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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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65년 출생
- 1988년 데뷔
- 2009년 은퇴
- 증평군 출신 인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성구회 멤버
- KBO 리그의 노히트 노런 달성자
- 진천 송씨
- 좌완 투수
- 좌투좌타
- KBO 리그 영구 결번 선수
- 원클럽맨/야구
- 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1988 서울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빙그레-한화 이글스/은퇴, 이적
- 세광중학교 출신
- 세광고등학교 출신
- 동국대학교 출신
- KBO 다승왕
- KBO 승률왕
- KBO 구원왕
- KBO 플레이오프 MVP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역대 감독
1. 개요[편집]
송진우 선배님 같은 분들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야구로 최고가 된 사람들에겐 적이 많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배님 같은 분들은 철저하게 야구를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야구 선수다. 야구 잘 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 참고 자제하며 대기록을 세운 선배님이다. 난 정말 송진우 선배를 존경한다.
前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자 前 1군 투수 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21번.[14] KBO 리그 통산 유일한 200승 투수이며, 역대 최다승,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이다.
2011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팀을 나와 2016년까지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2018년 한화의 투수 코치로 복귀했었고 이후 독립리그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피칭 스타일[편집]
좌완 정통파 투수로, 매우 빼어난 제구로 유명했던 선수. 게다가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는 최고 구속 145 km/h를 던져서 좌완 파이어볼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상훈과 구대성 등 좌완이 등장하기 전까지 좌완으로는 거의 원톱의 구속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입단 당시부터 선발-중무리를 넘나드는 등 지속된 혹사로 인해 1996년을 정점으로 구속이 감퇴하면서 00년대를 넘어가선 140km/h대 속구를 구사하기는 어려워졌다. [15] 그렇게 되자 송진우는 서클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장착하며 기교파 투수로 거듭났고, 선수생활 후반기까지 선발 투수로 롱런하였다.
사실 송진우의 커리어 21시즌 중 풀타임을 선발투수로만 뛴 시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95~96, 02, 04~06시즌 정도만이 선발로 풀타임을 뛰었다고 볼 수 있는 정도며 이중에서도 계투 등판 자체가 아예 없는 시즌은 95, 06시즌밖에 없다. 빙그레 시절에는 에이스를 마당쇠처럼 운영하는 당시의 메타로 인해 계투 및 마무리의 비중이 컸고 아예 거의 전업 마무리로만 뛴 시즌도 있을 정도였으며, 94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전업선발이었다지만 전통적으로 구대성 빼면 없다시피했던 한화의 암울한 불펜 상황, 그리고 이를 포장하기 위해 팀 분위기 쇄신 등의 이유를 들어 시즌 도중 계투로 전향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그러한 강행군을 송진우는 무리없이 소화해내며 20년을 넘게 뛰었다는 점에서 정말 내구성 하나만은 올타임 넘버원이었던 투수다.
투수 수비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투구 후 타구 수비 능력이 출중했다. 몸이 유연하기도 하고[16] , 빨리 수비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폼도 간결한 편이다. 실제로 투수도 내야수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본인 지론이기도 하다.
4. 은퇴 이후[편집]
4.1. 지도자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송진우(야구)/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해설자 경력[편집]
팀을 떠난 이후, 조성환과 함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친정팀 경기를 해설하면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4.2.1. 2015년[편집]
목소리 톤부터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는데... 그건 둘째고 해설 퀄러티도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다. 흐름 끊는 말들은 물론이고 횡설수설하는 유체이탈 화법 같은 말들은 도무지 무슨 말 인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예로 2015년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 간의 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맞으면 홈런이고 치면 아웃이다.
대표적인 엉뚱한 어록들
안타는 나와도 홈런을 못치고 홈런을 치면 실책을 해도 팀은 이긴다
아무리 봐도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이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들마저 송진우가 해설하면 음소거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해설로 데뷔한 정민철과는 180도 다른 행보. 이종범, 조성환 등 2015년 10구단 체제에 급히 합류한 해설위원들이 진통을 겪었지만 송진우는 그 중에서도 평가가 독보적으로 나빴다.
