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프랑 (r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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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 Français
1. 개요[편집]
프랑스, 모나코의 옛 통화. 동시에 근대의 유럽을 주름잡던 기축통화 중 하나였으며, 그만큼 역사가 매우 길었다. 코모로와 일부 서부/중부 아프리카 국가 및 일부 태평양 제도 국가에서 프랑스 프랑 고정환율값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유로로 전환했기 때문에 따라가며 유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발행주체는 프랑스은행.
ISO 4217코드는 FRF, 기호는 F 또는 Fr. 유니코드에는 프랑스 프랑의 기호로 ₣가 등록되어 있으나 이 기호가 공식적인 프랑스 프랑의 기호로 사용된 적은 없다. "FF"로 표기하거나, 아예 깔끔하게 생략하기도 했다.[4] 보조단위는 상팀(Centime). 최종 인플레는 독일과 더불어 양대 유로화 주도국답게 겨우 0.2%. 자국에 은행 본사와 인쇄국, 주조국까지 갖춘 몇 안 되는 통화였으며, 크고 아름다운 프랑스식 화폐 디자인을 고수한 주체이기도 하다. 유로와의 교환비는 6.55957프랑/EUR. 2012년 중순기준 한화로 약 215원/FRF.
정확히 2002년 2월 17일부터 통용이 중지되었고, 2012년 2월 17일부터 유로화 교환도 종료되어 이젠 정말로 종잇조각이 되었다.[5]
2. 리브르 투르누아[편집]
Livre Tournois. 1360년 쟝 2세에 의해 도입되어 1641년까지 쓰인 것으로, 프랑스 프랑의 전신이다. 이 통화의 별칭이 "프랑"이었는데, 그때 나라가 "프랑크 왕국(Francorum Rex)"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
3. 프랑스 프랑 (1기)[편집]
France Franc. 시민혁명으로 왕족을 갈아엎은 직후 국민회의를 통해 1795년, 100상팀을 1프랑으로 정하는 10진법 통화로서 도입되었다. 1/4프랑부터 5프랑까지는 은화로, 그 이상의 액면부터는 금화로 발행되었다. 그러나 금속화폐의 발행량이 적었던데다가 종이화폐는 휴지쪼가리인것은 여전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완전히 자리를 잡게된것은 1803년도였다. 이후 프랑은 자잘한 변화가 있었지만 부르봉 왕조 복고기와 7월 왕정, 제2공화정, 제2제국, 제3공화국 전기때까지는 안정적으로 통화가치를 유지했고, 1866년에 라틴통화동맹을 결성하여,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와 함께 페그제를 맺었고, 이후 상당수 국가들도 이러한 페그시스템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비마련을 위해 금본위제를 폐지한채, 화폐발행을 남발했고, 프랑스 프랑의 가치는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프랑스 프랑의 가치하락은 물가상승으로 이어졌고, 프랑스가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게 가혹하리만큼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한 주요요인이었다. 1928년에 금본위제로 복귀했지만, 경제대공황이 닥쳐오면서 프랑스는 경기침체에 직면하게 되었고, 1936년도에는 다시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이후 프랑의 가치는 꾸준히 하락하였다.
3.1. (1939 ~ 1945)[편집]
3.2. (1941 ~ 1950)[편집]
3.3. AM 프랑 (1944 ~ 1945)[편집]
Allied Military Franc의 준말로, 속칭 "깃발 티켓 (Billet Drapeau)"이라 한다. 말 그대로 나치 독일에게 점령 당한 프랑스를 다시 연합군 정부(A.M. Government)가 점령함에 따라 기존의 제국 마르크 대신 쓰도록 발행한 통화이다. 그러나 샤를 드 골이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아무런 이점도 없는 위폐"라 주장하며 기존의 프랑화를 다시 쓰도록 권장하였고, 그러다 보니 널리 퍼지지 못한 통화가 되었다.
3.4. (1945 ~ 1957)[편집]
2차(500, 1,000, 5,000, 10,000Fr)는 아래 누보 프랑 1차와 도안이 비슷하다. 다만 500누보 프랑권의 이전격인 5만 프랑권은 이 당시에 발행되지 않았다.
브레튼 우즈 체제에 참여했을 당시에는 알제리 전쟁에 따른 전비 증가로 인해 화폐가치는 꾸준히 떨어졌고, 화폐개혁 직전에는 달러당 493.1프랑에 달했다.
4. 누보(새) 프랑스 프랑 (2기)[편집]
4.1. 1차 (디노미네이션 직후)[편집]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고, 비율은 1:100.구권 프랑과 구분하기 위해 이 당시에는 NF로 표기하였다. 도안도 직전판을 그대로 가져다가 0을 2개 지운 것이 전부.
