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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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은 1945년 10월 10일에 창당하였다. 외견상 북한은 복수정당제를 취하고 있으나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은 조선로동당의 위성정당으로, 조선로동당은 사실상 일당제의 유일 집권당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조선로동당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을 동시에 수행한다.[10] 또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존속하고 있는 최장수 정당이며,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당원을 거느린 정당이기도 하다. 2021년 기준으로 당원을 크게 늘린 6,500,000명으로 추정되었다.#[11] 기관지는 로동신문.
대한민국을 미국이 설립한 불법 괴뢰국[12] 으로 간주하여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거 동시 유엔 가입을 했다지만 가입 당시에는 서로를 대하는 과정에서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로 대할 것을 약속하며 성사된 것이다.[13] 정식 명칭은 조선로동당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북한노동당이라고도 칭하기도 하며 1970년대부터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고 있다.
북한 현지에서는 줄여서 그냥 당이라고도 말하며,[14] 사회주의 대가정론에 입각하여 어머니당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15]
원래는 소련 공산당을 모델로 한 전형적인 공산주의 정당이자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자국의 세력권 하에 있는 국가들에 설치한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집권 정당이었으나 점점 다른 극좌 정당들과는 매우 다른 경로를 걷기 시작해 오늘날의 기형적 체제를 자동으로 갖추게 되었다.
당 창건날은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이북5도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김일성이 기조연설을 한 1945년 10월 10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다분히 김일성을 띄우기 위한 북한의 역사 왜곡이다. 해방 직후 박헌영의 정치노선을 따르던 현준혁이 명망이 높았으며, 현준혁이 암살당한 뒤에도 김용범이 김일성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등 김일성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은 보천보 전투의 유명세를 가진 김일성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계속 김일성을 밀었다. 김일성 이외 지도자급 인물인 박헌영, 이관술, 홍남표, 김철수 등은 모두 38선 이남에 있었다.
당시는 서울에서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을 재건한 것을 본 소련은 스탈린주의의 원칙인 "1국 1당 원칙"에 따라 한반도에는 한 개의 공산당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38선으로 인해 남과 북의 공산당이 유기적으로 한몸처럼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38선 이북의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하기 위해 이 대회를 열게 되었다. 분국(分局)이란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본국', '중앙'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련의 안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은 1945년 12월 17일 북조선공산당으로 바뀐다. 그 이유는 미군정 하의 박헌영이 세력을 키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김일성을 지지하는 소련군정의 압박 때문이었고, 실제로 이후 미군정의 계속된 탄압으로 조선공산당 본부 즉 박헌영의 세력이 줄어 김일성과 정치적 상하관계가 역전된다. 특히 1946년 5월에 있었던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남측에서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북측이 '당중앙'이 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연안파가 세운 조선독립동맹 계열 중심의 조선신민당과 통합하고 북조선로동당을 발족하였다. 그 후로도 박헌영의 세력은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로동당을 창당해 활동했고, 이후 1949년 6월 합당을 거쳐 조선로동당이 창당됐다. 당명을 공산당이 아니라 '노동당'이라 한 이유는 소련의 지령 때문인데, 이미 동유럽에서 공산 괴뢰 정권을 여럿 수립하면서 이 분야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던 소련이 한반도 내에서 공산주의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공산당이 아닌 노동당으로 당명을 정하게 했다.
