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재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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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2009년 4월 29일과 10월 28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다.
2. 상반기 (2009년 4월 29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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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평가대로 한나라당이 대패한다. 또 이 날은 노무현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검찰 출두 하루 전에 치러진 선거여서 한나라당이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1] 한 진보신당은 이 선거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고, 민주노동당은 호남에서 약진했다. 전북에서는 무소속이 초강세를 보였다.
특히 재보궐선거 지역구 중 하나였던 경상북도 경주시가 단연 주목을 받았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당시 여권 실세였던 정종복이 다시 이 지역구에 출마했고, 친박 성향 퇴역장군 정수성이 맞붙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치열했던 이명박 정부 초기 친이 vs 친박 세력 대결의 핵심 지역구라는 말씀. 당시 한나라당은 실세인 정종복을 밀어주기 위해 하루가 마다하고 경주로 내려와 유세를 하였으나, 결국은 무소속 친박 성향 정수성에게 떡실신. 물론 이후에도 정종복은 매년 총선마다 같은 지역구에 꼬박꼬박 출마했지만[2] , 번번이 2위로 물만 먹고 있다.
민주당도 상황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정세균 지도부가 신건과 정동영을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반발한 정동영과 신건이 탈당했고, 출마하여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나마 선거구 1개를 한나라당에게서 탈환했으니, 손해는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묻히긴 했으나,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충청남도와 경상북도의 교육감 재보궐선거도 실시되었다.
참고로, 투표율은 34.5%가 나왔다.
2.1. 결과[편집]
2.1.1. 국회의원[편집]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 위치한 지역구라 자연스럽게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였다. 박희태, 홍준표, 정몽준 등 여당 지도부가 전폭적인 선거 운동을 한 결과는 참패.
지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GM대우 문제가 선거 이슈로 부각되는가 싶었는데, 민주당에서 재빨리 'MB정권 심판'으로 프레임 전환에 성공했다. 민노당도 따로 후보를 내 야권 단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민주당 캠프에서는 압승은 못하더라도 500여표차 내 신승을 점쳤으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10%p차 대승이었다.
이후 홍영표는 승승장구하여 여당 원내대표직까지 오르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승해서 2020년 현재 4선에 달성하였다.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라는 감성마케팅으로 요약되는 선거. 왕년의 대권후보로 18대 총선 동작을 낙선 이후 향후 정치 생명까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09년 재보궐은 이후 10년에 이르는 정동영의 후반부 정치인생을 시작한 선거였다. 비록 땅 집고 헤엄치며 당선 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다소 낯간지러운 복귀였지만, 그래도 전북(특히 전주) 민심은 아직 정동영에게 있다는 건 충분히 확인시켜줬으며, 신건과의 무소속 연대로 세 과시에 완벽히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로 정동영은 두 차례의 서울 출마에서 모두 낙선하고 도로 전주로 돌아오는, 지역 할거 정치인으로서 그치게 되는 한계를 보여주는 선거이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으로 나온 김근식 후보는 13%에도 못미치는, 한나라당과도 큰 차이가 없는 처참한 득표를 하게 된다. 이후 김근식 교수는 10여년 간 공천 경선에서도 밀려 선거에도 나오지 못했으며(...) 특히 국민의당으로 탈당했을 때는 같은 지역구에서 경선도 못해보고 정동영 지지선언을 하는(...) 수모를 겪는다.[3] 결국 미래통합당에 입당, 21대 총선에서 송파병에 출마했으나 또 낙선하였다.
18대 총선에 이은 친이와 친박의 대리전 2라운드에서 친박이 또 웃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단일화가 이뤄졌고, 결국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고로 공교롭게도 조승수 후보가 첫 당선되었을 땐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
2.1.2. 기초자치단체장[편집]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의 진보 야3당이 무소속 최준열 후보를 지지하면서 한나라 vs 민주 vs 진보단일 3자구도로 치러졌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도 "지역사회에서 의료인으로 봉사하며 시민운동에도 앞장선 최 후보를 지지하게 돼 대단히 영광"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진보 후보가 2명이 되어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승리할 수도 있었지만 결과는 민주당 김윤식 후보의 신승.
2.1.3. 광역의원[편집]
2.1.4. 기초의원[편집]
2.1.5. 교육감[편집]
3. 하반기 (2009년 10월 28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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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39%)
5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거였지만, 이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였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참고로 지방자치단체 관련 선거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실시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5개 중 2개를 건졌지만 경합지에서는 모두 패하고 말았다.
