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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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강원특별자치도지사는 강원특별자치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강원도 관찰사는 1907년에 부임한 친일인사 이규완(李圭完)으로 1919년 국권침탈 이후에도 계속해서 강원도장관을 맡았다.
1.1. 여당의 무덤[편집]
강원특별자치도지사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당 후보가 지는 징크스가 있었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2야당 자유민주연합 최각규가,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는 제1야당 한나라당 김진선이 당선되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1야당 민주당 이광재와 최문순이 잇따라 당선되면서 징크스가 맞아 들었었다.
하지만 그 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인 최문순이 당선되면서 깨졌고,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역시 선거 당시 막 출범한 직후였던 윤석열 정부의 임기 초 버프를 받은 김진태가 당선되면서 다시 한번 깨졌다.
1.2. 영서 vs 영동[편집]
강원특별자치도가 대체적으로 보수 정당이 우세한 지역이기는 한데, 막상 강원특별자치도지사 선거만큼은 꽤 치열하게 진행된게 특징이다. 그 이유는 강원특별자치도 내에서의 소지역주의가 오랜 기간 존재하다보니 후보의 소속 정당도 중요하지만 어느 지역 출신이냐가 큰 요인으로 자리잡아왔기 때문이다.
제일 대표적인 사례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는데, 이때는 강릉시(영동) 출신의 새누리당 최흥집 후보와 춘천시(영서) 출신의 새정치민주연합 최문순 후보가 제대로 맞붙어 1.56% 차이로 현직인 최문순 후보가 신승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2년차라서 상대적으로 보수 정당이 세월호 참사 여파에도 전국적으로 근소 우위를 점했는데도 최문순 후보의 현직 프리미엄에 영서 출신이라는 배경이 작용해서 춘천시, 원주시에서의 우세로 강릉시, 속초시의 열세를 극복하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덧불이자면 강원특별자치도가 보수 우세 지역에서 경합 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영서와 영동의 정치적 성향도 조금씩 차이가 생기고 있는데, 춘천시와 원주시를 위시로 한 영서 쪽은 민주당의 세가 차츰 강해지면서 표차가 근소한 편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 및 시장, 군수에서도 당선인들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강릉시 등 영동에서는 아직까지 보수가 경합 우세를 보이는 추세.(물론 이것도 과거보다 차이가 줄어들긴 한 편이다.)
김진태 이전까지는 보수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출신 도지사들이 각각 영동과 영서가 지역 기반이다.[1] 다만 이광재는 고향이 평창군이고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지역구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데다, 본인의 정치적 고향을 태백시로 정하고 있을 정도로 태백시에 연고가 깊다. 따라서 이광재는 무조건 영서쪽으로 보기 힘든 측면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보수 정당 소속이면서 영서 지역인 춘천시가 지역 기반인 김진태가 당선되며 이 전통은 깨졌다.
김진태가 워낙 보수 성향이 강하다 보니 보수층과 노년층의 지지가 탄탄해서 보수 성향이 강한 영동권에서 지지 받기가 수월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김진태가 기록한 득표율 1위는 양양군(58.32%), 2위는 강릉시(58.02%), 3위는 동해시(57.55%), 모두 영동권이었다. 물론 김진태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윤석열 정부 초기 정부여당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여론 덕분이라는 반론도 있다.
1.3. 한번 되면 3선이 기본이다?[편집]
김진선 전 도지사, 최문순 전 도지사가 3선을 기록했다. 여기다가 민병희 전 교육감도 3선 임기를 모두 채우고 떠났다. 최각규 전 도지사는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고, 이광재 전 도지사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사직을 상실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일단 재선, 3선에 도전한 도지사&교육감은 모두 3선까지 성공한 셈이다. [2]
이러한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래도 강원도의 지리적 특성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3] 한번 도지사가 되면 영서-영동, 18개 시군을 모두 아우르는 인지도와 조직력을 갖추게 된다. 아무리 지역의 국회의원이 날고 기어도 그 인지도나 조직력은 그 지역구에만 국한된다. 따라서 당에서도 현직 도지사를 교체하기가 쉽지 않고, 상대당도 현역 도지사보다 인지도가 높은 후보를 내기가 힘들다.
