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시절/목록/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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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2. 장르별, 가요계 전반적 환경
3. 가요 프로그램
4. 국내 가수
4.1. 남자 솔로
4.2. 여자 솔로
4.3. 그룹 (아이돌 제외)
4.4. 아이돌 그룹
5. 음반기획사
6. 해외 가수
6.1. 영미권 가수
6.2. 일본 가수
6.2.1. 솔로
6.2.2. 그룹



1. 설명[편집]


말 그대로 가수들의 최전성기를 장식했던 시절 범위를 앨범 내지는 연도 단위로 작성한 문서.

특정 가수의 인지도 및 위치와는 별개로 가수들 저마다의 활동 시기 가운데 음반판매량 내지는 음원순위, 체감인기, 대외적인 성과 등을 모두 포괄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기재한 문서로 후술한 리즈시절 이후의 쇠퇴기 혹은 이후에도 꾸준하게 대외적인 성과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후술할 당시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거나 상대적으로 덜 회자되고 있는 시기는 제외.

가수들의 나열 순서는 데뷔 순으로 정리했다.

2. 장르별, 가요계 전반적 환경[편집]


  • 대한민국 음반 산업 - 1992~2002년[1]
  • 트로트 - 1960년대 ~ 1992년 상반기[2]
  • 한국 발라드 음악 - 1986~2004년[3][4]
  • 한국 록 음악 - 1970~1975년[5], 1977년[6] ~ 1988년[7]
  • 한국 록발라드 - 1990년대 말 ~ 2006년[8]
  • 소몰이창법 - 2005년 5월 ~ 2007년 8월[9]
  • 한국 힙합 음악 - 2004년 ~ 2008년[10], 2012년 ~ 2016년
  • 역주행 노래 - 1990년대 중반, 2010년 ~ 현재
  • 혼성그룹 - 1994년 ~ 2004년[11]
  • 한국 아이돌 - 1996년 ~ 2000년, 2007년 ~ 2010년, 2016년


3. 가요 프로그램[편집]


  • 가요 순위 프로그램 - 1990~2000년, 2008~2011년[12]
  • 대한민국 공중파 가요대상 - 1990년대~2000년대 초반[13][14]
  • 가요무대 - 초창기 ~ 케이블 채널이 생기기 전까지[15]
  •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 2009~2011년
  • 가요 경연 프로그램 - 2012년 ~ 2016년 중반
  • 복면가왕 - 첫방송부터 2016년 중반[16]
  • 나는 가수다 - 2011년 5~8월[17]
  • 너의 목소리가 보여 - 2기 ~ 현재
  • 불후의 명곡 - 2007년 하반기 ~ 2008년 상반기
  • 불후의 명곡 2 - 2012년 상반기 ~ 2013년 상반기
  • 쇼 미 더 머니 - 1~5기
  • 슈퍼스타 K - 2010~2012년
  • 언프리티 랩스타 - 2015년 1기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 정규 편성 초반부터 종영까지
  • 히든싱어 - 2012년 ~ 2013년(1~2기 시절)
  • K팝스타 - 2011년 ~ 2013년(1~2기 시절)[18], 2016~2017년(6기 시절)


4. 국내 가수[편집]



4.1. 남자 솔로[편집]


  • 남진, 나훈아 - 1970년대 중후반의 남성 솔로 라이벌[19]
70년대 이후 차이가 생겼는데 남진이 7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면 나훈아는 70년대 이후 에도 조용필에 이은 2인자 정도 위치를 유지했다.
  • 송창식 - 1974년 <피리부는 사나이> ~ 1984년 <고래사냥>
  • 송대관 - 1975년 <해뜰날>, 1992년 <차표 한장>, 1998~1999년 <네박자>, 2003~2004년 <유행가>
  • 조용필 - 1980년대 전체 ~ 현재 진행형
  • 현철 - 1988년 3집 <봉선화 연정> ~ 1992년 4집 <싫다 싫어>, 1998~2002년 <사랑의 이름표>, 2005~2010년 <아미새>
  • 조영남 - 1987년 <화개장터>
  • 태진아 - 1989년 <옥경이> ~ 1993년 <사모곡>, 2000~2004년 <사랑은 아무나 하나>, <잘났어 정말>,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바보>, <동반자>를 연이어 히트.
  • 설운도 - 1983년 <잃어버린 30년>[20], 1991년 <다함께 차차차> ~ 1997년 <사랑의 트위스트>
  • 윤수일 - 1982년 밴드 2집 <아파트> ~ 1986년 솔로 5집 <황홀한 고백>[21]
  • 이남이 - 1988년 3집 <울고 싶어라>
  • 김현식 - 1985년 3집 <비처럼 음악처럼> ~ 1988년 4집 <언제나 그대 내 곁에>, 1991년 6집 <내 사랑 내 곁에>[22]
  • 전영록 - 1985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 1988년 <저녁놀>
  • 최성수 - 1987년 2집 <동행, 풀잎사랑>
  • 이문세 - 1985년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 ~ 1988년 4집 <사랑이 지나가면>, 1996년 10집 <화무>[23]
  • 김정수 - 1980년 그룹 1집 <내 마음 당신 곁으로>[24], 1991년 <당신>[25]
  • 김종환 - 1996년 3집 <존재의 이유>[26] ~ 1997년 4집 <사랑을 위하여>[27]
  • 김범룡 - 1985년 1집 <바람바람바람> ~ 1987년 3집 <현아>
  • 변진섭 - 1988년 1집 <홀로 된다는 것은> ~ 1989년 2집 <너에게로 또다시, 희망사항, 숙녀에게>[28]
  • 박남정 - 1988년 2집 <널 그리며>
  • 김흥국 - 1989년 2집 <호랑나비>[29]
  • 이승철 - 1989년 1집 <희야, 마지막 콘서트[30]>, 2002년 부활 8집 ~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31]
  • 김민우 - 1990년 1집 <입영열차 안에서>[32]
  • 이상우 - 1991년 2집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 구본승 - 1994년 1집 너 하나만을 위해
  • 이승환 - 1995년 4집 <천일동안> ~ 1999년 6집 <당부>
  • 김현철 - 1995년 4집 <왜그래> ~ 1996년 5집 <일생을>
  • 현진영 - 1992년 2집 <흐린 기억속의 그대>
  • 심신 - 1990년 1집 <오직 하나뿐인 그대> ~ 1991년 2집 <욕심쟁이>[33]
  • 박정운 - 1992년 2집 <오늘 같은 밤이면> ~ 1993년 3집 <먼 훗날에>[34]
  • 신승훈 - 1991년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 1996년 5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35]
  • 임재범 - 1991년 1집 <이 밤이 지나면>, 2000년 4집 <너를 위해>,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36]
  • 이범학 - 1991년 1집 <이별 아닌 이별>
  • 김국환 - 1991년 1집 <타타타>[37]
  • 이무송 - 1992년 2집 <사는게 뭔지>[38]
  • 이현우 - 1992년 1집 <꿈>, 1997년 4집 <헤어진 다음 날>
  • 박진영 - 1995년 1집 <날 떠나지마> ~ 1997년 3집 <그녀는 예뻤다>[39]
  • 김민종 - 더블루 활동 시절 ~ 1996년 3집 <귀천도애>[40], 1998년 4집 <착한 사랑> ~ 2001년 7집
  • 김종서 - 1993년 2집 <겨울비> ~ 1996년 5집 <아름다운 구속>
  • 이지훈 - 1997년 1집 <왜 하늘은> ~ 1997년 2집 <이별>
  • 서태지 -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절 ~ 2000년 솔로 2집 <울트라맨이야>
  • 김경호 - 1997년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 2001년 6집 <희생[41]>[42]
  • 김원준 - 1993년 2집 <언제나> ~ 1994년 3집 <너 없는 동안>[43]
  • 김건모 - 1993년 1집 <첫인상> ~ 1996년 4집 <스피드>[44][45], 2001년 7집 <미안해요> ~ 2003년 8집 <청첩장>[46]
  • 신성우 - 1993년 1집 <내일을 향해> ~ 1994년 3집 <서시>
  • 김동률 - 2000년 2집 <희망> ~ 2001년 3집 <귀향>, 2008년 5집
  • 서지원 - 1996년 2집 <내 눈물 모아>[47]
  • 성진우 - 1995년 1집 <포기하지마>
  • 유정석 - 전설로 남은 질풍가도 시절
  • 조관우 - 1995년 2집 <님은 먼곳에>[48]
  • 김정민 - 1995년 2집 <슬픈 언약식> ~ 1996년 3집 <애인>
  • 임창정 - 1997년 3집 <그때 또 다시>[49], 2000년 6집 <나의 연인>[50], 2015년 미니앨범 <또 다시 사랑> ~ 2016년 13집 <내가 저지른 사랑>
  • 김장훈 - 1998년 4집 <나와 같다면> ~ 2000년 6집 <혼잣말>[51]
  • 조PD - 2004년 5집 <친구여>
  • 유승준 - 1997년 1집 <가위> ~ 2000년 4집 <비전>[52]
  • 이기찬 - 2001년 <또 한번 사랑은 가고> ~ 2002년 <감기>
  • 안재욱 - 1997년 1집 , 2003년 4집 <친구>[53]
  • 최진영 - 1999년 1집 <영원>
  • 홍경민 - 2000년 3집 <흔들린 우정> ~ 2001년 4집 <가져가>[54]
  • 박효신 - 2002년 3집 <좋은 사람> ~ 2004년 4집 <그곳에 서서>, 2014년 디지털 싱글 앨범 <야생화>
  • 조성모 - 1998년 1집 ~ 2000년 3집 <아시나요>, 2003년 5집 <피아노>[55]
  • 싸이 - 2001년 1집 <>, 2002년 3집 <챔피언>, 2012년 6집 <강남 스타일>[56]
  • 차태현 - 1집
  • 휘성 - 1집 <안 되나요> ~ 5집 <사랑은 맛있다>
  • SE7EN - 2003년 1집 <와줘> ~ 2006년 4집 <라라라>[57]
  • 김형중 - 2001년 토이 5집, 2003년 1집 <그랬나봐> ~ 2004년 2집 <그녀가 웃잖아>
  • 김범수 - 2004년 천국의 계단 OST <보고싶다>[58],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59]
  • 윤도현 - 2005년 <사랑했나봐>
  • 박상철 - 2006년 3집 <무조건> ~ 2007년 4집 <황진이>[60]
  • 성시경 - 2002년 2집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2006년 4집 <거리에서>
  • 김종국 - 2004년 2집 <한 남자> ~ 2005년 3집 <제자리 걸음>[61]
  • - 2003년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62] ~ 2008년 5집 [63]
  • 테이 - 2004년 1집 <사랑은...향기를 남기고> ~ 2005년 2집 <사랑은...하나다>[64]
  • 이승기 - 2004년 1집 <내 여자라니까>[65]
  • MC몽 - 2005년 2집 <천하무적> ~ 2008년 4집 <서커스>[66]
  • 박현빈 - 2006년 1집 <곤드레 만드레> ~ 2008년 3집 <샤방샤방>
  • 케이윌 - 2009년 EP <눈물이 뚝뚝> ~ 2013년 EP <촌스럽게 왜 이래>
  • 아웃사이더 - 2009년 2집
  • 박완규 - 부활 시절 ~ 솔로앨범 1집[67]
  • 로이킴 - 2012년 <슈퍼스타K4> 우승 ~ 2013년 싱글 <봄봄봄>, 정규 1집