그러나 1946년과 1948년 선거에서는 조선로동당이 절반 이하의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8월 종파 사건 이후 1960년대부터의 북한이라면 가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조선로동당의 장악력이 아직 완전히 지방에 미치지 못했고 제헌선거는 대한민국 제헌선거에서 무소속 의원들이 강세였듯이 지역유지들을 많이 뽑는다는 점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후 1949년 6월 30일부터 7월 초에 열린 남북로동당 연석 전원회의에서 남북로당이 합당되면서 조선로동당으로 거듭났으나 6.25 전쟁이 터지던 시점까지 합당 사실을 숨겼다. 6.25 이후 1953년 박헌영을 '미제의 간첩인'으로 몰아서 회피도 못하게 당국이 렬심히 몰아가서 확실히 체포, 1956년에 처형한 걸 필두로 림화, 리강국, 리승엽 등 남로당파가 1955년에 대거 숙청당한다. 1956년 3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직계의 당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권부에서 밀려난 최창익, 박창옥, 윤공흠 등이 반발하여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간부정책과 우상숭배 시정을 요구했으나 이를 반역으로 받아들인 김일성의 반격으로 몰락한다. 이후 대규모 숙청과 유일지배체계 강화로 1961년 4차 당대회에서 '승리자들의 대회'를 선포한 김일성은 1966년 10월, 2차 당대표자회에서 총비서 직함을 도입했으며 1967년,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대남 정책과 경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갑산파를 숙청함으로 김일성과 독자적인 우상화를 시도하려 한 박금철과 리효순을 제거하고 혁명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독점한다. 1970년 5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의 유일적 지배는 재확인되었고, 남일, 박정애, 김익선 등 김일성의 구시대 동맹자들도 퇴장하면서 빨치산 직계와 2세대, 김일성 친족들 및 김일성이 영입한 일부 테크노크라트들의 승리연합이 완성된다. 1974년 2월, 김정일이 후계자로 선포되었으며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조직비서,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되면서 대외적으로도 후계자임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 이후 조선로동당의 제도적 정치는 마비상황에 놓였으며 다만 1997년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하였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가 개최되어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대하였으며, 김정일이 사망한 후 2012년 4월 11일, 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제1비서에 추대함으로써 김정은이 공식 당수로 취임했다.2016년 5월 9일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를 개최, 김정은을 신설 직책인 당 위원장에 취임시키면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함을 렬실히 알리게 하였다.
2021년 1월 10일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김정일 사후 영구결번이 된 줄 알았던 '조선로동당 총비서'직이 부활했으며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다시 개편하였다. 총비서는 당연히 김정은. 이 즈음에 제1비서직을 신설하였는데, 개정 당 규약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다만 누가 제1비서직에 올랐는지는 2023년 9월 시점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현행 및 역대 조선로동당 규약의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일당독재이지만 구색정당으로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이 있다. 참고로 한국의 민주노동당은 조선사회민주당과 자매결연 관계이다.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바뀌면서, 자매결연도 통합진보당이 승계받았다. 통합진보당이 2014년 12월 19일에 강제해산된 이후 자매결연 관계가 어디로 승계됐는지 알려진 바 없으나, 2018년 조선사회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신 격인 민중당에 신년인사를 보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조선인민군에 복무하다 전역한 사람에게 입당 기회가 주어진다. 북한에서는 여성도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2023년 기준 남성은 10년, 여성은 8년을 복무한 후 제대하면 조선로동당에 입당할 수 있게 된다. 그 외 특별한 상황이 있다면 즉시 입당할 수도 있는데, 학교 담임의 경우 자기가 맡고 있는 반에서 3명 이상의 호위사령부 요원이 배출된 경우 또는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최고지도자 에게 잘 보였다던가 대남 도발 유가족이면 즉시 입당한다.
다만 입당 과정에서 신원 조회가 이루어지는데 만일 본인 및 가족, 친척 중 한 명이라도 적대계층이면 입당이 불허된다. 특히 탈북한 사람이나 화교나 혼혈 출신이 있다면 북한의 순혈주의에 따라 절대로 입당할 수 없다. 이후 사상 검증 등 추가 검사를 거쳐 신분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에만 입당이 허가된다. 입당한 당원에게는 조선로동당당원증이 수여되고 입당 선서를 통해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조선로동당에 입당하는 사람들은 전부 김씨 일가에 충성한다고 생각하기 쉽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입당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물론 당원이라도 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시로 고난의 행군 때는 일반 주민들 뿐만 아니라 조선로동당 당원들도 대부분 굶주림을 버텨내야만 했다.
