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각국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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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2.1. 정치 분야
3.2.1.1. 1960년대 이전
3.2.1.2. 2000년대~ 2010년대 후반
3.2.1.3. 2020년대 이후
3.2.2. 종교 극단주의
3.2.3. 문화적 순수성 중시
3.2.3.1. 범민족주의(민족 우월주의, 환빠)
3.4. 그 외
6.4. 그 외
6.4.1. 러시아와의 관계
6.4.2. 성소수자 관련
7.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각 지역과 국가에서 나타나는 극우파들의 사례를 언급한다. 대륙-국가 순으로 가나다순으로 정렬한다.


2. 아메리카[편집]



2.1. 미국[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KKK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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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워싱턴 D.C., KKK단(Ku Klux Klan)

미국의 극우 인사는 대체로 고보수주의자들로 분류된다.[1] 모든 고보수주의자가 극우는 아니지만, 21세기 미국에서 고보수주의자들은 보통 우익~극우로 분류된다. 이러한 미국의 우익~극우 정치인들은 중도우파~우익에 가까운 신보수주의자들과 달리 국익우선주의를 중시하며, 외교적 개입주의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기 때문에 타국과의 전쟁 등 국제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에 부정적이다.[2]

티 파티를 극우로 보는 시각도 있다. 티 파티가 이론상으론 자유지상주의를 표방하면서 보수주의, 특히 네오콘과 연대하고 미국내 시민권 침해, 예컨대 프리즘 사태 같은 경우에는 미친듯이 물어뜯는데 반해 미국의 패권주의는 별 문제삼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자유지상주의와 거리가 먼 기독교 우파 성향을 띄는 등 그들 스스로도 모순적인 부분이 많아 극우파라고 칭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외 러시 림보, 빌 오라일리 같은 극우 성향의 언론인들이 있다. 2016년 시점으로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인물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 특히 그의 내셔널리즘적인 발언이 극우파와 접점이 많다. 또한 그의 임기 내에 극우 단체의 동태를 감시하는 국토안보부의 부서의 규모가 줄어들었고#, 극우 단체의 과격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지적하지 않아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대안 우파, 고보수주의[3] 문서에도 나온다.

한편 한국에서 소위 전쟁광이라고 불리는 네오콘신보수주의 매파들은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극우로 분류되지 않는다. 보통 미국 정치에서는 한국에서 둔감한 문제인 반이민 지지나, 인종차별,[4] 아니면 동성애 극단적 혐오[5] 등 극단적인 문화적 보수주의 여부로 극우와 비극우로 나누지, 단순한 적성국가에 대한 매파적, 호전적 태도만으로 극우와 비극우를 나누지는 않는다. 단순히 매파적 외교관으로 극우와 비극우를 나누면 고립주의적인 고보수주의자들보다 힐러리 클린턴 같은 자유주의적 매파들이 더 극우라는 결론이 나온다.[6]

미국에서 우익~극우 포지션인 포퓰리스트적 고보수주의자들과 중도우파~우익 포지션인 엘리티스트적 신보수주의자들은 문화적 자유주의에 대한 유화적/배타적 태도, 글로벌리즘에 대한 수용적/배타적 태도, 적성국가에 대한 군사행동 옹호/회의 등 거의 모든 이슈에서 완전히 상극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서로를 가짜 보수라고 칭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선 아예 개별문서에서 언급될 정도이다.


2.2. 캐나다[편집]


캐나다의 주류 극우 정당으로는 대안우파 온건파(alt-lite)들과 접점이 있다고 평가받는 캐나다 인민당[7][8]이 있다. 이 당은 캐나다의 보수주의 문화비평가인 조던 피터슨의 영향을 받아 공식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성소수자 관련 성평등 법안인 Bill C-16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다만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일반적인 극우 정당들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다.

대안우파 강경파(alt-right) 성향의 정당으로는 국민당(Canadian Nationalist Party)이 있다. 이 당은 버지니아 샬러츠빌 폭동 당사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캐나다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리버럴한 정서가 강해 우파~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아직까지는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의 극우 세력은 철저히 아웃사이더인데다가 캐나다 극우가 미국 극우세력의 담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캐나다인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조차 극우에게 동조하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9] 또한 캐나다인들의 정서가 타 지역과 비교해봐도 리버럴하며 사회적으로도 다문화주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차별과 배타적 정서를 이용하는 극우 세력의 성장을 방해하는 한 요소. 인민당이 최근 총선에서 겨우 1.6%에 그치며 원외정당이 될 정도로 극우문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 사실, 극우의 특성상, 다른 극우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극우가 잡는 순간, 바로 미국에게 북벌을 당할 수 있다.


3. 아시아, 중동[편집]



3.1. 대만[편집]


대만, 즉 중화민국에도 극우가 있다. 이들은 본토 수복을 주장하며 철저하게 중화사상에 입각한다. 유대인이 싫다고 나치 숭배하는 대만인들도 있다. 대만극우들중국 공산당 정권은 물론 일본도 싫어하는데 자신들을 일본 제국과 맞서싸운 국민정부의 후손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만인친일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그건 본성인들에 한해서이고 중국 국민당을 지지하는 외성인들은 일본에 관심이 없거나 반일 정서를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범록연맹은 극우로 볼 수 없다. 여긴 우파가 중화 민족주의, 친중화민국, 반공적이며 양안통일을 지향하고 좌파가 타이완 민족주의적이고 독립을 지향한다. 타이완 내 극우 정당으로는 중화통일촉진당을 꼽을 수 있다.[10] 보수의 정의가 현상 유지를 포함한다는 점과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과 전면전이 벌어져 나라가 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3.2. 한국[편집]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적 극단성[11]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쉽게 '극우'로 불리는 어버이연합이나 태극기 집회 등의 수구 보수 세력은, 민족이나 인종적 극단성을 극우의 척도로 보는 전통적 좌우 스펙트럼의 개념 하에서 '극우'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다. 이는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쉽을 숭배하고, 폭력성이나 배타주의를 보인다는 유사성을 취할지언정, 극단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배타성이라는 기존 극우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다.[12]