4.2. 여자 솔로[편집]


  • 조수미 - 현재진행형[68]
  • 현미 - 1962년 <밤안개> ~ 1967년 <몽땅 내사랑>
  • 이미자 - 1964년 <동백아가씨> ~ 1970년 <아씨>[69]
  • 패티김 - 1969년 <서울의 찬가> ~ 1971년 해외 진출
  • 하춘화 - 1960년대 ~ 1980년대 전체[70], 1990년 <날 버린 남자>
  • 김수희 - 1983년 <멍에>, 1986년 <남행열차> ~ 1991년 <애모>[71]
  • 혜은이 - 1975년 1집 <당신은 모르실거야> ~ 1979년 7집 <제3한강교>[72]
  • 장덕 - 1986년 4집 <님 떠난 후>
  • 심수봉 -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1989년 <미워요>
  • 정수라 - 1983년 3집 <아! 대한민국> ~ 1988년 6집 <환희>
  • 민해경 - 1990년 10집 <보고 싶은 얼굴>[73]
  • 주현미 - 1988년 <신사동 그 사람> ~ 1990년 <잠깐만>
  • 노사연 - 1989년 2집 <만남>
  • 이선희 - 1984년 강변가요제 [74] ~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
  • 최연제 - 1993년 2집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
  • 신효범 - 1994년 4집 <난 널 사랑해>
  • 박미경 - 1994년 2집 <이유 같지 않은 이유> ~ 1995년 3집 <이브의 경고>
  • 김완선 - 1986년 1집 <오늘밤> ~ 1987년 2집 <나홀로 뜰앞에서>, 1990년 5집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75]
  • 이지연 - 1987년 1집 <난 아직 사랑을 몰라> ~ 1989년 2집 <바람아 멈추어 다오>[76]
  • 이상은 - 1988년 강변가요제 <담다디> ~ 1990년 2집 <사랑할거야>
  • 양수경 - 1989년 2집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77] ~ 1990년 3집 <당신은 어디 있나요>
  • 노사연 - 1991년 3집 <만남>[78]
  • 강수지 - 1990년 1집 <보라빛 향기> ~ 1992년 3집 <시간 속의 향기>
  • 하수빈 - 1992년 1집 <노노노노노> ~ 1993년 2집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 김혜연 - 1994년 3집 <서울 대전 대구 부산>, 2008년 12집 <참아주세요>[79]
  • 엄정화 - 1997년 3집 <배반의 장미> ~ 1999년 5집 <몰라>
  • 이소라 - 1995년 1집 <난 행복해> ~ 1996년 2집 <기억해줘>
  • 김자옥 - 1996년 1집 <공주는 외로워>[80]
  • 소찬휘 - 1997년 2집 <현명한 선택>, 2000년 4집
  • 양파 - 1997년 1집 <애송이의 사랑>[81]
  • 박지윤 - 1997년 1집 <하늘색 꿈> ~ 1998년 2집 [82]
  • 김현정 - 1998년 1집 <그녀와의 이별> ~ 2002년 5집 <단칼>[83]
  • 박정현 - 1999년 2집 <편지할께요>[84] ~ 2002년 4집 <꿈에>,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85]
  • 이정현 - 1999년 1집 <와> ~ 2000년 2집 <너>
  • 이수영 - 2001년 3집 <그리고 사랑해> ~ 2004년 6집 <휠릴리>
  • 장나라 - 2001년 1집 <고백> ~ 2003년 3집 <나도 여자랍니다>[86]
  • 백지영 - 2000년 2집 [87], 2006년 5집 <사랑 안 해> ~ 2009년 아이리스 OST <잊지말아요>
  • J.ae - 2000년 2집 <어제처럼>
  • BoA - 2002년 2집 ~ 2004년 4집 [88]
  • 왁스 - 2001년 2집 <화장을 고치고>~ 2002년 3집 <부탁해요>
  • 이효리 - 2003년 1집 <10 Minutes>, 2008년 3집
  • 장윤정 - 2004년 1집 <어머나> ~ 2005년 2집 <짠짜라>
  • 아이비 - 2005년 1집 ~ 2007년 2집 <유혹의 소나타>[89]
  • 서인영 - 2008년 미니 1집 <신데렐라>, 2010년 싱글 <사랑이라 쓰고 아픔이라 부른다>
  • 손담비 - 2008년 미니 2집 <미쳤어> ~ 2009년 1집 <토요일 밤에>
  • 아이유 - 2010년 <좋은 날> ~ 2014년 <나의 옛날이야기>, 2017년 ~ 현재진행형
  • 에일리 - 2012년 <보여줄게> ~ 2014년 <손 대지 마>

4.3. 그룹 (아이돌 제외)[편집]


