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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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주마. 성적보다는 외모로 유명한 말이었다.
아비 바이스리걸은 노던 댄서의 첫해 자마이자 9전 8승을 거둔 명마로, 1968년 2세 때 캐나다 연도대표마로 선정된 적도 있지만 부상으로 인해 1969년 켄터키 더비 3착을 마지막으로 일찍 은퇴하고 씨수말이 되었다. 씨수말로는 성과를 남기지 못해 일본으로 넘어간 뒤 최대 아웃풋이 이 골드 시티 정도. 반면 BMS로는 성과를 거두어 1987년 개선문상 우승마인 트랑폴리노(Trempolino), 마블러스 선데이가 바이스리걸의 외손자이다.
바이스리걸에게는 바이스 리전트(Vice Regent)라는 전형제 동생이 있었는데, 경주마 시절 성적은 형에 못 미쳤지만 씨수말로는 형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고 데퓨티 미니스터(Deputy Minister) 등의 자마들도 성공적인 씨수말로 꼽히고 있다.[7]
모계 4대모는 1955년 우준 빈마 우승마인 히로이치(ヒロイチ)로 에스포와르 시티의 6대모이기도 하다. 같은 시티 관명으로 알 수 있듯이 (주) 유슌 호스 클럽 소유마다.
갈기와 꼬리가 백금발인 '오바나쿠리게(尾花栗毛)'가 인상적이며, 그뿐 아니라 유성이 이마부터 코까지 길게 뻗었고 네 발이 모두 흰색인 '욘파쿠류세이(四白流星)'라는 특징까지 가진 매우 출중한 외모의 경주마. 역대 외모 순위에도 첫손에 꼽힌다. '골드 시티'라는 이름도 갈기의 색에서 따왔다고 한다. 목장주가 키울 때도 경주마로 안 되면 디즈니랜드에라도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다만 성격은 매우 격해 어릴 적 목장 시절에도 대장 노릇을 하고 다녔다. 무리에서 계속 선두에 서려고 했기 때문에, 경주마 시절에도 오버페이스가 되지 않도록 기수가 제어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방에 들어온 뒤에는 게으른 모습으로, 보통 오전 6~8시에 트레이닝하는 다른 말과는 달리 아침에 도통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억지로 깨우면 난리가 나면서 나오지 않아, 훈련장에 나타나는 시간은 다른 말들이 훈련을 끝내고 모두 철수한 후인 10시쯤이나 되어서였다. 그래서 야유 섞어 불린 별명이 '오전 10시의 남자'.[8]
관서 주니어 챔피언의 영광을 차지하고 맞이한 1987년 클래식 무대 직전에 마테리얼, 사쿠라 스타 오와 함께 3강 구도로 손꼽혔으며 사츠키상과 킷카상에서 각각 2착을 차지했으나 이후 은퇴까지 우승과는 연이 없었다.
87년 클래식 3강이라 불린 라이벌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9] 처럼, 이 말도 은퇴 후 장애물 비월용 승마에 쓰기 위해 훈련받았으나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목장의 다른 말들과 매일같이 싸우며 고립되던 중 안 보이던 사이 다리가 골절된 채 발견되어 안락사했다. 골절당했을 때 목격자가 없어 원인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했다.[10]
원래 JRA의 마명 명명법에서는 "기존에 존재했던 유력마(주로 G1 우승마)의 이름은 재사용하지 못한다"라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11] 그래서 원래라면 한신 3살 스테이크스의 우승마인 골드 시티의 이름은 재사용 불가이지만, 나이 규정이 변경되면서 2살마(구 3살마)는 1991년 수상마부터 적용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분에 규정에 들어맞는 골드 시티의 경우 이름의 재사용이 가능해서 2014년에 출생한 한 말이 2대째 골드 시티의 이름을 이어받았지만,[12][13] 이 말은 중앙에선 1승도 못 올린채 지방의 이와테 경마로 이적해서도 부진, 통산 26전 2승에 지방경마 상금수익액이 58만엔이라는 초대 골드 시티에게 미안해질 정도의 성적밖에 못 올리고 2017년 말 등록말소 되었다.
