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이에른 뮌헨/2009-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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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 09-10시즌
감독: 루이 판 할

결과
DFL-슈퍼컵: -
분데스리가: 우승 (20승 10무 4패 70승점)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7승 1무 5패)
DFB-포칼: 우승 (6승)
리그 득점 1위: 아르연 로번-16골
전체 득점 1위: 아르연 로번-23골

1. 개요
2. 당시 스쿼드
3. 이적 시장
3.1. 영입
3.2. 방출
4. 전반기
5. 후반기
6. 총평


1. 개요[편집]


분데스리가 클럽 FC 바이에른 뮌헨의 2009-10시즌에 관한 정보를 다루는 문서이다.

발암 그 자체였던 08-09 시즌이 끝나고, 새 감독으로 부임한 것은 FC 바르셀로나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시간을 보냈으나 네덜란드로 돌아가 AZ 알크마르의 돌풍을 이끈 루이 판 할 감독이었다. 반 갈 감독 휘하에서 팀은 대대적으로 개편되었고, 히츠펠트의 07-08시즌 이후 2년만에 국내 리그/컵 더블을 다시 탈환해오는데에 성공했으며, 챔피언스리그도 정말 드라마틱한 경기를 거듭 치르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트레블을 목전에 두고 똑같이 트레블을 노리던 인테르에게 빅이어를 내주었으나 리그/컵 우승에 챔스 준우승은 분명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2. 당시 스쿼드[편집]


FC 바이에른 뮌헨 2009-10 시즌 스쿼드
번호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비고
1
미하엘 렌징
Michael Rensing
GK
파일:독일 국기.svg
1984년 5월 14일

4
에드손 브라프하이트
Edson Braafheid
D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1983년 4월 8일
[1]
5
다니엘 판 바위턴
Daniel Van Buyten
DF
파일:벨기에 국기.svg
1978년 2월 7일

6
마르틴 데미첼리스
Martín Demichelis
DF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80년 12월 20일

7
프랑크 리베리
Franck Ribéry
MF
파일:프랑스 국기.svg
1983년 4월 7일

8
하밋 알틴톱
Hamit Altintop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982년 12월 8일

9
루카 토니
Luca Toni
FW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77년 5월 26일
[2]
10
아르연 로번
Arjen Robben
M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1984년 1월 23일

11
이비차 올리치
Ivica Olić
MF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1979년 9월 14일

13
안드레아스 괴를리츠
Andreas Görlitz
MF
파일:독일 국기.svg
1982년 1월 31일

15
브레누
Breno
DF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9년 10월 13일
[3]
16
안드레아스 오틀
Andreas Ottl
MF
파일:독일 국기.svg
1985년 3월 1일
[4]
17
마르크 판 봄멜
Mark Van Bommel
D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1977년 4월 22일
주장
18
미로슬라프 클로제
Miroslav Klose
FW
파일:독일 국기.svg
1978년 6월 9일

19
알렉산더 바움요한
Alexander Baumjohann
MF
파일:독일 국기.svg
1987년 1월 23일

20
호세 소사
José Sosa
DF
파일:독일 국기.svg
1985년 6월 19일

21
필립 람
Philipp Lahm
DF
파일:독일 국기.svg
1983년 11월 11일
부주장
22
한스-외르그 부트
Hans-Jörg Butt
GK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3월 28일

23
다니옐 프라니치
Danijel Pranjić
MF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1982년 12월 2일

25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FW
파일:독일 국기.svg
1989년 9월 13일

26
디에고 콘텐토
Diego Contento
DF
파일:독일 국기.svg
1990년 5월 1일
[5]
27
데이비드 알라바
David Alaba
DF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1992년 6월 24일
[6]
28
홀거 바트슈투버
Holger Badstuber
DF
파일:독일 국기.svg
1989년 3월 13일

30
크리스티안 렐
Christian Lell
DF
파일:독일 국기.svg
1984년 8월 29일

31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MF
파일:독일 국기.svg
1984년 8월 1일
3주장
32
메멧 에키지
Mehmet Ekici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987년 8월 7일
[7]
33
마리오 고메즈
Mario Gómez
FW
파일:독일 국기.svg
1985년 7월 10일

35
토마스 크라프트
Thomas Kraft
GK
파일:독일 국기.svg
1988년 7월 22일

44
아나톨리 티모슈크
Anatoliy Tymoshchuk
MF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1979년 3월 30일



