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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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발생 일시
2023년 7월 19일 오전 9시 10분경
발생 위치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
유형
익사
원인
조사 중
관련 부대
해병대 제1사단
인명 피해
병 1명 순직 (일병[1] 채수근)

1. 개요
2. 전개
2.1. 배경
2.2. 사고 발생과 수습
2.3. 사고 이후 수사
2.4. 채수근 상병의 동료 전우들 피해
2.6. 해병대 1사단 전역자의 임성근 사단장 고소
3. 희생자 채수근 상병
4. 원인
4.1. 정부의 무리한 대민지원 요구
4.2. 해병대 사령부의 무리한 수색 강행
4.2.1. 맨몸 수색 독려
4.2.2. 수색 비전문 병력 배치
4.2.3. 극도로 부실한 장비 지급
4.2.4. 소방 당국의 권고를 묵살
4.2.5. 제1사단장 임성근의 혐의 무마 시도
4.3. 실종 직후 융통성 없는 신고 조치
5. 반응
5.1. 정부
5.2. 지방자치단체
5.4. 정치권
5.4.1. 수사단장 보직해임 관련
5.5. 시민단체
6. 추가 논란
6.1. 빈소 안내표기 한자 오기
6.2. 해병 1사단의 수해 복구 거듭 강행
6.3. 해병 1사단 장병 휴가, 외박, 외출, 면회 통제
6.4. 대전현충원의 순직 위치 오기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내성천 수색' 해병대원 실종.."하천 바닥 갑자기 푹 꺼졌다" | 2023.7.19. MBC 뉴스외전

2023년 7월 19일 오전 9시 10분경 2023년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 피해 지역인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일병[2]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된 사고이다.


2. 전개[편집]



2.1. 배경[편집]


해병대2023년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 피해를 입은 예천에 복구 및 지원 목적으로 제1사단 신속기동부대를 투입했다. # 이의 일환으로 내성천 경진교와 삼강교 사이 22.9km 구간에 119명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채 일병은 사고 전날인 7월 18일부터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되었다.


2.2. 사고 발생과 수습[편집]


7월 19일 오전, 해병대원들은 내성천[3] 일대에서 도보로 이동하면서 대열을 맞춰 탐침봉 등을 이용해 인간띠 작전으로 실종자를 찾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반이 무너지면서 채 일병과 대원 2명이 급류에 휩쓸렸다. 함께 강물에 빠진 다른 대원 2명은 배영으로 스스로 헤엄쳐 빠져나왔지만 채 일병은 얼굴이 보인 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20미터 가량 급류에 떠내려가다가 사라졌다. #1 #2

수색 당일은 폭우로 인해 물이 불어나 내성천의 유속이 굉장히 빨랐으며 해병대의 상륙장갑차인 KAAV7A1도 투입하려다가 하천의 유속 때문에 철수하였다. 실종되었던 채 일병 역시 물에 빠진 뒤 빠른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알려졌다.[4]

해병대는 즉시 민간인 수색을 중단하고 실종된 일병을 찾는 데 주력했다. 또 사고 지점 일대에 상륙용 고무 보트(IBS)드론, 헬기 등의 장비를 동원하여 수색을 실시했다. 경상북도는 내성천 상류 지역에 있는 영주댐과 저수지 등의 방류를 중단했다. #

오후 12시 10분경 고평교 인근 하천에서 채 일병으로 추정되는 실종자가 육안으로 잠시 발견되었다. 발견된 실종자의 인상착의는 빨간 반팔 상의에 전자시계를 차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구조 당국이 인양을 위해 보트로 접근했지만 급류가 빨라 구조하지 못하였고 채 일병은 다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 갔다고 전했다. 해당 실종자는 발견 당시 의식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


"왜 구명조끼 안 입혀..이건 살인"..'실종' 해병대원 부모의 절규 | 2023.7.19. MBC뉴스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고 현장에 도착한 채 일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에 있느냐며 통곡했다. 또 해병대 관계자를 향해 어떻게 못 구했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이런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해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는데. 어디에 있어요, 내 아들"이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현직 소방관인 채 일병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물살이 셌는데 구명조끼는 입혔냐,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는데 구명조끼는 왜 안 입혔냐"고 물었다. 이어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왜 구명조끼를,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닌가요 살인"이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구명조끼도 안 입히는 군대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 기본도 안 지키나"라며 "어제 저녁에 (아들과) 딱 2분 통화했다.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 살겄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밤 11시 8분경 내성천 고평교[5] 우측 하류 400m, 수심 1m 지점에서 실종된 '채 일병'이 심정지[6] 상태로 발견되었다. # 소방 당국 관계자는 "특수구조단과 드론팀이 야간 수색을 하던 중 채 일병을 확인하고 인양을 하고 있다"며 "사망 여부는 병원에서 판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7] #

채 일병은 예천 스타디움으로 옮겨진 뒤 7월 20일 오전 12시 45분경 태극기에 덮인 상태로 해병대 헬기에 실려 해군포항병원으로 옮겨졌다.

수색 현장 인근 숙소에 있던 채 일병의 가족들도 소식을 접하고 119구급차와 승용차에 나눠 타고 해군포항병원으로 떠났다. 유족들은 "중대장님 구명조끼만 입혔어도 살았을텐데", "아이고, 아이고"라며 통곡했다. 채 일병의 친척은 황망한 표정으로 "채 일병은 외동아들이기도, 장손이기도 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8]

결국 채 일병은 해군포항병원에서 공식적인 사망 판정을 받았으며 영안실에 안치되었다.

7월 20일, 채 일병의 추서 진급이 그의 생전 소속 부대인 해병대 제1사단장 권한으로 승인되었다.

해병대 1사단은 대강당인 김대식관에 '채수근 상병[9] 분향소'를 마련하였으며 영결식은 7월 22일 오전 9시 해병대 1사단 도솔관에서 해병대장으로 엄수되었다.