1.4. 강원특별자치도지사 100% 적중 지역: 정선군[편집]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지방선거에서 강원특별자치도지사 선거는 총 8회 시행하였다. 미수복지구를 제외한 대한민국 지배하 강원특별자치도는 7개 시, 11개 군, 즉 18개 시군을 거느리고 있다.
8번의 지방선거와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까지 총 9회. 9회 시행한 강원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서 지역 1위가 곧 당선인이 된 100% 적중 지역은 강원도 18개 시군 중 딱 한 곳, 바로 정선군이다. 정선군은 영서와 영동의 경계에 걸친 지역으로 원주시와 강릉시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 스윙보터 지역이기 때문이다.
2. 목록[편집]
2.1. 일제강점기[편집]
강원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강원도장관을 강원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강원도장관을 포함했다.
2.2. 미 군정[편집]
2.3. 대한민국[편집]
2.3.1. 관선 1기[편집]
2.3.2. 민선 1기[편집]
2.3.3. 관선 2기[편집]
2.3.4. 민선 2기[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1960년[편집]
3.2. 1995년[편집]
[강원도지사 시군별 개표 결과 보기]
당초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었던 이봉모가 등록을 포기하면서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의 1:1 구도로 선거가 진행되었고, 영서(춘천시) 출신 이상룡 후보와 영동(강릉시) 출신 최각규 후보의 대결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당초 접전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상룡 후보가 춘천시, 홍천군, 양구군에서만 승리하고, 나머지 지역을 최각규 후보가 석권하면서 최각규 후보가 더블 스코어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
3.3. 1998년[편집]
3년 전보다 한나라당에 더 불리한 정국에서 치루어진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3년 전의 참패를 설욕하며 영남권 이외에 유일하게 광역자치단체장을 배출했다.
이러한 결과는 공동 여권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무산된 것에 따른 것이었다. 자유민주연합 한호선 후보가 여권 단일 후보로 내정된 것에 반발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이상룡 전 노동부장관[21] 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면서 영서 지역 표심이 둘로 갈라졌고, 그로 인하여 김진선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이 되었다.
3.4. 2002년[편집]
3.5. 2006년[편집]
현역이었던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가 70.60%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이창복 후보는 출구조사가 나오자마자 떡실신되었다. 그래도 22.20%로 선전했다.
3.6. 2010년[편집]
3.7. 2011년[편집]
3.8. 2014년[편집]
이번 지방선거 최고의 접전 1. 영서의 최문순 VS 영동의 최흥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원도 선거는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 빅3가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선거에서는 강릉시를 위시한 영동 지역의 개표가 먼저 진행되었고 곧이어 춘천시의 개표가 진행되었다. 최흥집이 강릉시의 표심에서 우세를 보이고 최문순이 춘천시에서 우위를 드러내는 동안, 원주시는 개표가 더디고 접전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형세였다. 이로 인해 개표 방송 내내 충청북도지사와 더불어 조명받는 선거 지역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화젯거리로.
3.9. 2018년[편집]
역대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가 이렇게까지 압승한 사례가 전무했을 정도. 같은 민주당계 출신이자 한때 강원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이광재 전 지사도 못해낸 전 지역 석권을 최문순 후보가 해냈다.
당시 전국적으로 한반도 평화 무드가 지배했던 선거였지만, 특히 강원도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효과가 컸다. 최문순 도지사는 초선일 때 취임 3개월만에 평창올림픽 유치 덕을 봤고, 재선일 때에는 선거 직전 평창올림픽 개최 덕을 봤다.
최문순 후보는 정창수 후보의 고향이자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영동권의 중심지 강릉시에서조차 정창수 후보에 17.22%차 완승을 거뒀다. 여소야대의 강원도의회 상태에서도 뚝심있게 정책을 추진한 최문순 전 지사인 만큼, 이번에 강원도민들이 선물한 과반 이상의 강원도의회를 바탕으로 더욱 강한 추진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3.10. 2022년[편집]
양당 모두 공천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초 원창묵 전 원주시장이 단독 예비후보였으나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강원도내 민주당 지역위원장들이 이광재 출마를 요청했고#, 민주당 지도부도 이광재 출마를 공식 요청했다.# 이에 이광재는 뜸들이다가 당에 5가지 요구조건을 걸며 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광재를 전략공천했다.
