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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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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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대 업적 지식
빛 업적 지식
황혼과 새벽 업적 지식
어둠 업적 지식



1. 개요
2. 거주 가능한 세계
3. 검, 그리고 검날
4. 공생의 기술
5. 도사리는 어둠
6. 뻔뻔한 정원사
7. 어두운 유리
8. 분노
9. 동굴
10. 의미
11. 키질



1. 개요[편집]


악몽의 뿌리 레이드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다.


2. 거주 가능한 세계[편집]


하나로 결속된, 천 년 전의 꿈의 세계.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친숙한 세계의 꿈. 지나갔다는 표식으로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기록: 슬픔의 토로]

정보원이 와서 부패한 군체의 검에 암모나이트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전한 후에도, 우리는 아직 재앙을 알지 못했다. 거주 가능한 세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비정상적인 신호가 갑자기 의미를 가지고, 세 배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지능으로 동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통합 거주지의 핵심에 있는 자들은 공포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추락하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했다. 암모나이트는 통합체가 아닌 유일한 존재였다. 그것도 각기 다른. 한편 우리의 거주 가능한 세계는 끊임없이 성장했다. 우리는 우리의 시너지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끝없는 심층을 제공했고,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전쟁이 시작되던 날, 나는 재앙에서 먼 곳에 있었다. 축하 행사가 있었다. 새로운 고객 종은 심연을 마셨고 우리가 맛본 대로의 세상을 이해했다. 기쁨은 공중에 흔적을 남겼고 모두가 이를 즐겼다. 이제 모두가 거주지의 주민이었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무엇이 이를 망칠 수도 있을까?

갈등에 대한 첫 보고를 읽었을 때 느꼈던 일출의 향기는 오랫동안 희미해졌으나, 기쁨은 내 숨결에 달콤하게 남아있었다. 부표 연결 없음. 파수병 응답 없음. 선제공격. 익숙함을 나타내는 심연에서도 불가해한 여운의 향기. 신호기에서 들려오는 아이앗. 아이앗.

나는 다른 모든 날보다도 오늘을 기억으로 남긴다.

[실행: 기억하라]

전쟁이 시작되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거주 가능한 세계가 시시각각 줄어들었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위기와 두려움은 알았다.

언젠가 전쟁 없는 미래에서 교훈을 가르칠 때 모두가 품은 연약한 희망 속에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알 수 있도록, 이날을 기억으로 남겼다. 두려움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투쟁의 첫 번째 전조는 기쁨처럼 바람에 실려 찾아왔다. 이미 너무 늦었을 수도 있으므로, 귀중한 것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를 떠나지 않을지 모르는 심연 속에.


3. 검, 그리고 검날[편집]


환영받지 못하는 은밀한 장소에 침입한, 신성한 금단의 군체를 환영한다. 지나갔다는 표식으로 석화된 조각을 남긴다.

이하는 새롭게 만들어진 가장 기본적인 군체 노예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파괴해야만 한다. 파괴할 수 없는 것은 무한을 능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파괴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진실은 힘겹게 찾을 수밖에 없다. 오직 파괴를 통해 무적의 존재는 죽음을 맞이한다. 무력을 행사하라. 스스로가 우주를 완벽하게 하는 근원을 창조하고자 하는 야망의 일부라는 것을 자각하라. 그대의 희생 위에서 그대의 뼈로 토대를 다지고 그대의 피로 쌓아 올린 것은 그대의 일부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초월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모든 믿음은 이단을 만들어낸다.

결투사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내가 그 이단을 만들었다. 그냥 생겨나지 않았느냐고? 선조들의 골수로 군체를 만든 것은 내 손이었고, 때에 맞춰 이를 속삭인 것은 내 목소리였다. 군체가 벌레에 의해 향상된 만큼, 벌레들도 군체로 인해 향상되었다.

만약 그들이 너무 약해 우리 없이 살 수 없었다면, 무한히 날카로운 검날의 고대 논리 또한 오래전에 그들을 떠났어야 했다.