정부는 국가 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보국훈장 광복장을 서훈했다.[10] 유해는 채 상병의 고향인 전북 남원과 가까운 국립임실호국원 내 봉안당 시설에 안장될 계획이었으나 유족 측이 봉안당 대신 묘지를 원했고[11] 채 상병의 부친이 "양지 바른 묘역에 꼭 아들을 묻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여 유족과 협의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 또 안장일에는 국가보훈부 본부를 포함한 전국 지방보훈관서와 국립묘지, 소속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하는데 순직 군인의 안장일에 보훈부 소속 기관에서 조기를 게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2.3. 사고 이후 수사[편집]



2.3.1. 책임소재 없이 1주일 만에 수사종료[편집]


이 사건에 대해 해병대는 사건의 책임자를 알아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체수사를 1주일 만에 마무리한 걸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부실수사 및 꼬리 자르기식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

그런데...


2.3.2. 대통령 등 상부 수사 외압 논란·해병대 수사단장 보직해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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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채수근 상병의 동료 전우들 피해[편집]



"사과할 시점은 한참 지났다" 해병대 생존장병母, 사단장 공수처 고발| 2023.9.13. JTBC News'''

2023년 9월 13일 채수근 상병의 전우 해병 A병장의 어머니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공수처에 업무상과실치상·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고발하였다. KBS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떠내려갈 당시 함께 50m 가량을 떠내려갔다가 겨우 구조된 A병장은 채수근 상병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마음에 병원으로부터 PTSD 진단을 받고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 내가 채상병 못 잡았어"…해병대 아들은 매일 울며 잠 깬다 A병장의 어머니는 아들을 사고일로부터 16일이 지난 후에야 볼 수 있었고 그 시점에서 A병장은 이미 PTSD가 진행 중이었다. A병장의 어머니는 평소 잘 자던 A병장이 집에 도착해서 땀을 흘리거나 울면서 깨어나는 등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A병장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임성근 사단장을 향해 "돌아오지 못하는 채 상병과 복구 작전인지 몰살 작전인지 모를 곳에 투입된 아들들을 모두 정상으로 돌려놓아라"라며 "이미 당신이 아들들에게 사과할 시점은 지나도 한참 지났다"며 눈물을 흘렸다.

A병장의 어머니를 도운 군인권센터는 임성근 사단장이 사고 발생 후 A병장 등 물에 휩쓸렸던 병사들을 찾아오지 않았고 생존 장병을 위한 트라우마 치료는 집체교육 형태의 트라우마 교육이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2.5.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특검법 패스트트랙 지정[편집]





국회, '채상병 특검법안' 패스트트랙 표결...이재명 참석" (2023.10.06/YTN뉴스)





'순직 해병 특검법' 패스트트랙 지정...머그샷법 통과" (2023.10.06/YTN뉴스)

[2124295]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박주민의원 등 24인)
제안이유
2023년 경북 예천군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가 발생하여, 국방부가 수색 작전을 실시하던 중 해병대원 1인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하는 사건이 발생함. 해당 순직 사고와 관련하여,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사건을 은폐했다는 진상규명 방해 의혹이 불거짐.
국가안보실 소속 관계자와 국방부 장?차관, 법무관리관 등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가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여 수사와 관련한 기밀 사항을 보고 받고, 수사단이 수사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는 의혹임. 또한 해병대 군사경찰이 적법하게 경찰청에 이첩한 기록을 위법하게 되돌려 받도록 하였으며, 관련 수사 기록의 내용을 손상?은닉하고 효용을 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음.
국가를 위해 순직한 해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자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것이 법과 정의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순직 사고의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을 은폐하는 행위에 있어 대통령실 관계자와 국방부 장?차관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국민은 군 검찰단이 독립적으로 엄정한 수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음.
이에 특별 검사를 임명하여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행위에 대해 진상규명을 하고자 함.
주요내용
가. 채수근 해병 사망 사건 및 이와 연관된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 의혹사건 및 직권남용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는 특별검사의 임명과 직무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안 제1조).
나.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은 제1호부터 제2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임(안 제2조).
다. 특별검사후보자추천의뢰서를 받은 교섭단체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장으로부터 변호사 4명을 추천받아 이 중 2명의 특별검사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도록 함(안 제3조).
라. 특별검사는 필요한 경우 파견검사 20명, 파견검사를 제외한 파견공무원 40명 이내로 관계 기관의 장에게 소속 공무원의 파견근무 등을 요청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특별검사가 추천하는 3명의 특별검사보를 임명하여야 하고, 특별검사는 40명 이내의 특별수사관을 임명할 수 있음(안 제6조 및 제7조).
마. 특별검사 등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사내용을 공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되며, 파견된 공무원은 직무수행 중 지득한 정보를 소속 기관에 보고하여서는 아니됨(안 제8조).
바. 특별검사는 임명된 날부터 20일간 직무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으며, 준비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 날부터 70일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나, 그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대통령 승인을 받아 1회에 한하여 수사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음(안 제9조).
사. 특별검사 또는 특별검사의 명을 받은 특별검사보는 수사대상 사건에 대하여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이외의 수사과정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음(안 제12조).
아. 특별검사와 특별검사보는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함(안 제16조).
2023년 10월 6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총투표수 183표 중 가 182표, 부 1표로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 특검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다.


2.6. 해병대 1사단 전역자의 임성근 사단장 고소[편집]



대민지원 작전 수행 중 채수근 상병과 함께 물살에 빨려들어갔다가 간신히 구조된 동료 A씨가 2023년 10월 24일, 전역한 당일 임성근 사단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하였다. A씨는 피해 당사자인 동시에 민간인이기에 군법에 얽매이지 않고 박정훈 前 수사단장과는 달리 명령권자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A씨는 군인권센터를 통해 낸 성명문에서 다음과 같이 고소한 사유를 밝혔다. #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생존 해병 입장문

[ 펼치기 · 접기 ]
필승!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에서 복무하였고, 2023년 10월 24일 자로 만기 전역을 명받은 해병입니다. 저는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고소합니다.

