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한 문서 [국민소환제]가 편집되었습니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덤프버전 : (♥ 1)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약체 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팀 역사만 보더라도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로 매우 초라한 편이고, 통산 승률도 4할 5푼조차 안되는(.448) 12개 구단 중 최하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0] 단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40년 동안 6할 승률을 거둔 적이 없고 파이널 시리즈 진출이 고작 4회인데[11] 이 구단은 무려 72년 역사에 6할 승률을 거둔 적이 없고 파이널 시리즈 진출이 3번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9시즌 전까지 총 69시즌동안 NPB 통산 4966패라는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12개 구단 통틀어서 최다패이다. 결국 2019년 6월 15일 교류전 기간에 만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패배하며 NPB 최초로 5000패를 달성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12]
그리고 현존하는 센트럴리그 팀 중 유일하게 홈구장에서 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결정지은 경험이 없는 팀이다. 이 팀은 그나마 있는 2번의 리그 우승을 전부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결정지었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98년에 홈구장에서 결정지어서 홈 팬들 앞에서 헹가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팀명에 쓰는 마스코트는 오랫동안 훼일즈[13] , 즉 고래를 써왔었는데 당시 모기업이 고래잡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고래잡이가 점점 논란거리가 되어서인지 1993년부터 베이스타즈라는 아주 일본스러운 영어로 바꾸었다. 말 그대로 요코하마 만(Bay)의 별들이라는 뜻이다.[14]
2011년 시즌까지 방송국인 TBS 테레비가 모기업으로서 운영해 왔으나, TBS조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요코하마보다 요미우리의 경기 중계에 더 힘을 쏟아왔다. 모기업도 버린 셈. 2010년 시즌 종료 후 구단 매각을 선언하여 유력 후보로 住生活グループ[15] 이 거론되었으나, 교섭결렬로 2011년 시즌 까지는 TBS 테레비가 구단을 운영해 왔다[16] .
결국 2011년 11월 4일, 모바일 게임 사이트 '모바게(Mobage)'[17] 를 운영 중인 DeNA(디엔에이)가 요코하마의 모기업인 TBS 홀딩스와의 매입 협상을 완료하고 구단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회사 재무 구조와 향후 사업계획 등의 실사를 마치고 12월 1일 구단주 회의에서 DeNA의 요코하마 구단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팀 명칭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약호도 요코하마의 横에서 DeNA의 De(혹은 ディ)로 바뀌고 표기도 요코하마 DeNA로 변경되었다. 근데 익숙한 것도 있고, 너무 길기도 해서 일본 언론에서조차 그냥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지역명 빼고 간단히 'DeNA'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2. 구단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편집]
4. 유니폼[편집]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응원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응원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관중수 추이[편집]
스스로 강팀이 되려하기보다는 적당적당히 운영비 아껴가면서 요미우리전의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려는 심보로 구단을 운영한 다이요 어업이나 TBS 테레비와는 달리, DeNA는 어떻게든 요코하마와 팀에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구단을 경영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며 관중수를 눈에 띄게 불리고 있다. 정말로 DeNA가 모기업이 된 것이 천만다행. 요코하마 스타디움 항목에도 DeNA가 새 구단주가 되고나서 프로 구단으로서 자립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2016년 이후로는 마침내 관중도 잡고 성적도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일본시리즈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다만 2018년 이후 성적 부진과 더불어 유벤투스 스폰서비 상승과 관련된 구단의 투자 비중 감소로 인해 다시 Baysball의 재림이 시작된다는 우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관중 상승 추이도 모기업의 부풀리기 의혹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모양이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관중증가는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2019년 후반기 들어 요미우리, 히로시마와 치열한 3파전을 전개하는 양상이 되자 새로 증축한 관중석까지 관중이 들어차면서 창단 후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3만관중 동원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2018년 결산에서 모기업인 DeNA의 다른 사업분야는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18] 유일하게 야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사업만이 흑자를 기록하면서 모기업의 이익 감소분을 메웠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확실히 TBS 시절과 지금은 분위기도 팬들의 호응도도 다른 구단이 되었고 만년 하위팀을 이렇게까지 바꾼 것은 DeNA 구단측의 노력을 평가해야할 부분이라 하겠다.[19][20][21]
7. 인기[편집]
도쿄 인접지역인 요코하마를 연고지로 한다는 점과 전통적인 약체인 팀 특성상 센트럴리그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함께 인기가 없는 팀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DeNA사가 구단을 인수한 뒤로는 적극적인 자세로 구단 경영에 임한 결과 상술했듯이 관중수가 히로시마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구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1년 구단 팬클럽의 회원수가 1만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나간 가을야구인 2016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도쿄 돔 원정 응원석은 물론 3루측 중립석까지 메워버리는 화력을 보였으며, 팀이 19년 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던 2017년에는 8만 7천명 대로 크게 늘어나는 등 관중 뿐만이 아니라 팬덤수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이외에도 홈구장 리모델링을 통해 관중석 증축을 진행하는 등 관중 유치에 상당히 힘을 쏟고 있다. 매년 실시하는 스타나이트 데이, 2018년 실시했던 1998년 유니폼 복각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을 실시하며 노력하고 있다.
