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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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7] , 편곡가, 음악 프로듀서, 비트메이커, DJ, 배우, 문필가, 라디오 진행자, 방송인.
배우와 음악, 집필, 이 모든 분야에서 인디 및 무명 생활을 다 거쳐 당시 대중가요 및 연예계를 꽉 잡고 있던 일본 아이돌 시장의 튼튼함 속에 파죽지세로 올라와[8] 음악, 배우, 방송인, 작가 이 모든 부분에서 상을 타고 메가히트친 대표작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모두 다 성공해본 입지전적형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상당히 암흑기였던 2010년대 일본 대중음악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국민적 팝 아이콘 중 한 명이었고, 그 당시를 이야기할 때 호시노 겐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던 인물이라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샤라웃 및 큰 선배취급을 받고 있으며, 요네즈 켄시와 함께 일본 솔로 싱어송라이터 입지 확립의 재시작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9년 역대 일본 남성 솔로로서는 5번째로 '5대 돔 투어'를 실시하고, 예매 당일 모든 돔의 좌석을 전석 매진시키며 일본 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중 한 명[9] 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는 음악 및 배우 활동에 이전과 다른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으며, 2021년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가 되었고, 2023년 현재도 메이저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의 입지[10] 를 가지고 있다. 호시노 겐의 라디오 청취자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을 정도로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루고루 팬이 많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2. 데뷔 전[편집]
'호시노 겐(星野源)'이라는 이름은 출생명인데, 부모님은 '한자 한 글자', '외국인도 부르기 쉽다', '비 오는 수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물에 관계가 있는 한자'라는 이유로 '겐(源)'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원래부터 부모님이 굉장한 음악 애호가였다. 생계 때문에 사이타마현의 어느 한 시골 동네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했던 서민 집안이었으나 부친은 재즈 피아노가 취미였고, 모친은 과거에 재즈 보컬리스트가 꿈이었던지라 산처럼 쌓인 재즈 레코드와 음악이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재즈가 완전히 그의 생활 속에 있었다. 그렇게 어릴 때는 뭔지도 모른 채 재즈 뿐만 아니라 여러 블랙 뮤직(토미 플래너건, 니나 시몬, 마이클 잭슨, 아이즐리 브라더스, 마빈 게이, 등)의 노래 등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가장 처음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는 토미 플래너건이었다고. 부친은 'SIGNAL' 이라는 동네의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었고, 부모님이랑 재즈 바나 조그만 라이브 공간에도 자주 갔었다.
유어릴 때 식탁에서 밥을 기다릴 때 젓가락을 양손에 하나씩 갖고 기다릴 수 없어서 식기를 젓가락으로 두드리고,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이에 부모님이 '그렇게 식기를 두드리고 싶다면 드럼을 두드려라'는 말에 드럼을 초등학생 때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며 # 통지표에 '독특하지만 침착성이 없습니다'라고 계속 받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집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를 간간히 쳐보기는 했으나, 호시노 겐은 중학교 때 다들 기타를 치기 시작하여 본인도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음악한다니까 부친이 쓰던 기타를 내주는 등 남들보다 시작하기 쉬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계속 들어왔던 재즈와 소울 음악을 듣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재즈와 소울을 듣기는 했으나,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지 못하고 당시 거의 모두가 들었던 록 음악을 연주하며 연습했다. 유니콘, B'z, KIRINJI, CHAGE and ASKA 등의 록 밴드 및 그룹들을 좋아했고, 집에서 혼자 블루 하츠의 곡들이나 익스트림(Extreme)의 「More Than Words」 같은 곡을 듣고 카피하면서 놀았다고 한다.그때 저는 아무 꿈도 없고, 맨날 일단 그냥 살았던 것 같은데 재즈 뮤지션의 영상이 나오거나 해외 R&B/소울 뮤지션의 곡을 들으면 막 춤을 추고 그랬어요. 저는 그때 그 음악들 때문에 너무 구원을 많이 받아서. (앞으로의 꿈은) 제 음악으로 말하면, 어디 가 본 적이 없는 나라의 가정에 있는 아이가 제 곡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싶습니다. 뭔가 그때의 보답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호시노 겐은 소학교 및 중학교 시절 대인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었고, 엄청나게 내성적이었으며, 따돌림과 망신을 계속 당하며 공황장애를 겪은 적이 있고, 학업측면에서도 거의 꼴지였을 정도로 다른 학생들보다 많이 부족했으며, 위축되거나 맨날 땅만 보고 걸었던 시절이 많았다. 학교를 빠지는 날도 많이 생겨 그렇게 그는 일반 학교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점점 더 고독하고 어두운 성격으로 고립하게 된다.
그렇게 부모님의 교육관에 따라 일반 학교랑은 다른 사립 대안학교인 지유노모리가쿠엔고등학교[11] 에 입학한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장애적인 증세가 있어 학교를 빠지고 집에서 못 나가는 날도 많았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기분은 초졸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작곡은 14살 때 집에 있던 낡은 거트 기타로 단순한 노래를 가장 처음 만들어봤으며, 고등학생 때 반에서 인기 많은 친구가 "겐, 기타 치는 거면 내 가사에 곡 좀 붙여줘"(源君、ギター弾けるんだったら、僕の詞で曲を作ってよ)라고 부탁해서 곡을 본격적으로 쓴 것이 최초. 이후 자기 곡도 여러 개 썼지만 부끄러워서 발표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라이브도 고3 때까지 부끄러워서 못 했다고. 중학교 시절에 음악 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관심을 가졌어서 연기 연습도 했는데, 고등학생 때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의 연극을 보고, 당시 내성적이었던 호시노 겐은 감동과 충격을 받아 이 극단의 워크숍에 참석하고, 연기에 대한 꿈을 강하게 가지게 된다.
고등학생 때부터 호시노 겐은 독립하여 자취를 시작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지유노모리가쿠엔고교를 다니고 연기 연습과 음악 연습을 계속한다. 가장 처음 살았던 방이 바퀴벌레랑 곱등이가 나오는 3평짜리 단칸방이었다고 한다.[12]
음악을 본격적으로 한 건 20세 때 자신이 리더가 되어 고등학교 동급생을 모아 인스트루멘탈 밴드 SAKEROCK을 2000년에 결성했을 때부터다. 처음부터 인스트루멘탈 밴드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원래는 오히려 유니콘처럼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걸 좋아해서 곡도 그런 걸 썼지만 테이프에 녹음된 자기 노랫소리를 들은 후 급좌절해 본인의 목소리가 싫었고 노래하고 싶다고 말을 못했다고 한다. 또한 클리퍼드 브라운&맥스 로치의 앨범「Study In Brown」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인스트루멘탈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적인 체형을 포함해 뭐 하나 특출난 게 없었던 호시노 겐 특성상 스카우트 제의는 전혀 오지 않았고, 그렇게 여러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밴드 활동을 병행하면서 프리랜서로서 여러 연기 오디션을 보고 일부 연극에 참여하게 되며 잡지의 난외에 노게런티로 잡문을 쓰는 일을 계속 찾아다니며 하게 되었다.어린 나이에 독립하고 생계를 꾸리던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궁핍하던 시절에도 앨범을 구매해 들었던, YMO의 멤버이자 히피 감성과 Exotica(이국적인 느낌의 이지 리스닝 음악)의 대가였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오르가닉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마림바를 구매하여 자신의 작은 방 안에 (식탁 대용으로) 넣어둔 것도 이 덕분이다. 현재(2018)의 호시노 겐을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인 恋(사랑)과 時よ(시간이여), 'Continues' 모두 Exotica를 대중 친화적으로 녹여낸 곡들이다. #
3. 음악가[편집]
그가 2000년대에 데뷔한 후 그의 음악들은 당시 일본에 자리잡혀있는 대중적 음악과는 항상 거리가 계속 있고 변화를 추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암울했던 2010년대의 제이팝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아이콘이 되었었고, 일본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다. 이후로도 Official髭男dism, 요네즈 켄시, YOASOBI, Creepy Nuts, imase, 츠네타 다이키(King Gnu), 바운디, 마카로니 엔피츠, WurtS, 쿠지라 등 여럿 후배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샤라웃 및 대선배 취급을 받고 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인 정규 4,5집 YELLOW DANCER와 Pop Virus 앨범은 2010년대 J-POP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졌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 이 두 앨범 모두 상업적 성공을 크게 이룬 동시에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일본음악 명반 순위에 각각 95위, 138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앨범 판매량[13] , 차트 성적, 그리고 음원 다운로드 수[14] 에 비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엄청나게 낮다. 그의 최전성기가 음원 다운로드 시대의 후반부 끝자락이었기도 하고, 해외보다는 일본 내에서만 크게 히트친 것 또한 한 몫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쓴 듯한, 노래를 건너뛰고 대신 나오는 중간 앨범 광고[15] 와 곡이 끝나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개인 코멘터리.[16]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컨텐츠가 되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음악가 측면에서, 恋(사랑, 2016), Pop Virus(2018), 그리고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1기 1쿨 엔딩곡인 喜劇(희극, 2022)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アイデア(아이디어), SUN, 不思議(불가사의), Week End,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 桜の森(벚꽃 숲) 등이 그 다음으로 유명한 편이다.