당시 칩거 중이던 손학규 전 대표는 자숙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이유로 수원시 장안에 자신 대신 이찬열 후보를 밀었고, 결국 성공하면서 정계에 복귀한다. 안산시 상록 을에서는 김영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양산시를 양보받는 대신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임종인 후보에게 후보를 단일화하라는 시민단체와 군소 야당들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서 경남 양산시에서 송인배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해 석패하는 결과를 겪었다는 분석이 많다. 여당 텃밭인 강릉시를 빼놓고는 전승할 수 있었음에도 박희태 전 대표의 복귀를 불러왔다는 것은 뼈아픈 실책으로 여겨졌다.[6][7] 결국 박희태 전 대표는 이를 계기로 국회의장이 되어 돌아온다.[8]
강원 강릉시에서 창조한국당 후보가 출마했지만 무소속 후보들에게조차 밀려 4위로 낙선했다.
3.1. 선거결과[편집]
이 선거에서 당선된 이찬열 의원은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3선까지 했으나, 2017년 자신의 계파 수장인 손학규를 따라 국민의당에 입당했고, 이후 바른미래당을 거쳐 자신의 친정인 미래통합당으로 돌아갔다. 그와 별개로 이 때부터 장안구는 수원시장, 국회의원, 경기도지사,대통령 등 모든 선거에서 단 한번도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게 되었다.
민주당에서 공천된 구 민주계 출신 김영환 후보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열린우리당 출신이자 진보 성향인 임종인 후보가 동시에 출마하면서 야권 표 분산이 예상되었으나, 결과는 김영환 후보의 낙승으로 나타났다. 김영환은 이후 국민의당-바른미래당을 거쳐 2020년 미래통합당에 입당했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권성동 의원은 이후 내리 4선을 했고, 2022년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까지 올랐다.
한나라당에서는 경대수 후보가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경회 전 진천군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보수표가 분산되어[10][11] 민주당 정범구 후보가 5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 낙선한 경대수 후보는 훗날 19대, 20대 총선에서 해당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다.
한나라당에서는 박희태 전 대표를 공천했다. 이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보수계 후보들이 무소속으로 나와 표 분산이 예상되었지만 결국 민주당 송인배 후보를 약 4% 차이로 꺾고 당선됐고,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까지 오른다.[12]
[1] 당시에는 득표율 2%에 미달하면 정당이 해산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진보신당은 2%를 넘겨 해산을 간신히 면했는데, 봉쇄조항 3%에 약간 못 미치는 2.9%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2] 단,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출마는 했지만, 중도에 사퇴하였다.[3] 상대 민주당 김성주 후보가 막강한 상황에서 반문 단일화로서는 상징적이긴 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후 바른미래당을 창당을 거치며 국민의당은 사실상 분당되면서...[4]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5]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와 단일화[6] 여담으로 송인배는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으로 경남 양산(20대 총선에서는 양산시 선거구가 인구 상한선을 넘겨 갑과 을로 분구되었고, 송인배는 양산 갑에 출마했다)에 출마했으나, 두 번 모두 새누리당 윤영석 후보에게 5%p 미만 차로 낙선하면서(...) 10년 넘게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배지를 달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대 총선 당시 양산시 을 선거구에 같은 당 후보로 나온 서형수는 출구조사까지 뒤집으며 한 번에 당선되었다.[7] 그나마 2017년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되었다는 게 위안. 참고로 송인배는 친노-친문 계파로 분류된다. 여담으로 문 대통령 역시 경남 양산에 사저가 있으며, 문 대통령 부친의 묘소 역시 양산에 있다.[8] 그러나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퇴했으며, 나중에는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당에서 제명되었다.[9] 파장동, 율천동, 송죽동, 영화동, 연무동,
정자1동, 정자2동, 정자3동, 조원1동, 조원2동[10] 경대수 후보가 괴산군 출신인 데 반해 김경회 후보는 진천군 출신이라는 것, 거기에 괴산군과 증평군 간 지역갈등 역시 표가 갈리는 원인이었다.[11] 소지역주의로 괴산군은 경대수, 진천군은 김경회, 음성군은 정범구를 밀어주었는데, 괴산군과 갈등이 있는 증평군의 유권자들이 괴산군 출신인 경대수 뿐만 아니라 경대수와 같은 정당 출신인 김경회도 거부하면서 그 표를 민주당의 정범구가 받았다. [12] 물론 이후 손녀딸 같아서 그랬다라는 최후의 명언과 함께 금지어가 되면서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박탈당했다.
정자1동, 정자2동, 정자3동, 조원1동, 조원2동[10] 경대수 후보가 괴산군 출신인 데 반해 김경회 후보는 진천군 출신이라는 것, 거기에 괴산군과 증평군 간 지역갈등 역시 표가 갈리는 원인이었다.[11] 소지역주의로 괴산군은 경대수, 진천군은 김경회, 음성군은 정범구를 밀어주었는데, 괴산군과 갈등이 있는 증평군의 유권자들이 괴산군 출신인 경대수 뿐만 아니라 경대수와 같은 정당 출신인 김경회도 거부하면서 그 표를 민주당의 정범구가 받았다. [12] 물론 이후 손녀딸 같아서 그랬다라는 최후의 명언과 함께 금지어가 되면서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