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스탄 공화국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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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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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튀르크어족
신화
쾨로을루 신화 텡그리 신앙
사상
범튀르크주의 (범투란주의)





타타르스탄 공화국
Татар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

파일:타타르스탄 공화국 국기.svg
파일:타타르스탄 공화국 문장.png
국기
문장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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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수도
카잔
시간대
UTC+3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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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894,284명(2020년)
인구 밀도
56명/km²
공용어
러시아어, 타타르어
면적
68,000km²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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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대통령[1]
루스탐 민니하노프[2]
지방의회


82석 / 100석

새로운 시대의 타타르스탄

8석 / 100석



6석 / 100석



1석 / 100석



1석 / 100석



1석 / 100석



1석 / 100석


ISO 3166-2
RU-TA
공식 사이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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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타타르스탄 공화국 100주년 로고.svg
타타르스탄 공화국 수립 100주년 기념 로고


1. 개요
2. 역사
2.1. 고대~중세 초
2.2. 근세~근대
2.3. 현대
3. 주민 구성 및 문화
4. 국가
5. 한국
6. 기타



1. 개요[편집]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
영어: Republic of Tatarstan
타타르어: Татар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Tatarstan Respublikası
한국어: 타타르스탄 공화국
문화어: 따따르스딴 공화국

러시아 연방 볼가 연방관구에 속해있는 자치공화국. 주민 구성은 볼가 타타르인(51%), 러시아인(41%) 그외 중앙아시아계 소수민족들이다. 수도인 카잔은 볼가강변에 위치하여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2.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타타르 문서와 볼가 타타르 항목 참조.

타타르스탄의 타타르인들은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타타르어를 사용하며 볼가 타타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던 볼가 불가르족킵차크 칸국의 후예들로 몽골어족 대신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볼가 타타르인은 북캅카스에서 볼가 강 유역에 걸친 불가르 칸국몽골 제국에 정복되면서, 킵차크 칸국에 흡수되면서 만들어졌다.

2.1. 고대~중세 초[편집]


고대 이 지역은 우랄어족인도유럽어족 스키타이 민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고대 말에서 중세 초 이 지역에 정착한 튀르크계 유목민들은 볼가강 하류 지역에 불가르 칸국을 건설했다. 불가르 칸국에서 왕위 계승 과정에서 갈라져나온 불가르 유목민들의 일파는 오늘날 불가리아 일대로 이주하여 불가리아 제1제국을 건설하는데, 고대 불가리아인들의 언어는 오늘날 타타르스탄 근처 추바시야 공화국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추바시인들의 추바시어와 공통점이 많았다고 한다. 키예프 루스의 팽창 과정에서 하자르 칸국이 멸망하자, 하자르 칸국에게 조공을 바쳐왔던 볼가 불가르는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게 되었는데, 볼가 불가르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시기 역시 이 당시로 보고 있다. 하자르 칸국의 지배층은 유대교도로 이슬람의 팽창에 저항했던 반면, 볼가 불가르의 이슬람 개종은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3세기에 흑해카스피해의 초원을 침략한 몽골인들은 대부분의 튀르크 민족들이 받아들였던 것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샤머니즘을 신봉했었다. 새롭게 뭉쳐진 튀르크-타타르인들은 13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14세기에 접어들면 이슬람교는 킵차크 칸국의 국교가 되었다. 킵차크 칸국은 3대 때부터 볼가 불가르인들의 영향 등으로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고, 우즈베크 칸[1]은 특히 독실한 신자로 유명해 몽골 제국이 곧 이슬람의 보호자라며 이슬람의 수호자를 앞세웠다.

타타르인들은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유목민이었고 또한 동쪽의 문명과도 접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무슬림과 기독교도의 공존으로 발생한 결과들은 스페인, 발칸 지역, 중동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타타르인들의 유목 생활 양식은 초원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시 말해서 타타르인들은 러시아의 삼림 지대로 이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타르인들은 중세 당시에는 러시아보다는 그들의 동쪽, 남쪽에 이웃한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이집트로부터 이슬람교의 문화적, 정치적 구조를 받아들였다.

2.2. 근세~근대[편집]


킵차크 칸국은 티무르 제국의 공세에 결국 국력이 크게 쇠퇴한 것을 계기로 여러 국가들로 쪼개지기 시작하였다. 타타르인들은 카잔 땅에 카잔 칸(한)국을 세웠고 이슬람을 믿으며 살아왔으나, 1552년 이반 4세루스 차르국에 정복되었다. 카잔 칸국의 주민 상당수는 러시아인들에게 완전 동화되어 추바시인, 모르드바인 등등의 경우처럼 정교로 개종하거나 혹은 크랴셴(Керәшен)이라는 기독교계 타타르인 하위민족 집단을 이루게 되나, 대부분의 볼가 타타르인들은 바시키르인들과 함께 기독교 개종을 거부하였다.