그러나 음악가적인 측면만 본다면 2020년대인 지금 한국에서의 선호도는 그가 쌓아온 음악적 커리어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전반적인 일본 문화를 잘 알고 있던 한국인들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J-POP이 가장 인기없고 배척당했을 때 일본 내에서 메가히트친 뮤지션이고, 현재 나이도 이미 40 중반에 가깝긴 하니.
3.1. 연혁[편집]
3.1.1. 인디 밴드 활동과 솔로 데뷔 (2000 ~ 2012)[편집]
호시노 겐이 리더로서 고등학교 동급생을 모아 2000년에 결성한 SAKEROCK은 2001년에 자체제작 5곡이 들어간 첫 CD 「sakerock」을 본인들이 완성시킨다. 이 CD로 판매 및 데뷔는 하지 않고, 명함 대신 나눠주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스튜디오를 빌릴 돈도 없어, 술집 지하실을 엄청나게 싼 가격에 빌려서 녹음된 한 장이라고.
그렇게 결성 된지 약 3년 후인 2003년에 첫 데뷔 앨범 YUTA를 본인들이 직접 자체 레이블로서 발매하고 직접 뛰어다니며 홍보한다. 첫 작과 마찬가지로 술집 지하실에서 녹음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SAKEROCK이 소규모 라이브하우스 공연을 여럿 이어가며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여러 극단의 배경 음악을 담당하는 등 활동을 이어간다.
'그냥 여기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 군데 가는, 그야말로 한때는 '연극 음악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여러 사람에게 말하러 가서 음악을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연극이라든가, 콩트라든가... 그야말로 바나나맨 두 분의 콩트 공연 음악을 하게 된다든가. (중략)
당시에는 인터넷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으니까. 오디션을 봐서 사무실에 파는 정도밖에 없었어요. 당시에 음악으로 데뷔하려면. 그러니까 여러 곳에 보내지만, 역시 사사건건 떨어지고. 나머지는 꾸준히 라이브 하는 정도 밖에 없는데. 뭔가 그걸 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요.
우선, CD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나 혼자 가방에 넣고, 거리의 레코드 가게들에 가서 "팔아주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러 가는, 그런 데서 시작하니까. 90%는 안 되고, 대체로 문전박대인데... 10%의 마음있는 사람들이 "음. 그럼 한 번 물어볼게.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말하고 안쪽으로 가서. 그걸 두근두근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와서 '그럼, 10장'이라고 해서 '감사합니다!' 같은(웃음). 그 와중에 작가 일도 하고 있는 사람이 잡지에서 좀 써 주고 또 퍼져서... 그렇게 해서 SAKEROCK가 퍼져 나갔으니까. 그래서 뭔가, 애초에 (지금도)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금방 통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SAKEROCK으로 활동하는 동안 솔로 데뷔는 무서워서 엄두를 못 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은 노래도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을 느꼈고 이제 곧 30대이므로 지금 안 하면 못 한다고 생각하던 중에 핫피 엔도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일본의 전설적인 음악가 호소노 하루오미의 제안을 받고 2010년에 호소노 하루오미의 레이블인 daisyworld에서 첫 번째 솔로 앨범 「ばかのうた(바보의 노래)」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두 번째 정규 앨범 「エピソード(에피소드)」를 SPEEDSTAR에서 발표했다.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18]
, 가사도 없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음악으로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특히 R&B, SOUL 등 해외의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으로 녹여낸 호시노 겐의 '옐로우 뮤직' 장르의 시작이 바로 여기, SAKEROCK의 음악에 있다. #
3.1.2. 뇌출혈과 밴드 해산 (2012 ~ 2015)[편집]
* 트라우마나 약간의 심리적 공포를 유발할 수도 있는 서술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
한 때 죽음의 직전까지 갔으나 수술은 성공했고, 병원 입원 투병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음식은 물론 물도 못 마시고 계속 두통과 고통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수술 및 입원치료 후 2013. 2. 28. J-WAVE의 「TOKIO HOT 100 CHART OF THE YEAR」 시상식 무대에 서면서 복귀했고, 솔로 정규 3집 「Stranger」(2013)가 주간 오리콘 차트에서 최고 2위를 기록하고 10만 장이 팔리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그 해 6월 검사에서 지주막하출혈이 재발한 것이 발견되어 재수술을 받았고, 여전히 입원 생활과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계속된다. 고통이 계속되는 2번의 지주막하출혈 투병 생활 당시, 과거부터 쌓여왔던 그의 어둠과 부정적인 감정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경험과 극복들은 이 당시 에세이와 곡들에 잘 나타나 있다. 심리적 및 육체적인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경험을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유머를 섞어 그다지 크게 심각하지는 않게 풀어놓고 있다.
당장이라도 침대 머리 위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다. 빨리 죽어버리고 싶다. 이런 고문 같은 아픔은 이제 더 이상 그만이고 싶다.
『되살아난 변태』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아아아아아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콜라 마시고 싶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19]
투병 생활 중에 자신이 죽겠구나라고 생각이 많이 들었으며, 인생관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완전히 워커홀릭이었고 '내가 즐기고 있다면 손님이 기뻐하는 음악을 할 수 없다'는 자신만의 슬로건을 완강히 지키면서 프로듀싱이라는 역할에 중점을 두며 해오는 일이 많아 부담도 많았으나, 점점 변하고 자신도 챙기려고 노력하는 밸런스를 챙겨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완치된 상태이나, 수술들을 한 이후로 기압에 따라 컨디션이 좌우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한다. # 현재도 계속 뇌검사하러 병원에 가끔씩 간다고.
죽는 것보다 살려고 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힘들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과 고뇌로 얼룩진 짐승의 길을 강제로 걷는 행위다. 그러니까 죽음은 열심히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닐까. (중략) 나는 마지막까지 발버둥치고 발버둥쳐서, 최고의 기분으로 엔딩 크레딧을 봐주겠다고 생각했다.
『되살아난 변태』 (2014)
입원 중에 SAKEROCK의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멤버 개개인들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점차 각각의 '싸우고 도전하는 장소'가 생겨,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고 싶은 것을 알 수 없게 되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완치 이후, 밴드 멤버들의 전원 동의 하에 도전적인 방향이 아니라 그냥 즐겁게 부담없이 연주하는 정규 5집 앨범 SAYONARA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2015년 6월 료고쿠 국기관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음 생을 기약하며[20] 밴드를 해체하였다.
이 멤버로 연주하는 일은 이제 없고, SAKEROCK으로서 할 일은 이제 없지만,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멤버들이 떨어져 있던 시기도 있었지만, 뭐랄까 역시 멤버들은 떨어져 있어도 밴드는 그 소리에 영향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떨어져 있던 시기도 같이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저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그렇게 마지막, 다 같이 멤버들이 모여서 마지막에 다 같이 라이브를 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는 앞으로도 쭉 SAKEROCK은 이 밴드 멤버들이구나라는 게 굉장히 느껴졌어요.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GOLD (2015) #
3.1.3. '옐로우 뮤직'의 대중화 (2015 ~ 2019)[편집]
어느 날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왔을 때 '저는 낯가림이 있어요'[21]
라고 나를 설명하는 것에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도 병인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말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그때까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소통하기를 포기했다. 소통에 실패하면서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걸 상대에게 "낯을 가려서...."라고 마치 피해자인양 말하는 것은 "나는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니 그쪽에서 조심하쇼."라고 대놓고 낯부끄러운 선언을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려고 노력했다.
『생명의 차창에서』
도망부끄의 시청률이 20%를 기록, 恋(사랑)의 실물 싱글 판매량은 31.8만 장, 음원다운로드 수는 200만을 돌파하고, 일명 '코이댄스'가 일본 전역을 강타해 여러 연예인 및 유튜버들이 커버하면서, 호시노 겐은 배우와 뮤지션 양쪽에서 모두 메가히트를 했다. 2016년 하반기는 호시노 겐의 「恋(코이)」와 RADWIMPS의 「前前前世(전전전세)」가 양분했다고 할 수 있다. 「恋(코이)」는 2017년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른 곡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여러 라이브를 하고, 앨범 및 싱글을 발매하는데, 그 곡들도 「恋(코이)」만큼은 아니지만 히트를 치는 등 유의미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러한 인기로 2015년과 2016년에 이어서 2017년 홍백가합전까지 3년 연속 출장했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조사인 2017년 오리콘 일본인 2만명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랭킹에 9위를 기록하고, 2017 닛케이 텔런트 파워 랭킹 종합 순위는 17위를 기록하며 상위권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2010년대 일본 아이돌 시장의 강세 속에 새롭게 히트 친 남성 솔로 가수가 잘 나오지 않고 있고, 솔로 싱어송라이터 시장에 주목을 덜하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거뒀다.