  • 송골매 - 1982년 2집 <어쩌다 마주친 그대>
  • 강병철과 삼태기 - 1982년 <삼태기메들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소방차 - 1987년 1집 <어젯밤 이야기> ~ 1989년 3집 <사랑하고 싶어>
  • 015B - 1992년 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 ~ 1993년 4집 <신인류의 사랑>
  • N.EX.T - 신해철,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 멤버로 있던 3~4집 활동기.
  • 서태지와 아이들 - 1992년 1집 <난 알아요> ~ 1996년 4집 (활동기간 전체)[90]
  • 부활 - 1993년 3집 <사랑할수록> ~ 2002년 8집 <네버 엔딩 스토리>
  • 더 블루[91] - 1992년 1집 <너만을 느끼며> ~ 1995년 2집 <친구를 위해>
  • ZAM - 1993년 1집 <난 멈추지 않는다>
  • 노이즈 - 1993년 1집 <너에게 원한 건>, 1995년 3집 <상상속의 너>
  • 듀스 - 1994년 2집 <우리는> ~ 1995년 3집 <굴레를 벗어나>
  • 솔리드 - 1995년 2집 <이 밤의 끝을 잡고> ~ 1996년 3집 <천생연분>
  • 마로니에 - 1993년 3집 <칵테일 사랑>
  • 투투 - 1994년 1집 <일과 이분의 일>
  • 룰라 - 1994년 1집 <비밀은 없어> ~ 1995년 2집 <날개 잃은 천사>[92]
  • 전람회 - 1994년 1집 <기억의 습작> ~ 1996년 2집 <취중진담>, 2012년 건축학개론 OST <기억의 습작>
  • DJ DOC - 1995년 2집 <머피의 법칙> ~ 1997년 4집 , 2000년 5집 [93]
  • 녹색지대 - 1994년 1집 <사랑을 할거야> ~ 1995년 2집 <준비없는 이별>[94]
  • R.ef - 1995년 1집 <고요속의 외침> ~ 1996년 2집 <찬란한 사랑>[95]
  • 육각수 - 1995년 강변가요제 <흥보가 기가막혀>[96]
  • 에코 - 1997년 2집 <행복한 나를>
  • 패닉 - 1995년 1집 <달팽이>
  • - 1996년 3집 <운명> ~ 1998년 4집 <애상>[97], 2002년 7집 <진실>~ 2003년 8집 <결혼을 할거라면>[98]
  • 터보 -1995년 1집 <280km speed> ~ 1997년 3집 [99]
  • 클론 - 1996년 1집 <쿵따리 샤바라> ~ 2000년 4집 <초련>[100]
  • 영턱스클럽 - 1996년 1집 <정>[101]
  • 자자 - 1997년 1집 <버스 안에서>[102]
  • UP - 1997년 2집 <뿌요뿌요>
  • 언타이틀 - 1997년 2집 <날개>
  • 주주클럽 - 1996년 1집 <16/20>
  • 업타운 - 1997년 1집 <다시 말해줘>
  • 카니발 - 1997년 1집 <그땐 그랬지>
  • 지누션 - 1997년 1집 <말해줘>
  • 자우림 - 1997년 ~ 3집 <매직 카펫 라이드>, 5집 <하하하송>
  • - 1998년 2집 <가까이> ~ 2001년 4.5집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103]
  • 스페이스 A - 1999년 2집 <성숙>[104]
  • Y2K - 1999년 1집 <헤어진 후에>
  • 1TYM - 2000년 2집 , 2004년 4집
  • 코요태 - 2000년 3집 ~ 2004년 7집 <빙고>[105][106][107][108]
  • - 2002년 3집 <내 생에 봄날은>
  • 컨츄리꼬꼬 - 1999년 2집 ~ 2000년 3집 <오,가니>
  • 노바소닉 - 2000년 2집
  • 이브 - 2000년 3집 <너에게로 날자> ~ 2001년 4집
  • 드렁큰타이거 - 2001년 3집
  • CB MASS - 2001년 2집 <휘파람>[109]
  • 엠씨 더 맥스 - 2003년 2집 <사랑의 시> ~ 2004년 3집 <행복하지 말아요>, 2016년 8집
  • 브라운 아이즈 - 2001년 1집 <벌써 일 년>~ 2002년 2집 <점점>[110]
  • 브라운 아이드 소울 - 2003년 1집 <정말 사랑했을까>
  • 에픽하이 - 2005년 3집 ~ 2008년 5집
  • SG워너비 - 2005년 2집 <살다가> ~ 2007년 4집 <아리랑>[111]
  • 버즈 - 2005년 2집[112] ~ 2006년 3집 <남자를 몰라>
  • 클래지콰이 - 2004년 1집 [113] ~ 2007년 3집
  • 거북이 - 2004년 3집 <빙고> ~ 2006년 4집 <비행기>
  • 리쌍 - 2005년 3집 <내가 웃는 게 아니야> ~ 2007년 4집 <발레리노>, 2009년 6집 <우리 지금 만나>
  • 다이나믹 듀오 - 2005년 2집 ~ 2007년 3집 <출첵>
  • 씨야 - 2006년 1집 <여인의 향기> ~ 2007년 2집 <사랑의 인사>[114]
  • 국카스텐 - 현재진행형, 특히 우리동네 음악대장복면가왕 9연승 기간
  • 버스커버스커 - 2012년 1집 ~ 2013년 2집
  • 게이트 플라워즈 - 데뷔 때부터 해체 직전까지 즉,활동기간 전체


4.4. 아이돌 그룹[편집]


  • H.O.T. - 1996년 1집 <전사의 후예> ~ 1999년 4집 <아이야!>[115]
  • 젝스키스 - 1997년 1집 <학원별곡> ~ 1999년 4집 [116]
  • S.E.S. - 1998년 2집 ~ 2000년 4집 <감싸안으며>
  • 핑클 - 1998년 1집 <내 남자친구에게> ~ 2000년 3집 [117]
  • 베이비복스 - 1999년 3집 ~ 2002년 Special Album <우연>[118]
  • god - 2000년 2집 <애수> ~ 윤계상이 탈퇴하기 전까지[119]
  • NRG - 2003년 5집
  • 신화 - 1999년 2집 ~ 2004년 7집 [120]
  • 디바 - 1998년 2집 <왜 불러>
  • 클레오 - 1999년 1집 ~ 2000년 2집 <모순>
  • 클릭비 - 2001년 3집 <백전무패>
  •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2002년 3집 ~ 2003년 4집 [121], 2006년 6집 <남자답게>[122]
  • 샤크라 - 2000년 1집 <한> ~ 이니가 탈퇴하기 직전
  • UN - 2001년 2집 <파도> ~ 2002년 3집
  • 쥬얼리 - 2005년 4집 , 2008년 5집
  • 슈가 - 2003년 2집
  • 동방신기 : 2005년 2집 <Rising Sun> ~ 2008년(Purple Line ~ 주문-MIROTIC)[123]
  • SS501 - 2005년 싱글 1집 <경고> ~ 2010년 미니 3집
    • 김현중 - 우리 결혼했어요 ~ 꽃보다 남자[124]
    • 허영생, 김규종, 김형준 - 2008년 스페셜 앨범 <U R Man> ~ 2009년 꽃보다 남자 OST 내 머리가 나빠서[125]
  • 슈퍼주니어 - 2009년 정규 3집 <Sorry, Sorry> ~ 2012년 정규 6집 <Sexy, Free & Single>[126]
  • 브라운 아이드 걸스 - 2008년 ~ 2009년 3집 <Abracadabra>,
  • 빅뱅 - 2007년 ~ 2009년[127], 2012년 ~ 2016년 3집 MADE[128][129][130]
  • FT아일랜드 - 2007년 데뷔
  • 원더걸스 - 2007년 정규 1집 발매 <Tell Me> ~ 2010년 미니 1집 <2 Different Tears>
    • 유빈 : 2008년 So Hot[131], 2015년 I Feel You[132]
  • 카라 - 2008년 미니 2집 <Pretty Girl> ~ 2011년 정규 3집 <STEP>[133]
  • 소녀시대 - 2009년 미니 1집 <Gee> ~ 2011년 정규 3집 <The Boys>
  • 샤이니 - 2012년~2013년[134]
  • 2AM - 2010년[135][136][137]
  • 2PM - 2009년[139][140]
    • 옥택연 - 2009년 <내 귀에 캔디> ~ , 2010~현재 배우로써의 전성기.[138]
  • 2NE1 - 2009년 ~ 2011년 <내가 제일 잘 나가>[141]
  • 비스트 - 2011~2012년[142][143]
  • 포미닛 - 2009년 , 2013년 미니 4집 <이름이 뭐예요>
  • 티아라 - 2009년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 이전.[144]
  • f(x) - 2011년 <PINOCCHIO> ~ 2013년 <첫 사랑니>
  • 시크릿 - 2010년 ~ 2011년 <별빛달빛>[145]
  • 씨스타 - 2012년 <나혼자> ~ 2013년
  • miss A - 2010년 ~ 2011년
  • 인피니트 - 2011~2014년
  • 걸스데이 - 2013년 <기대해> ~ 2014년
  • Apink - 2013년 ~ 2014년 [146]
  • EXID - 2014년 <위아래> ~ 2015년 [147]
  • EXO - 2013년 <으르렁> ~ 현재 [148]
  • 크레용팝 - 2013년 <빠빠빠>[149]
  • AOA - 2014년 <짧은치마>[150] ~ 역사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 설현 - 2015년, 강남 1970(영화)을 시작으로 용감한 가족(예능), SK 텔레콤 CF, 오렌지 마말레이드(드라마), 한글날 홍보대사, 연말 시상식 MC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1년 안에 다 했지만 2016년 5월 역사 문제로 인해 하락세다.
  • 레이디스 코드 - 2013년 <예뻐 예뻐>[151]
  • 방탄소년단 - 2015년 <쩔어> ~ 현재
  • 레드벨벳 - 2016년 <러시안 룰렛> ~ 현재
  • 마마무 - 2015년 <음오아예> ~ 현재. 시야를 좁히면 2016년 <넌 is 뭔들> ~ <데칼코마니>
  • 여자친구 - 2015년 <오늘부터 우리는> ~ 2016년 <너 그리고 나>[152][153]
  • 트와이스 - 2016년 ~ 현재.[154] 시야를 좁히면 <TT>가 최전성기.
  • 블랙핑크 - 2016년 <붐바야> ~ 현재

5. 음반기획사[편집]


  • 라인기획 - 1990~1996년 후반기
  • SM엔터테인먼트 - 1996년 ~ 2000년, 2004년 ~ 2010년, 2013년 ~ 현재 [155]
  • YG엔터테인먼트 - 2007년~2010년,[156] 2012년~ 2017년[157] [158]
  • JYP엔터테인먼트 - 1999년 ~ 2010년[159], 2016년 ~ 현재
  • FNC엔터테인먼트 - 2014년 ~ 현재
  • DSP미디어 - 젝스키스의 데뷔(1997년 4월) ~ 카라의 해체(2016년 1월)[160][161]
  • 코어콘텐츠미디어 - 1999년 ~ 2012년 7월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 직전

6. 해외 가수[편집]



