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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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관해 사회적으로 범인 이상의 영향력을 갖는 유명인들의 인상적인 어록과 유명한 문구(文句) 등을 소개하는 문서.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전쟁에 대한 명언을 날린 사람들은 대다수 전쟁에 대한 경험이 있는 만큼, 대다수의 명언들은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거나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짐작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 개요[편집]
전쟁에 관해 사회적으로 범인 이상의 영향력을 갖는 유명인들의 인상적인 어록과 유명한 문구(文句) 등을 소개하는 문서.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전쟁에 대한 명언을 날린 사람들은 대다수 전쟁에 대한 경험이 있는 만큼, 대다수의 명언들은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거나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짐작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2. 목록[편집]
2.1. 전술, 전략[편집]
2.2. 전쟁에 대한 대비[편집]
2.3. 평화주의[편집]
2.4. 기타[편집]
[1] 당연하게도 병법 없이 아무렇게나 대군을 부리라는 게 결코 아니다. 적에게는 분산을 강요하고 아군은 집중시켜서 결정적인 시점과 장소에서 상대적인 수적 우세를 달성하라는 전술의 기본 중의 기본을 잘 표현하는 어구이다. 전장에서 수적 우세를 달성하는 것 그 자체가 병법의 핵심이다는 의미가 되겠다.[2] 1파인트는 대략 470mL이며 1갤런은 대략 3.7L이다.[3] 다른 표현으로 "훈련 시 땀 한 방울은 전투 시 피 한 방울이다" 같은 것도 있다. 논산 육군훈련소 각개교장 입구에 "훈련 시 땀, 전투 시 피" 문구도 같은 맥락이다.[4] 원문은 다음과 같다. "A pint of sweat will save a gallon of blood letter." 패튼이 이 표현을 굉장히 자주 사용해서 여러 출처가 있지만 1944년 3월 3일에 장병들에게 보내는 담화문이 가장 유명하다. 그 외 1942년 10월 중부육군(United States Army Central)의 제3군(Third US Army)에게 보낸 담화문에서도 똑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출처는 다음과 같다. (1) George Smith Patton, <War as I Knew it>, 1947 (2) Hugh Rawson, <The Oxford Dictionary of American Quotations>, p.424[5] '전쟁은 경험하지 않을수록 좋다'라는 해석도 있다. 원래 라틴어 특성상 중의법이 정말로 많이 튀어나온다.[6] This War of Mine의 로딩 화면에 나오는 바로 그 문장이다.[7] <Notes on the next war : a serious topical letter>, Esquire Magazine v.IV: no.3, 1935년 9월 1일 기고문 중[8] 몸젠의 '칼과 괭이'의 비유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9] 1944년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이틀에 걸쳐 열린 시카고 일리노이주의 공화당 전당 대회 전체 발언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Older men declare war. But it is youth that must fight and die." - Herbert Hoover, <Addresses Upon the American Road>, 1946, p.254[10] 출처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발언이다. 이 말을 가장 직접적으로 언급한 곳은 곤도 다카히로 지음·박경희 옮김의 <역사교과서의 대화> 초문 17페이지에 나오는 인용문이다. 즉 러셀이 말한 것이라고 인용한 책만 있을 뿐, 러셀이 직접 이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11] 우선 <교육과 사회체제>라는 제목의 번역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유사한 저작은 1932년에 쓰인 <Education and the Social Order>로 <교육과 사회체제> 또는 <교육과 사회질서>라고 알려져 있으나 모두 임의로 번역된 제목뿐이다.[12] 존 F. 케네디가 한 명언으로 유명하나 우주전쟁의 작가인 웰즈가 1936년작 <다가올 세상>에서 몇십 년 먼저 쓴 표현이다.[13] "In war there is no second prize for the runner-up." - Robert Debs Heinl Jr., <The dictionary of military and naval quotations>, 1966, p.338[14] 스웨덴의 정치가.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냈으며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정책을 마련했다. 1986년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당했다.