그리고 추가로 2017년에 올 나이트 닛폰의 퍼스낼리티로서 처음으로 「갤럭시상 라디오 부문 DJ 퍼스낼리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18년에는 일본 저작권협회에서 전년도 CD판매량, 디지털 다운로드, 가라오케, 착신음 다운로드 등을 종합하여 가장 많은 저작권 수입을 올린 곡에 수여하는 JASRAC 금상을 수상, 현재 사잔 올 스타즈와 더불어 소속사 아뮤즈의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전부터 여러 예능[22] 이나 드라마에 꾸준히 참여해왔기에, 그렇게 호시노 겐은 2016년부터 2019년도까지, 일본 남성 솔로 싱어송라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내에서 건재했던 쟈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가지게 되었다.[23] 그리고 이미 스타가 되어버린 후 출시하는 5번째 정규 앨범 Pop Virus는, 앨범 발매 전부터 대중들의 엄청난 기대를 모으게 된다.국민적 스타 호시노 겐과 쟈니스, 서로 대조적이기 때문에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2017.01.05)
「恋」, 「Family Song」,「アイデア」등이 포함된 5번째 앨범인 『POP VIRUS』는 호시노 겐에게 최초의 도달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YELLOW DANCER』에서 시도한 SOUL, R&B와 J-POP의 융합이라는 주제를 더욱 밀어붙여 현재 진행형인 서양음악 트렌드 (특히 참신한 리듬의 어레인지, 중저역을 강조한 사운드 메이크업)와 맞물리면서, 일본만의 팝 음악으로 승화시킨 'POP VIRUS'는 폭넓은 층의 청취자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마니아적인 음악팬들을 신나게 하는 이상적인 확산세를 보였다. 전국 5대 돔 투어 「호시노 겐 DOME TOUR 2019 POP VIRUS」에서도 엔터테인먼트성과 음악성을 공존시킨 무대를 펼치며, 호시노 겐은 완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
이후 전 세계 스트리밍을 시작하고, Pop virus 월드투어를 진행하며, 애플 뮤직의 라디오 Beats 1에서 일본인 최초로 프로그램 호스트를 맡았었다. 호시노 겐이 선곡을 하고, LA의 Beats1 스튜디오에 가서 현지 스태프들과 함께 제작한 'Pop Virus Radio'가 그 프로그램. 이 라디오에서 호시노 겐은 여러 아티스트들을 샤라웃하며 자신의 창작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과 저의 영혼을 공명시켜 저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 나의 역사 속에서 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3.1.4. 재시작 (2019 ~ 2022)[편집]
그러나 호시노 겐이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한 한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고 설레고 그것을 모든 청중들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음악가로서의 그의 동기이며, 활동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신작 EP 『Same Thing』은 『POP VIRUS』 이후 그가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의 증거이다. #
코로나 사태 당시, 이전과 같은 활동이 불가능해져서 이 기회에 DAW 및 키보드를 사용한 작곡을 제대로 시작했다. DAW 소프트웨어 자체를 입수한 지 15년 정도 됐는데 녹음기로만 쓰고 있어서, 제대로 하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차분히 임할 시간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그런 타이밍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DAW를 통한 음악 제작방법을 터득하면서 만든 곡이 折り合い(타협)과 創造(창조)이다. 더 나아가 不思議(불가사의)나 CUBE도 이런 상황에서 탄생하였다.나는 다시 태어났어 몇 번이고의 재시작은 따분한 이 세상에서 놀기 위해서야
創造(창조)(2021)의 가사 중
그리고 2021년 5월 19일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또한 발표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에서까지 화제가 되었으며, 9월 2일에는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 The Album의 수록곡 중 하나이자 Zion.T와의 합작곡인 Nomad가 공개되었다.Q. 예전에 호시노 씨는 'Same Thing'을 만든 것의 수확으로 '음악은 즐겁구나 하는 굉장히 순수한 것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을 꼽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 안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여기서 다시 출발선이 그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만약 이 후 거센 파도가 몰아쳐와도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도감이 매우 큽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문을 연 '창조'와 '불가사의'를 완성한 현재 호시노씨의 텐션이나 동기는 이야기한 「Same Thing」때의 감각의 연장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장소에 서 있는 느낌이 있습니까?
호시노 겐: 또 다른 장소인 것 같아요. 'Same Thing'에서 얻은 것들을 'Same Thing'과 같은 선상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Same Thing'의 이전으로 돌아가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다른 곳으로 가야 Same Thing에서 얻은 걸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서 받은 것들을 그대로 같은 무대에서 꺼내 버리면 그냥 반복이 되는 것 같아서요. (중략) 예를 들어 이게 'Same Thing' 이듬해인 2020년이었다면 아직 같은 지평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1년 스케줄이 미뤄졌고, 그 사이에 다른 무대로 가는 기분 같은 걸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그런 상태로 제작에 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호시노 겐이 이전까지 대히트할 수 있었던 곡들과 다른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으나, 빌보드 재팬 HOT 100 전체 1위를 찍거나, 새 싱글인 不思議/創造(불가사의/창조)가 첫날에만 약 10만장이 판매되고, 이런저런 일이 많아 모델프레스 선정 2021년 상반기 가장 활약한 연예인 1위, 2021 닛케이 텔런트 파워 랭킹 뮤지션 3위[26] 에 뽑히기도 했으며, GQ재팬 2021년 6월호의 표지와 특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3.1.5. 2023년 ~[편집]
2023년 1월에는 Gen Hoshino presents Reassembly라는 이름으로 팬클럽 전용 단독 콘서트를 가졌으며, 3월 18일에 LIVE the SPEEDSTAR 라이브에 참여했고, TBS에서 중계되는 2023 부다페스트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경기 중계 테마곡인 生命体(생명체)를 발표했으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예능인 라이트하우스에 고정 출연진으로 출연하고 그 프로그램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2024년, 호시노 겐의 NHK 관 프로그램(이름을 건 방송) '오겐상과 함께'의 스핀오프적인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이 정규 방송 결정이 나서 1월부터 3월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덧붙여, 올해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사항을 생일에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후 '오도리의 올 나이트 닛폰 in 도쿄 돔'에 스페셜 게스트로 깜짝 등장해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와 콜라보 공연을 펼치고 간단한 토크도 했다. # 또한 4월 11일에는 도쿄에서 진행된 티파니앤코의 전시 행사인 Tiffany Wonder에서 오프닝 이벤트 DJ로 약 90분간 디제잉을 하고 행사장 BGM을 담당하는 선곡 셀렉터로 참여했다.[27] 이 두 행사 모두 대외적으로 세간에 미리 알려진 행사가 아니라 상당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 GQ재팬 2024년 6월호(5월 발매)에 표지 및 특집으로 등장했으며 #, VIVA LA ROCK[28] , ROCK IN JAPAN FESTIVAL 2024, SUMMER SONIC TOKYO 2024 등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3.2. 디스코그래피[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디스코그래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관련 문서: SAKEROCK/디스코그래피
3.2.1. 타이업 및 악곡 참여[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타이업 및 악곡 참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2. 노래방 수록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노래방 수록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커버곡 / 리믹스[편집]
SAKEROCK 활동 포함(콘서트 제외). 라디오에서나 오겐상이 커버한 곡은 작성하지 않았다.
(호시노 겐의 보컬이 나오는 경우는 제목 옆에 ★ 표시)
3.4. 라이브 및 이벤트[편집]
3.4.1. 공연 및 행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2. 콘텐츠[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콘텐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3. NHK 홍백가합전[편집]
호시노 겐의 출장과는 별개인 오겐상의 홍백가합전 무대는 이 문서를 참고.
3.5. 특징 및 이야깃거리[편집]
3.5.1. 음악적 특징[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래 나온 내용들은 분리된 문서의 일부 발췌 또는 요약이다.
솔로로서 지금까지 발표한 극히 일부 곡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들과 음반들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했다.[37]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하고, 인디 밴드 SAKEROCK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했었으며, 이후로도 전반적인 편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하다보니, 기타와 건반, 그리고 타악기 및 전자 악기 쪽은 호시노 겐 본인이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상당히 다양하다. 다룰 수 없는 현악기와 관악기 등은 편곡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편.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라 기본적으로 리듬과 비트를 중요시하며, 전체적으로 음악의 사운드와 악기와 리듬을 상당히 복잡하거나 컬러풀하고 풍부하게 사용하면서도 여유롭거나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38] 는 큰 특징이 있다. 애초에 그의 맨 처음 SAKEROCK 활동 시작 및 데뷔 초기(2000년) 장르는 이지 리스닝의 하위 장르인 엑소티카(Exotica)[39] 와 금관악기, 현악기, 건반 악기, 타악기 등 세계 여러 다양한 악기를 여럿 사용하고 세계 여러나라 음악[40] 에서 영향을 받은 얼터너티브한 팝 음악, 그리고 영화 및 무대에 사용되는 음악인 오리지널 스코어였기도 하다. SAKEROCK이 전반적으로 록 구성과 재즈 구성의 인디 밴드(각각의 멤버들이 여러 악기를 할 수 있었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의 초~중기작들이 록 또는 재즈가 아닌 팝 음악으로 분류된 요인이기도 하다. 인디 밴드 시절의 곡들이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여러 장르가 섞여있으며 뭔가 어깨 힘 빠진 분위기의 곡들이 많았는데, 그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서는 다양한 악기가 변칙적으로 들어가거나, 미묘한 변화를 계속 주면서 곡이 진행되지만 곡이 쉽게 술술 들리는 안정감을 준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건강함과 담백함 속, 그의 고집이 담겨있는 리듬과 비트와 이색적인 사운드'가 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 설명을 나열하는 듯한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사에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넣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그 대신 '본인의 이야기에 기반하여 생성된 가치관'으로, 본인이 느끼는 풍경과 세상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시처럼 특정 주제에 대해 그가 바라보는 이미지(심상)을 떠올리게 한다. 문인다운 시적인 가사로 '문과 여고생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음악의 전반적인 콘셉트는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상과 생활의 일부분을 묘사하거나, 혹은 어둠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에 기반한 빛과 밝음과 따뜻함을 표현한다. 밝고 신나며 건강한 노래도 힘든 삶과 부정적인 감정 및 절망 속에서의 회복탄력성이나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노래가 많아 우스갯소리로 '빛 속에 어둠이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하며, 잔잔한 노래는 어두운 곳과 절망 속에서 일날의 희망이나 발버둥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빛과 어둠은 서로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이며, 궤를 같이한다고도 말한다. '희극'과 '비극'은 서로 나누어진 말이 아니라, '희극'이란 말에는 이미 '비극'이 포함되어있다는 그의 말처럼.
