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천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관료, 법조인, 정치인이다. 호는 봉강(鳳岡)이다.
2. 생애[편집]
1931년 경상남도 진주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고등고시 행정과(제4회), 사법과(제6회)를 합격하고 관료로 복무하였다. 제3공화국 시기에 내무부의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이사관급 경찰총수), 강원도지사, 내무부 차관, 대통령비서실의 정무제2수석비서관을 역임한데 이어 불과 47세에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정치규제 기간에는 해외 유학을 갔다. 1984년 한국통신(現 KT)의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노태우 정권 출범 이후 정치규제가 풀리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이기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지역구를 옮겨 부산직할시 중구 출마하여 통일국민당 김광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본인의 지역구가 통합되여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전국구 국회의원 7번을 받은 뒤 당선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과 김종필 간 DJP연합이 성사되었고 김대중이 해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김선길 장관이 한일어업협정의 책임으로 경질된 뒤인 1999년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취임 직후 한일어업협정 파동으로 엉망이 된 해양부를 추스르는 일을 하였으나 취임한 지 한달 뒤쯤인 4월 27일 원양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수뢰 혐의로 해양수산부차관보가 구속되었으며 뒤이어 전직 해양부 수산계열 국·과장 3명에 대해서도 영장이 청구됐다. 이에 대해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국민의 정부가 먼지떨이식으로 해양수산부차관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해양수산부차관보 교체 과정에서 청와대가 정상천과의 협의는 커녕 사전에 한마디 통보도 하지 않자 청와대와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정상천에게 관련자 문책을 수차례 지시했는데 정상천은 청와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버텼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문책인사 요구 마저 거부당하자 검찰을 직접 움직였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난이 안팎에서 정 장관에게 쏟아지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청와대와의 갈등 속에서 2000년 1월에 해양수산부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5년 3월, 향년 83세로 사망했다.
3. 선거 이력[편집]
4.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08:11:56에 나무위키 정상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