의외로 한국에서도 이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이승엽이 한창 요미우리에서 뛰던 시절 상대팀으로 종종 보이기도 했고 모기업이 게임회사인지라 이쪽 경로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있는 듯.
2019년에는 아직 시즌중이지만 6월까지 평균관중이 3만명을 넘어섰다. 양대 리그를 합쳐도 한신,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다음가는 관중수다. 관중석 증축효과와 마케팅의 성과가 결실을 맺은 결과. 이제 비인기 구단이라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22]
8. 팀 특징[편집]
8.1. 팀 이름이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편집]
그나마 이 팀에서 뛰는 스타급 선수로는 오랫동안 팀 투수진을 떠받쳐온 '반초(대장)' 미우라 다이스케 정도였으나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미우라는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지만 팀이 그렇지가 못하고 있다.[23] 그 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재일교포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 일본프로야구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낸 곳도 여기였다.
한 때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는 2007, 2008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자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거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있었으나, 2012년 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일본 턱돌이로 유명하며 고타율과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홈런을 쳐내어 우리나라를 울리기도 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이 팀 소속이었다.
이러다 보니 결국 팀에서 뛰는 주목받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나카하타 감독 시절에는 담당 기자들도 선수보다는 감독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록으로 쓰일만한 뭐 한마디 안 나오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오죽하면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 경기에서 "DeNA는 나카하타 감독이 가장 눈에 띈다. 선수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는 요코하마 프런트의 행보도 한몫 거드는데, 툭하면 구단의 레전드로 남을 선수를 제대로 못 지켜서 팬들의 원성이 매우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붙박이 유격수 이시이 타쿠로가 2009년에 히로시마로 이적하여 은퇴 후 히로시마 코치로 정착, 마찬가지로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야수 사에키 타카히로가 2011년에 주니치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주니치 코치로 정착, 미우라 다이스케와 함께 요코하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외야수 긴조 다쓰히코 역시 2015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요미우리의 코치로 정착하였다. 이 케이스의 공통점은 구단 측에서 빡빡하게 은퇴 권고와 전력외 통지를 날렸고 선수와 구단간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것인데,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인기 선수들을 좀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내쳐버리는 선택이 팬 입장에서는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코하마 팬 입장에서는 이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지금 봐도 어색할 정도다.
이렇다보니 웃픈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상대팀 선수의 은퇴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상기된 이시이 타쿠로는 전날 히로시마에서 은퇴 경기 및 은퇴 행사를 진행한 뒤 다음날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의 원정 경기에서 진짜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특전 영상, 꽃다발 전달, 경기 후 구장 한 바퀴를 일순하며 팬들과 하이터치 등 마치 홈팀 선수가 은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24] 정작 같은 날 은퇴 경기를 치룬 DeNA의 포수 니이누마 신지는 묻혔다. 뭐 물론 둘이 워낙 급이 다르긴 하지만 98년 우승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면서, 주니치의 선수 겸 감독이던 다니시게 모토노부 또한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 마지막 타격을 한 것이 요코하마 스타디움. 구장을 일순하며 다이요 시절부터 요코하마를 거쳐 주니치 시절까지 응원가 메들리, 다니시게의 자녀들의 꽃다발 전달식, 헹가래 등 홈구장에서 볼 법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로테이션의 이노 쇼이치와 야마구치 슌이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의 주축 선수보다 개성도 화제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야마구치는 2016년 말 FA로 요미우리로 이적.[25] 그나마 2014년 시즌 들어와서 츠츠고 요시토모가 3할 22홈런으로 토종 4번타자로서 활약을 보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 떠오르고 있고, 2015년 입단한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로 혜성같이 등장,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2010년대 중반 리빌딩 이후 투수진에는 야마사키, 야수진에는 츠츠고가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츠츠고는 2019 시즌 종료 이후 메이저리그 포스팅에 참가할 것을 선언하였고 구단이 수락하여 또 스타선수가 빠지는 상황을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츠츠고가 빠져나간 이후로는 첫 시즌부터 3할에 20홈런을 기록한 마키 슈고, 요코하마의 좌완 에이스 이마나가 쇼타, 2020 시즌 이후 타격 센스가 만개한 사노 케이타 등이 스타선수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중 야마사키 야스아키는 2022시즌 종료 후 평소 갈망하던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접고 옵트아웃 조항도 없는 6년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것이 확정되었다.