이는 한국의 민족의식이 너무 공고하기 때문이다.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다 보니 유럽이나 미국만큼 인종 문제를 겪을 일이 적고,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제 강점 등의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민족 개념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정서로 작용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 중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으로, 주로 자본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 통치를 당하면서 이들에게 대항하는 이념으로 피식민 국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저항적 민족주의)가 주목을 받았다.[13] 또한 이후의 역사 속에서, 우익은 민족주의를 국가의 정통성 부여 및 국민의 결속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한편, 좌익은 독재를 묵인한 미국에 대한 반대 논리 및 친북 유화적인 정치관의 입장에서 민족과 자주를 강조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미국식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에서 멀어진 우파와는 달리 좌파 계열의 민족주의가 오히려 훨씬 강고해졌다. 통일에 대해 좌파가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가 단일 민족국가에 대한 집착이다.

민족주의를 대신해 한국의 극우를 떠받치는 기둥은 극단적 반공주의와 극단적 기독교 근본주의이다. 한반도가 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극우의 결집은 민족주의적 담론 대신 반공주의적 담론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통치의 정당성을 위해 국가에 의해 조장되기도 하면서 현재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과거 기독교세가 강했던 평안도 지역의 기독교 세력이 전쟁으로 인해 남하하였고, 북한의 종교 탄압이 문제가 되면서 보수 기독교 또한 자연스럽게 반공주의에 힘을 실었으며, 이것이 극단적으로 변모하면서 극우로 발전했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현재까지도 한 쪽에서는 반공주의에 기반한 극단성과 혐오에 기반한 배타성, 군대식 전체주의 문화와 민주적 질서에 대한 불신/불복 등을 이유로 이들을 '극우'로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민족주의와 파시즘에 입각한 엄밀한 의미를 들며 극우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다. 이는 '극우'의 뜻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

한편 한국의 극우가 가진 성향은 선진국에서 등장하는 극우가 아니라 제 3세계의 극우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선진국 내지는 열강에 대한 추앙을 하고 있으며, 자국의 이득보단 좋게 말해선 자국의 혁파[14]. 나쁘게 말하자면 국가의 파괴[15]를 추구하는 성향. 그리고 극우사상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아직 한국이 제 3세계에 비슷한 수준의 경제였던 시기에 자란 사람들이었단 점이다. 이게 제 3세계에선 열강에 기댄 쿠데타로 실현되지만, 한국의 경우엔 이미 국가가 굳건한 상황이기에 쿠데타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현 대한민국의 극우 사상 중 한 축인 뉴라이트가 극좌인 NL에서 시작됐단 점을 감안하면 서로 비슷한 모습이 보이는건 이상하지 않다.

3.2.1. 정치 분야[편집]


해방 후 한반도의 남북 분단으로 체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대한민국은 생존과 결집을 위해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걸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반공주의는 민족의 순수성과 연결되고,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등[16]의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극단적 우파의 결집 또한 반공주의에 입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럽 극우가 과거의 파시즘 전통에 입각해 이민자와 외국인을 위기이자 위협로 상정해 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극단적 행동을 벌인다면, 한국의 극우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반공주의에 입각해 북한의 공산주의와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지목되)는 세력을 위협 요소로 상정해 극단적 행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는 아래의 극우 예시로 올라와 있는 백의사서북청년회 등이 반공을 기치로 그 극단성을 드러냈다는 것에서부터, 오늘날 극우로 분류되는 집단이 심심치 않게 상대 진영을 '빨갱이'나 '종북 좌파', '공산주의자' 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까지의 맥락에 통한다. 이들이 흔히 '북침'이나 '북폭'을 주장하는 것 역시 공산주의를 타도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17]에 기반해 한민족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로서 인종적 순수성을 대체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이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강한 향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이들이 정치적/경제적 권능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민족정기를 공산주의의 마수로부터 지켜낸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배타주의 역시 다른 국가의 극우와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슬람이나 중국, 러시아 등 이념 지형의 바깥에 위치해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국가에 대해서는 강한 배타성을 보이나, 한국과 동일한 이념 진영에 위치하고 외교적으로도 큰 연관이 있는 미국일본, 유럽에 대해서는 이러한 배타성이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미국과 관련 없는 사항으로 여는 극우 단체의 시위에 성조기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 또한 기존 극우 개념에서의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반공주의가 대체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성향의 경우 특히 박정희식의 국가 경영에 대한 강한 향수와 연결되는데,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를 토대로 한 강한 반공주의 성향 및 통치에 대한 선호, 경제적으로는 국가주도형 경제개발독재, 즉 정부 우선주의나 사회주의형 계획경제[18]를 선호하는 경향에서 엿볼 수 있다.[19]

물론 단순히 공산주의에 반대한다고 해서 무조건 극우라고 볼 수는 없다. 앞서 말하였듯 한국이 반공주의를 기치로 삼아온 것은, 유럽 극우가 지향하는 민족 개념의 모호함과는 달리 북한이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해온 이상 실존적인 이유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다만 극우에 속하는 이들은 단순히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넘어, 반공주의에 기반해 국내에서도 극단적 배타성을 드러내고, 비뚤어진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민주적 질서에 대한 불신과 반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위의 설명 또한 단순히 유럽의 극우가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배타적 극단성이 대한민국에서는 권위주의적 반공주의에 기반한 극단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설명에 불과하다.


