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첼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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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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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구단주 겸 회장 토드 볼리 | 단장 - | 테크니컬 디렉터 로렌스 스튜어트 | 국제 유망주 및 이적 디렉터 폴 윈스탠리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 수석 코치 헤수스 페레스 | 주장 리스 제임스
연고지
영국 런던 해미스미스 앤 풀럼
경기장
스탬퍼드 브리지
산하 구단
첼시 FC | 첼시 FC 위민 | 첼시 FC U-21 | 첼시 FC U-18
역사
역사 | 역대 시즌 | 역대 시즌/리그 | 역대 감독
더비 매치
파일:아스날 FC 로고.svg 파일:토트넘 홋스퍼 FC 로고.svg 서북런던 더비

파일:풀럼 FC 로고.svg 파일:브렌트포드 FC 로고.svg 파일: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로고.svg 서런던 더비
스폰서
나이키킷 스폰서 | 인피니트 애슬레틱메인 스폰서 | 트리바고트레이닝 킷 스폰서
기타 문서
유니폼 | 응원가 | 기록 | 관련 인물 | 등번호 저주 | 첼시 마이너 갤러리
스쿼드 틀
1군 / 간략 | 위민 / 간략 | U-21 | U-18
[각주]







1. 개요[편집]


첼시 FC에서 부진하던 선수나 유망주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 이후 포텐셜이 터지는 현상을 부르는 용어다. 유래는 탈쥐효과.

2. 대표 사례[편집]



2.1. 모하메드 살라[편집]


첼시 시절 19경기 2골 4도움
첼시 방출 이후 404경기 229골 98도움
[ 개인수상 ]
FIFA 올해의 선수 3위: 2018, 2021
UEFA 올해의 선수 3위: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스쿼드: 2017-18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토너먼트의 팀: 2017, 2021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2017-18, 2018-19, 2021-22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2021-22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2017-18
프리미어 리그 북서부 올해의 선수: 2017-18, 2020-21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7년 11월, 2018년 2월, 2018년 3월, 2021년 10월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골: 2021-22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골: 2021년 1월, 2021년 10월
PFA 올해의 선수: 2017-18, 2021-22
PFA 올해의 팀: 2017-18, 2020-21, 2021-22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2017-18, 2020-21, 2021-22
PFA 팬 선정 이달의 선수: 2017년 11월ㆍ12월, 2018년 2월ㆍ3월ㆍ12월, 2019년 1월ㆍ4월, 2021년 10월
FWA 올해의 선수: 2017-18, 2021-22

1100만 파운드에 첼시로 입성한 살라는 첼시에서 부진에 시달리면서 '빠른 쓰레기'라는 오명과 함께 2시즌 만에 피오렌티나로 팔려가면서 정리당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에서 반등하고 이후 AS 로마에서 세리에 A 최상위권 공격수로 성장하며 리버풀 FC로 이적했는데, 당시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그런 여론을 비웃듯 리버풀을 넘어 EPL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거듭나면서 탈첼효과의 훌륭한 표본이 되었다. 단 살라의 경우 에덴 아자르윌리안에게 밀려서 나간 경우에 가까우며, 당시 이집트의 병역 관련 문제 때문에 첼시에서는 그로 인한 멘탈적인 문제로 인해 정상적으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는 디디에 드록바의 증언이 있었을 정도였고, 이 시기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자금 관련 이슈로 인해 선수를 판매해야해서라도 현금을 확보해야하는 상황에서 판매된 경우로 그냥 첼시와는 아귀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있는 편. 실제로 주제 무리뉴도 더 브라위너와는 달리 살라는 본인의 의사로 판매된 것이 아니라고 직접 밝혔다.

2.2. 케빈 더 브라위너[편집]


첼시 시절 9경기 1도움
첼시 방출 이후 407경기 112골 171도움

헹크에서 더 브라위너를 영입했지만 임대 제외 첼시에선 주제 무리뉴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고작 9경기만 소화하곤 볼프스부르크로 임대 후 이적을 택했는데 이적하자마지 분데스리가를 씹어먹은 뒤 완전이적한지 1시즌 만에 맨시티로 이적하면서 다시 EPL로 귀환, 이후 맨시티 역사상 최고를 넘어 EPL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도 언급될 정도로 성장하면서 탈첼효과의 또 다른 사례가 되었다. 사실상 이 여파로 인해 피에트 데 비세르까지도 일선에서 물러나버렸으니 어떻게 보면 첼시의 입장에선 굉장히 치명적인 오판이 된 셈이다.

2.3. 로멜루 루카쿠[편집]


첼시 1기 시절 15경기 0골
첼시 방출 이후 324경기 177골 47도움

첼시 1기 시절, 선수 본인이 토에바와의 주전 경쟁을 원하지 않고 이적 요청을 하면서 에버튼으로 임대 후 이적했는데 에버튼으로 이적하자마자 제대로 잠재력을 터뜨렸다. 이후 첼시로의 금의환향을 이룰 수 있었으나 당시 에이전트인 미노 라이올라가 중간에 첼시의 오퍼를 가로채버리는 사태가 일어났고, 그 틈에 맨유가 막판에 하이재킹에 성공하면서 재결합하지 못했다.

이후 맨유에서도 양학 논란이 있긴했지만 첫 시즌 한정으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고 두 번째 시즌에는 부진했으나, 이후 인테르에서는 맨유에서의 단점마저 개선한 모습으로 완성형 공격수로 탈바꿈하면서 다시 첼시 FC의 관심을 받았고 드디어 21-22 시즌 첼시로 금의환향 하면서 드디어 스트라이커의 잔혹사를 끊어 줄 제 2의 드록바가 탄생할 줄 알았으나...

