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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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인천광역시장은 인천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81년 7월 1일 경기도 관할 기초자치단체였던 인천시가 경기도에서 독립해 인천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인천직할시장이 됐고 1995년 1월 1일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개편됨에 따라 시장직의 명칭도 인천광역시장으로 개칭된 후 현재에 이른다.
역사적 의미에서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천부사'까지 소급될 수 있다.
1995년 민선 시정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도 사퇴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광역단체장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후술하듯 인천광역시장 재보궐선거는 지금껏 없었다. 이 점은 대구광역시장이나 광주광역시장과 비슷하다.
인구가 300여만명에 달하고 수도권 지자체장인만큼 광역자치단체장들 중 상위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같은 수도권 단체장으로 묶이는 서울특별시장이나 경기도지사에 치여 수도권 지역 내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 모두 대통령 선거 본선 후보를 배출한 것에 비해 인천광역시장은 아직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인물을 배출해본 적이 없다.[1] 이 점은 부울경 지역 내에서 부산광역시장과 경상남도지사에 치이는 신세인 울산광역시장과 비슷하다.
1.1. 인천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인천광역시장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재보궐선거 없이 8회의 지방선거로만 실시되었다. 인천광역시는 8구 2군이 있으며, 이 중에서 해당 지역 1위가 인천광역시장이 되는 적중 지역은 아래와 같다.
부산광역시장 선거처럼 인천광역시장 선거도 50%의 지역이 살아남아 100% 적중 지역을 나타내고 있다.
2. 목록[편집]
2.1. 경기도 인천시장[편집]
2.2. 인천직할시장 (관선)[편집]
2.3. 인천광역시장 (민선)[편집]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인천광역시장[편집]
- 1946년 5월 28일 출생, 78세
- 재임기간 : 2002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서구·강화군 을 지역과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지역에서 제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구·미추홀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 재임기간 : 2002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서구·강화군 을 지역과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지역에서 제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구·미추홀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 민선 5기 송영길
- 1963년 3월 21일 출생, 61세
- 재임기간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본인의 원래 지역구인 계양구 을 지역에서 제20·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 재임기간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본인의 원래 지역구인 계양구 을 지역에서 제20·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 민선 7기 박남춘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4.1. 1995년[편집]
4.2. 1998년[편집]
4.3. 2002년[편집]
4.4. 2006년[편집]
현역이었던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정 평가가 좋았지만 인천광역시의 재정을 파탄내어 민심이 안 좋았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
4.5. 2010년[편집]
민주당은 인천광역시의 재정을 문제삼아 안상수 전 시장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이 전략이 먹히면서 인천광역시를 텃밭처럼 여기던 한나라당은 인천광역시장 자리를 민주당 송영길 전 시장에게 내주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이 지역 정치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송영길 전 시장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개최와 주경기장 건설을 당초 공약과 달리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정난을 오히려 악화시켰고 측근 비리, 본인이 주장했던 인천광역시 홀대론이 역으로 돌아오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유정복 후보에게 석패했다.
4.6. 2014년[편집]
출구조사 발표 때 보였던 초접전[12] 과는 달리 선거 내내 유정복 후보가 송영길 전 시장과 득표율과 득표수를 초중반에 계속 벌려나가면서 다소 싱겁게 유정복 후보가 승리를 점칠 수 있었고, 결국 송영길 전 시장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인천광역시 부채 증가, 새해 벽두부터 인천광역시권 통합론과 측근 비리, 중구, 동구 등 원도심 지역에서 민심이 떠난 것, 통합진보당 신창현 후보가 22,651표를 갉아먹은 것[13] 등이 송영길 전 시장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4.7. 2018년[편집]
초반에는 강화군, 옹진군에서 개표가 시작되어서 뒤쳐졌지만, 중구, 동구가 개표되니 박빙이 되다가, 계양구, 부평구, 연수구까지 개표되자[14] 확인 사살되었다.