한편 국민의힘에서는 유력 후보였던 김진태 전 국회의원을 컷오프하고 황상무를 단수공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대한불교조계종 관련 발언 때문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 후보에게 경선 기회도 주지 않는건 불공정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김진태가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비리검증특위 위원장을 맡아 궂은 일을 도맡아 했는데, 이제 와서 비윤이라는 이유로 자르는 것은 토사구팽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강원도에 많이 포진한 윤핵관들의 사감(私感)이 작용했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또한,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이광재 출마를 요청하고 있었는데, 인지도가 낮은 황상무로는 이광재를 이기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다.[23] 김진태는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결국 과거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조건으로 다시 경선 기회를 얻었다. 결국 경선 끝에 김진태가 국민의힘 도지사 후보로 공천 받았다.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이광재 후보는 자신의 선거구가 있는 원주시와[24] 출신지이자 이전에 당선된 적 있는 선거구에 포함된 평창군[25] 을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서 김진태 후보에게 패했다. 반면 김진태 후보는 자신의 출신지인 춘천시에서 7%p 격차로 이기고 영동 지역에서 무려 10%p 이상 격차로 앞서서 8.15% 격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여담으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득표율이 거의 정반대로 나왔는데 그때는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가 45.63%, 민주당 이광재 후보가 54.36%을 받았지만 이번엔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즉 이광재 후보 입장에선 12년 만에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를 경험한 것이다. 반면 김진태 후보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극우 발언을 비롯한 각종 논란을 딛고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26]
또한 이광재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있던 원주시 갑 선거구는 3선 원주시장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원창묵 후보를 전략 공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박정하 후보가 강원도지사보다도 훨씬 큰 격차인 무려 15.59%p 차로 낙승을 거둠으로써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27]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6. 도정 구호[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 보수 정당 출신 - 최각규(강릉시), 김진선(동해시) / 민주당 출신 - 이광재(원주시), 최문순(춘천시).[2] 최문순 도지사가 보궐선거에서 승리해서 도지사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광재 후광 덕분이다.[3] 이해하기 쉽게 비교하자면, 전라북도나 충청북도는 중심 대도시에 인구 절반 가까이 모여 사는 구조인데 반해, 강원도는 중심 대도시 없이 고만고만한 도시 여럿이 흩어져 있는 구조이다.[4] 최문순 - 최흥집 두 후보 간 피말리는 접전이 벌어졌던 선거로, 이전까지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태백시, 삼척시, 동해시 등 강원도지사 선거를 전부 적중하던 지역들이 2014년 선거에서 줄줄이 탈락하고 정선군 하나만 살아남았다.[5] 2대 도장관이자 초대 도지사.[6] 일본인.[7] 창씨개명에 따라 나카하라 고준(中原鴻洵)이란 이름으로 직무수행.[8] 강원도지사 재취임.[9] 미 군정에 의해 파면.[10] 이후에도 도지사 고문을 지냈다.[11] 현역 미 육군 중령.[12] 당시 신문기사 근거.[13] 선거 당시 당적.[14] 선거 당시 당적.[15] 199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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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hash-start=w-ae0bc3d83dfd1e061dd1e06c624b232b[[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
1997.11.27.
입당.
1998.6.23.
탈당.[16] 형의 선고를 받고 (상급심 등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받는 지자체장의 직무 수행을 금한다는 지방자치법 조항에 따라 2010년 7월 1일 취임 직후 곧바로 직무정지가 되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2010년 9월 3일 업무를 시작하였으나, 2011년 1월 27일 대법원에서 원심의 징역형을 확정 판결을 내면서 도지사직을 최종 상실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재 항목 참조.[17] 2010년 7월 1일부터 2010년 9월 2일까지는 강기창(姜基昌) 전 행정부지사가 직무대리.[18] 이광재 전 지사가 직무 정지인 상태에서 직무 대리를 맡았다가 이광재의 지사직 상실 확정으로 권한대행을 맡았다.[19]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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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신설 합당.
20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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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당명 변경.
201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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