2023시즌 종료 후 이마나가가 MLB 포스팅을 신청했는데, 아예 구단차원에서 국내에 남는걸 만류하면서 포스팅을 권유했다고 한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비슷한 행보인데, 어차피 FA가 되는 순간 선수들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기에 특급 자원들은 미국에 팔아서 돈도 벌고 상대 팀의 전력에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며, MLB 포스팅에 우호적이고 적극적라는 이미지를 심어 특급 유망주를 수급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8.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편집]
아래는 요코하마 팬으로 사는 십계명이라고 한다.[26]
최근 몇 년간 센트럴리그 꼴찌를 도맡아해온 베이스타즈의 상황을 비꼬는 유행어로 베리그가 있다. 매년 다른 팀과 엄청난 차를 벌리면 꼴등으로 가라앉은 채 그대로 시즌이 끝나버리는 거의 독립적인 위치라는 점 때문에 베이스타즈가 사실은 다른 리그였다! 라는 뜻으로 센트럴리그를 줄여서 세리그, 퍼시픽리그를 파리그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베이스타즈에서 「베」를 따 베리그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베이스타즈 혼자 소속된 리그이지만 자국리그나 타국 리그에서 헤매는 팀들을 여기로 승격시켜서 순위를 가리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파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MLB의 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가 여기 단골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결국 매년 수위는 베이스타즈가 차지한다. 물론 패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은 베리그 기준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ベイスボール[27] '이라는 표현도 곧잘 쓰이는 모양. 굳이 한국에서 쓰이는 비슷한 표현이라면 '유사야구' 또는 '코구' 정도다.
물론 2016년부터는 십계명이 모두 뒤집혀졌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이후로는 옛날 십계명을 찾아 쓰는 상황이 찾아올듯 말듯한 줄타기가 이어졌지만 2020년 들어서는 일부 주축 선수의 이탈[28] 과 무관중 경기로 리그를 치뤄야하는 상황이 오면서 이전처럼 되돌아가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며 출발했던 2021년, 6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이전의 십계명대로 팀이 귀신같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해에 2위로 올라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활했다.
9. 이야깃거리[편집]
- 병살타로 일본시리즈를 우승을 확정한 3구단 중 하나이다. 당시 상대는 세이부 라이온즈. 다른 두 팀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vs 긴테쓰 버팔로즈)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vs 한신 타이거스).
-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98년 베이스타즈의 우승을 기념하며 국물이 파란색인 베이스타즈 라면을 팔던 칸톤(廣東)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으며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듯. 2014년 현재는 폐점했다.
- 교류전에 매우 약하다. 2005년 교류전 시작 이래 2017년 종료 시점까지 129승 200패 7무승부, 승률 .392로 교류전 통산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무려 2할 넘게 차이가 날 뿐만아니라 바로 위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도 통산 승수에서 15승 정도 차이가 나는 압도적 꼴찌이다. 교류전 꼴찌도 5번으로 최다. 이러한 체질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2015년 시즌으로 교류전 돌입 전에 승률 5할 + 11승으로 1위를 기록하며 17년만의 우승 설레발까지 나왔지만 교류전에서 3승 14패로 참패하면서 최하위를 기록. 그 전까지 벌어놓은 저금을 다 까먹고 내려 앉아 마침내 시즌 끝날 때는 최하위까지 굴러 떨어졌다. 2018년에는 비로 연기되어 교류전 마지막 경기가 된 치바 롯데전을 패함으로써 기어이 해를 넘기지 않고 교류전 통산 200패를 채우고 말았다. 교류전에서 통산 200패를 기록한 건 12개 구단 최초였다.[29] 그래도 2016년 이후의 교류전 성적을 보면 그런대로 중박은 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4할 승률을 돌파했다. 2023년 교류전에서는 아예 우승까지 차지함과 동시에 교류전 통산 승률 최하위의 자리를 히로시마에 넘겨주고 11위로 올라섰다.
