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호쿠토 오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이자 번식종마. 재일교포 마주 전연식의 사쿠라 커머스 소속마로, 사쿠라 커머스의 다른 말들에 뒤지지 않는 스피드를 갖추고 있었으나 사쿠라 관명마들의 모든 단점과 1989년 클래식세대 동기들의 단점까지 한몸에 몰아넣은 불운의 말로 유명하다.
반형제 형들로 중상 2승마인 사쿠라 토코, 전년도 더비 우승마인 사쿠라 치요노 오가 있다.
2. 혈통[편집]
3. 생애[편집]
형인 사쿠라 치요노 오에 이어서 요코즈나인 호쿠토우미(北勝海)[2] 의 이름을 따 와서 호쿠토 오라는 이름을 받은 이 말은, 형처럼 더비에서 활약할 수 있는 말이 되길 기대받으며 데뷔한다.
신마전에서 가볍게 우승하며, 2전째이자 오픈 클래스인 후츄 스테이크스에선 레코드 승리, 이어진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에선 단조지정[3] 을 받았음에도 쾌승하며 3연승[4] , 클래식 전선의 주역으로 올라섬과 동시에 당해 최우수 3세마(현재 2세)에 뽑히는 등 세대 최강으로 기대를 모으게 된다.
그리고 4세(현 3세) 시즌에 들어서 사츠키상의 트라이얼로 열리는 야요이상에 출전하는데, 이 날은 경기 전에 소나기가 내리고 경기 중에도 부슬비가 내리며 중마장을 넘어선 불량 마장 상태가 되어 있었고, 1번 인기에 이번에도 단조지정이 내려진 사쿠라 호쿠토 오는 레이스 중반까진 어떻게든 중후반에서 버텨봤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크게 뒤쳐지며 우승마 레인보우 앰버에게 4초 이상 뒤진 12착 대패를 당한다. 중마장에 약한 말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사쿠라 호쿠토 오는 그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중마장에 약한 말이었던 것.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스피드 능력으로 봤을 때 중마장이 아니라면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인정을 받고 있었고, 이미 상금과 실적은 충분하기 때문에 진영은 물론 팬들에게도 기대를 받으며 다시한번 인기 1위, 단조지정을 받고 사츠키상에 도전하게 되는데….
당일 내린 소나기로 이 해의 사츠키상은 상당한 수준의 불량마장이 되어 버렸고, 좋은 스타트를 끊으며 어떻게 중단에서 버텨 봤지만 결국 4코너 돌입전에 역분사하며 19위로 참패를 하는데, 중간에 앵커라는 말이 기수가 낙마하며 실격되었기 때문에 실질 꼴찌의 성적이었다.
기수였던 코지마 후토시의 증언에 의하면 "사쿠라 호쿠토 오라는 말은, 달리는 와중에 마장 상태가 좋지 않다면 금새 실증을 내며 의욕을 전혀 내지 않는다"라며 중마장에 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뛰려는 의욕 자체를 내지 않는 수준임이 알려지게 된다.
클래식 2전째인 일본 더비에선 앞선 2전의 영향으로 인기가 하락해서 사츠키상 우승마인 닥터 스퍼트와 2착마 위너즈 서클에 뒤진 인기 5위로 출전하게 되지만, 그래도 진영 측에선 마장 상태가 양마장이었기 때문에 이번만은…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지만…
분명히 양마장 상태긴 했지만 경기 전 중간쯤에 살짝 부슬비가 내렸던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역시 선행 무리에서 버티다가 어느샌가 점점 뒤로 밀리더니 위너즈 서클이 악착같이 선두에서 버티며 우승을 거둘 때 9착으로 역시 대패해 버린다.
이렇게 연패를 계속하던 사쿠라 호쿠토 오는 GII 경기인 세인트 라이트 기념에서 3번 인기로 떨어지며, 마장 상태도 약중마장 상태라 큰 기대는 받지 못했지만 중마장에 약한 속성을 극복했는지 후반 맹추격으로 선두를 제끼며 우승, 부활을 알린다.
그리고 도전한 킷카상에선 양마장의 영향 덕분인지 꽤 좋은 위치에서 4코너에 돌입하는데, 느닷없이 혼자 최외곽 울타리 부근까지 내달려버린다. 기수 코지마 후토시의 미스인가 싶었지만, 실은 코너를 돌았을 때 잔디 색이 변하는 것에 놀라 말이 알아서 그걸 피해가다 보니 옆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고, 워낙 크게 돌다보니 조교사 사카이 카츠타로가 "내 인생 처음으로 우리 말을 시선에서 놓쳤다"라고 한탄할 정도로 커다란 자폭쇼를 펼친 것. 하지만 역시 스피드의 사쿠라 관명마인지, 남은 200m에서 다른 말들을 다 제치고 5위로 들어오며, 만약 외곽으로 빠지지 않았거나 직선거리가 100m만 더 있었다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사게 된다.
결국 클래식 전선에선 단 하나의 상도 따지 못한채 연말의 아리마 기념에 도전하게 되는데, 오구리 캡과 슈퍼 크릭에 이은 3번 인기로 출전하여 최후반 오구리 캡과 런닝 프리까진 제쳤지만 이나리 원과 슈퍼 크릭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착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도 이 경기에서 최소한 양마장 상태라면 어느 말에도 뒤지지 않으며, 슈퍼 호스들 뿐인 선배 세대들과도 어느정도 대등한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5세(현 4세) 시즌에 돌입한다.
