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국가대표 경력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이청용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이청용/클럽 경력



1. 개요[편집]




2.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1. 2007년 FIFA U-20 월드컵[편집]


U-15 대표팀, U-17 대표팀, U-20 대표팀 등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경험하며,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아스널 FC, SL 벤피카 등의 유럽 클럽의 관심을 받고, 피파 기술 보고서에 뛰어난 선수(Outstanding Player)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3.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3.1. 2008 베이징 올림픽[편집]


2007년 10월 17일 시리아와의 경기로 첫 U-23 대표팀 경기를 치렀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당시 주전이었던 박주영, 이근호, 정성룡 등이 1985년생이었음을 감안하면 3년이나 월반해 뽑혔으므로 굉장한 유망주임을 알 수 있다.[1]


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4.1. 허정무호[편집]


2008년 5월 31일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으며, 데뷔전에서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후 9월 5일 요르단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했고 이 골은 결승골이 되었다. '재능은 있으나 시기상조'라는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허정무 감독은 약관 20세 이청용과 기성용을 대표팀에 끌어올렸고, 두 선수는 허정무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꾸준하게 성장하여 주전 경쟁에서 베테랑들이 즐비한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을 제치고 대표팀의 키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4.1.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편집]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0.8em"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정해성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태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현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 포함되어 박지성, 기성용, 김정우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소속팀에서 벤치 신세가 되어 폼이 상당히 떨어진 기성용에 비해 주전으로 꾸준히 출장하며 폼을 끌어올린지라 본선에서 활약이 기대되었다.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했으며 B조 2차전 아르헨티나에서는 전반 종료 직전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치명적인 실수를 놓치지 않고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만회골을 넣어 한국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고,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 내는 킬 패스를 선보였다. 다만 수비 가담에선 그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미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힘겨워하던 풀백 오범석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전체적인 팀 밸런스 측면에선 아쉬웠던 부분. 나이지리아 전에서는 보다 활발한 모습을 선보이며 몇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잡거나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16강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왼쪽 날개로 출전하였고, 박지성의 절묘한 패스를 받아 소녀슛으로 기회를 날려먹는등 활약을 하다 후반 22분 헤딩으로 동점골을 만들었으나 아쉽게 1-2로 패배했다.(16강 15위) 월드컵 종료 후 사미 케디라, 메수트 외질, 하비 마르티네스 등의 탑급 선수들과 함께 타임스 선정 '라이징 스타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4.2. 조광래호[편집]



4.2.1. 2010년[편집]


아시안컵을 끝으로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사실상 조광래호에서 에이스가 되었다.

4.2.1.1.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편집]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0.8em"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아시안컵 모든 경기를 선발출전 한다.

4.2.2. 2011년[편집]


2011년 7월 프리 시즌에서 당한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재활에 들어가면서 월드컵 지역 예선 도중 불참하게 되었다. 그 해 11월 재활 회복 도중 조광래 감독이 이청용의 쿠웨이트전 출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발언을 하여 조기 복귀설이 흘러나오면서 여론은 부상으로 소속팀에서 뛰지도 못하는 선수를 내보내겠다는 조광래 감독의 발언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4.3. 최강희호[편집]



4.3.1. 2012년[편집]


결국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면서 자리를 이어받은 최강희 감독은 이청용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줄 것임을 천명했고, 성공적으로 복귀한 뒤인 2012년 8월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 명단에 포함시켰다. 최강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청용 같은 선수 4~5명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밝힐 정도로 이청용의 능력을 매우 신임하고 있으며, 기성용과 더불어 대표팀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을 보이고 있다.

4.3.2. 2013년[편집]


최종예선 도중, 조광래호에 이어 최강희호도 경기력 저하 등으로 점차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급기야 절친인 기성용과 불화설까지 나돌았고, 격분한 이청용은 기자들에게 대놓고 현장에 나와서 사실대로 기사 써달라고 디스하는 등 에이스의 패기를 보였다.

