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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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煐得
1932년 4월 10일[1] ~ (92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관료, 정치인, 변호사, 세무사. 본관은 장흥(長興)[2] .
2. 생애[편집]
1932년 4월 10일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3] 에서 아버지 괴정(槐亭) 임동식(任東植, 1905. 1. 19 ~ ?)과 어머니 해남 윤씨(1902. 6. 15 ~ 1942. 2. 17)[4] 사이의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로 이주했으며 광주서중학교(26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곡성군 곡성면사무소 서기, 광주중앙국민학교[5] 교사 등으로 근무하다가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 및 제9회 고등고시 사법과 양과에 합격했다.
이후 재무부 광주사세청(現 광주지방국세청) 조사과장으로 근무하다가 대한민국 해군에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해군본부 검찰부장, 해병대사령부 심판부장 등으로 근무했다. 해군 대위로 예편한 뒤에는 재무부 국유재산과장, 소공세무서장, 재무부 세제과장, 인천세관장, 서울세관장 등을 거쳐 1969년 4월 7일부터 1970년 3월까지 관세청장의 전신인 재무부 세관국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전매청 기획관리실장, 국세청 기획관리실장, 제2무임소장관실 정무조정실장, 농수산부(現 농림축산식품부) 식산차관보, 농수산부 농정차관보를 역임하다가 1975년 모종의 사유로 사직하고 변호사 및 세무사, 변리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봉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 변정일, 김수, 박용기, 함종빈, 박정수, 정휘동, 임호, 윤재명, 한갑수, 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복당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한국당 민병초 후보와 한국국민당 이성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시 민주정의당 낙선자는 그와 제주도 지역구에 출마한 변정일 둘이었다. 이후 해남군-진도군 지구당위원장 자리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인 정시채가 담당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5년 4월 11일에는 제14대 한국세무사회 회장에 취임했고, 이어 1987년 4월 16일 제15대 한국세무사회 회장에 연임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민주정의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다. 민주정의당 정시채 후보, 평화민주당 김봉호 후보도 당시 현역 의원이라서 엄청난 접전을 펼처야 했다. 결국 낙선하였다.
이후에는 변호사, 세무사, 변리사 업무에 전념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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