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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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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위)과 서양(아래)의 차 문화.
1. 개요
2. 명칭
2.1. 외국어 명칭
3. 유래
4. 각국의 차 문화들
4.1. 동아시아
4.2. 인도권
4.4.2.1. 러시아 차 문화의 역사
4.4.2.2. 러시아 차 문화의 특징
4.4.2.3. 러시아 차의 국산화와 레몬티 문화
5. 차의 종류
5.1. 차
5.1.1. 제형에 따른 분류
5.1.2. 대만 10대 명차
5.2. 대용차
6. 차를 우리는 방법
6.1. 냉침법
6.2. 온침법
6.3. 중간
6.4. 후발효
7. 다기 선택법
7.1. 재질
7.2. 형태
8. 관련 어록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tea)는 차나무 잎을 비롯한 식물성 재료를 에 우려 만드는 음료이다.

찻잎으로 우리는 허브 특유의 은은한 으로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긴다. 차를 통해 비타민미네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으며, 식물의 대사산물인 플라보노이드(flavonoid)가 풍부하여 항산화 효과가 있고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특히 카페인, 카테킨, 테아닌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테아닌은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어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편[1], 카페인이 강한 찻잎을 모아 영국에서 브렉퍼스트 티처럼 이른 아침에 잠을 깨는 용도로 마시기도 한다. 차는 커피와는 다르게 카테킨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카페인이 체내로 흡수하는 것을 줄여주기 때문에, 커피보다는 카페인 부작용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카테킨은 폴리페놀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폴리페놀은 항산화 물질로서 신체 전반적인 건강과 혈관, 피부 등에 도움을 준다.


2. 명칭[편집]


'차(茶)'라는 것은 원래는 차나무와 그 잎만을 가리켰다. 소나무, 대나무처럼 차도 원래 차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다. 차나무는 본래 키가 3 ~ 4 m 남짓한 교목이지만(대엽종은 15 m까지) 가지치기를 하고 잎을 하도 많이 따다 보니 1 m 남짓한 크기가 되었다. 원산지에서는 천년 묵은 차나무 숲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차나무는 전부 아름드리 나무다.

그런데 차나무의 잎(찻잎)을 우려서 마시기가 문화로 자리잡다 보니 찻잎 우린 물까지 그냥 차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중에는 차나무 잎이 아니라 풀잎이나 꽃, 뿌리 등 식물성 재료를 우린 물도 습관적으로 '차'라 부르게 되었으니, 보리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유자차율무차 같은 용법과 같이 그냥 '식물성 재료를 우린 음료수'를 전부 싸잡아서 일컫는 명칭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대추차, 인삼차, 생강차 등 음료는 원칙적으로는 대추탕, 인삼탕, 생강탕이 되어야 하고 식품분류상으로 차가 아니다. 하지만 관습상 부르던 언어의 의미확장을 존중하여 이를 대용차(代用茶)라 부른다. 원래 이런 음료들은 우린 물, 한자로 (湯)[2]이라 부르는 게 맞으며, 마찬가지로 커피, 마테차도 원의로 따지면 차가 아니다. 원칙적으로 차나무의 잎을 우려낸 엽차, 말차, 홍차 등만 차로 취급하며, 나머지에 차란 단어를 붙일 때엔 원칙상 대용차라 한다.[3]

조선시대에도 정약용이 아언각비(雅言覺非)를 쓰면서 "원래는 차나무 잎을 우린 것만 차라고 불러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탕(湯)이나 (丸), 고(膏) 처럼 먹는 방법으로 착각하여 한 가지 재료를 우린 것을 모두 차라고 부르니 생강차, 귤피차니 하는 것이 나왔다." 하면서 지적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식물성 재료를 우려낸 음료에 '티(tea)'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커피한반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민간에서는 이를 양탕국이라 불렀으나 왕실에서는 가배, 또는 가배차라고 불렀다.[4] 여기에서도 탕과 차의 의미를 혼용하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정약용 시절보다 의미가 더욱 넓어져 여러 가지 재료를 섞었거나, 혹은 우려내지 않고 가루를 물에 풀었더라도 '식물성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료수'를 적당히 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2.1. 외국어 명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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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테(te)'계열과 '차(cha)' 계열.

한중일 발음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한자다. 한국어로도 '차'이지만, 일본어로도 '차(茶, cha)'라 읽으며, 표준중국어로도 '차(chá)'라 읽는다. 광동어 발음도 '차'에 가깝다. (caa4) 한국어에서 茶의 독음은 '차'와 '다' 2가지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는 茶의 한자음을 '다'만 인정하고, '차'는 고유어로 취급한다. 문서 참고. 다만 일본어에서는 앞에 미화어 'お'를 붙여 '오차(お茶, ocha)'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5] 베트남어에서는 '짜(trà)' 혹은 '쩨(chè)'라는 말을 쓴다. 중국 푸젠성에서 쓰는 민남어 발음이 '떼(tê)'로 차이가 있는데, 서유럽 쪽에는 이쪽 발음이 퍼져서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쓰이는 발음과 차이가 있다.

한자 문화권 밖으로 벗어나면, 차는 태국어로도 '차(ชา)'라고 쓰며, 장음이어서 길게 '차-'라고 읽는다. 타갈로그어(tsaá)나 벵골어(চা, cha)도 비슷하게 '차'라는 말을 사용한다. 포르투갈어로는 차를 '샤(chá)'라고 하는데, 이는 마카오를 통해 광동어 발음(caa4, 차)이 유입된 것이다. 영어에서도 이쪽에서 유래한 cha라는 표현이 있으나 잘 쓰지 않는 표현. 루마니아어로도 차를 '샤(șa)'라고 한다.

한편 중국의 차가 페르시아어에서는 '처이(چای, chây)'라는 표현으로 전해졌는데, 인접한 중동중앙아시아, 인도, 그리고 러시아 등 동남쪽 유럽에서는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어 '차이(чай, chay)'나 우즈베크어 '처이(choy)', 터키어 '차이(çay)', 그리스어 '짜이(τσάι)', 아랍어 '샤이(شَاي, shāy)', 힌디어 '짜이(चाय, chāy)'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앙아시아와 인도 일대도 차를 많이 마시다 보니 차 문화가 발달했고, 그러다 보니 아예 '차이' 혹은 '짜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이 지역 스타일의 차를 일컫는 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서유럽에서는 푸젠성 지역에서 쓰이는 방언인 민남어(閩南語) 명칭인 '떼(tê)'에서 유래한 발음이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푸젠 혹은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네덜란드 상인으로 인해 전래한 이름이다. 네덜란드인이 민남어 명칭을 쓰게 된 연유에 관해서는 네덜란드인이 푸젠 지역에서 차를 직접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동남아 지역을 거쳐[6] 이 이름이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 계열의 대표적 명칭들로는 영어의 '티(tea)'나 네덜란드어의 '테이(thee)', 프랑스어의 '테(thé)', 독일어의 '테(Tee)', 스페인어의 '떼(t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인어(teh)에서도 이 명칭을 사용한다.

폴란드어의 'Herbata'와 리투아니아어의 'Arbata'는 특이하게 허브를 어원으로 한다. 차가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시절에 맨 처음 전래되었을 때는 약초의 일종으로 여겼기 때문.

미얀마어에서는 차를 '러페(laphet)'로 부른다. 이유는 하단의 원산지 단락 참조.

3. 유래[편집]


The tea-plant, a native of southern China, was known from very early times to Chinese botany and medicine. It is alluded to in the classics under the various names of Tou, Tseh, Chung, Kha, and Ming, and was highly prized for possessing the virtues of relieving fatigue, delighting the soul, strengthening the will, and repairing the eyesight. It was not only administered as an internal dose, but often applied externally in form of paste to alleviate rheumatic pains. The Taoists claimed it as an important ingredient of the elixir of immortality. The Buddhists used it extensively to prevent drowsiness during their long hours of meditation.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차나무는 일찍이 중국의 식물학과 한방에 알려져, 도(筡), 설(蔎), 천(荈), 가(檟), 명(茗)[7]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고전에서 언급되었다. 차는 피로를 줄이고 영적인 즐거움을 주며 의지력을 강하게 하고 시력을 회복시키므로 높이 평가되었다. 사람들은 차를 음용할 뿐만 아니라, 류머티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연고로 도포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가(道家)에서는 이를 불멸의 영약에 들어가는 주성분이라 믿었다. 불교도들은 오랜 시간 명상하는 동안 졸음을 막기 위해 이를 널리 사용하였다.

오카쿠라 덴신, 《차의 책(The Book of Tea)》Chapter II. The Schools of Tea 中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정확히는 오늘날 중국과 미얀마 사이의 국경에 해당하는 지대이다.[8] 신농씨가 물을 끓이다가 물에 찻잎이 빠져서 먹기 시작했다는데, 물론 이걸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전한 경제의 유적에서 마른 찻잎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300년 전부터 이미 상류층에선 차를 마시기 시작한 듯하다. 이때는 荼[9]라는 자형으로 기록했다. 오늘날의 윈난성쓰촨성에서는 전한 시대쯤부터 많이들 마셨다고 한다. 이 당시의 '도'는 지금의 차보다 농도가 훨씬 진하다보니 매우 썼으며, 여러 약초를 함께 넣어 우려내 상비약 겸 각성제 겸으로 마셨다고 한다. 향토 특산물에 불과했던 '도'는 진나라의 천하 통일과 함께 중국 각지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주로 귀족층이 즐겼다고 한다.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러 온 서역 승려 중 일부도 잠을 쫓는 용도로 차를 활용했다고 전해진다.[10]

민중들에게 확산된 것은 당나라 이후다. 당나라 이전, 남북조시대에 북조에서는 차를 낙노(酪奴) 또는 수액(水厄)이라고 불렀다. 낙노라는 명칭은 유제품의 노예라는 뜻이고 수액은 물난리란 뜻이다.[11] 이처럼 고대 중국 북부에서 차는 유제품보다 못한 음료로 취급을 받았는데, 짐작하다시피 이는 중국 북부를 지배하던 유목민들이 옛날부터 유제품을 즐겨마셨기 때문이다. 당나라로 중국이 통일되고 불교가 융성하면서, 다성茶聖 육우가 <다경茶經>을 저술해 최초로 체계적인 다도를 퍼뜨리며 스님들이 마시던 차도 민간에까지 퍼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송대에 이르러 차도 전매품목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후반부터 마시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초창기에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고가의 차를 일부 계층이 마실 수 있었고, 통일신라 흥덕왕 시기 828년 12월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대렴이라는 사람이 차나무 씨앗을 들여와 재배를 시작하면서부터 차 마시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다만 이 시기의 음다법이라는 것이 차만 맑게 우리는 것이 아니라 곡물과일, 채소 등등을 집어넣어 처럼 먹는 것이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차 문화를 수입해 온 한국 또한 이런 식으로 먹었다. 이후 차 문화를 정리하면서 맑게 우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소금은 뿌렸다.


4. 각국의 차 문화들[편집]



4.1. 동아시아[편집]


중국을 중심으로 차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고, 지금도 차는 아시아산, 그 중에서 중국산을 최고로 친다.


4.1.1. 한국[편집]


한국은 삼국시대 때 부터 차를 마셨다. 가장 먼저 차가 전래한 곳은 백제로 추정되며 신라에서도 차를 마실 때 쓰는 도구들이 출토된다. 당나라에서 수입하는 비싼 차들은 선물이나 하사품으로도 사용했는데 신문왕에게 들려준 설총화왕계경덕왕에게 도솔가를 지어 바치고 차를 하사받은 월명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冬十二月校勘, 遣使入唐朝貢. 文宗召對于麟徳殿, 宴賜有. 差入唐迴使大廉, 持茶種子來, 王使植地理山. 茶自善徳王時有之, 至於此盛焉.

