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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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어.jpg
청어
Herring
이명 :
Clupea Linnaeus, 1758
분류

동물계

척삭동물문(Chordata)

조기어강(Actinopterygii)

청어목(Clupeiformes)

청어과 (Clupeidae)

청어속(Clupea)
  • 청어속(Clupea)
    • 태평양청어(Clupea pallasii)
    • 대서양청어(Clupea harengus)
1. 개요
2. 생태
3. 주요 아종
4. 명칭
5. 청어와 인간
5.1. 수산업
5.1.1. 한국
5.1.2. 일본
5.1.3. 유럽
5.2. 음식
6. 여담



1. 개요[편집]


청어목 청어과 청어속의 바닷물고기.


2. 생태[편집]


성체는 길이가 20~38 cm, 외견이 정어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지만, 몸 측면에 방사형 융기선이 없고, 꼬리에 정어리 특유의 비늘이 없으며, 옆구리에 검은 점이 없는 점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몸빛깔은 담흑색에 푸른색을 띠지만 배 쪽은 은백색이다. 대표적인 한해성 어류로, 3월 하순부터 수온이 4~5°C 가까이 올라가면 성숙한 성어는 깊은 바다에서 연안의 해조류가 무성하고 암초가 있는 얕은 연안이나 내만으로 떼를 지어 몰려오고, 그 곳에서 12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산란한다. 성숙하는 데는 4년 정도 걸리고 수명은 20년 정도이다. 먹이는 플랑크톤성 갑각류이다.


렙톨레피스라는 어류가 청어과 어류의 공통조상으로 보인다.


무리지어 생활하고 개체 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생태적으로는 상위 포식자들의 먹이로 매우 중요하다.


3. 주요 아종[편집]


  • 태평양 청어
학명은 Clupea pallasii. 북태평양 일대에서 잡히는 청어의 일종. 한국, 중국, 일본러시아 극동, 아메리카 서부 등지에서 어획된다. 주로 동아시아에서 소비된다. 특이하게도 이 청어의 아종으로 분류되는 백해 청어는 그 이름대로 대서양과 연결된 러시아 북서부의 백해에 서식한다.

학명은 Clupea harengus. 북대서양 일대와 발트해에 분포하는 청어의 일종. 서구권에서 소비되는 청어이다. 발트 해에서 잡히는 대서양청어는 크기와 지방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별도로 발트 청어라고 볼리기도 한다.


4. 명칭[편집]


한국어
청어(靑魚), 비웃
영어
herring
중국어
鯡魚/鲱鱼 (fēiyú)
일본어
ニシン(니싱)
스페인어
arenque

청어를 식재료로는 '비웃', 청어의 알을 '비웃알'이라고도 불렀다. 그 외에도 겨울에 잡힌 아직 덜 자란 청어를 '굴뚝청어'라고 한다.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은 청어의 새끼를 '솔치'라고 부르는 데, 경상도 사투리로는 송사리의 새끼를 가리키는 단어라서 혼란이 있다.


5. 청어와 인간[편집]



5.1. 수산업[편집]


물 반 청어 반이다 싶은 어마어마한 개체 수 때문에 근대 이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서는 중요한 먹거리였다. 전세계에 명물이 되어 남은 청어 보존 식품들이 그 흔적이다. 한국의 과메기[1]와 청어알젓, 일본의 미카키니싱,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 유럽의 훈제 청어와 청어 초절임 등. 그래서 유럽에서는 대구와 함께 청어를 '바다의 밀'이라고까지 불렀다.

일단 어업을 하면 엄청나게 잡혀서 예전부터 청어잡이를 할 때는 낚시보다는 그물을 사용했다. 저 멀리 북태평양에서는 원양어선이 청소기로 빨아들여 잡는다. 워낙 대량으로 어획되는 탓에 기존의 시장 규모에서는 단시간에 소비가 불가능해서 냉동 유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3년 12월 기준 남해안에서 잡힌 청어(산란기라 곤이이리가 있는)의 경매가는 20 kg 한 상자에 9천 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참고로 고등어는 1 Kg당 1만 원 가량이다. 청어는 꽤 저렴한 생선이라 주로 양식장 물고기들의 사료로 주로 이용된다.


