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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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44년 5월 27일, 경기도 경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58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조달청장, 과학기술처 차관, 해양수산부 차관, 통상산업부 장관,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을 역임하였다.
(1997년 12월 3일, 미셸 캉드쉬(왼쪽) 당시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하는 임창열(가운데)의 모습. 오른쪽은 김영삼 정부의 초대 경제 부총리를 역임했던 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그가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로 취임할 당시는 1997년 외환 위기가 본격화되어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하고, 그 대가로 IMF가 요구하는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모라트리엄 등의 보다 심각한 사태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경기도지사 재임 기간 중 고양시에 KINTEX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수원시가 광역시로 승격하여 경기도에서 탈피하려는 행보를 보이자, 승격을 반대함은 물론 자꾸 승격을 시도하면 경기도청만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는 완강한 입장을 견지했고 결국 수원시는 광역시 승격 시도를 포기했다.[2]
그 외에도 파주 LG디스플레이 단지를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재가를 받아 추진하였으며, 판교 테크노밸리단지도 추진하였다. 처음에 판교테크노밸리를 100만평 규모로 추진하였으나 당시 여러곳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하여 그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하고 현재 규모로 축소되어 추진되었다.
하지만 1999년 7월, 지방선거 직후에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었다.# 소속 정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는 그를 제명하였고, 이후 얼마 안 가 보석으로 석방된 뒤 직무에 복귀했으나, 이 때도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압박이 많았지만 끝까지 사임하지 않고 구치소에서 '옥중결재'를 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건 자체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도지사 임기 말기이던 2002년 초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 환송되었고, 결국 도지사 퇴임 이후인 2003년 상고를 취하하면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한편 뇌물수수 혐의로 당에서 제명된 뒤 당적을 갖지 않고 무소속으로 도지사 임기를 수행하였고, 2002년 초 경기도지사 재선을 위해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당초 경선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당 내 마찰과 경선 전부터 진념 후보에게 밀렸던 탓에 최종적으로는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도지사 임기가 끝난 2002년 7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2003년 11월 다시 한 번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했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오산시에 공천받았으나 민주당 지도부 내분사태로 인해 최종적으로 출마를 포기했다.[3]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출마하지는 않았고, 대신 김문수 한나라당 경기지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을 탈당한 후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여담이지만 임창열 이후로 한동안 민주당계 정당 소속의 경기도지사가 나오지 못했고[4] , 임창열이 당선되고 무려 20년이 지난 2018년에야 비로소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선되었고,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이재명과 같은 당 소속인 김동연이 당선되어 경기도지사 수성에 성공하였다.[5]
한편 2014년 9월부터 2020년까지 자신이 설립에 앞장선 KINTEX 대표이사로 재임하였다. 킨텍스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3전시장 건립과 호텔건립, 주변 일산테크노밸리등을 추진하였으며 만년 적자였던 킨텍스를 매출은 2배로 성장시키고 흑자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 전시장 업계에서는 최초로 인도에 킨텍스보다 3배 이상 큰 뉴델리 IICC 전시장 20년 운영권을 세계적인 Venue 운영업체와 경쟁하여 수주하였다. 따라서 2020년부터는 국내 업체 킨텍스가 운영하는 인도 IICC 전시장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 저서[편집]
4. 기타[편집]
이름 때문에(...), 정치인의 등재가 제한되어있는 디시위키에서 문서가 만들어진 몇 안되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연예인 김창열에 대한 드립이 종종 제재를 먹을 때마다, 이 사람 핑계를 대는 경우가 잦았다.
5. 선거 이력[편집]
6. 소속 정당[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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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무정지기간: 1999년 8월 1일 ~ 1999년 10월 17일[2] 때 마침 당시 의정부시에 경기도청 제2청사를 짓고 있던 것도 수원시를 꿇어 앉히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제2청사는 임창열 지사 임기 중에 완공되었으며, 인근에는 의정부 송산지구(민락1지구), 금오지구의 개발도 병행되었다.[3] 이 선거구는 열린우리당 소속 안민석이 당선되었으며, 이후 내리 5선을 달성해, 지금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있다.[4] 경기도지사 선거는 1995년에는 여당인 보수정당이 유리했고, 2002, 2006년에는 여당인 민주당계 정당 심판으로 야당이 된 보수정당이 유리했다. 2010, 2014년에는 반대로 다시 여당이 된 보수정당 심판에도 불구하고 정말 한 끗 차이로 민주당계 정당이 근소하게 낙선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임창열 이후로 당선된 경기도지사는 보수정당 출신인 한나라당 손학규, 김문수, 새누리당 남경필이다.[5] 참고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또 다른 징크스가 있는데, 임창열의 위의 상술된 항목 여파인지, 경제부총리 출신 관료가 출마하면 낙선하는데. 2002년에는 진념, 2014년에는 김진표도 낙선하였다.(진념, 김진표 둘다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출마한 것도 공통점이다.) 이후 24년만에 경제부총리 출신 관료 김동연이 당선되면서 이 징크스도 깨진다.[6] 1999.8.1 새정치국민회의 제명
2002.4.3 새천년민주당 복당[7] 통합민주당과 신설합당[8]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위한 탈당[9] 뇌물수수 혐의로 인한 제명
2002.4.3 새천년민주당 복당[7] 통합민주당과 신설합당[8]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위한 탈당[9] 뇌물수수 혐의로 인한 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