3년(828년) 겨울 12월에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당 문종(文宗)이 사신을 인덕전(麟德殿)으로 불러서 보고, 잔치를 열어주며 지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물품을 하사하였다. 이때 당에 갔다 돌아온 사신인 대렴(大廉)이 차나무 종자를 가지고 왔는데,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행하였다.


신라에서 차 자체는 7세기 선덕여왕 때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하고 활성화한 시기는 828년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흥덕왕 3년에 사신으로 당나라를 다녀온 대렴(大廉)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자락에 심으면서부터이다. 이 때부터 차 문화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하동군 쌍계사 인근에는 차나무 시배지가 있으며, 2012년에는 하동 시배지의 차나무를 경주시 흥덕왕릉에 심는 행사가 있었다.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다실 유적으로는 화랑들의 다원 유물인 강원도 강릉시 한송정(寒松亭), 연못이 있었던 곳을 내다보면서 운치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경주시 남산 다연원(茶淵院)이 있다.

고려시대 때는 불교가 융성하면서 차문화도 더욱 성행하였는데 차밭을 사찰에서 관리하는 등 차문화와 불교문화가 적잖게 엮기기도 했다. 말차(가루차)도 성행하여 차를 가는 데 사용하는 맷돌인 다마(茶磨)가 있었고 성종이 손수 차를 맷돌로 갈았다거나 이인로의 승원다마시(僧院茶磨詩), 또는 이규보가 다마를 선물받았던 사례 등이 있다. 또한 개성에서 다마 유물이 출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관청으로는 다방(茶房)과 다군사(茶軍士)를 두었고 사헌부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다시(茶時)를 가지기도 했다. 귀족들은 다원(茶院)에서 차를 즐겼고 일반 백성들도 다점(茶店)에서 차를 사거나 마실 수 있었으며 휴대용으로 차를 담아 다닐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인 '차례(茶禮)' 역시 유교 도래 이전에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식이었다.

조선시대 때는 숭유억불로 불교를 억압하면서 차문화가 다소 위축되는 시기를 겪기도 했다. 차는 중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승려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향유하던 문화였는데, 조선왕조가 유교를 장려하고 사회에서 불교색을 빼려 하면서 차문화 역시 덩달아 억제를 당한다. 예를 들어 차례는 원래 조상의 신위에 차를 올리는 제사였는데 영조 이후부터는 차례를 지낼 때도 차 대신 이나 숭늉을 쓰도록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며, 관청 다방[12]이 이조에 소속되어 세종 29년에는 사준원으로 승격되고, 특히 사헌부를 비롯한 관청에서 다시(茶時)와 야다시(夜茶時)를 갖는 등 억압 속에서도 사찰과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계승되었다. 조선시대 후기로 이르면 정약용, 신위, 김정희, 홍현주, 이상적 등의 인물들이 차를 즐기기로 유명했으며 초의선사, 혜장, 초의, 범해 같은 다승(茶僧)들이 널리 알려졌다.

현대에는 차의 범위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넓어졌으므로 어떻게 부르든 상관 없지만, 전통적인 뜻에서 차라는 것은 차나무 잎을 우린 물만을 차(茶)라고 부르고 나머지는 탕(湯)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사람들도 보리차, 구기자차, 오미자차 같이 차나무 잎 이외의 식물이나 과일과 열매를 우리거나 달여 마셨으며, 특히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음료가 크게 발달하였다.[13] 이러한 문화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커피가 들어왔을 때도 궁중에서는 가배차, 민간에서는 양탕국이라고 부르며 차의 일종으로 불렀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과거의 차와 숭늉 자리를 커피와 술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현미녹차, 보리차, 유자차, 옥수수 수염차 같이 대중적으로 마시는 차도 있지만 과거에 차문화가 비교적 위축을 겪는 동안에는 대신 술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점도 있고, 수질이 좋아서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물을 끓여 마셔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원한다면 충분히 차를 마실 수 있었을 텐데도 고종이 커피 애호가였던 덕분에 궁중 음료로 차 대신 커피를 사용한 점이나 한국전쟁 이후부터 미국과 교류가 활발해져 스타벅스 등 커피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유입되니 커피 전문점이 매우 성행하고 심지어 2015년에는 한국인들이 커피를 김치와 쌀밥보다도 많이 섭취한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하는 등[14] 한국 사람들의 입맛 취향 기준으로는 차보다 커피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그럼에도 동시에 한국의 차 수입량이 2009년 400톤 가량에서 6년이 지난 2015년 800톤 가량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차 종류로는 찻잎을 말린 형태인 잎차를 많이 마신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려시대 때는 가루차도 많이 즐겼으나 보관이 까다롭고 변질이 잘 되는 가루차 특성상 점점 인기가 떨어지고 그 자리를 잎차가 꿰찬 것이다. 그래도 요즘엔 다시 가루차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도 하다. 발효차는 자연 그대로의 향기와 색을 즐기는 이유 및 차나무 생육 환경상 발효하기 적당한 찻잎 채취가 어려워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요즘에는 발효차를 향한 관심과 함께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국의 주요 차 생산 지역은 제주도, 전남 보성, 경남 하동 등지이다. 지구온난화로 차를 재배할 수 있는 북방 한계선이 남한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군까지 올라왔으나, 동해안은 비슷한 위도인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따듯한 정도이기 때문에 고성군보다 남쪽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륙 지방같은 경우는 기온이 고성군보다도 낮아서 차를 재배하기 힘들다. 이런 지역에서는 겨울마다 잎이 냉해를 입어 떨어지고 봄에 다시 나는데 이래서야 제대로 된 차를 만들기 힘들기 때문.

고려시대 단차(團茶)를 복원하기 위해 연구, 재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하다. 뽀얗고 부드러운 거품 매력적…천년 전 '고려 단차' 재현

한국의 전통 차와 음료들은 아래 틀에서 확인할 수 있다.






4.1.2. 중화권[편집]


중국은 차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민족이 많은 만큼 차의 종류도 다양하며 대다수가 차를 즐긴다. 사실상 기호식품의 단계를 넘어서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타지로 유학이나 여행 등을 간 중국인의 경우 찻잎이나 차 도구 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도 중화권의 차는 단순 기호품이 아닌 생필품의 영역으로 이 정도의 차 사랑을 보여주는 나라는 영국 정도.

중국은 석회질 토양으로 인한 석회수나 황토가 섞인 물이 많아서 차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 또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혈중 콜레스테롤이나 혈압이 높은 사람이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몸의 좋은 변화를 느끼기도 하는데, 이를 보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중국인들도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중국 광동성의 경우 기름진 음식이 많은 특성 때문에 식당에서 음식을 고르기 전에 차를 먼저 고르도록 하며, 북경 지역에서는 비싼 차를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남은 찻잎을 요리로 사용하는 식단을 만들기도 하는 등 생활 속에서 차가 스며들어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식당을 가도 생수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고[15], 그 대신 따뜻한 차가 공짜로 나올 정도로 중국에서 차는 기호품이 아니라 한국에서 물 마시듯이 마신다. 식당에서 마시는 차는 노란 빛을 띄는 비교적 맑은 차를 선호한다. 대신 차를 마시는 게 일상이라 그런지 맥주탄산음료도 미지근하게 마시는 경향이 있을 정도. 음료를 미지근하게 마시는 습관은 중국 전통 의학 관점에서 차가운 것을 자주 마시면 몸이 쉽게 늙는다는 속설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젊은이들은 미국/한국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찻집보다는 커피숍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16]

경제학적인 면에서 차는 식용으론 별 가치가 없고 기호/사치품으로만 필요하지만, 거대한 국토가 해운, 도로 교통망으로 연결되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일되기 시작하자 중세(특히 송나라)적 시장 경제에서도 차를 하나의 상품으로 유통하고 이문을 내는 게 가능해졌다. 남부에서 생산한 차를 북부 지방으로 판매하고 그 대금으로 식량을 사먹는게 가능했던 것.

이러자 농민들은 당장 먹을 수는 있지만 경제적 가치는 낮은 식량작물(이라든가...) 대신 비교적 좋은 값에 내다 팔 수 있는 환금작물인 차를 상업적 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고, 세월이 흘러 재배경력이 쌓이자 차 재배에 유리한 기후를 가진 지역을 중심으로 개간이 활발해졌다. 점차 노동집약적인 대형농장들도 등장했고 자신의 농장에서 만든 차에 이름을 붙여서 다른 지방에 팔아 떼돈을 버는 거농, 거상 등도 많이 등장했다.

18세기 이후에는 서구와의 교역도 매우 활발해 졌고, 19세기 초반 무렵 품질 좋은 중국 남부지방의 차는 영국인들이 환장하던 제품이었다. 당연히 동인도회사는 차를 수입하느라 막대한 을 썼다.[17]

그리하여 무역적자가 심각해지자, 영국은 (다른 식민지에선 인기가 높았던) 자국 공장에서 만든 면직물이나 모직물 등의 공산품을 중국에 수출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열대지역인 중국 남부의 고온다습한 기후, 그리고 엄청나게 낮은 인건비 덕에 영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했던 것이다.[18] 뭘 해도 빚을 지게 되는 영국은 이런 무역적자를 메꾸기 위해 아편을 중국에 팔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더러운 전쟁으로 칭해지는 아편전쟁의 원인이 된다.

1840년에 벌어진 1차 아편전쟁에서 어이없게 패배한 청나라홍콩영국에 할양해야 했으며, 망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중국은 근 150여년간 기나긴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중국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다시 발돋움 하기 시작하는 건 정치가 안정되는 1991년 무렵이니... 좋은 품질의 차의 재배와 수출은, 아편 수입으로 돌아와, 국가를 파탄에 이르게 했고, 이는 수많은 침략 전쟁과 내전으로 이어졌다. 청조는 망했고 근대화 성공 이후에도 내부적인 갈등과 분열이 자꾸 이어졌다. 그리고 2차례 세계대전(물론 다행히도 1,2차 세계대전 모두 중국이 승리했지만.), 다시 내부의 혼란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은 음료다.

해외 문화에 비교적 일찍부터 개방적이었던 푸젠성 지방의 차가 특히나 발달한 편이다. 우롱차의 기원지도 일반적으로 푸젠성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롱차를 더욱 즐겨 마시는 곳은 대만이며, 실제 대만에는 우롱차만을 출하하기 위한 차밭들도 여럿 존재한다. 중국의 우롱차와 다른점은 대만산은 줄기가 붙은 잎사귀 2개를 동그랗게 말아 공예차 느낌을 내는 반면(모양은 중국산에 비해 예쁘다) 중국은 줄기가 붙은 잎을 쓰긴 하지만 제다 과정중 줄기의 성분을 찻잎에 스미게 한 뒤, 일일이 떼어낸다고 한다.(모양은 대만산에 비해 별로 예쁘지 않다)

또한 이러한 차문화의 발전을 위해 2016년부터는 관료에게 주는 선물은 죄다 뇌물로 취급하지만, 차만은 뇌물로 취급하지 않으니 얼마든지 주고 받으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하며, 비싼차를 선물하며 이 신문기사 스크랩한것을 보여주며 받아도 괜찮다고 찔러주는 경우도 잦아졌다고 한다(...)