3. 이적 시장[편집]



3.1. 영입[편집]



분노의 영입 시즌2

매우 대대적인 스쿼드 개편이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우선 제니트의 07/08 UEFA컵 우승을 이끈 수비형미드필더 티모슈크를 겨울에 일찌감찌 계약을 확정해서 사왔고, 아르연 로번레알 마드리드에서 네덜란드 커넥션에 대한 푸대접에 분노하여 이적을 결심하자 뮌헨이 이적을 성사시켰고, 여름 이적시장 막판인 8월 28일에 합류했다. 영입은 아니지만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1년 내내 돌며 땡깡부리던 프랑크 리베리의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또한 노쇠화한 공격진에 새로 마리오 고메즈라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를 클럽 레코드 30M을 들여서 질러왔으며, 서브용으로 쓰려고 베테랑 공격수 이비차 올리치를 사왔으나 고메즈가 부진에 빠지자 오히려 올리치가 이 시즌 준주전급으로 대활약을 펼쳤다.


3.2. 방출[편집]



팀의 부주장이자 상징적인 수비수 루시우가 인테르로 떠났으며,[9] 유스팀 출신인 마츠 훔멜스가 부친과 구단의 갈등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또한 계속된 부진을 겪던 루카스 포돌스키가 친정인 쾰른으로 복귀했다. 루카 토니는 07/08시즌의 위상은 온간데없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반할 감독의 눈밖에 났고, 쓸쓸히 로마로 임대를 떠났다. 그 외에 출전기회가 제한되는 선수들이 다수 임대를 떠났다.


4. 전반기[편집]


바르샤 시절의 재판이 될 것이라 얘기를 들을 정도로 시즌 초반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딱히 클린스만 시절에 비해 뭐 나아진것 같지도 않은 공격전개에 여전히 불안정한 수비력, 개막후 첫 3경기에서 2무 1패로 시작했다. 호펜하임과 브레멘에 비기더니 승격팀인 마인츠에게 2대1 충격패를 당했다.[10]

그나마 아르연 로번이 합류 후 순전히 로베리의 파괴력으로 지난시즌 농락을 당해서 복수의 대상이었던 VfL 볼프스부르크에게 홈에서 로번의 멀티골에 힘입어 3대0으로 제대로 복수를 감행했고, 지난 시즌 말미에 갓 데뷔한 20세의 토마스 뮐러가 멀티골을 넣으며 로베리 라인과 함께 수비진을 초토화시키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무려 5대1 대승을 거뒀다. 뮐러의 활약은 1.FC 뉘른베르크와의 지역 더비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로번이 뜬금없이 유망주시절 풀백 제롬 보아텡에게 봉쇄당한 함부르크전에서 역습에 당하며 1대0 패배, 홈에서 연이어 쾰른에게 무득점 무승부, 좀처럼 터지지 않는 마리오 고메즈 등 팬들의 골머리는 점점 썩어들어갔다. 10월이 다 지나가도록 승률은 50%를 갓 넘길정도로 바이에른답지 않았다.

여기에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행보 역시 가관이었는데,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인한 징계로 2부리그에서 갓 승격한 7벤투스 시절의 유벤투스에게 시종일관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처절한 결정력으로 홈에서 0대0으로 비겼고, 지롱댕 보르도에게는 원정에서 2대1 패배, 홈에서도 2대0으로 패하며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다. 프란츠 베켄바워까지 나서서 독설을 날렸고, A매치 휴식기가 끝나고 돌아온 11월부터 다시금 로번도 돌아왔고,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활약과 토마스 뮐러, 이비차 올리치, 프랑크 리베리의 조합에 갑자기 안정적으로 승수를 쌓기 시작하더니 더비 라이벌 뉘른베르크에게 발목잡히기 전까지 리그 9연승을 달리며 선두자리까지 탈환했다. 챔스 토너먼트 진출이 달린 유벤투스와의 최종라운드 단두대 매치에서 무려 4대1의 대승을 거두며 2위로 16강에 안착하는데에도 성공했다.