이전에는 조선인민군에서 10년 복무 기간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전역했다면 입당 권리가 보장되었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이 당일꾼[23] 의 질적 향상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더 이상 일반적인 제대 군인을 대상으로는 입당 권리가 무조건적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24] # #
한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정당이라고 생각하면 정치하는 사람끼리의 평범한 단체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일정 나이대의 북한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엄청나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이 크며, 평범한 탈북민의 인터뷰에서도 청년동맹에서 염색을 단속 당했다는 등 이에 관한 증언이 많다. 해방 정국에서 월남한 실향민의 증언에서도 '민청'(현재의 청년동맹) 등에 가입하라는 지시를 언급하는 등 자주 언급되는 조직이다.
각 근로단체의 지도부는 중앙위원회와 중앙검사위원회로 구성되며, 중앙위원회는 집행위원회와 조직위원회를 둔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로동당/주요 회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주체사상을 표방하는 북한의 정당. 일당제 국가의 집권당으로서 내각보다 상위에서 북한 사회 전체를 통제한다.
-조선로동당 규약, 2021년 1월 9일. 맨 첫 문장이다.
조선로동당은 1945년 10월 10일에 창당하였다. 외견상 북한은 복수정당제를 취하고 있으나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은 조선로동당의 위성정당으로, 조선로동당은 사실상 일당제의 유일 집권당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조선로동당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을 동시에 수행한다.[10] 또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존속하고 있는 최장수 정당이며,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당원을 거느린 정당이기도 하다. 2021년 기준으로 당원을 크게 늘린 6,500,000명으로 추정되었다.#[11] 기관지는 로동신문.
대한민국을 미국이 설립한 불법 괴뢰국[12] 으로 간주하여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거 동시 유엔 가입을 했다지만 가입 당시에는 서로를 대하는 과정에서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로 대할 것을 약속하며 성사된 것이다.[13] 정식 명칭은 조선로동당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북한노동당이라고도 칭하기도 하며 1970년대부터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고 있다.
북한 현지에서는 줄여서 그냥 당이라고도 말하며,[14] 사회주의 대가정론에 입각하여 어머니당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15]
2. 역사[편집]
원래는 소련 공산당을 모델로 한 전형적인 공산주의 정당이자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자국의 세력권 하에 있는 국가들에 설치한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집권 정당이었으나 점점 다른 극좌 정당들과는 매우 다른 경로를 걷기 시작해 오늘날의 기형적 체제를 자동으로 갖추게 되었다.
당 창건날은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이북5도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김일성이 기조연설을 한 1945년 10월 10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다분히 김일성을 띄우기 위한 북한의 역사 왜곡이다. 해방 직후 박헌영의 정치노선을 따르던 현준혁이 명망이 높았으며, 현준혁이 암살당한 뒤에도 김용범이 김일성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등 김일성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은 보천보 전투의 유명세를 가진 김일성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계속 김일성을 밀었다. 김일성 이외 지도자급 인물인 박헌영, 이관술, 홍남표, 김철수 등은 모두 38선 이남에 있었다.
당시는 서울에서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을 재건한 것을 본 소련은 스탈린주의의 원칙인 "1국 1당 원칙"에 따라 한반도에는 한 개의 공산당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38선으로 인해 남과 북의 공산당이 유기적으로 한몸처럼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38선 이북의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하기 위해 이 대회를 열게 되었다. 분국(分局)이란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본국', '중앙'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련의 안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은 1945년 12월 17일 북조선공산당으로 바뀐다. 그 이유는 미군정 하의 박헌영이 세력을 키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김일성을 지지하는 소련군정의 압박 때문이었고, 실제로 이후 미군정의 계속된 탄압으로 조선공산당 본부 즉 박헌영의 세력이 줄어 김일성과 정치적 상하관계가 역전된다. 특히 1946년 5월에 있었던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남측에서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북측이 '당중앙'이 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연안파가 세운 조선독립동맹 계열 중심의 조선신민당과 통합하고 북조선로동당을 발족하였다. 그 후로도 박헌영의 세력은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로동당을 창당해 활동했고, 이후 1949년 6월 합당을 거쳐 조선로동당이 창당됐다. 당명을 공산당이 아니라 '노동당'이라 한 이유는 소련의 지령 때문인데, 이미 동유럽에서 공산 괴뢰 정권을 여럿 수립하면서 이 분야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던 소련이 한반도 내에서 공산주의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공산당이 아닌 노동당으로 당명을 정하게 했다.