차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최근에는 커피에게 밀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주요 차 생산지인 윈난성에서 차밭이나 차 자생지가 커피밭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벌어져 차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타이완의 경우 지리적인 위치 덕분에 비교적 일찍 서구화 됐기 때문인지 대륙인들이라면 경악을 하는 밀크티가 오히려 굉장히 발달해 있다. 타피오카 펄을 쓴 버블티의 본고장이기도 하며, 지금은 한국 회사로 인수된 공차 등 다양한 밀크티 프랜차이즈가 있다.


4.1.3. 일본[편집]


엽차(잎차)와 말차(가루차)를 혼용하지만 일본식 전통 다도에서는 주로 말차를 사용한다. 일본 다도의 조상이라 일컫는 센노 리큐로부터 내려온 다도에서 쓰는 말차를 특별히 '와비차'라고 부른다. 센노 리큐에서 유래한 다도 유파인 우라센케와 오모테센케의 엄격한 녹차예절 이외에도 홍차를 대중적으로 소비한다. 마트에서도 다양한 홍차 블랜드 음료와 인스턴트 제품을 판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부터 차를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대당 유학승 에이타다(永忠. 영충)이 사가 천황에게 차를 대접한 것이 일본 최초의 음다(飮茶) 기록이며 에이타다 외에도 유학승 사이초(最澄. 최등)이 당으로부터 차 씨앗을 가져와 차의 국산화를 시도하는 등, 여러 유학승들이 일본 차 문화의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 차 문화는 귀족 계층과 사찰을 중심으로 소수만이 향유하던 것이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가 되면, 유학승 에이사이(榮西. 영서)가 차 씨앗을 가져와 재배하고 말차 문화를 전파해 크게 유행했다. 무사들 사이에서 차 문화와 다회가 큰 인기를 끌어 차 문화가 확산되었다. 이후, 선종의 메다옹 선사로부터 찻잎을 우려 마시는 전차도가 퍼졌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잎차 문화는 선불교와 관계가 깊다. 전차도의 주요한 정신은 '나눔'으로서 비싼 차를 나누어 주되,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싼 값으로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말차(와비차)를 다루는 일본 다도는 '일기일회'라는 '당신과 만난 이 순간은 내 일생에서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중요한 순간이다' 하는 정신을 담았다고 한다. 다도를 통한 예절의 기본이자 정수로 통한다.

또한 차를 마시기 위해 꾸며놓은 정원을 '로지'라고 부르는데 와비사비(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한) 정신을 담아 와비차의 정신 '깨달음'을 정원 곳곳에 담았다고 한다.

다도를 위해 조성한 다실의 입구는 '니지리구치(躙り口)'라 부르는 좁은 문으로, 누구든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며 이 공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한다.[19] 니지리구치를 통과하면 다실 입구에서는 그 날 다회를 상징하는 문구를 적은 족자와 계절 꽃을 아름다운 꽃병에 담아 손님들에게 선보인다.

전국시대의 다도는 단순한 차 마시기를 넘어 정치적인 회의를 하는 것도 겸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영주가 가진 차솥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 정도를 넘어서 가신들을 규합하고 이들과 정치를 논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차솥을 내놓으라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격분해 차솥을 깨버리고 자폭해 버렸다는 일화도 그 차솥이 단순한 차 마시는 도구를 넘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좀 과장하자면 왕에게 옥새를 내놓으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

굳이 다도가 아니더라도 일본에서 녹차는 매우 대중적인 음료가 되어서 페트병에 담긴 병입 녹차 제품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다.

한 해의 마지막에 수확한 찻잎을 일단 쪄서 말려 일반적인 센차(煎茶)를 만들고 다시 바싹 볶아서 우려내 마시는 호지차(ほうじ茶)라는 녹차도 있다. 찻잎은 어린 잎일수록 고급이고 잎이 커지고 억세질 수록 하품이고 맛이 떨어지는데, 늦게 수확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차를 커피처럼 볶아서(로스팅) 구수한 향과 마일드한 풍미를 즐긴다. 가장 하품의 찻잎을 쓰기 때문에 당연히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물 대신 보리차를 마시듯 호지차를 식수 대용[20]으로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단일한 음료가 아닌,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 오차즈케라고 한다. 취향에 따라 찻물에 말은 밥에 후리카케 를 뿌려 먹기도 한다. 중국은 한국에서 1쇄차라 불리는 백차를 밥에 말아 먹는 반면 일본에서는 녹차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

일본에서는 차 문화와 라이벌 격인 커피 문화의 경우 드립 커피의 수제 추출 형식을 일종의 다도로서 응용하여 커피도 차 처럼 기교를 만들어 냈다.[21]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커피와 차는 어느 한 쪽이 더 강세를 보인다기 보다는 비교적 비슷비슷하다.


4.2. 인도권[편집]



4.2.1. 인도[편집]


원래 인도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약초 같은 용도로 썼을 뿐, 음다 문화는 발달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식민지였던 인도 제국의 날씨가 차를 기르기에 적합한 것에 주목하고 중국 푸젠성에서 차나무 묘목을 몰래 빼돌려 대규모 차밭을 조성하면서, 본격적인 인도 홍차의 시대가 열렸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종이 아삼종. 현재 이 지역의 생산량은 전 세계 홍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인도의 홍차 문화에는 영국식 홍차 문화와 향신료를 사용하는 자국의 식문화가 결합되어 있다. 홍차는 주로 밀크티로 마시는데, 여기에 향신료를 첨가하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차를 짜이라고 부르며, 주로 인도식 밀크티를 일컫는다. 자세한 건 짜이 문서로. 짜이는 길거리 노점 등에서 매우 저렴하게 팔고 있으며, 종이컵 대신에 1회용 토기 찻잔을 써서 마신다. 마신 후에는 찻잔을 바닥에 던지고 밟아서 부수는데, 종이컵과 달리 환경오염의 우려가 없고 유리컵보다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차문화 때문에, 인도에서는 다즐링처럼 연한 홍차보다는 아쌈 같은 강한 홍차가 사랑 받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차문화는 같은 문화권인 네팔과도 공유한다. 영국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있는 문화인 티타임도 남아있다. 또한 대체로 북인도인은 홍차를, 남인도인은 커피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4.2.2. 태국[편집]


대체로 차를 달고 시원하게 마신다. 일찍부터 프랑스와 교류한 덕분에 블렌딩 티 역시 발달했다. 태국 전통 대표 차인 차옌(ชาเย็น, Thai Tea) 역시 블렌딩 티로서, 달게 마신다. 마트나 편의점에만 가도 엄청난 가짓수의 차를 접할 수 있다.

보통 동아시아에서는 차의 품종이라든가, 발효 정도로 나누는 것과 달리, 태국에서는 유럽식으로 차를 나누기 때문에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전체 가짓수는 더 많은 편이다.


4.3. 영미권[편집]


유럽은 영국과 아일랜드, 후술하겠지만 서유럽과 별도로 차문화가 발달한 러시아와 터키를 제외하면 대부분 차종류보다 커피를 선호하며, 차를 즐긴다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대개 홍차(black tea)를 즐기고 녹차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22] 엽차인 녹차를 보면 무슨 저런 오줌같은 음료가 있나 생각하면서 꺼리기도 한다.[23] 마테차가 녹차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지도.[24] 그리고 처음 차가 보급되었을 당시 뜨거운 물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차를 접시에 덜어내고 식혀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모르고 보면 어린애들이 마시는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이렇게 마시는 곳도 많다.

동아시아와 달리 블렌딩 티가 매우 발달했으며,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유명한 고급 블렌딩 티 브랜드들을 찾을 수 있다. 블렌딩 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동북아시아인들은 찻잎 사이사이마다 캔디나 오렌지 껍질 따위가 들어있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차 소비량은 터키가 압도적으로 많다.터키가 유럽인가...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는 있지만[25]] 2009년 통계 기준으로 터키의 1인당 차 소비량은 7.52kg으로 2위인 모로코의 4.34kg, 3위 아일랜드의 3.22kg에 비해 압도적으로 소비량이 많다. 흔히 알려진 차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영국은 1인당 2.74kg에 불과해 5위에 그쳤다. 출처


4.3.1. 영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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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왕티타임

영국인들은 홍차를 많이 마시기로 유명하다.

원래는 영국인들도 커피를 즐겨 마셨으며, 17~18세기 중반까지는 영국의 국민음료는 단연 커피였다. 당시 영국의 커피는 대부분 오스만 제국에서 수입된 사치품이었으며, 18세기 말에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실론(스리랑카)을 접수한 후에는 실론에서 재배한 커피를 마셨다. 당시 영국 남성들은 대개 가정이 아니라 도심의 커피하우스라는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으며, 커피하우스는 당시 영국 남성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교장이기도 했다. 세계 보험계의 끝판왕으로 취급받는 런던의 로이즈의 시작 역시 커피하우스였다.

그런데 커피 나무에 감염되는 전염병[26]으로 인해 실론의 커피 나무가 전멸해버리자 실론의 커피 농부들은 그 땅에 차를 심었고, 영국인들은 커피 대신에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머지않아 영국 전역의 커피하우스에서는 커피 대신 차를 판매하였으며, 차의 인기가 상승하여 차가 커피를 완전히 대신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영국인들이 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기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으로, 커피의 대용품이니 커피와 같은 방식으로 음용했던 것이다.

문제는 술과 달리 차에는 영국 정부가 과세를 하지 않았기에, 영국인들이 술 대신 차만 마시자 정부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영국 정부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한때는 세율이 119%에 육박하기도[27]했다. 그렇다보니 18세기 후반에는 원래는 서민의 음료였던 차가 오히려 커피보다 더한 사치스런 기호품으로 변질되고 만다.

동일 중량의 보다도 더 비쌌던 찻잎은 물론,[28] 제 차주전자, 도자기 찻잔에 이르기까지 연관된 모든 것들이 고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티타임은 상류 사회의 매너를 과시하는 장이며 사교 문화가 되었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절정에 달아, 어지간한 상류층 여성은 하루 동안 서너 집을 돌며 티타임을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 전통적인 영국식 티타임에 제공되는 샌드위치케이크가 거의 한 입 크기로 작게 잘라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로 생긴 관습이라고.

영국에서는 주로 홍차[29]우유를 넣어 이른바 밀크티를 즐기는데, 차를 맑고 고아한 것으로 여기는 동아시아권에서는 괴악한 취향으로 취급받지만[30], 비율을 잘 조절하면 의외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

밀크티를 만들 때 잔에 우유를 먼저 붓느냐 홍차를 먼저 붓느냐로 출신 계급을 따지기도 한다. 우유를 먼저 넣으면 하층민. 처음 차가 도입되었을 때만 해도 유럽에는 자기 제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 수입 다기 이외에는 대부분 도기로 만든 잔을 사용했다. 재질이 조악한 도기 잔에는 뜨거운 차를 바로 따르면 종종 깨져버렸기 때문에, 찬 우유를 먼저 부어 열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유럽산 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고가품인 자기 찻잔을 먼저 구한 이들은 과시의 목적으로 뜨거운 차를 먼저 붓기 시작했다. '봐, 나는 비싼 자기 잔을 써서 차를 먼저 부어도 문제 없다니까. 부럽지?' 백색 자기는 19세기 후반까지도 여전히 고가품이었고, 결국은 '우유 먼저/ 홍차 먼저'가 상/하류층을 가르는 상징적 행동으로 각인된 것이다. 물론 계층 불문 간단히 머그컵티백 하나 던져 넣는 걸로 때우는 요즘에 와서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뜨거운 홍차에 우유를 붓는 게 반대에 비해 단백질을 더 많이 변성시키므로, 끓인 우유 맛을 원하는가 신선한 우유 맛을 원하는가에 따라 조절해 마실 수 있다. 앗! 시리즈의 '화학이 화끈화끈'에서도 나온 말인데, 여기선 그래서 현명한 화학자는 우유에 홍차를 붓는다고 나왔다.[31]

영국의 차 문화는 여전히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있어, 무슨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날씨가 나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거의 습관적으로 "Put the kettle on (주전자 올리시오, 찻물을 끓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이 포탄이 작렬하는 참호 속에서도 티타임을 가졌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다. 비단 영국이 아니라도 그런 극한상황에 따뜻한 음료가 주는 심리적 안정 효과는 상당하다.