5. 후반기[편집]


잘 하다가 챔스가 시작될 2월 말부터 갑자기 팀은 연승을 단 한번도 못할 정도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와중에도 뮌헨이 패하거나 비긴 라운드에서는 FC 샬케 04, SV 베르더 브레멘 등 순위경쟁 팀들도 꼭 한번씩 발목을 잡혀주며 정말 천운이 겹치며 마지막 라운드까지 우승을 장담못할 치열한 우승경쟁 속에서도 선두자리를 지켜냈고, 무재배를 10번이나 했음에도 도이처마이스터 타이틀을 탈환할 수 있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상대는 ACF 피오렌티나. 1차전 주심은 지난 시즌 첼시 FCFC 바르셀로나의 4강 2차전, 일명 "매수셀로나" 경기를 관장했던 톰 오브레보 주심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계속 밀리다가 막판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결승골이 오프사이드였으나 천운이 따라 심판들이 그것을 골로 인정했고, 원정 2차전에서는 요베티치의 맹활약과 다니엘 반 부이텐,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번갈아 나오는 발암수비로 3골이나 내주며 중간에 반봄멜이 중거리로 한 골 만회한 것을 빼고는 거의 발암 경기력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후반 막판 아르연 로번이 오른쪽 측면에서 3명을 재끼고 약 25m 넘는 거리에서 매크로 슛을 날린게 골문 사각지대로 그대로 중거리에서 빨려들어가는 환상골을 넣으며 3대2로 추격, 결국 원정다득점으로 8강행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 승리.


16강 2차전 하이라이트. 정말 수비력이 가관 그 자체다. 2분 31초가 바로 로번의 골장면이다.

8강 상대는 AC 밀란을 대파하고 올라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차전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도 못나오고 아르연 로번도 못나오고 이래저래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았고, 반 할 감독은 "웨인 루니를 완전히 막을 자신이 있다"라고 단언했는데 전반 2분만에 코너킥 상황에서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실수로 미끄러져 루니를 놓치며 루니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이뭐병한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이후 데미첼리스는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투혼을 불사르며 경기내내 수비의 핵 역할을 해냈고, 마르크 반 봄멜의 중원장악과 프랑크 리베리에게 몰빵되는 공격전개로 리베리의 개인능력에 의존하며 노쇠화한 풀백 게리 네빌을 끊임없이 공략했고, 리베리의 운이 따른 굴절 프리킥 골과 경기 종료 불과 몇 초 전 파트리스 에브라가 잠깐 정줄놓은 사이 이비차 올리치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순간적으로 볼을 탈취해 결승골을 넣으며 2대1로 승리했다.

8강 2차전은 16강 피오렌티나전 2차전보다 더더욱 드라마틱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루이스 나니와 깁슨, 발렌시아 등을 주축으로 매우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뮌헨의 발이 느린 포백과 중앙을 제대로 공략했고, 손도 못써보고 전반에만 3대0으로 끌려가서 탈락이 매우 자명한 상황에 놓였다. 뮌헨팬들은 다 포기하고 단념할때 즈음 전반 종료 막판 슈바인슈타이거가 롱패스를 준 것을 토마스 뮐러가 떨궈주고, 그것을 이비차 올리치가 무각도슛으로 만회골을 넣으며 3대1로 추격, 올드 트래포드를 한순간 정적이 흐르게 만들었다. 여기에 맨유 풀백 하파엘이 쓸데없는 잡아채기 반칙으로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진짜 해볼만한 상황이 되었고, 아르연 로번프랑크 리베리를 필두로 공격전개에 나서며 기어이 후반전 로번이 결승골을 넣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리베리가 페널티 아크쪽을 향해 멀리 준 것을 로번이 논스톱으로 그대로 처리한게 환상적인 하프발리슛으로 에드빈 판데르사르가 손도 못쓸 궤적으로 빨려들어간 것. 결국 3대2까지 추격하자 합계 4대4 원정다득점으로 뮌헨이 4강에 올라갔다. 무려 9년만의 4강행이었다!!


발리슛 결승골 장면. 로번은 탈락위기의 팀을 두 차례나 자신의 왼발로 지옥에서 끌어냈다.

알싸에서 혹자는 마리오 고메즈가 반데사르의 시야를 가린게 결정적이었기에 고메즈 0.9골이라고도 불렸다

DFB-포칼 4강에서는 리그 선두와 2위의 맞대결인 FC 샬케 04와의 대결이었고, 마누엘 노이어한스-외르그 부트의 선방으로 치열한 경기에서 골이 안터져 연장으로 흘러갔고, 여기서 아르연 로번이 또다시 연장후반 112분, 하프라인부터 거의 홀로 60m가량 드리블을 쳐서 매크로 골로 샬케 수비수 3명과 노이어마저 무너뜨리고 결승골을 넣었다. 또 다시 로번의 왼발이 뮌헨을 구해낸 순간이었다.