이 날 경기 이후 KBS N SPORTS 게시판에는
이 분은 대체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해설위원이 아니라 (한화)응원단장 같네요.,
이 분이 나오면 전 그냥 중계방송 안 볼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 욕 하려고 회원가입 하긴 처음입니다.,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말 끊어먹지를 않나 자기 말만 늘어 놓지를 않나, 왜 앉아있는 거죠?, 사장님 그냥 이 분 짜르시라니까요 등 악평이 끊이지 않는다.
2015년 8월 13일 삼성 vs 기아 경기에서 1루에서 주루 플레이를 준비 중이었던 나바로가 최형우의 타구에 직격당했는데도
"기아에게 행운이 따라주었습니다."
등 이해할 수 없이 이기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래의 항목에 나와 있는 사건마저 터뜨려 버렸다."맞으면 안되죠, 피해야 됩니다."
더 큰 문제는 KBS N이 해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성환, 안치용보다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송진우를 단독으로 해설시키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이 사람 덕분에 하일성이 재평가받을 정도로 최악의 해설임을 KBS N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23일 삼성 vs KT 전에서 타일러 클로이드를 클리대로 호칭해서 삼성 팬들의 공분을 샀다.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를 구별하며 말하는 것을 망각한 처사이다.
4.2.2. 2016년[편집]
LG 투수들이 신중하게 가는 건지, 어렵게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정말 어렵게 가네요.
ㅡ 2016년 4월 LG 경기 중계 당시
2016년 4월 17일 한화 vs LG 전에서는 아무리 선수 시절 데뷔부터 은퇴할 때까지 뛰었던 팀이라지만 도가 넘은 한화 편파해설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엔 한화가 공격을 하든 LG가 공격을 하든 상관없이 한화 이야기만 했다. LG가 6: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한화가 3점차로 따라붙을 때에 나온 말로,
라는, 야구선수, 그것도 KBO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투수 출신의 야구 해설자가 자신이 뛰었던 팀이 지고 있자, 중계 중인 경기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화를 보고는 "우리 구단"이라고 언급하는 등, 해설자로서의 기본이 부족하다. 이어 논란은 계속있었다. 삼성과 한화 경기에서 8회까지 경기가 무득점 승부로 흘러갔고 9회 삼성이 무사 1루와 2루에 기회를 맞아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해 1사 2루와 3루라는 작전을 성공한 뒤 한화 투수가 연속삼진을 잡자 박수소리가 중계방송 가까이 들렸다. 해설에 마이크 소리로 박수소리가 들려 팬들이 의심을 하면서 경기를 본 가운데 경기가 끝나고 중계실 카메라에 송진우의 박수 소리가 들린거였다.저도 승부산가봐요. 6:0이 될 때까지는 사실 중계하면서 흥미가 없었는데 이런 승부처가 되니까 저도 기분이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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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두산 vs 한화 전에서도 편파해설을 보여줬다.[18] 한화의 정근우가 호수비를 하자마자 굉장히 큰 목소리로
라는 소리를 날리는가 하면, 권혁이 1루 베이스 커버 때 베이스에 살짝 스쳐서 세이프가 된 상황이 되자,[19] 투수들은 "베이스 커버시에 끝 부분을 갖다 대는 연습을 한다"라며 열심히 커버쳐 주는가 하면, 정수빈의 내야안타가 나왔을 때는, "맞히기에 급급했는데 안타가 됐네요."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 날, 한화가 두산한테 5대 0으로 지고 있다가 9회초, 신성현의 홈런으로 5대 1이 되었을 때는 해설의 본질을 잊은채 경기장의 분위기가 좋다며 흥분을 하였다."역시 정근우네요"
김광현이 승리투수가 된 날 인터뷰로 김광현에게 까지 호되게 까였다. "저를 안 좋게 보는 것 같아요" 부터 시작해서 "저 힘 많이 뺐거든요" 등 거의 5분을 송진우에게 극딜을 가하는 김광현의 인터뷰가 재미를 주었다. 송진우는 경기 끝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5월 26일 LG vs 롯데의 경기 중계 중, 오지환이 대타로 나와 2루타를 기록하자, 생뚱맞게
는 이야기를 했다.