물론 영국군이 티타임을 갖는 중에 적군이 공격을 멈춰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하루 일정한 시각에 티타임을 갖는 것이 일상화된 병사들에게 차를 마시지 못하게 하면 사기가 저하될 것이 자명했기에 영국군 수뇌부는 병사들의 전투중 티타임을 금지하지 않았으며, 적들은 영국군이 티타임을 가질 때를 노려 공격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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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 육군 병사들에게 차를 제공 중인 급양차량.

특히 영국군 전차부대는 노변에 전차를 세워두고 전차병들이 전차 밖으로 나와 차를 준비해야 했기에, 이를 노려 급습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32] 결국 영국군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전차 내부에 차를 끓이는 장치를 설치해 전차병들이 전차에서 나오지 않고도 티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안배해야 했다. 이 온수 공급장치는 오늘날에도 영국 기갑차량 안에는 반드시 설치되는 필수 장비다. 단순히 차만 끓이는게 아니라 전투식량도 데워먹고, 간단히라도 씻을수 있어서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된다. 합동 훈련에서 이 설비를 본 미군이 ‘우리도 저거 달아요’하고 졸라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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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thermal사가 현재 영국군에 납품하는 차량용 급탕기 모델인 RAK 15. 해병대용 RAK 30, 헬리콥터용 RAK 110도 있다.

영국이 2차대전 중에 전 세계로부터 사들인 차의 양은 엄청났으며, 무게로 따지면 총알이나 폭탄보다 차를 더 많이 구매했을 정도다. 영국은 전쟁 중 자기들만 차를 마신 것이 아니라 차를 즐기는 다른 국가들에도 차를 지원했으며, 특히 점령당한 네덜란드에 공군기로 “차 폭탄”(tea bomb)[33]을 떨어뜨려 네덜란드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영국 공군이 2차대전 중 네덜란드에 투하한 차 폭탄의 수는 7만 5천 개였으며, 각각의 “차 폭탄”은 네덜란드인들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힌 종이 포장 안에 네덜란드 동인도령산 차 20그램이 들어 있는 패키지였다.

영국 역시 수질이 나쁘기 때문에 차를 더 즐기는 면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잉글랜드웨일스의 물이 안 좋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섬은 물이 좋은 편.

참고로 영국 영어로 "tea"라고 하면 차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저녁 무렵에 차와 함께 먹는 식사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국 영어에서는 간혹 "차를 먹는다(eat tea)"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사실을 모르면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하기 쉽다.

영국의 끼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머지 끼니들의 명칭도 알아보자면,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하루 세 끼를 먹으며 이를 아침(브렉퍼스트)-점심(런치)-저녁(디너)라 부르는 반면 영국인들은 대개 하루 세 끼를 먹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식사를 한다:
  • 브렉퍼스트: 아침 식사, 대개 오전 6~9시 무렵.
  • 브런치: 브렉퍼스트와 런치를 하나로 퉁치는 식사. 브런치를 먹은 날에는 당연히 브렉퍼스트와 런치는 없다.
  • 일레븐시즈: 이름대로 11시 전후에 먹는, 아주 가벼운 간식. 대개 차나 커피+비스켓 몇 조각 정도로 간소하다.
  • 런치: 대개 정오~오후 1시에 먹는 식사.
  • 티(애프터눈 티): 대개 오후 4시 쯤 먹는 가벼운 식사. 이름대로 차에 곁들여 먹으며 샌드위치나 케익 같은 것[34]이 메인이다. 풍습이나 경제사정 등에 따라 티를 오후 6시 쯤에 먹고 이것으로 하루 식사를 마치는 이들도 많다.[35]
  • 서퍼: 하루의 마지막 식사. 대개 오후 7시 쯤 먹으며, 티를 먹었기 때문에 서퍼의 양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일반적으로 하루 중 중 가장 잘 차려먹는 식사가 저녁이기 때문에 무조건 저녁식사를 디너라 부르지만, 실은 디너는 저녁식사(만찬)라는 뜻이 아니라 하루 중 가장 잘 차려먹는 식사(성찬)를 가리킨다. 영국에선 런치가 디너인 경우가 많으며[36] 이는 영국인이 저녁 무렵에 티를 먹기 때문에 그 다음 밥인 서퍼의 양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차를 워낙 일상적으로 마시다보니, 전 세계에서 오직 영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티스메이드(teasmade)라는 가전제품도 있다.[37] 1930년대에 발명되어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인데, 알람시계와 전기식 차주전자를 합체하여 아침에 시계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남과 동시에 뜨거운 차를 마실 수 있게 준비해준다.


4.3.2. 미국[편집]


미국인들은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인 보스턴 차 사건의 영향으로 인해 차 대신 커피를 즐긴다는 속설이 있으나 사실과는 좀 다르다. 단지 비교적 가까운 남아메리카에서 구입하는 커피가 중국이나 인도 제국에서 구입하는 차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차보다 커피를 즐기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다만 남부에서는 아이스티를 즐겨 마신다. 마치 90년대까지 한국인들이 보리차를 물 대신 마신 것처럼, 아이스티를 물 대신 마실 정도.

미국의 차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립톤의 옐로 라벨이다. 통해 미국의 차 및 아이스티의 역사가 새로이 열렸고, 대중이 차를 즐기는 계기가 되었다.[38]


4.4. 유라시아[편집]


이 지역은 영미권과 다른 양상으로 차가 발전했다. 해로를 통해 차를 수입한 영국과 달리 이 지역들은 중국에서 직접 육로로 차가 소개되거나 중앙아시아의 교역로를 통해 차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몽골, 티베트 일대에서 즐겨마시는 버터차와 몽골식 밀크티(수테차)가 잘 알려져있으며 육로를 통해 차가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녹차나 황차를 구입했으나[39] 자연스럽게 발효된 홍차나 흑차화된 것을 소비하다가 17세기 이후 홍차가 유럽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홍차로 바뀌었다. 또한 본래 중국식 차문화와 달리 사모바르와 같은 독자적인 다구가 발전했다는 특징도 있다. 터키의 경우는 하술하겠지만 처음에는 유럽의 영향으로 차문화가 퍼졌지만 곧 차를 자체생산하면서 현지의 커피문화와 카프카스 일대의 차문화가 섞여 오늘날에 이른다. 중동지역의 차문화는 페르시아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으나 아랍지역은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영향을 받고나서야 차가 널리 퍼졌으며 그나마도 커피가 생산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터키와 달리 차가 커피를 대체하지 못했다.


4.4.1. 이란[편집]


하술할 러시아와 터키의 차문화의 중간경유지이며, 차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도 매우 길다. 또한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상당한 차 생산, 소비 대국중 하나이기도 하다. 터키와 마찬가지로 처이허네(چای خانه)를 골목골목마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이란에서 차는 15-16세기경부터 마시기 시작했으며 특히 사파비 왕조시기 오스만 제국에서 들어온 커피집문화가 퍼지면서 커피집에서 함께 취급하던 차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차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만 들여올 수 있었기 때문에 사치품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점차 이란인들은 커피 대신 차를 선호하기 시작했으며 대략 1830-50년대에 들면 홍차가 커피를 밀어내고 이란의 주류음료가 되었다. 하지만 이란 최초의 차재배는 인도 제국 주재 이란 대사였던 모함메드 미르자 카셰프 알 살타네가 이란 북부의 길란 지방에 1899년 묘목 3000그루를 심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지금도 길란 지방의 라히전은 이란 차의 재배지로 유명하다.

이란의 차문화는 러시아와 터키와 유사하다. 애초에 두 나라의 차 문화 기원이 이란이니까. 사모바르를 쓰는것도 그렇고, 차의 맛을 살리기 위해 우유를 타지 않는 것도 똑같은데 이란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면 바로 차에 설탕을 넣지 않고 입안에 돌처럼 단단한 사탕을 물고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녹여 먹는다는 점이다. 혹은 나버테 추비(Nabât-e choobi)라는 사프란이 들어간 막대사탕을 찻잔에 넣고 휘저어서 녹여가며 마시기도 한다.

이란의 차문화는 또한 아랍과 캅카스, 중앙아시아에도 영향을 주었고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서 좀 더 러시아에 가깝긴 하다) 이쪽에서도 이란과 비슷하게 차를 마신다.


4.4.2. 러시아[편집]


러시아 역시 차 문화가 굉장히 발전한 나라이며 영국과 마찬가지로 홍차를 검은 차(чёрный чай. 초르니 차이)라고 부른다.


4.4.2.1. 러시아 차 문화의 역사[편집]

러시아는 타타르의 멍에 때문에 13세기부터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반 뇌제의 치세에 차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1638년, 미하일 로마노프의 사신이 몽골 칸으로부터 전차(벽돌차)를 받아온 게 러시아 차의 시초이다. 1638년이면 이미 몽골의 마지막 칸인 에제이가 홍타이지에게 쿠빌라이 칸의 옥새를 바치고 항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에게 차를 받아왔는지가 불명확해 보일 수 있는데, 할하의 알탄 칸에게서 차를 선물 받았다.

이 '몽골 전래설' 과 별도로 중동 전래설도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서 차를 들여왔다면 러시아인들은 녹차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홍차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석회수 때문에 차 맛이 연해져서 녹차가 밍밍하다보니 초창기에만 녹차를 마시고 곧바로 맛이 좀 더 강한 홍차로 갈아탔다. 그렇지만, 러시아는 석회수 지역이 아니어서 굳이 홍차를 마실 필요가 없는데도 홍차를 마신다. 그래서 홍차를 잘 마시는 이란과 중동에서 차를 들여온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다.

러시아의 차 문화는 초기에 중동과 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성장 과정에서 유럽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데,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표트르 대제이다. 서유럽화 정책을 밀어붙인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의 차 문화도 도입해서 귀족들이 차를 즐기도록 했다. 16:00 ~ 22:00까지 이어지는 ‘야회’는 표트르 대제가 만들어낸 귀족 연회로서 여기서 귀족들은 차와 다과를 즐기며 서로 교분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런 표트르 대제의 야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하는 차 문화가 확산되어 나갔다. 초기에는 귀족들만 차 문화를 향유했지만, 부유한 상인 계층들이 귀족들을 모방해 차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천천히 중산층과 서민층으로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기후가 추운 러시아에서 차는 재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소비하는 차를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러시아는 차를 중동 지역에서도 수입하긴 했지만, 주된 수입 경로는 실크로드여서 캐러밴들을 고용하거나 주문을 넣어 중국과 인도로부터 수입했다. 그래서 수입량이 적고 가격이 높아 18세기까지도 차 문화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아편 전쟁이 터지면서 러시아의 차 수입처와 수량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원래 포르투갈과 함께 아편 전쟁 이전까지 대중국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던 러시아는 1차 중영 전쟁에서 승전한 영국, 프랑스가 대중국 무역에서 자신들보다 더 큰 파이를 차지하게 된 사실에 놀라 급히 중국 이권 쟁탈전에 끼어들었다. 2차 아편 전쟁에서 연해주와 북만주 일부를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 러시아는 중국 동부의 개항장에 상관과 회사를 세워 중국의 재화를 거래하고 막대한 양의 차를 자국으로 보내 러시아의 차 수요를 일정 부분 해소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2세의 중앙아시아 정복 및 중앙아시아 철도 건설, 알렉산드르 3세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 수에즈 운하의 개통, 증기선으로의 전환, 차의 국산화 등, 차에 대한 접근성이 증대되고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차를 더 빠르게 수송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차 가격이 인하되고 19세기 후반부터 차 문화의 보급이 촉진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차 문화가 많이 보편화되어 일반 서민들도 차를 많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산업 혁명으로 공산품 사모바르가 대량 생산되어 암소 1마리 가격에 맞먹던 사모바르의 가격이 낮아진 것도 차 문화의 보편화에 크게 기여했다.