5.1.1. 한국[편집]


청어는 정월에 입포(入浦)하여 해안을 따라 회유하면서 산란하는데 무수한 청어가 떼를 지어 군래하면 바다를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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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전, 《자산어보》 中


동아시아에서 청어 어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한국으로, 고려 시대부터 그 기록이 존재한다. 하지만 청어 어획량이 급증한 것은 조선 시대, 그 중에서도 소빙기의 영향으로 냉수괴가 황해까지 대대적으로 확장했던 근세이다. 냉수괴가 확장하자 한류성 어종이었던 청어 또한 서식지를 넓혀 중국 연안까지 진출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청어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등푸른 생선이었다. 수많은 등푸른 생선을 제치고 청어(靑魚)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바로 그 증거. 즉 옛 조선인들에게 등푸른 생선의 표준은 어디까지나 청어였던 것이다.

당시 청어는 전국의 바다 연안 전역에서 매우 많이 잡혀 비유어(肥儒魚: 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2]로 불릴 정도로 값싸고 친숙하며 맛있는 생선이었다. 이때는 시기별로 각 지역에서 청어를 잡아 올릴 수 있었으며, 황해도 해주산 청어도 한때 이름을 날렸다.

특히 당시 소빙기의 영향으로 기근이 자주 발생할 정도로 식량 사정이 악화되었는데, 오히려 청어는 어획량이 폭증하면서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배고픈 일반 민중의 배를 채워준 고마운 식품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조선에서도 청어를 보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가공 방법들을 개발했다. 대부분은 타국의 청어 가공품과 아주 비슷했다. 대표적인 것은 관목이라 불린 과메기로, 바닷바람에 청어를 말린 것이다. 현재는 꽁치로 만들지만 원조는 청어였다. 한편, 부엌 굴뚝에 걸어 훈연한 훈제 청어(연관목)도 있었다.

예로부터 청어죽은 보신재로 산후나 병후의 회복기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값도 싼 생선이라 어떤 선비는 "1냥에 청어 3뭇밖에 안 되는데 너무 비싸진 거 아니냐?"라고 하기도 했다. 참고로 1뭇은 10마리.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는 한술 더 떠서 "청어는 옛날에는 극히 흔하였는데 고려말에는 감산되어 쌀 한 되에 청어 40마리밖에 주지 않았다." 하고 한탄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은 병사들을 동원해 청어잡이로 수십만 마리를 잡아 군사와 피난민들의 식량으로 썼다고 한다. 한산도둔전을 일구기는 했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곡식만 가지고는 그 많은 입을 먹여 살리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3] 잡은 청어들은 주로 그냥 먹기보다는 말려서 과메기로 먹었다. 청어는 내장에 지방이 많고 살이 쉽게 물러서 금방 상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말린 청어를 농민들과 물물교환하여 군량미를 마련하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청어의 포획과 소비, 가공업은 비록 타 국가들처럼 전국적/국제적인 유통망을 갖춘 산업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활황이었다. 소빙기와 기근, 그리고 인구 증가와 화폐경제의 발전에 맞물려 삼면의 바다에서 대량으로 잡히기 시작한 청어는 조선 후기 어업과 유통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 조정의 수입 중에서도 청어 수산업에서 걷은 세금이 어느 정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 근해의 청어들도 어획량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큰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이후 청어의 이동이 시작되면서 청어 산업은 쇠퇴하고 만다. 소빙기가 끝나면서 우선 중국 연안의 청어들이 사라졌고, 한반도 서해안의 청어는 19세기부터 서서히 개체수가 감소하다 자취를 감췄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는 청어 서식지가 아예 인구 희박 지역인데다 높은 산맥으로 타 지역과 고립되어 있는 동해안으로 국한되었다. 이 덕에 인구 밀집 지역인 서부 지역과 생산지가 괴리되면서 생산량도 덩달아 급감했고, 자연스럽게 청어 어업도 다른 어종에 밀려 사양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 빈 자리를 꿰찬 것은 난류성 어종이라 서해안에서 원래 많이 잡히고 소비되는 조기, 그리고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고등어였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대구, 청어는 교통 및 냉장 기술이 발전한 근대에 들어서야 소비량이 폭증한다.

이 때문에 조선 청어 어장은 19세기부터 국제적인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18 ~ 19세기 경 중국 연안까지 잠시 확장했던 청어 집단이 다시 조선 서해안 연안으로 돌아가자, 이를 쫒아 청나라 어선들이 조선 연안까지 와서 조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황당선이라고 불렸던 선단으로, 기록에 등장하는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 행위 중 가장 이른 것이다. 이는 당시 조선 조정과 청나라 조정 간의 외교 문제로까지 잠시 번졌을 정도였다.