4.4. 홍명보호[편집]



4.4.1. 2013년[편집]


2013년 여름, 홍명보호가 출범했지만 이청용은 여전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주전 멤버이다. 2013년 9월 6일, 아이티와의 평가전에서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투입되자마자 화려한 발재간과 볼 컨트롤로 수비수들을 당황하게 만들며 두 개의 페널티 킥을 유도, 팀 분위기 전환에 크게 기여를 했다. 특히 수비수 두 명을 동시에 제치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와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장면은 일품. 이 밖에도 여러 유효슈팅에 기여하고, 본인도 수차례 슈팅을 때리는 등 적극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이러한 활약에 캐스터 배성재는 '잉글랜드 2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라는 다소 위험한 발언을 했지만, 실제로 이청용이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납득할만한 발언. 후반 45분에는 손흥민의 패스를 그대로 골대 구석에 날카롭게 차 넣었으나 골포스트를 맞으며 A매치 득점에는 실패했다.

2013년 11월 15일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드디어 A매치 득점에 성공했다. 그것도 무려 역전골. 후반 이근호의 크로스를 2선에서 잘라들어가며 침착하게 헤딩으로 마무리.# 스위스전 골은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 이후 오랜만에 넣은 골이다.

4.4.2. 2014년[편집]


월드컵 본선 직전 평가전 두 경기에서도 손흥민과 함께 팀 공격의 활로를 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 팀 전체가 비난받는 와중에 그나마 칭찬을 받았었다.

4.4.2.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1 정성룡 · 2 김창수 · 3 윤석영 · 4 곽태휘 · 5 김영권 · 6 황석호 · 7 김보경 · 8 하대성
9 손흥민 · 10 박주영 · 11 이근호 · 12 이용 · 13 구자철

C
· 14 한국영 · 15 박종우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신욱 · 19 지동원 · 20 홍정호 · 21 김승규 · 22 박주호 · 23 이범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0.8em"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태영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건하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안툰 두 샤트니에 ·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봉수


그러나 총체적 난국이나 다름없던 대표팀 분위기에 이청용도 휘말린건지 본선에서 보여주는 폼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선발로 출전했던 알제리, 벨기에 상대로는 아무런 인상도 남겨주지 못한 채 국내외 가릴 것 없이 혹평 일색일 뿐... 英언론, 이청용은 2부리거 수준에 불과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 또한 인상적인 모습은 없었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수적인 우세였음에도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게다가 후반 앙토니 반덴 보르에게 백태클을 가하여 종아리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히면서 매너에서도 패했다.


4.5. 슈틸리케호[편집]



4.5.1. 2014년[편집]


홍명보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1무 2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해서 선수들이 비난을 받을 때 이청용 역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9월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첫 경기인 베네수엘라-우루과이 전에 선발로 뽑혔다. 하지만 이 두 경기에서조차도 여전히 폼이 돌아오지 않아서 살짝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10월 파라과이전과 코스타리카 전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폼이 거의 예전과 같이 회복돼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4.5.1.1. 2015 AFC 아시안컵 호주[편집]

1 정성룡 · 2 김창수 · 3 김진수 · 4 김주영 · 5 곽태휘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김민우
9 조영철 · 10 남태희 · 11 이근호 · 12 한교원 · 13 구자철 · 14 한국영 · 15 이명주 · 16 기성용

C

17 이청용 · 18 이정협 · 19 김영권 · 20 장현수 · 21 김승규 · 22 차두리 · 23 김진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0.8em"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울리 슈틸리케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건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태용·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카를로스 아르무아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봉수


아시안컵 조별예선 1차전 오만 전에서 태클에 넘어져 부상을 입었는데, 그 태클에 정강이뼈가 긁히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남은 대회 기간 동안 출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대표팀 공격 전술 폭이 상당히 좁아졌다. 측면에서 볼을 운반하고 키핑해줄 몇 안 되는 자원이자 중앙의 공미와 2대 1 패스를 받아줄 자원이 사라지니 꼭지 점에 위치한 선수의 부담이 커졌고, 아니나 다를까 상대수비의 마크가 한결 편해져 남태희의 폼까지 죽었다. 결국 이청용은 한국이 대회 결승까지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서 하차하여 소속팀에 조기 복귀했다.


4.5.2. 2015년 ~ 2017년[편집]


2015년 9월 3일 라오스와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헤딩 선제골을 넣었고, 2016년 중국과의 월드컵 최종 에선에서 역시 헤딩골을 넣었다. 다만 이 기간 동안 크리스탈 팰리스에서의 불규칙한 경기 출전으로 인한 폼 하락으로 대표팀 주전에서 점차 내려오기 시작했고, 이청용의 자리는 이재성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4.6. 신태용호[편집]



4.6.1. 2017년[편집]


2017년 10월 러시아, 모로코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신태용호에 차출되었다. 공언한대로 해외파만을 차출한데다 윤석영이 부상으로 도중에 하차하는 등 풀백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러시아전에서는 3-4-3 포메이션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 출전하였다. 4-0으로 끌려가는 와중에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영패를 막는데 일조하였다. 공격형 윙어였지만 그동안 노련미가 쌓인 탓인지 공수에서도 준수한 밸런스를 보여주어 해당 경기에서 유일한 수확이라고 평가받는 중이다.