산업 혁명과 근현대의 러시아인들은 아침부터 시작해 하루에 4 ~ 5회나 7 ~ 8회 이상 차를 마셨고 영국인들처럼 오후에 티타임을 즐기기도 했다. 또한 날씨가 워낙 춥다보니 부유층들보다는 서민층이 훨씬 더 차를 많이 마셨다. 동 시기의 영국과 비교하면, 러시아인들이 영국인들보다 더 많이 차를 마시는데, 연간 주류 소비량은 영국인들이 더 많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졌었다.

심지어는 유럽 최악의 노동 환경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공장에서조차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실을 비치하고 온수와 차를 제공할 정도였으며 도시의 노숙자들을 위해 건설한 공영 숙박 시설에도 다실이 있었다.

소 연방이 수립된 뒤부터는 국가적으로도 차 문화를 장려했는데, 그 이유는 레닌과 스탈린 같은 소련 수뇌부들이 차를 아주 좋아한 것도 있지마는 러시아 특유의 과음 문화를 때려잡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레닌과 스탈린은 최고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여 차를 자주 마시고 술을 멀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며[40] 절주 운동을 이끌어 나갔지만, 주류 구매량 제한, 주류 구매처 통제, 주류 구매 시간 제한, 홍차나 커피로 주류를 대체하자는 운동 등, 온갖 조치를 다 취했음에도 천년 이상 이어온 러시아의 폭음 문화를 분쇄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산업화 재원의 필요성 문제도 있어서 30년대에 5개년 계획을 시작할 때에는 절주 운동이 흐지부지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차를 즐기는 카페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소련의 경우에는 차 문화는 활성화되어 있어도 지인이나 가족들과 차를 마실 카페의 숫자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카페 문화는 잘 발달하지 못했다.


4.4.2.2. 러시아 차 문화의 특징[편집]

흔히 러시안티를 생각하면 홍차을 넣어 먹는 것을 연상하는데, 러시아에서 차를 마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미리 차에 설탕이나 잼, 꿀을 넣어 놓기도 하고, 접시에 잼이나 꿀, 설탕을 올려놓고 기호에 따라 찻잔에 타서 마시는 이도 있다. 차를 마시면서 적당량의 잼이나 꿀을 수저로 떠서 조금씩 먹기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각설탕을 찻물에 적셔 조금씩 갉아 먹는 방식도 있다. 아예 입 안에 설탕이나 잼, 꿀을 머금고 차를 마시기도 하는데, 차를 마시는 그 짧은 순간에조차 쓴 맛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당분을 입에 머금고 차를 마셔 차의 쓴맛을 중화하는 것이다.

차와 같이 먹는 잼은 варе́нье(바레니예)라고 한다. 딸기체리 등의 과실과 설탕을 넣고 조려 만든다. 겨울이 되면 신선한 과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문화로, 한국의 김장 문화와 유사하여 겨울만 되면, 다들 잼을 만들어서 설탕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많았다.

러시아에서는 민간요법으로 감기에 걸렸을 때 홍차에 잼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주로 넣어 마시는 잼은 산딸기 잼. 홍차에 잼을 타 마시는 방식이 있어 특별한 게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감기에 걸렸을 때 마시는 홍차는 산딸기 잼 없이는 입에 댈 수도 없을 정도로 아주 진하게 우려낸다.

러시아 특유의 차 종류로 보드카 홍차가 있다. 홍차에 브랜디나 보드카를 섞어 마시는 것인데, 러시아인들의 음주 문화가 차 문화에도 섞인 것으로 파악된다. 보드카 홍차 또한 민간 요법의 하나로 쓰이는데,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데 좋다고 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면 러시아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마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아무래도 뜨거운 물이 항상 공급되고 워낙, 여행이 장시간에 여가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리상의 이유로 잼 대신에 설탕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각설탕 기준으로 하나만 넣고 끝내지 않고, 적어도 3개씩 넣어서 마신다.

러시아 고유의 차 주전자를 사마바르самовар라고 하며 중동과 몽골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도자기 매병과 유사하게 생긴 형태의 커다란 차 주전자인 사모바르는 근대까지도 가정마다 비치해 둔 생필품으로 수많은 러시아 소설에서 사마바르에 불을 올린다는 표현이 나온다. 위 영국 항목에 주전자를 불에 올린다는 표현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식사 시간이나 티타임에 온 가족이 사모바르 주변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은 근현대 러시아 농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사모바르는 난방과 가습도 가능한 다용도 주전자여서 ‘사모바르와 아내는 항상 같이 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러시아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농촌 지역에서나 볼 수 있고 현대 러시아 가정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산업 혁명 이후, 공산품 사모바르들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져서 수공예 사모바르는 도태되는가 했지만, 형편이 되는 서민이나 중산층 이상의 계층들은 장인들이 만든 사모바르를 선호해서 수공예 사모바르에 대한 수요가 일정 수준 이상 존재했다. 덕분에 사모바르 장인들은 산업 혁명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산품 사모바르와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모바르 장인들은 제품의 고급화 전략을 취하여 중산층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사모바르를 제작해 판매했다. 그리고 젬스트보의 수공예 지원 사업과 생산자 협동조합과 아르텔[41] 운영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 했다.


4.4.2.3. 러시아 차의 국산화와 레몬티 문화[편집]

비슷한 차 문화를 가진 이란, 터키와 달리 러시아는 대부분의 지방이 차나무가 자라기에는 기후가 너무 춥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차의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느린 운송 속도, 수요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공급량 때문에 늘 고민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차의 국산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기후 조건이 나쁜 러시아에서 차의 국산화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1840년대에 카프카즈의 기후가 차의 재배에 적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러시아 제국 정부는 흑해 동부 지역과 일부 내륙 지역에 차 재배를 시도했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그리고 아삼을 비롯해 고산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중국과 인도의 다양한 차 종자를 도입하고 중국의 차 재배 농민, 기술자들을 초빙해 실험을 거듭했다.

약 50여년의 노력 끝에 러시아는 생산성이나 상업성 면에서 성공적인 수준의 차를 생산하는데 성공한다. 그 수량은 적었지만, 그래도 차의 국산화가 이루어진 덕분에 차 가격은 낮아졌고 공급량도 늘어났다. 조지아와 아제리의 농민들은 차라고 하는 새로운 환금 작물을 재배해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조지아와 아제리가 독립한 이후에도 러시아는 차를 재배하는 중인데, 소치가 그 중심지이다.

다만 현대에도 러시아는 차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러시아 국산 차는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온화한 서남부 크라스노다르, 소치 지역에서 주로 생산한다.#[42] 그 외 대부분은 터키나 우즈베키스탄, 스리랑카, 중국, 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수입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의외로 중국차가 보급된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시베리아나 극동쪽에선 보이차우롱차를 마시는 러시아인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 내부에는 타타리와 칼미크, 노가이, 부랴트인을 비롯한 유목민들과 시베리아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전차(벽돌차)를 으깨서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해 마시는 수테차 문화도 타타르스탄과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 옆나라이고 같은 튀르크인이 다수인 국가이지만 차 마시는 법은 터키와 달리 러시아식으로 마신다. 이쪽도 차 한 모금 마시고 잼을 퍼먹거나, 아니면 차에 잼을 타서 마시는데 터키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가거나, 그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인이 터키에 갔을 때 여기서 컬처쇼크를 느낀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품질 좋은 홍차를 생산하는 나라이며, 특히 소련시절에 서방국가들과의 교역이 어려워지자 아제르바이잔에 집중적으로 차농장이 세워져서 현재도 차만 생산, 관리하는 국영기업이 있다. 현재도 여전히 구소련국가들 위주로 수출되고 있어서 최근들어 알음알음 한국에도 들어오는 터키 홍차들과 달리 한국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차의 국산화에 성공하긴 했지만, 추운 환경 때문에 중국과 인도 본토 지역의 것보다 차의 향이 좋지 못했다. 유럽의 차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차는 품질이 높은 것도 ‘평범하고 특색 없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나쁜 향을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레몬 즙을 적당량 부으면 차의 향과 맛이 개선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레몬티 문화가 러시아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빅토리아 여왕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러시아 제국 정부는 여왕에게 레몬티를 대접했다. 국가 원수가 왔으니 향이 나쁜 국산차가 아니라 중국산 최고급 차를 내놓았을 것이고 그런 차는 굳이 레몬을 섞을 필요가 없지만, 러시아식 차문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레몬티를 대접한 게 아닐까 한다.

4.4.3. 터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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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터키에서는 오스만 제국 시절까지는 차보다는 터키 커피를 주로 마셨다. 터키에서 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경에 이미 발견되지만 중국에서 들여오는 차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었고, 중앙아시아의 몽골인과 튀르크인들은 19세기까지도 찻잎을 화폐로 쓸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중국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차 교역로는 송나라때부터 존재했으며 페르시아까지 뻗어있었지만 이상하게 차를 마시는 풍습은 카프카스 산맥을 넘지 못했고 지금의 터키인 아나톨리아 지방까지 전파되지는 못했다. 중국-페르시아간 차무역로의 중간에 위치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과 18세기 이후 이들과 접촉하면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러시아인들과 비교했을때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늦게 전파되었다. 지금의 터키땅에 차가 들어온 최초의 계기도 다름아닌 러시아 때문이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러시아에서도 일부 귀족이나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일대에서도 소비되던 차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해 기존의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카라반 교역만으로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러시아 상인들은 무역선으로 중국으로부터 차를 직수입하기 시작했는데 중국의 차 수확기인 4-5월에 찻잎을 구입하고 (당시에는 수에즈 운하 건설 전이라) 말레이반도, 인도,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지브롤터 해협에 다다르면 이미 10-11월로 그곳에서 발트해로 진입하면 이미 항구들이 꽁꽁 얼어 제기능을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무역선들은 크림반도오데사 등지에 기항해서 거기서 육로로 러시아 전국으로 운송했는데, 그 무역로 중간에 이스탄불이 있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지나가는 모든 무역선에 통과세를 물리고 있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의 중요한 세입중 하나였다. 또한 러시아 무역선들은 기왕 이스탄불을 지나가는 김에 찻잎과 중국 물건들을 일부 팔고[43] 빈 창고에 카펫같은 오스만 제국의 사치품들을 싣고 러시아로 가져가서 함께 팔았는데, 이로 인해 차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까지도 차를 마시는 문화는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영국물 먹은 일부 귀족들에 국한되어 있었고, 오스만 제국 최초의 차에 대한 서적은 1894년에 편찬되었으며, 영국의 중개를 통해 이스탄불의 일부 상인들이 중국, 인도산 차를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차가 상류층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초기 오스만 제국의 차문화는 영국의 영향을 직빵으로 받았기 때문에 영국식 다기를 사용했으며 밀크티나 레몬을 띄운 종류가 주류였다. 그때문에 오스만 제국 시절의 다기 유물들을 보면 영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은주전자와 본차이나 혹은 중국도자기 찻잔이라 현대 터키의 차문화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이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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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가 1926년 3월 1일 앙카라 국립미술관 전시회 이후 참석한 티파티에서 찍힌 사진 속의 다기들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는데, 현재 터키와는 달리 영국식의 도자기 다기와 도자기잔을 쓴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터키 독립전쟁 이후 아랍국가들이 전부 독립해버리면서 오스만 시절에 원두를 공급했던 예멘의 무하 지방과 교역이 끊겨버리자 터키에서는 홍차를 그 대체재로 생각하고 일본에서 차 모종을 수입해서 한랭습윤한 지역인 흑해 동부 지방에서 시범적으로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게 1930년대의 일인데, 어느샌가 차가 터키커피를 밀어버리고 터키인의 주요 기호음료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1인당 차 소비량을 보면 터키가 세계 1위로, 영국의 2.5배, 그리고 한국의 거의 100배 정도에 달할 정도. 하지만 차를 마시는 문화 자체는 오스만 시대에도 있었으며, 당시에는 터키에서 차를 재배하지 않았고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차를 수입해와야 했기 때문에 커피보다도 비쌌다. 때문에 공화국 이전까지 차의 보급은 상류층에 국한되었다.[44] 18세기에 쓰여진 시 가운데 이런 시도 있을 정도.

