의 격차도 그리 크지 않았다. 1969년에 옥천에 추월당하고 1990년에는 진천에게마저 추월당해 현재는 옥천군은 물론 진천군, 증평군에게까지 추월당할 정도이며 양평군조차 보은 인구의 3배를 넘는다. (양평 약 11만, 보은 약 3만 3천)[56] 1972년에 10만 명 선이 무너진 후 1994년에는 5만 명 선이 무너졌고, 2003년쯤을 기점으로 보은군 인구 4만 명 선이 무너졌다. 그만큼 보은읍을 제외한 다른 면들이 열악한 셈이다. 보은군 읍면별 인구는 보은읍 1만 4,938명, 삼승면 2,295명, 마로면 2,193명, 수한면 1,932명, 속리산면 1,907명, 산외면 1,785명, 회인면 1,763명, 내북면 1,704명, 탄부면 1,667명, 장안면 1,467명, 회남면 761명으로 보은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3,000명 미만이며 특히 회남면은 대청댐의 영향으로 인구가 1,000명을 못 넘는다. 그만큼 보은군 인구의 읍내 집중도는 높아서 1970년 당시 19.8%였던 보은읍 인구의 비중이 2019년 45.4%로 높아졌다. 양평군 용문면도 여기보다 인구가 많다 이런 이유로 사회복무연수센터의 위치가 여기로 결정된 것이고 (정확히는 보은군 장안면 장안로 323-88. 2020년에는 이 곳이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이용된다.), 현재 이 곳의 소멸위험지수가 0.192로 떨어져 결국 소멸 고위험지역이 됐다.[57] 1996년 이후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 양구에 사는 유아들은 춘천에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녀 볼 수 있다.[58] 단양에 사는 유아들은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제천이나 영주로 가야 한다.[59] 음성읍 1만 6,951명, 금왕읍 1만 9,222명으로 금왕읍의 인구가 3,238명 더 많다. 그나마 과거에는 음성읍이 금왕읍보다 인구가 더 많았으나 (1970년 음성읍 2만 942명, 금왕읍 2만 233명) 2000년대 들어서 역전되었다.[60] 음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금왕읍 1만 9,222명, 음성읍 1만 6,951명, 대소면 1만 5,714명, 맹동면 1만 3,094명, 감곡면 1만 45명, 삼성면 6,933명, 생극면 4,526명, 원남면 3,062명, 소이면 2,906명으로 인구 1만 명 미만인 면이 4개나 있다.[61] 감곡면은 예외로 이천시 장호원읍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이 두 지역이 청미천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으며, 과거 통금 제도가 있던 시절 장호원읍에 살던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다가 통금을 넘기면 다리를 건너 감곡으로 넘어갈 정도로 교류가 깊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2020년 연말에 코로나19 사태로 수도권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 비수도권의 거리두기 단계가 2단계로 정해지면서 재현되었다.[62] 거제 반씨의 집성촌이 음성에도 있는데, 반기문이 반씨 집성촌 중 한 곳인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났다.[63] 황지애는 1988년 3월 30일생(36세)이므로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때 겪은 셈.[64] 그 와중에 옥천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1,340명에서 2021년 2만 8,977명으로 늘었으며, 한때는 인구가 3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그만큼 옥천읍 집중도도 높아져서 1960년대에 19%였던 옥천읍의 비중은 2019년 57.3%까지 높아졌다. 옥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옥천읍 2만 8,977명, 이원면 4,253명, 동이면 3,220명, 군북면 3,045명, 청산면 3,036명, 청성면 2,347명, 군서면 2,290명, 안내면 1,941명, 안남면 1,418명으로 면 지역 중 인구가 5,000명을 넘는 곳은 없다.[65] 다만, 1991년부터 2003년까지는 증평읍, 도안면이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소속이라 괴산군은 이들 지역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지방선거 때 괴산군수, 괴산군의회 선거에 참여했고 2006년 선거에 가서야 증평군수, 증평군의회 선거를 할 수 있었다.[66] 1991년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설치, 2003년 증평군 분리.[67] 증평군 제외 시 약 13~14만 명.