19세기부터는 일본의 청어 어업이 개항 및 산업화와 맞물려 더더욱 활황을 띔에 따라 일본 선단이 조선 어장에 침투했다. 당대 일본은 서구 국가들에 비누 및 각종 기계유의 원료인 청어 어유를 수출하였는데, 홋카이도까지 병합해서 그 근해 어군을 싹 잡아들인 결과 청어 개체수가 격감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 어선단은 점차 일본 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어업권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고, 경술국치 이후 조선이 식민지가 되자 거리낌 없이 조선 동해안의 풍부한 청어 어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편 서식지가 축소되었음에도, 19세기 말까지는 어획량이 엄청나 부산항에 배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청어가 몰려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60년대부터 차차 줄어들어 7~80년대에는 1/100수준이 되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원래 제철이어야 하는 연초 때의 어획량이 아예 0이었다는 기록도 있었으나, 90년대들어 차차 늘고 있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수십 년간 청어가 거의 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자산어보에도 이런 청어의 주기적인 이동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55년 주기로 서해에서 청어가 잡히다가 동해에서 잡히다가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에서 청어가 씨가 마르면서 청어로 만드는 과메기는 거의 사라지고 꽁치 과메기 밖에 남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청어 회유로가 40년이 지날 때마다 바뀐다는 설이 있으므로, 다시 연근해가 청어 떼로 넘칠 날이 올 것이라 예상했는데[4] 실제로 2010년대 이후로 국내에서 청어 어획량이 다시 늘어나고 청어 풍년인 해도 점점 늘어나는 중. 대한민국에서 잡히는 청어는 주로 양식장의 사료로 이용된다. 청어를 직접 식용으로 판매하기보다 청어로 넙치 같은 양식어종을 길러서 판매하기가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주요 가공품은 다음과 같다.

청어를 막대기에 꿰어 겨울 바닷바람에 말린 가공품. 눈을 꿰었다 해서 관목(貫目)이라고도 한다. 이 한자어가 과메기라는 말의 원조인지, 아니면 단순히 과메기란 단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공식적으로는 관목의 방언이 과메기라는 것이다. 현대 들어 청어의 개체수 감소로 인해 대체재인 꽁치로 주로 만들었지만, 청어 어획량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원조 청어 과메기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채 말린 것은 요새는 통과메기라고 부르는데 이쪽이 사실 원조다. 현재 유통되는 과메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내장을 제거하고 반으로 가른 편과메기는 사실 1990년대 대량공급을 위해 새로 개발된 신식 기법이다. 포항 수협의 설명에 따르면 전통적으로는 부엌의 살창에 통째로 걸어 겨울 바람에 말리는 냉훈법으로 생산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부엌에서 나오는 연기가 자연적으로 청어를 훈연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별도로 연기 연(煙) 자를 앞에 붙여 연관목이라고도 불렀다. 연관목은 현재는 거의 완전히 사라져서 기록에서나 볼 수 있다. 본래 과메기는 동해안 전역에서 소비하는 보존식품이었지만 포항시 영일만의 청어로 만든 과메기가 특히 유명하다.


5.1.2. 일본[편집]


일본의 청어 어업은 에도 막부 시기인 17세기부터 대대적으로 성장하여 전국적 유통망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일본의 농업 생산량과 상품 작물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비료 제작 산업이 활황을 띄었다. 원래는 정어리를 가열하고 압착해 어유를 추출한 뒤 남은 깻묵으로 비료를 만들었는데, 때마침 소빙기의 영향으로 청어가 급증하면서 원료가 정어리에서 청어로 변화했던 것이다. 에도 시대 어부들은 청어를 쫒아 북상하면서 마침내 당시는 아이누의 영역이던 홋카이도까지 도달했는데 이는 일본의 홋카이도 식민지화의 첫 단계였다. 운송업자들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거쳐 일본 각지에 잡은 청어를 납품했다.

당시 일본의 주된 청어 가공 식품은 하술할 미가키니싱으로, 우리나라 연관목, 또는 유럽의 훈제 청어와 비슷한 제품이다. 우선 청어의 내장을 제거한 뒤 바싹 훈연하여 만드는 훈제품으로, 주로 상등품이 청어가 가공되었다. 하급품 청어는 우선 대량으로 쪄낸 후 압착하여 청어 어유를 분리한 뒤 등유로 팔고, 남은 깻묵은 상술한 대로 비료로 가공해 각지의 농장에 팔았다.