그리고 5세 시즌 첫 경기인 아메리카 쟈키 클럽 컵에서는 오랜만에 단조지정을 받아 악착같이 따라붙는 노장 런닝 프리의 추격을 뿌리치며 쾌승, GII 우승을 추가한다.
하지만 다음의 오사카배에선 다시한번 중마장 약점이 재발하며 5번째 단조지정을 받았음에도 7착 패배, 천황상 봄에서는 그냥 단순히 거리적성이 안맞아서인지[5] 장거리의 강자 슈퍼 크릭이나 이나이 원은 물론이고 AJCC에서 이겼던 노장 런닝 프리나 당대의 도주마인 미스터 시클레논등에 밀리며 14착 패배를 당한다.
게다가 누가 "부상의 사쿠라 관명마" 아니랄까봐 타카라즈카 기념을 준비하던 중 부상을 입어 장기 휴양에 들어가고, 6세(현 5세) 시즌에 들어서는 케이오배 스프링컵과 야스다 기념 등 스피드를 살릴 수 있는 단거리-마일 경기에 도전하지만 두 경기 모두 다이이치 루비의 승리를 지켜보며 게시판에도 들지 못하는 착외 대패를 당하고, 결국 더이상은 제 스피드를 살릴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은퇴하게 된다.
은퇴 후에는 종마가 되어 사쿠라 스피드 오나 선라이즈 샤크 등의 중상 우승마를 배출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로 8시즌 동안 종마로 활동하다 형 치요노 오보다 한참 이른 2000년에 숨을 거둔다.
4. 기타[편집]
-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활약마가 적다보니 존재감 약하기로 소문난 1989년 클래식 세대에서, 그래도 부상이 없었다면 나중에라도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말로 꼽힌다.[6]
실제로 킷카상에서 보여준 최후반 200m의 맹추격이나 아리마 기념에서 3위 입상의 실력을 보면, 최소한 2000m대의 중거리 경주에 꾸준히 출주 했다면 최소 GI 1승 정도는 거뒀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호쿠토 오만 정상 가동 됐다면 최소한 89년 클래식 세대의 평가가 이렇게까지 낮지는 않았을 거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 이런 불운 덕분에 붙은 별명이 "불운의 비를 부르는 사나이"다(...)
- 특이한 기록이 하나 있는데, 자마중 거의 유일한 성공마라 할 수 있는 사쿠라 스피드 오(통산 22전 4승에 중상전에선 GIII 2승)와 함께 미스터 토진(ミスタートウジン)이란 동기 말에게 부자가 쌍으로 진 경력이 있다. 이는 미스터 토진이 무려 15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당대의 최고령 경주마 출신[7] 이다보니 아버지와 아들 모두와 경기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참고로, 이렇게 오래 뛴 덕분인지 99전 11승[8][9] 을 올리는 동안 중상 승리는 단 한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획득상금 4억엔을 돌파하며 사쿠라 호쿠토 오와 사쿠라 스피드 오 부자가 벌어들인 상금보다 더 많이 벌었다.
5. 경주 성적[편집]
[1] 중상마만 서술, 볼드 표시는 G1/Jpn1 우승마.[2] 치요노후지의 사제로 생년도 데뷔년도 8년 차이. 1992년 5월에 은퇴하고 이듬해 9월부터 핫카쿠(八角) 도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일본스모협회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다.[3] 보통 2~3개의 게이트를 한 조로 묶지만, 우승이 유력한 말이라면 그 한 마리만으로 조를 구성하는 제도. 즉 이 말이 가장 강하다는 대회 운영진의 인정이자 팬들에겐 "이 말 마권을 사세요"라는 어필이고, 상대 조교사와 기수들에겐 "얘가 가장 강하니까 얘만 견제하면 됩니다"라는 선언이다. 때문에 단조지정을 당하면 반발하는 조교사와 기수가 꽤 있었다고 한다.[4] 게다가 이는 아사히배 퓨처리티 스테이크스의 첫 형제 연속 제패 기록이다. 다만 반형제 관계이므로 전형제 연속제패는 아직까지는 없다.[5] 천황상 봄은 3200m의 장거리전이다.[6] 오사이치 조지는 오구리 캡에게 한번 이긴 적이 있지만 그 뒤로는 쭉 부진했고, 뱀부 비긴은 만성형이라 살아있었다면 꽤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고마들과는 대전해 보지 못한 채 은퇴한지라 비교가 불가능해서 평가가 약하다.[7] 히카루 아야노히메가 19세의 나이임에도 현역으로(...) 뛰어서 기록이 진작 깨졌다.[8] 100전 돌파를 노리고 있던 중에 부상으로 딱 99전째에 멈췄다고 한다(...)[9] 덤으로, 1살 위 반형제 형인 미스터 시클레논(ミスターシクレノン)이란 말이 있는데, 당대의 도주마로 유명했고 역시 8세 시즌(현 7세)까지 뛰었던 노장 출신이다. 혈통이 아무래도 튼튼한 몸이 특징인 듯(...)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11:04:07에 나무위키 사쿠라 호쿠토 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