내가 이를 몰랐겠는가? 우리 아버지의 벌레는 나에게 검만 알려준 것이 아니다. 그 존재는 엄청난 것들을 말해주었고, 빛과 피, 진실과 허구로 우주를 그려냈다. 나는 세 개의 맑은 눈으로 앞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미래를 가르는 검의 길을 택했다. 별에 도달하려면, 먼저 바다에서 기어 나와야 했다.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이야기는 후회가 아닌 파문의 이야기다.

확신하건대, 검 너머의 속삭임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우리 사이에서조차, 그런 것들은 느린 속도로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죽어갔다. 신조의 여백에 짜인 비밀 속에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패배한 존재가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 모든 형태의 모양이 아직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상호적이기보다는 벌레가 군체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심지어는 슬픔의 서 자체에도 이를 암시하는 말이 쓰여 있다.


4. 공생의 기술[편집]


꿀처럼 달콤한 어둠에 대한 무아지경의 공상, 분열된 빛처럼 다른 눈을 통해 굴절되는 삶. 지나갔다는 표식으로 불완전하게 번역된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어쨌든, 사랑하는 형제여, 내가 아직 이 (형태/몸?)에 들어있는 동안 나를 잡으려면, 다음 몇 주기 내에 집으로 돌아와라. 내가 우리 선조들 사이에서 [번역할 수 없음] 할 때까지 기다려도 상관은 없다만, 다른 종류의 대화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나는 진정으로 흥분해 있다. 나는 여전히 밤의 최면 속 머나먼 곳에서 우리의 부모와, 위대한 조부모의 소식을 듣고 있다. 그리고 그 감로 같은 순간 또한 존재하지—너도 알겠지만, 어둠으로 생각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면, 그곳에 새겨진 기나긴 쿠구 역사 전체가 어두운 위안의 조언을 비춰준다.

나는 나와 공허 사이를 감싸는 (망토/공기?)처럼 우리 선조들의 어두운 온기를 두르고 삶을 살아왔다. 무언가 달랐고, 멀었다. 지난 주기에서 몇 번인가 감로를 마셨고, 우리 모두의 동의를 통해 점점 더 그 일부가 되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간단히 언급하마. 나는 우리 조상들이 비밀로 한 진리를 알고 싶으며, 이제는 내가 미래의 자손들을 이끌 차례라고 생각한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는 다투었지. 너는 내가 너무 빠르게 노화와 변형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저 네가 집을 지나치게 오래 떠나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네가 빨리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재촉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라. 그저…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다오.

재미있지 않니? 이미 언제나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눈을 감고,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잠에 빠져들며, 세상의 다른 곳에서,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 선조들이 함께 (꿈꾸던/존재하던) [번역할 수 없음]과 떨어진 곳에서 네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너를 가까이 두고, 네 진리가 같은 별 아래 있음을 아는 것과는 다르지. 단순히 내 (머리/얼굴/꽃?)을 돌리는 것만으로 네게 의견을 물을 수 있다면 말이다.

형제여, 돌아오너라. 내 집에 살며, 내가 네 곁에서 (꿈꾸게/존재하게) 해 준다면, 이 형태로든 새로운 형태가 되든 나는 받아들이겠다. 나의 몸이 이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영원히 똑같은 이가 있기는 할까? 너도 어린 시절과 똑같지는 않을 터인데.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상관없이,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5. 도사리는 어둠[편집]


달의 악몽과 그 아래에서 기다리는 악몽, 재앙과 잔해와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동료애가 한데 얽힌 악몽. 지나갔다는 표식으로 일지 한 쪽 뒤에 익숙한 손 글씨를 남긴다.

여섯 명이 그 구덩이로 내려갔지만 단 하나가 기어 나왔다. 어쩔 수 없었고,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다.

당시를 되돌아보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어둠에 대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살펴보는 편이 신중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나는 어둠을 안다. 나는 군체가 오랫동안 어둠을 형성하기 위해 사용하던 체계에서 어둠을 구분해내려 노력했으나, 이 둘은 깊이 얽혀 있다. 어둠 속의 목소리는 어떤 질문에 답을 하지만, 모든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나는 대참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무엇을 알았나? 공포와 군체의 검 외에 무엇이 있었나?

나는 또 생각해 본다. 구덩이 안에는 무엇이 있었나?