자유한국당 유정복 후보는 이전에 승리했던 미추홀구, 중구, 동구, 연수구를 더불어민주당 박남춘에게 뺏겼고,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이겼던 옹진군, 강화군에서도 박남춘이 38%~42% 가량 득표하는 바람에 신나게 털렸다.
정태옥 전 의원의 희대의 망언 이부망천에 분노한 표심이 작용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사실 선거 이전 여론조사에서는 박남춘 후보가 이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진 않았다. 박남춘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는 계속 있었지만, 지지율이 50%를 넘기지는 못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에 발표된 2018년 6월 6일 조사에서도 40.6%의 지지율을 보였는데, 개표를 해보니, 무려 57.66%가 나와버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정태옥은 인천광역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지만 인천광역시에 지역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구광역시 북구 갑의 국회의원이다.
여기다 선거 당일 연수구 을 지역의 국회의원인 민경욱은 페이스북에서 유재석에게 파란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북한으로 가라고 비난하는 바람에 욕 폭탄을 먹고 게시물을 지우는 등 어그로를 끌었다. 빡친 지역 구민들은 투표로 자유한국당에게 정의구현을 선사했다.[15]
40.6%까지 떨어졌던 2018년 6월 6일 이후인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발언 하나 때문에 무려 50%에 가까운 표가 더불어민주당에게 가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옹진군과 강화군만 패배하고 나머지는 모두 50%~62%의 득표율을 올려 사실상 유정복의 재선 의지를 제대로 꺾은 셈이 되었다.
월미바다열차를 살려보겠다며 예산을 투입하고 뻘짓을 한 것도 치명타가 되었다.
4.8. 2022년[편집]
인천광역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근소한 차이로 이재명의 손을 들어준 지역이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의 낙승으로 끝났다. 유정복의 승리 요인으로는 국민의힘에 유리한 정치 지형과 더불어 원도심 재개발 공약으로 원도심의 표를 싹쓸이했다는 점이 꼽힌다. 송영길, 박남춘 등 더불어민주당의 인천광역시장들은 경제자유구역을 비롯한 신도시, 특히 청라국제도시의 가치 상승에 치중하고 원도심의 슬럼화를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유정복은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제물포 르네상스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며 원도심 주민들의 박탈감을 공략하였다. 그 결과 유정복은 전통적인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계양구를 제외한[16] 모든 기초자치단체에서 승리하며 박남춘을 여유롭게 따돌리고 시장직을 탈환하게 되었다.
특히 인천광역시 붉은 수돗물 사태, 송도 소각장 문제, 수돗물에서의 유충 검출이 박남춘의 낙선에 결정타를 줬는데, 보수 우위였지만 민주당세가 성장한 연수구와 검단, 청라의 영향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서구가 해당 사건의 피해 지역이였기 때문이다.
한편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와 정의당 이정미 후보와의 단일화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최종적으로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개표 결과를 분석 해 볼 때 단일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가 과반을 넘겼기에 격차는 줄었을지언정 유정복의 당선에는 영향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17]
5.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6.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7. 시정 구호[편집]
8. 이야깃거리[편집]
- 민선 시정 출범 이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시장이 1명도 없었다.
- 이상하게도 역대 민선 시장 중 좋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 한 명도 없으며, 3연임에 성공한 시장도 없다. 이전까지 평판이 좋았던 정치인도 인천광역시장을 역임하면 신뢰도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무능의 아이콘이 되어 재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인천시장 잔혹사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건 인천이라는 도시의 특징이 한몫하는데, 각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보니 인천 시민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도심과 신도시(송도, 청라, 영종), 부평 간에는 서로 접점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다 시장이 어느 한쪽 개발에 집중하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생기기 쉬운 구조다.[29] 그러다보니 시장들이 조금만 실책이 나와도 바로 여론이 나빠질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거기에 외지인 출신 인천시민 상당수는 인천을 서울, 경기로 가기 위한 경유지라는 인식이 여전해서 지역 정치에 그닥 관심이 많지 않기도 하다. 이 때문에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의 선거 투표율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
- 1·2기 최기선 : 재선 임기말에 비리 의혹이 터져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차기 지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단, 최기선같은 경우는 원래 민주당 계열의 인사였고, DJP 연합에 따라 민주당 쪽에서 자민련 쪽에 임대보낸 정치인이어서 DJP 연합 붕괴 이후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 3·4기 안상수 : 인천광역시 시민들에게 인천광역시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주범으로 찍혀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으나 빚더미 심판론을 들고 나온 송영길에게 대패했다.
