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구(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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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40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태어났다. 경기상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민주공화당에서 청년분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88년 3월 대통령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평화민주당 고광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재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정무제1장관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부터 1993년까지 민주자유당 사무총장을,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자유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한나라당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일부 유권자들의 위장전입으로 당락이 바뀔 수 있어 이듬해인 2001년 대법원에서 선거 무효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당선되었다.[1]
이후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선거무효가 되긴했지만 김영구 의원 본인의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법률위반이 있지 않았고, 김영구 의원 측 선거캠프 관계자 일부가 위장전입을 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재출마가 가능했었다. 심지어 16대 총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측 후보였던 허인회 후보 역시 캠프 관계자들의 위장전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재보궐선거에 후보로 등록한 상태였고 두 후보의 리턴 매치가 유력시 되었으나 후보 본인이 재판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피로가 극심한 상태였고 가족들의 반대의사가 확고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불출마 선언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해당 선거구에는 송파구 갑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던 홍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 18대 국회 때까지 3선, 홍준표 개인으로는 4선 고지에 올랐다.[2] 2001. 6. 8. 일부 유권자들의 위장전입으로 선거무효. 당선자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서 김영구나 상대 후보였던 허인회의 피선거권은 박탈되지 않았으나, 해당 선거에서의 1, 2위간 표차가 겨우 11표라 위장전입 인구에 의해 충분히 당락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선거 자체가 무효화되었다.[3]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4]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5]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