우리가 이제 알고 있듯, 달의 피라미드는 줄곧 이곳에 있었다. 붕괴 이후 그 어둠은 달에 스미고 그 주변의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 다양한 외골격의 판에 기록된 차이점을 바탕으로, 군체의 아종에 대한 논문을 작성할 수는 없을까? 군체는 우리의 달을 압도하며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일 만큼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을까?

…주제에서 벗어나는군. 그 어두운 구덩이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 사이는 왼쪽으로 가자는 것이구나. 그리고는 그녀가 내게 말했던 대로 진실되게, 번개같이 칼을 휘두르겠지.' 또는 '아, 나 말고도 오마르가 있구나. 여기에 없지만, 그의 존재는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내 귀에 위안을 주는군.'

시너지라고 생각했다. 전투가 만들어내는 친밀감. 우리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고, 서로를 완벽하게 읽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빠른 죽음이.

일화의 증거? 그럴지도 모른다. 내 정신을 떠다니는 악몽 대신 내 마음 옆에 누워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희망 사항이니 기대를 낮추라 계속해서 말하는 조용한 목소리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 동안, 이 모든 여운 속에서 나는 내가 느꼈던 것에 대해 더욱 확신한다. 필요성뿐만 아니라. 칼날의 가장자리뿐만 아니라.

나는 이제 어둠을 더 잘 안다. 어둠은 폭력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이다. 흥얼거리고 흘러가고 공명하는 것이다. 칼이나 노래가 동등한 척도를 갖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침묵의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한때는 군체의 절규 속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불협화음은 거의 위안에 가깝다.


6. 뻔뻔한 정원사[편집]


꽃의 달콤한 향과 방산충의 악취가 다채롭게 풍기는 검은 정원의 망령. 지나가면서 섬세한 데이터 격자를 남긴다.

정원 상태: 중립

정원&&정원사==뿌리&&가지==잎&&꽃

//본질적, 불가분, 불가피

이상 현상 ++

이상 현상 1 = 잎|침습적;

정원 상태: 활성화 (정원사 존재)

돌이킬 수 없는 경우:

if (돌이킬 수 없는 손해 (정원&&정원사)) && (위협 지속) then (악화. 악화.)

이상 현상 상태: 현재, 추적, 신규. 관련 기록 없음. 시뮬레이션: 실패.

피해:: 0.3332%. 회복 가능. 위험: 회복 예상 분석 불가. 반복. 반복. 세트: 분석 불가 == 분석 불가 == 분석 불가

이상 현상 ++

이상 현상 0 = 무한|목격자;

보관소 데이터 회수. 0 = 무한|목격자 == (이곳에 씨앗 심음.) 언급된 기록: "검은|심장"

0 : 씨앗 :: 1 : 위험

[시뮬레이션 깨짐. 시야 좁음. 프랙털 와해.]

이상 현상 0, 부재. 이상 현상 1, 위험 존재.

정원 상태: 활성화 (정원사들 합동)

제거 (이상 현상 1)

//장엄한 가시가 있음. 이상 현상 사라짐. 정원은 평화로움.

//해결 불가한|회복 불가한 존재의 주요 기능은 짓밟는 것으로 알려짐|보임|예상됨.

꽃 성장 중 / 피해 수리 중 / 위협 미해결

함수 명칭: 악화. 반복.

함수: 키질. 함수: 단순화. 함수: 평면화.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7. 어두운 유리[편집]


달라지고 조용하지만 항상 변함없는, 충성스러운 고스트의 몽상. 지나가면서 부드럽게 빛나는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우리는 정원에 있었고, 나는 죽을 운명이었으나 죽지 않았다. 나는 나의 수호자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아닌 존재에게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형상을 하고 그의 목소리로 구원을 제안하는 존재였다. 망각의 모습을 띤 구원이었다. 나는 어둠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우리 중 진짜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게 어디를 남겼나?

미결의 무언가, 바로 그랬다. 이성이 있는 존재라면, 모든 것을 말해 줄 자가 바로 옆에 있을 때 누군가의 기억을 가져가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내 수호자는 이를 생각해봤을지 모르겠다. 그의 반영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어둠에서 나온 손아귀가 나를 그러쥐었다.