팝 적이면서도 댄스 음악의 요소를 넣어 몸이 가볍게 움직이는 곡들은 많지만, 그 중 일부에는 특색이 강한 춤 또는 안무가 들어가 있다. 일본의 국민 춤 중 하나로 자리잡혀 수많은 커버 영상을 파생시킨 유명한 2016년의 '코이댄스' 외에도 여러가지 예시가 있다.[41] 이와 관련하여 가사에 '춤추는, 춤추자'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적인 정취나 메세지성/상징성을 내포한 가사가 많기에 이 단어 또한 특정 뜻을 함축한 표현으로 종종 쓰인다.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가창력이 좋은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 생활을 계속 해오며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음역도 넓어졌다. 고음은 대체로 가성으로 처리하고, 보컬이 고음을 질러 대중들에게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노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읽어주기 창법'을 자주 사용한다.[42] 중저음이 꽤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가성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청중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다른 의미로 보컬의 기량이 사용되는데, 대체로 가수가 악기 중 하나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하여, 코러스 또한 본인이 참여해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할 때가 많은데, 호시노 겐은 예전 밴드에서 트롬본과 마림바의 음색을 돋보이게 해주는 코러스(서브 보컬)을 자주 했기도 하고[43] , Dead Leaf 등이나 (최근의 작업물 중에서는) 生命体(생명체)에서 그 예시가 뚜렷하고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 외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반주의 박자와 보컬의 박자가 다른 경우가 가끔 있어 어긋나게 부르면서도 상술한 그의 특징 때문에 쉽게 들리며, 라이브할 때 자신의 목소리 음량을 곡의 진행에 맞춰 줄일 때도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악기나 사운드에 더 집중하는 곡들이 많은 편.
깨끗한 음질로 전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노이즈가 맞는 곡이라면 음악에 일부러 잡음이나 노이즈를 남기거나, 역재생을 넣을 때가 있다. 특정 물건의 소리나[44] , 녹음 및 믹싱을 잘못했을 때의 그 이질적으로 튀는 공기 소리 같은 것[45] 이나 악기나 여러 사운드들의 역재생이 자세히 들어보면 군데군데 숨어있다. 그 외에도 여러 실험적인 요소도 집어넣는 경우가 많은데, 밴드 시절부터 생활 소음이나 여러 효과음과 함께 녹음해보는 건 물론이고, 도입부를 본인의 핸드폰으로 녹음한 걸 곡에 그대로 쓰거나, 노래 중간에 기타 솔로 대신 기타 튜닝 소리를 넣는다던가, 대화소리를 넣어본다는 등이 있다.
자신의 히트 친 음악을 반복하는 걸 '뭔가 설레지 않는다'며, 비록 대중적인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 음악적 도전 및 도전하는 방향성의 다양화를 좋아하며 꾸준히 많이 하고 있다. '그가 본 힙합의 가치관'과 '그의 원래 가치관'이 유사하여 호시노 겐이 힙합을 전문적으로는 모르지만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은, '시대는 항상 변화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음악이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수한 놀이방법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것이 반영된 부분.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같은 '가볍게 춤추기 좋은 팝 적인 곡'으로 의뢰가 들어와 제작에 착수했던 恋(코이)와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세션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공연장이나 곡에 따라 상당히 유기적이며, 음원이랑 사용된 악기가 같더라도 대부분 편곡을 살짝 다르게 해서 음원 그대로 부르는 라이브가 거의 하나도 없다. 단독 콘서트의 경우에는 여러 종류의 현악기, 퍼커션, 관악기, 건반 악기, MPC 같은 전자 악기 등 작은 오케스트라를 연상케하는 규모의 세션을 동원하지만, 소규모 콘서트에서는 간단한 밴드 형식 + 일부 간단한 악기(대부분 색소폰 또는 플루트)으로만 동원해서 곡을 어레인지해서 부르며, 그 외에도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히키가타리를 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음악 방송에서 이때까지 호시노 겐이 했던 라이브 최초로 밴드나 어쿠스틱 기타 없이 MR을 틀고 혼자 서서 빛의 흔적을 부르기도 했다.
3.5.2. 세계관[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의 전반적인 곡들이나 라이브를 보기 전에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으며, 개개인의 곡의 해석에 틀을 한정시키는 스포일러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3.5.3.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편집]
호시노 겐은 어떤 사람인가? (중략)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소속사인 KAKUBARHYTHM[46]
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중략) 정말 음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다지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굉장한 끓어오름과 하고싶은 일이 넘쳐나곤 합니다. 옛날에도 "카쿠바리씨, 이런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당시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큰 목표도, 실제로 곧바로 실행해보고 달성해 오거나 해요. (중략)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는 악곡의 퀄리티와 내구성, 절묘한 어레인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필수로 주목할 점입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에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그가 이때까지 걸어온 행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끈기와 행동력 자체를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예체능적 재능보다 더 크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뭔가 특정 일을 알아가본다던가, 할 때는 업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하는 제 지론이 있어서요. 저는 게으르기 때문에 업무가 아니면 잘 하지를 않아서(웃음). (중략) 또 저한테 하는 버릇이 있는데, 저에게 압력을 가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야 제대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여러 일을 하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연예계에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전업 아티스트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업량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으며, 일본 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계속해오고 있다.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직접 계속 하고 있고, 라디오 진행, 집필, 본인이 진행하는 여러 방송, 영상 기획 및 연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운드클라우드 및 유튜브 채널과[47] 광고 및 예능까지 하고 있기도 하며, 필모그래피는 같은 세대의 전업배우에 비하면 조금 적은 편이지만, 배우업도 계속 하고 있다. 또한 팬들과의 이벤트나 공연 라이브, 토크 스트리밍 라이브도 종종 하고 있으며 콜라보나 협업 하는 사람들 또한 그의 멀티 엔터테이너적 행보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있다.
더군다나 연기 활동은 그 배역에 대한 해석과 몰입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의 음악 제작 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喜劇(희극)을 만들고 있었던 당시 '17세의 제국'이라는 짧은 드라마에 참여했는데 이 드라마 촬영 당시에는 희극 악곡 제작을 하나도 잘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喜劇(희극) 속 풍경 및 인물들과 17세의 제국에서 그가 맡았던 '타이라 키요시' 배역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48] 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으로 솔로 데뷔 13년 차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리믹스나 피쳐링, 콜라보, 음원으로 내지 않은 CM음악 등을 제외하고 '정규 5개[49] 에, EP같은 곡 횟수를 가진 싱글 13개, 디지털 EP 2개, 디지털 싱글 9곡'이다. 물론 싱글 수록곡 중 일부가 정규 앨범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활동을 포함하여 20년을 보면 여기에다가 밴드 명의로 발매한 '정규 6개, 미니 앨범 1개, 사운드트랙 EP 5개'가 추가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도 1년에 한 곡은 어떻게든지 무조건 만들어야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또한 호시노 겐의 초~중기 싱글 수록곡들 중에는 'House ver.'이라고 표시된 곡들이 존재하는데, 음악 장르의 하우스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 하루만에 만들었다'는 표시이다. 솔로 초기 예산이 없었을 때 '어떻게 하면 싱글 앨범의 곡 수를 늘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노 게런티로 집에서 혼자 만들어본다는 게 하우스 버전의 기원이며, 하룻밤 사이에 순발력으로 만드는 그런 걸 자신만의 룰로 정했다고 한다. 이 시리즈의 곡들은 극초기 곡들을 제외하면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TR-808소리가 같이 나온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50]
고등학교 시절 독립 후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밴드 생활, 프리랜서 배우, 집필 다 병행한 건 물론이고, 뜨기 전까지 '재능이 없다'와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지만, 그때 당시 소속사에는 '이런 일이 직접 왔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 직접 발로 뛰며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런 행동력이 그에게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는데, 그가 솔로 데뷔 초중반에 걸렸던 지주막하출혈은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면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여러 방면의 작업과 일을 계속할 때 걸린 병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전 노래들 가사들을 보며 심적으로 위안을 받고, 여러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이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이후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메이저 히트 가수로 점점 올라가게 되는 작용이 되었기도 하다.
그의 행동력은 YELLOW DANCER와 Pop Virus로 음악적 측면, 상업적 측면 모두 대히트치고, 참여한 여러 드라마가 히트치며 30대 중후반에 뒤늦게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2019년 번아웃 증후군이 왔을 당시 '그것을 타파할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결과물로서 Same Thing EP를 발매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음악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 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또한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대외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이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기회삼아 40살에 DAW와 MIDI 작곡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그 작업에 몰두하며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재시작을 표방하는 여러 작업물을 냈다. 실제로 호시노 겐의 2021년 이후 노래는 DAW로 제작된 것이 많은 걸 감안하면, 그의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10~20살 차이나는 후배들과 같이 아직까지 현역으로 계속 뛰게 만들어준 또 다른 발판이 된 셈.