한편, 일본이 개항한 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어유 산업이 특히 급증하였다. 어유에 수소를 첨가해 경화유로 가공하면 윤활유 등의 각종 산업적 용도로 쓸 수 있었던데다 비누의 원료도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곧 일본 근해의 청어는 남획되었고, 식민지로 편입된 조선 동해안에도 수많은 어유 생산 공장이 들어섰다.

  • 미가키 니싱
한국의 과메기와 유사한 말린 청어. 다만 간장 양념을 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교토의 특산물로, 교토에서는 청어 산지에서 건제품을 가져와 양념하여 완성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는 일본 한자어를 그대로 읽어 청어신흠(靑魚身欠)이라고도 불렀다.

  • 어유
청어 기름. 에도 시대부터 생산하다 근대 들어 청어 산업의 주 상품이 된 제품. 어유 그대로는 하급 등유로 쓰지만, 수소를 첨가하는 정제 과정을 거치면 경화유가 되어 각종 산업용으로 쓸 수 있다.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이용해 만든 유박비료이다.

5.1.3. 유럽[편집]



바이킹들의 식사를 소개하는 영상. 청어포가 나온다. 얼마나 단단하면 먹기 전에 막대기로 두들긴다

유럽에서도 흔하고 친숙한 식재료였다. 중세 유럽에서 금육일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주로 소비되던 것이 훈제 청어일 정도. 게다가 비타민 D 함량이 많은 음식 중 하나라서 우중충한 날씨가 일상적인 유럽에서는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도, 청어 어획량은 늘 들쑥날쑥해서 청어가 잡히는 지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곤 했다. 한자동맹의 성장과 몰락에 청어 서식지의 변경이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가설도 있으며,[5] 대항해시대 시절 네덜란드도 청어 어획고가 감소하자 국가경제가 휘청거렸다. 스페인이 몰락한 이후 네덜란드가 유럽의 패권을 거머줬을 때 그 밑바탕이 된 것이 엄청난 청어 어획고로 벌어들인 돈이었다고. 대구와 함께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청어는 매우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83px-Willem_Beuckel_lithograph_1821.jpg
자신이 발명한 칼과 청어를 든 빌럼 뵈컬손

이러한 중요한 청어 산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빌럼 뵈컬손(Willem Beukelszoon), 영어로는 윌리엄 버클스(William Buckels)라는 네덜란드 어부인데, 그는 갓 잡은 청어의 이리[6]를 제외한 내장과 가시를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작은 칼을 만들고, 소금 대신 함수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통절임 방법을 고안했다. 옛날부터 소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당히 중요하고 비싼 필수품이었고, 특히 연중 일조량이 적은 기후탓에 바다에서 소금을 만들기 어려웠던 북유럽과 서유럽은 더더욱 소금이 귀했다. 이 때문에 기껏 청어를 잡아도 오래 보존하려면 소금에 절여야 했는데, 소금이 부족해서 충분한 양을 수출하기 어려웠다. 이때 네덜란드인들은 소금 대신 바닷물을 끓여서 수분을 날려 굉장히 짜게 만든 소금물(함수)을 소금 대신 쓸 수 있음을 알아냈다. 완전히 증발시켜 고체를 만들거나 암염광산에서 캐내어 정제해야 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함수는 그저 바닷물을 끓이기만 하면 얻을 수 있으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이 방법으로 청어를 절여 기존보다 수십 배나 많이 생산했고, 그 덕분에 네덜란드는 청어산업에서 경쟁국가들을 밀어내고 대성공하였다. 심지어 당대 암스테르담을 가리켜 '청어 뼈 위에 세운 도시'라고 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청어절임은 지금도 여전히 먹고 있는데 그것이 아래 문단에서 설명하는 하링(Haring)이다.

다만 이후 네덜란드의 청어 어업은 영국인들이 청어의 주 어장인 영국 연안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고 네덜란드 함대를 무너뜨리면서 점차 쇠락했다. 이후 유럽 청어 어업은 네덜란드인들의 청어 어업 기법을 배우고 강대한 영국 해군의 보호를 받는 영국으로 넘어간다.