3.2.1.1. 1960년대 이전[편집]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극우'로 지목할 수 있는 세력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45년의 해방정국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이루어졌고, 반공주의를 기치로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해 반대 진영 정치인 및 정치세력에 대해 백색테러를 가하는 것이 활동의 주였으며, 일부는 파시즘과의 연계성도 보였다.[20] 이 시기 극우로 지목되는 단체로는 백의사서북청년단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월남한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후술할 기독교 우파와도 접점이 존재한다.

6.25 이후로는 주로 이승만 정부나 자유당을 옹호하면서 진보계열 정치인을 백색테러한 정치깡패 또한 극우로 지목된다. 다만 이들의 극우성에 대해서는 이념적인 측면보다는 독재적 권력의 옹호를 위해 폭력을 동원함으로서 반동적인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이 주목된다. 이들은 4.19 혁명으로 지지기반을 잃고 5.16 군사혁명으로 숙청되면서 세력을 잃었다. 이 이후 뚜렷하게 극우로 지목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후에도 공권력이나 사조직 등을 동원해 물리력을 행사함으로서 독재적 권력을 옹호한 사람들이 존재했으나, 이 시기의 극우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이미 극우의 조건으로서 기능하는 민족주의나 반공주의가 일부의 생존논리나 대항논리를 넘어선 국가적 헤게모니로 대한민국 안에서 자리잡았기 때문에, 극우가 발호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념 노선에서 이전과 거의 동일하였던 신군부 시기를 넘어, 민주화의 결실을 이룬 문민정부는 물론, 어느 정도 기존 보수 세력에 유화적이었던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유지되었다.


3.2.1.2. 2000년대~ 2010년대 후반[편집]

그러나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이들에 충격이 가해짐은 물론, 민주당계 정당이 과거 보수 세력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보수 세력 사이에 '여론전에 밀렸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이는 이전까지 투표로 이야기하던 보수 성향의 인물들이 사회 전반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극단적 우파의 결집 또한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 부류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로 불리는 이들로서, 반공주의와 군사정권 시기 이념에 대한 강한 향수를 지닌 이들을 중심으로, 햇볕정책 등의 대북 유화 정책이나 민주당계 정당의 정치 행위에 대해 '빨갱이'나 '종북'이라 지칭하고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민주당계 정당의 정치 활동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들이다. 2000년대 이전부터도 독립신문이나 국민행동본부처럼 여론전과 직접행동을 동원한 활동은 어느 정도 존재해 왔으나, 이러한 극우 활동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에 이른바 '가스통 할배'로 지칭되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창설되고, 이들에 의한 폭력적 시위가 부각되면서부터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성향은 철저하게 반북 반공주의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삼성과 전경련이 이들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정권을 비호하기 위한 단체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 또한 존재한다.

둘째 부류는 좌파 운동권 중 90년대 이후 동구권의 멸망을 바라보며 보수로 전향하였거나, 민주당계 반공주의자 중 주류 정치에 편입되지 못한 불만을 가지고 전향하면서, 전향자로서의 입장을 반전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논리를 동원하면서 생겨난, 이른바 뉴라이트가 극단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전체주의적 성향과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이념의 토대로 하면서도, 자신이 떠나온 좌파 세력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인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엿보이는데, 이는 친대기업적 관치경제를 옹호하는 경제 분야에서의 극단적 자유주의,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권위주의 군사정권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까지도 찬양하는 극단성,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옹호,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이를 박정희와 연결지으면서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조롱하는 것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이 모든 뉴라이트 인사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사상이 극단화되면서 이승만-박정희가 내세웠던 반공주의와도 연결되었다.

이들 모두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이유로 그 힘을 얻은 것은 확실하다. 노무현 정부 전후로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 중 우파 또는 반공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음은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시위의 영향은 그 반대급부로 극우의 목소리 또한 커지는 효과를 낳았고, 이명박 정권 또한 여론전을 위해 이들을 활용하게 되며 조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시기의 뉴라이트 운동은 이들을 하나로 합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이 사상적 측면에서 완전히 합쳐지는 계기가 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올드 라이트야 박정희에 대한 강한 향수가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박근혜에 대한 맹렬한 지지를 쏟을 수 있었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기 형성된 뉴라이트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것 또한 박근혜였다. 이는 같은 보수라는 점을 떠나서, 뉴라이트가 박정희 시기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올드라이트의 반공주의적 성향과 뉴라이트의 유물론적 사고에 기반한 경제적 성과지상주의, 좌파적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이 결합되면서, 대한민국의 극우는 세계 다른 나라의 극우들이 갖지 않는, 한국 극우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된다. 이는 곧, 자국가-자민족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혐한에 가까울 정도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조롱하고, 우방으로 여기는 일본에 대해서는 긍정을 넘어서 아예 일본 극우가 하는 주장과 동일한 주장까지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장경제 지향성과 외교적 정치지향성을 넘어, 이들이 자신들의 순수성을 '자유주의 진영'과 '시장경제 체제'에서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21]