2.4. 네이선 아케[편집]



첼시 시절 기록 7경기 0골 0도움
첼시 방출 이후 196경기 18골 6도움

페예노르트에서 15살 첼시 유스로 이적하면서 첼시에서의 경력을 시작했으나 역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임대만 전전하다 결국 바이백 옵션을 포함한 채로 본머스로 이적했다. 이후 본머스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계속해서 개방하였지만 첼시는 여전히 바이백 옵션을 발동시키지 않던 와중 맨체스터 시티 FC가 아케를 영입하였다.

맨시티 초기엔 백업 수비수를 전전하면서 본머스보다 기회를 받지 못하였고 첼시의 토마스 투헬 감독이 프레스넬 킴펨베와 함께 아케를 원하면서 다시 첼시로 복귀하냐에 초점이 집중되었으나, 첼시와 첼시 팬들은 당시 왼발 센터백과 레프트백 멀티 자원 중 최고 밸류 중 한 명이었던 요슈코 그바르디올을 원하며 반발은 매우 거셌고 반대로 맨시티 측에서는 아케를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펩 감독의 요청으로 판매를 수락하지 않으며 결국 아케는 맨시티에 잔류하게 되었다.[1] 그렇게 치른 22-23시즌 드디어 완전히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리그 베스트급 수비수로 각성하였고 레프트백, 센터백 어디서든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맨시티의 트레블에 적잖은 기여를 해줬고 맨시티 올해의 선수 후보에도 오르는 등 탈첼효과의 수혜를 제대로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시티의 레프트백 잔혹사를 아케가 깨준 셈.

2.5. 데클란 라이스[편집]


첼시 시절 기록 없음[2]
첼시 방출 이후 217경기 7골 6도움

유스 시절 첼시가 놓친 자원. 유스 시절 주전 경쟁에서 밀린 뒤 주전 보장을 위해 자유계약을 통해 웨스트햄 유스로 이적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적 이후 신체 사이즈도 급성장하고 기량도 착실히 성장하며 웨스트햄의 에이스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웨스트햄의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우승에 기여하는 리그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고 이후 1억 유로에 라이벌 팀 아스날 FC로 이적하였다.

반면에 첼시는 간간히 이적설이 뜨긴 했으나 그 때마다 웨스트햄 측에서 NFS를 선언하면서 영입이 성사되지 못했고, 가장 영입할 수 있었던 23-24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선 첼시가 전 시즌 12위라는 부진에 빠지며 유럽 대항전 진출에 실패한 데다가 새로 부임한 이사진들이 2023년 1월을 기점으로 라이스를 구단의 영입 리스트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린 뒤[3] 그 달에 엔소 페르난데스를 선제적으로 영입했고, 이후 모이세스 카이세도 개인 합의를 겨울부터 사전에 작업하기 시작하며 사실상 첼시와의 링크가 완전히 끊겼다. 결국 그렇게 첼시와의 인연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첼시에는 엔소 페르난데스모이세스 카이세도가 PL 레코드로 입성하게 되었다.

2.6. 자말 무시알라[편집]


첼시 시절 기록 없음[4]
첼시 방출 이후 124경기 31골 23도움

첼시가 놓친 재능 중 한 명이자 브렉시트와 FIFA의 유소년 규정이 첼시의 발목을 잡은 탈첼효과. 원래는 사우스햄튼 유스를 거쳐서 첼시 유스 팀에서 활약하며 잉글랜드 국가대표에도 소집되었으나, 브렉시트로 인해 부모님이 영국 취업비자 갱신에 실패하는 바람에 영국 체류가 불가능해졌고, 그 영향으로 무시알라까지 강제로 부모님과 함께 귀국하게 되면서 더 이상 첼시 유스팀에서 뛰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5] 이 때 캘럼 허드슨오도이의 형이자 무시알라의 에이전트 브래들리 허드슨오도이의 추천과 독일 축구 연맹측의 설득으로 바이에른으로 이적하게 된다.

바이에른으로 이적한 뒤엔 1군에서 조금씩 출전 기회를 받기 시작하다가 20-21시즌부터 1군 주전으로 뛰면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남다른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고 22-23시즌 그 잠재력을 완전히 터뜨리면서 뮌헨 공격의 핵이자 디 만샤프트의 미래가 되었다.

무시알라의 성공이 더욱 첼시한테 뼈아픈 이유가 무시알라를 보내고 남기거나 들여온 자원이 하나같이 전부 실패했기 때문. 무시알라가 포텐을 터뜨릴 동안 무시알라를 잃은 첼시는 코밤 최고의 재능 캘럼 허드슨오도이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제대로 폭망했고 카이 하베르츠 등 어린 2선 자원들도 실패하면서 2022-23 시즌까지만 해도 제대로 활약하는 어린 2선 자원이 없었던 상황이다.[6] 무시알라의 경우 특히나 긁지도 못하고 보낸 케이스라 더더욱 아쉬운 케이스.

2.7. 피카요 토모리[편집]


첼시 시절 26경기 1골
첼시 방출 이후 64경기 1골 1어시
2021-2022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 선정

첼시 시절엔 시즌 초반에는 3백 포메이션을 간간히 써먹을 당시 우측 스토퍼로도 기회를 받아봤고, 실제로 울버햄튼 원정 경기에서 중거리 원더골도 넣는 등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골반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된 뒤부터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더니 4옵션 센터백으로 입지가 더욱 좁아진 뒤에 AC 밀란으로 임대 후 이적했는데 이적한 이후 21-22 시즌 밀란의 수비의 핵으로 활약하면서 밀란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고 해당 시즌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는 등 제대로 잠재력을 터뜨리며 탈첼효과임을 증명했다. 다만 이후로는 기복이 있는 활약을 보여주는 중이지만 밀란 이적 이후에 첫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차출되는 등 향후 아스날 FC벤 화이트와 후술할 마크 게히 등과 함께 삼사자 군단의 주전 센터백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7] 23-24 시즌부터는 다시 초반부터 맹활약 중에 있다.