다만 500프랑권이 하나 더 추가되었으나 발행 당시 가치로는 현재 기준 체감상 100만원 혹은 1000 스위스 프랑을 지니는 가치의 고액권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급을 멈췄고 이후 3차의 파스칼로 교체크리를 먹어 굉장히 희귀해졌다.
4.2. 2차 (변혁기 종료)[편집]
4.3. 3차 (장수기)[편집]
1968년에 500프랑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교체된 시리즈. 이후 1980, 81년에 각각 20, 200프랑이 추가되었다. 나름 20년 넘게 유통되면서 장수기라고 부르며[6] 20프랑권은 유일하게 계승되어 4차와도 병행 통용되었다.
4.4. 4차 (최종)[편집]
1993~1997년에 풀리기 시작했는데, 풀린 수량에 비하자면 유통기간이 짧은 편이다. 최고액권인 500프랑은 굉장히 오랜 기간 장수한 기존의 파스칼 500프랑보다 잔존수량이 적다. 메인 인물 도안의 앞뒷판 맞춤 전통이 깨졌으나, 조그만 그림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는 유로화 환산가격.
원래는 100프랑권의 인물로 에펠이 들어가고, 200프랑권에 뤼미에르 형제가 들어갔었다. 그렇게 계획하고 배포를 위해 초판 인쇄까지 마친 상태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국가상징성 비판[10] 이 화제가 되어 뭇매를 맞자 눈물을 머금고 모조리 갈아버려야만 했던 흑역사가 있었다. 때문에 세잔은 얼떨결에 한 자리를 받은 셈이 되었다.
5. 주화[편집]
파일:French Coins.png
최종적으로 5, 10, 20상팀과 ½(50상팀), 1, 2, 5, 10, 20프랑.
다만 20프랑의 경우는 지폐가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6. 해외령 프랑[11][편집]
6.1. 프랑스령 앤틸러스(프랑스령 기아나, 과들루프, 마르티니크)[12][편집]
6.2. 레위니옹[편집]
6.3. 생피에르 미클롱[13][편집]
7. 연계통화[편집]
8. 둘러보기[편집]
[1] 1975년부로 전부 프랑스 본토 프랑과 통합되었으며, 2002년부터는 유로화를 사용한다.[2] 본래 세 지역별로 각자 분리된 화폐를 사용해 왔지만, 1961년부터 프랑스령 앤틸러스라는 이름으로 화폐를 통합해서 1975년까지 사용했다.[3] 다만 이쪽은 위 둘과 달리 1965년까지만 통용되었다. 또 지리적 특성상 캐나다 달러도 후에 도입되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4] 예로 50프랑이면 50FF 혹은 50.-[5] 교환되지 않은 발행잔액은 국고로 귀속된다. 일반적인 구권 화폐와 마찬가지로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만 남는다.[6] 다만 이중 10프랑은 1979년 까지만 발행한 후 이후 동전으로 교체되어 나름 구경하기가 좀 힘들다.[7] St. Jacques. 랭스에 있는 프랑스 고딕 양식 교회 중 하나.[8] 세잔의 상징이기도 하다.[9] 기묘하게도 폴란드 출신인 눈매 무서운 마리가 앞에, 프랑스 출신인 피에르가 뒤쪽에 그려져 있다. 아무래도 업적 순으로 그려놓은 모양. 게다가 왼편에 마차드립까지 확실하게(...) 저 차량은 피에르를 치어죽인 마차가 아니라 마리가 1차대전 때 야전병원에서 운영했던 이동 X-Ray 검사 차량을 묘사한 것이다.[10] 기회주의자였던 뤼미에르 일가가 나치 치하의 괴뢰정부 아래서 빌빌거렸던 점이 꼬리잡혔다.[11] 1975년부로 전부 프랑스 본토 프랑과 통합되었으며, 2002년부터는 유로화를 사용한다.[12] 본래 세 지역별로 각자 분리된 화폐를 사용해 왔지만, 1961년부터 프랑스령 앤틸러스라는 이름으로 화폐를 통합해서 1975년까지 사용했다.[13] 다만 이쪽은 위 둘과 달리 1965년까지만 통용되었다. 또 지리적 특성상 캐나다 달러도 후에 도입되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14] 프랑스의 모험가로, 1635년 마르티니크에 프랑스 첫 해외령인 생피에르를 세운 인물.[15] 프랑스의 해군 사령관. 인도 지배권을 둘러싼 프랑스와 영국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