2021년에는 결혼까지 해서 작업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40대가 된 2020년 이후부터 컨디션 관리에 예전보다 탄력이 덜 붙으며,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작업량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곡들보다는 의뢰형식의 곡들을 많이 만들고 있으나 '의뢰를 받아 일을 만들면 곡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 生命体(생명체)와 光の跡(빛의 흔적) 악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극복해나갔고 이후 꽤 건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3.5.4. 흑인음악과 J-POP[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블랙뮤직을 흡수하거나 차용하거나 해서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구축하는, 일본 비주류 및 인디음악씬에서 왕성하게 불고 있던 움직임'에 호시노 겐 또한 그 일원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음악작품들은 인디씬에 차고 넘치지만, 호시노 겐은 '옐로우 뮤직'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존 블랙뮤직에서 그만의 필터를 통과시켜 독자적인 해석을 가미한 동시에 일본의 대중음악 및 상업음악적 색채까지 적절하게 추가하여 일본의 일반 대중들과 매니아적인 음악팬들을 모두 고려한 최대공약수적인 음악을 개척해나갔다.
2011년 싱글 1집의 수록곡인 湯気(수증기)를 시작으로, 2013년 싱글 6집의 곡인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까지 단순히 '취미'에 비슷하게 도전해오다가, 지주막하출혈 완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그의 음악 생활인 싱글 7집 Crazy Crazy/桜の森부터 정규 4집 YELLOW DANCER를 거쳐 정규 5집 Pop Virus까지의[52] 그 결과물들은 그의 목표를 보여주며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윽고 당대 일본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적 네임드 팝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럿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샤라웃을 받는 뮤지션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전까지 자신이 내세웠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만, 이 단어와는 별개로 실제로 이 당시 그의 작업물들은 상업적 대중 음악씬은 물론이고, 인디 음악씬을 포함하여 설명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예시이다.
cero의 「Obscure Ride」와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 이 2편은 양자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점이며, 블랙뮤직의 흡수에 크게 방향을 튼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53]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이 POP VIRUS(2018)로 그린 '팝'은 혁신적인 것이다. 타이틀 곡인 'Pop Virus'에서 적은 '새기는 한 박의 영원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비트가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에 특히 의식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호시노 겐이 몇 년 전 YELLOW DANCER(2015)와 POP VIRUS(2018)를 통해 부단히도 J-POP과 블랙뮤직의 일체화를 꾀했던 것처럼, TOMOO의 첫 정규작 TWO MOON(2023) 역시 이 리드미컬한 음악적 유산을 자연스럽고도 사뿐히 일본의 정서 위에 덧대어 놓는다. (후략)
-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 #
4. 배우[편집]
4.1. 연혁[편집]
4.1.1. 2001 ~ 2013[편집]
음악활동을 병행하며, 오디션을 보고 일부 연극에 참여하며 그때마다 연기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서 '악기를 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게 되면서, 호시노 겐은 이 역할로 2003년, 무대 연극 『ニンゲン御破算』에 출연하였다. 이전에도 여러 연극에 참여하였으나, 이 작품이 첫 큰 무대였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오토나케이카쿠에 배우로서 계약을 맺고 들어가게 된다.
"그때 용기를 내서 소속사에 넣어 달라고 사정했어요. 계속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더니 '좋아요.'라고 답하셔서. '이렇게 간단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담판을 짓고 소속된 사람은 저뿐이래요."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호시노 씨는 "지금 밴드도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사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혀 문제없어. 오히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게 재미있지."라고, 그런 식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
그렇게 오토나케이카쿠 연극에 여럿 참여하게 되고, 드라마 쪽에서는 2003년 『WATER BOYS』(후지 테레비)에서 경음악부에 속해있는 부원이자 기타를 들고 나오는 호시야마 배역으로 데뷔했다. 극중 경음악부로 연주했던 곡들은 본인이 직접 작사ㆍ작곡했다고 한다. 첫 드라마 주연은 2007년, 『지난해 르누아르에서』라는 짧은 단편 드라마이다. 이 작품에서 겉으로는 대사가 거의 없지만 속으로는 여러 망상과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나로 주변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표정이 변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 타이거&드래곤 』(TBS), 『 게게게의 마누라 』(NHK) 등의 인기작들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H(호시노 겐): 음악도 연극도 중학교 때부터 쭉 하고 있어서요, '계속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 들어간 때(2003)부터네요. 그때까지는 연기도 음악도 칭찬받지 못했고, '둘 중 하나만 해'라고 자주 들었습니다. 차츰 '연기 재밌네', '음악 좋네'라고도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정석적인 공연, 영화, 드라마 외에 코미디 콩트에도 여러 번 나왔는데, 특히 LIFE!〜人生に捧げるコント〜(라이프! 인생에 바치는 콩트)[54] 에 시즌0(2012)부터 시즌4(2017)까지 고정 출연진 중 한 명으로 꾸준히 출연하며 여러 가지 캐릭터를 보여주고 망가지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예시
4.1.2. 2015 ~ 2019[편집]
그렇게 배우로서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한다. 코우노도리 시리즈에서는 상당히 차가워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의사인 '시노미야 하루키' 역으로 아야노 고와 합을 맞추었으며, 처음으로 출연해보는 NHK 대하드라마인 사나다마루에서는 에도 막부의 제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 역할을 맡았다.
그 이후에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에서는 '선배'역으로, 미래의 미라이(2018)에서는 '아빠'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플라쥬에서는 각성제를 사용해 체포당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 셰어하우스 플라쥬에서 살게 되는 회사원인 '요시무라 타카오'역으로 wowow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또한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에서 카타기리 하루노스케 역을 맡아 제 43회 일본 아카데미상 배우부문 화제상을 받았다.작년 드라마 '코우노도리'에서 배우로서의 다양한 매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츠자키의 성실하고 못생겼지만, 귀여움도 함께 살고 있는 절묘한 분위기를 내 주시는 것은 호시노 씨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부탁했습니다. (중략) 2명이 동거하는 가운데 프로 독신을 관철하려고 하지만, 조금씩 그녀에게 끌린다는, 그 츠자키의 내면을 호시노씨가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졌다가 엇갈렸다가, 그런 무뚝뚝한 마음을 밝고 애틋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아티스트로서의 호시노 겐. 배우로서 그를 캐스팅할 때부터 느끼고 있었어서 주제가로도 섭외했습니다. (후략)
4.1.3. 2020 ~[편집]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주변 친구나, 호구, 귀여운 오타쿠, 모태솔로, 순박한 인물, 찌질하지만 인정이 있는 역할, 죄의 무게를 잘 눈치채지 못하는 서민, 웃거나 귀여운 매력이 있어 호감이 가는 역할, 망가지면서까지 열연을 보이는 B급 코미디성이 짙은 역할, 어딘가 미덥지 못한 역할 등을 주로 했었다. 그러나 이후 냉혈한, 마음 속 어둠을 숨기고 있는 인물, 관찰자 등 어릴 때와 다른 역할들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호시노 겐은 배우로서 언뜻보면 무기질적이고 무난한 인상이다. 다만 그가 창조하는 음악처럼 저온화상[55]
같은, 언뜻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 열정적인 면이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그러한 면이, 순박하거나 모태솔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냉정하게 보고 마음에 무언가를 안고 감정을 닫는 캐릭터로 이어졌고, 이제는 젊은 사람이나 동료를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지켜보는 입장 역할을 하는 인상으로 변해갔다. (중략)호시노가 배우로 인정받은 것이 2013년 영화 '묻지마 사랑'과 '지옥이 뭐가 나빠'. (중략) 그리고 2016년 '도망부끄'에서 연기한 '츠자키 히라마사' 역으로 대히트. (중략) 그런 호시노가 새로운 배우상을 구축한 것이, 2020년의 드라마 「MIU404」이다. (후략)
이와 관련하여 2020년, 자신의 라디오에서, MIU404에서 형사 역할을 해보며 새로 알아가는 게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서, 기존에 하지 못한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연기함으로써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해보고 싶다고 언급했으며, 나쁜 인물이나, 히어로 등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도 언급했다. 음악과 관련된 역할[57] 도 어디선가 해보고 싶다고 한다. #