저는 2023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진행된 호우피해복구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알려진 것처럼 7월 19일 사랑하는 후임 고 채수근 상병, 동기 B병장과 함께 실종자 수색을 진행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밤마다 쉽게 잠들기 어려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 그 와중에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가던 수근이의 모습이 꿈에 자꾸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수근이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했던 마음에 물에서 건져지자마자 모래사장을 따라 무작정 수근이가 떠내려간 방향으로 뛰어갔던 것 같습니다. 수근이 부모님께 당시의 상황과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사고 다음 날 한번 뵙기는 했었습니다. 간부님들이 수근이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며 집합을 시켰습니다. 생존 병사들과 수근이 부모님이 따로 만나는 면담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지휘관, 간부님들이 다 같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누구 하나 믿고 따르기 어려웠습니다. 영결식 날엔 홍보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친목 모임에 온 건지 조문을 온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정치인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정치인의 수행원은 비 맞고 도열 해 있는 해병에게 자기가 들고 있던 의원 우산을 좀 들어달라고 하더니 유가족과 인사하는 의원 사진을 찍는다고 유가족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 곁을 따라다니기에 바빴던 사단장 같은 장군들도 보았습니다. 특종 취재라도 나온 마냥 슬퍼하는 해병들을 밀치고 다니며 짜증을 내던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사고를 겪은 해병들을 위로한다고 찾아왔던 사령관님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다시 정상적으로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사단장님은 사고 이후로 단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수근이와 우리가 겪었던 일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실종자 수색 기간 내내 부대 분위기가 어땠는지 저희는 압니다. 사단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고 그랬고, 간부님들은 다들 압박감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도, 안전엔 관심 없이 복장과 군인 자세만 강조하는 지시들도 사실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평소 부대에서도 사단장님이 보여주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에서 실종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갔습니다. 수색이 보여주기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습니다.

수근이 영결식 이후 대대장님이 보직 해임되었습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은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하며 저희들을 챙겨주던 중대장님도 얼마 전 다른 분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꼬리 자르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병사인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힘들었지만 군병원이나 부대에서 하는 상담은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담하거나 진료 본 내용이 사단장에게 보고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는 사단장님의 입김이 닿는 곳에다 제가 겪은 일을 믿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1년 6개월 전, 부모님의 만류에도 제 의지로 해병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복무하는 동안에도 해병대라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해병대 입대를 권유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해병대는 허상이었을까요? 3개월 간 너무 많이 실망했습니다. 보여주기식 작전을 하다가 부하를 잃었는데 잘못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윗사람들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란 다 말 뿐인 거란 걸 알았습니다.

언론에서 연일 박정훈 수사단장님이 겪고 있는 일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봤습니다.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수근이와 저희가 겪은 일을 책임져야 할 윗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게 되는 과정도 보고 있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며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고의 당사자로서 사고의 전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이제 저와 제 전우들이 겪을 필요 없었던 피해와 세상을 떠난 수근이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공수처에 고소합니다.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지시를 받고 작전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다. 사단장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업적을 쌓기 위해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윗사람들은 늘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피해가 반복될 것입니다.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곧 수근이를 만나러 현충원을 찾아 가볼 생각입니다. 수근이 앞에서 우리나라가 당당한 나라일 수 있기를, 해병대가 떳떳할 수 있는 조직이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런 사람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 희생자 채수근 상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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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상병
채수근
Chae Sugeun


출생
2003년 1월 2일[12]
전라북도 남원시
사망
2023년 7월 20일[13] (향년 20세)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구정리
포항 해군기지 해군포항병원[14]
장지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묘역-413판-13706호
가족
부모님[15]
학력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건축공학 22 / 휴학[16])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해병대[17] (병 1292기)
2023년 3월 27일 ~ 2023년 7월[18]
최종 계급
상병[추서] (대한민국 해병대)
상훈
보국훈장 광복장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건축공학과 1학년을 마치고 3월 16일 군휴학을 제출한 후 2023년 3월 27일에 해병대 1292기로 입대했다. 7주 간의 기본군사훈련 후 5월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통신병으로 실무 배치를 받았다. 수해 복구에 투입되었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였다.

  • 채수근 상병의 지도 교수였던 원광대학교 임우영 교수는 "평소 수업도 열심히 듣고 착실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며 "특히 1대1 대면 상담에서 보통 1학년은 말수가 적은데 수근이는 활발한 성격을 가져 대화가 잘 통했다. 예의도 바르고 책임감도 강한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이어 "얼굴은 항상 미소를 띠고, 또래에게도 인기도 많은 친구였다"며 "상담을 할 때마다 가족 등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저릴 뿐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 원광대학교 김 모(22) 학생은 "매번 마주칠 때마다 활발하고 씩씩한 성격의 친구였다"며 "주로 개인사회적인 대학 내에서도 엄청 예의 바르던 친구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 채 상병의 아버지는 전북소방본부에서 27년을 가까이 헌신한 소방대원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남원지역 안전센터에서 소방위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 채 일병 가족과 같은 아파트에 살며 모임을 한다는 공풍용씨는 "채 일병(상병)은 대학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였고 자대 배치를 받은 뒤인 며칠 전 어머니 생일이라고 투플러스 소고기를 보내는 등 흠잡을 데가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 채 상병은 집안의 장손이자 모친이 무려 열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40세의 나이로 얻게 된 귀한 늦둥이 외아들이라 더욱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왔다.