2.8. 태미 에이브러햄[편집]


첼시 시절 59경기 21골 4도움
첼시 방출 이후 75경기 25골 7도움

장신의 스트라이커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19-20 시즌 시즌 초중반 활약을 제외하면 첼시에서는 저조한 활약을 보이며 결국 AS 로마로 이적했지만 이적한 이후 17골 4도움으로 반등하면서 AS 로마의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이자 초대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스트라이커로 골머리를 썩히는 첼시가 바이백 조항을 발동 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두 시즌 내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조항을 발동시키지 않았고 22-23시즌 38라운드 경기에서 이선 암파두와의 충돌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커리어가 꼬이게 생겼고, 첼시와의 인연은 끝날 것으로 보인다.


2.9. 마크 게히[편집]


첼시 시절 2경기 출장
첼시 방출 이후 82경기 5골 1도움

팀 내에서 꽤 기대받던 센터백 유망주였지만 크리스탈 팰리스의 이적 제의를 구단에서 수락하고 이적. 이적한 뒤에는 당연히 잠재력을 터뜨리며 팰리스의 주전 센터백 자리는 물론이고, 팰리스의 부주장 자리까지 차지하였고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주전 센터백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기서 이적을 택했던건 팰리스가 제의한 이적 오퍼의 규모가 첼시가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의 규모였다는 점이 상당히 컸다.[8] 이후 첼시가 웨슬리 포파나의 장기부상으로 센터백 수혈이 급해지자 첼시로의 복귀설이 대두되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리스트업을 했던 AS 모나코 FC악셀 디사시를 영입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10. 타리크 램프티[편집]


첼시 시절 3경기 출장
첼시 방출 이후 67경기 2골 5도움

첼시 성골 유스 출신 라이트백이지만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리스 제임스가 1군 라이트백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본인의 왜소한 피지컬 때문에 별다른 기대를 받지 못하고 브라이튼으로 이적했으나 브라이튼에서 잠재력을 터뜨리며 전천후 라이트백으로 정착. 브라이튼의 돌풍에 기여하고 있다. 다만 로베르토 데 제르비 부임 이후 2022-23 시즌에는 리그 선발 출장은 단 3경기에 머무른 데다가 2023-24 시즌에도 주전 라이트백에서는 밀려난 상태이며, 첼시 시절에도 램프티의 몇 안되는 단점은 사이즈의 한계에서 오는 수비력과 그로 인한 잔부상인데, 실제로 브라이튼 이적 후에도 리스 제임스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잔부상을 달고 살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때 잠재력을 터뜨린 덕분에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입성에 성공하며 꿈에도 그리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도 출전했으니 선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리그에서는 선발 출전 경기가 많이 줄었으나, 국가대표팀에서는 라이트백 옵션 중 한 명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2.11. 티노 리브라멘토[편집]


첼시 시절 기록 없음
첼시 방출 이후 33경기 1골 1도움

램프티가 떠난 뒤 U-21팀 주전을 꿰찬 라이트백이지만 이번에도 견고한 라이트백 자리를 밀어내지 못하고 결국 사우스햄튼으로 바이백 옵션이 달린 이적을 택했는데 또 잠재력이 만개하며 사우스햄튼의 핵심 멤버로 첫 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시즌 막판에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커리어가 상당히 꼬였고 2년차인 강등 시즌에는 부상의 여파로 단 3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선수의 가치가 하락한 데다가 이 문제로 첼시는 말로 귀스토를 영입하면서 리브라멘토의 리턴을 포기했고, 그 사이 뉴캐슬 유나이티드 FC가 고령에 접어드는 키어런 트리피어의 후계자로 리브라멘토를 낙점하면서 첼시와의 인연도 완전히 끝을 맺었다.

2.12.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편집]



첼시 시절 나름 유스 성공 사례로 꼽혔으나 몇 시즌 동안 게리 케이힐, 안토니오 뤼디거, 티아고 실바 등 여러 센터백들에게 밀려 준주전 센터백으로만 나서다 21-22시즌 드디어 잠재력이 만개한 듯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시즌 도중 이적을 요구하며 태업을 저지르면서 팀의 FA컵 결승전을 제대로 망친 원흉이 되었고 결국 첼시 팬들의 비난을 받으며 유유히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영입 초기 바르샤 팬들에게 그렇게 큰 기대는 받지 못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2-23시즌 바르샤 수비진에서 크리스텐센의 영향력은 쥘 쿤데, 로날드 아라우호보다 더욱 컸으며 시즌 후 팬들에게 바르샤 최고의 영입으로 칭송받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첼시는 대체자를 완전히 구하지 못한채 추락하였다.

3. 원인[편집]



3.1. 구단의 육성 능력 부족과 비세르 퇴임 이후의 처참했던 스카우팅 능력[편집]


아들아 최근 첼시 유스들을 좀 보렴. 존 테리 이후로는 1군으로 자리 잡은 선수가 없지 않냐.

메이슨 마운트의 아버지가 어린 마운트에게 한 말.[9]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영입시장에서 거액을 풀며 유스 육성에는 소홀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로만은 누구보다 유스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로만 부임 이후 유스에 입단한 96-00 첼시 유스 선수들을 일컬어 황금세대라고 팬들을 말했고 이들이 후에 첼시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첼시의 스카우팅을 포함하여 사실상 구단 업무의 전반을 거의 다 도맡던 피에트 데 비세르의 은퇴 이후 구단의 스카우팅 역량이나 구단 시스템이 완전히 싹 다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토드 볼리 컨소시엄의 구단 인수 후에는 이러한 인프라부터 처음부터 다시 구축을 해야하는 수준이었고, 현재 23-24시즌 개막 이후에는 리스 제임스코너 갤러거, 그리고 리바이 콜윌까지 세 명이 1군 주전 멤버로 자리잡으면서 이전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졌지만 그 이전까지 나머지는 모두 실패하며 이적되거나 혹은 1군 로테이션 멤버가 최대인 수준의 선수들만 자리잡았다.[10] 특히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이라 불린 루벤 로프터스치크와 코밤 최고의 재능으로 불린 캘럼 허드슨오도이를 아무리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더라도 연달아서 잠재력을 개화시킨데 실패한건 명백히 구단의 육성 실패라 말할 수 있다.[11]