챔스 4강 상대는 리옹. 주축 선수들의 누수가 매우 큰 리옹은 뮌헨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1차전에서는 아르연 로번이 또 다시 악마의 왼발로 약 30m 거리에서의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넣었고, 2차전에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중원에서 탈압박과 패스를 뽐내며 날아다녔고, 이비차 올리치토마스 뮐러와의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단 1차전에서 프랑크 리베리가 상대선수 발을 밟으며 퇴장을 받았는데, 이게 고의성이 있는 반칙으로 판정받아 3경기 출장징계를 받으며 결승전에 리베리가 출전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32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정말 우승의 향방은 어디를 향할지 알 수 없었는데 33, 34라운드에서 승리를 따내며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했다. DFB-포칼 결승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는 전반 초반부터 페어 메르테자커의 핸들링으로 로번의 PK골, 이후 이비차 올리치, 프랑크 리베리,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릴레이로 골을 넣으며 4대0으로 대승을 거뒀다. 07/08시즌 이후 빼앗긴 국내 타이틀을 이로써 모두 되찾는데 성공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2009-10 UEFA Champions League Final
2010. 05. 22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페인, 마드리드)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엠블럼(2014~2021).svg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엠블럼.svg
파일:FC 바이에른 뮌헨 로고(2002~2017).svg

FC 바이에른 뮌헨
2 - 0
35' 디에고 밀리토
70' 디에고 밀리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결국 프랑크 리베리에 대한 징계에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로 로베리가 가동되지 못한채 경기를 치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연 로번이 맹활약을 하며 열심히 상대 수비를 헤집어 놓았으나 주제 무리뉴는 이 점을 간파하고 버스 2줄을 세우고 역습으로 나서는 수비적인 운영으로 4강 FC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릴때와 같은 전술로 임했고, 올 시즌 최대의 약점인 센터백 라인 이 이날 역습상황에서 디에고 밀리토에게 2번이나 농락당하며 2골을 내줬다. 결국 점유율, 패스 수, 슈팅수 등 온갖 데이터를 압도하고도 역습 두방을 막지 못한, 전형적인 무리뉴가 가장 잘 구사하는 카운터 전술에 말려들며 준우승을 거뒀다.


6. 총평[편집]


비록 준우승이었지만 불완전한 스쿼드로 더블 우승에 챔스 준우승까지 거둔 것은 분명 기대 이상의 성과로 칭송받는다.

이때 당시 뮌헨 베스트 11을 보자면

골리 : 한스-외르그 부트
포백 : 필립 람 - 다니엘 반 부이텐 - 마르틴 데미첼리스 - 홀거 바트슈투버
미드필더 : 아르연 로번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마르크 판 봄멜 - 프랑크 리베리
공격 : 토마스 뮐러 - 이비차 올리치 / 마리오 고메즈