1920년 스코틀랜드의 스카보로 항구와 1925년 잉글랜드 그레이트야머스 항구에서 스카치 큐어 방식으로 청어를 손질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 스코틀랜드에서 온 피셔 걸(Fisher Girls)들이 청어의 내장을 작은 칼로 제거하고 나무 드럼통에 담는 모습이 담겼다. 영국 그레이트야머스의 Time and Tide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피셔 걸들은 청어잡이 철마다 스코틀랜드 선단과 함께 영국 동부 연안의 각 항구에 몰려들어 청어 내장을 손질하던 스코틀랜드인 여성 계절노동자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나이가 얼마나 들었건 간에 걸(girl)로 불렸다.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작업했는데, 두 명이 내장을 제거하면 남은 한 명이 이를 받아 나무 통에 담는 방식이었다. 작업 시간은 보통 하루에 12시간에서 15시간 정도였으며, 그들은 주로 노동요를 함께 부르며 고된 작업을 이겨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들은 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청어잡이 항구이던 잉글랜드 노퍽주의 그레이트야머스에 특히 많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청어 어업이 쇠퇴하고 그레이트야머스가 관광도시로 변화하면서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유럽 대서양 청어의 주된 어장은 북해, 그 중에서도 영국 연안과 북해 중앙의 거대한 모래톱인 도거 뱅크이다. 이 지역들은 낮은 수온과 함께 영양 염류가 풍부한데다 수심이 매우 얕기 때문에 청어의 중요한 산란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잉글랜드 동남부 노퍽 주의 그레이트야머스 앞바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경제성 있는 청어 어장이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청어 산업은 확장된 철도망과 증가하는 국제 무역량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세기 이전 청어 뼈 위에 세워진 도시가 암스테르담이었다면, 19세기에서 20세기는 그레이트야머스였다고 할 정도였다.

청어잡이 시즌만 되면 수백 대의 어선이 몰려들었고, 유망 또는 저인망을 이용해 날마다 엄청난 양의 청어를 잡아들였다. 육지에서는 청어 가공 공장에서 날마다 청어를 가공, 영국과 유럽 전역으로 완제품을 납품했다. 이 지역의 청어는 독일 제국러시아 제국, 폴란드에서도 많이 수입해갔지만, 주된 고객은 이탈리아 왕국이었다. 특히 청어 절임을 많이 수입했다고.

Time & Tide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19세기 ~ 20세기 중반까지 그레이트야머스 항구에서 제작하던 청어 가공품은 크게 네 가지다.

  • Bloater(블로터)
1836년, 그레이트야머스의 비숍이라는 염장업자가 개발한 방식. 야머스 블로터(Yarmouth Bloater)로도 불린다. 만드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청어들의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세심하게 염도가 조정된 함수 수조에 넣어 일주일 간 절인다. 이후 20마리씩 눈을 막대기에 꿰어 탑 형태의 훈연실 천장과 벽에 빼곡히 걸고 6시간에서 8시간 가량 잠깐 훈연하면 완성된다. 주로 생산되던 시기는 8월에서 11월 사이였다. 동앵글리아 지역의 청어가 기름기가 적어 적합했다고 하며, 주로 이탈리아로 수출되었다. 한때는 청어 가공품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통과메기와 비슷한 이유로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원은 '담그다' 라는 뜻의 스웨덴어 blöta.
  • Red Herring(레드 헤링)
훈제 청어. 염장법이 개발된 16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졌던 가장 기본적인 청어 가공품. 가장 이른 기록이 13세기일 정도로 전통적인 방식이다. 청어를 적갈색이 될 때까지 몇 주간 바싹 훈연한 것이다. 냄새가 매우 심하기에, 근세 범죄소설에서는 범인이 이걸 일종의 전투기가 내뿜는 플레어처럼 던져서 추적하는 들의 후각을 교란하는 용도로 쓰였다. 이 때문에 현재 영어에서 레드 헤링이라 하면 논점일탈의 오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브리티시 파테에 소개된 키퍼 제작 방법. 1948년, 그레이트야머스에서 촬영.
  • Kipper(키퍼)
훈제 청어. 내장을 제거한 청어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 편 다음 소금을 뿌려 몇 시간 가량 염장한 후, 막대기에 스무 마리씩 눈을 꿰어 훈연탑에 건 뒤 훈제한 것. 영국에서 현재도 상당히 흔히 볼 수 있는 해산물 식단이다. 그레이트야머스의 염장업자 존 우저(John Woodger)가 1846년에 개발했다. 우리나라 과메기와 거의 같다. 1918년부터는 천연색소를 첨가했는데, 참나무 연기의 검은색을 내기 위함이었다. 부가적으로는 훈연하면서 청어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바싹 훈연하면 위의 레드 헤링이 된다. 최대 생산지는 맨 섬이다.
  • Scotch Cure/Pickled Herring(스카치 큐어/피클드 헤링)
청어 절임. 그레이트야머스에는 1860년 스코틀랜드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위 영상에서처럼, 청어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내장을 바로 제거한 뒤 나무통에 굵은소금과 함께 빼곡하게 담는다. 그러면 소금이 청어에서 흘러나온 물에 녹아 섞이면서 함수가 되어 청어를 절이게 된다. 이 방식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탈리아에 수출되는 물량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5.2. 음식[편집]