6.1. 영미권 가수[편집]


  • 엘비스 프레슬리 - 1950~1960년대 초
  • 마이클 잭슨 - 1979~1993년[162][163]
  • 비틀즈 - 1961~1965년[164]
  • 엘튼 존 - 1970~1976년, 1992~1997년[165]
  • 마돈나 - 1984~1990년[166], 1998~2002년[167]
  • 휘트니 휴스턴 - 1985~1995년[168]
  • 머라이어 캐리 - 1990~1996년[169], 2005~2008년
  • 오아시스 - 1994년-1997년[170]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1999~ 2006년
  • 브리트니 스피어스 - 1999~2004년, 2008~2009년[171]
  • 비욘세 - 2003~현재[172]
  • 아마이아 몬테이로 - 2001~2007년[173]
  • 테일러 스위프트 - 2009~2015년[174]
  • 레이디 가가 - 2008~2012년[175]
  • 아델 - 2011년~현재
  • 아리아나 그란데 - 2014년~현재
  • 케이티 페리 - 2008~2014년[176]


6.2. 일본 가수[편집]



6.2.1. 솔로[편집]




6.2.2. 그룹[편집]


  • 노기자카46 - 현재[177]
  • 모닝구 무스메 - 1999년 <LOVEマシーン> ~ 2000년 <恋愛レボリューション21>
  • AKB48 - 2010~2011년, 2013년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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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년부터 음악 산업 시장의 풍토가 음원 위주로 흘러가게 되면서 2001년이 마지막으로 밀리언셀러를 배출한 연도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며 2001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던 god의 4집과 이듬해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의 7집의 판매량 차는 무려 120만여장.[2] 1993년 김수희애모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의 기세를 잠재우고 히트했지만 트로트 시장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크게 위축되었다.[3] 이문세-변진섭-신승훈-조성모로 이어진 발라드의 황제 계보와 궤를 함께 한다.[4] 점차 댄스음악이 유행하면서 발라드도 서서히 잊혔다.[5] 신중현 시대.[6] 제1회 MBC 대학가요제[7] 부활, 시나위의 대마초 파동.[8] 버즈가 잠시 해체한 영향이 컸다.[9] SG워너비의 리드보컬 김진호의 소몰이 창법이 한동안 같은 성향의 수많은 R&B 그룹을 양산했을 정도로 붐이 일었지만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빅뱅 등 2세대 아이돌들이 등장하면서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10] 에픽하이, 리쌍, 다이나믹 듀오, 등의 활약으로 힙합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대이다. 특히 2004년은 역대급 국내 힙합 명반들이 상당수 쏟아져 나온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1] 룰라에서 시작된 혼성그룹의 계보는 코요태, 스페이스A, 거북이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4년 동방신기부터 시작된 아이돌 열풍과 SG워너비부터 시작된 소몰이창법 열풍, 그리고 혼성그룹의 큰 자존심이었던 코요태의 하락세에 의해 혼성그룹의 세력이 크게 위축됐다.[12] 2001년 이후 뮤직뱅크와 인기가요가 순위제를 중지하면서 점차 인기가 떨어졌다가 2008년에 잠시 시청률이 반등한 적도 있었다.[13]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음반시장의 축소와 공정성 문제로 점점 인기가 하락하게 되었고 KBS와 MBC는 2005년을 마지막으로 시상식을 열지 않고 있으며 이후에도 올해의 노래상을 뽑긴 했지만 주기적으로 열리지 않고 있으며, SBS는 2006년을 마지막으로 시상식을 개최한 다음 2014년에 잠깐 시상식 형태를 부활시켰지만 이마저도 2015년부터 다시 폐지되었다.[14] 현재 가요시상식은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멜론 뮤직 어워드로 거의 대체되고 있기 때문에 지상파 가요대상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요원하다.[15] 옛날에는 시청률이 40%까지도 호가했으며 지금도 10%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16] 지금도 10% 중반대를 호가하나 이전에 비해서 화제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최전성기를 꼽자면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 우리 동네 음악대장 때다.[17] 이 때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이 활동했던 시기로 재도전 논란으로 존폐 위기에 놓인 '나는 가수다'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18] 이 때는 박지민, 이하이, 악동 뮤지션 등이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가요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다.[19] 이후 1980년대에 조용필이 이 두사람의 자리를 혼자 독식했다. 더구나 이 두사람의 출신지역으로 인해 그야말로 볼만한 라이벌 구도가 이뤄졌다.[20] 당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OST로 사용되며 애절한 멜로디와 가사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21] 1984년에 '아파트'와 '아름다워'로 한 해에 골든컵을 두 번 수상, 참고로 이 때를 리즈 시절이라고 봐도 된다.[22] 사후 발매된 앨범으로 리즈시절이라 하긴 뭐하지만, 그해 골든디스크 대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는등 사실 김현식 하면 떠올리는 첫 앨범이라서 역시 포함.[23] 작곡가 이영훈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던 시절이며, 1985년에 3집으로 골든컵 수상, 1996년에 조조할인이란 곡으로 정상을 차지했던 시절이다.[24] 김정수와 급행열차라는 그룹으로 활동한 앨범.[25]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이 곡으로 가요톱텐 골든컵과 당해 가요대상을 차지한다. 특히 방송에서 정장에 중절모자를 착용하고 나와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26] 드라마 '첫사랑' OST로 수록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27] 1998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누르고 가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골든디스크 대상을 차지했다.[28]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에 오른 앨범이며, 1990년 가수왕을 차지했다.[29] 본인이 스스로 리즈시절이라고 엄청나게 우러먹는 대표적인 가수. 참고로 호랑나비가 수록된 앨범은 김흥국의 데뷔앨범이 아니다.[30] '밖으로 나가버리고~'란 가사로 유명한 그 곡.[31] 1986년 부활 보컬로 데뷔 할때부터 인기가 많았고 김태원의 대마초 흡연으로 부활이 활동 중단 위기를 맞자 팀을 나와 솔로로 1집을 내 대박을 쳤다. 허나 그 후 대마초 사건으로 2번이나 구속되면서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다. 출연 정지 이후에는 콘서트 위주로 활동하다가 1996년에 '오늘도 난'이란 댄스곡으로 1위 후보에 여러 번 오른 후 1999년 '오직 너뿐인 나를' 이 들어간 6집으로 대박을 쳤고 2002년에는 'Never Ending story'을 통해 부활과 재결합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현재도 히트곡을 많이 뽑아내고 있다.[32] 앨범 단위로 정하자면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 있다.[33] 무릎팍도사에서 유세윤이 초대연예인의 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난 후 이 곡의 '욕심쟁이 우후훗'이라는 소절을 코믹하게 인용해서 상승세를 탔다.[34] 2집 타이틀곡인 <오늘 같은 밤이면>은 공중파를 통틀어 1위 후보만 30번 넘게 들었음에도 그 당시 양대산맥인 신승훈의 <우연히>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 밀려서 2위 제조기 역할을 했던 곡이다. 그래도 3집 <먼 훗날에>가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1위를 수상하면서 콩라인에서 벗어났다.[35] 2집 활동곡인 <보이지 않는 사랑>과 <우연히>는 가요톱텐에서 모두 골든컵을 수상한 건 기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은 MBC에서는 11주, SBS에서는 최장 14주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2집으로 30번 이상 1위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2집 활동을 통해 1992년 KBS 가요대상 대상, 골든디스크 대상도 석권하였다. 3집도 타이틀곡 <널 사랑하니까>가 3~4개월 동안 2, 3위 권에 꾸준히 머물렀으며, 후속곡 <처음 그 느낌처럼>도 10위권안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93년에는 그 해 많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골든디스크 대상을 2연패하는데 성공하였다. 5집은 1996년 별들의 전쟁 시기에 맞물러 1위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그 해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되었다.[36] 최종보스의 포스를 내뿜으며 단 3회 출연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졌다.그리고 이런 허스키함의 강렬한 인상은 현재 이 분이 잘 이어나가고 있다.[37] 당시 시청률 1위를 달리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비공식 OST로 사용되면서 대박을 쳤다.[38] 사실상 원히트 원더에 가깝다.[39] 3집 이후로는 기획자로서 많이 활동했으며 진주, god, 노을, 원더걸스, miss A, TWICE 등 여러 가수들을 데뷔시켜 큰 히트를 쳤다.[40]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표절과 관련해 잠정 은퇴를 발표하는 등 흑역사급 공백기를 가져왔기에 별도 구분한다.[41] 사실 타이틀곡 희생보단 수록곡 사랑했지만이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42] 6집 활동 이후에는 성대결절이 악화되고 대중성을 강조한 앨범이었던 7집은 대중들에게 외면을 당했다.[43] 기존 타이틀곡인 '짦은 다짐'이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타이틀곡을 바꾸었으며 이후 그는 점차 하향세를 탄다.[44] 2집 <핑계>는 KBS 가요대상, MBC 한국가요제전, SBS 가요대전 지상파 방송 3사 동시 대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대상마저 석권하면서 당시 5대 가요대상을 모두 석권한 유일왕이 되었고, 3집 <잘못된 만남>은 약 2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다 음반판매고를 기록했고 현재는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면서 이 기록은 사실상 넘을 수 없다. 또한 당시의 독보적인 인기에 힘입어 KBS 가요대상 대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2연패를 달성하였고 4집 <스피드>는 KBS 가요대상 대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3연패와 MBC 한국가요제전에서 2년만에 대상을 수상, KMTV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45] 물론 1998~2003년까지도 음악프로그램 1위는 여러번 차지했으나 선술한 당시에 비해서는 못 미치는 반응이었다.