첼시의 육성능력 부족이 더욱 부각되었던 이유는 런던이라는 좋은 연고지를 두면서도 오랫동안 그걸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12] 다른 빅 6를 살펴보면 맨유는 마커스 래시포드[13], 맨시티는 필 포든, 토트넘은 해리 케인[14], 리버풀은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아스날은 부카요 사카처럼 2010-2020년대에 유스에서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고 있지만 첼시에서는 그나마 리스 제임스가 있지만 유리몸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있어 이들보다 활약상이 밀린다. 이 때문에 리바이 콜윌에게 굉장히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그리고 다른 팀들이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는 동안 루벤 로프터스치크, 캘럼 허드슨오도이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잠재력이 완전히 꺾이며 다른 팀으로 팔려나갔고[15] 상술한 피카요 토모리, 태미 에이브러햄 등은 1군에서 기회를 받지 못한채 팀을 떠나고 세리에 A에서 정착했으며 남아있는 유스 출신 선수들 중에서는 아르만도 브로야는 1군 주전으로는 2% 부족한 모습을, 트레보 찰로바, 이안 마트센은 여전히 1군 자원으로도 부족한 기량을 보이고 있고 티노 안조린제이미 커밍은 사실상 망한 유망주 테크를 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좋을 것만 같았던 유스 퀄리티도 2021-22 시즌 들어 유스팀이 강등권까지 추락할 정도로 골짜기 세대가 출몰하면서 하락할 처지에 놓여져 있었는데, 상술할 리버풀 FC와 유사한 상황이라 토드 볼리 부임 이후 첼시도 리버풀처럼 해외와 다른 클럽의 유망주를 수혈해야 하는 처지의 유스 수준이 되어버렸고, 결국 첼시 또한 브라이튼과 마찬가지로 남미 유망주나 타 구단의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수혈해서 아카데미를 보강하기에 이른다.[16] 그래도 2023-24 시즌을 기점으로는 2003년생 최고 유망주 리바이 콜윌이 임대 복귀 후 재계약까지 서명하면서 8R 기점으로는 첼시의 핵심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안 터져서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던 코너 갤러거도 2선의 프리롤 박스 투 박스 자원으로 정착하는 데에 성공함과 동시에 주장 완장을 달고 착실하게 주장단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시즌이 끝난 뒤에야 제대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3.2. 공과가 명확한 선구매 후임대 정책[편집]


1군에서 바로 쓰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를 임대보내는 일 자체는 다른 구단에서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첼시에서 유독 임대만 전전하다가 커리어를 망친 유망주들이 많이 나왔다.[17] 그나마 유일한 성과라면 티보 쿠르투아 정도.

이후 토드 볼리가 부임한 뒤에도 첼시는 오히려 로만 시절보다 더 유망주를 사들이고, 아예 위성 구단을 통한 임대와 아카데미 육성 등을 통한 되팔이 등으로 오히려 유망주 장사의 판을 키워버렸다. 물론 영입한 유망주들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성공하는 사례도 나오겠지만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 다만 이는 서드 파티 문제로 이적료의 규모가 과거보다 커진 영향도 있으며, 레드불과 시티 풋볼 그룹의 유망주 정책을 참고해서 그 시스템을 받아들인 케이스라 앞으로 더 지켜봐야할 여지가 있다.

3.3. 유망주를 선호하지 않는 감독 선임[편집]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안토니오 콘테는 쓸놈쓸 기질이 강해 유스 출신 선수들이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임대 뺑뺑이만 돌면서 성장이 멈추거나 방출당했으며, 그나마 프랭크 램파드 시절 유스 출신들이 대거 기용되었으나 오히려 감독의 기량이 미달 수준이라 얼마가지 못하였고 이후 토마스 투헬이 부임하면서 유스 출신 선수들이 또 다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정리되었다. 그리고 토드 볼리 체제에서의 2023-24 시즌 첫 감독 선임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로 낙점되었는데, 이 시즌에 어떠한 성과를 내냐에 따라 이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수는 선수대로 타 팀에서 터지고 성적은 나지 못했던 악순환이 터지던 탈쥐효과와는 다른 점이 명확한데, 이 시기의 첼시는 이렇게 선수를 팔아서 미래를 희생하는 대신 윈나우를 선택한 쪽에 가깝고 그 윈나우를 위한 이적 자금에도 이 돈을 지속적으로 보태며 디에고 코스타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을 영입하는 등의 무브로 이뤄졌고, 실제로 21세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트로피는 다 획득하면서 사실상 트로피와 선수의 재능을 바꾼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 첼시가 셀링 클럽이 아님에도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적 자금을 추가로 더 보태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빅6 중에서도 구장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구장 수입을 타 클럽 대비 극한까지 뽑아내기 힘든 것이 만악의 근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4. 입첼효과[편집]


첼시로 이적하면서 부진에 빠지는 선수들을 통틀어 입첼효과라고 부르는데, 현재는 사실상 첼시로 이적한 중앙 공격수들의 부진을 뜻하는 말이다.

첼시의 중앙 공격수 실패 계보를 일일히 따지기엔 너무 길기에[18] 해당 문서에는 극히 일부분과 타 포지션에서 입첼효과를 받은 선수들만 다룬다.