하지만 그 평도 잠시, 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역시 같은 포지션으로 출전해 모로코 공격진들에게 말 그대로 털리고 수비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패배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해외 리그에서 입지가 불안정한 선수들이 국내 복귀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청용은 강원 이적설을 극구 부인하며 유럽에서의 도전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국대 팬들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하위권 크리스탈 펠리스에서도 출전하지 못 하는 선수의 기량을 팬들은 물론이고 신태용 감독조차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 소속팀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폼이 망가진 선수가 팀에 어떠한 해를 끼치는지는 2014년 박주영을 통해 팬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3년 박주영에게 뛸 팀을 찾으라며 위건에 다리를 놓아준 것이 이청용이었는데, 2017년 이청용이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월드컵에 가기 위해선 어떻게든 뛸 팀을 찾아야 할 상황인데 과연 현 상황에서 이적할만한 팀이 있는지 의문이며, 크리스탈 펠리스 내에서의 입지는 암울한 상황이다. 월드컵을 고려하고 있다면 여러모로 결단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1월 31일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있는 친정팀 볼튼으로 임대 이적을 결정하였는 줄 알았으나 마지막에 구단에서 공격수 바카리 사코의 부상을 이유로 돌연 취소하는 바람에 이적이 무산되었다. 월드컵 전까지 꼼짝없이 팀에 남아야 하는데, 바카리 사코가 출장하든 말든 이청용에게는 출장 기회가 전혀 없어 월드컵 출전이 더욱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4.6.2. 2018년[편집]


신태용 감독이 5월 2일 기자회견에서 이청용의 러시아 월드컵 출전 여부는 50대 50이라고 밝혔다. # 게다가 염기훈이 갈비뼈 골절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면서 대체 자원으로 이청용이 거론되었다. 그래서 5월 28일 온두라스와의 경기에 출장했으나 영 좋지 않은 폼을 보인데다 경미한 부상까지 입으며 교체 아웃되었다.

소속팀에서의 2018년 공식 경기 출전 시간은 총 28분에 불과했고, 이는 온두라스전 한 경기에서의 출전 시간보다도 짧은 수준이었다. 이름값을 제외하면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있고 직전 경기에서도 별다른 활약이 없자 결국 권경원, 김진수와 함께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였다.

4.7. 벤투호[편집]



4.7.1. 2018년[편집]


여름 이적 시장 막판 보훔으로 이적한 이후 서서히 폼을 끌어올리기 시작해서 벤투호에 승선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던 사람이 소수 있다. 그리고 KFA에서 이청용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보훔과의 연락 라인을 구축하며 기정 사실화되는가 싶더니 11월 호주 원정 명단에 뽑히면서 벤투호 승선이 확정되었다.

11월 17일 호주전에서 선발 출전하였다.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공수 양면에서 무난하게 활약하며 호평을 받았다.

11월 20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중원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나상호, 문선민과의 스위칭을 통해 위협적인 장면도 몇 번 만들어 냈으며 유효 슈팅까지 기록했다. 이청용이 폼을 회복할 경우 2선 자원은 그야말로 포화 상태가 되어 경쟁이 아주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벤투호 출범 후 주전으로 활약한 남태희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아시안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청용의 출전 가능성이 높아졌다.

4.7.1.1.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편집]

{{{#ffffff 1 김승규 · 2 이용 · 3 김진수 · 4 김민재 · 5 정우영 · 6 황인범 · 7 손흥민

C
· 8 주세종
9 지동원 · 10 이재성 · 11 황희찬 · 12 이승우 · 13 구자철 · 14 홍철 · 15 정승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황의조 · 19 김영권

VC
· 20 권경원 · 21 김진현 · 22 김문환 · 23 조현우
{{{#0B090C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울루 벤투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세르지우 코스타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23F3F; font-size: 0.8em"
코치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이클 김 ·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펠리페 코엘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최태욱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23F3F; font-size: 0.8em"
GK코치/전력분석관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비토르 실베스트르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23F3F; font-size: 0.8em"
피지컬코치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페드로 페레이라


1월 1일 아시안컵 직전 열린 사우디와의 평가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고 후반전에 들어가기 전에 교체되었다.