[15] I've been where you are now and I know just how you feel. It's entirely natural that there should beat in the breast of every one of you a hope and desire that some day you can use the skill you have acquired here. Suppress it! You don't know the horrible aspects of war. I've been through two wars and I know. I've seen cities and homes in ashes. I've seen thousands of men lying on the ground, their dead faces looking up at the skies. I tell you, war is Hell! [16] 1879년 미시건 사관학교 졸업반 연설에서.[17] 국내에는 마지막 구절을 "마지막은 당신이 빌어야만 끝난다."로 오역한 버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원본인 "Comincionsi le guerre quando altri vuole, ma non quando altri vuole si finiscono."(Wars begin when you will, but they do not end when you pleas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please' 를 '원하다'가 아닌 '빌다'로 잘못 번역한 것인데, 오히려 오역의 적절한 어감 덕분에 국내 웹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18] 종군 기자. <War Is a Force That Gives Us Meaning>에서.[19]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신부.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p.214에서.[20] 헤도도토스 저술의 "역사"에서 리디아 국왕인 크로이소스가 한 말이다.[21] 당나라의 시인. 칠언절구 <기해세(己亥歲)>의 마지막 구절.[22] 전쟁! 장점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23] 성룡의 러시 아워(영화) 등에서도 나온다. 잭 블랙도 불렀다.[24] 1차 대전에서 전사한 아들의 묘비명으로 지은 시이다.[25] 출처는 여기[26] 뜻은 '천황 폐하 만세'.[27] 즉 카미카제로 자폭할 때[28] 2차 대전 당시 제로센 조종사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의 말을 남겼다.[29] 해석 : "쏘지 마세요! 나는 독일인이 아닙니다! 체코 사람이에요! 누굴 죽인 적도 없어요! 나는 체코인입니다!" /그 직후,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미군은 이들을 전부 사살한다.[30] 미국 공군 장병과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B-21 폭격기 이름 공모전을 했을 때 나온 이름 후보 중 하나다. 짐작이 가다시피 '이런 거 안 만들어도 미국은 충분히 강하니, 세금으로 때워진 예산을 공공 의료, 과학 연구, 공교육 같은 데 좀 써 봐라' 하는 뉘앙스다.[31] It has been forty years. Even the Vietnamese veterans, we avoid talking about the war. people sing about victory, about liberation. They're wrong. Who won or who lost is not a question. In war, no one wins or loses. There is only destruction. Only those who have never fought like to argue about who won or who lost.[32] 스탈린이 독일에 포로로 잡힌 장남 야코프 문제로 상의할 때 한 말로 히틀러 못지않게 잔혹했던 독재자인 그조차도 독소전쟁 당시 참상에 학을 땠다.[33] 언제라도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는 국방 병력.[34] 이 발언이 나온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상비군은 국민군이 아닌 용병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구 평화론의 이 예비 조항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군대가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기보다는 전쟁으로 돈벌이가 되는 구조 자체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35]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어머니로 어린 시절 푸틴에게 했던 말이다. 호모(母)견자 푸틴[36] 독소전쟁 당시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의 생존자로 친정 식구들 대다수가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남편 역시 팔을 잃었다. 그럼에도 적군인 독일군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당시 어린 푸틴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고 하며 레닌그라드 공방전으로부터 정확히 80년 후, 독일이 했던 전술을 똑같이 써먹었다.[37] 굶어 죽든 전쟁으로 죽든 결국 죽는다는 의미[38] 군국주의 국가는 '병(군사력)'을 앞세우기에 '식(경제력)'을 도외시하게 되고, 이는 곧 '신(믿음)'의 상실로 이어진다. 앞의 문장에 이어서 보면, 전쟁이나 경제난으로 국민들이 죽더라도 국민들의 신뢰가 있으면 나라는 존속할 수 있지만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강하고 부유한 나라라도 무너진다는 의미.[39] 워털루 전투 중 적의 항복 요구에 대한 대답. 다만 이렇게 격식을 차려 깠다는 이야기와 대놓고 단말마적으로 X까!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공존한다.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영화 워털루에선 후자의 모습으로 등장. 