  • 채수근 상병의 성씨인 채씨가 발음상 최씨와 비슷한 성씨이다 보니 어느 기사에서는 최수근으로 오타를 내기도 했다. #

  • 채수근 일병의 친할아버지가 2023년 8월 1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단 항명 논란에 억장이 무너진다며 이종섭 장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SBS단독



4. 원인[편집]



4.1. 정부의 무리한 대민지원 요구[편집]


근본적인 원인으로 정부가 무리한 대민지원을 군부대에 요구하는 것이 거론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행정부는 예천군의 폭우 피해 복구 대민지원으로 가용한 인근 군부대를 총동원하라고 국방부에 특별지시를 내렸다. 尹대통령, 집중호우에 “가용자원 총동원해 대응하라” 한덕수 "산사태 피해에 군부대 적극 동원해 달라"..국방부에 특별 지시 대통령의 동유럽 순방 기간 중 국내 지휘를 맡은 한덕수 총리는 "오늘 아침 제가 국방부 장관께 특별히 지시했다"며 "군부대가 적극적으로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고 구조 활동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지자체 공무원과 전력을 다해 최선을 다해달라", "전국의 재난 상황을 살펴보면서 필요하면 늦은 밤이라도 과감하게 경찰과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하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과도하게 조치하는 것이 이번 호우 대응의 원칙"이라며 "위험지역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대피시키고,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계속 순찰하라"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지시를 받은 국방부는 군부대를 대민지원에 동원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군, 호우피해 복구 총력전 ‘생존을 위한 작전’ 포기는 없다 예천은 해병대 1사단의 관할지역도 아니라는 것[19] 또한 이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부의 관행적 군부대 대민지원 동원에 사고가 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직도 군인이 소모품인가 관행적 '대민지원'이 부른 참사... 해병대 "구명조끼 지급 안 했다"

정부가 내린 지시로 인한 책임보다 전문성의 문제이고 현장 지휘관들의 책임에 중점을 둔 반론이 밑에 있는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을 관리하는 국방부는 무한 면책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며 꼬리 자르기 식으로 중간급 간부만 책임을 지게 된다. 또한 일찍이 대통령은 "모든 정책의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라고 대통령과 정부의 결단과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관행적 대민지원을 비판하는 기사에 대한 반론 역시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 정부가 군부대 대민지원을 관리 못하는걸 반론하지는 못한다. 설령 가능하다해도 전후복구도 아닌 평시에, 군대가 본연의 임무인 국방보다 인명구조에 투입된다는 건 우선순위를 착각한 것이다. 다른 나라 군대가 대민지원에 마구 동원된다고 우리나라 군대 또한 그러는게 잘못된 것이 아니다는 논리 자체도 잘못됐다. 애초에 그런 인식으로 각국 정부가 군대를 쉽게 동원하는 대민지원이 욕을 먹고 있다.

군대 본연의 임무가 국방에 있듯이 군인들의 기술 역시 그 초점이 인명구조와는 다르게 맞추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해군 해난구조전대처럼 구조구난이 목적인 부대라면 모를까 수영 잘한다고 UDT대원들과 특전사 해척조 대원들이 소방공무원 구조대원처럼 구조 목적의 수영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판타지나 다름 없다. 분명 이들은 다져진 기초와 노하우를 기반으로 구조대원의 구조 수영을 빠르게 배울 수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전 교육과 충분한 숙달 없이 바로 투입한다고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 공무원이 현장 경험으로 관련 법에 빠삭하다 한들 수년간 공부한 진짜 법률 전문가와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군은 근본적으로 평시에도 전투태세를 갖추고 국지적이든 전면적이든 전시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항상 갖추어야하는 것이 원칙이며 북한조선인민군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외국에서는 군을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쓰지 않는다. 분명 외국에서도 군이 대민지원을 나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경우 보급 수송로 확보 및 재건 등의 목적으로 간부와 병이 투입되어 군사작전을 방불케한다.[20] 반면 국군은 평소에도 농번기파업 등으로 민간에서 일이 좀 삐걱거린다 싶으면 일단 군 인력부터 동원하고 보는 것이 한국의 전형적인 대민지원 관행이었다보니 상급자 눈 밖에 나기 싫은 하급 간부들과 단지 병역을 위해 복무 중이던 애꿎은 병들만 죽어라 고생하는 현실이다.



4.2. 해병대 사령부의 무리한 수색 강행[편집]


제보자는 "내성천은 모래강이라서 저렇게 들어가면 위험할 거 같아 걱정이 돼 계속 지켜봤는데, 갑자기 한 간부가 뛰어와 '119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계곡처럼 갑자기 3m씩 빠지는데 그 아래가 펄이라서 강가에서나 도보 수색을 해야 했는데 왜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지켜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애초에 구명조끼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위험천만한 구역에 장병들을 억지로 밀어넣는 바람에 이런 사고가 생겨버린 것.

현장에 파견된 해병대원들은 수해 복구 작전으로 전파받고 삽, 곡괭이, 모래주머니만 챙겨갔는데 도착하고 나서야 실종자 수색이라고 들었다고 한다. 이에 포병대대장은 수색이 어렵다고 보고했으나 사단 차원에서 수색을 밀어붙였다는 폭로가 나왔다. # # 당시 현장의 대대장들의 문자내역이 공개됐는데 갑작스런 실종자 수색 명령과 안전대책 없이 위험한 현장에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히 들어난다. #

또 앞서 지적된 보여주기를 위한 무리한 동원을 하면서 언론에 홍보하기 위해 답변 매뉴얼까지 배부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실종자 구조를 위해 동원된 해병대가 경쟁 목적으로 구조소관인 소방당국의 지적을 무시하고 무리한 수색을 했고 이 때문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해병대는 2022년에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었던 경북 포항에서 KAAV를 활용해 수십명의 민간인을 구조해 국민적 관심을 받았었던 바 있었는데 이번에도 해병대가 국민적 관심을 얻기 위해 지난번과 같은 무리한 작전을 펼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 실제로 1사단장 임성근은 이 사고가 일어나기 한 달 전쯤에 당시 해병대의 대민지원과 관련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 여기에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리기 전 "수심이 가슴까지 올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관이 무리하게 작전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실제 수색 작전 영상 채 상병의 동료들은 사고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그리고 해병대의 수색활동이 전혀 불필요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심지어 해병대 1사단의 관할 지역은 경북 포항이고 예천이 아니다.