사실 다른 포지션에서도 실패작이 나왔지만 중앙 공격수에서 유독 이렇게 실패가 많았던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독단적으로 영입한 마테야 케즈만과 안드리 셰우첸코, 페르난도 토레스같이 선수의 상태나 구단 플랜에 적합한가의 여부를 제대로 보지 않고 구단주가 독단적으로 돈지랄을 시전한 경우라던가, 특정 영입 타겟에 대한 스카우팅이나 분석 등이 치밀하게 이뤄지지 않은 채로 전 소속팀에서의 활약상 등 이름값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나치게 주먹구구식의 무브가 잦았던 등 구단의 이적시장도 체계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결과적으로는 이렇게까지 실패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4.1. 안드리 셰브첸코[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40경기 28골 10도움
첼시 이적 후 2시즌 간 기록 76경기 22골 10도움

AC 밀란에서 대활약한 이후 첼시로 이적했으나 슬슬 전성기에 끝자락으로 넘어가고 있는 나이와 이 당시에 안고 있던 무릎 부상의 여파로 리그에서도 크게 부진하면서 결국 2시즌 만에 AC 밀란으로 임대되었고 이후 디나모 키이우로 이적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22-23시즌 우크라이나 출신 윙어 미하일로 무드리크가 영입됐는데 이 쪽 역시 거액의 이적료에 영입되고도 매우 저조한 활약을 보여주며 셰브첸코의 첼시에서의 활약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4.2. 페르난도 토레스[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39경기 22골 3도움
첼시 이적 후 4시즌 간 기록 172경기 45골 27도움

토레기라고 불릴 정도로 첼시가 실패한 네임드 공격수 중 가장 유명할 정도로 임팩트가 큰 먹튀였다. 리버풀에서 대활약 이후 당시 기준 클럽레코드인 €58.5m의 거금으로 첼시에 입성했지만 리그에서 한 번도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건 물론 11-12시즌 아직도 해외축구 팬들에게 유명한 맨유 전 빈 골대를 두고 골을 넣지 못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회자된다.

첼시에서 빛났던 장면은 900억 일시불 골로 불리는 11-12시즌 챔스 준결승전 2차전 득점과 12-13 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전 선제골이 있지만 단적으로 그거 말고는 첼시에서 제대로된 활약이 전무했다. 이 시기 토레스의 이적 사가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빠른 선수 등록을 하겠다고 메디컬 테스트를 아예 제껴버리고 선수 등록을 마쳐버렸는데, 이것이 화근이 된 것. 결국 첼시에서 커리어가 망가진 채로 쓸쓸하게 밀란으로 이적했다.

4.3. 알바로 모라타[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43경기 20골 5도움
첼시 이적 후 2시즌 간 기록 72경기 24골 6도움

루카쿠의 첼시 이적을 눈 앞에 둔 찰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루카쿠와 첼시 간의 협상 중 허점을 발견하고 제대로 비집고 들어가 하이재킹에 성공하면서 눈뜨고 코베인 격이 된 첼시는 부랴부랴 레알 마드리드에서 20골을 기록한 모라타를 클럽레코드인 €65m에 영입하면서 급한 불을 끌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첼시 이적 이후 전체적으로 영국 생활 적응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처참한 득점 능력과 좋지 않은 발밑, 그리고 저조한 라인 브레이킹 능력을 보여주면서 토레스+모라타라는 뜻의 토레타라는 멸칭을 들어야했고 모라타 본인도 스스로의 저조한 퍼포먼스에 멘탈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모자라 향수병을 동반한 우울증에 시달렸고,[19] 여기에 등 부상까지 겹치며 결국 두 시즌 만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선임대 후 이적을 택하며 첼시와 작별했다.

4.4. 티에무에 바카요코[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46경기 3골 1도움
첼시 이적 후 1시즌 간 기록 43경기 3골 3도움[20]

AS 모나코가 리그 1 우승을 거두고,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오르자 이 당시의 핵심 멤버들이 빅클럽의 구애를 받고 있었는데 이 때 같이 빅클럽으로 진출한 선수들을 말하면 킬리안 음바페, 파비뉴, 베르나르두 실바, 뱅자맹 멘디, 토마 르마 등이 있었다.

그러나 첼시에서의 바카요코는 리그 1에서 보여준 다재다능함이 실은 피지컬빨인게 들통나며 뱅자맹 멘디가 선녀로 보일 만큼 처참한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무너졌고 한 시즌 만에 전력 외 통보를 받고 임대를 전전했다. 임대를 간 팀에서는 그럭저럭 활약했고, 이 과정에서 바카요코를 사려는 팀이 있었긴 했다. 문제는 밀란의 경우 당시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가 밀란에게 어느 정도 타협안을 받은 이적료인데도 그 이적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을 해 버리며 판매 기회를 놓쳐버렸고, 이후에 임대로 다시 돌아온 AS 모나코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구단 재무상으로 문제가 생겨서 바카요코의 완전 영입을 포기했다. 그렇게 1년씩을 연장해가면서 임대를 계속 전전하다가, 구단주 그룹이 바뀐 후 끝내 23-24 시즌을 앞두고 방출당하며 끝을 맺었다. 사실상 더 일찍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기회를 구단이 스스로 차버린 댓가를 치른 셈인데, 이후 바카요코는 방출 후 자유계약으로 FC 로리앙으로 이적했다.