- 5기 송영길 : 안상수가 망쳐놓은 재정을 복구시키겠다며 나왔지만 아시안게임 지방채 1조1000억원 발행, 검단신도시, 영종하늘도시, 도화구역 토지보상금 1조1000억원 등 부채를 늘렀고, 인천타워 등 대형 사업의 무산, 인천 도시철도 2호선 적시 개통에도 실패하여 시정 만족도 여론조사가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 #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송영길 심판론을 들고 나온 유정복에게 21,522표차로 석패했다. 이후 본인 지역구인 계양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재기하나 했지만,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재창출에 실패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대선 패배 직후 기존 지역구인 계양구 을을 이재명에게 물려준 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였고, 이듬해인 2023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에 연루돼 정치 생명이 끝장났다.
- 6·8기 유정복 : 힘있는 여당 시장, 인천 토박이임을 내세워 야심차게 취임 후 재정난 극복,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 인천발 KTX등의 굵직한 사업을 주도했으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파행운영, 검단 스마트시티 사기극, 송도국제도시 불법자산이관 문제 등으로 평판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전국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전국적인 민주당 돌풍과 이부망천 사태로 인해 박남춘에게 완패했다. 여담으로 안상수 이후로 시장을 단임 이상으로 하는 유일한 사례이다.
- 7기 박남춘 : 제3연륙교 착공, 영종 주민 인천국제공항철도 환승 할인, 인천e음 카드 발급,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 확정 등 소소한 업적을 쌓았으나, 임기 중 2년 연속 수돗물 관리 부실[27] 사건에 따른 책임론을 맞아 재선에 실패했고, 전임 시장인 유정복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로써 인천광역시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4연속 현역 시장이 연임[28] 에 실패하는 기록을 세웠다.
- 1-5대 지선으로 당선된 시장들 전원이 인천 토박이가 아니다. 최기선 전 시장은 인천 위에 있는 경기도 김포시 출신이고, 안상수 전 시장은 충청남도 태안군 출신, 송영길 전 시장은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6·8대 유정복(동구 송림동 출신), 7대 박남춘(중구 북성동 출신) 등 토박이 출신이 당선되고 있다.
- 출생지와는 별개로, 현재까지 민선 인천광역시장들은 모두 인천광역시 동부 혹은 인천 인접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두었던 인물들이다.[30]
- 역대 민선 시장 전원이 기독교 신자다. 이들 중 안상수 전 시장만 개신교, 나머지는 모두 가톨릭이며 불자 당선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물론 인천광역시는 애초에 개신교와 가톨릭의 세력이 상당히 강력한 반면 불교는 상당히 취약한 동네다.
- 지금까지 총 7번의 민선 시장 선거 결과 집권 여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5번, 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3번이다.[31]
- 역대 민선 시장들이 당선 이전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데[32] ,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유일한 기록이다.
9. 관련 문서[편집]
[1] 송영길 전 시장이 임기 이후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여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나름 인천광역시장 출신 중에선 가장 거물이었으나 대표로 선거를 지휘한 제20대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대표직을 사퇴하였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의원직을 내려놓고 출마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큰 격차로 낙선하고 결정적으로 민주당 돈봉투 사건의 타격을 맞아 대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2] 선거 당시 당적.[3] 2대 시장 역임 후 2년만에 시정 복귀. 1954년 2월 사퇴.[4] 5.16 군사정변으로 면직.[5] 선거 당시 당적.[6] 선거 당시 당적.[7] 199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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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당명 변경.
1997.11.21.
신설 합당.
1998.4.3.
탈당.
199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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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8] 200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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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9]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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