원래 이 지역의 수색에는 소방당국과 특전사가 투입될 예정이었고 실제로 소방당국이 드론팀으로 광범위하게 수색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실종자도 드론으로 찾아냈다. 순직 장병을 찾아낸 것 또한 소방의 드론팀이었다. # 이미 소방에서 적외선, 열화상 드론장비들을 이용해 주야간을 안 가리고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 중이었는데 군 투입 부대가 해병대 1사단으로 변경되었고 만수의 하천에 급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진행된 인간띠 작전은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무모했다는 의견도 힘을 얻었다. 심지어 당시 투입되었던 해병대 7여단의 지휘관인 7여단장은 현장에 없었다. 사고가 나고서야 부랴부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러 간 것이다. 가장 중요한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아니라 무리할 정도로 통제되지 않는 환경에서 벌어진 인재다.


4.2.1. 맨몸 수색 독려[편집]


7월 23일, 연합뉴스는 해병대 측이 14박 15일 포상 휴가를 미끼로 급류 속 맨몸 수색을 사실상 독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 이에 대해 해병대에서는 14박 15일의 포상 휴가를 약속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14박 15일 포상 휴가를 당근으로 급류 속 맨몸 수색을 독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하였다. #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시신을 찾으면 포상 휴가를 주겠다고 한 거지, 포상 휴가를 이유로 무리한 수색을 지시한 거는 아니라는 의미다.[21]



[단독] 구명조끼 지급 안 한 해병대…"사단장님 오신다" 복장 통일 강조 | 2023.7.24. JTBC 뉴스룸

하지만 무리한 수색을 지시한 것은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수색에서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맨몸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선 것은 사단장의 지시사항 때문이었다. 당시 수색에 동원된 대원들에게 하의로는 전투복, 상의로는 적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고 다른 옷은 입어서는 안 되며 이후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을 점검 예정이라는 내용의 '사단장님 강조 사항'이 내려졌다. 이에 현장 지휘관들은 안전 조치를 하는 데는 소홀한 채 겉으로 보이는 복장 통일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사고가 벌어졌다. #

심지어 대형 그물을 구매하거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병대 대원들에게 밧줄을 이용하여 인간 그물을 만들라고 했다. 밧줄에 매달린 병사들이 그물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4.2.2. 수색 비전문 병력 배치[편집]



맨몸으로 재해 현장에‥"군인이 소모품인가?" | 2023.7.20. MBC 뉴스데스크

재해 위험이 잔존하는 실종자 수색에 비전문 인력, 즉 구조를 위한 훈련도 해본 적이 없는 포병 병력을 대거 배치했다. 포병 부대는 전투수영 훈련 외에는 물에 들어가본 적도 없고, 애초 부대 내 비품에 구명조끼가 기본 비치되어 있지도 않다.

이에 더해 당시 일병으로 자대 배치 2개월차였던 해당 장병은 그 전투 수영 훈련조차 마치지 못했다.

4.2.3. 극도로 부실한 장비 지급[편집]


거기에 더해 최소한의 안전책인 구명조끼도 지급하지 않고 로프나 튜브처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고작 멜빵 장화 한 켤레만 지급한 채로 내성천에 투입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가슴 높이까지 일체형으로 제작된 멜빵장화를 입고 허리 높이 물에 들어가면 내부에 물이 들어찬다. 그러면 물에 빠졌을 때 몸이 둔해져 헤엄치기 더 어렵다.

게다가 대원들은 완전 군장에, 눈에 잘 띄는 형광색 복장 대신 위장 무늬가 있는 전투복을 입었다. 한 신고자는 "내성천은 모래강이라서 저렇게 들어가면 위험할 거 같아 걱정이 돼 계속 지켜봤는데, 갑자기 한 간부가 뛰어와 '119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계곡처럼 갑자기 3m씩 빠지는데 그 아래가 펄이라서 강가에서나 도보 수색을 해야 했는데 왜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지켜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4.2.4. 소방 당국의 권고를 묵살[편집]


또 군 당국은 "물에 들어갔을 때 깊지 않았으며, 소방 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 소방 당국은 인간띠 수색을 극히 만류했으나, 군(軍)이 이를 무시하고 투입했다고 한다. 애초에 물살이 너무 강해 심지어 투입 예정이던 상륙장갑차까지 철수한 상황에서 안전 장구류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병력을 투입한 것 자체가 군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왔다. #

심지어 7월 27일 해병대가 처음에 한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채 상병이 투입됐던 '수중 수색 임무'는 소방 당국과 사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임무였다. #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실이 경북소방본부에서 받은 답변 자료를 보면 채 상병이 실종되기 이틀 전인 7월 17일 소방과 해병 간에 수색 지원 인원과 구간 등을 협의했는데, 소방은 '수중수색'을 전담하고 해병은 '하천변(수변) 수색'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경북소방본부는 해병대가 수색 장비를 자체적으로 준비하기로 했고, 안전 유의사항에 대해서도 전달했으며 수색 방법 등 작전 수행은 군 자체적으로 결정해 실시했다고 전했다.