Es-Sohbetü Bilâ Çay (차 없는 대화는)

Kes Semai Bilâ Ay (달 없는 하늘)


Çay kadehte dide efruz olmali (차는 입술의 색깔과 뜨거움에서)

Lebriz-i lebreng ü lebsuz olmali (입술의 맛이 묻어난다)

터키에서는 영국과 달리 우유를 타지 않은 홍차를 마시되,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작은 잔(대략 180~200ml)에다 차를 마시는데 대체로 찻집에서 차를 주문하면 각설탕 2개가 들어있는 포장 1개를 준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터키인들은 이걸 다 넣거나 아니면 1개 넣는 정도로 예전과는 달리 설탕을 적게 쓴다. 다만 차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은 지방이나 가정에 따라 다른데, 보통 무더운 지역, 서구화가 덜 된 지역일수록 더 달게 먹는다. 심하게 달게 먹는 집에선 거의 설탕 포화수용액 수준의 차를 먹는다. 단 것을 못먹는 사람들에겐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달다. 설탕이 바닥에 깔릴 정도...설탕에 차를 섞어 먹는다.[45]

찻잔이 위의 사진처럼 가운데 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간 것은 차의 빛깔과 찻잔의 모양을 감상하기 위한 시각적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은 찻잔을 그냥 잡으면 매우 뜨겁기 때문에 찻잔의 윗부분을 잡기 때문이다. 이 터키식 홍차를 끓이는 주전자는 차이단륵(Çaydanlık)이라고 부르며 특이하게도 이층으로 된 주전자 구조를 갖는다. 아랫층에서는 물이 끓고 윗층에서는 끓는 물을 따라다가 찻잎을 넣고 차를 우려내는 것. 이 방식은 별도의 연료가 필요한 사모바르와는 달리 난로 위에 차이단륵을 올려놓기만 한다면 하루종일 뜨거운 차를, 아주 손쉽게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만약에 차 농도가 너무 진하다 싶으면 아랫층의 끓는 물과 섞어서 조절할 수도 있다. 야외에 소풍을 나가면 세마베르(Semaver)라는 찻주전자를 챙겨가는데, 이것은 러시아의 사모바르와 마찬가지로 나무석탄을 이용해서 끓이는 찻주전자이다. 본래 물 끓이는 도구로 터키에서도 세마베르를 이용해왔으나 석유곤로와 이후 가스스토브가 보급됨에 따라 개량된 것이 차이단륵이다. 대략 1930년대 초반에 지금도 남아있는 외즈티리야킬레르(Öztiryakiler)라는 회사에서 처음 차이단륵을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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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단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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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베르

오래 끓인다는 점에서 터키인들이 차를 끓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저 터키인들의 습관일 뿐이다. 터키에서는 위에 언급한 차이단륵이라는 특이한 도구로 차를 끓인다. 터키산 차(잎)를 구입하면 뒤에 어떻게 우려야 하는지 설명이 적혀있는데, 여기에선 차를 15-20분 동안 우리고(!), 다 우러난 차는 30분 이내에 마셔야 한다고 되어있다. 왜냐하면 차이단륵의 아랫층 주전자는 끓는 물이지만, 윗층은 아랫층에서 끓는 물의 증기로 온도를 유지하기때문에 그만큼 차가 우러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46] 무엇보다도 차이단륵이든 세마베르든 원래 난로나 화롯불같이 항상 불이 있는 곳 위에 놓고, 언제나 원할 때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고안된 도구이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하다. 단층 주전자에다가 물 팔팔 끓여서 차 우려내는 바보는 터키에도 없고 터키에서도 티백차는 다른 나라와 똑같이 우려낸다.

다만 차를 끓일 때 차이단륵 특성상 항상 물이 왔다갔다 해야하고, 일정한 찻잎의 비율이 없기 때문에 그냥 팍팍 넣는 건 사실이다. 사실 터키식 찻잔에 맞는 전용 차스푼을 터키에서 파는데, 그 스푼으로 넣으려니 귀찮기도 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팍팍 넣고 우리는데, 외지인 입장에선 충격과 공포지만 터키에선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오히려 외국에서 홍차를 마시는 터키인들은 차가 너무 연해서 마시는 거 같지도 않고, 힘이 안 난다고 불평한다

터키인에게 차는 하루를 시작하는 음료이자, 하루를 마치는 음료라 할 만큼 흔하다. 어딜가든 일단은 차부터 끓여오는 것이 풍습이고,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우선 차부터 한 잔 따라주는 걸로 시작한다. 어딘가 사무실이나 회사, 관공서를 방문할 때도 손님에게 차를 한 잔 끓여서 로쿰 같은 과자와 함께 대접하는것도 중요한점이라 하루종일 차만 끓이는 공무원도 있을 정도. 혹은 남자들이 찻집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는 문화도 있는데 이러한 전통찻집은 오로지 남자만 출입하며, 물담배도 함께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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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곁들여 보드게임 오케이를 즐기는 노인들.


5. 차의 종류[편집]



5.1. 차[편집]


차를 분류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이며, 국가별로 그 분류 기준 및, 명칭도 다양하다. 하지만 자신이 배우고 있는 다도 한 가지를 섭렵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의 다도에서도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구 및 시기별 채취하는 차를 부르는 명칭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찻잎을 따고 바로 가열하여 찻잎 속의 폴리페놀 산화효소를 비활성화시켜 산화가 되지 않도록 만든 차. 차의 원산지인 중국과 비교해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차문화가 거의 녹차 위주로 발달하였다. 일반적으로 차를 따서 쇄청, 건조하는 과정에서 찻잎 속의 폴리페놀이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어 녹색이 누런색(데아플라빈)이나 붉은 색(데아루비킨)으로 변하면서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특한 향기와 맛이 만들어지는데, 녹차는 가열과정에서 발효가 중지되어 엽록소가 그대로 보존되어 녹색을 띄게 된다.
찻잎을 가열하는 방법은 가마에서 덖어내는(볶아내는) 부초차(釜炒茶)와 시루에서 쪄내는 증제차(蒸製茶)가 있는데, 부초차는 맛과 향이 좋고 증제차는 색이 곱다. 중국과 한국은 덖은차가 많고 일본은 증제차가 대세.
찻잎을 따는 시기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다음과 같다.
우전차(雨前茶) - 절기상 곡우(穀雨) 이전에 수확한 아주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 극세작, 맏물차, 첫물차라고 하기도 한다. 통상 녹차에서 최상품으로 친다.
  • 옥로(玉露) - 흔히 상품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전차의 일종으로, 일본식 우전차의 일종이다. 일본 발음은 '교쿠로'. 일본식으로 증차(찻잎을 찜)한 차인데, 한국 우전차와의 차이점은 인삼 재배하듯 차광막을 쳐서 곡우 무렵 돋아난 새순을 수확하여 만든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옥로를 만들다가 남은 분말까지도 따로 모아서 판매하는 차(코나차)가 있다. 물론, 이런 우전차를 갈아 만든 말차 또한 비싼 것이 당연하다.
② 세작(細作) - 곡우와 그다음 절기인 입하(入夏) 사이에 딴 어린 잎으로 만든 차. 세작까지 상품으로 친다. 상작(上雀)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첫물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우전차, 곡우차, 세작을 참새의 혀만큼 작은 잎으로 만들었다 해서 작설차(雀舌茶)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차를 만드는 다원에 따라서 우전차와 작설차를 구분하기도 하고 작설차라고만 하는 곳이나 우전과 곡우를 따로 구분하는 다원도 있다. 우전차를 맏물차, 세작을 첫물차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구분방식 역시 우전을 첫물차라고 하는 다원도 있어 표준화된 기준으로 보기에 좀 애매하다.
③ 중작(中作,中雀) - 입하가 지나고 5월 중순까지 딴 좀 더 자란 잎으로 만든 차. 보통차, 두물차라고도 한다.
④ 대작(大作) - 중작을 지나 완전히 커진 찻잎으로 만든 차. 세물차, 하작(下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호지차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차이며, 잎이 커서 건조 후 차를 낼 때 가루가 잘 안 일어나기 때문에 현미녹차 등을 만드는데도 많이 쓰인다.
  • 호지차 - 가장 늦게 수확하는 찻잎를 쪄서 말린 후, 볶아서 제조한 일본식 차. 이 경우 일반적으로 차를 쪄서 만드는 일본차와 달리 한국의 덖음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의 덖음차는 수분이 있는 생찻잎을 덖는(볶는) 것이고, 호지차는 일본식으로 일단 쪄서 말려 일반적인 녹차를 만들고 - 이것을 일본에서는 센차(煎茶) 라고 한다 - 센차를 다시 바싹 볶아서 커피처럼 로스팅한 차를 말한다. 호지차는 일반적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대작을 사용하는데, 차의 맛이 떨어지는 대작을 로스팅함으로써 구수한 향과 마일드한 풍미를 낸다.
  • 청차 = 우롱차(반산화차)
  • 황차 (반발효차)
녹차와 보이차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차. 서양에서는 위의 청차와 세트로 우롱차로 부르기도 한다. 쇄청과 건조 과정을 거친 찻잎을 다시 쌓아 후발효 과정을 거친 것으로 차잎이 녹차와 달리 누런 색을 띄며 특유의 향을 갖는다. 대한민국에서도 동일한 공정을 거친 것을 "발효차", "황차"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사실 황차의 기원은 고급 녹차를 만들다 살청(덖음) 과정 중 시간을 조절하지 못해 실패한 차들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녹차와 비슷한 맛이지만 미약하게 고소한 향이 여운으로 남는 특징이 있다. 유명한 황차로는 곽산황아와 군산은침이 있다.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전해오는 청태전(靑苔錢) 또는 돈차, 떡차라고 부르는 종류가 전해지고 있는데, 제다법이 매우 특이하다. 살청작업을 거친 녹차를 찌고 절구에 찧어 반죽을 만든다음 이것을 엽전형태로 빚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대꼬챙이에 꿰서 건조시키고,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는데, 생으로 먹으면 황차와 비슷하고, 발효시키면 우롱차와 비슷한 풍미를 낸다. 우려내기 전에 한번 불에 구운 다음 탕관에 넣고 그냥 끓여서 우리는게 육우의 다경에 묘사된 초기 제다법과 매우 유사하다.
찻잎을 녹차와 달리 쇄청 과정이 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낮은 온도에서 시들게 하면서 말려서 제조한 차. 산화도가 15%정도로 우롱차에 비해 산화도가 낮다. 쇄청 과정을 거치지 않아 잎의 흰 솜털이 남아있기 때문에 백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유의 복잡한 향과 달콤하고 담백한 맛이 있다. 보통 대부분 차들은 더운물로 우려내도 3~4회면 더이상 우러나지 않거나 본연의 맛을 잃는데, 백차는 여러 번 우려내서 마실 수 있기에 여름에 냉침하여 마시기 좋다. (500ml 페트병에 찻잎 약간 담고 하루 종일 물만 보충해주면 계속 마실 수 있다)