그러나 1946년과 1948년 선거에서는 조선로동당이 절반 이하의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8월 종파 사건 이후 1960년대부터의 북한이라면 가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조선로동당의 장악력이 아직 완전히 지방에 미치지 못했고 제헌선거는 대한민국 제헌선거에서 무소속 의원들이 강세였듯이 지역유지들을 많이 뽑는다는 점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후 1949년 6월 30일부터 7월 초에 열린 남북로동당 연석 전원회의에서 남북로당이 합당되면서 조선로동당으로 거듭났으나 6.25 전쟁이 터지던 시점까지 합당 사실을 숨겼다. 6.25 이후 1953년 박헌영을 '미제의 간첩인'으로 몰아서 회피도 못하게 당국이 렬심히 몰아가서 확실히 체포, 1956년에 처형한 걸 필두로 림화, 리강국, 리승엽 등 남로당파가 1955년에 대거 숙청당한다. 1956년 3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직계의 당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권부에서 밀려난 최창익, 박창옥, 윤공흠 등이 반발하여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간부정책과 우상숭배 시정을 요구했으나 이를 반역으로 받아들인 김일성의 반격으로 몰락한다. 이후 대규모 숙청과 유일지배체계 강화로 1961년 4차 당대회에서 '승리자들의 대회'를 선포한 김일성은 1966년 10월, 2차 당대표자회에서 총비서 직함을 도입했으며 1967년,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대남 정책과 경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갑산파를 숙청함으로 김일성과 독자적인 우상화를 시도하려 한 박금철과 리효순을 제거하고 혁명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독점한다. 1970년 5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의 유일적 지배는 재확인되었고, 남일, 박정애, 김익선 등 김일성의 구시대 동맹자들도 퇴장하면서 빨치산 직계와 2세대, 김일성 친족들 및 김일성이 영입한 일부 테크노크라트들의 승리연합이 완성된다. 1974년 2월, 김정일이 후계자로 선포되었으며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조직비서,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되면서 대외적으로도 후계자임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 이후 조선로동당의 제도적 정치는 마비상황에 놓였으며 다만 1997년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하였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가 개최되어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대하였으며, 김정일이 사망한 후 2012년 4월 11일, 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제1비서에 추대함으로써 김정은이 공식 당수로 취임했다.2016년 5월 9일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를 개최, 김정은을 신설 직책인 당 위원장에 취임시키면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함을 렬실히 알리게 하였다.
2021년 1월 10일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김정일 사후 영구결번이 된 줄 알았던 '조선로동당 총비서'직이 부활했으며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다시 개편하였다. 총비서는 당연히 김정은. 이 즈음에 제1비서직을 신설하였는데, 개정 당 규약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다만 누가 제1비서직에 올랐는지는 2023년 9월 시점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2.1. 역대 지도부[편집]
일당제 국가인 특성상 원내지도부는 따로 없다.
2.2. 조선로동당 규약[편집]
현행 및 역대 조선로동당 규약의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3. 다른 정당과의 관계[편집]
일당독재이지만 구색정당으로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이 있다. 참고로 한국의 민주노동당은 조선사회민주당과 자매결연 관계이다.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바뀌면서, 자매결연도 통합진보당이 승계받았다. 통합진보당이 2014년 12월 19일에 강제해산된 이후 자매결연 관계가 어디로 승계됐는지 알려진 바 없으나, 2018년 조선사회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신 격인 민중당에 신년인사를 보냈다고 한다.