6월 22일에는
이라는 명언이 나왔다. 명색이 선수 출신 야구 해설자에다가 1년차도 아니면서 어느 선수가 FA를 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21] 준비도 안 하고 해설 하는 티가 팍팍 난다.
7월10일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했을 때 상대 팀 선수였던 조성환을[22] 앞에서 대놓고
라고 발언했다.체력을 다 소모하고 올라와서 우리가 우승했다
8월 4일 역시나 한화 vs KIA의 광주 3연전 중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23] KIA 선수들 칭찬은 일시적이지만 한화 편파중계는 영원하다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하였다. 이용철과 함께 배치가 되어 해설을 했는데, 오죽했으면 8회 이후론[24] 그냥 이용철하고 캐스터만 중계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9회초 2아웃 김태균의 헛스윙 삼진이 나왔을 때, 김태균이 파울이라고 주장하자
라고 말했다. 합의판정 결과는 당연히 헛스윙 삼진이었지만 중요한 건 해설자가 파울이라고 단정을 짓고 해설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잠깐. 한화 쪽에서 파울이 아니냐고 합의판정을 요청했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라고 말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잠깐. 지금은 파울인 것 같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
악평이 자자한건 네이버에서 송진우가 해설한 경기 기사가 나오면 송진우 해설 듣기 싫다 라는 어조의 댓글만 적어도 베스트 댓글에 올라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의외로 친정 팀 한화의 패배 토템을 맡고 있다. 그가 해설을 맡은 경기의 한화의 통산 성적은 1승 15패.[25]
그리고 2017년 1월 11일, KBS N SPORTS로 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마이크를 내려 놓았다.
5. 논란[편집]
5.1. 부정투구 고백[편집]
2015년 4월 9일, 삼성과 롯데 경기 중계중에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해당영상 (42초경부터 나온다)
(6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손아섭이 배트 손잡이 부분에 테이핑을 한 것을 보고 송진우가 이것이 일종이 루틴이냐고 묻자 조성환이 타구의 비거리를 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 했다고 답변한 이후)
송진우: 뭐 저 같은 경우는 시합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글러브를 거 바세린으로다가 닦곤 했어요. 어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 했었고, 바셀린으로 닦다 보니까 포수한테 공이 날아올 때 공이 좀 끈적끈적해서 손에 그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좋았어요.
조성환: 부정, 부정투구 아닙니까?;;
송진우: 어, 일단 한번도 안걸렸고. 어 그 정도 갖고는 부정투구라는 생각은 사실 안 해봤어요.
본인의 말대로 통산 21년의 선수 생활 동안 부정투구가 적발된 적이 없지만, 글러브를 손질할 때 바셀린을 사용하니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는 표현은 부정투구에 대한 의심을 사기 충분한 멘션이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글러브는 글러브 전용 오일[26] 로 닦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송진우가 선수생활을 할 시절에는 흔히 구할 수 있는 바셀린으로 글러브 관리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현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가격 등의 이유로 바셀린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글러브 손질 시 오일이나 바셀린을 듬뿍 퍼서 발라 버리는 게 아니라 천이나 휴지 등에 묻혀서 그걸로 글러브를 닦아줄 경우, 바셀린은 곧 마르고 끈적끈적함이 느껴지지 않기에 끈적끈적함을 느낄 정도라면 글러브 손질 후 바셀린을 제대로 닦아내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이는 고의 여부를 떠나 명확히 부정투구가 맞다. 이로 인하여 송셀린 , 바전드 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
5.1.1. 본인의 해명[편집]
2015년 8월 21일 네이버 스포츠의 <라디오볼>에서 전화 상으로 바셀린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당방송, 해명기사
이하는 송진우의 해명.
이 자리에서 이런(해명할) 기회가 있어서 좋다.
나는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 당시 바셀린은 글러브를 청소하는 도구였으며, 어떤 선수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글러브를 닦는 소재가 없었다. 바셀린, 구두약(무광)으로 닦기도 했다.