5.1.1. 제형에 따른 분류[편집]


  • 엽차 (산차): 흔히 생각하는 푸슬푸슬한 찻잎의 형태.
  • 티백: 엽차를 종이주머니에 담아서 간편하게 우려낼 수 있게 한 것. 너무 오래 우리면 쓴맛이 나니 주의.
  • 말차: 찻잎을 곱게 갈아서 가루로 만든 형태로, 더운물에 풀어서 그대로 후루룩 마신다. 일본에서 많이 마시는 차.
  • 병차: 떡처럼 뭉쳐놓은 차. 흔히 보이차들이 이러한 형태로 유통된다.
  • 긴압차: 증기를 가한 후 납작하게 눌러 덩어리로 만든 차. 차를 우려내도 찻잎이 풀어지지 않는것들도 있다.
  • 조리차: 1회용으로 작게 긴압 + 병차. 3g가량에 꽃이나 곡식을 블렌딩하기도 한다.


5.1.2. 대만 10대 명차[편집]


명차가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시대가 흐르면 명차의 기준도 달라지지만 보통은 국립대만대학 농업계(농과대학)의 진문회(陳文懷)교수가 정리한 아래 기준을 만족하는 차를 명차로 꼽는다.
  •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 사회적으로 진귀하게 느껴져야 한다.
  • 수려한 명승고적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 우수한 차나무와 가공 기술이 있어야 한다.
  • 독특한 차의 품격이 있어야 한다.
  • 문인들의 시나 소설에 끊임없이 등장해야 한다.

위 기준으로 진 교수가 정리한 10대 명차는 아래와 같다.
서호지방 용정산에서 나는 차. 물이 맑아 차맛이 좋았다고 전해짐.
치유의 신인 관음보살이 내려준 차. 돌돌 말아진 차잎이 특징이며 먹어보면 강렬한 향과 커피에 버금가는 강렬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중국에 식당에서도 많이 나오는 차이다. 금박지에 담아져 있기에 꽤나 고급스럽게 보인다.
서호 지방에서 나는 찻잎을 황차로 제다하여 이름을 붙혔다고 전해짐.
하살인향, (향기로 사람을 죽이는 차. : 산지에 접근이 어려워 찻잎을 따다 많은 사람이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고 함) 이란 다른 이름을 가짐.
유리다구에 우려내어 찻잎이 바늘처럼 일어섰다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는것이 매력.
백호은침과 비슷한 형태임.
다양한 재료와 블랜딩 해도 맛과 향이 크게 변하지 않아 유명해진 차. 서양홍차에도 기문을 블랜딩 티로 많이 사용한다.
연중 온화한 기후로 오래된 차나무가 많고 당연히 차 생산량도 많다. 특히 보이차의 어원이 된 '푸얼시' 가 운남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차를 즐기는 인구보다 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급증하여 고차수(오래된 차나무)를 베어버리고 커피를 심는 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사실 정말 좋은 차나무는 문화대혁명때 다 잘려나갔기에 크게 아쉬워할 것은 없다고 한다. 현재 중국의 오래된 교목 차나무는 수령 2000년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차밭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많은 다인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대개 앞의 두글자는 차의 산지(지역, 유명한 산,강 등)를 나타내고, 뒤에 두글자는 차의 종류를 나타낸다.


5.2. 대용차[편집]


원래 라고 하는 것은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만을 지칭하므로, 아래의 대용차들은 엄밀히 말하면 차가 아니라, 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냥 차라고 지칭된다. 영어권도 사정은 비슷해서 차(Tea)도 아닌 허브티(Tisanes)를 Herbal Tea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간혹 다시마를 차로 우려먹기도 한다. 콤부차와는 다르므로 주의.
대추차는 피부 유지에 필수적인 비타민C,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식이섬유를 비롯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항산화작용을 지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기미나 주름이 생기는 활성 산소를 억제해 주는 것이 항산화 작용이기 때문에, 안티에이징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6. 차를 우리는 방법[편집]


차를 우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대원칙을 숙지해놓으면 쉽다.


6.1. 냉침법[편집]


녹차종류와 같이 쇄청, 발효가 이루어지지 않은 차는 온도에 매우 민감하며 통상적으로 80도 이상 되는 물에서 우려지면 쓴맛이 나기 때문에 더 낮은 온도에서 우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잎일수록 낮은 온도에서 우리는 것이 좋으며, 일본 녹차같이 어린 잎을 증제(찜)해서 만든 차는 더욱 더 온도에 민감하다.


6.2. 온침법[편집]


홍차와 같이 완전발효된 차는 끓는 물에서 우려내야 좋은 맛이 난다. 물주전자에서 동전 크기의 기포가 뽀글뽀글 날 때까지 충분히 끓인 다음에 홍차를 담은 티포트에 부어서 우린다. 홍차를 우려내는 티포트는 차가 우려지는 동안 뜨겁게 유지해야 더 좋은 맛이 난다. 보이차 또한 숙차인 경우 끓는 물로 우리는 것이 좋다.


6.3. 중간[편집]


반발효차(우롱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발효차(홍차)보다 조금 낮은 온도에서 우린다. 일반적으로 발효도가 낮은 철관음 같은 차는 90도 정도에서, 발효도가 높은 대홍포 같은 우롱차는 95도 정도가 좋다.


6.4. 후발효[편집]


위 과정을 거쳐 우린 차에 유산균 등을 넣어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콤부차가 여기에 속한다.

7. 다기 선택법[편집]



7.1. 재질[편집]


상술한 차의 추출방법을 고려해 티포트의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 경질백자, 포셀린, 이스톤: 보온, 내열성이 떨어져 찻물이 빨리 식는다. 녹차, 경발효성 우롱차에 적합하다.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 도기, 스톤웨어, 세라믹: 보온, 내열성이 뛰어나 찻물이 오랫동안 식지 않는다. 홍차, 강발효성 우롱차, 보이차에 적합하다. 비교적 무거운 편이다.


7.2. 형태[편집]


공통적으로 뚜껑이 이탈없이 잘 닫히고, 주둥이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차를 따를때 찻물이 아래로 줄줄 흐르지 않아야 한다.


8. 관련 어록[편집]


그대여.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줄 차 한잔을 내게 준다면, 내가 당신의 사정을 더 잘 이해할 텐데.

찰스 디킨스


우울하다면 차에게 위로받을 것이고, 지치고 피곤하다면 차가 맛과 향으로 진정시켜줄 것이다.

윌리엄 글래드스턴



9. 관련 문서[편집]