4. 입당 과정[편집]
기본적으로 조선인민군에 복무하다 전역한 사람에게 입당 기회가 주어진다. 북한에서는 여성도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2023년 기준 남성은 10년, 여성은 8년을 복무한 후 제대하면 조선로동당에 입당할 수 있게 된다. 그 외 특별한 상황이 있다면 즉시 입당할 수도 있는데, 학교 담임의 경우 자기가 맡고 있는 반에서 3명 이상의 호위사령부 요원이 배출된 경우 또는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최고지도자 에게 잘 보였다던가 대남 도발 유가족이면 즉시 입당한다.
다만 입당 과정에서 신원 조회가 이루어지는데 만일 본인 및 가족, 친척 중 한 명이라도 적대계층이면 입당이 불허된다. 특히 탈북한 사람이나 화교나 혼혈 출신이 있다면 북한의 순혈주의에 따라 절대로 입당할 수 없다. 이후 사상 검증 등 추가 검사를 거쳐 신분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에만 입당이 허가된다. 입당한 당원에게는 조선로동당당원증이 수여되고 입당 선서를 통해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조선로동당에 입당하는 사람들은 전부 김씨 일가에 충성한다고 생각하기 쉽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입당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물론 당원이라도 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시로 고난의 행군 때는 일반 주민들 뿐만 아니라 조선로동당 당원들도 대부분 굶주림을 버텨내야만 했다.
이전에는 조선인민군에서 10년 복무 기간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전역했다면 입당 권리가 보장되었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이 당일꾼[23] 의 질적 향상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더 이상 일반적인 제대 군인을 대상으로는 입당 권리가 무조건적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24] # #
5. 정당 구조[편집]
조선로동당/조직 문서 참조.
6. 근로단체[편집]
한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정당이라고 생각하면 정치하는 사람끼리의 평범한 단체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일정 나이대의 북한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엄청나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이 크며, 평범한 탈북민의 인터뷰에서도 청년동맹에서 염색을 단속 당했다는 등 이에 관한 증언이 많다. 해방 정국에서 월남한 실향민의 증언에서도 '민청'(현재의 청년동맹) 등에 가입하라는 지시를 언급하는 등 자주 언급되는 조직이다.
-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대학생, 청년돌격대, 군인): 위원장 문철
- 조선직업총동맹(노동자, 사무원): 위원장 박인철
-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민): 위원장 한종혁
-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가정주부, 자영업자): 위원장 김정순
각 근로단체의 지도부는 중앙위원회와 중앙검사위원회로 구성되며, 중앙위원회는 집행위원회와 조직위원회를 둔다.
7. 역대 주요 회의[편집]
자세한 내용은 조선로동당/주요 회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여담[편집]
- 2015년에 북한 주민 5명이 탄 어선이 동해상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관계자들에게 구조되었는데, 이 중 3명은 조선로동당 당원이었고 2명은 비당원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으로의 귀순 의사를 묻자 조선로동당 당원 3명은 모두 귀순하겠다고 답하고, 비당원 2명은 모두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하는 거짓말 같은 실화가 탄생했다. 앞뒤가 바뀐 게 아니다![25][26]
- 2020년 11월 조선로동당이 평양에서 22차 공산당-노동자당 대회를 주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취소되고, 2021년에 화상회의를 여는 것으로 대체되었다.[27]
- 미국의 네오 나치 조직인 아톰바펜 디비전은 북한을 옹호하는 선전물을 만들기도 하였다. 구글 번역을 돌렸는지 정작 'Korea'가 '한국'으로 번역되어서 북한 입장에선 심기가 불편할 일이지만....
9. 관련 문서[편집]
10.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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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 규약 제59조는 "당마크는 마치(망치)와 낫, 붓이 한곳에서 교차되게 그려진 조선로동당의 상징적 표식이다"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생겼다.