청어로 만든 음식들

가공해서 훈제 청어수르스트뢰밍으로 만들 수 있다. 둘 다 냄새가 강렬하다. 구워서 먹을 때 폭풍같은 가시의 향연이 압박적인데, 척추 부근의 큰 뼈를 들어 내면서 한번만 발라주면 다 씹어먹을 수 있는 가느다란 가시라 먹기도 쉽고 담백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일품이다. 잔뼈들이 뼈라기보단 털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

청어살에 첨가물을 넣고 오징어 먹물을 입혀 까맣게 만들어 가공해 파는 것을 '아브루가'라고 하는데, 캐비어와 비슷한 외형 때문에 캐비어의 대용품으로도 쓰인다. 물론 가격도 훨씬 싸고 알도 아니다.#, # 오세트라 캐비어가 15g에 7만~9만 원을 왔다갔다 하는데, 아브루가는 50g에 1만 원 후반 ~ 2만 원 초반이다.

청어알도 별미. 보통 염장어란 하면 숭어 알이나 민어 알을 연상하지만 사실 청어 알도 염장하면 아주 맛있다. 특히 알 껍질이 아주 단단하면서도 오독거리는 식감을 내는데 그 풍미가 매우 특이해서 이게 동물의 조직이 맞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탄력으로 오독을 넘어 아삭거린다. 흔히 생각하는 명태알의 식감이나 톡톡 터지는 날치알과도 전혀 다른 재미있고 중독적인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과거 청어가 흔할 때에는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었으며 고춧가루 양념으로 절인 청어알젓이 명란젓 못지 않게 흔했지만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청어와 명태가 북반구에서 안 내려오면서 청어알젓과 명란젓 둘 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다. 일본에선 소금으로만 절여 말려 단단해진 청어알을 가즈노코(数の子)라 부르며, 이 가즈노코를 슬라이스해 스시 재료로 사용하거나 알이 빽빽하게 뭉쳐져있기에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상징으로 여기면서 자손번영을 비는 의미에서 새해에 먹는다. '노란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귀하고 맛있는 식재료 취급을 받는다. 영덕에서 청어알을 아주 고급으로 쳐서 따로 팔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튀겨 먹기도 한다.

비늘이 얇지만 넓고 질긴 편이라 먹으면 소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청어를 어획후 알만 빼서 버리는 지역에선 이걸 주워 먹은 바다표범들이 비늘 때문에 위장병에 걸려서 빼빼 말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요리를 할 경우, 얇은 비늘이라 방심하지 말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소금구이로 먹거나 고등어처럼 를 넣고 졸여 먹기도 한다. 로도 먹는데, 썰어두면 살이 불그스름하고 맛이 다른 생선에 비해 담백한 것이, 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맛을 보면 잊을 수가 없을 별미이다. 싱싱한 청어를 회로 먹으면 달달한 맛이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이다. 이렇게 맛있는 횟감이었나 싶을 정도. 당연히 요리사는 고역이다. 뼈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제거해야 된다. 칼집을 넣어 뼈채로 먹기 편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청어의 잔가시 때문에, 청어회는 거의 물회나 막회의 형태로 소비된다. 청어의 주산지인 동해안 지역에서는 청어가 막회의 중요한 재료로 통한다. 실제로 포항 일대의 물회/막회집 중에는 청어회의 가미 유무에 따라 메뉴 가격이 달라지는 곳들 또한 많다. 청어가 들어간 메뉴는 돈이 약간 더 붙는 식이다. 청어구이 자체는 단가가 싸서 스키다시로 제공되기도 한다.