[68] 2008년 3만 6,56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10년대 들어서 증가세로 돌아서서 현재는 3만 9,393명으로 회복했지만, 소멸 위험 지수는 0.200으로 오히려 낮아져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심지어 괴산읍의 인구도 1만 506명밖에 안 된다. 괴산군의 읍면별 인구는 괴산읍 1만 506명, 청천면 5,226명, 청안면 3,631명, 칠성면 3,231명, 불정면 2,939명, 사리면 2,917명, 연풍면 2,419명, 문광면 2,231명, 감물면 2,190명, 소수면 2,103명, 장연면 2,000명으로 괴산읍, 청천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도 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 과거 청천면은 2만 702명으로 괴산읍보대 인구가 많았으나 그대로 몰락하면서 괴산읍보다 적어졌다. 현재 괴산군보다 인구가 적은 충북의 지자체는 증평군 (3만 6,807명), 보은군 (3만 2,412명), 단양군 (2만 9,816명)뿐이다. 만약 증평군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괴산군의 인구는 7만 6,582명이 됐을 것이다.[69] 이 동네 사람들은 생활권이 괴산읍이라 칠성면의 칠성초등학교 대신 괴산읍의 괴산명덕초등학교로 가는 경우가 있다.[70] 청천면 자체가 조선 시대에는 청주의 영역이었다.[71] 때문에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선거구 획정 당시 괴산군에서 투표 거부 운동이 강하게 일어난 것이다.[72] 이 때는 보은군, 단양군보다 인구가 적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진천이 인구를 조금씩 회복하는 와중에 보은과 단양은 인구가 계속 줄어 1991년 진천이 보은과 단양을, 2000년 영동을, 2002년 옥천을 인구 수로 추월한 이후, 지금은 보은군조차 진천군의 40% 수준밖에 안 된다.[73] 읍면별 인구는 진천읍 3만 13명, 덕산읍 2만 8,280명, 광혜원면 1만 534명, 이월면 6,067명, 문백면 3,524명, 초평면 3,218명, 백곡면 2,082명으로 진천읍, 덕산읍에 몰려 있다.[74] 과거 덕산면. 참고로 이 동네는 이투스의 스타 강사 이지영이 잠시 살았던 동네이기도 한데 (심지어 초가집에서 살았었다.), 이지영의 말버릇 중 하나인 '진천군 덕산면 옥동리에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정작 이지영은 인천 출신으로, 가난으로 인해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했거나 상대적으로 원비가 낮은 병설유치원을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우연의 일치로 덕산읍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있다.[75] 이로 인해 단양군은 아예 군청을 별곡리로 옮겼고, 원로배우 임하룡은 이 때 실향민이 됐다. 단양읍 인구도 1만 883명으로 감소한 건 덤.[76] 이 때는 매포읍이 단양읍보다 인구가 많았다. 매포읍 1만 9,667명, 단양읍 1만 9,077명.[77] 2001년 인구 4만 명 선이 무너진 후 2019년에는 3만 명 선도 무너졌다. 단양읍 역시 1만 9,077명에서 1만 615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20.5%에서 36.5%로 높아졌다. 단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단양읍 1만 615명, 매포읍 5,419명, 영춘면 3,299명, 대강면 2,499명, 가곡면 2,102명, 어상천면 1,932명, 단성면 1,755명, 적성면 1,534명으로 단양읍과 매포읍을 제외한 나머지 읍면은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할 만큼 매우 열악하다.[78] 단양과 제천은 국회의원 선거구가 같고, 단양에서 제천으로 가는 교통편이 잘 발달돼 있어 단양에 사는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갈 때는 거의 제천으로 간다.[79] 단양군에는 대학이 없다. (단양군과 보은군은 충청북도에서 단 둘뿐인 대학이 없는 군이다.) 단양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절대다수가 원주, 충주 등 인근의 큰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80] 어느 정도냐면, 단양군 5대 성씨가 ‘김이박장최’일 정도. 이는 단양 장씨의 영향이 크다.[81] 증평군은 김이박연, 옥천군과 영동군은 김이박정, 단양군은 김이박장 순서이다.[82] 최영래는 1982년 5월 13일생(41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컴퓨터라고 하면 DOS플로피 디스크를 먼저 떠올리고 1988 서울 올림픽이 한창이라 몽촌토성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컸고, 반대로 풍납토성은 문화재라는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당시 풍납동은 침수가 잦은 탓에 별명이 물납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