4.5. 케파 아리사발라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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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30경기 37실점 8클린시트
첼시 이적 후 5시즌 간 기록 109경기 129실점 35클린시트

티보 쿠르투아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생긴 골키퍼 공백을 원래는 알리송 베케르으로 채우려 했으나 쿠르투아가 훈련장에 복귀를 하지 않고 이적 시위를 벌였고, 알리송 또한 챔피언스 리그 진출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첼시행을 거절하고 리버풀 FC행을 결정해버린 뒤 그 이후 쿠르투아가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이 결정되자 이적시장 마감시한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첼시는 부랴부랴 아틀레틱 클루브의 주전 골키퍼 케파를 무려 골키퍼 역대 최고 이적료인 €80m 바이아웃을 지르며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케파는 PL에서 절망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첫 시즌은 금액은 아쉬워도 그럭저럭 주전 골리는 맡을 수 있는 선방능력과 빌드업 능력을 보여줬지만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감독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의 교체 지시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를 터뜨리며 안좋은 인상을 남겼고 다음 시즌에는 호러쇼를 매경기마다 선보이며 역대급 먹튀 골키퍼로 전락.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결국 보다못한 첼시는 에두아르 멘디를 영입했고 멘디가 케파와는 다르게 훌륭한 선방능력을 보여주며 케파의 자리를 밀어내고 챔스 우승에 크게 기여하면서 케파는 €80m짜리 세컨 키퍼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그러나 멘디 역시 그 다음 시즌 발밑이 매우 불안하다는 약점이 노출되고 설상가상 좋았던 선방능력마저 하락하며 반쪽짜리 골키퍼로 전락하자 22-23시즌 다시 주전 골키퍼로 나섰고 그동안 절치부심했는지 리그 최상위권 선방능력과 준수한 빌드업 능력을 보여주며 나락으로 간 팀에서 고군분투한 선수로 평가를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중볼 처리에 약점을 가지고 있고 높은 이적료와 알리송의 역대급 활약을 생각해보면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이후 23-24시즌에도 주전 골키퍼를 맡을 것으로 보였으나 이전 첼시의 주전 골키퍼였던 쿠르투아가 레알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며 주전 자리가 사라지자 케파를 임대로 영입하려고 시도했고 케파 역시 레알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반등한지 한 시즌만에 레알로 가버리면서 팬들한테 또 안좋은 인상을 남겼다.

4.6. 티모 베르너[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45경기 34골 13도움
첼시 이적 후 2시즌 간 기록 89경기 23골 18도움

빠른 스피드와 함께 침투 능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19-20 시즌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뒤를 이어 득점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차세대 독일 스트라이커로 큰 기대를 받으며 €53m이라는 적지 않은 이적료로 첼시에 입단했지만 첼시에 입단한 이후엔 빠른 주력과 침투에 가려진 안좋은 골 결정력과 좋지 않은 발밑 등 밑천이 드러나면서 몰락해버렸다. 특히 오프사이드에 자주 걸리면서 첼시 팬들 사이에선 '베르너가 골을 넣으면 오프사이드고 골을 못넣으면 온사이드다.'라는 속설이 우스갯소리처럼 떠다니고 있다.

결국 2시즌 만에 이적료의 반값도 안되는 가격으로 다시 라이프치히로 이적했고, 이적 후 첫 시즌에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으나 2023-24 시즌에는 로이스 오펜다, 유수프 폴센, 베냐민 세슈코에게 완전히 밀리고 4옵션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기량의 한계가 보이는 선수를 스카우팅 미스로 오버페이한 케이스.

4.7. 하킴 지예시[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28경기 8골 17도움
첼시 이적 후 3시즌 간 기록 102경기 14골 13도움

아약스 시절엔 챔스 4강 돌풍에 기여한 핵심멤버 중 한 명이었지만 첼시에 있는 동안에는 왼발 1툴인 애매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계륵으로 전락했다.

이와중에 말년엔 토마스 투헬과의 불화까지 터뜨리며 투헬의 경질에 일조하면서 평판이 매우 나빠졌고 본인의 폼도 저점을 갱신하면서 22-23 시즌 겨울에 처분하려다 서류 처리 실수로 실패하곤 23-24시즌 갈라타사라이 임대이적하면서 첼시에서의 생활도 막을 내렸다.

4.8. 로멜루 루카쿠[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44경기 30골 9도움
첼시 이적 후 1시즌 간 기록 44경기 15골 2도움

다른 스트라이커들이 거액을 내면서 데려오고도 부진에 빠져도 그래도 팀 분위기를 해치거나 대놓고 언해피를 띄우는 짓은 하지 않았는데 루카쿠는 €113m로 당시 클럽레코드를 깨고 이적했음에도 부진한 활약에 더불어 "나는 첼시에서 행복하지 않다."라는 말로 유명한 언해피를 띄우며 팀 분위기를 박살내 버렸고 이후 첼시의 눈 밖에 나서 인테르로 임대 이적했음에도 지속적으로 팀을 향해 저격성 멘트를 날리는 등 첼시에 아무런 애정이 없는 듯한 행보를 보이며 첼시 팬들의 혈압을 돋구고 있다. 물론 그 1시즌간 기록한 성적은 이적료에 비하면 터무니도 없는 성적이다.

가장 가혹한 사실은 입첼효과를 받은 공격수 중에서 현재 개인 기량자체는 상당히 괜찮다는 것. 1시즌 만에 자의반 타의반 전력 외 신세가 되며 다시 인테르로 임대 이적했지만 여전히 세리에 A에서 충분히 통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테르의 챔스 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승승장구 했고 비록 결승전에서 역대급 트롤링으로 인테르 챔스 준우승의 원흉이 되긴했으나 그래도 당시 주전 스트라이커들이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에딘 제코의 사이드킥으로 뛰면서 어느 정도 활약을 했기 때문에 이 시즌 인테르의 선전에 지분이 없지는 않다. 이후에 AS 로마로 이적한 초반에도 득점 행진을 이어나가며 여전한 기량을 뽐내고 있고 이 때문에 첼시 팬들은 타 팀팬들한테 "왜 루카쿠를 놔두고 다른 공격수를 쓰냐?"는 질문 혹은 "차라리 루카쿠를 쓰는게 낫겠다."라는 조롱을 계속 들으며 고통받고 있다.