과메기도 원래는 꽁치뿐만 아니라 청어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만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로 만든 과메기만 남게 되어 과메기 하면 꽁치를 연상하고 청어는 따로이 청어 과메기라고 부르는 현실.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상인들은 청어 과메기가 진짜라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다. 이게 와전되어서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만 만들었는데 청어 어획량이 줄어들자 대체품인 꽁치로 만들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꽁치 과메기처럼 지속적으로 일정량을 공급할 수가 없어서 거의 잊혀졌다가 2020년대 이후로는 청어가 남아돌기 시작해서 다시 제조하고 있다. 쌈장에 찍어 싸먹거나 초장에 비벼먹는다. 기름져서 질리기 쉽지만 수르스트뢰밍처럼 독한 냄새는 안 난다. 단 생선을 잘 못 먹는 사람에게는 비린내가 심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다.
굉장히 싼 만큼 군대에서 청어튀김이 자주 나온다. 예비역들이라면 모습은 꽁치나 정어리 비슷한데 훨씬 통통하고 가시가 많아(특히 배 부분) 먹기 성가셨던 생선튀김이 기억날 터인데, 그 생선이 바로 청어일 확률이 매우 높다. 참고로 청어나 정어리가 군대 짬밥으로 나올 시기면 2000년도 이전의 군대 식단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명태나 고등어, 삼치 등의 생선이 더 자주 나오는 편이고 청어는 나오지 않는 경우도 꽤 있는 편이다. 고등어나 명태는 어장이 비교적 일정한(지구온난화 문제로 변하기는 한다) 반면 근해의 청어나 정어리, 가다랑어 등의 어장은 마구 널을 뛰기 때문에 싸고 구하기 숴운 식단을 제공하는 군대밥 특성상 청어 비슷한 것도 안 나온 기간이 많기 때문.

파일:Nederlandse Haring.jpg
  • 네덜란드에서는 하링(Haring)[7]이라고 부르며,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잡히는 청어를 머리와 꼬리를 떼고 내장을 빼낸 뒤 소금에 절여서 보관한다. 소금에 절인 청어는 잘게 다진 양파나 오이피클(augurk)을 청어로 싸서 함께 먹는다.[8] 그리고 꼬리를 집어 올린 다음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젖혀 통채로 먹는 특이한 방식[9]이 보편적이다. 현대에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도 핫도그빵에 끼거나 썰어서 이쑤시개로 찍어서 먹는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통조림으로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대개 토마토 소스에 조린 것을 담아서 판다.

  • 일본에는 미가키 니싱, 또는 니싱미가키라고 하는 말린 청어가 있는데, 과메기와 달리 내장을 모두 손질하여 훈연 처리하여 북어처럼 바싹 말린다. 바싹 말린 것이기 때문에 물에 불려서 국물을 내서 같이 먹는다. 교토 지방에서 유명한데 교토 지방이 바다에서 멀기 때문에 해산물을 먹기 힘들어 자반고등어돔베기처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유행했다고 한다. 온모밀국수에 말린 청어를 통으로 얹은 니싱소바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대표적으로 초밥으로도 만들어 먹는데 알은 일반 영세 초밥집에서 판다. 오마카세 고급 스시야에서는 청어알보다 청어를 초절임 혹은 다시마절임으로 초밥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한편 교토 지역에서는 청어를 소바에 얹어 먹는 '니신소바'라는 음식이 존재한다. 청어를 달작지근하게 조려서 따뜻한 소바 국물에 그대로 넣는다고. 잔가시가 많은 청어라서 먹기 힘든 데다, 조린 생선을 소바에 고명으로 얹어 먹는 것에서 괴식의 느낌도 있지만, 입맛에 맞으면 의외로 맛있다.

  • 북유럽에서는 슈르스트뢰밍 외에 일반적으로 가시를 바른 뒤 식초에 절여서 피클처럼 만들어 먹는다. 이건 실(Sill, Sild)이라고 하는데 맛은 피클 비스무리하면서도 살짝 달달하고, 고소하면서도 생선 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좋다. 북미에서도 쉽게 구해 먹을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고등어 초밥이 먹고 싶은데 고등어 초절임을 구하기 마땅치 않을 때 대용으로 사용해 만들어 먹어도 좋다. 사실 위의 하링도 보통은 피클 형태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 편. 위키백과의 초절임 청어 항목

  • 미국 토착원주민 중에는 청어의 산란기 습성을 이용해 솔송나무가지를 물에 넣어서 청어알을 채집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청어가 아닌 청어 알을 먹기 위해 그물을 설치한다고도 한다.