이에 더해 2022년, 청춘 SF 정치 드라마인 『17歳の帝国(17세의 제국)』[58] 에서는 차기 총리 자리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욕망이 있는 내각관방 부장관[59] 이자 Utopi-AI 프로젝트의 핵심 매니저인 타이라 키요시 역으로, 배후자이기도 하면서, 주인공에게 충고해주고 도움을 주는 조력자이기도 한 복잡미묘한 인물을 맡았다. 조연으로 표기되었으나, 사실상 서브 주인공의 비중을 가지며 기존 그의 배우상과 차이나는[60] 역할로, 그의 연기 생활 및 배우상에 또 다른 설득력을 부여해준 역할이기도 하다. 또한, 여학교의 별 OVA에서는 호시 미쓰히코 역으로 이때까지 기존에 맡았던 애니메이션 역할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어이없을 정도로 우연한 고백. 호기심과 고뇌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인간성. 변박자다. 게다가 은은하게 츤데레 매력이 있어, 사랑스러운 하드보일드함은 오구리 슌과의 2인 연기 때 명료하게 나타난다. (중략)
오구리 슌을 후방지원하는 가드로서의 단짝감. 관계자와 자신과 가족의 과거를 바라보는 멀리서(소년시절부터)의 시선. 비극의 색채에 기대지 않고 현재의 가혹함을 받아들일 각오. 산뜻한 댄디즘.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
4.2. 필모그래피[편집]
4.2.1. 무대[편집]
- Penguin Pull Pale Piles vol.2 「워크인 타임머신」(2001)
- 시어터 코쿤 온 레퍼토리 2003 「인간 파산」(2003)
- Penguin Pull Pale Piles vol.8 「246번지의 분위기」(2004)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8 토도로키텐 VS 미나토 카오루 (2004)
- M&O plays 프로듀스 「아이스크림맨」(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9 「일곱 명의 연인」 (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우먼리브 선생님」 (2006)
- PARCO 제작 뮤지컬 「카바레」 (2007)
- PARCO 제작 「LOVE LETTERS 2008 SPRING SPECIAL」(2008)
- 시어터 코쿤 「여교사는 두 번 안겼다」(2008)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11 「일곱명은 나의 연인」(2008)
- 어른계획 「삿짱의 내일」 (2009)
- PARCO 제작「텍사스-TEXAS-」(2012)[61]
- 시스 컴퍼니 「미야자와 겐지가 전하는 것」(2012)
- 大人の新感線[62] 「라스트 플라워」 (2014)
4.2.2. 영화[편집]
- 「新しい予感(새로운 예감)」[63] (2002)
- 「69 Sixty Nine」 (2004) - 나카무라 조(中村譲)
「69 Sixty Nine」 - 「논코 36세(ノン子36歳)」 (2008) - 마사루(マサル)
- 「소년 메리켄사쿠(少年メリケンサック)」 (2008) - GOA[64] 기타 보컬
- 「묻지마 사랑(箱入り息子の恋)」 (2013) - 아마노시즈쿠 켄타로(天雫健太郎)
- 「지옥이 뭐가 나빠(地獄でなぜ悪い)」 (2013) - 하시모토 코지(橋本公次)
- 「러브 앤 피스(ラブ&ピース)」 (2015) - PC-300 (목소리 출연)
-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 - 카타기리 하루노스케(片桐春之介)
「이사 다이묘!」 웹사이트 - 「죄의 목소리(罪の声)」 (2020) - 소네 토시야
- 「라스트 마일(ラストマイル)」 (2024) - 시마 카즈미
4.2.3. 드라마[편집]
4.2.4. 애니메이션[편집]
4.2.5. 나레이션[편집]
- + COLOR (2005년 4월 3일 ~ 9월 25일, 후지TV)
- 나의 10가지 룰 (2009년 4월 7일 ~ 9월 22일, TBS)
- 야자와 에이키치 & 이토이 시게사토 ~아마추어 사장 두 사람 지금이야말로 ... 돈 이야기 ~ (2010년 8월 1일, NHK E)
- 과외수업 어서오세요 선배님 (2011년 4월 9일, NHK종합)
- 여행의 힘 '내슈빌 28세의 테네시 왈츠 가수 우에무라 카나' (2011년 9월 13일, NHK BS 프리미엄)
- No Smoking (2019)
4.3. 이야깃거리[편집]
배우로서도 2013년에 좋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66]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신인상을 비롯한 여러 신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시청률 20% 이상을 돌파하고 사회현상을 일으킨 드라마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며, 2017년에는 장래 유망한 배우들에게 주는 엘란도르상을 수상[67] 했을 정도로 배우로서 자리잡았고, 오구리 슌, 아야노 고 등 여러 배우들과도 여러 합을 맞췄기에 배우로도 일본에 잘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같은 세대의 전업 배우들에 비하면 참여 작품은 조금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꿀릴 것 없는 커리어와 코믹부터 시리어스까지 소화하는 연기 스펙트럼과 팬을 가지고 있어, '배우 호시노 겐'을 먼저 알게 되거나, 혹은 '음악가 호시노 겐'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다른 이름있는 배우들에 비해 엄청나게 적어서[68] , 순박한 초식계 너드남과 능력이 뛰어난 냉혈한 형사를 보여준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팬들을 제외하고 다른 필모그래피가 그닥 많이 돋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가 비주류적인 작품 속 개성이 넘치는 배역이나, 비주류적인 감성, 또는 배우로서 상당히 부담스럽거나 망가지거나 다사다난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5년동안 SNL스러운 일본의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에 고정크루였을 뿐더러, 그의 필모그래피를 여럿 보다보면, 피칠갑되는건 기본이고, 망신당하거나 알몸이 노출되는 장면은 꽤나 흔하며[69] , 여러가지 종류의 격한 키스씬과 베드신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 하는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대역없이 이루어진 걸 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꽤 있는 셈.[70]
그래서인지 그가 점점 라이징 스타로 이름이 커졌을 때도 본인이 완전히 주인공으로 돋보인다기보다는,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밑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개성을 일부 챙기는 역할이 많다. 상대 배우나 주인공의 옆에 존재하는 역할,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순박하거나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할 땐 진중해지는 경향의 역할, 분위기를 띄우는 캐릭터, 염세주의적이거나 절망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 (호시노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된 인물'[71] 의 역할, 어둠이나 사연 등을 숨기고 있는 듯 하면서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지켜보거나 남몰래 반응하는 역할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2020년 이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배역들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표현하여 압도하거나 휘몰아치는 눈빛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졌다. #1 #2
일본 내에서 평가가 좋은 각본가인 노기 아키코와의 합이 좋기도 하다. 당장 그가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한 노기 아키코 극본의 작품만 하더라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MIU404, 죄의 목소리'이다. 호시노 겐의 신인 시절을 제외하고, 그의 배우 대표작 및 그가 신인상 이후 받았던 연기 관련 상들이 대부분 다 이 작품들에서 나온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작품들 모두 노기 아키코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72] 노기 아키코는 그가 작가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언어 능력이 높아 각본에 대한 독해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퇴고 중에 이 대사를 넣을까 뺄까 고민하고 뺀 대사를 호시노 겐이 애드리브로 유사하게 넣은 적이 있어서 약간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고.
한 가지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가 이때까지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은 '호시노 겐'과는 거리가 멀다. 독신을 관철하다가 마음을 조금씩 여는 모태솔로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았었지만, 실제로 먼저 고백하거나 적극적인 연애 경험이 많은 건 물론이고, 대부분 소시민적인 중립성향이나, 질서 선, 질서 중립 등의 성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일이 많았지만 정작 '호시노 겐'을 굳이 클리셰적인 성향으로 구분지어보면 혼돈 중립에서 점차 성장하고 소통을 늘리며 혼돈 선이 된 인물에 가깝다.
여담이지만, 수많은 팬들로부터 '호시노 겐의 하라구로 악역이나 광기가 있는 사이코패스 빌런 역할을 한 번 보고 싶다'고 꽤 많이 들었다고 하며, 노기 아키코도 마음을 완전히 닫은 악인이나 살인마를 연기하는 호시노 겐을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호시노 겐 본인 또한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5. 작가[편집]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22,23살(2003년) 때 '문필을 계속 하면 혹시 억지로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편집자를 찾아다녔고 잡지의 난외에 100글자나 200글자로 잡문을 쓰는 일을 노개런티로 맡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쓰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부탁되는 글자 수가 증가하고, 2009년에는 첫 에세이집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를 집필한다.
여러 에세이집이 4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생명의 차창에서'는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북로그 에세이 부문 대상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번역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인 지금까지도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을 이어오고 있다.
5.1. 저서 / 대담집[편집]
5.2. 연재[편집]
- シアターガイド 「나의 이번 달」
- Quick Japan 「식물인간도 춤출 수 있는 음악」, 「오늘의 사이타마」
- 소년문예 「빙글빙글 파아코」
- 미래창작 vol.1 단편소설 「찻주전자」
- bounce.com[76] 「호시노 겐의 노래하는 소설」
- H (에이치) 「우메보시의 픽션 대마왕」
- 텔레비전 브로스「호소노 하루오미와 호시노 겐의 지평선의 상담」[77]
- TSUTAYA 프리 페이퍼 "VA" 「호시노 겐의 그리고 SAKEROCK은 계속된다」
- 매거진하우스 "ウフ"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POPEYE 「무릎 위의 영화관」[78] , 「호시노 겐의 12명의 무서운 일본인」
- GINZA 「긴자철도의 밤」
- 다빈치
- 「호시노 겐의 잠자코 나를 따라와」 (2012 ~ 2013)
- 「생명의 차창에서」 (2014 ~)
- AERA
- 「음악 이야기를 하자」
- 「단둘이 이야기하자」
6. 미디어 활동[편집]
6.1. 예능 / 교양[편집]
음악방송 출연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곳을 참고. 고정출연인 경우는 연도 옆에 ★ 표시.
- 보스의 ○○시간 (ファミ通(패미통)WaveDVD)
- 우리들과 호시노 군과 미소(俺たちとほしのくんと笑顔) (2008. 02.)