반면 해병대는 경북소방본부를 만나기는 했으나 그런 경고는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


4.2.5. 제1사단장 임성근의 혐의 무마 시도[편집]


수색 당시 부대에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점검을 한다'며 지침이 내려간 것이 드러났다. # 그런데 그 지침이라는 게 '빨간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혀라, 다른 옷은 안 된다'는 수준이고 정작 구명조끼나 기타 안전에 관한 유의사항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이처럼 군 당국은 해병대 제1사단장 임성근이 무리한 지시, 명령을 내렸다는 증거가 있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실제로 임성근 사단장이 '해병대 티셔츠가 잘 보이게 복장 통일'을 강조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해병대 수사단이 확보한 걸로 확인됐다. # 이에 따라 임성근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결재 하에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될 예정이었다. #

그러나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본인이 결재한 서류를 뒤집고 이첩을 보류한 뒤, 구두로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를 기재하지 말것을 지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해병대 수사단장의 반발이 심하였다. 과거 군대의 부실수사 문제로 인해 경찰로 사건을 이첩하는 것이 강제된 상황에서 굳이 혐의를 무마해야 하며, 이런 식의 지시로 해병대의 실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 사건을 정쟁화할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결국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는 기재하지 않은 채 경찰로 이첩이 되었으나, 과실치사혐의의 고발장이 접수되는 바람에 수사를 피하지는 못한다.

이로 인해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 무마 시도는 결국 이종섭 국방부장관 본인이 대면 결재한 서류의 신뢰성을 떨어뜨렸으며, 해병대 수사단장의 경우 항명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 촌극이 일어난다.


4.3. 실종 직후 융통성 없는 신고 조치[편집]


현장을 지휘하던 간부는 당시 본인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졌고,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할 수 있었음에도 직접 신고를 하지 않고 현지 주민에게 신고를 대신 부탁했는데[22] 해병대 당국은 그 이유를 밝힐 수 없다고 거부했다. #

일단 지휘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다급한 상황에도 제3자 신고부터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군은 원칙적으로 민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우선하기에 지휘계통을 통한 상부 보고와 명령 하달 없이 하급 지휘관이 단독으로 경찰이나 소방 같은 민간 조직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월권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사람이 떠내려가는 긴급한 상황에 이 문제부터 생각하여 본인이 직접 신고하지 않고 굳이 제3자에게 신고 요청을 하느라 시간을 몇 분이나 허비한 점은 비판받을만 하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시행 2022. 7. 1.] [법률 제18465호, 2021. 9. 24., 일부개정])에 따르면 제2조(신분적 재판권) 제2항을 개정하여 성범죄, 군인 등이 사망 또는 사망에 이른 사건, 군인 등 신분 취득전에 범한 죄에 대해 군사법원의 개입을 막고 있으며(제2항 및 제3항 개정, 제4항부터 제6항 신설) 이를 고려하면 처음부터 해병대 경찰이 현장이 즉시 사건현장에 대한 통제권 등을 경찰에 이관하고, 경북경찰청 및 예천경찰서는 즉시 사건수사에 착수하였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군사법원법」제2조(신분적 재판권) ① <생략>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범죄 및 그 경합범 관계에 있는 죄에 대하여 재판권을 가진다. 다만,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21. 9. 24.> 1.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범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성폭력범죄 및 같은 법 제15조의2의 죄,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의 죄 2.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 3.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그 신분취득 전에 범한 죄

5. 반응[편집]



5.1. 정부[편집]


  •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0일 대통령실 서면 브리핑을 통해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말하며, "유가족분들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
    • 또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23] "채수근 일병에게는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국방부는 7월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한 해병 전우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관련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또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질타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현장에서 더 완벽한 대책과 상황 판단을 한 후 피해 복구 작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수색 및 구조 활동 때 반드시 안전장구류를 착용하게 하라는 내용의 지시사항을 오늘 아침 시달했다고 밝혔다. #

  • 이종섭 국방장관은 7월 20일, 채 상병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어 "우리 국민과 군을 위해 헌신한 채수근 상병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 해나가겠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말했다. #
    • 이어 예천스타디움에 마련된 해병대 숙영지를 찾아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전 중이던 해병대 장병을 위로했다. 또 해병대 장병이 실종된 지점을 찾아 현장 상황을 보고받고 "군과 경찰이 잘 협력하라"며 해병대와 경찰에게 각각 격려금과 기념 코인을 전달했다. #


5.2. 지방자치단체[편집]


  •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7월 20일, 채수근 상병의 순직에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분들과 곁에서 함께 했던 해병대 장병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경북도를 위해 몸 바친 채수근 상병의 순직은 경북도를 책임지고 있는 도지사로서 애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채수근 상병의 노력과 희생이 헛되지 않게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없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5.3. 해병대[편집]


  • 대한민국 해병대는 7월 20일, "경북 예천 지역의 호우피해 복구작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빈다"며 "유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호우피해 복구작전을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해병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갖춰 후속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1, #2

  • 7월 20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한 해병대 참모들이 빈소에 가장 먼저 헌화하고 분향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고개를 떨군 해병대사령관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

  • 7월 20일, 해병대 제1사단은 사단장 권한으로 일병에서 상병으로 추서 진급을 승인했다.

  • 7월 20일, 해병대사령부 공보과장[24] 최용선 해병 중령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로부터 사고 관련 질문을 받고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 중령은 "해병대에는 재난 현장 조치 매뉴얼이 있다"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하지만 나흘 후, 구체적 매뉴얼이 없었음을 결국 인정했다.

  • 7월 21일 오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강당에 차려진 채 상병 분향소에서 해병대가 채 상병 부친 채 모(57)씨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전달했다. 채 씨는 아들의 영정 사진 아래 쪽에 훈장을 내려놓았다. 보국훈장 5등급인 광복장은 국가 안전 보장에 공로를 세운 대위 이하 국군 장병에게 정부가 추서한다.