4.9. 카이 하베르츠[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45경기 18골 9도움
첼시 이적 후 3시즌 간 기록 136경기 32골 13도움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시절 최후의 구단주 픽 영입. 레버쿠젠 시절까지만해도 중앙 미드필더,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폴스 나인 가리지 않고 출전하면서도 뛰어난 득점 능력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독일의 원더키드로 불리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다른 클럽의 구애를 받고 있던 도중[21] 이후 베르너를 영입한 첼시가 거금을 들여 €80m에 하베르츠까지 영입하면서 그 재능을 첼시에서 꽃피울 것이라 예측되었다.

첫 시즌부터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코로나19 양성으로 꽤 고생했고 램파드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시켰으나 성과가 좋지 않았으며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투헬 부임 이후 중앙 공격수로 출전, 팀이 챔스 결승까지 진출하더니 끝내 챔스 결승에서 페르난도 토레스를 연상시키는 결승골로 승리의 주역이 되면서 다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음 시즌 루카쿠가 깽판을 치고 나간 자리를 어느정도 메꿔주기는 했는데 22-23시즌엔 기본기와 스탯 모두 하락하면서 결국 라이벌 팀 아스날로 이적했다. 전반적으로 이적료 값을 해내지 못했고 레버쿠젠 시절하고 비교하면 오히려 퇴보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이후 아스날에선 중앙 메짤라로 육성할 것이라 천명했기에 사실상 첼시에서 명확한 포지션 없이 제대로된 육성을 하지 못하고 망가뜨린 유망주라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아스날에서도 중앙 메짤라 적응은 실패로 귀결되는 분위기이며 결국 8R 경기를 기점으로 다시 폴스 나인으로 돌아가서 활약하게 되었다. 사실 첼시 시절 하베르츠의 폴스 나인은 루카쿠가 멀쩡했더라면 주구장창 쓰는 게 아니라 변칙 전술로 잠깐 쓰고 말 상황이었다는 점이 있긴 했지만, 그 이전에 선수 본인부터가 과거 레버쿠젠 시절부터 파트너를 상당히 많이 탔던 한계 때문에 선수 입장에서 상당히 불운한 케이스다.[22]

4.10.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편집]


아스날에서 잡음을 일으키며 21-22시즌 겨울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는데 후반기에만 라리가에서 23경기 13골 1도움을 기록하며 완벽히 부활하는 데에 성공하며 반 시즌만에 토마스 투헬 감독의 요청으로 첼시의 부름을 받고 마르코스 알론소를 내주는 딜로 EPL로 복귀했다.

그러나 돌아온 PL에서의 활약은 아스날에서의 말년보다 더욱 끔찍했는데 골을 넣는 빈도도 줄어들었고 특유의 적은 활동량과 압박 때문에 경기장에서 볼터치도 거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활약만 보여주며 스트라이커 실패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4.11. 칼리두 쿨리발리[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27경기 3골 1도움
첼시 이적 후 1시즌 간 기록 23경기 2골 1도움

세리에 A에서 몇 시즌간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한때는 버질 반다이크와 함께 월드클래스 센터백으로 꼽힌 적도 있는 선수였으며 이후 바르셀로나한테 쥘 쿤데를 뺏기고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도 튀어버리며 센터백 보강을 필요로하는 첼시에 영입되었고 존 테리의 등번호인 26번까지 물려받으면서 첼시 수비진의 핵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데뷔한지 몇 경기만에 퇴장을 당하더니 이후 나폴리 시절 보여준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무색무취의 센터백으로 전락했고 결국 1시즌 만에 사우디 리그로 처분당했다. 반면에 쿨리발리를 판매한 나폴리는 페네르바흐체 SK에서 활약했던 김민재를 영입했고 그 선수가 쿨리발리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주면서 나폴리는 33년만의 우승을 거두게 되었다.

4.12. 미하일로 무드리크[편집]


첼시 이적 전 시즌 기록 18경기 10골 8도움
첼시 이적 후 2시즌 간 기록 24경기 1골 2도움

샤흐타르 도네츠크 소속 당시 챔피언스 리그에서 빠른 주력과 좋은 드리블을 보여주며 아스날 FC의 구애를 받았고, 이에 샤흐타르 측에서 €100m이라는 매우 높은 가격을 부르자 아스날은 최대한 협상을 이어나가며 옵션포함 €75m을 최대 비드로 제출했다. 그러던 도중에 토드 볼리 체제의 첼시가 갑자기 난입해 샤흐타르 측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며 무려 €70m+30m이라는 유망주를 넘어 웬만한 월클급 선수들이 받는 이적료로 첼시에 입성하게 되었다.[23]

그러나 첼시에 입성한 뒤에는 첫 시즌부터 여러 문제로 굉장히 헤매고 있다. 주력은 EPL 1위를 마크하고 있지만 미숙한 볼터치, 주력에만 의존하는 드리블 능력, 안좋은 킥력까지 보여주면서 주력빼면 무장점 윙어로 전락했고 SNS로 사고나 치고다니면서 안 좋은 어그로를 끌며 신무형이라는 조롱성 별명까지 생겨버렸다.

사실 샤흐타르 측의 €100m 요구는 말이 €100m이지 사실상 시즌 종료 이전까지는 NFS이라는 말 혹은 고도의 하이볼 협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스날에서도 계속해서 협상을 하는 동시에 선수 측을 구슬려서 조금씩 요구 금액을 낮춰 €75m까지 이적료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당시 디렉터들 사이에서도 영입 리스트에는 올랐으나 이적료 문제로 거래가 성사되지 않던 와중에 공동 구단주 중 한 사람이자 최대 주주였던 베다드 에그발리가 이 영입을 진행하는 쪽으로 밀어붙였고,[24] 결국 이 오퍼를 받아들이면서 기량에 비해 훨씬 높은 금액으로 영입하는 선택을 했다. 단적으로 그동안 비슷한 금액으로 영입된 선수들을 보면 해리 케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에덴 아자르, 폴 포그바, 가레스 베일, 데클란 라이스 등이 있다. 과연 이들에 비해 무드리크가 뛰어나거나 동급의 선수인지는 미지수. 이후 무드리크 협상이 파토난 아스날은 플랜 B였던 레안드로 트로사르로 선회했고 트로사르는 무드리크의 이적료의 4분의 1도 안되는 이적료로 아스날의 백업 윙어로 자리잡았으며, 반 시즌 동안 딱 돈값만큼 쏠쏠하게 활약하면서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25]