야구장에는 심판, 기록원, 전력분석원, 카메라를 비롯하여 눈이 한 두개가 아니다.
21년동안 야구를 했는데 (부정투구를 했다면) 심판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번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으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 역시 일종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바셀린을 손끝에 바르고 공을 잡으면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절대로 공을 던질 수가 없다.
나는 마운드에서 타자와 열심히 싸웠을 뿐 다른 편법으로 타자와 승부를 한 적이 없다.
다만 방송에서 방송 초보인 지라 전달 과정에서 미스(실수)가 있었다.
이하는 송진우의 해명에 대한 안치용의 옹호이다.
내야수의 경우 글러브에 로진백을 터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글러브에 왁스가 묻어 미끄러워 공이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로진백으로 없애고자하는 것이다.
바셀린을 발랐다고 더 잘 던지고 공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구에 안 좋을수도 있다. 유리한 것은 없다.
바셀린은 청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셀린이 송진우가 언급한대로 끈적끈적할 정도로 발리면, 스핏볼 효과로 인해 무브먼트가 변한다.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없지만 그만큼 공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또한 던질 때에는 패스트볼처럼 던지지만, 회전이 더 잘 걸려서 변화구를 던지기 더 쉬워진다. 공에 걸리는 회전이 홈플레이트에서 아래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 규정상 로진 이외의 것을 바르는 건 엄연한 부정투구이다. 뉴욕 양키스의 마이클 피네다는 스핏볼을 걸리고도 계속 던졌다가 10경기 출장 정지를 먹었다.
2021년 12월 21일, 박재호 기자의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에 출연하여 공을 던지기 위해 사용한게 아니라 글러브를 닦을 때 사용했다고 재차 해명했다. #
6.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27][편집]
2012년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에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아직도 제구가 되는 130km/h이 넘는 공을 뿌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 나이가 48세인 것과 은퇴한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몸관리를 꾸준히 한 것을 알 수 있다.
7. 기록[편집]
7.1. 그가 쌓은 금자탑[편집]
- 210승(1위) - 통산 2위는 양현종의 168승. 선발승 역시 163승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양현종이 2023년 9월 1일에 164번째 선발승을 기록하면서 선발승은 2위가 되었다.
- 3,003이닝(1위) - 2위는 정민철의 2,394⅔이닝
- 2,048 탈삼진(1위) - 2위는 양현종의 1,947탈삼진
- 11시즌 두자릿수 승수(1위) - 2위는 정민철, 이강철의 10시즌[28]
- 153패(1위) - 2위는 김원형의 144패. 통산 최다승에 가려져서 그렇지 통산 최다패도 송진우의 몫이다. 이는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어쩔 수 없는 기록으로 결코 부끄러워할 기록은 아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 일본프로야구 최다승 투수인 김경홍도 동시에 최다패 투수이다.[29] 이 때문인지 투수들에게 조언할 때 두려워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최다패 투수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 272피홈런(1위) 2718피안타(1위) 1341실점(1위) 1155볼넷(1위) - 최다패와 마찬가지로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기록이다.
송진우의 KBO 통산 기록들은 정말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들이다. 200승도 힘든 와중에 200승 100세이브를 한 데다가, 3,000이닝까지 소화했기 때문이다.[30] 피칭 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이렇게 롱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제구력 중심의 피네스 피처라고 해서 꼭 롱런하는 것도 아니다.[31] 거기에 송진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왔기 때문에 4년을 손해보고, 1년을 실업팀에서 뛰고 와서 고졸 선수에 비해 5년이나 늦게 커리어를 시작해 누적에서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누적 1위 기록을 많이 남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32]
KBO에서 활동했던 좌완 투수 중에서는 송진우가 100승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그 다음으로 100승을 넘긴 좌완 투수는 장원삼이다.[33]
그리고 송진우의 기록들이 깨지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이 기록을 위협할 만한 A급 이상의 투수가 나오면 KBO를 떠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최소 1년이라도 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공백이 생겨서 송진우의 기록을 넘기 어려워진다. 한국에서 평생을 뛰더라도 이제는 송진우처럼 중무리로 뛸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며, 또 코칭 스태프들이 이닝 소화도 제한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록 갱신이 쉽지 않다. 2022시즌에 양현종이 MLB에서 KIA로 돌아와서 4년 FA 계약을 맺었다. 양현종이 매년 10승, 100이닝, 100탈삼진을 기록하면 4년 내에 송진우의 기록을 여럿 경신할 수 있게 된다.