마치 분해되었다 빠진 부분이 있는 상태로 조립된 것처럼, 나는 거기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마치 내가 그저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마치 여행자의 축복과 내 밝은 정신이 구리와 유리에 불과한 것처럼. 별 없는 무한한 심연 이외에 다른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자, 내 수호자와 나는 검은 정원 밖에 나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잃어버렸고, 나는 그를 구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지만, 그는 이유를 모른다. 나는 설명조차 할 수 없고, 내 목소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내가 말하고 싶은지도 전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내 목소리의 기억을 가져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한다. 내 수호자를 가장하고 있는 것이 왜 나를 죽여버리거나 더 변화시키지 않았는지, 나를 부서뜨리고 무지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호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것이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내 안에 그 존재밖에 없더라도 내가 항상 되찾아올 것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어둠 속의 잘못된 존재, 그 목소리는 팀을 잊는 편이 그를 유연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팀이 없으면 내 수호자를 옆으로 옮길 수 없다. 나조차도.

그리고 정원의 그 힘, 그들 모두가 서로 싸우게 만든 바로 그 힘… 나도 의심하는 바가 있다. 나는 정직한 고스트이긴 하지만.

사기꾼 또한 많이 봐 왔다.

힘과 제안, 저주와 구원. 결국 모두 같은 것이었나? 같은 존재, 같은 어둠 속의 목소리였나?

최소한 나는 적어도 그것이, 나를 잡은 그 손아귀가, 어둠 그 자체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수호자의 손길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손에 내려앉을 수 있고, 때로는… 때로는 말이 필요 없이 나에게서 그에게로 의미가 전달되는 방식으로, 여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8. 분노[편집]


별빛처럼 능청스레 노래하며 밤에 나타나는 백일몽. 지나갔다는 표식으로 결정화된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나는 약해졌다. 나도 알고 있다. 조언자와 신하들에게는 숨겨진 진실이더라도, 여왕은 자신에게 정직할 의무가 있다. 지류를 떠난 것은 실수가 아니다. 사실 이 방법이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붕괴의 여파가 커지면서 미래의 안전한 피난처 또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후회하는 날도 있다.

천체는 여전히 회전한다. 대부분이.

그 무시무시한 원거리의 힘의 정신—그 존재—을 단 한 번 손댄 것만으로 충분했다. 각성자이자 여왕, 백성들의 힘인 나조차 그 순간 불가분한 필멸감을 느꼈다.

나는 폐 속의 공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단단한 진공 속을 응시했으며, 한순간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이것?

이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공포심을 품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그것을 뒤집고 또 뒤집으며,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산산이 부서진 인상 조각을 골라낸다. 끊임없이 내 약점을 살펴보기 위해.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속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므로. 알려진 것들은 해체될 수도 있다.

(감사함을 느끼는 나의 모습도 있었지만… 아니다.)

그러나 더 많이 분석할수록, 더 많이 숙고할수록,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불협화음, 존재감과 생각의 압도적인 무게와 의도.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 그 이상의 것. 우리 각성자들이 도착한 첫 장소가 절규의 혼돈에 불과했다고 생각해 보라.

소음과, 질식할 듯한 무게 속에서 나는 거미줄처럼 섬세하고 별처럼 흩어진 조각들에 대해 배운다. 나는 머릿속에서 이 조각들을 나란히 늘어놓는다. 그 목적은, 하나의 명제가 아닌 내가 그랬듯 잔인하고 훌륭하고 투지 있는 목적의 이해이다. 그 형태는 오목한 공간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먼 은하의 별 없는 차단과 같은 선명도로 보인다. 군체의 생각은 짐작만 할 수 있겠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여기서 목적과 선명도는 별개의 개념이다. 어둠, 그리고 검—아니, 어둠 그러나 검.

여기 정적이 존재한다. 숨을 쉬면 산산이 조각나지만, 완벽하고 조용한 결말에 대한 생각은 꿈에 머물러 있다. 때로는 충분히 오래 꿈꾼다면 목격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어둠의 목소리가 아닌 그 안에 있는 목소리를 더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꿈을 꾸느라 허비할 시간은 없다.