- 팀의 마스코트로는 남성 캐릭터인 DB 스타맨과 여성 캐릭터인 DB 키라라가 있다. 모기업이 DeNA로 변경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마스코트로 이전 마스코트였던 홋시, 홋시나, 홋시조[30] 는 졸업하여 예전에 쓰던 마스코트가 되었다. 참고로 얘네 '햄스터'다. 그러니 팬들은 그런거 무시하고 대부분 너구리 취급 하고 있으며[31] 소속팀 포수 토바시라는 얘네를 고양이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DB 스타맨은 인형탈이 인형탈이다보니 다른 구단 마스코트들에게 굴욕도 자주 당한다.예시1(2분부터)
팔이 짧아서 슬픈 마스코트예시2
- 5주년 기념으로 마린 군(マリンくん)을 선보였다. "왜 남의 팀 이름을 자기네 팀 마스코트 이름으로 쓰냐"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마스코트는 롯데가 "마린즈"라는 이름을 쓰기 전인 요코하마 다이요 시절[32] 썼던 마스코트다. 롯데의 마린즈보다 뼈대 깊은 마린인 셈이다.
- 요코하마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해 활약한 선수들이 이적 후에 남긴 코멘트가 있는데 가관이다[38] .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구단 OB에 전 감독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 우치카와 세이이치(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요코하마에서는 누굴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33] , "아무 긴장감도 없는 곳에서 플레이하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플레이 하는 게 보람이 느껴진다."
- 무라타 슈이치 - (요코하마 소속이던 당시 WBC 대표로 참가하고 나서) "프로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수비 연습을 했다." "이대로 (요코하마에서) 질질 선수생활을 끝내고 싶진 않다."
- 테라하라 하야토(요코하마 → 오릭스) - "개개인의 선수가 자신에게 투자하고 단련하는 것이 적은 것 같다고 느꼈다."
- 사에키 타카히로(요코하마 → 주니치) - "(주니치의 연습에 참가하면서)연습이 꽤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전혀 다른 연습이었다."
- 사카모토 야타로(요코하마 → 세이부) - "요코하마는 연습때의 집중력도 낮고 옷차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전에 있었던 야쿠르트와도 큰 차이가 난다. 좀 더 프로의식을 높여야한다."
- 요시미 유지(요코하마 → 치바 롯데) - "(롯데로 이적한 후)오랜만에 야구를 하니 기쁜 감정이 솟아올랐다."
- 하시모토 타스쿠(치바 롯데 → 요코하마) - "역시 요코하마 이적은 실수였다." "모든 선수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팀이 있나 싶었다." "경기 중 덕아웃에 있는 선수가 적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 생겼다."
- 와타나베 나오토(라쿠텐 → 요코하마) - "(피지컬 트레이닝도 아닌데) 축구하는 건 이상해." "(전 소속팀인)라쿠텐이었다면 뒤지게 맞았을거다." "(이후 축구를 하던 선수를 훈계하러 간 와타나베. 반응을 묻자)순순히 듣고 있었다. 근데 보통 선배가 오면 긴장하거나 자세를 바로 잡지 않나? 요코하마에서는 그 조차도 하지 않더라."
- 타무라 히토시(요코하마 → 소프트뱅크 → DeNA) - "요코하마 시절에는 제대로 뛰어 본 적이 없었다." "요코하마 시절에는 연습하면 안 된다는 풍조가 있었다."
- 타네다 히토시(주니치 → 요코하마) - "2번째 구단 인 요코하마는 주니치에 비하면 솔직히 미지근한 분위기의 팀이었다. 야구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집단이었다. 연습이든 경기든 왠지 그냥 시작해서 그냥 끝난다고 할까?" "주니치는 코치진의 강한 지도력 아래 통제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세이부는 코치들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 요시무라 유키(요코하마 → 소프트뱅크) - "강팀(소프트뱅크)으로 올 수 있어서 좋았다."
- 후루키 카츠아키(오릭스 버팔로즈 → 미국 독립리그 하와이 스타즈[34] ) - "(요코하마에 재적하고 있던 때부터 이적하고 싶어서) 연습이 제대로 안됐다"
- 츠루오카 카즈나리(요코하마 → 요미우리 → DeNA → 한신 타이거스)[35] - "(자이언츠의 연습을 보며) 1군의 선수가 이렇게 (많이) 연습하는 줄은 몰랐다."
- 카토 코스케(현 후쿠시마 호프스) - "강한 팀은 강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걸 하루에도 몇차례씩 느끼고, 저도 빨리 그(강한) 팀의 일원이 되고싶습니다."[36]
- 타카미야 카즈야(요코하마 → 오릭스) - "개막전 1경기만 졌는데도 시즌이 끝난 느낌이었다."
- 쿠도 키미야스(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 "요코하마의 선수는 연습안해"
- 카도쿠라 켄 - "야구소년들이여, 프로가 되고 싶겠지. 챤스는 있어! 하지만 요코하마는 관둬."
