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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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 관료, 정치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1] , 호는 금암(錦巖)[2] 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의 장인이다. 따라서 김용주(전 전남방직 회장, 전 국회의원)와는 사돈이다.
2. 생애[편집]
1922년 10월 22일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봉화리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경무부 소속으로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1948년 경무부 작전과장(총경) 신분으로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였다. 1950년부터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장과 경무과장으로 재직하였다. 치안국 경무과장에 재직중인 1954년 공비토벌에 대한 공으로 미국자유훈장을 수여받았다.# 1956년 서울특별시 경찰국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 비서관으로 있었다.
1960년 4.19 혁명 바로 전에 제5대 공보처장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그 해 7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남해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와 관련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하여 1961년 3월 8일 의원 자격을 상실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조선일보 상담역으로 언론계와 관계를 가졌다. 이후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경상남도 남해군 지역구에서 제6대, 제7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경우신보 회장직을 맡았고, 속기협회 회장으로 기자 육성에 주력하였으며, 대한축구협회장도 겸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동관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경향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신동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79년 6월 이후락, 김진만, 변정일, 김수, 박용기, 함종빈, 박정수, 정휘동, 임호, 임영득, 한갑수, 홍성우, 권오태, 윤재명 등과 민주공화당에 복당하였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11월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이듬해인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익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5월 27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그의 유해는 1987년 5월 31일 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2.1.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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