7.1.1. 수상 내역[편집]
7.1.2. 최고령 기록[편집]
무려 21시즌, 만 43세가 될때까지 현역 생활을 했기에 다수의 최고령 투수 기록을 보유중이다. 참고로 송진우는 호적상으로는 1966년 2월 16일 생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1965년생이다. 물론 이 기록들은 당연히 주민등록상 출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로는 2013년 기준 최향남과 류택현선수 밖에 없다. 둘다 1971년생. 실제로 최향남은 2012년에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 하였고, 2013년에 최고령 승리투수 2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2015년 기준으로 최향남은 다이빙 덕스를 거쳐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중국으로 가버렸고, 류택현은 은퇴 했다.
2015년 최영필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42살의 나이로 2점대 후반을 찍으면서 기록을 갈아치울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최영필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현역을 이어가면서, 정말 일부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7년 6월 9일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후보는 임창용으로 넘어갔다. 임창용은 2018년 시즌까지 뛰었으나 시즌 종료후 방출되며,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다.
2017 시즌 종료 후, 같은 팀의 투수 박정진이 FA 계약으로 2년 더 현역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은 사실상 거의 쉬며 출전하지 못했고 2019년에 은퇴했다.
국내 야구 기록은 아니지만, 구대성은 호주 리그로 넘어가서 2014년에 만 44세의 나이로 출전하며 송진우의 최고령 경기출장을 넘어섰다.
7.1.3. KBO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편집]
- 210승[37]
- 2,000삼진 (최종 2048삼진)
- 3,000이닝 (최종 3003이닝)
- 200승 - 100세이브[38]
- 다승 - 구원왕 동시 석권 (1992년)[39][40]
- 투수 끝내기 안타[41]
8. 여담[편집]
- 별명은 송골매, 송회장님(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 송덕스(송진우 +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 투수 그렉 매덕스의 합성).
- 늦둥이 막내 아들을 제외한 장남과 차남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로 활동 했다가 방출되었다. 둘다 좌완투수이고, 유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은 아들을 보러갔을 때 아들이 야구부에서 포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도루저지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좌투에게는 포수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들이 포수를 보고 있어서 감독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홈에서 2루까지 송구가 가능한 사람이 아들밖에 없어서 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역시 피는 못속이나보다.
- 장남 송우석은 2012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 지명받지 못하였으며, 이후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가 방출되었다.
- 차남인 송우현은 2015년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되었다가 2021년 8월 8일 음주운전으로 인해 소속 팀에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 또한, 외조카인 이우찬도 LG 트윈스에서 야구 선수(포지션은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 비단 이런 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선수권익보호를 위한 선수협 창설의 주역 중 한명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선수협을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긴급 구조 SOS의 PD는 송진우 코치가 선수로서 은퇴하기 전에 예전 선수협과 관련된 만남에 대한 글을 올리며 경의를 표했다. 회장님의 짜증
협상 테이블에서 입 다물고 앉아 있기만 해도 고액의 연봉이 보장될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나서게 되었을까. 저는 뭔가 엄숙한 발언 내지는 숨겨진 속사정을 기대하면서 선수협 회장님 송진우 선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송진우 회장님은 갑자기 짜증을 버럭 냈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이 왜 이러느냐구요? 그 질문 백번도 더 듣겠네. 아니 당연히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 안돼요? 연봉 천만원 받고도 감사합니다 하는 애들이 이런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한테도 지금 이렇게 대하는데 걔들이 나서 봐요. 어떻게 되나.