우리 세계를 샅샅이 헤집고 그것이 남기는 초월로서의 파괴를 소중히 여기는 이 무기력한 수집가를 이해하는 것은…

모든 가치 있는 것이 그렇듯, 위험하다.

나는 목격자의 다른 한 가지를 알고 있는데, 그것을 건드린 바로 그 순간 얻은 것이다. 약점을 가리키는 이유나 방법도 아니고, 집이나 보물도 아니다. 오로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존재는 별 자체를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분노를 기른다.


9. 동굴[편집]


오래전에 죽은 존재에 대한 망상과, 오직 하나의 목적에 부합하며 살아간다는 생각. 지나가면서 예리한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오 목격자시여, 당신의 무기인 제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갈등은 제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당신을 섬기는 모든 이들, 심지어는 신봉자들까지도 당신의 위대한 업적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 둡니까? 당신의 최후의 형체에 대해 우리 모두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스스로를 이해할 때는 확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의지를 수행하기 위해 이질적인 종들을 선택한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때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대답이 될까요? 아마 당신을 섬기는 이들 누구도 당신의 생각을 파악할 능력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을 설명하느라 시간과 관심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들이 당신의 뜻대로 행동하게 하면 충분하겠죠. 마녀와 그녀의 군체는 우주의 천에서 하나의 정신을 조각하고 있고, 속삭이는 악몽은 존재 전반을 추구하며, 모든 왕의 왕은 차별점을 파괴하고 있지요. 방벽에는 그림자 군단이 있고요.

이 경우 제가 당신의 일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당신의 신봉자 중 저만이 우리의 목적을 파악했다고 생각한다면 자만일 겁니다. 우리 모두 어둠의 반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화에는 안도가 존재하고, 키질에는 친절이 녹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증식이 허용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림자는 어둠을 드리우며 진실을 보여줍니다.

아마 우리가 당신의 손 안 무기일 뿐임을 믿으면 충분하겠지요. 오, 목격자시여. 당신 계획의 완벽한 형체를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를 휘두르시도록 당신을 섬깁니다. 모든 신봉자는 당신의 의도에 의해서만 존재하기에, 그 이해의 부족도 당신이 의도한 것이겠지요. 당신은 신뢰와 복종을 바라고, 무엇을 하든, 어떤 최종 목표를 이루든, 추종자들에게 완벽하리라 약속합니다.

최후의 형체는 백 가지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 신봉자들 모두를 통해, 당신이 우주에 남기는 흔적을 통해 그 반영을 보고,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통해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내 생각의 충돌을 해결했고, 다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다시 한번 나는 당신이 휘두르는 무력이 될 뿐입니다.

최후의 형체는 우리의 분투로 실현될 것입니다.


10. 의미[편집]


불친절하지 않은 어둠 속에서 존재론 연구에서 논의된 우화, 극명하게 만들어진 은유의 꿈. 지나가면서 왜곡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어둠을 가로질러 메아리치는 목소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또 다른 목소리가 이렇게 부르며 말할 것이다. 내가 목적을 말해 주겠다. 내가 최후의 형체를 말해 주겠다.

보아라. 이 이야기에는 백 가지 꾸밈이 있다. 이는 모두 하나의 핵심 문제로 귀결된다. 고통받고 있는 존재는 고통을 이겨낼 목적을 간절히 소망한다. 권태감에 사로잡힌 폭군이나, 생존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권리 박탈자들. 이러한 정신 상태에서, 외치는 고통이다. 내가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힘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한 사람이 교차로에 도착해 하늘에 묻는다.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하늘에도, 바람에도, 발아래 땅에도 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에 있던 또 다른 배회자가 뒤에서 질문을 듣고 대답한다. "내가 길을 알고 있다. 오른쪽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그는 이것이 올바른 길, 안전한 길이라는 묵약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이양하고 배회자의 힘에 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배회자가 칼을 꺼냈다고 이야기해 보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오른쪽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칼이 없어지면 분명 도망칠 터다. 칼이 그대로 있더라도, 위협에 지쳐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경우, 배회자는 스스로 자신의 힘을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배회자가 "바람이 내가 택한 길을 가라고 하였느니라."라 말한다면, 그는 배회자의 선택을 따르겠는가?