그리고 등록말소 후 5년간은 사용금지이기 때문에 2023년부터 경주마 등록되는 말에는 다시 골드 시티의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새에 비해 인터넷상에 원본마의 사진이 몇 장 없다보니 종종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골드 시티가 아닌 다른 오바나쿠리게 말 사진이 잘못 올라오곤 한다.
[각주]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성적보다는 외모로 유명한 말이었다.
2. 혈통[편집]
아비 바이스리걸은 노던 댄서의 첫해 자마이자 9전 8승을 거둔 명마로, 1968년 2세 때 캐나다 연도대표마로 선정된 적도 있지만 부상으로 인해 1969년 켄터키 더비 3착을 마지막으로 일찍 은퇴하고 씨수말이 되었다. 씨수말로는 성과를 남기지 못해 일본으로 넘어간 뒤 최대 아웃풋이 이 골드 시티 정도. 반면 BMS로는 성과를 거두어 1987년 개선문상 우승마인 트랑폴리노(Trempolino), 마블러스 선데이가 바이스리걸의 외손자이다.
바이스리걸에게는 바이스 리전트(Vice Regent)라는 전형제 동생이 있었는데, 경주마 시절 성적은 형에 못 미쳤지만 씨수말로는 형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고 데퓨티 미니스터(Deputy Minister) 등의 자마들도 성공적인 씨수말로 꼽히고 있다.[7]
모계 4대모는 1955년 우준 빈마 우승마인 히로이치(ヒロイチ)로 에스포와르 시티의 6대모이기도 하다. 같은 시티 관명으로 알 수 있듯이 (주) 유슌 호스 클럽 소유마다.
3. 생애[편집]
갈기와 꼬리가 백금발인 '오바나쿠리게(尾花栗毛)'가 인상적이며, 그뿐 아니라 유성이 이마부터 코까지 길게 뻗었고 네 발이 모두 흰색인 '욘파쿠류세이(四白流星)'라는 특징까지 가진 매우 출중한 외모의 경주마. 역대 외모 순위에도 첫손에 꼽힌다. '골드 시티'라는 이름도 갈기의 색에서 따왔다고 한다. 목장주가 키울 때도 경주마로 안 되면 디즈니랜드에라도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다만 성격은 매우 격해 어릴 적 목장 시절에도 대장 노릇을 하고 다녔다. 무리에서 계속 선두에 서려고 했기 때문에, 경주마 시절에도 오버페이스가 되지 않도록 기수가 제어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방에 들어온 뒤에는 게으른 모습으로, 보통 오전 6~8시에 트레이닝하는 다른 말과는 달리 아침에 도통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억지로 깨우면 난리가 나면서 나오지 않아, 훈련장에 나타나는 시간은 다른 말들이 훈련을 끝내고 모두 철수한 후인 10시쯤이나 되어서였다. 그래서 야유 섞어 불린 별명이 '오전 10시의 남자'.[8]
관서 주니어 챔피언의 영광을 차지하고 맞이한 1987년 클래식 무대 직전에 마테리얼, 사쿠라 스타 오와 함께 3강 구도로 손꼽혔으며 사츠키상과 킷카상에서 각각 2착을 차지했으나 이후 은퇴까지 우승과는 연이 없었다.
87년 클래식 3강이라 불린 라이벌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9] 처럼, 이 말도 은퇴 후 장애물 비월용 승마에 쓰기 위해 훈련받았으나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목장의 다른 말들과 매일같이 싸우며 고립되던 중 안 보이던 사이 다리가 골절된 채 발견되어 안락사했다. 골절당했을 때 목격자가 없어 원인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했다.[10]
4. 기타[편집]
원래 JRA의 마명 명명법에서는 "기존에 존재했던 유력마(주로 G1 우승마)의 이름은 재사용하지 못한다"라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11] 그래서 원래라면 한신 3살 스테이크스의 우승마인 골드 시티의 이름은 재사용 불가이지만, 나이 규정이 변경되면서 2살마(구 3살마)는 1991년 수상마부터 적용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분에 규정에 들어맞는 골드 시티의 경우 이름의 재사용이 가능해서 2014년에 출생한 한 말이 2대째 골드 시티의 이름을 이어받았지만,[12][13] 이 말은 중앙에선 1승도 못 올린채 지방의 이와테 경마로 이적해서도 부진, 통산 26전 2승에 지방경마 상금수익액이 58만엔이라는 초대 골드 시티에게 미안해질 정도의 성적밖에 못 올리고 2017년 말 등록말소 되었다.