  • 7월 24일, 최용선 중령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수변 지역에서의 실종자 수색 작전 간 구명조끼 착용 등 대민 지원 형태별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구체적으로 위험 상황별 안전대책과 현장 안전조치 요령을 보완 중"이라고 밝혔다. #

  • 7월 31일, 수사결과 발표 1시간 전 해병대가 돌연 발표를 연기하고 국회 국방위 보고 또한 일방적으로 연기하며 의문점이 들게 하였다. 국방부 측에선 수사에 혼선이 생길 수 있어 연기하였다고 밝혔지만 자체수사결과가 부실한 것이 들통날까봐 추가 조사를 하는것은 아닌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 9월 23일,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와 사관 81기 동기회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5.4. 정치권[편집]


  • 7월 20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 전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현역 의원들이 애도의 뜻을 담아 추모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
    •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는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고인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을 숙연하고 정중한 마음으로 기리고 최대한의 예우를 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 당국은 수색 구조와 피해 복구 과정에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안전조치를 해 주길 당부한다"고 했다.
      • 이어 7월 20일 오후 3시에 김정재 국회의원과 함께 채 상병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였다. #
    •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불어난 강물 속에서 수색 작전에 나섰는데 어떻게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는지 국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관련 매뉴얼이 있었는데 지키지 않았다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이고, 만약 없다면 없는 대로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난이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관계 당국은 실종자 수색과 사고 수습에 나선 모든 분의 안전을 빈틈 없이 해 달라"고 당부했다. #

  •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은 순직한 해병대 병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이번 사고를 '인재'(人災)로 규정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조했다. #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해당 사고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추모하면서도, 다시 반복된 인재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올해 일어난 재해가 수사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수준의 경각심을 가질 것을 밝혔다. 또한 "왜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살인 아니냐는 유가족분들의 애끊는 절규와 허망함에 주저앉아버린 동료 전우들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진다. 부디 더 이상의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고 촉구했다.
    •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수색 작전 중이던 해병대 병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일"이라며 "국방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경위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위험 현장에 함께하는 장병의 안전 대책을 철저하게 점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7월 20일,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회의에서 "재난구조마저 인재가 되고 있다"며 "장갑차도 못 버틸 정도로 불어난 강을 수색하면서 구명조끼 하나 지급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방부는 병사들을 안전대책 없이 투입한 경위를 명백히 규명해야 할 것"이라며 "국방위원회 현안질의 등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

  • 7월 20일,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구명조끼 하나 입혀 보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실의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할 수 있나?"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해병대 및 군 수사기관은 진상을 분명히 밝히고,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라고 밝혔지만, "하지만 일선 간부와 지휘관 몇 명에 대한 추궁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7월 22일,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채수근 상병은 외동아들로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책임감이 강하며 예의 바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채수근 상병은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기 위해, 소방대원이었던 아버님의 응원을 받으며 용감하게 해병대에 자원했습니다.위험하고 힘든 폭우 피해 복구 및 수색 작전 투입을 명받고도 부모님과 동료들에게 자랑하던 명예로운 대한민국의 해병이었습니다. 채수근 상병은 작전 수행 중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며 "명예로운 대한민국 청년의 죽음 앞에 목 놓아 우신, 유가족분들과 해병대 전우들께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다시 한 번 故 채수근 상병의 명복을 빕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우리 군인들이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 8월 25일,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국방위원회에서 수사 외압에 대한 의견을 표하는 중에 채상병의 죽음을 두고 "안타깝지만 손잡고 가다가 웅덩이에 푹 빠져서 안타까운 죽음을 했어요. 그런데 이게 8명이나 다 처리할 만큼 어마어마한 군의 과오나 그런 겁니까?"라고 폄하했다. # 영상

5.4.1. 수사단장 보직해임 관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5. 시민단체[편집]


  • 군인권센터는 실종 사고 소식이 알려진 후 "무리한 임무 투입으로 발생한 인재"였다며 비판하는 성명을 게시했다. #
    • 이어 국방부는 즉시 대민지원 투입 장병의 안전 대책을 점검하고 추후 사고의 경위를 성역 없이 규명하라고 밝혔으며 실종자가 조속히 발견되기를 바라며, 마음 졸여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께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에 관한 청원에 동의 인원이 5만명이 된다.


6. 추가 논란[편집]



6.1. 빈소 안내표기 한자 오기[편집]


해병대가 채수근 상병의 빈소에 아버지를 한자로 (아버지 부)가 아닌 남편을 뜻하는 (지아비 부)로 잘못 표기했다가 뒤늦게 바로잡았다. 해병대 관계자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


6.2. 해병 1사단의 수해 복구 거듭 강행[편집]


채 상병의 사망 직후에도 해병대 1사단은 수해 복구를 또 다시 강행했다. 심지어 장례 기간 3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7월 24일 기사


6.3. 해병 1사단 장병 휴가, 외박, 외출, 면회 통제[편집]


사건 발생 직후 주말인 7월 22일~23일, 채수근 일병과 함께 수중 수색에 투입되었던 동료 대원들의 휴가, 외박, 외출, 면회를 전면 통제했다는 의혹이 제보되었다. #1, #2 이번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동료 병사의 가족들이 회복을 위해 휴가, 외박, 외출, 면회를 신청했는데 해병대 측이 모두 거부한 것. 그리고 해병대는 군인권센터의 폭로에 대해 "22일에 휴가자 3명이 나갔다"라면서 군인권센터가 사실무근의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에 군인권센터 측이 "22일에 나간 휴가자는 전원 미리 계획되어 있던 정기휴가자이고, 이번 사고로 충격을 받은 병사들을 위해 가족들이 신청한 휴가와 외박 등은 모두 거부당한 게 맞다. 가족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고 반격하자 그제야 "현장에서 신속한 수해 복구를 위해 주말에도 수해 복구가 계속 시행될 것으로 예상돼 '(출타가) 제한될 수 있다'는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 그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장병들 중 휴일 출타를 신청한 장병이 없었다"고 재차 해명했다. 하지만 애초에 군인권센터 측은 "부모가 신청한 것이 거부당했다"라고 밝히고 있었으므로 "신청한 장병이 없었다"는 해명은 동문서답일 뿐이다. 게다가 군대, 그것도 해병대에서 동료들을 놓아두고 혼자 내보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저 해명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6.4. 대전현충원의 순직 위치 오기[편집]