- 니시 토시히사 - "(거인에서 요코하마로 이적 후) 점점 자신이 요코하마에 물들어 가는 기분이 든다. 여기 있으면 나까지 망쳐지는 것 같아."
- 아롬 발디리스 - "요코하마 시절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를 도와주는 코치도 선수도 없었다."[37]
- 호세 카스티요(피츠버그 → 요코하마 → 치바 롯데) - "시즌 중반쯤 들어가자 다들 이기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졌고 모두 개인 플레이에 급급했다."
- 터멜 슬레지(닛폰햄 → 요코하마 → 닛폰햄) - "(요코하마 입단 당시)12구단 중 가장 편한 팀으로 알고 있다." "(닛폰햄 복귀 당시)프로의식이 높은 팀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았다."
- 타카기 유타카(80년대에 주전 2루수로 활약한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OB) - "요코하마의 (동계훈련) 캠프를 가보면 모자도 안쓰고 있고 스파이크도 신고 있지 않은 놈도 있다.
- 나카하타 키요시(전 감독) - "(감독이 먼저) 인사를 했으면 (너희도) 인사 좀 해라."
- 고유와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센트럴 리그 특성과는 달리 정말 이것저것 많이 변했다. 웬만해서 센트럴 리그는 연고지, 모기업 주체, 팀명에 큰 변화가 거의 없지만[39] DeNA는 연고지도 시모노세키-교토-카와사키-요코하마[40] , 운영 주체도 타이요-타이요쇼치쿠 공동-다시 타이요 단독(=마루하)-TBS-DeNA, 팀명도 웨일즈-로빈스-웨일즈-베이스타즈였으며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며 팀 분위기도 여타 센트럴 리그 팀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 히로시마와 더불어 센트럴 리그 20세기 최후의 일본시리즈 우승팀들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요코하마가 나은 것은 요코하마는 그래도 마지막 우승이 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이다[41] . 원래 한신 타이거스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2023년 18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 그리고 마침내 지역 라이벌 오릭스 버팔로스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38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탈출하게 되었다. 이웃 퍼시픽리그에는 20세기 우승이 마지막인 팀이 없다.[42][43]
- 공식 명칭은 베이스타'즈'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포털이나 기사 등에서는 왜인지 기본적으로 베이스타'스'로 표기하고 있다. 더 희한한건 그동안 한국에서도 'STARS'의 팀명을 사용했던 농구의 안양 SBS 스타즈나, 여자농구와 남자배구의 KB(손해보험) 스타즈 모두 '즈'를 공식 표기를 사용했었는데, 유독 DeNA만 베이스타'스'라고 표현한다는 점.
- 구단 공식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야구단 구독자 수 3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2위는 두산 베어스. 일본 내에서는 12구단 중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요미우리에게 내줬다.
- NPB 최초로 구단 통산 5000패를 달성한 팀이다. 9월 5일 기준 4061승 293무 5024패 승률 .447을 기록 중으로 현존하는 구단들 중 최저승률을 기록중이다.[44] 별로 달갑지 않은 기록인건 맞으나 1950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팀이 30년대에 창단한 선배 구단들보다도 빠르게 5000패를 먼저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따라서 별명 역시 반만패. 요코하마에 이어 두 번째로 5000패를 달성한 팀은 오릭스 버팔로즈.
- 위의 2011시즌 단락에도 써 있지만, 21세기 전무후무한 지진 콜드패를 당한 팀이다. 물론 세계로 범위를 넓혀 보면 경기 중은 아니지만 경기 시작 30분 전에 지진으로 경기가 취소된 팀도 있다.
- 일본의 유명 베테랑 성우인 코야스 타케히토가 카나가와 출신이라서 야구를 볼 때 이 팀을 응원하는 편이다. 다만 이쪽은 스포츠 매니아와는 거리가 좀 먼 스타일이다.
- 보드게임 시리즈 모모타로 전철의 원작자인 사쿠마 아키라가 이 팀의 팬이다. 7살때, 즉 다이요 웨일즈부터 팬이었다. 2013년 추계 캠프때에는 베이스타 방송국(ベイスタ放送局)이라는 코너라는 기획을 감수할 정도.
- 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에서 사이죠 쥬리 역을 맡은 성우 나가이 마리코가 출신지와 가족의 영향으로 열혈 팬이다. 또한, 성우 나카무라 겐타도 열혈 팬인데 이쪽도 출신지가 요코하마시이다.
10. 선수단[편집]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역대 선수[편집]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역대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