[46] 제2의 전성기라고 불렸던 시기로, 7집은 143만장을 판매하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8집은 음반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53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2003년 전체음반판매량 1위를 차지하게 된다.[47] 유작으로 리즈시절이라 규정짓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 곡을 통해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서지원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앨범인 점을 고려하여 본 문서에 기재.[48] 김추자의 원곡의 번안곡[49] 3집 수록곡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로 가요톱10에서 마지막으로 단일 앨범에서 골든컵 2회 연속 수상을 했으며 당시 인기에 힘입어 H.O.T.젝스키스가 양분했던 동년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50] 임창정 역대 앨범 가운데 3집 다음으로 높은 체감인기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51] 2001년부터는 꾸준히 음반을 내기는 했으나 흥행을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기부천사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후 SNS에서 논란을 많이 일으켜서 이미지가 많이 추락했고 목 상태도 꽤 안 좋아졌다.[52] 이후 발표된 5집과 6집 역시 꾸준히 대외적인 성과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6집 활동 이듬해 터진 병역기피 사건으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다.[53] 4집 <친구> 이후로는 배우로 많이 활동 중이다.[54] 5집 이후에는 간염으로 인해서 가수로서의 전성기가 끝났지만 그 이후에는 각종 예능과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55] 특히 1999년과 2000년은 그야말로 그의 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최전성기로 구분된다. 1999년에는 2집 한 장의 앨범으로 1999년 당시 음반판매순위 1위를 석권함은 물론 동년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핑클과 공동수상) 대상을 석권하였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발표된 2.5집 <가시나무>와 3집 <아시나요> 역시 동년 음반판매순위 1, 2위를 석권하면서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대상,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을 석권하였다. 당시 그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리즈 시절을 지낸 핑클, god와 방송사별 대상을 양분했을 정도. 5집 피아노 때는 2003년 전체음반판매량 5위안에 들었고, 그해 골든디스크 대상도 석권한다. 그러나 피아노 이후부터는 당시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4,6집도 당시 음반 판매량이나 커리어를 보면 준수한 성적이나 이 전성기 때만큼은 미치지 못했다.[56] 데뷔 초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그 이후 대마초와 병역 비리 등으로 잠시간 공백기를 가져왔기에 별도 구분한다.[57] 이후 미국에서 활동을 해보려 했으나 실패한 뒤로는 과거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급기야 2013년에는 연예병사로 입대해 근무를 태만하게 해서 연예병사를 폐지시킨 주 범인이 되었고, 현재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지만 비난여론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58] 2002년 3집 타이틀곡이지만 이때는 거의 묻혔다가, 2004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OST로 뒤늦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59] 박정현와 함께 명예졸업을 하는 등 엄청난 실력발휘를 하며 본격 비쥬얼 가수로 등극했다.[60] 무조건을 멤버송으로 채택한 1박2일 덕분에 리즈시절이 연장되었다는 의견도 있다.[61] 2004년에 발표한 한 남자와 중독의 인기, 그리고 동시에 X맨을 찾아라와 같은 인기 에능 프로그램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벌였고, 2005년에는 제자리 걸음과 사랑스러워가 지난해보다 발표한 노래들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고, 동시에 여전히 X맨을 찾아라, 날아라 슛돌이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2005년 연말 지상파 방송 3사 가요대상을 싹쓸이하는 마지막 수상자가 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군입대 전 낸 4집이 3집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고 공익근무 논란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고 이후 발표한 노래들은 2집과 3집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슬럼프를 잘 극복했으며 가수보다는 예능인으로 활동 중이다.[62] 2003년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 활동부터 여러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였고, 같은 해에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인 상두야 학교가자에서도 주연으로 활약하면서 더욱 많은 인기를 쌓으며 대표적인 멀티 엔터테이너로 성장하였고, 다음해인 2004년에 비는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인 풀하우스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지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사했고, 또한 하반기에 활동한 It's Raining의 엄청난 인기로 비는 2004년 연말 KBS 가요대상 대상과 엠넷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면서 생애 첫 가요 시상식 대상들을 수상하였다.[63] 이후에 발표된 앨범은 퍼포먼스나 예능인들의 커버 무대를 통한 화제성만 불러일으켰을 뿐 당시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64] 정규 1집 타이틀곡 <사랑은...향기를 남기고> 활동은 그 해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3주연속 트리플크라운, MBC 음악캠프 5주연속 1위, KMTV 쇼뮤직탱크 5주연속 1위 최강자 타이틀을 얻을 정도로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거의 독주 체재를 형성하였고, 정규 2집 타이틀곡 <사랑은...하나다> 활동은 작년보다는 가요프로그램 1위를 상대적으로 많이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3주연속 트리플크라운, MBC 음악캠프 2주연속 1위, 엠넷 엠카운트다운 2주연속 1위, KMTV 쇼뮤직탱크 2주연속 1위 등 동시기 다른 가수들에 비해 많은 1위를 수상하였고, 무엇보다 가수 활동 외에 예능계에서도 각종 게스트로 많은 활약을 보여주고 특히 X맨을 찾아라에서는 2005년 하반기 최고의 대세조합이었던 하하, 박명수, 김종국의 '하명국' 조합에 대항한 지상렬, 이성진과 함께 '지진테' 조합을 형성하며 프로그램내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시기다. 그러나 같은 해에 발표된 정규 3집 <그리움을 외치다>부터는 이전 두 앨범들보다는 낮은 인기를 기록하면서 가요프로그램1위도 적어지게 되고, 이후 나온 앨범들은 이 시기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65] 가수 이승기로서의 인상을 제대로 심어준 노래, 그리고 그는 누나들의 연모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기는 했으나 '내 여자라니까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66] 현재 아이콘의 멤버 B.I가 퓨처링했던 'Indian Boy'가 수록되어 있던 5집은 4집에 비해 반응이 미미했고, 그 다음해 죽을 만큼 아파서로 부활을 하는 듯 했으나 병역사건으로 현재는 방송도 출연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67] 천년의 사랑이 수록된 그 앨범이다. 이후로도 솔로 활동을 계속하나 반응은 무미건조했고 앨범 대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한동안 활동을 멈춘다.[68] 왜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해당 문서 참조.[69] 명곡이 무척 많으나 동백아가씨의 히트 이후 한일수교 정상화로 인한 정치적 영향을 받아, 왜색풍이라는 시비에 의해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해금될 때까지 방송에서 접할 수 없었다.[70]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에는 박정희에게 직접 하춘화의 생사여부가 보고된 적이 있다.[71] 실제로는 1993년에 애모가 역주행으로 여러번 1위를 했기 때문에 그 때가 리즈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72] 김국진의 회고에 따르면 오늘날의 아이유를 능가하는 인기였다고 한다.[73] 위의 서술된 현미의 곡과는 다른 곡이다.[74] 정식 앨범도 없이 가요제 대상 수상곡만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아울러 그 해 신인상, 최고인기 가요상, 10대 가수상을 동시 석권했다.[75] 스테디한 인기로 단일 앨범으로 1990년과 1991년 2년 연속 골든디스크 본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76] 전영록의 작사로 유명한 곡이다.[77] 전영록 작사.[78] 발매년도는 1989년이지만 노사연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한 1991년에 비로소 인기를 얻었다.[79] 1박2일에서 "뱀이다~" 라는 가사가 있는 기상송으로 매우 유명했다. 1주년 기념 충북 영동 여행에서는 새벽에 직접 촬영현장에 찾아와 라이브로 기상송을 들려주었다.[80] 원래 배우인데 태진아의 권유로 이벤트성으로 가요계에 입문했는데, 당시 예능에서 보여준 공주병 컨셉이 먹혀들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81] 2007년 <사랑, 그게 뭔데>도 수차례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1집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82] 2000년 4집 <성인식>도 당시 체감 인기로만 구분하자면 전성기 시절로 구분할 수 있지만 본인과 팬들 입장에서는 흑역사 취급당한다.[83] 참고로 '그녀와의 이별'은 1997년에 발매된 곡으로 당시에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1998년에 다시 인기를 끄는 역주행 곡이 되었다.[84] 타이틀곡 외에도 임재범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상처'도 큰 화제가 되었다.[85] 김범수와 함께 명예졸업을 하는 등 엄청난 실력발휘를 하며 가요계의 요정으로 등극했다.[86] 특히 2002년 10월 발표한 2집 은 4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당시 오리콘 차트 히트로 상승세였던 보아를 꺾고 KBS 가요대상 대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최고 인기 가수상,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정규 3집 역시 히트를 쳤으나 그 이후에는 중국 활동에 매진했던 탓에 한국 활동이 뜸해지면서 자연스레 쇠퇴기를 맞았고 2007년에 다시 가수 활동을 했지만 전성기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87] 백지영의 최전성기. 