더욱이 한국 보수가 박근혜의 탄핵이라는 사건으로 크게 휘청이면서 이들의 위기의식은 더욱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탄핵이 진행되는 시점부터 친박 세력을 중심으로 '태극기 집회'가 형성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극우는 '탄핵무효'를 기치로 극도로 결집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탄핵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빨갱이' 세력의 준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또한 기존 언론에서 연이어 터져나오는 뉴스들이나 사법부의 법적 판단, 선거 결과 등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극단적 음모론 주장들을 늘어놓는가 하면, 쿠데타 등의 극단적 방법을 호소하거나 아예 직접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선포된 2017년 3월에 일어난 이들의 폭력성은 이들이 인지부조화적 상황 앞에서 그 극단성을 유감없이 표출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이후 타격을 입어 쪼개진 보수 세력 중, 친박계 세력이 이들을 인수하여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는가 했지만, 이미 탄핵이란 사건으로 인해 친박 세력은 극우로서의 구심점마저 잃어가고 있으며, 21대 총선에서 단 한개의 의석조차 얻지 못하면서 정치 세력으로서는 와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기독교 극우세력과 더불어 반공주의적 성향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일정 정도의 세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와 태극기 집회, 정치 유튜버의 형태로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시기의 극우로 지목되는 일베저장소의 경우는 정치 성향으로서의 극우로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에 속한다. 이들이 비록 기존 극우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기는 하지만 그 동력은 어떠한 정치적 지향성에 있다기보다 심리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이들의 주장 또한 혐오라기보다는 냉소에 가까우며[22] 이들이 추구하는 것 또한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사상적 순수성보다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조롱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논문에서도 극우, 대안 우파 인터넷 커뮤니티[23]라고 언급된 바 있기에 일반적으로 한국 극우의 일부분이라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24]


3.2.1.3. 2020년대 이후[편집]

2020년대 이후 한국의 극우진영은 최소 50대 이상의 중노년층으로 구성된 기존의 태극기 부대 극우층과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대안 우파로 분화되었다. 군사정권을 비롯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남아있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다문화주의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심이 결집의 동력원이다. 새로이 등장한 한국형 대안 우파는 오프라인 시위보다는 인터넷으로 혐오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유럽, 북미보단 일본의 넷우익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2.2. 종교 극단주의[편집]



3.2.2.1. 극단적 기독교 우파[편집]

대한민국의 기독교 극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기독교가 보수성향을 추구하게 된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수 우파와 기독교의 연결은 근현대 대한민국 역사를 볼 때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한국 개신교인 대부분은 신학적 보수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가 되었다. 또한 기독교가 개화사상에도 상호 영향을 끼쳤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개화파가 대한민국 보수주의의 원류로 지목되고 있으니,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에도 뿌리부터 상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거기에,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하던 기독교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직접적인 탄압을 받고 월남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에 대한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한미동맹을 종교적으로까지 확장, 대한민국을 개신교 국가를 건설한다는 이른바 기독교입국론까지 주장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음은 물론, 박정희 정부에서도 기독교와 정부가 반공이라는 접점 하에 상호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잔재로 인해 기독교 주류는 강한 보수성을 지녔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1980년대 이전까지, 기독교는 성속이원론적 입장에서 정교분리를 받아들였고, 급성장 속에서 이렇다 할 정치적 메시지를 내비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80년대까지는 진보적인 성향의 기독교인들의 민주화 활동으로 인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입장이었다.

이러한 구분이 사라지고, 보수 기독교가 기독교의 주류로서 메시지를 내게 된 것은 1989년 한기총의 등장으로 보수 기독교가 결집한 시점부터이고, 이것이 행동주의로 옮겨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특히 2003년 3월의 구국기도회는, 본인들은 철저하게 '기도회' 형식이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면면을 볼 때 철저하게 보수적인 입장이었다.[25] 이 이후 보수 세력 내에서 힘을 얻은 기독교는 근본주의 신학에 입각해 반공주의와 반이슬람주의, 동성애 혐오 등을 주장하는 시민 세력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장로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더욱 강화된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십알단 등의, 교회를 기반으로 한 극우적 개신교 활동단체들이 2010년대를 전후해 다수 등장했으며, 이를 계기로 기독교 우파는 훨씬 더 공격적인 양상으로 발전했다.[26]

이들의 근본주의적 공격성은 종교의 가치를 넘어서 정교분리를 부정하고 기독교의 가치를 재해석하여 사회 전반에 강요하는 식의 정치 활동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건전한 우파의 가치를 넘어서고 공화주의,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반동주의적인 보수, 즉 극우적 형태를 띄고 있다.

박근혜 탄핵 전후로 이들은 구국기도회 등을 통해 태극기 집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활동했으며, 2019년 이후부터는 탄핵 이후 활동성이 크게 약화된 기존 아스팔트 극우를 대신하여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극우 정치집회의 주축으로 작용했다. 특히 정치목사 전광훈이 주도하는 사랑제일교회는 극심한 정치극단주의 + 제정일치 + 매우 극단적인 미빠 성향을 띄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만 보수진영 내에서 기독교가 어느 정도의 세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극우 기독교 세력 자체가 헤게모니를 이끌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종교가 지배적 종교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상호간 견제에 의해 정교분리의 원칙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극우가 기독교와 연계된 반동성애, 반이슬람, 차별금지법 등의 사안에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배경으로만 일부 남아있을 뿐 독자적 정치세력화에는 오랫동안 실패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기독교 우파 세력이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건을 일으키면서 이들이 非기독교인과 온건한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3.2.3. 문화적 순수성 중시[편집]



3.2.3.1. 범민족주의(민족 우월주의, 환빠)[편집]

원래 전세계적으로 극우의 대표적인 정체성중 하나가 민족제일주의기 때문에 환빠성 극우정당도 당연히 있다. 실제로 여러 정당이 등록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다. 왜냐하면 환빠들은 우익 진영에서 별로 기를 못 쓰기 때문이다. 진영을 떠나서 일반인들은 억지스러운 환빠 사상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들은 제노포비아성 주장을 하지는 않지만 만주(간도), 연해주 등 고토 회복을 주장하고 역사 왜곡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 이들이 극우의 실세로 등극한다면 파시스트 양상을 띌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장 민족주의적 사회분위기가 강력했던 1980년대에도 이들은 주류가 아니었으며, 세대가 내려갈수록 탈민족주의화가 이루어지는 현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실세가 되기는 어렵다.