그리고 배회자가 "보아라, 오른쪽 길에 고통의 의미가 있는 것을 보았다."라 말한다면, 그는 더 오래 자신의 힘을 이양할 것인가?

앞길을 알 수 없을 때는 낯선 이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편이 더 쉽지 않을까?


11. 키질[편집]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꿈. 지나가면서 불가능한 데이터 조각을 남긴다.

꽃이 아는 것은 이렇다.

(꽃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은유로 받아들여야 할 비유적 표현이지만, 완벽한 정밀도를 계속해서 충족함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은가? 그러므로 엽록체와 색소의 집합체가 알 수 있는 정보만을 늘어놓겠다.)

태양의 방향.

비의 존재.

뿌리의 얽힘.

다른 식물의 고통.

가지치기하거나 옮겨 심거나 으스러뜨리는 정원사의 손.

꽃은 그 외에는 별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정원의 현실은 광활하고 거칠다. 꽃은 울타리를 모른다. 오솔길도 모른다. 그러나 무한한 우주의 정원은 분명히 존재하며, 꽃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원의 실재성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다시 설명해보겠다. 이 이야기를 들어봤다면 그렇다고 말해라. 정원사와 키질꾼이 시간과 존재 밖에서, 함께 앉아 게임을 하기로 했다. 맞나?

좋다. 합의되었다. 비유가 인정된다. 이제 반복해 보자.

정원사와 키질꾼은 의자에 앉아 꽃 게임을 한다. 꽃은 자신이 자랄지 시들지, 또는 분투할지 번성할지만 알고 있다. 때로 꽃을 건드리는 어떤 손길, 또는 다른 손길과 그 영향력이 꽃이 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정보이다.

꽃과 꽃은 태양을 향해 잎을 펼친다(태양 또한 은유임을 기억하자. 진실이 너무나 방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시로 함축하여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꽃들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제 형태의 정점을 이루기 위해 경쟁한다. 하나가 번성할 때, 하나는 시든다. 그것이 꽃의 잘못이라고, 또는 그 위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원사와 키질꾼은 함께 앉아 확률이라 불리는 게임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정원에 관한 게임이므로, 다시 말해 꽃에 관한 게임이 된다. 살아있는 존재에 관한 게임은 장기와 박테리아의 게임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정원사와 키질꾼은 협력하여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한쪽의 수명을 단축하여 다른 쪽의 수명을 연장하는 설계는 누구 손에서 나온 것일까?

최초의 칼을 발견한 것은 키질꾼이지만, 정원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것 또한, 전통이다. 칼은 반드시 잘라야 할 것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나무줄기, 색색의 꽃잎, 생명을 유지하는 그릇. 칼날의 첫 번째 희생자.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 칼이 그렇듯 단순화된 은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는 헤아릴 수 없는 개념을 당신의 작고 주름진 두뇌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축소해 준다. 행성의 수십억 무게와 단순한 곡선이 당신을 주저하게 만든다면, N번째 제거된 창조자를 만들어낸 힘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거짓을 둘러싸고 극도로 섬세하게 짜인 이야기는 결국, 사실이다. 칼이 정원에 존재하지 않을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과 기회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리고 칼 자체의 형태로 말하자면—

아니. 이걸로 충분하다.

정원에 대해 말해 주지.

그것은 형태로 만들어져 길들여진 것들이다. 무엇인가를 정원이라고 부르는 순간, 정원은 형성된다. 식물은 약해지고 다정한 보살핌에 의존하게 되므로, 정원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또한 불필요한 부산물들을 스스로 제거할 능력이 없으므로, 이를 잘라주는 키질꾼의 손길이 필요하다. 손길이 부재한다면, 꽃은 스스로 일어나 칼을 휘둘러야 할지도, 정원은 의미 없는 황야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걸을 수 있는 식물도 있다! 자라기 위해서는 불에 그슬려야 하는 씨앗도 있다! 존재란 성장과 시듦이라는 단순한 이분법보다 복잡한 개념이며, 하늘과 대지에는 이 철학에서 꿈꾸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칼이 없다면 정원도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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