한편 이런 이미지도 있으나 이것은 북한 당국이 인정하는 정식 로고가 아니라 일종의 장식이다. 이건 그냥 로동신문이 주요 기사의 제목에 쓰는 '천리마체'라는 서체의 굵은 꼴이다. 아예 당의 이름으로 진행되지 않는 사건을 다루는 기사에도 쓴다. #1#2 행사에서는 북한이 자체 제작한 '광명'이라는 글씨체도 있다. 게다가 저것과 비슷한 서체를 쓰는 경우가 있는 행사에서도 '로'자의 모양의 차이가 있는 등 서체의 디자인이 비일관적이다. # 한국 정당처럼 공식 폰트를 가진 것이 아니다. 조선로동당의 공식적인 당을 나타내는 상징은 당마크와 붉은 바탕의 당기밖에 없다.[2] 다만 북조선분국 설치를 공식적으로 밝힌 날은 1945년 10월 13일 (79주년)이다.[3] 일당 독재인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군대는 국가가 아니라 당 소속의 당군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 등도 마찬가지.[4] 매월 발행되나, 로동신문과 달리 철저히 내수용이라서 남한이나 해외 인지도가 거의 없다.[추정] A B 2016년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기준[5] 2010년에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했지만 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적 원칙을 견지한다는 내용은 계속 남아 있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후 2021년에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다시 공산주의를 최종 목표로 상정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라는 내용이다. 2010-2021년 당 규약에서 공산주의가 삭제되어 있던 기간에도 로동신문과 당 산하 기관들에서 간간히 공산주의를 강조하는 등 공산주의를 포기한 일은 없다. 기사[6] 발생학적으로 스탈린 체제를 모델로 하는 전형적인 공산주의 정당에서 시작했으며, 일각의 오해와 달리 창당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고, 공산주의와 달리 당 규약에서도 제거된 적이 없다. 중국공산당과 달리 시장경제 정책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7] 김정은 시대 이후로는 한동안 이 곡이 더 많이 사용됐다.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폐회식에서도 이 곡이 연주됐다.[8]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기점으로 각종 당 행사 폐회 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9] 기존 정당연합이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2024년 3월 23일부로 해체[10] 예를 들자면 한국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직책은 당에게 인사권이 있고, 심지어 법조인까지 임명한다. 감옥에 사람을 넣는 일에 대한 승인권도 갖는다. # 근로단체를 통해 동원 가능한 주민의 거의 전체를 동원할 수도 있다.[11] 당 대회 참석자 수로 추정한 것이기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경우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원 수는 23년 기준 449만 명이며, 제 1야당이자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원 수는 484만 명이다. 둘을 합치면 933만 명.[12] 2023년 12월 30일 이전까지는 나라로도 인정하지 않았다.[13] 대한민국 역시도 북한 정권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며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런 약속은 동시 유엔 가입이 한반도에서 두 나라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칠 것이라는 북한 정권의 우려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한국 정부의 입장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주장을 찾다가 하게 된 것이다. 2023년 연말 김정은이 남북관계의 적대감을 고조하기 위하여 교전국 관계를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2024년에는 헌법에 불변의 주적이 대한민국이고 동시에 유사시 점령할 땅이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을 반영할 것을 김정은이 주장했다.[14] 이는 중국(중국공산당)이나 베트남(베트남 공산당)같은 다른 일당제 국가도 마찬가지다.[15] 참고자료 '어머니당' 표현에 대한 북한측 입장을 자료 참고 식으로 전하고 있다.[16]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시기만 하더라도 이 건물의 외부만 공개했으나, 김정은 시기에 들어서는 내부 모습도 활발히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과의 회담을 위해 이 건물에 방문한 바 있었고, 우리나라 언론에도 내부가 공개되기도 했다.[17] 분국에서 정당으로 변화하기 전인 1945년 12월 17일까지는 당의 최고 지도자는 명목상 조선공산당 총비서 박헌영이었다.[18] 이마저도 김일성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김두봉이 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소련의 대수령인 스탈린을 빽으로 두고 있던 김일성에게 찍소릴 할 수 없었으니 당연히 실권은 없었다.