- 깨끗하고 점잖은 이미지의 소유자이지만 2006년 한화 vs 현대 전에서 안영명이 빈볼성 투구로 김동수 선수에게 싸대기를 맞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불같이 뛰쳐 나와 이단 옆차기를 작렬해 벌금 100만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원래 난투극이 벌어져도 신발에 박힌 스파이크 때문에 선수가 다칠 확률이 높아져서 발차기는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42][43][44] 덕분에 송진우는 이때 사건 딱 하나로 역대 프로야구 난투극 Best 장면 때마다 항상 등장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이단옆차기를 맞은 것은 김동수도 아니고 벤치 클리어링 말리러 나간 송지만. 게다가 송지만은 한화에 있다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송회장과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었기 때문에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다른데 였으면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먹이 얼굴로 갔다. 어떤 언론에서는 나보고 품위 없다고 하던데, 후배가 얼굴에 주먹으로 맞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 선배로서의 품위 인지는 잘 모르겠다.
- 2005년 8월에 '개마고원'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했던 적이 있었다.[47] 그러나 2019년 현재 개마고원의 뒤를 이은 중국 음식점마저 폐업해 공터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48] 대전광역시의 손 꼽히는 부촌인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해 있었다.[49]
- 위에서도 나왔지만 의외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자주 즐겨보는 스덕이라고 한다. 2009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아발론 MSL 2009 우승자인 김윤환에게 축하한다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즐겨본다고 한다.[50] 스타 실력도 꽤 되는지 한화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스타크래프트 잘하는 사람으로 언급한 적도 있을 정도. 사실은 차남 송우현과 친해지기 위해 배웠다고 한다.[51]
- 스타리그를 즐겨봤던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임을 즐기는 편인데, 90년대 중후반~2000년까지 대전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52] 을 가끔식 방문하여 패키지 게임을 구입하는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다.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의 사장에게 선물로 사인볼을 두개 줬다고 한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인 KIA 타이거즈의 김동재 코치의 쾌유를 위한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자선 경기가 열렸는데, 일구회의 선수로 참가했다.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으며, 마지막 이닝인 7회초 7:7 동점 무사 3루의 위기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였다. 천무단은 은퇴한지 1년 밖에 안된 현역이나 다를 바 없는 송진우 코치를 투입하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다고 항의를 하였지만, 항의는 기각되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3타자를 땅볼, 삼진, 삼진으로 간단히 막으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경기는 7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8:7 로 일구회 올스타가 승리하였다.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02 송진우(가명:박흥진)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53]
- 컴퓨터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추가됐는데 연도는19승에 17세이브를 거두면서 다승, 구원왕을 동시석권한 92년도로 추가됐다.
-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전 으능정이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 같은 KBS N SPORTS 해설위원 장성호와 투타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영상을 보고 확인하자.
- 일본프로야구 최다승 투수인 카네다 마사이치처럼 왼팔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현역 시절 아이싱을 받지 않았으며, 손톱깎이를 쓰지 않고 사포를 이용해 손톱을 관리했다고 한다. #
- 은퇴 할때까지 선수시절 내내 데뷔때의 허리둘레를 유지했다고 한다.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가벼운 팔 운동이나 몸을 계속 움직이는 걸로 유명했다.
- 용병들이 보는 송진우의 첫 모습은 매우 유쾌한 코치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송진우의 기록을 알려주면 놀라면서 반응이 바뀐다고.
- 논란이 있긴 하다. #
- 축덕인 것으로 보이는데, 한화와 같은 연고지의 대전 하나 시티즌의 홈경기를 종종 직관한다. 2022년 4월 9일 대전 홈경기도 방문했는데, 이날은 전광판에서 송진우의 모습을 잡아주며 축구장 장내 아나운서가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 한화와 같은 연고지의 대전 하나 시티즌도 송진우의 번호 21번이 결번되어 있다.
- 통산 KBO 최다승 투수지만, 막상 한 시즌 20승은 기록하지 못했다. 1992년 19승이 최다승 커리어로[54] , 통산 100승을 넘긴 최동원, 선동열, 정민태, 김시진과 다르게, 단독 시즌 20승이 없는 선수로 통산 최다승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인데 이것을 바꿔말하면 그만큼 송진우가 기복없이 꾸준히 성적을 내왔기에 이러한 대기록을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