그래도 23-24시즌에는 경기력에 기복은 심하게 있으나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고 드디어 데뷔골까지 기록했으며, SNS에서의 기행과는 달리 의외로 워크에씩 자체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편. 얄궃게도 현재는 입첼효과의 계보를 깨냐의 여부까지 지켜볼만할 정도로 기량적으로 상당히 좋아진 모습이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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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작 이 그바르디올도 2023-24 시즌에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하게 되었고, 첼시의 선택은 직전 겨울 이적시장에 영입된 브누아 바디아실과 여름에 임대 복귀로 합류한 유스 출신 리바이 콜윌이였다.[2] 유스 시절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기록[3] 유럽 대항전 진출에 실패한 영향도 크게 있었으나 새로 부임한 폴 윈스탠리와 로렌스 스튜어트를 위시한 이사진이 전임 이사진들과는 다르게 데클란 라이스 대신 좀더 수비적이고 빌드업 가담에 적합한 유형을 선호했다고 한다. 카이세도가 이적 초반에 굉장히 좋지 않았을 정도로 부침을 겪었음에도 빠르게 폼을 끌어올리고 정착하는 데에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론 영입전에서 조기 철수한 판단이 틀리진 않았지만 라이스도 아스날에 합류한 이후에 수비와 빌드업 모두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며 빠르게 아스날 중원의 핵심을 담당하면서 본인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4] 유스 시절 FC 바이에른 뮌헨 이적.[5] 독일 대표팀을 선택하게 된 경우는 무시알라 본인이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는 의사가 강했던 경우에 해당된다. 실제로 무시알라라는 성도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은 케이스.[6] 결국 이 자리는 2023-24 시즌을 앞두고 다른 구단의 유망주를 수혈해서 보강하기에 이르는데, 그 선수가 바로 맨체스터 시티 FC 유스 출신인 콜 파머다.사실 1억 유로의 사나이도 있다[7] 당장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에릭 다이어해리 매과이어에게 밀려 최종 엔트리에 승선하지 못하자 어떻게 토모리가 빠질 수 있냐며 반발하는 여론이 거셌다.[8] 당시 EFL 챔피언십까지만 경험한 선수였음에도 2,000만 파운드 규모의 이적료에, 우선협상권과 셀온 조항을 모두 포함한 형태의 오퍼를 제시했다.[9] 이에 마운트는 그 다음은 자기가 될 거라고 자신했으나 결과적으로 22-23 시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면서 이루지 못했다.[10] 이 시기에도 2021-22 시즌까지 여러 미스를 저지른 스콧 맥라클런 수석 스카우트의 역량 문제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심했다.[11] 다만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은 부상 이후 원래 기량을 되찾은 선수가 모든 종목을 통틀어도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은 감안해야한다.[12] 반대로 리버풀은 연고지 특성상 점점 유스 퀄리티가 하락하고 있어 해외와 타 클럽에서 유망주를 수혈하는 처지이지만 후술한 아놀드와 커티스 존스 등 나름 굵직한 유망주를 배출하고 있다.[13] 메이슨 그린우드의 경우 그린우드의 개인사 이슈로 인해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맨유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리고 말았다.[14] 다만 케인은 애매한게 아스날 FC 유스 경력이 있다.[15] 특히 허드슨오도이는 한 때 뮌헨이랑 링크가 있던게 무색하게 500만 유로라는 헐값에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하면서 더욱 그 추락이 컸다. 물론 이적료가 낮은 대신 셀온의 비율이 큰 계약이기도 하다.[16] 엄밀히 말하면 선수 시절만큼은 첼시의 레전드로 꼽히는 프랭크 램파드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유스 경력이 있고, 여기에서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다음에 넘어왔다는 점이긴 하다.[17] 가장 유명한 케이스인 루카스 피아종을 필두로, 가엘 카쿠타 등 이런 사례들이 꽤 많은 편이다.[18] 정확히 말하면 드록바 이후 첼시에서 성공한 중앙 공격수가 전후반기 폼이 오락가락 하는데다가 마무리가 최악이였던 디에고 코스타와, 낮았던 기대치를 감안했을 때 2018-19 시즌 유로파리그 득점왕까지 오를 정도로 생각보다는 잘했던 올리비에 지루 뿐이라고 봐야 할 정도다.[19] 첼시 시절에 우울증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었다고 아틀레티코 이적 후 직접 밝혔다.[20] 첼시에서 있는 6시즌 동안 첼시에서의 기록은 17-18시즌 저 기록뿐이다.[21]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22-23 시즌 종료 기준 자말 무시알라, 주드 벨링엄 등이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22] 단적으로 레버쿠젠 시절에는 율리안 브란트의 수혜를 상당히 많이 받은 케이스에 해당되었다.[23] 다만 보장 주급은 당시 첼시의 주급 정책상 이적료의 1/10 수준밖에 안 되는 9만 파운드밖에 되지 않았고, UCL 진출 등의 어려운 옵션을 전부 다 채워도 최대 15만 파운드 수준이라고 한다.[24] 전면에 나선 건 토드 볼리가 맞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 구단의 무브에는 베다드 에그발리의 입김이 더 셌다고 2023년 9월에서야 알려졌다.[25] 다만 이 시즌 아스날은 끝내 무관에 그치고 말았고, 그 트로사르도 2023-24 시즌에는 4경기 2선발출전을 하는 동안 단 1골에 그치다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며 2023-24 시즌 전반기까지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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