앨범 활동 종료를 앞두고 터진 섹스 비디오 스캔들로 인해 인기가 급추락했으며 다행히 2006년 5집부터 다시 전성기를 찾았다.[88] 2002년 2집 과 2.5집 로 한국에서 총 9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그 해 SBS 가요대전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서울가요대상에서도 대상을 수상했다. 후에도 3집 <아틀란티스 소녀>, 4집 까지 연달아 히트를 쳤지만 이후 5년여간 일본 활동에 전념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SM 내에서의 위상을 후배들에게 넘겨주었다.[89] 당시 골든디스크 디지털 음원 대상까지 수상하면서 인기가수가 되었으나 곧 이어 전 남자친구와의 스캔들과 루머로 인해 한순간에 인기가 곤두박질쳤다. 다행히도 지금은 이미지를 회복했다.[90] 1992년 상반기가 신승훈의 전성기였다면, 그 해 하반기는 이들의 최전성 시기로 신승훈에 이어서 한 앨범으로 가요톱텐에서 2곡의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데뷔 초임에도 장기간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91] 김민종손지창이 듀엣으로 결성한 그룹이다.[92] 1집 후속곡과 2집 타이틀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 해 혼성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이 앨범 후속으로 출시한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를 포함한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표절곡으로 걸려들면서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 뒤 4집 <3! 4!>부터 6집 <기도>까지 다시 1위 곡을 배출하면서 재기했지만 전성기 때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93] 4집과 5집 사이의 공백기는 흑역사에 가깝기 때문에 구분했다.[94] 표절 논란 이후부터 하향세를 탔다.[95] 다만 1집 활동곡인 <고요속의 외침>과 <상심>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흑역사가 있었다.[96] 가요제 수상곡 하나로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과 1위 후보로 대결할 정도였으며, 정규앨범 수록곡인 <다시>와 <명동별곡>도 상위권에 랭크하면서 선전했다.[97] 쿨의 최전성기 시절로 불리는 시기다. 3집 앨범은 비공식적으로 107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밀리언셀러 가수가 되었고, 이 시기에는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98] 4집 이후 4.5집 <미절>부터 2001년 발매한 6집까지는 전성기 때의 인기만큼은 누리지 못했으나 2002년 7월 발표한 정규 7집 앨범 <진실> 이 큰 인기를 얻으며 총 647,052장이 팔리며 2002년 전체 음반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해 발매된 7.5집 역시 3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2002년 한 해동안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멤버들의 불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같이 찍던 앨범 자켓을 따로 찍기 시작했으며, 대놓고 코믹적인 이미지로 가기 시작했다. 다만 인기가 바로 떨어지지는 않았고, 2003년 7월 발매한 8집 <결혼을 할거라면> 역시 나름대로 히트를 쳤다. 하지만 불화는 점점 심해지면서 다음 해 발표한 9집 때 방송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예능만 도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의 여파 때문인지 선술한 <운명>, <슬퍼지려 하기 전에>, <애상>, <미절> 등은 콘서트에서 자주 부르는 편이나, <진실>은 히트곡임에도 전혀 부르지 않는다. <결혼을 할거라면>은 2008년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라이브했다. 그 뒤 2005년에 해체했다가 2008년에 재결합했지만 이전과 같은 인기는 얻지 못하고 있다.[99] 커리어로서는 전성기였지만 멤버들 전체가 소속사와 불화를 겪던 시기다. 2집때 김정남이 소속사의 전횡으로 탈퇴하고 3집 때 마이키(본명 조명익)를 영입해서 인기를 얻었지만 4집은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받는 바람에 출연 정지를 당해 1달 밖에 활동을 못 했고 5집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이후 소속사의 횡포, 혹사, 갑질이 극에 달해 김종국이 탈퇴함으로서 2001년 해체수순을 밟았고 이후 개별활동으로 연명하다가 2015년에 3인조 체제로 재결성했다.[100] 4집 활동이 끝나고 몇 달 되지 않아 강원래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척수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아 춤을 추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기를 걷게 되었다.[101] 같은해 데뷔하여 초대박을 친 H.O.T.와 1위를 다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1집 활동이 끝난 후 핵심 멤버이자 리더인 임성은이 탈퇴하면서 서서히 인기가 하락했다. 그래도 2~4집까지는 활동곡들을 상위권에 랭크시키면서 선전했으나 잦은 멤버 교체로 인해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102] 사실상 원히트원더에 가깝다.[103] 커리어로서는 전성기였지만 멤버들간의 불화가 있었던 시기다. 2002년 9월 정규 5집 <눈물>을 발매하고 활동하다가 결국 4년간 쌓아온 불화가 폭발하면서 2002년 10월 15일에 해체되었다. 그로 인해 피해자였던 이지혜는 가요계를 은퇴하다시피 했다가 2005년에 복귀했고 서지영은 현재까지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얼마 뒤 화해해서 현재는 별 탈없이 지내고 있다.[104] 이후 김현정이 탈퇴하고 그녀의 공석에 안유진이 투입되었지만 2집 당시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105] 2000년 3집에서 첫 1위를 달성했고 2002년 발표한 정규 4집 <필립>의 타이틀 곡 <비몽>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52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하프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2002년 전체 음반판매량 4위를 차지했으며 또한 코요태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판매고를 기록했다. 그 다음 해 발표한 5집 <비상> 역시 히트했고 2004년 발표한 6집이 <디스코왕>, <불꽃>, 의 3연속 히트로 가요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1위를 차지했고, 가요대상 대상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올라갔다. 6집을 끝으로는 가요 프로그램 1위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 서술에는 있었지만, 실제로 코요태는 7집 활동 중인 2005년 1월에 음악캠프와 쇼뮤직탱크에서 빙고라는 곡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실질적인 하락세는 8집부터다.[106]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에게는 데뷔곡인 <순정>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107] 8집은 타이틀곡 <1, 2, 3, 4>가 너무 지나친 스타일 변화로 대중적인 인기가 많이 하락하게되었고, 가요프로그램에서의 1위도 단 한 개도 수상하지 못하거 음반 판매량도 겨우 73,176장으로 작년에 발표한 6집이 거의 30만장 정도 팔린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판매량 수치하락을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메인보컬이자 여성멤버였던 신지가 대내외적인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서 코요태 그룹 전체의 이미지에도 그 타격이 가고 말았다. 또한 이 시기는 멤버들이 본격적으로 개인활동에 더욱 주력하기 시작한 시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각종 연말가요시상식 본상은 받긴 하였지만. 그 다음해인 2006년에 발표한 9집은 타이틀곡 이 <1, 2, 3, 4>보다는 반응이 좋았지만 이미 전성기 시절에 비해 인기가 굉장히 많이 떨어진 시기여서 가요프로그램 1위도 쇼뮤직탱크 1회 수상 밖에 되지 않았고, 음반판매량은 34,383장으로 8집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버렸고, 매년 계속해서 받던 연말 가요 시상식 본상도 이 해에는 전혀 받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9집은 현재 코요태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이 9집 활동 기간은 소속사와의 갈등이 더욱 심화된 시기여서 신지가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하는 등 솔로로 본격적으로 전향을 한 시기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7년 하반기에는 남자멤버이자 가장 인지도와 이미지가 좋았던 멤버 김종민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시작하게 되며 빠지게 되고 또 다른 남성멤버이자 래퍼 빽가는 본격적으로 사진기자 활동을 더 많이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코요태는 여러 앨범들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전성기시절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공백기간에 발표한 신지의 각종 솔로곡 활동들에 대한 반응 및 성적도 부진하였고, 빽가는 2009년 말에 뇌종양 발견되는 큰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다행히 빽가 같은 경우에는 2010년 1월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2010년 연말즈음에 복귀하였다.[108] 그래도 남자멤버 중 한 명인 김종민 같은 경우에는 8집부터 이미 많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던 예능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고, 소집해제 이후에도 1박 2일 등 예능에서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며 KBS 연예대상SBS 연예대상에서 각종 수상기록을 남겼고, 그 중 2011년 KBS 연예대상에서는 1박 2일 팀 공동대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KBS 연예대상에서는 단독 대상을 수상하고,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김건모 에피소드에서 자주 출연하며 오히려 멀티 엔터테이너 및 예능인으로서는 그 이전보다도 더욱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109] CB MASS의 3집은 리더였던 커빈이 앨범 제작비를 횡령한 사건(일명 VIP사건)때문에 제대로 된 활동 없이 해체되었을 뿐 아니라 에픽하이TBNY의 데뷔까지 늦어지게 되었다. 이듬해에 개코와 최자는 다이나믹 듀오를 결성하여 1집의 수록곡 '이력서', 결성 직전 데뷔한 에픽하이는 '뒷담화', TBNY는 2년뒤 데뷔하자마자 'You'라는 곡으로 각각 커빈을 디스했다.