루스 차르국제정 러시아 정부는 종종 이들을 강압적으로 개종하려 들었으나, 세월이 지나며 상호간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본격적으로 무슬림이 다수인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그들과 같은 몽골-튀르크무슬림이란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오랫동안 부대껴 러시아 중앙 정부의 통치와 체제에도 익숙한 타타르인들을 중간관리자 민족으로 우대하기 시작하면서 반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자치권도 부여하고, 무프티[2] 등 여러 직책의 이슬람 성직자들로 구성된 무슬림 담당 부서도 만들어 주면서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은 보장하되 통치권은 인정받는 방식으로 융화되어 갔다.

2.3. 현대[편집]


현재의 타타르 공화국은 1920년 5월 27일 러시아 SFSR타타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성립되었다. 1921년에서 1922년동안 타타르스탄 대기근으로 약 50만에서 200만에 이르는 타타르스탄 주민이 기아로 사망했다.

1990년 8월 31일 주권선언을 한 타타르 공화국은 체첸을 제외하면 1992년 러시아 연방조약을 거부한 유일한 공화국이다. 공화국 대통령 샤이미예프는 1994년러시아 연방 정부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여, 석유자원 및 산업시설에 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대부분의 세입에 대한 권리·독자적인 대외 무역 정책을 추진할 권리 등을 얻어냈다. 이 협약은 다른 공화국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새로 독립한 러시아 연방 정부가 공화국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특혜를 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쌍무조약은 2017년 푸틴의 연장 거부로 인해 종료되었으며, 타타르스탄의 특수지위 역시 상실되었다.


3. 주민 구성 및 문화[편집]


튀르크계 민족인 볼가 타타르인과 러시아인이 반반 섞여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많은 편. 타타르인들은 주로 이슬람을 믿고 러시아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다. 러시아 정교는 1991년 소련 해체로 부활해 현재 신자수는 인구의 70%로 회복되었고 무신론자는 거의 없어졌다. 러시아 제국 시대에는 이 지역에 독일인 이민이 많았던 이유로 일부 개신교 교회가 활동하고 있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인 강제이주가 이루어져 수는 많지 않다. 이슬람 문화권인지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의 구소련권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나 아랍인 유학생들[3]도 많은 편이다.

러시아인들도 타타르인은 억양으로 겨우 구분한다. 타타르인의 조상은 불가르 칸국의 지배층이다.

언어는 러시아어타타르어공용어로 사용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러시아어, 타타르어, 영어로 안내 방송을 해준다. 그러나 타타르어는 시골 출신이거나 나이 많은 타타르인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추세. 젊은 사람들은 타타르인임에도 타타르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년층은 타타르어와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젊은 타타르인은 러시아어만 할 줄안다. 다만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만 가더라도 타타르인의 비중이 높아 타타르어 사용 계층이 많다. 수도인 카잔만 하더라도 시외곽으로 나가면 타타르어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터키어권인 아제르바이잔 이민자들이 유달리 많이 보인다. 지리상으로도 가까울 뿐 아니라 타타르어터키어와 유사점이 많은 언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터키어권 외에도 시리아, 이라크친러 성향의 중동국가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중앙아시아튀르크 국가들 같은 이슬람권 아시아 국가 학생들의 유학지로도 인기가 높다. 러시아-이슬람 문화권이라 친숙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에 러시아로 피난온 아프간 피난민도 일부 거주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슬람 문화권이기에 다른 러시아 지방과는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슬람 축일이 공휴일이라던지, 정교회 축일과 이슬람 축일을 다 챙긴다던지. 이 지방이 러시아에 처음 편입된 1500, 1600년대야 종교와 토착 지배층의 반란 문제로 서로 피를 많이 흘렸지만, 이 시절 이후 러시아가 타타르스탄을 넘어 이슬람권 중앙아시아 전체에 진출하면서 그나마 종교를 공유하고 러시아 내부 사정에도 이 쯤에는 익숙했던 타타르스탄 출신 성직자, 학자, 관료들을 중간관리자로 크게 우대했으며, 양 민족이 섞여 산지도 어언 500년이 가깝기 때문에 현대 와서는 무슬림 타타르인들과 정교회 러시아인들 사이에 딱히 종교, 민족 갈등이라 할 것도 없는 편이고,[4][5] 국가무신론의 소련 시절도 겪었다 보니 양 종교, 문화에서 즐겁고 좋은 것만 골라 챙기는 사람들도 많다. 정교회에서 가장 큰 축일인 부활절 때는 교회에서 얻어 먹고, 라마단 시즌에는 또 해 지면 모스크 가서 얻어 먹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구 소련 지역 이슬람권이 거의 그렇지만 이 곳도 세속주의 경향이 짙다. 할랄[6]이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며 음주하는 무슬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세속주의 성향은 약화되고 있는 편.