빅토르 위고는 자기 소설에 워털루 전투를 묘사하면서 이 한마디를 가리켜 프랑스인이 한 말 가운데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40] 1914년 10월,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나온 표현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I adore war. It’s like a big picnic without the objectlessness of a picnic. I have never been so well or so happy. Nobody grumbles at one for being dirty. I have only had my boots off once in the last 10 days, and only washed twice."[41] John Jones, <Balliol College: A History, 1263-1939>, Oxford University Press, p.249[42] 영국의 시인. 이 말을 남기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사실 산업화 이후 본격적인 전쟁인 1차 대전 이전, 그러니까 현대의 전쟁관이 생기기 이전의 전쟁관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이전까지의 전쟁관은 귀족 같은 엘리트들이나 참여하는 목숨을 건 스포츠에 가까웠고 유럽 왕족 대부분이 친척 관계라 승패가 어느 정도 보여지면 협상으로 끝냈다. 즉 현대전처럼 국가 총력전의 개념이 아니었다. 실제로 1차 대전 개전 시 해를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고, 심지어 크리스마스를 전쟁터에서 맞게 되자 그날은 전투를 멈추고 적군과 함께 놀기도 했다. 그러다 참호로 인해 전쟁의 잔혹성과 총력전 개념이 생긴 것이다.[43] 카타리파 학살 때 나온 말.[44] Michael sherry, <The Rise of American Air Power : The Creation of Armageddon>, 예일대학교 출판부, 1987, p.408[45] 이 말처럼 본인도 패전이 확정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46] 실제 히틀러가 한 말로서, 기 사예르의 회고록 잊혀진 병사에도 위 구절이 인용된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인도주의적인 태도를 종종 보였다.[47]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을 치르던 세묜 티모셴코가 병력 증원요청을 하자 이를 거부하며.[48] 이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레마르크가 한 말이다.[49] 회고록에서 도쿄 대공습에 대해 표현한 부분으로 위의 무고한 방관자 발언과 더불어서 총력전이 민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도쿄 시가지는 관동 대지진 이후 난잡한 복구 계획 때문에 민간인 지역과 군수 공장이 뒤섞여있는 복잡한 구조라 그의 말이 사실이기도 하였다.[전문] 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일가친척 조립 라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손수레에 순서대로 실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In Japan they would be set up like this: they’d have a factory; and then the families, in their homes throughout the area, would manufacture small parts. You might call it a home-folks assembly line deal. 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These would be manufactured right in the same neighborhood. Then Mr. Kitagawa from the factory would scoot around with his cart and pick up the parts in proper order.) [50] 1941년 7월 라디오 연설에서 한 발언. 실제로 이 시기에 붉은 군대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크게 격파하며 승승장구하던 나치 독일군은 불과 2년 만에 동부전선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쿠르스크 전투 참고. [51] 실제로 셔먼은 무자비한 전술과 파괴 등으로 남군의 전투 수행 의지를 상실시키는 데 기여했다.[52] 그가 남긴 명언으로 유명하나 확실하지 않다.[53] 1차 대전 종결에서부터 2차 대전 발발 직전까지의 기간.[54] "I'll tell you what war is about. You've got to kill people and when you kill enough of them, they stop fighting." Kenneth D. Rose, <One Nation Underground: The Fallout Shelter in American Culture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뉴욕대학교 출판부, 2001, p.20[55] 프랑스 혁명 전쟁, 나폴레옹 전쟁.[56] 프랑스 제1제국의 정복[57] 마렝고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프리틀란트 전투, 바그람 전투에서의 승리.[58] 실제 히틀러가 한 발언이었으나, 본인은 나치에 저항하는 폴란드를 비롯한 점령국 시민들을 폭압적으로 지배하고 학살을 자행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국민돌격대를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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