[110] 벌써 일 년은 방송활동 한번 없이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번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했고, 2집의 경우 7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음반시장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111] 2005년에는 정규 2집으로 그 해 최다 판매량을 달성해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에는 정규 3집으로 그 해 총 판매량 2위를 달성했고 음원은 1위를 달성하면서 MKMF 올해의 앨범상, 노래상, 골든디스크 디지털음원 대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는 2집과 3집보다는 인기가 덜했지만 그래도 그 해 판매량 1위를 달성하면서 다시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2008년 5집 <라라라>부터는 이전만큼의 음반과 음원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고, 故 채동하도 나가게 되는 일도 발생하면서 SG워너비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도 전성기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112] 겁쟁이-가시-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113] 명곡들이 수두룩한 그야말로 클래지콰이의 전성기 시절을 대변하는 명반.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몇 안 되는 2000년대 음반이다.[114] 2008년에 발표한 3집 은 1집, 2집과 다르게 댄스곡을 선정해서 그 이전 만큼의 성공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혹평을 듣게 되었다. 심지어 그 다음해인 2009년에는 남규리가 소속사인 코어 콘텐츠미디어와 분쟁이 나면서 씨야의 인기는 급격하게 내려갔다.[115] 2000년에 낸 5집 도 여러번 1위를 차지했지만 전작만큼의 반응을 얻는데는 실패했으며 그 뒤 1년도 안 돼 H.O.T.는 사실상 해체되었다.[116] 이듬해 드림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해체되었으며 사실상 해체 이전의 활동기간 자체가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117] 특히 1999년은 영원한 사랑 활동을 통해 걸그룹 최초로 서울가요대상SBS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118] 해외에서의 인기까지 감안하면 2003년까지라고도 볼 수 있다.[119] 문서에는 4집까지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2002년, 그 유명한 100회 콘서트를 했다. 실질적으로 하락세가 시작된 때는 윤계상이 탈퇴한 이후.[120] 특히 2004년은 상반기에 리더 에릭불새에서 주연으로 성공적으로 열연을 펼치며 드라마의 인기와 동시에 본인의 인기도 높아졌고, 이민우도 성공적인 솔로 데뷔 활동을 하였다. 하반기에는 Brand New 활동의 대성공으로 SBS 가요대전 대상과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석권했던 해이다.[121] 5집 <중력> 같은 경우에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거의 끝나기 전에 발매된 앨범이어서 그 전보다도 소속사의 푸쉬 및 홍보가 굉장히 적어서 음반판매량 및 1위 기록은 3집과 4집에 비해 굉장히 적은 편이었다. 단 퀄리티는 굉장히 좋다는 평가가 많았고 무엇보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대중에게 완전히 실력파 가수로 인정받게 된 것도 있어서 마냥 안 좋은 기억만 있다고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편이다.[122] 드라마 패션 70's OST에 쓰인 <가슴 아파도>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6집의 타이틀곡 <남자답게>와 <피>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각종 가요프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브라이언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환희의 드라마 출연 등 멤버들의 개인활동도 이 때부터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발매된 7집부터 발표한 곡들은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123] 2005년에는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면서 더 많은 팬덤을 확보했고, 2006년에는 정규 3집이 음반판매량 1위를 달성하고 연말에는 MKMF 올해의 가수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음반부문 대상, 서울가요대상 대상, SBS 가요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연말 시상식 대상을 SG워너비와 양분했다. 2008년에 일본에서 발매된 싱글이 모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홍백가합전에 출전하고 국내 정규 4집 음반이 2003년 이후 최다인 40만장을 넘기면서 그 해 2008년 MKMF 올해의 앨범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음반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호재가 이어졌다. 하지만...[124] 당시 김현중은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류스타로 발돋움했고 한국에서의 인기도 정점에 도달했으나 이후에 김현중이 주연 배우로 출연했던 드라마들과 고정 패널로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부진하였고 심지어 2016년에는 비록 무혐의로 끝나긴 했지만 여자친구 폭행혐의에 휘말리게 되면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음주운전 사건마저 일으키면서 더 이상 좋은 이미지를 회복하기에는 어려워졌다. 결국 이 두 사건들로 인해 김현중은 이제 저 당시의 인기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125] U R Man으로 유닛 최초로 1위도 했고 꽃보다 남자가 대박을 치면서 내 머리가 나빠서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 그룹사상 최고의 음원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올랐다. 2016년부터 Double S 301이라는 유닛으로 활동 중이지만 당시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126] 여느 아이돌과의 비교를 거부하던 넘사벽급 음반판매량과 동남아 및 서양권에서의 높은 팬층 확보를 통해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앨범 활동 기간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 슈퍼주니어의 음악적 이미지 실추에 큰 영향을 끼친 곡들이 커리어적으로는 리즈 시절로 분류되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대목으로 이후 슈퍼주니어는 SM 내에서의 위상을 EXO에게 물려주게 된다.[127] 거짓말-마지막 인사-하루하루-붉은 노을의 4연타로 각종 1위 프로그램 1위와 음원차트 상위권 거짓말과 하루하루는 그 해 싸이월드 연간 차트 1위, 각종 연말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2009년에는 리더인 G.DRAGONHeartbreaker로 비록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솔로 활동에 성공적으로 전향하면서 솔로로서도 대상을 휩쓴 제1전성기이다.[128] 2011년에 발표한 Tonight이 이전에 나온 빅뱅의 노래들보다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 성적으로 그 이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좋지 않아서 포함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2011년에는 리더인 G.DRAGON의 대마초 논란과 대성의 차량 교통사고 사건이 나면서 그룹 자체가 큰 위기를 맞았던 시기이다.[129] 하지만 2012년에 발표한 FANTASTIC BABY부터는 다시 빅뱅이 2000년대 후반 못지않은 성적과 인기를 다시 얻기 시작하였고, 2013년에는 G.DRAGON이 성공적으로 정규 2집 활동을 하였고, 2014년에는 멤버 태양이 '눈, 코, 입'이라는 메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각종 시상식에서 음원대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2015년에는 뱅뱅뱅으로 남자 아이돌 최초로 멜론 연간 1위를 기록하고, 각종 연말시상식에서도 대상을 휩쓸었다.[130] 이후 T.O.P의 대마초 흡연으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져, 팬들마저 일부는 안티로 돌아서는 상황.[131] 원더걸스 멤버 중 유난히 외모에서 정변역변을 거듭한 멤버.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유빈 리즈시절"을 검색하면 So Hot 활동 당시 사진들이 나온다.[132] 활동 당시 남초사이트를 시작으로 유빈이 So Hot 시절과는 다른 분위기로 리즈시절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조금씩 나타났고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 제대로 리즈를 찍었다.[133] Lupin 이후 카라 사태가 일어나긴 했으나, 3집 STEP에서 대중 취향에 맞는 괜찮은 퀄리티의 음악과 소속사의 웬일로 적절한 프로모션으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다. 그러나 2년 뒤 멤버 2명이 탈퇴하여 해체 전까지 완전히 내리막길을 걸었다.[134] 샤이니가 그 이전과 그 이후와 비교해 보았을 때 국내에서 음원, 음반 판매량이나 각종 가요프로그램 1위를 꾸준히 석권했던 시기이자 2013년에는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며 생애 첫 대상을 석권한 시기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샤이니가 국내에서 이 시기만큼의 음원 성적이나 음반 판매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1위도 자주 못하게 된다.[135] 2010년 죽어도 못 보내와 정규 1집 활동으로 각종 가요프로그램 1위와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고, 심지어는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지털음원 부문 대상, 멜론 뮤직 어워드 베스트송상 등 굵직한 대상 등을 석권한 해였다. 그러나 이후 발표한 2AM의 노래들은 이 시기만큼 흥행을 하지 못하게 된다.[136] 또한 2015년을 기점으로 조권을 제외한 다른 세 멤버들이 JYP가 아닌 다른 소속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심지어 홀로 JYP에 남아있던 조권도 2017년 큐브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잠정적으로 팀 해체가 기정사실화 되어버렸다.[137] 심지어 그 조권도 2018년 기준 경희대 석사 학위 특례 논란에 연루되면서 이미지가 안 좋아져버렸다.[138] 이 분 항목에서도 서술되었듯이 개인활동은 가수활동보단 배우활동이 더 많을정도다.[139] 으로 짐승돌로 부상했고, 후속곡인 <니가 밉다>까지 히트했으며 2009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가수상까지 수상하며 시상식 대상마저 석권한 당시 최고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던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하여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이후 재범 탈퇴 후 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사실상 이후 국내에서는 이 때만큼의 흥행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며 쇠퇴기를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이 분은 탈퇴후 솔로대뷔에 성공하면서 AOMG하이어 뮤직을 창립하는등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2PM과는 반대로 오르막길을 걷고있다. 