[19]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위원장제 폐지, 총비서제 채택.[20] 유일하게 당대회나 대표자회를 열지 않고 그냥 행사 없이 추대했다. 당대회 없이 총비서로 추대된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아닌 그냥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21]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나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아닌 당 제1비서, 당 위원장임.[22] 당 중앙위원회 안에 비서국이 설치된 것이지만 김정은을 호칭할 때는 '중앙위원회'를 빼고 '조선로동당 총비서'라고만 지칭한다. 위원들은 '당중앙위원회 비서'라고 지칭한다.[23] 문화어로는 당일군.[24] 정치장교가 입당추천서를 작성해주긴 한다.[25] 북한 내부에서도 한국에 잔류한 로동당원들을 두고 '역시 당원들이 똑똑하다'고 하고, 반대로 다시 북한으로 간 비로동당원들은 '저러니까 로동당에도 입당 못한 거다', '1등 바보'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물론 보위부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은 건 덤. 추가적으로 3명의 가족에 대해서는 제재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탈북 가능성은 비당원보다 당원인 경우가 더 높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 로동당원은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입당하는 경우가 많고 당원이 그나마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꿰고 있기 때문에 탈북할 동기 부여가 더 생기고 비당원보다 처신을 더 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26] 이는 재입북한 경우도 마찬가지라 소위 강연회에 동원되어 소위 '남한의 실상'이라며 폭로하는 자리에서도 '그리 잘 살았으면서 여긴 왜 왔나?', '그렇게 잘 살았으면서 거기에서도 못 산다면 여기선 더 못 살아.'라 수군거리고 행여 재탈북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그럼 그렇지. 가야지 그럼. 여기선 못 살지'라면서 뒷담화를 한다는 후문이다.[27] 이 화상회의는 22차 대회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실제 22차 대회는 2022년 10월 27일에 쿠바에서 쿠바 공산당 주도로 열렸다.
한편 이런 이미지도 있으나 이것은 북한 당국이 인정하는 정식 로고가 아니라 일종의 장식이다. 이건 그냥 로동신문이 주요 기사의 제목에 쓰는 '천리마체'라는 서체의 굵은 꼴이다. 아예 당의 이름으로 진행되지 않는 사건을 다루는 기사에도 쓴다. #1#2 행사에서는 북한이 자체 제작한 '광명'이라는 글씨체도 있다. 게다가 저것과 비슷한 서체를 쓰는 경우가 있는 행사에서도 '로'자의 모양의 차이가 있는 등 서체의 디자인이 비일관적이다. # 한국 정당처럼 공식 폰트를 가진 것이 아니다. 조선로동당의 공식적인 당을 나타내는 상징은 당마크와 붉은 바탕의 당기밖에 없다.[2] 다만 북조선분국 설치를 공식적으로 밝힌 날은 1945년 10월 13일 (79주년)이다.[3] 일당 독재인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군대는 국가가 아니라 당 소속의 당군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 등도 마찬가지.[4] 매월 발행되나, 로동신문과 달리 철저히 내수용이라서 남한이나 해외 인지도가 거의 없다.[추정] A B 2016년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기준[5] 2010년에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했지만 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적 원칙을 견지한다는 내용은 계속 남아 있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후 2021년에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다시 공산주의를 최종 목표로 상정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라는 내용이다. 2010-2021년 당 규약에서 공산주의가 삭제되어 있던 기간에도 로동신문과 당 산하 기관들에서 간간히 공산주의를 강조하는 등 공산주의를 포기한 일은 없다. 기사[6] 발생학적으로 스탈린 체제를 모델로 하는 전형적인 공산주의 정당에서 시작했으며, 일각의 오해와 달리 창당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고, 공산주의와 달리 당 규약에서도 제거된 적이 없다. 중국공산당과 달리 시장경제 정책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7] 김정은 시대 이후로는 한동안 이 곡이 더 많이 사용됐다.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폐회식에서도 이 곡이 연주됐다.[8]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기점으로 각종 당 행사 폐회 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9] 기존 정당연합이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2024년 3월 23일부로 해체[10] 예를 들자면 한국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직책은 당에게 인사권이 있고, 심지어 법조인까지 임명한다. 