4. 국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국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한국[편집]


부여족(백제왕족)의 후예설
부여(扶餘) 녹산(아사달)왕조(鹿山王朝)의 왕손이 부여가 망하자, 본래 왕성(王姓)인 여씨(餘氏).부여씨(扶餘氏)에서 서씨(徐氏)로 하였다. 백제(百濟)왕조(王朝)는 부여(扶餘) 왕조를 계승하여, 왕성(王姓)을 부여씨(扶餘氏).여씨(餘氏)로 사용하였다. 일본(日本)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부여족(扶餘族)=서이족(徐夷族) 후손이고,또한 부여족(扶餘族)=서이족(徐夷族)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고추불가제국(현재,타타르 자치공화국) ,1차 불가리아제국을 세웠다.
의자왕의 태자인 부여융이 당나라로 건너가 살다가 당 고종에게 서(徐)씨 성을 하사받았다는 설이다(만성대동보). 하지만, 최근 부여 융과 여동생의 유적이 중국 장안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성씨를 여전히 부여씨(扶余(餘)氏)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 그렇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백제에서 성씨를 처음 쓴 근초고왕은 여씨(余(餘)氏)로 기록했고, 이후 무왕 때 부여씨(扶余(餘)氏)로 개칭했다)가 삼국통일이 되면서 성씨를 부여(扶余(餘))에서 서(徐)로 바꾸고 숨어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 발해 대조영의 후손인 대(大)씨가 고려로 망명한 뒤 성을 태(太)로 바꾸고 살았던 것, 또 고려의 왕(王)씨가 조선 건립 이후 성을 전(全), 옥(玉) 등으로 변형해서 살았던 사례를 볼 때, 이 주장의 신빙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https://band.us/@seosarang
https://open.kakao.com/o/gBQB1q6c



6. 기타[편집]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팀 루빈 카잔이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유명 대학으로는 카잔 연방 대학교가 수도인 카잔에 위치하고 있다. 카잔 국립 대학교의 후신으로 카잔 국립대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젊은 시절 공부하다 퇴학당한 학교로 유명하다. 기존의 다른 대학들을 합쳐 개편한지라 학교 건물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게 특징이다. 러시아를 통틀어 유일한 청년 레닌의 동상이 학교 앞에 서있다. 톨스토이 역시 이 대학에 다녔으나 중퇴했다.

나베레즈니예첼니의 자동차공업도 유명하다.

가수 알수가 태어난 곳이다. 타타르스탄을 꽤 많이 알리고 상도 받았다.

또한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나라에서 기적이 생기기도 했다.

2021년 10월 10일에 타타르스탄에서 경비행기추락해 16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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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킵차크 칸국에서 나온 우즈베크인, 그리고 그 우즈베크인이 주축이 된 우즈베키스탄의 국명은 이 우즈베크 칸에서 유래했다.[2] 이슬람 법관[3] 주로 친소 성향이었던 시리아이라크, 알제리, 리비아 출신[4] 반면 크림 칸국의 후손들인 크림 반도의 타타르족들은 18세기 이후 역사가 강제이주->귀향->강제이주->귀향->다시 강제이주일 만큼 러시아 중앙 정부에서 철저하게 탄압 당했다. 아무래도 이들은 오스만 제국과 줄타기를 잘 해서 타타르스탄의 전신인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보다 훨씬 더 오래 러시아를 괴롭혔다.[5] 덧붙혀서 자세하게 들어가자면 타타르스탄의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칼미크인, 훗날의 고려인들은 그나마 나름 대접도 받고 일정 시기의 집중적 탄압 이후 중앙 정부에서도 유화책을 썼던 반면, 저 크림 타타르체첸인, 당대 러시아 중앙 정부, 특히 스탈린에게 감히(?!) 개기려고 했던 카자크 집단 일부는 지정학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집중적으로 피박을 썼던 경우에 해당한다. 참고로 고려인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의 경우 그냥 일본소련 양쪽에서, 나중에는 남한북한 사이에서도 방치 당했다(...).[6] 다른 이슬람권에서도 전혀 안 통하는 말은 아닌 게, 대추야자술(아라크)은 무함마드가 마신 술이라는 것 때문에 사실상 할랄로 취급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