3.2.3.2. 인종국민주의, 반이민, 다문화 반대운동[편집]

인종국민주의의 경우 다문화 반대운동과 달리 인종이 같은 동북아시아인과의 혼혈에는 관용적이고, 그 외의 혼혈을 적대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무슬림 난민, 아프리카 난민에 적대시한다는 점은 다문화 반대운동과 인종국민주의가 동일하다.

경제 위기와 각박해진 사회 민심을 틈타 오프라인에서도 점점 목소리를 드높이기 시작한 다문화 반대 움직임도 과격할 경우 극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2013년엔 제노포비아 성향의 다문화 반대 운동단체에서 '국제녹색당'이라는 이름의 군소 정당을 인수하여 민족주의에 기반한 다문화 반대 정당으로 재편하려는 소동도 벌어졌다.[27]

그리고 이것이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당시 예멘인들의 집단적인 난민 신청으로 그 이전까지 먼 유럽의 일로 여겨졌던 난민 이슈가 한국 사회의 논란으로 대두되었으며, 전 세계 20대 극우화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난민공포증을 이용하여 집권하려는 집단도 늘어나고 있다.


3.3. 일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의 우경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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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일본 혐한 시위

일본의 극우 세력은 21세기 들어 상당히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이전까지는 이슬람 국가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들 중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극우세력이 힘을 쓰는 국가로 여겨져왔다.[28] 특히나 일본의 극우 세력의 특징은 대한민국을 매우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며, 극단적인 사례로는 미국까지 배척하는 내셔널리즘을 보이는 등, 외교적으로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3.4. 그 외[편집]


유럽, 대만, 대한민국, 일본 등 서방 국가들의 극우를 제외하고도 아시아의 반서방 국가들 중에서도 극우 성향을 띤 집단이 늘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중국의 분청들[29]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슬람 근본주의 수출로 극우적인 무슬림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은 극우파들이 집권하여 반서방, 반시오니즘, 반공주의, 반기독교, 안티페미니즘, 반LGBT를 내세운 적이 있었고 이집트,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는 다른 대(大)중동 국가들보다 극우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30]

이들은 자유,평등,박애가 반이슬람적이고 무슬림을 타락시킨다는 사이드 쿠틉의 이론을 지지하고 샤리아를 신이 내린 율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를 우상 숭배 종교나 사악한 서양종교로 간주하여 대(大)중동에서 토착적으로 존재했던 오리엔탈 정교회, 동방 정교회까지 테러하며 유대교이스라엘, 시오니즘과 연관지어 타파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유럽의 극우파는 매우 사이가 안 좋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인 사회보수주의[31], 종교적 우파 언행한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닮았다. 최근 난민사태나 테러 등으로 서로 적대적 공생을 한다.

4. 아프리카[편집]



4.1. 나미비아[편집]


과거 이웃의 아프리카너와 비슷한 소수 나미비아 백인들의 극우정당 Action Christian National도 있었지만 영향력을 잃었다. 나미비아 백인들은 일부 우파 정당에서 활동하는 정도인데 이는 나미비아의 백인 비율이 남아공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현재 나미비아의 극우정당은 흑인들이 주도한다. 오순절교회에 기반한 기독민주의 목소리(Christian Democratic Voice) 같은 극우 정당이 있다.


4.2.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남아공에선 과거 집권세력인 아프리카너를 기반으로 극우정당이 일부 있으나 원내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크진 않은 편이다.


4.3. 르완다[편집]


1975년부터 1994년까지 집권하며 르완다 학살을 일으킨 국민개발혁명운동(Mouvement révolutionaire National pour le développement)이 후투 극우주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4.4. 적도 기니[편집]


적도 기니의 집권 여당인 민주당(적도기니)은 극우주의 정당으로 간주된다.


5. 오세아니아[편집]



5.1. 오스트레일리아(호주)[편집]


극우 정당인 일국당[32]이 유명하다. 이민자 통제와 보호 무역을 내세우며, 90년대에도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의 노동당에 대한 배신감과 불만,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퀸즈랜드의 지방의회에서 11석을 차지한 전적이 있다.

한때는 내분과 당내 비리로 인해 위기를 겪었으나, 2014년 시드니 인질극 사태를 기회 삼아 극우 포퓰리즘 정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6. 유럽[편집]


유럽 극우파들은 타 지역과 비교했을때 보통 종교적 근본주의나 극단적 반공주의보다는 세속적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33] 물론 세속적 서양 극우파들도 기독교를 내세우는 경우도 많은데 대게 교리에 기반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아니라 세속적 기독교 정체성주의이다. 다만 동유럽 지역과 일부 서유럽, 남유럽 나라들도 예외로 종교적 근본주의와 민족주의가 합쳐진 혼종 극우도 존재한다.