- 우리들과 SAKEROCK과 재밌는 얼굴(俺たちとSAKEROCKとおもしろい顔) (2009. 01.)
- 우리들과 호시노 군의 미소를 다시(俺たちとほしのくんの笑顔を再び。(2010. 03.)
- サケノサカナ(사케노 사카나)(Ustream, 2011 ~ 2013)★
- LIFE!〜인생에 바치는 콩트(人生に捧げるコント)〜 (NHK, 2012 ~ 2017)★
- 사노 모토하루의 더 송라이터스 시즌4 (NHK E) - 2012. 11. 02. / 09.
- 2015년 11월 23일
- 2017년 9월 28일 (호시노 겐 스페셜)
- 2021년 6월 24일
- 2022년 6월 16일
- 정열대륙(情熱大陸) - 2014. 02. 23.
- 호소노 하루오미의 옐로 매직 쇼 2
- 호시노 겐 스페셜, 월드 투어 라이브&인터뷰 (NHK) - 2020. 02. 15
- 게임 게놈(ゲームゲノム) (NHK) - 2021. 10. 15.
-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星野源のおんがくこうろん) (NHK E, 2022)★
6.2. 라디오[편집]
- All Night Nippon Creators Night (2008, 닛폰 방송)
- RADIPEDIA (2011 - 2014, J-WAVE)
- 호시노 겐의 Radical Hour (2013, NHK-FM)[80]
-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16 - , 닛폰 방송)
6.3. 광고 / CF[편집]
- 시세이도 아넷사 「미소가 반짝(笑顔キラリ)」 편 (2012) - 나레이션, 「夢の外へ」 CM
- 아사히 맥주 「ノンアルコールビールテイスト(무알콜 맥주 테이스트)」 (2016) - 나레이션, 「SUN」 CM
- AC 재팬 「ライバルは、1964年」 (2016) - 나레이션, 「Hello Song」 CM
「ライバルは、1964年(라이벌은, 1964년)」 - 스카파! 「리우 2016 패럴림픽 전문 채널 CM」 - 나레이션, 「Continues」 CM
- 맥도날드 「朝マック」 (2006)
- 오츠카제약 「ファイブミニ」 (2007 - 2008)
- 도쿄가스 「長男の結婚」 편 (2012)
- 시세이도 마키아쥬 웹무비 「Snow Beauty」 (2015)
- u-can 통신강좌 (2016) CM
[ CM목록 펼치기 · 접기 ] -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 篇 (돈베이 여우편)」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出てきません 篇 (돈베이 여우가 나오지 않습니다 편)」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の嫉妬 篇 (돈베이 여우의 질투 편)」
닛신 돈베이 CM 「耳は正直 篇 (귀는 정직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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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신 돈베이 CM 「ツキを招く月見そば 篇 (츠키오 초래 달맞이 소바 편)」
닛신 돈베이 CM 「月見ポケット 篇 (달맞이 포켓 편)」
닛신 돈베이 CM 「大晦日のうそ 篇 (섣달 그믐 날의 거짓말 편)」
닛신 돈베이 CM 「恋七味 篇 (사랑 양념 편)」
닛신 돈베이 CM 「いつもと違うどんぎつね 篇 (평소와는 다른 돈베이 여우 편)」
닛신 돈베이 CM 「そばにキミ 篇(곁에 그대 편)」
닛신 돈베이 CM 「レシート 篇 (영수증 편)」
닛신 돈베이 CM 「煩ぎつね 篇 (번여우 편)」
닛신 돈베이 CM 「寝言 篇 (잠꼬대 편)」
- 삿포로 맥주 블랙라벨 「大人エレベーター(어른 엘리베이터)」 제28탄 (2017)
- NTT docomo (2018 ~ 2021)[82]
- 닌텐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기념광고 (2020)[83]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5周年 TVCM - UCC 우에시마 커피 (2021~)
- 「COFFEE CREATION」シリーズ (2021.11~) 특설 사이트
- 「UCC GOLD SPECIAL PREMIUM」(2022.09~)
- 기린 맥주 담려 그린 라벨 (2023~)
- 세키스이 하우스 GRANDE MAISON (2023~)
6.4. 잡지 표지[편집]
멀티 엔터테이너이다보니 록킹 온 재팬, 롤링 스톤 재팬, MUSICA 등 음악 잡지는 물론이고, '다빈치'같은 도서 잡지, '키네마 순보'같은 영화 잡지 등 여러 방면의 잡지 표지에 오르는 경우도 많으며, 더 나아가 anan, ELLE 재팬, NYLON 재팬, GQ 재팬 등 패션잡지의 표지에 올라간 경우도 있다.
2018년 3월에는 일본의 패션잡지인 「装苑(장원)」에 1936년 1월 창간 이래 사상 처음으로 남성 단독 표지에 올랐다. # 덧붙여 호시노 겐 표지 및 특집으로 발행한 다빈치 2018년 12월호는 며칠만에 완판점이 속출해 잡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중판(重版) 결정이 나기도 했다. #
- 촬영 비하인드 유튜브 영상 (일부)
7. 팬덤 및 팬클럽[편집]
관련 문서: YELLOW MAGAZINE+
- 2016년부터 오프라인 매거진인 YELLOW MAGAZINE와 팬클럽 멤버십인 YELLOW PASS를 진행해오다가 2023년부터 구독형 웹진 + 팬클럽 멤버십 + 방송 스트리밍 서비스인 YELLOW MAGAZINE+으로 바뀌었다. 해외에서도 결제가 가능해 기존 오프라인 매거진을 구매해야만 등록할 수 있던 YELLOW PASS보다 접근성이 커졌다. 호시노 겐뿐만이 아니라 이시바시 에이코, 아리 애스터, 이가라시 유키 등 감독, 디자이너, 뮤지션 같은 다른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거나 다루기도 하며, 팬덤을 특정 호칭으로 지칭하는 말은 딱히 없다.
- 스타와 팬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단순히 헌신하고 소비하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무언가를 같이 공유하고, 서로 응원해주는 친구 중 한 명' 같은 수평적 관계같은 사이를 이상향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공식적인 장소나 포맷 같은 게 정해지지 않은 이상, 팬들과 소통할 때 자신의 의견을 가끔씩 확고하게 말한다던지, 자신의 취미를 팬들과 공유한다던지, 상당히 인간적이거나 진짜로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서브컬 친구스러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 '(저를) 좋아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일상을 잡아먹지 않고, 본인만의 생활과 일상을 챙기려고 노력하면서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같은 뉘앙스의 발언을 꺼낸 적도 있다. 이는 그의 노래와 춤과 콘서트에 종종 등장하는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 2022년에 한국 팬들이 팬북을 만들어 호시노 겐에게 전달하기도 했는데 북 에디터의 말이 상당히 감동적이며, 호시노 겐도 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국어로 인스타그램에 인증했다.
[ 에디터의 말 전문 (한국어 번역) 펼치기ㆍ접기 ] 겐상,
저는 사실 일본어를 잘 못합니다. 이 책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그래서 수없이 듣던 음악의 가사를 번역을 찾아보고서야 뒤늦게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했던 가사도 보면서 듣지 않으면 금세 다시 잊기도 해요. 번역을 보면서 듣는다 할지라도 가사에 사용하신 표현의 정확한 느낌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언어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저를 괴롭혔던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감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겐상의 언어와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겐상의 음악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제 나름의 결론이 있는데요. 어쩌면 저는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언어나 문화를 알아야 더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가능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언어는 부족할지라도 감상은 부족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제가 놓치는 부분만큼, 저를 채워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완벽히 같은 감상이란 존재할 수 없고, 저의 감상은 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의 언어로 나의 나라에서 살아온 나의 삶에 겐상이 더해졌을 때 존재하는 특수한 감각과 경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찾아본 가사에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심지어 겐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닐까요.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처럼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부터 일본에서 살고 계신 분까지 꼭 일본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하에 모였지만 우리는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겐상도 아시겠지만 외국인은 특히 타자화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국인 팬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의 사람들로 비치길 바랍니다. 물론 국적이 안겨주는 공통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부에 있는 저보다는 책을 읽는 겐상의 눈에 더 잘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이들은 팬으로서도 겐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가장 좋아하는 곡,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면, 좋아하는 이유나 방식까지 모두 달라요. 그리고 이건 아마 겐상이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겁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걸 좋아해도,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특수합니다.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모르고, 나에게 그 사람은 한 명이고, 그에게 팬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겐상을 떠올릴 때면 저는 오히려 저의 고유성을 느끼게 됩니다. 기분 좋은 이상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열 없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겐상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나'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부디 모두 전해지길 바랍니다.
- 특별한 거나 내수용이 아닌 이상 호시노 겐은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릴 때 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를 다 쓴다.
-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라디오를 2023년 기준으로 약 8년 동안 진행해오다보니 이 라디오가 팬들과의 소통창구 중 하나나, 호시노 겐의 여러 개인 일화, 악곡 제작 과정 및 해설, 그리고 엠바고가 아닌 간단한 스케쥴[84] 등을 들을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만 들을 수 있다가 2022년부터는 스포티파이로 팟캐스트 공개를 실시해 일본어 듣기만 가능하다면 해외에서도 접근성이 꽤나 높아진 셈.