  • 보스턴 차 사건
  •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 신농
  • 영국
  • 방사능 홍차
  • 똥차
  • 다구: 각 나라별 다구들의 특징이 약간씩 다르다. 상술하였듯, 자신이 선택한 다도 한가지를 섭렵하게 되면 이해도가 높아질수 있다.
    • 호(후), 자사호: 티포트. 주전자.
    • 찻잔: 한국은 5개 기본세트에 홀수로 증가하는데, 중국은 6개부터 짝수로 증가한다.
      • 개완: 1~2인용 개완은 150ml, 3~4인용 개완은 200ml가량. 보통 한가지 차를 세 번 정도 우려 공도배에 담고 나누어 마신다. 개완은 1인용 찻잔으로도 쓰지만 차를 우려내는 용도로도 쓴다.
      • 품명배: 차를 마시기 위한 용도의 잔. 작은것은 40ml부터 120ml정도 까지 있다.
      • 문향배: 차의 향을 즐기기 위한 잔. 중국식 다도의 일종인 공부차에 사용하는 다구로 문향배에 따른 차를 품명배로 받치고 뒤집어서 품명배에 차가 쏟아지게 한뒤 문향배를 손바닥에 비비듯 돌려 향을 맡는다.
    • 차판: 차를 우리는 과정에 물이 넘치거나 흘러도 부어서 버리면 처리가 간편하다. 한국은 '다포' 라고 하는 티매트를 깔아 쓰는데, 중국식 공부차는 대나무 소재가 흔히 쓰이며 물받침은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보통 45X60cm사이즈로 배수량은 2리터 가량 버티며, 티타임 이후 서랍식으로 꺼내어 물만 버리면 된다.
    • 다도육군자: 찻잔을 집는 포셉(다구를 데울때, 뜨거운 물을 버릴 때 손이 데이지 않게 해준다), 티스푼, 티포트 물줄기 막힐때 콕콕 찔러서 물 흘러나오게 하는 도구, 한번 우린 찻잎 다시 다호에 넣는 스크래퍼(버릴때도 쓴다), 티포트에 찻잎 부어넣을때 딴데로 튀지 못하게 하는 깔때기 + 이것을 담는 통을 함께 부르는 말 (다칙, 다협, 다침, 다통, 다시, 차루)
    • 공도배: 한국의 숙우에 해당하는 중국식 다도 도구. 한국의 숙우는 보통 녹차 우릴 때 물식힘 그릇 + 퇴수기 역할을 하는데, 손잡이가 없어 다건으로 뜨거운것을 가려야 한다. 하지만 공도배는 손잡이가 있어 편리하다. 그리고 우려낸 차를 담아 나누어 마시는 그릇으로 쓴다.
    • 표일배: 거름망 + 휴대용 음료병.... 이나 기원은 대만에서 개발된 편리한 유리 다구. 240ml로, 거름망과 포트가 일체형이다. 한국에서는 설록차가 이러한 형태의 녹차병을 만들어 팔았었던 적이 있었다.
  • 다모
  • 다도(茶道)
    • 다산 정약용 - 한국의 차덕후
    • 센 리큐 - 일본 전국시대의 다인(茶人)으로 와비차라는 참선을 중시하는 다도법을 확립시켰으며, 다성(차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 메다옹 선사 - 일본에 전차도(엽차 다도)를 전한 인물. 선불교의 스님이었다.
  • 다방
  • 특수전대 데카레인저 - 레귤러 멤버들의 이름과 닉네임이 모두 차 종류에서 따 왔다.
  • 한국차박물관 - 전라남도 보성군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차를 주제로 한 박물관.
  • 아바차
  • 아갈차
  • 식품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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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효능으로 보았을 때 차를 마시는 이유의 절반 정도는 '테아닌'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테아닌 함유량은 녹차(비발효차)<우롱차(반발효차)<홍차(발효차) 정도이다. 이 점을 활용하여 테아닌을 농축시켜 만든 슬로우 카우라는 제품도 있다.[2] 순우리말 '국'을 한자로 '탕'이라 한다. 참고로 찌개전골의 차이는 국이 물이 가장 많고 전골이 가장 적으며 찌개가 가운데 쯤 된다.[3] 마테차의 경우도 차나무 잎이 아닌 차나무 사촌뻘되는 나무의 잎을 우려서 만들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대용차다.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Tea 역시 차나무와 차나무의 잎을 우린 물이어야 하지만 Mate tea, Mint tea, Herbal tea 등등 찻잎이 아닌 다른 것을 우린 물에 tea 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한다.[4] 맹꽁이 서당에서는 아편 암살 시도 사건을 그리면서 고종이 커피를 '가비다'라며 신하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5] 일제강점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고령층 위주로 차나 보리차 같은 것을 드물게 오차, 오찻물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가끔 있다.[6]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의 화교들은 복건 성 출신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민남어 화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가령 싱가포르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중국어 방언은 민남어에 속하는 복건화(福建話, 41.1%)와 조주화(潮州話, 21.0%)였다.[7] 당나라 시기의 문인 육우(陸羽, 733~804)의 저서 《다경(茶經, The Classic of Tea)》에 나오는, 고대에 차를 가리키던 다섯 가지 이름이다.[8] 주변국들과는 달리, 미얀마어에서는 차를 '러페(laphet)'라는 별개의 어형으로 부르는데, 사실 이는 荼의 상고한어 발음 /*la/의 어원이 된 고대어를 보존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재배역사가 길었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미얀마의 러페는 음료로도 마시지만, '러페 소'라고 하여 찻잎을 땅에 묻어 발효시킨 뒤 소금에 절여서 반찬처럼 먹는 레시피도 존재한다.[9] '도'라고 읽는다. 시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 글자는 본래 '쓴 풀'을 광범위하게 이르던 글자였다. 오늘날에는 씀바귀를 뜻하는 글자다.[10] 전한 시대 쓰촨성에서 차 재배를 처음으로 했다는 전설로 잘 알려진 오리진(吳理眞)Origin 역시 불교 승려였다고 한다.[11] 북조에 귀순한 남조 인사가 연회를 할 때, 남조에서 하던대로 차를 대접했는데 이때는 차를 오늘날처럼 조그만 잔에다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큰 잔에다 어마어마하게 줬다. 그런데 북조 사람들의 차에 대한 인식이 안좋다보니 이걸 물난리라고 표현한 것이다.[12] 조선시대 관아에서 부리던 다모(茶母)가 이 흔적의 일부라고 추정하기도 한다.[13] 그래서 당대의 대표적인 차 애호가였던 정약용 선생이 "찻잎 우린 물만 차고 나머지는 다 탕이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 백성들 언어생활이 엉망인 듯"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14] 한국인, 밥 김치보다 커피 더 자주 먹어[15] 돈 받고 파는 경우가 많다.[16] 중국 젊은이들이 커피숍, 특히 스타벅스와 같은 외국 브랜드 커피숍을 선호하는 것은 아직 커피 문화가 중국에선 부유층의 전유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스타벅스의 커피 가격은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한화로 5천원이 넘어 한국 스타벅스보다 비싼데, 중국 최고 수준의 명문대인 칭화대북경대 졸업자도 초봉은 한화 기준으로 평균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인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셈이다. 즉 중국에서 스타벅스 같은 해외 브랜드 커피를 자주 사 마신다는 건 그 자체로 은수저 물고 태어난 상류층 출신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17] 무역적자를 견디지 못한 영국은 19세기 초중엽이 되면 식민지인 인도 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의 지역에서도 차 플랜테이션을 건설해 실론티, 아쌈, 다즐링 등 쓸만한 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지만 그 전까지는 꼼짝없이 중국산 차를 사서 마셔야 했다.[18] 물론 아무리 중국이라 해도 수공업 제품이 공산품의 가격을 따라가긴 힘들다. 문제는 영국 상품은 중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상당한 운송비가 원가에 포함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수공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그 운송비 차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영국 공산품을 최종 소비자가에서 이겨낼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은 운송비를 포함해도 수공업으로는 경쟁이 안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대단한 것은 맞지만.[19] 실용적인 이유로는 무기를 들고 진입할 수 없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20] 국내에서도 일부 일식당에서 보리차 대신 호지차를 물로 주기도 한다.[21] 드립커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미분 없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막 붓는 형식이 원형이었다.[22] 사실 영국에 처음 들어온 차는 녹차, 우롱차 종류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차를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상자인 티캐디에는 차를 보관하는 2개의 칸과 그 사이에 크리스탈재질의 그릇이 있는게 기본이었는데, 이 2개의 칸에 녹차/우롱차와 홍차를 보관하고, 차를 마실때 두개의 칸에서 홍차와 녹차를 티캐디 스푼으로 퍼서 중간의 크리스탈 그릇에 놓고 섞은 것을 우렸다. 이것을 현재도 빅토리안 티(Victorian tea)라고 부른다. 하지만 녹차의 색깔을 선명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색소나 차가 아닌 풀들을 마구 섞는 악덕상인들이 기승을 부리자 아예 녹차를 마시지 않는 쪽으로 선호도가 바뀌어서 녹차가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23] 이유는 유럽 지역의 석회수가 차의 맛을 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홍차도 마찬가지로 석회수 때문에 맛이 연해지지만, 녹차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권에선 차를 타도 맹물 같은 녹차 대신에 홍차만 마셨던 것.[24] 마테차는 엄밀하게 말해서 대용차에 속한다.[25] 다만 터키의 전신이던 오스만 제국의 영향으로 유럽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전성기 때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으니 할 말은 다 한 셈.[26] 해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라는 곰팡이. [27] 이렇게 급격히 인상된 관세는 곧 12.5%로 후려쳐지는데, 이 때문에 막 차 무역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던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가 본전도 못 건지고 망했다. 당시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드는 바람에 중국행 무역로가 마비된 상황이어서 홍차 가격이 오르고 있었고, 이에 어부지리를 노린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는 경쟁자들이 전쟁 때문에 정신없는 틈을 타 광저우에서 홍차를 무더기로 구입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홍차 공급이 재개되어 천정부지로 치솟던 홍차 가격이 다소 낮아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이 그 높은 관세를 후려쳐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청나라에 홍차 대금으로 지불할 은을 실은 회사 소속 배가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침몰하기까지 했다. 거기다 장밋빛 미래를 노리고 선박들을 마구 발주해놨던 조선소들에서는 배 다 만들었으니 빨리 돈 주고 찾아가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상황. 안 망하는 게 더 이상하다(...). 당시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가 어느 정도로 손해를 봤냐면 창립자가 자살했을 정도다. 여기에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를 지원했다가 생돈만 날린 합스부르크 황실의 마리아 테레지아, 그리고 찻잎 대금 떼먹힌(...) 청나라도 덩달아 손해를 봤다.[28] 차가 얼마나 고가품이었는지, 다른 모든 음식은 하인이 서빙해도 찻잎만은 안주인이 직접 다루었다. 잠금장치가 딸린 차 전용 보관 상자까지 있었다. 물론 한 번 사용한 찻잎을 말려서 재사용하는 것은 기본.[29] 대체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혹은 얼 그레이[30]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서는, 중산복과 마오캡을 착용한 중국인이 밀크티를 보고 펄쩍 뛰면서 "저건 차가 아니고 뜨물이다해!"라고 비난하는 장면이 있다.[31] 여담으로, 차에 우유를 부었을 때와 우유에 차를 부었을 때 실제로 그 맛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묘한 차이지만, 자기가 그 맛의 차이를 느낀다고 주장한 한 영국 여성(뮤리엘 브리스톨)을 대상으로 20세기 초에 실험해본 결과 실제로 우유+차와 차+우유를 모두 가려냈다고 한다. 통계학에서는 유명한 실험이니 흥미가 있다면 읽어보자. 참고로 이 실험을 한 사람이 바로 "피셔의 정확검정"으로 유명한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다.[32] 대표적인 사례로 나치 독일의 유명한 전차 에이스인 미하엘 비트만빌레르보카쥬 전투에서, 티타임을 즐기던 영국군 전차부대를 습격해 괴멸시킨 일이 유명하다.[33] 오늘날 말하는 티밤(tea bomb)과는 당연히 전혀 다른 것이다. 티밤은 뜨거운 물에 투입해 녹여 마시는 달달한 고형 차이며, RAF가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차 폭탄은 찻잎과 각종 물품이 들어있는 구호 패키지였다.[34] 보편적으로 스콘, 오이 샌드위치, 빅토리아 케이크 등.[35] 때문에 서민층에는 저녁 식사를 그냥 티라고 부르는 집도 많다고 한다.[36] 미국도 옛날에는 흔히 정오 경에 디너를 먹었다. 지금도 미국 남부에는 점심에 디너를 먹는 집이 꽤 많다고 한다.[37] 만만치않게 차를 마시는 터키에도 비슷한 것이 있긴 하다. 전날 밤에 물과 찻잎을 채워넣고 알람을 맞춰놓으면 알람음과 함께 작동해서 차를 내놓는데 영국의 티스메이드와는 모양이 터키에서 선호되는 차이단륵 모양이라 좀 다르다.[38] 립톤이 즉석 차라고 얕보는 이들도 많지만, 립톤은 의외로 맛이 괜찮으며 영국을 비롯한 외국에도 그 편리성과 맛을 높게 쳐주는 애호가들이 많다.[39] 현재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북부 등지에서는 홍차보다는 녹차를 더 선호하며 더 많이 소비된다.[40] 스탈린의 경우에는 차, 커피, 주류 모두 즐기는 편이었다. 절주 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에는 측근들과 함께 러시아식 파티를 즐기고 엄청 과음하는 일이 많았다.[41] 러시아의 길드, 소규모 생산자 모임. 산업 혁명 이후, 유사 협동조합이나 예술가, 기술자 소모임, 또는 완전한 협동조합으로 변화[42] 러시아 서남부 지역은 대한민국의 제주도만큼 연평균기온이 온화하다.[43] 당시 러시아,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중국 도자기를 오스만 제국 황실로부터 발주받아 중국에 주문서를 전달하고 완성품을 오스만 황실에 배달하는 일도 했다.[44] 터키인 노인들에 따르면 터키에서 자체적으로 찻잎을 재배하고 가공하기 시작하던 1940-50년대까지만 해도 찻잎이 귀했다고 한다. 손님이 올때나 어르신들 대접할때만 내놓았다고.[45] 아랍-인도쪽은 터키보다 더 달게 먹는다. 차건 간식이건 달달하게 먹는건 민족과 종교, 습관이 다 다른 중동지역의 공통 사항이다. 세계적 르포 만화가인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등 중동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루기 위해 긴 시간을 중동에서 보냈고,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레바논까지 다양한 중동지방을 돌아다녔는데.. 그는 중동국가들도 그저 하나의 거대한 중동이란 지역명으로 분류되기엔 유럽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과 이탈리아가 확연히 다른거 같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차가 모두 단 점은 전 중동이 다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도도 만만찮게 달게 먹는다. 러시아인들도 잘 알려진 잼을 곁들인것 말고도 터키와 똑같은 스타일의 차도 자주 마신다.[46] 차이단륵에서 한국에서 하는 식대로 차를 2분남짓 깔짝 우려내면 밍밍한 맛밖에 안난다.[47] 껍질을 잘게 썰어 일주일 정도 말린 뒤, 뜨거운 물에 달여 내놓은 것.[48] '차'자가 빠진 것을 제외하면 커피도 일종의 대용차라고도 볼 수 있다. 개화기 커피가 들어왔을 때 왕실에서 '가배차'라하여 잠시 '차' 이름을 가진 적도… 다만, 커피의 경우 워낙 다양한 종류로 분류가 가능해서 대용차의 범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료의 형태로 자리 잡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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