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곳곳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과 조몬 시대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 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여겨진다.
이후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오타 씨(太田氏)나 호죠 씨(北条氏)의 지배를 받았지만, 에도 시대에 접어들자 막부 직할령이 되어 대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 때 지배를 받으면서 농업이 특히 발달했다고 전해진다. 1617년 카와구치에도 쇼군의 닛코 참배를 위한 휴식소・역체 업무・톤야바(問屋場)[2]
역참에서 인마(人馬) 등에 관한 사무를 보던 곳.
등이 세워졌다.
1728년 육상 교통의 정비로 인해 상품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현재 카와구치시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도쿄에 가까우면서 도쿄가 아니라서 그런지 일본 드라마나 뉴스 인터뷰 등에 종종 등장한다(특히 카와구치 역 주변).
에도 시대에는 대부분 논밭이었고 전후에는 주물 공장이 많아 지금도 역 앞에는 1964 도쿄 올림픽 때 가와구치에서 제작한 성화대가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많이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했지만 역에서 벗어나면 아직도 조금씩 공장이 남아있다. 그 영향으로 외국인 노동자도 옛날부터 많이 있고, 지금도 그래서 니시카와구치에는 중국인이 다수 거주하고 소규모 차이나타운이 있다(니시카와구치역 참고)
일본에서 인구 50만 이상의 시 중에서 쾌속이나 특급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유일한 시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쇼난신주쿠라인이나 우에노도쿄라인의 카와구치역 정차 떡밥이 심심하면 흘러나온다. 시에서는 어떻게든 유치하려는 입장이지만 바로 한 역 내려가면 아카바네가 있어서 실현은 요원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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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계인구 2021년 8월 1일 기준.[2] 역참에서 인마(人馬) 등에 관한 사무를 보던 곳.[3] 그러나 구(旧) 하토가야시 지역의 하토가야 초등학교가 더 빨리 개교했기 때문에, 카와구치 초등학교가 시내의 첫 번째 초등학교는 아니다.[4] 카와구치정(川口町)・하토가야정(鳩ヶ谷町)[5] 요코조네촌(横曽根村)・미나미히라야나기촌(南平柳村)・아오키촌(青木村)・신고촌(新郷村)・시바촌(芝村)・카미네촌(神根村)・안교촌(安行村)・토즈카촌(戸塚村)・다이몬촌(大門村)・노다촌(野田村)[6] 현재의 카와구치역.[7] 현재의 케이힌토호쿠선.[8] 사시마(差間)와 교에(行衛) 지역[9] 와라비역부터 미나미우라와역에 이르기까지 카와구치 시내를 달린다.[10] 구 NHK 카와구치 라디오 방송국 터 소재.[11] 여담으로, 아게오 마스미 선생도 같은 현의 아게오시에서 따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