- YELLOW MAGAZINE+에서 분기마다 팬들의 실시간 채팅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스트리밍 토크 생방송을 하는데, 계절마다 바뀌는 테마를 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2023년 할로윈 때는 외계인 옷을 입고 와서 볼하트까지 했다.
유부남 40대 아재인데 MZ하다
- 한국 팬들의 음악적 취향 및 연도가 상당히 다양하다.
8.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수상 경력 및 기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편집]
아라가키 유이와는 2016년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회견은 별도로 하지 않았고, 결혼식이나 피로연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다. 아직 입적은 하지 않았으며, 향후 시기를 보고 입적할 예정이라고 한다.#배우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쓴 대사를 읊는다. (중략) 늘 거짓말을 한다. 인기를 얻으면 주변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서 누가 주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다른 경쟁 배우들과 밑도 끝도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치열하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중
2023년 4월, 아라가키 유이가 메자마시 테레비에서 호시노 겐을 언급할 때 '남편'이라는 호칭을 써서 화제가 되었었던 적이 있다.[85] # 호시노 겐도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아라가키 유이를 '아내'라는 호칭을 써서 언급했다.
9.1. 관련 일화[편집]
일본을 강타한 히트 드라마에서의 인연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크나큰 화제가 되어 여러 이야깃거리나 일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나 라디오에서 아내와의 일화가 종종 나오고 있다.
+2 {{{#!wiki style="margin-bottom: -1.5%"
'''결혼 전'''}}}
- 호시노 겐은 살면서 여자에게 먼저 고백받은 적은 없고 항상 자기가 먼저 고백했다고 한다.
- 2016년 10월 말 라디오에서 '10년 정도 후의 장래희망은?'이라는 질문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바라건대 아이가 있고, 크고 못난 개와 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결혼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욕을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통해 사랑이나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결혼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었다고.
-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아라가키 유이와의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렇다보니 예능 등지에 같이 나올 때 교제 사실을 숨기고 예능을 찍는 경우가 많았었다.
+2 {{{#!wiki style="margin-bottom: -1.5%"
'''결혼 후'''}}}
- 결혼 발표 이후에 많이 나온 이야기 중에 하나는 사귀기 시작한 시점이 최소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 촬영 종료 시점보다 더 이전이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2018년에 이미 호시노 겐이 아라가키 유이가 사는 맨션[86] 으로 이사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호시노 겐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18년 이사 당시에는 아라가키 유이가 살고 있는 맨션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고 해명했다.#
- 두 사람이 2021년 5월 19일 결혼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 가격이 급락하여, 암호자산 시가총액 1조달러(당시 환율로 약 110조엔)가 순식간에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각키 쇼크'라는 도시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87]
- 호시노 겐은 운전면허가 없어서 아내가 새벽에 차타고 데리러 올 때도 있다고 한다.
- 일본 유명인 부부 '공동 출연 CF 출연료'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함께 남녀노소, 폭넓은 층에 지지받고 있으면서 결혼 후의 공동 출연은 한 번도 없어 화제성은 물론 희소가치도 높다는 것이 그 이유. 참고로 1위는 오타니 쇼헤이, 다나카 마미코 부부다.
10.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10.1. 아베 신조 총리 관련 피해[편집]
관련 문서: うちで踊ろう
아베 외출 자제 동영상, 등장 가수 사전 연락 없었다 (KBS)
아베 총리에게 강제 컬래버당한 日가수의 한탄 (조선일보)
일본 가수 호시노 겐이 아베와의 '강제 콜라보'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HUFFPOST)
2020년, 호시노 겐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음이라도 그러한 기분을 내는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 및 사회적 거리두기를 음악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50초 분량의 이 노래를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업로드하였고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노래, 춤, 악기 연주, 일러스트 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달라고 권장했다. 그리고, 일본 국내에서 이 악곡과 호시노 겐의 얼굴을 합성한 다수의 쇼츠나 릴스 등이 파생되어 나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코로나 사태 대처 미흡으로 많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SNS에 호시노 겐의 노래와 함께 자신의 일상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게시해 외출 자숙을 호소했다. #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유유자적한 모습을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올라왔으며, 호시노 겐의 영상과 본인의 영상을 함께 올려버려서 호시노 겐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와 함께 비난을 받는 피해를 겪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호시노 겐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에 '호시노 겐에게 무슨 민폐냐'며 아베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호시노 겐 본인이 직접 동영상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아베 측은 자신과 아뮤즈에 사전 연락이나 확인은 사후도 포함하여 일절 없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호시노 겐은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고, 네티즌들에게 이를 활용해 2차 창작을 해달라고 했다는 면에서 '원칙적으로는' 아베 총리가 사용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시노 겐이 굳이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일부 네티즌들이 자신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하자 이를 해명하기 위함과 동시에,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아베 신조 씨(安倍晋三さん)[88] 가 아무 연락이나 허락없이 노래 영상을 퍼갔듯이 노래 영상은 누구나 퍼가도 좋다'고 글을 남겼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
10.2. 사이버 렉카 및 네티즌들에 의한 불륜 억측[편집]
日 톱여배우 아라가키 유이, 호시노겐 불륜에 이혼? 소속사 사실무근 (아시아투데이)
아라가키 유이, 호시노 겐 불륜 의혹에 "사실무근" (엑스포츠뉴스)
2021년 결혼한 직후부터 부부가 한 집에서 동거하지 않는 불화설, 별거혼 상태라고 의혹이 돌고 있었고, 2023년 가을 경부터, '호시노 겐의 외도가 발각되어, 아라가키 유이가 격노했고, 두 사람은 별거하여 파국도 가깝다.' 라는 루머가 일본 연예 매스컴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해, 해가 밝으면서 단번에 확산되었고,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의 여러 미디어가 비밀리에 취재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라가키 유이와 호시노 겐은 기존부터 계속 있었던 '불화설 및 별거혼 상태 루머'에 대해 부부 생활 및 그들 서로의 사랑 표현을 미디어를 통해 가끔씩 알리는 식으로 대처했다. 팬들이나 라디오 청취자 및 일부 네티즌들은 그들의 애정어린 부부생활을 2024년 4월인 최근까지도 간간히 들어왔으나, 이것들을 모르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두 사람이 별거 중이거나 사이가 소원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 호시노 겐은 2021년 11월 에세이에서 가정을 가지며 같이 살게 되었다고 언급했었고 #, 자신의 에세이나 라디오를 통해 아내의 허락을 받고 아내와의 여러 생활 일화를 풀어놓는 식으로 대처했다(예시는 상단의 '관련 일화' 문단 참고). 또 결혼반지도 계속 끼고 있었고, 라디오나 예능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예전부터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과 얘기를 자주 해왔었다.[89]
2024년 2월 경, 프라이데이(일본의 디스패치에 가깝다)는 취재로 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가 다른 주민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고 살 수 있는, 호화로운 구조의 저층 고급 멘션으로 이사했고,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별거가 아니라 그냥 부부끼리 새로운 집로 이사했다는 것을 보도하며 사실상 별거혼 루머를 일축시켰다. #
- 2024년 5월 22일 오후 10시경에, (실질적, 물증적 증거 없이) 일본 유명 사이버 렉카 '타키자와 가레소'에[90] 의한 호시노 겐의 불륜 의혹이 제기되었다. 불륜 상대는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에서 합을 맞춘 하야시다 리사라고, 2024년 새해에 모 주간지가 보도할 예정이었지만, 소속사에서 10억엔을 주고 무마시켰다는 것.
공식입장이 나오지 않았던 상황에서, 아무런 사진이나 기사 및 보도가 없는 단순 사이버 렉카와 여러 네티즌들에 의한 단순 의혹임에도 일본과 그 주변 나라들의 여러 커뮤니티에서 대중적으로 파장이 상당히 컸고, 호시노 겐은 (팬들과 일부 네티즌들을 제외한) 네티즌들의 여러가지 선 넘은 비방과 비하를 받았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의혹이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퍼진 것도 크고, 게다가 같은 날 오전에 후루야 토오루의 불륜 및 폭행, 임신 중절 강요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졌던 탓도 있다.[91]
- 5월 23일 오전 3시 30분경, 아뮤즈에서 공식입장이 나왔다. 호시노 겐과 관련된 불륜 의혹 및 당사가 10억엔(한화 약 90억원)을 주고 기사를 무마하려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타키자와 가레소 뿐만이 아니라 네티즌들의 허위사실유포 및 비방으로 인한 아티스트의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강경하게 하는 것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 같은 날 오전 6시 경, 호시노 겐 본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아뮤즈의 공식입장을 내걸며
上記の投稿のように、 いまSNSやインターネット上などで 噂されている件に事実は一切ありません。 事実無根です。||
火のないところに煙が立っているようですが[92] 、いま騒がれ噂されている件に事実はひとつもありません。心配してくださっている皆様、ご心配なく。 ||
현재 일본 연예계 및 뉴스에서는 여러 파생 기사들이 나오고 있는데, 불륜 루머에 대해 '억측(憶測)'이라는 단어를 계속 명시하고 있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연예계에서도 사이버 렉카의 근거 부족한 비방 및 루머 이슈가 문제로 대두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아뮤즈의 법적 대응에 관련된 행보에 주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11. 여담[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