즉, 초창기 2PM팬덤이 거의 박재범쪽으로 이동했다고 볼수있다.[140] 다만 개인적활동이 각 멤버들마다 잘 갓추어져있기에 각 개개인의 자력으로 이 그룹은 현재까지도 해체없이 잘 유지되고 있고, 각 멤버들의 개인적인 활동에서는 나름 괞찮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인기에서는 오히려 2010년대에 더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자세한건 2PM 항목 참조.[141] 한때 기존 걸그룹과는 색다른 음악을 선보였으나 이후 2012년부터 가사면에서의 변화로 급격히 인기가 떨어지다가 2014년에 발표한 2집으로 여전한 위엄을 선보였으나 그 해 말에 터진 박봄 마약류 밀수 사건으로 인하여 국내에서의 팀 활동이 전면중단 되다가 2016년 공민지 탈퇴후 팀은 결국 해체된다.[142] 특히 2011년에는 대상에 해당하는 멜론 뮤직 어워드 아티스트상, KBS 가요대축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2013년에 발표한 정규2집 부터 그 이전곡들보다 반응이나 인기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2016년에는 장현승의 탈퇴 논란과 전 소속사인 큐브 엔터테인먼트와의 그룹명 상표권 문제가 연이어 터지면서 전성기시절 만큼의 인기를 회복하기가 어렵게 되었다.[143] 하지만 2017년 탈퇴한 장현승을 재외한 5명은 2016년 말에 소속사를 어라운드어스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후에 하이라이트로 팀명을 변경한후 선보인 첫곡 '아름답다'와 그 이후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가 차트1위를 차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144] 이후 티아라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급격히 나빠져 그 후에 발매된 음반은 별점테러를 당하는 등 히트를 하지 못하다가 2017년도 초반 화영의 자폭으로 어느 정도 대중의 인식이 어느정도 개선됨으로써 그 이후에 발표한 앨범 'What's my name'부터 음반 평점도 3점 후반대로 상승하고 더쇼에서 5년만에 1위도 차지하는 등 확실히 나아진 상황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건 마찬가지이다.[145] 시크릿은 멤버 한선화를 비롯하여 개인적인 인지도를 쌓으면서 Magic을 통해 그룹 전체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마돈나, 샤이보이, 별빛달빛 3연타로 인기 걸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가을에 나온 <사랑은 Move>부터는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얻는 것에 실패한 이후 2012년 은 한국에서 이전만큼의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 이후 나온 노래들은 평이나 반응이 이전보다 부진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리더 전효성이 대내외적으로 여러 구설수에 오르면서 전효성 개인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멤버들이 각자 개인활동에 주력하고 그룹의 멤버였던 한선화는 그룹을 탈퇴하면서 시크릿은 그 이전만큼의 인기를 회복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146]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컴백만 하면 음원차트 1위와 음악방송 1위을 차지했으며, 특히 LUV는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음반시장에서도 성공했다. LUV는 2014년 12월 한 달동안 모든 음악방송에서 정상을 차지할 정도. 하지만 Remember부터 부진하더니 그 뒤 5집 가 음악방송 1위를 할 때까지 음악방송, 음원차트 1위를 하지 못했다.[147] 는 전작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148] 2014년 우이판의 탈퇴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해에 미니앨범 최초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여전히 건재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중국인 멤버들의 탈퇴와 2번의 스캔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현재에도 전성기보다 살짝 못미치는 수준의 인기를 누리는 그룹이다. 워낙에 데뷔 초반부터 다사다난한 일들을 많이 겪은탓에 팬들은 오히려 저절로 팬덤청소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149] 하지만 그 이후 계속 이상한 콘셉트를 밀고 가다가 대중에서 서서히 잊혀갔으며 현재로선 사실상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 있다.[150] 당시에 선정적 안무 문제와 설현의 부상으로 인한 활동중단이 있었다.[151] 2014년 나온 So Woderful은 그다지 크게 흥행하지 못했고 리세, 은비의 생전 마지막 활동곡인 Kiss Kiss 역시 부진.[152] 시야를 좁히면 <시간을 달려서>가 최전성기였다.[153] 시크 컨셉의 <FINGERTIP>은 전작만큼의 인기를 얻는 데 실패했다. 무리한 컨셉전환이 부른 결과[154] 정규 1집인 twicetagram은 초동 기록을 1위를 다시 갱신했으며 유튜브 조회수도 최단기록을 달성하고 있다.[155] 2011,2012년에도 슈퍼주니어,소녀시대를 통한 나쁘지 않은 시기를 계속 누리고 있기는 했다. 2013년부터 엑소가 현재까지 크게 히트하고, 2014년에 데뷔한 레드벨벳은 나쁘지 않은 데뷔를 한후 2016년부터 제대로 히트하고 있기 때문에 2013년부터 전성기를 다시 누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156] 이 시기에는 빅뱅의 거짓말~붉은노을 연속 히트에 지드래곤과 태양의 솔로 앨범 성공 그리고 투애니원의 히트까지 뭘 해도 잘나가는 시기였다.[157] 2011년에는 빅뱅이 컴백했으나 예전에 비해 음원이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지드래곤의 대마초 사건과 대성의 교통사고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좋아 졌었다. 그나마 투애니원이 내가 제일 잘 나가가 히트 하면서 체면 치례했다. 2012년에 빅뱅이 다시 컴백을 해서 나온 음원이 대히트를 쳐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158] 그러나 2017년에 소속 연예인들의 대마초 적발로 인해 회사 이미지가 않좋아지고 믹스나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했으나 대차게 망했다. 게다가 그나마 돈을 벌어다 주던 빅뱅 멤버들이 줄줄이 군입대를 하게 되고 시가총액도 JYP엔터테인먼트에 추월당하면서 업계 3위로 내려가는 등 상황이 많이 않좋아졌다.[159]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소속된 가수들의 국내 무대에서의 음원 성적이나 가요 프로그램 1위들을 SM과 YG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던 시기다. 또한 두 회사와는 다르게 이 시기 동안은 단 한 번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멜론 뮤직 어워드 등의 굵직한 대중가요시상식에서 단 한 번도 대상을 가져가지 못한 시기다.[160] 카라 이후에 결성된 레인보우, 에이젝스, APRIL 모두 이미 망했거나 망하고 있는 중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진행형으로 쇠락하고 있다. 특히 APRIL핑클과 같은 기획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심하게 쇠락해 버렸고 에이젝스역시 젝스키스와 같은 기획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쇠락했다.[161]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안소진이 사망한 지 정확히 1년 후 DSP 미디어의 리즈시절은 완전히 끝났다. 그나마 마지막 버팀목인 카라가 해체했기 때문이다.[162] 정확히는 1993년 그래미 시상식 이전[163] 같은 해에 성추문 사건에 휘말렸고, 마이클 잭슨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이 안 좋아지면서 그 후에 낸 음반들은 히트하지 못했다.[164] 대중적인 인기에 한정해서고 음악적으로는 오히려 1965년부터 1969년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 전성기에 가깝다.[165] 1970년 8월, 미국에서 첫 공연을 진행하면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이후, 1976년 6월에 발매된 메가히트 싱글 "Don't Go Breaking My Heart"까지 전성기를 보내었다. 1977년 활동 중단으로 몇 년간 침체기를 보내다가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의 상업적 성공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1992년 23집 The One, 1994년 라이온 킹의 대성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몇 년간 보내었다.[166] 2집부터 Vogue 앨범까지를 최전성기로 본다.[167] 잠시 위기를 맞았다가 음악적으로 대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 이후에도 콘서트로 여전히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168] 이 시절 이후 머라이어 캐리와 낸 'When you believe'가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마약과 이혼등으로 인해 고생하다가 2009년 재기에 성공했으나 전성기 시절에 비해 형편없어진 가창력으로 실망감을 안겼고, 그 뒤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169] 일본 시장에서의 인기까지 포함하면 1998년까지라고도 볼 수 있다. 그 후 이혼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몰락했다가 2005년에 훌륭하게 재기했다.[170] 정확히는 3집 발표 이전. 사실 3집 투어는 전설적이었지만 3집 이후로 슬럼프가 계속 되고 3집 자체도 혹평을 받았다.[171] 이혼 후 패리스 힐튼과 놀러다니며 최악의 침체기를 맞다 그해 말 'Womanizer', 다음해에 '3'로 그녀 커리어의 제2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 인기는 7집 'Femme fatale'까지 이어지다 이후로는 다시 침체기.[172] 데스티니스 차일드 시절을 제외한 솔로 커리어. 놀랍게도 현재까지 쇠퇴기를 맞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음악적으로 더 인정받고 있다.[173]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를 탈퇴하면서 쇠퇴기를 맞이했다.[174] 각종 논란과 사건으로 여론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현재도 음악으로 성공하고 있긴 하다.[175] 보통 2013년 Artpop 이전까지를 전성기로 본다.[176] 데뷔 앨범의 리드 싱글인 I Kissed a Girl의 빌보드 1위부터 Teenage Dream의 상업적 대박 PRISM 앨범의 싱글인 RoarDark Horse가 대박을 쳤지만 최근에 나온 싱글들을 보면 4집이 PRISM의 기록을 뛰어 넘을수 있을지가 의문이다.[177] 현재 일본 최고 대세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インフルエンサー(인플루언서) 싱글이 판매량 100만 장을 넘겼다.[178] 2010년 발매한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이 대히트를 치면서 2011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로 인기 멤버들이 졸업하면서 하락세를 띄나 했더니 2013년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현재 AKB는 10년이 넘은 그룹으로 새로운 팬들의 유입이 적기 때문에 다시 상승세를 띄기 힘들며 애초에 아이돌이 10년 이상 인기를 유지하는 경우는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