그리고 등록말소 후 5년간은 사용금지이기 때문에 2023년부터 경주마 등록되는 말에는 다시 골드 시티의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새에 비해 인터넷상에 원본마의 사진이 몇 장 없다보니 종종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골드 시티가 아닌 다른 오바나쿠리게 말 사진이 잘못 올라오곤 한다.
5. 경주 성적[편집]
[1] 당시 기준으로 7세.[2] 구 연령 3세, 현재 연령 기준 2세. 당시에는 관서 지역의 2세마 챔피언을 뽑는 주니어급의 G1 경주였다.[3] 현 JRA상 최우수 2세 수말.[4] 메리 나이스와 공동수상.[5] 중상마만 서술.[6] 1996년 케이오배 어텀 핸디캡(G3)을 우승했다.[7] G1 5승을 거둔 닉스고가 바로 바이스 리전트의 고손자이며, 데퓨티 미니스터의 증손자이다.[8] 경주마들은 훈련을 자기 일과처럼 여겨서, 익숙해진 말들은 따로 유도가 없어도 시간이 되면 알아서 잠에서 깨어 훈련 코스를 자기 페이스로 후다닥 빨리 돌고, 그러고 나면 다 했다고 여기고 마방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어 한다고 한다.[9] 사츠키상과 킷카상을 승리한 2관마 사쿠라 스타 오는 87년 아리마 기념에 출주했다가 부상을 입어 가망없는 후속치료 속에 고통받다 끝내 안락사 처치를 받아 죽었고, 마테리얼은 기나긴 부진 끝에 89년 쿄오배 어텀 핸디캡(G3) 경주에서 우승하며 부활하는가 싶더니 경주 후에 입은 부상과 합병증을 일으켜 죽었다. 사쿠라 로터리, 다이나 생큐 등 유력마로 평가받았지만 당시 3세 시즌(현재의 2세)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즉 클래식 시즌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은퇴한 말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동세대 클래식 노선의 경주마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불의의 사고로 은퇴 또는 요절해, 훗날 87년 클래식 세대는 '비극의 세대'로 불린다. 예외적으로 3강과는 별개로 갑툭튀해서 더비 호스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메리 나이스와 동기들에 비해 전성기가 늦게 온 편이었던 타마모 크로스, 이나리 원 정도만이 그럭저럭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10] 일각에선 사고였다기엔 마방에 부서진 흔적이 없고 다른 말들이 이상하리만치 동요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과한 스트레스로 자살했다거나, 말들이 작정하고 다리를 부러뜨린 게 아니냐는 흉흉한 추측을 하기도 한다.[11] 심지어 유명마의 경우에는 헛갈릴 수 있는 이름도 안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과거에 초카이 테이오라는 마명으로 등록하려던 마주가 있었는데, 본인이야 이미 테이오라는 이름을 쓰는 말은 많으니(닛포 테이오, 레전드 테이오 등) 괜찮겠지 싶었으나 JRA에서 "발음상 토카이 테이오와 헷갈릴 가능성이 있다"라며 불허해서 초카이 라이징이란 이름으로 변경한 사례가 있다.[12] 사실 JRA의 전통적인 명명법 중 하나인 "부마의 이름과 모마 또는 외조부의 이름에서 한 단어씩 따 와서" 만들다 보니 의도치 않게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부마가 골드 알뤼르, 외조부가 탭 댄스 시티라서 합쳐보니 골드 시티였다고...[13] 2대 골드 시티는 나리타 탑 로드의 조카이기도 하다. 모마 토아 하나노 마이가 나리타 탑 로드의 반형제이기 때문.[14] 1991년부터 암말 한정으로 바뀌었고, 2001년부터 이름이 한신 쥬브나일 필리즈로 바뀌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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