채수근 상병이 안장된 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사망 장소가 충청북도 예천으로 잘못 표기되었다가 경북 예천으로 수정되었다. #


7. 관련 문서[편집]


  • 2023년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
  • 대민지원
  • 인재
  • 안전불감증
  • 대한민국 국군/문제점/안전
  •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문제점/생명권 경시
  •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
  •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 해병대 7여단[25]
  • 박정훈 - 前 대한민국 해병대 수사단장(대령)[26]
  • 임성근 - 해병대 제1사단장[27]
  • 김계환 - 해병대사령관[28]
  • 신범철 - 국방부 차관[29]
  • 이종섭 - 국방부 장관
  • 김태효 - 대통령실 국가안보1차장[30] MBC #
  • 28사단 의무병 살인사건[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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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 : 병사(D), 아사(H), 의료사고(M), 실종(V), 자살(S), 교통사고(T), 기타(E), 의문사 및 경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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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 당시 계급. 이후 상병으로 추서[2] 사고 당시에는 일병이었으며 7월 20일부로 상병으로 추서 진급하였다. 향년 20세.[3] 기사에 따라 석관천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내성천이 맞다.[4] KAAV7A1 투입은 강 상류에서, 인력 투입은 해당 지점과 18km 이격된 하류에서 실시했다. #[5] 사고 발생 지점인 보문교에서 실종자 발견 지점인 고평교까지는 직선거리로 5.2km의 거리다. 위치[6] 사실상 사망한 상태[7] 누가 봐도 명백한 사망 상태일지라도 의사가 법적으로 유효한 사망선고를 내리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심정지'라는 표현을 쓴다.[8] 또 어머니가 41세라는 늦은 나이에 시험관 아기로 출산한 것이 밝혀져 더욱 더 안타까움을 샀다.[9] 추서 진급하였기에 분향소 공식 문구는 상병이다.[10] 보국훈장 광복장은 병사가 받을 수 있는 보국훈장 중 가장 훈격이 높다.[11] 임실호국원은 봉안당과 매장지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매장지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어 별도의 심사과정을 거쳐야 한다.[12] #[13] 공식 사망판정 일자[14] 현장인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관련 규정상 사망 판정은 의사만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사망 장소는 포항병원으로 본다.[15] 부친은 전북소방 소속의 1966년생 현직 소방관이며, 모친은 1962년생이다.[16]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원광대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17] 군번 23-72003773[18] 2024년 9월 26일 전역 예정이었으나 순직했다.[추서] 사망 당시 일병이었으며 상병으로 추서 진급했다.[19] 예천을 관할하는 곳은 육군 제50보병사단 제123보병여단과 공군 16비행단이다. 해병대 제1사단은 포항, 경주 근처의 해안 지역 및 주둔 근처 육상 지역을 관할한다.[20] 물론 국가적 재난, 군사목적이 아닌 상황에서 대민지원이 이어지면 이들 나라도 좋은 소리 못 받는다. 자연재해로 대민지원이 일상인 자위대, 대만군도 군사목적 외 대민지원 투입에 대해 실상을 아는 출신자들이 거센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21] 물론 국방의 의무를 위해서 자유를 뺏긴 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에게 휴가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제아무리 힘들더래도 군인들은 휴가를 얻고자 무리하게 수색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휴가는 군인들에게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보상이며 국방부와 군부대들도 이를 알기에 군인들에게 휴가를 미끼로 강도 높은 업무를 주기도 한다.[22] 당시 해병대는 강가에 있었고 주민들은 다리 위에서 상황을 구경 중이었기에 간부가 뛰어와서 주민에게 신고 요청을 했다지만 여기서 신고 시간이 약 3분 정도 지체되었다.[23] 결국 대통령실 외압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판명되어야 이 말의 진정성이 확보될 전망이다.[24] 해병대사령부 공보과장은 실무자에 해당한다. 보통 해병대사령부 공보 관련 대국민 브리핑은 당연히 대령 계급의 공보실장이 맡는다. 아마 이 사건에 대해 욕을 먹기 싫어 하급자를 대신 보낸 듯하다. 이것에 대해 캡틴 김상호는 좋은 일에는 자기가 나서고, 안 좋은 일은 부하 대신 내보내는 비겁한 상급자라고 비난했다.[25] 당시 사건현장에서 지휘를 맡던 제대. 포병여단 쪽 병력들은 임시 차출된 것으로 보인다.[26]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편에 속하는 인물이다.[27] 이 대민지원 업무의 명목상이면서도 실질적인 총책임자이다.[28]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해병대 수사단장에 간접적으로 외압을 넣은 것으로 보도되어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박정훈 대령의 최초 언론 인터뷰에서 김계환 사령관도 국방부로부터 차관(장관)을 통해 압력을 받았다는 문자 내용을 들려주며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 역시 대면보고에서 직접 들었다는 것이 밝혀졌다.[29]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간접적으로 당시 사단장, 여단장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제외하도록 간접적으로 압박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30] 수사단 언론 브리핑 자료를 요구하고, 이튿날 보도 보류를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31] 육군이 사고를 은폐하고 부실수사를 하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나마도 수개월 뒤에 총장이 사퇴하고, 지휘라인으로 보직해임 및 경질, 수사의뢰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