또한 세계화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 철강 산업, 자동차 산업을 포함한 유럽의 제조업 쇠퇴가 모두 세계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부정적인데 이들은 영국처럼 자국도 유럽연합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슬람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며 특히 이슬람 난민 수용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이들 모두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6.1. 독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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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독일 총리로 권력을 잡을 당시의 아돌프 히틀러.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네오 나치 정당인 독일 민족민주당이 지역 정당으로 존재한다. 21세기 들어서 터키인 노동자 문제나 외국인들의 유입, 경제위기 등으로 청년실업이 늘어나자 다시금 극우 정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기존의 독일 정부는 이들을 무시하며 언급을 별로 하지 않았으나, 2010년대 들어 유럽 난민 사태가 심화되자 메르켈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직접 극우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등 독일 정계도 이를 국가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인식한다. 그리고 기존 독일의 우파 기민당, 진보 사민당 양당 구조 속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아 독일을 위한 대안이 이목을 끌고 있다.

다만 난민 수용 반대는 극우 정당들이 가장 격렬히 주장하는 것이지만, 그동안 좌파 정당의 지지층의 일부를 차지했던 저소득 노동자들도[34] 관대한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좌우 가릴 것 없이 첨예한 갈등 사안이다.


6.2. 이탈리아[편집]


전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는 최초의 파시즘이 탄생한 지역이다.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는 일본과 같이 파시즘 청산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부 우파 이탈리아인들은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2022년에는 국가 파시스트당의 직계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되었다.


6.3. 프랑스[편집]


과거에는 드레퓌스 사건이 있었다. 반유대주의적인 프랑스 우익들과 군부가 연합하여 명백한 조작이 분명한 드레퓌스 사건을 인정하지 않아 국론이 분열된 바 있다.

2차대전시기 필리프 페탱의 비시정부는 히틀러에게 항복하며 역시 마르크스주의자와 소비에트 추종 세력 척결을 구실로 애국주의를 기치로 파시스트 정부를 수립한 바가 있는데 이 시기 프랑스 극우들은 히틀러가 좌파 정부보다 낫다고 생각했다.[35] 2차 대전 이후엔 알제리의 독립을 용인할 수 없다는 군부와 우익들의 고집이 알제리 사태를 불러왔다. 물론 이때 피해가 커지기 전까지 여론은 이들에게 우호적이었는데 심지어 좌파 작가인 알베르 카뮈도 알제리 전쟁에 찬성했다.

2002년 프랑스 좌파의 분열로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수장 장 마리 르 펜이 대통령 결선투표에 오르자 극우를 제외한 모든 정치 성향의 투표자들이 우파 후보인 자크 시라크에게 몰표를 던져서 장 마리 르 펜이 프랑스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았다. 자크 시라크도 좌파들에겐 좋지 않은 정치인이지만 그래도 장 마리 르 펜보단 백배 나았기 때문이다.

다만 2010년대 들어서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 속에서 프랑스 경제가 악화되었고, 이러한 와중에 국민전선의 대표인 장 마리 르 펜의 딸 마린 르 펜이 반유대주의 등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철저하게 친서민을 표방하며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앞으로의 추이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이슬람-반이민주의를 표방하며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위를 거두었고, 2015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전선이 1차 선거에서 득표순위 제1당이 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2차 선거에선 참패했다.

프랑스 대선에서 마린 르 펜이 극우정당 대표로 15년만에 결선투표 진출에 성공했다. 대서양 건너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프랑스 대선 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2002년 아버지의 전례와 마찬가지로 극우파에 대한 비토 정서의 결집을 극복하지 못하여 르펜은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36]


6.4. 그 외[편집]



6.4.1.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유럽은 중도좌파 ~ 중도우파 세력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푸틴이 주도한 현 러시아 정권에 부정적인 성향[37]이 강한데 비해, 극우파들은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유럽회의주의와 맞물려 친러적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38] 물론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21세기 기준이다. 20세기엔 오히려 극우파들이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을 더 멸시했다. 20세기에는 권위주의적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소련이 극좌파의 대표 주자라서 극우파가 싫어했고[39] 21세기에는 푸틴의 러시아가 매우 강력한 교권주의에 기반한 사회보수주의 + 국민보수주의 성향이여서 유럽의 극우파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우크라이나, 발트 3국, 폴란드 같이 러시아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국가들의 극우파는 반러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유럽 극우는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에 더 비우호적이다.[40] 한마디로 유럽 극우 주류는 기본적으로 친러+반중 성향이며 미국에 대해서는 다소 애매하다.[41] 다만 최근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의 국제적 이미지가 나빠진 탓에 2022년에 들어서는 러시아하고 거리를 두거나 규탄하는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도 찾아보면 꽤 있는편이다.

다만 푸틴의 경우는 대외성향이 좌우로 구분되지는 않아서 유럽의 극우파들, 남미의 극좌파들, 중국공산당, 조선로동당, 중동의 시아 이슬람 극단주의 극우파, 시리아의 알아사드 등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반미, 반서방, 반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원한다.[42] 반대로 과거 유럽의 극좌파들은 적지 않게 소련을 추종했으나, 냉전이 끝난 현재는 사실상 극우로 바뀐 러시아는 물론이고 비슷한 문제를 계승한 중공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가 아닌 급진적 좌익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지닌 아나키즘 혹은 좌파공산주의나, 스탈린주의에 부정적인 공산주의 성향이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6.4.2. 성소수자 관련[편집]


유럽의 극우정당은 대부분 반대 성향이나, 벨기에네덜란드 등 성소수자의 평등한 권리가 국가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나라들에서는 오히려 이슬람 이민자들이 성소수자를 괴롭혀 국가 정체성이 훼손되고 국민들이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극우 정당이 성소수자를 지지한다. 물론 해당 국가들도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우파~극우 세력도 찾아보면 어느 정도 존재한다.[43]일례로 스웨덴에서는 극우정당 지지자들이 무슬림 거주 지역인 린케비(Rinkeby)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퀴어 퍼레이드를 벌인 일화도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경우 과거에는 호모포빅 정당이었으나 현대에는 입장을 선회하였다. 그러나 호모포빅 당원도 여전히 많은 편이다. 또한 대표적인 극우 국가인 러시아의 경우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성소수자를 불법화하는 법률을 국가두마에서 통과시켰다.