감옥에 사람을 넣는 일에 대한 승인권도 갖는다. # 근로단체를 통해 동원 가능한 주민의 거의 전체를 동원할 수도 있다.[11] 당 대회 참석자 수로 추정한 것이기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경우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원 수는 23년 기준 449만 명이며, 제 1야당이자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원 수는 484만 명이다. 둘을 합치면 933만 명.[12] 2023년 12월 30일 이전까지는 나라로도 인정하지 않았다.[13] 대한민국 역시도 북한 정권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며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런 약속은 동시 유엔 가입이 한반도에서 두 나라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칠 것이라는 북한 정권의 우려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한국 정부의 입장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주장을 찾다가 하게 된 것이다. 2023년 연말 김정은이 남북관계의 적대감을 고조하기 위하여 교전국 관계를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2024년에는 헌법에 불변의 주적이 대한민국이고 동시에 유사시 점령할 땅이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을 반영할 것을 김정은이 주장했다.[14] 이는 중국(중국공산당)이나 베트남(베트남 공산당)같은 다른 일당제 국가도 마찬가지다.[15] 참고자료 '어머니당' 표현에 대한 북한측 입장을 자료 참고 식으로 전하고 있다.[16]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시기만 하더라도 이 건물의 외부만 공개했으나, 김정은 시기에 들어서는 내부 모습도 활발히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과의 회담을 위해 이 건물에 방문한 바 있었고, 우리나라 언론에도 내부가 공개되기도 했다.[17] 분국에서 정당으로 변화하기 전인 1945년 12월 17일까지는 당의 최고 지도자는 명목상 조선공산당 총비서 박헌영이었다.[18] 이마저도 김일성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김두봉이 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소련의 대수령인 스탈린을 빽으로 두고 있던 김일성에게 찍소릴 할 수 없었으니 당연히 실권은 없었다.[19]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위원장제 폐지, 총비서제 채택.[20] 유일하게 당대회나 대표자회를 열지 않고 그냥 행사 없이 추대했다. 당대회 없이 총비서로 추대된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아닌 그냥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21]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나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아닌 당 제1비서, 당 위원장임.[22] 당 중앙위원회 안에 비서국이 설치된 것이지만 김정은을 호칭할 때는 '중앙위원회'를 빼고 '조선로동당 총비서'라고만 지칭한다. 위원들은 '당중앙위원회 비서'라고 지칭한다.[23] 문화어로는 당일군.[24] 정치장교가 입당추천서를 작성해주긴 한다.[25] 북한 내부에서도 한국에 잔류한 로동당원들을 두고 '역시 당원들이 똑똑하다'고 하고, 반대로 다시 북한으로 간 비로동당원들은 '저러니까 로동당에도 입당 못한 거다', '1등 바보'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물론 보위부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은 건 덤. 추가적으로 3명의 가족에 대해서는 제재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탈북 가능성은 비당원보다 당원인 경우가 더 높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 로동당원은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입당하는 경우가 많고 당원이 그나마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꿰고 있기 때문에 탈북할 동기 부여가 더 생기고 비당원보다 처신을 더 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26] 이는 재입북한 경우도 마찬가지라 소위 강연회에 동원되어 소위 '남한의 실상'이라며 폭로하는 자리에서도 '그리 잘 살았으면서 여긴 왜 왔나?', '그렇게 잘 살았으면서 거기에서도 못 산다면 여기선 더 못 살아.'라 수군거리고 행여 재탈북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그럼 그렇지. 가야지 그럼. 여기선 못 살지'라면서 뒷담화를 한다는 후문이다.[27] 이 화상회의는 22차 대회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실제 22차 대회는 2022년 10월 27일에 쿠바에서 쿠바 공산당 주도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