  • 청어 새끼를 찜말림(니보시)해서 국물재료로 이용하는데, 맛이 개운한 멸치나 디포리와 달리 기름기 있는 진득한 맛이다. 솔치라고 부른다.

  • 러시아나 라트비아의 훈제 청어도 제법 잘 알려진 청어의 취식법이다. 한국의 외국인 대상 수입식품점에서 통조림 형태로 볼 수 있다.


6. 여담[편집]


  • 알래스카 근처의 한 청어 산란지는 산란철에 원양어선들이 어획그물(주로 설치형)을 치면, 위험을 느낀 청어들이 알과 정소를 뿌려대는데 청어의 정액 때문에 물 색깔이 희뿌옇게 변할 정도이다. 수정된 알들은 그물에 달라붙으면서 어장이 망가지기도 하는데, 문제는 수정된 알은 끈기가 엄청 강해서[10] 그물에서 제거하기 매우 힘들다고.

  • EBS 프로그램 극한직업에 따르면 이 청어도 회가 맛있긴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전어회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고 덜 알려져서 판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에게는 전어에 비하면 찬밥 대접을 받는다.

  • 낚시용 미끼로 사용되기도 한다.



  • 논쟁에서 논점에 맞지 않는 쓰잘데기 없는 말로 논점일탈을 일으키는 것을 훈제 청어 기법이라고 한다.

  • 탈무드에도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차를 타고 가던 한 사람이 랍비를 만났다. 그는 랍비에게 그들의 지혜가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말린 청어를 머리까지(혹은 통째로) 먹으면 된다고 하며, 자신에게 청어 한 마리당 10달러에 사 보지 않겠느냐고 한다.[11] 그 사람은 랍비에게 청어를 사 머리까지 꾸역꾸역 먹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해보니 다음 역에서 잠시 내려 10달러로 청어 다섯 마리를 살 수 있었고, 당신이 사기를 쳤다'고 하자, 랍비는 '그것 봐라, 벌써 지혜로워지지 않았느냐.'고 응수했다. 일부 판본에서는 랍비 대신 장사꾼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 'ㅅ' 자가 여러개 겹쳐있는 듯한 형태를 헤링본(herringbone)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청어 가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로 직물이나 벽돌, 타일의 쌓는 방식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

  • 디시인사이드국내야구 갤러리나 일부 보수 성향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전라권 지역 차별 표현홍어드립에서 따와서 정치적 보수주의 성향을 보이는 전라도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좌파의 대표적 상징 색깔이 빨간색(홍색)이기 때문에 우파 보수의 상징 색깔인 파란색(청색)으로 바꾼 것.[12]

  • 마다가스카의 펭귄에서 먼 옛날 침몰한 배에 장기 숙성된 청어를 발견한 펭귄들이 리코 빼고 다 먹고 맛탱이가 훼까닥 가버린 에피소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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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래 과메기는 청어와 꽁치 둘 다 사용하여 만드는 것이었다. 과메기 참조.[2] 청어의 순우리말인 비웃을 음차한 것(또는 비유어가 비웃이 된 것)이다. 절인 청어는 자반비웃아라 한다.[3] 또한 전쟁 중엔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동물성단백질 섭취가 필수였을 테니, 이를 그나마 구하기 쉬운 생선으로 해결했을 것이다.[4] 맛의 달인에서는 청어-고등어-꽁치-정어리 순으로 순환이 일어난다는 설을 제시했다.[5] 출처 "이야기로 읽은 부의 세계사".[6] 청어의 이리는 진미로 인정받는 고급부위다.[7] 영어의 herring이나 표준독일어의 Hering이나 네덜란드어의 Haring이나 동일한 어원의 게르만어계 어휘다.[8] 독일에서도 이렇게 먹는다. '롤몹스(Rollmops)'라고 불리며, 술을 마시고 난 뒤 해장 겸 아침식사(Katerfrühstück)로 즐겨 먹는다.[9] 꼬마펭귄 핑구에서 핑구가 생선을 먹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10] 산란지인 해초에 잘 붙게하기 위함이다.[11] 머리만 남은 것에 입맛 다시는 것을 본 랍비가 머리 하나당 온전한 청어 한마리 값으로 팔았다는 내용도 있다.[12] 당연히 단순히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성향을 보이는 이들에게 사용되지는 않고 주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