7. 같이 보기[편집]



[1] 위에 관련 문서 예시로 든 KKK단, 아메리카 연합국, 매카시즘, 티 파티 코커스, 트럼프주의, 대안 우파 모두 넓은 의미에서 고보수주의에 포함되기도 한다.[2] 한국에서는 2010년대까지도 미국 내에는 고보수주의들이 온건 우파로 분류된 반면 전쟁광 네오콘 신보수주의자들이 극우로 분류되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도 있었는데, 정작 2000년대 초에도 고보수주의자들은 신보수주의자들보다 더욱 우파로 분류되었지 절대 온건 우파로 간주되지 않았다. 막말로 이들이 네오콘들의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가 그저 신보수주의 이전의 보수적 가치인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로 되돌아가자는 반동적 형태에 주 목적이 있지, 좌파들이 지지하는 평화적 다자주의가 주 목적이 아니다. 특히 전통 보수주의적 성격이 더 강한 고보수주의자들은 문화적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훨씬 강하지만, 신보수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문화적 자유주의에 어느 정도 관용적이며, 유럽의 자유보수주의자들과 유사하다. 펫 뷰캐넌 같이 문화전쟁에서 자유주의의 반대 진영의 입장의 선두에 서는 강경 우파 논객, 인사들만 봐도 네오콘보다 팔레오콘이 다수이다. 오히려 미국의 보수계열에서 온건 보수 진영은 관점에 따라 보수 진영으로 간주되지 않기도 한다.[3] 허나 고보수주의 상당수가 극우세력과 연계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모든 고보수주의자가 극우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4] 일부 보수 지지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중국인 혐오 발언(짱깨, 바퀴벌레 등), 민주당계 지지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일본인 혐오 발언(쪽바리, 토착왜구 등) 등이 미국에서 등판하면 얄짤없이 극우나 극단주의 취급받는다.[5] 2020년대 현재 미국에서 동성결혼 반대한다고 해서 좌파들의 비방적 수사가 아닌 이상, 일반적 극우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보수 정치인들은 물론, 일부 민주당계 정치인들도 "동성애 반대한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고 큰 파문이 일지 않았지만 미국이었다면 온건 우파들로부터도 극우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6] 오히려 한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낮은 반면, 과거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침략과 수탈을 겪었기 때문에 사회 내부에서의 극우적 언동보다는, 타국에 대한 침략 행위를 극우로 간주하는 뒤틀린 정치관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절대 극우라고 볼 수 없는 네오콘들이 한국에서는 극우로 인식된다.[7] Brean, Joseph (October 21, 2019). "How the 2019 federal election became a vote for nothing". National Post. National Post. Retrieved December 7, 2019. Maxime Bernier, leader of the upstart alt-right People’s Party of Canada.[8] Kamel, Zachary (February 8, 2019). "Maxime Bernier's alt-right problem". The Star News. Retrieved May 17, 2019.[9] 유럽의 극우는 대안우파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국의 극우 담론에 중점을 두고 있다.[10] 그런데 중화통일촉진당은 일국양제를 주장하는 친중공정당이다.[11] 제노포비아를 동원한 극단적 인종주의순혈주의 등.[12] 가령 이들은 다문화 사회에 반대하지만, 국내의 외국인에 대한 인종 청소나 혼혈 한국인에 대한 추방 혹은 이들의 2등 국민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레벤스라움과 같이 만주간도가 과거 우리 민족의 강역이었으니 한반도 통일을 넘어서 저 지역들을 무력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순혈주의 양태를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약화된 버전이 있을 뿐이며, 이에 대해서는 후술.[13] 단적으로 한국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나 중국,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좌파였다. 물론 저항적 민족주의가 열린 민족주의인지 배타적 민족주의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다.[14] 강대국을 추앙하면서 이들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국의 형태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단 지론이다. 결국 어떤 체제를 세우기 위해선 기존의 체제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 기존 체제의 붕괴는 이들에겐 개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15] 국가의 역사나 정체성에 대한 존중이 없으며 자국민을 혐오하는 행태를 말한다. 분열을 통한 국가의 정체성이나 국민의 연결고리를 무너트리면 국가의 붕괴만 남을 뿐이다.[16] "권위주의 정권과 결합한 반공국가는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족적 민족주의를 동원하였다. 공산주의를 추종하거나 동조하는 세력들을 혈연, 문화, 역사, 전통의 오랜 공유에 기초한 민족 공동체의 신성성과 순수성을 훼손하는 위협이자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되었으며, 반공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분열된 민족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명분이자 수단이 되었다." <반공국가의 위기와 민족주의의 부상 —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과 대만의 대중정책에 관한 비교>, 김재영. 2017, 「복잡성과 복합성의 세계정치⸥, 서울대학교국제문제연구소 편, 사회평론아카데미[17] 여기서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이데올로기 개념으로서 공산주의의 대립항이 되는 개념을 뜻한다.[18] 사회주의형 계획경제라고 해서 좌파로 오해하지만, 극우정당 중에서도 가령 나치의 정식 정당 이름 자체가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다. 좌파와는 결이 다르지만 국가의 경제통제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는 과거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정책과 통한다.