여기에 주로 나오는 서브가 클로제, 알틴톱, 콘텐토, 티모슈크, 프라니치 등이 있었다. 로베리 라인을 위시한 미드필더진만 유럽 일류급었고, 나머지 수비진 및 공격진은 유럽 일류라고 칭하기는 조금 부족한 선수진이었다. 토마스 뮐러의 경우 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챔스 데뷔전 해트트릭을 선보이긴 했지만, 세계 정상급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09-10시즌 후반부 및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의 일이다.
수비진의 경우 람은 자타공인 세계 정상급의 윙백이었지만 그 반대쪽을 맡아 줄 확실한 윙백이 없었다.[11] 반부이텐과 데미첼리스로 이루어진 센터백 라인은 두 선수가 모두 발이 느리고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여기에다 골키퍼로 있던 부트는 전임자 렌징보다는 나았지만, 그 전임자였던 올리버 칸이나 후임으로 들어오게 될 마누엘 노이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나마 정상급의 주전 선수를 보유하였던 미들진에서도 로번과 리베리가 자주 결장하여 전력 출혈은 불가피했고, 이들의 백업이 되어줄 믿을 만한 선수는 없었다. 그나마 출혈이 날때마다 메꿔주던 만능 서브 알틴톱과 프라니치는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지만 공격의 방점을 찍을 날카로움과 클라스가 한 단계 떨어졌고,[12] 리베리가 경고누적으로 빠진 챔스 결승에서 그러한 약점은 그대로 드러났다.
공격진의 경우 클럽 최고 이적료를 지르고 산 고메스는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고, 클로제는 국대에서만 잘하는 애국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13] 그나마 이비차 올리치 선수가 큰 키와 빠른 발을 겸비하여 고군분투하며 빈틈을 메꿔주고 있었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척 봐도 4강에 오른 팀들 면면과 비교해보면 마이콘, 왈테르 사무엘, 루시우, 하비에르 사네티, 데얀 스탄코비치, 베슬리 스네이더, 가브리엘 밀리토, 사무엘 에투 등이 포진한 인테르, 리오넬 메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카를레스 푸욜, 헤라르드 피케, 다니 알베스 등이 포진한 바르샤에 비하면 뮌헨 스쿼드의 무게감은 미드필더진과 필립 람을 빼면 크게 떨어졌고,[14] 특히 수비진의 경우 람을 제외하면 느려 터진데다 기복도 심해서 불안정함 그 자체였다.[15] 역대 국제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팀 중에 이 정도로 불안한 수비력을 가진 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름값은 떨어지지만 이비차 올리치라는 베테랑과 괴물신인 토마스 뮐러의 투톱의 활약, 중원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맹활약과 주장 마르크 반 봄멜의 여전한 중원장악, 가장 결정적으로 로베리 라인의 결성으로 공격만큼은 꿇리지 않으며 수비에서의 약점을 상쇄해냈고, 몇 번이나 탈락과 다름없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지만 정말 이 공격으로 수없이 극장 드라마를 찍어내며 극복해낸 시즌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조금 더 극단적으로 공격 일변도를 달렸던 10-11시즌은 결국 폭망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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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울 이적시장에서 셀틱 FC로 임대[2] 겨울 이적시장에서 AS 로마로 임대[3] 겨울 이적시장에서 1.FC 뉘른베르크로 임대[4] 겨울 이적시장에서 1.FC 뉘른베르크로 임대[5] 1월에 유스팀에서 콜업[6] 1월에 유스팀에서 콜업, 프로 계약되지 않은 아마추어 계약 상태에서 1군에 콜업되어 뜀. 시즌 종료 후 정식계약함.[7] 1월에 유스팀에서 콜업[8] 같은 해 200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묀헨글라트바흐로부터 영입되었으나 6개월만에 자신의 친정팀인 샬케로 복귀하였다.[9] 결국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맞상대를 해야했다. 루시우는 우승 확정 후 이전 소속팀인 바이에른에 경의의 표시로 머플러의 바이에른 엠블럼에 키스했다.[10] 당시 마인츠의 신임 감독이던 토마스 투헬의 분데스리가 첫 승리이기도 했다.[11] 위의 베스트 11로 손꼽힌 바트슈투버는 오히려 센터백이 주포지션인 선수였고, 그나마 센터백 중에서 발이 빠른 편도 못되었다. 당시 백업 왼쪽을 맡았던 디에고 콘텐토는 촉망받는 유망주이기는 했지만, 아직 미완의 유망주일 뿐이었다.[12] 둘 다 이 시즌 단 한 골씩밖에 못넣었다. 챔스 결승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알틴톱을 선발로 썼으나 실패로 돌아갔다.[13] 쾰른 이적한 포돌스키도 09-10시즌 극악의 부진에 시달리면서 애국자 소리는 여전히 듣고 있었다. 여담으로 요아힘 뢰프가 클럽에서 한 자리수 골밖에 못넣는 이 둘을 계속해서 국대 선발로 쓰고 슈테판 키슬링이나 카카우 등을 잘 안쓰거나 쓰더라도 중요성이 떨어지는 경기에서만 쓰자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는데, 월드컵 본선에서는 결국 뢰브가 옳았다는게 증명되었다.[14] 또한 리베리는 뮌헨 커리어 통틀어 09-10 시즌이 가장 부진한 시즌 중 하나였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도 중미로 포변한 첫 시즌이었기에 현재와 같은 위상의 선수가 아니었다.[15] 당시 4강전 상대였던 리옹에 비해 크게 우수한 선수진이었다 보기 어려운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