1월 7일 필리핀과의 24강 조별리그 1차전에서 후반 19분에 구자철과 교체되어 출전했다. 그리고 교체 투입된 지 2분 만에 이용과의 2:1 패스 후 돌파, 황희찬에게 정확히 찔러 준 환상적인 스루 패스로 황의조의 결승골에 관여하며 승리의 공신이 되었다. 이 외에도 경기 내내 대표팀을 고전시킨 필리핀의 텐백 밀집 수비를 상대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해내며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면서 맹활약했다.

12일 키르기스스탄과의 24강 조별리그 2차전에서 풀타임 활약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경기 내내 가벼운 몸놀림을 보이며 현재 그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랐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전반 35분 빈 골문을 앞에 두고 슛을 허공으로 날리거나 후반전 백패스 미스로 실점의 빌미가 될 뻔한 실수도 있었다.

16일 중국과의 3차전에도 2차전에 이어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했고, 후반전에 주세종과 교체되었다. 역시나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19일 대회에 참가 중임에도 여동생의 결혼식을 이유로 왕복 20시간의 비행 시간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에 다녀온 뒤, 22일 바레인과의 16강전에서 선발 출장하였다. 때문에 체력적으로 문제를 보이며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후반 22분, 주세종과 교체되었다.

26일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여 84분을 뛰고 이승우와 교체되었다. 체력 문제 때문인지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대한민국은 0-1로 패배했다.(8강 5위)

종합하자면 24강 조별리그에서는 탈아시아급 활약을 보여주며 대표팀의 조 1위에 기여했지만 토너먼트 직전에 여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자충수를 두며 체력부족으로 자멸했다. 비록 가족사 때문이긴 하지만 대회 중에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한 이청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면 차라리 승선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그랬냐는 의견이 많다.

4.7.2. 2019년[편집]


아시안컵 종료 후 기성용, 구자철 등 최고참 베테랑들이 국가대표를 은퇴했지만, 본인은 남아서 이용과 함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3월 22일, 울산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67분 황인범과 교체 출전해 홍철의 측면 크로스를 벼락같이 쇄도하며 깔끔한 헤딩 골로 연결, 1-0 승리를 이끌며 MOM에 선정되었다.[2] 영상

3월 26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는 선발 출전했고, 수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공수 조율도 잘 해내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약 70분을 뛰고 나상호와 교체되었으며, 팀은 2-1로 승리했다.

6월 A매치에는 부상으로 소집되지 못했다.

9월 A매치에는 소집되었으나 부상으로 하차했고, 이후 10월과 11월에는 소집되지 못했다.

4.7.3. 2020년 ~ 2022년[편집]


2020년 10월 A매치 기간에 열리는 벤투호vs김학범호 스페셜 매치 명단에 들어 오랜만에 대표팀에 승선하는 듯 했으나, 오른쪽 무릎 인대 부상이 발견되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21년 이후에는 통 소집되지 못하고 있고, 감독이 위르겐 클린스만으로 바뀐 2023년 이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친구들인 구자철기성용은 대표팀 은퇴 선언을 하고 프로 팀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이청용 본인은 공식적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친선경기 콜롬비아전 이후로 대표팀에 뽑히지 않아 사실상 이 쪽도 대표팀 은퇴 수순을 밟은 듯 하다. 나이도 나이지만, 아무래도 이청용의 주 포지션인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현재 인력풀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경쟁에서 밀린 듯 싶다.[3]

[1] 이 때 같이 뽑인 신영록은 2년 월반, 기성용조영철은 4년 월반이다. 다만 기성용은 빠른 1989년생이라 이청용과 동기다.[2] 여담으로 득점을 기록한 이청용과 어시스트를 기록한 홍철 모두 2020년에 이 경기가 열렸던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구단에서 같이 뛰게 되었다.[3] 윙어 포지션으로는 손흥민, 황희찬, 나상호, 송민규, 엄원상 등이 있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재성, 이강인이 있다. 특히 손흥민과 이재성은 두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331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3;"
, 3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331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3;"
, 3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3:21:54에 나무위키 이청용/국가대표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