[19] 특히 유신정권 시절인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보인 코포라티즘은 극우의 요소 중 하나이다.[20] 이승만이 한 때 국시로 삼았던 일민주의도 파시즘 논란이 존재한다. #1 #2 #3참조.[21] 공교롭게도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극우는 미국식 극우, 특히 미국 대안우파의 마이너 카피가 되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 대안우파의 관점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도 아니고 그냥 미국 대안우파 그 자체의 일부분인데 다만 인종만 한국인이라고 보면 딱 들어맞는다. 이렇게 보면 한국 극우의 자국 혐오 및 백인우월주의, 일본인에 대한 명예 백인 취급이 어떤 심리에서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겉은 한국인인데 속은 미국 대안우파인 것이다.[22] 논문 참조[23] 애초에 대안 우파 자체가 전통적인 보수주의 달리 엄밀한 철학적 정치 기반이나 정치적 지향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닌 냉소주의적 집단이지만 극우 세력의 일부분이라는 데에는 미국 내에서 이견이 별로 없는 편이다.[24] Hojeong Lee (2019). "Digital War of South Korean Netizens in New York City:From Tweets to a Billboard Advertisement, and an Alt-Right Online Community" (PDF). Temple University.[25] 심지어 오늘날 태극기 집회에서 볼 수 있는 성조기와 태극기, 이스라엘 깃발의 조합은 이미 이 당시부터 엿볼 수 있었다.[26] <한국 개신교와 보수적 시민운동: 개신교 우파의 극우·혐오정치를 중심으로>. 人文學硏究 제33집(2020.06),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27] '국제녹색당'이라는 이름만 보면 진보적인 생태주의 정당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친환경 정책을 겉으로 내세운 보수주의 군소 정당이었다. 이들은 애초부터 친 원자력 발전의 모토를 걸고 등장했다. 참고로 한국의 진짜 진보 생태주의 정당으론 재야운동가 장기표가 주도한 녹색사회민주당이 있었고, 현재는 녹색당이 존재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두 당은 국제녹색당과 아무 관련이 없다.[28]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이 크게 발호해서 이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29]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중국 공산당이 공식적으로는 공산주의 정당이기에 엄밀히 말해서 일반적인 극우의 범주에 넣기 애매하지만, 분청들과 중국 공산당은 외교나 문화 면에서는 적어도 극우 내셔널리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애초에 중국 공산당 자체가 공산주의에서 시작한 당이기도 하고, 시진핑 사상 등이 취하는 스탠스를 보아 경제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좌익에 가깝다.[30] 사우디아라비아, 오만을 비롯한 아라비아 반도 왕정 국가들을 극우이긴 하지만 이들은 공식적으로 테러리즘을 하지않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금지한다.[31] 국민보수주의라고 보긴 어렵다. 이슬람권의 이슬람 극단주의자 중에는 오히려 세속 우파보다 내셔널리즘을 부정하는 케이스도 많다.[32] 보수주의적 자유당 후보였던 폴린 핸슨이 소수인종에게 특별 혜택을 주는 것을 반대한 것 때문에 당에서 쫓겨나면서 세운 당[33] 비슷한 느낌으로 중동의 아랍사회주의자들이 있다.[34] 그런데 소득 상위층이 우파 정당을 지지하고 하위층이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고 추측하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인 게, 한국만 봐도 여론조사나 출구조사를 보면 중산층이나 학생, 화이트칼라 계열이 좌파 정당의 핵심 지지층이지, 일용직 저소득층은 오히려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역시 레드넥(보수적인 성향의 저소득, 저학력 미국 백인 농부,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비하어에서 알 수 있듯 백인 저소득층은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35] 사실 히틀러가 본색을 드러내기 이전인 집권 초기에 나치즘이 영미 서방의 지지를 받은 것도 이들이 격렬한 반공주의였기 때문이다.[36] 그래도 아버지 장 마리 르 펜에 비해 딸 마린 르 펜은 그나마 온건한 편이다.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도 패배했으나, 표차는 더욱 좁혀졌다.[37] 대놓고 반러(anti-Russia)라고 보긴 애매한게 유럽은 인종주의 이런 것에 대해 예민하기 때문에 특정민족/국가 관련된 그 자체에 대한 안티 테제와 단순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비난과 제재 지지는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38] 주류 세력들은 러시아가 서양의 가치(자유주의, 민주주의, 다양성)와 유럽연합을 파괴하려고 한다고 까는데 반해 극우파들은 러시아가 서양 문명과 기독교 정체성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39] 사실 독소전쟁도 20세기의 대표적인 극우파와 극좌파의 대결이라 볼 수 있다.[40] 애초에 중국은 공산주의 극좌국가를 표방하는지라 유럽 극우들이 좋아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41] 유럽 극우는 보통 반미나 친미 성향이 뚜렷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물론 확실하게 반미인 경우도 존재하긴 하지만) 집권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트럼프 정부 시절에 유럽 극우는 친미성향이 많았지만 현 바이든 정부는 딱히 그렇지않고 반세계화 부분에서 충돌하는 몇몇 이슈를 제외하면 실리주의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다.[42] 다만 러시아도 자국내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시아파 이슬람을 지원하는 건 같은 반서방 국가인 이란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에 가깝다.[43] 대표적으로 기독교 우파 정당 개혁정치당 대안 우파 성향이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포럼 등이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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